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중 정서와 친중 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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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특파원 칼럼

반중 정서와 친중 프레임

by 경향 신문 2021. 9. 29.

최근 정의용 외교부 장관의 발언이 파장을 일으켰다. 유엔총회 기간 미국 뉴욕을 방문한 정 장관은 지난 22일 미국외교협회 초청 대담에서 진행자가 한국과 일본, 호주, 미국을 ‘반중국 블록’으로 규정하려 하자 “그건 중국인들의 말처럼 냉전 시대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국이 점점 더 공세적이라는 것을 느끼느냐는 질문에 “중국은 20년 전 중국이 아니고 경제적으로 더 강해지고 있기 때문에 당연한 일이라 생각한다”고 답했다. 정 장관은 이 발언으로 ‘중국 외교부장’ ‘중국 대변인’이라는 공격을 받았다.

 

외교부는 곧바로 정 장관 발언에 대해 “중국의 공세적 태도를 자연스럽다고 한 것이 아니라 외교·경제력 등 국력 신장에 따라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려고 하는 것에 대해 일반적인 국가의 국제 위상 변화 차원에서 자연스러워 보인다고 표현한 것일 뿐”이라는 설명을 내놨다. 정 장관 자신도 다음날 중국 대변인이라는 공격에 억울함을 표했다. 하지만 이미 그의 발언에 덧씌워진 ‘친중 프레임’을 걷어내기는 힘든 상황이었다. 국내 반중 정서를 감안할 때 정 장관의 발언은 진의를 떠나 공격받기 딱 좋은 소재였다.

 

다만 그의 발언이 논란거리로만 비친 데 대해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첨예해지는 미·중 갈등 속에서 우리는 우리가 처한 외교 현실과 중국을 보다 냉정하게 바라보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러려면 친중이니 반중이니 하는 프레임을 걷어내고 미·중 문제를 바라봐야 한다. 정 장관의 대담 내용을 보면 아시아가 중국과 반중국 블록으로 나눠지고 있다는 진행자의 발언에 ‘냉전적 사고’라고 맞받은 것을 중국의 입장과 일치한다고 비난만 할 일은 아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 역시 이번 유엔총회 연설에서 “신냉전이나 단단한 블록으로 분할된 세계를 추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공세적인 중국의 태도가 위상 변화에 따른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이해하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간다. 미국은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대중국 포위망을 강화하고 있고, 중국은 이를 자국의 발전을 억제하려는 것으로 본다. 국제적 위상과 발언력이 달라진 상황에서 자국의 이익을 위해 외교적으로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은 어느 나라건 당연해 보인다.

 

중국의 행동을 정당화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설령 적대국이라 해도 그 행동의 배경과 맥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극단적 충돌을 피하고 관계 개선의 여지를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지금 반중 정서가 극도로 고조된 시점에 있다. 지난 5월 시사인의 ‘한국인의 반중 인식 조사’를 보면 중국에 대한 호감도는 26.4점으로, 일본(28.8)이나 북한(28.6)보다도 낮았다. 하지만 이런 반중 감정이 중국에 대한 모든 판단과 이해를 뒤덮는 요소가 돼서는 곤란하다. 미·중관계도 단순하게 친중·반중, 친미·반미의 시각으로 볼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언론도 우리가 반중 블록에 서지 않으면 큰일 날 것처럼 조바심을 내다가 미국에 조금 기우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 중국의 반응을 걱정하는 이율배반적 태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김흥규 아주대 교수는 최근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중국을 때리고 한·미 동맹을 강조하는 것이 표를 얻는 방법이 될 수는 있지만, 국민적 반중 감정에 외교정책이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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