북·미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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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북·미 대화는 어떻게 시작되는가

by 경향 신문 2021. 4. 16.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최근 발언 중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고난의 행군’이다. 그는 지난 8일 6차 세포비서대회 폐회식에서 “인민에게 최대한의 물질문화적 복리를 안겨주기 위하여 더욱 간고한 ‘고난의 행군’을 할 것을 결심하였다”고 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 역사에서 가장 어려웠던 1990년대를 떠올리게 한다. 지금 북한 상황이 수십만명의 아사자가 발생했던 1990년대와 같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러나 북한이 대외전략·경제·내부 분위기 등 모든 면에서 녹록지 않은 상황에 처해 있다는 사실은 김 위원장의 직접 언급과 북한의 발표 등을 통해 이미 드러나 있다. 2017년 11월 핵무력 완성 선언 이후 북한의 계획은 미국과의 협상, 경제 회복, 내부 장악력 등 모든 분야에서 차질을 빚고 있다.

 

고난의 행군은 북한이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모든 어려움을 감수한다’는 각오를 나타낼 때 쓰는 표현이다. 1930년대 ‘김일성의 고난의 행군’은 항일투쟁 노선을 지키기 위한 것이었다. 1990년대 ‘김정일의 고난의 행군’은 냉전 종식과 함께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시절 북한식 사회주의와 유일영도체계가 무너지는 것을 막기 위한 처절한 저항이었다. 지금 김정은이 고난의 행군을 통해 지켜내려는 것은 간난신고 끝에 손에 넣은 핵무기일 것이다. 북한이 이번 고난의 행군에 성공한다면 핵을 폐기하는 것이 불가능해지거나, 비핵화를 위해 치러야 할 대가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질 것이 분명하다.

 

이번 고난의 행군 선언은 ‘하노이 노딜’ 이후 북한이 줄곧 강조해온 ‘자력갱생’과 맥이 닿아 있다. 외부의 도움이나 비핵화 협상을 통한 제재 해제 등 대외적 여건 변화를 기대하지 않고 스스로 버텨보겠다는 의미이다. 결국 이번 고난의 행군 성패는 ‘대북 제재 vs 자력갱생’의 결과에 달려 있다.

 

대북 제재의 파급력에 대해서는 각양의 분석이 존재하지만 제재의 효과는 분명히 있다. 특히 제재는 ‘유지하는 것 자체’가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 유엔의 대북 제재는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로 시작됐다. 이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하고 핵실험을 할 때마다 제재가 더해졌지만 즉각적인 효과는 없었다. 중국 쪽으로 문이 열려 있는 데다 북한은 제재로 인한 국민 불만이 선거로 표출돼 정권이 교체되는 일이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 유엔 결의 2270호를 기점으로 대북 제재는 성격이 달라졌다. 이전의 제재결의가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부품과 재원 마련을 차단하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2270호를 비롯해 2017년 12월까지 만들어진 5개의 제재결의에는 북한에 전방위적 고통을 가해 핵을 포기하도록 강제하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 유엔의 기본정신에 위배된다는 평가까지 받을 정도로 강력한 제재다. 북한이 핵무력 완성 선언 두 달 만인 2018년 1월 서둘러 대화 국면으로 돌아선 것은 제재의 효과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2019년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북한이 2016년 이후 제재를 우선적으로 풀어달라는 요구를 한 것도 이 때문이다.

 

좌우 한 짝씩 갖춰야만 비로소 한 켤레의 신발이 되는 것처럼 제재는 ‘외교적 관여’와 결합되어야만 의미가 있다. 외교적 해결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제재가 필요하다. 그 과정에서 반발과 충돌이 발생하는 것은 필연이다. 그리고 그 충돌이 파국으로 이어지기 전에 적절한 타이밍을 포착하면 협상이 시작된다.

 

비록 실패하긴 했지만 2018년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계기로 시작된 북·미 대화가 좋은 예다. 꽉 조인 제재로 북한이 체제유지에 한계를 드러내고 미국이 북한의 핵미사일 사정거리에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양쪽 모두 진지한 대화를 하려는 의지가 생겼다.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면 처음부터 작업이 다시 시작되어야 한다.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는 제재를 정비해 북한을 압박하는 작업을 먼저 시작할 것이다. 북한은 제재를 견디며 미국을 위협할 수 있는 수단이 있음을 보여주려 할 것이다. 북·미는 이 과정을 거친 뒤에야 대화 테이블에 앉을 가능성이 크다.

 

문재인 정부도 인내심을 갖고 이 과정에 동행해야 한다. 제재와 도발의 단계를 지나야 대화의 문에 도달할 수 있다. 특히 ‘대화는 선, 제재는 악’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을 버려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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