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비아 반군·카다피군·시민 한 병원서 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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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리비아 반군·카다피군·시민 한 병원서 치료

by 경향 신문 2011. 9. 1.

ㆍ입원 카다피군 병사 “나토의 공습 소식에 나라 지키려 자원”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 시내를 걷다보면 눈돌리는 곳 어디에서나 반군의 삼색기를 볼 수 있다. 나무에도, 담벼락에도, 차량에도 반군을 지지하는 표식이 새겨져 있다. 차를 탄 어린아이부터 노인들까지 창문 밖으로 몸을 내밀어 승리의 V자를 그리면서 ‘리비아는 자유다’를 외친다.


지난 2월부터 8월21일 반군이 입성하기 전까지 무아마르 카다피 국가원수의 손아귀에 있던 트리폴리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곳 사람들은 반군을 열렬히 환영하는 것일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녹색 광장(현 순교자의 광장)에 사람들이 쏟아져 나와 친카다피 시위를 벌인 곳이 트리폴리 아니었던가. 지난 31일 찾은 트리폴리 살라에딘 병원에서는 반정부 시위 발발 이후 지금까지 트리폴리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그 단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전 11시반쯤 이드 연휴로 대부분의 상점이 문을 닫은 한산한 시내를 달려 살라에딘 병원에 도착했다. 주차장에는 똑같은 쇼핑백을 든 사람들이 줄지어 병원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병원에서 명절을 보내야 하는 사람들을 위해 옷가지 등 선물을 전하러 온 자원봉사자들이었다. 리비아에서 가장 큰 병원인 이곳은 얼마 전 수백구의 시신이 무더기로 발견된 아부 살림 지역의 병원 등과 함께 트리폴리에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여성 외과의사인 모하메드 이남(35)은 지난 2월 이후 트리폴리에서 생존하는 것은 끔찍했다고 회고했다. 이남은 “카다피군과 그가 고용한 용병들이 반정부 시위가 일어난 직후 가리지 않고 민간인을 죽였다”고 말했다. 트리폴리에서 태어나 교육받은 12년차 의사인 그는 “시내 곳곳에 저격수가 배치돼 두려워서 나오지도 못하고 출근하는 것조차 무서웠다”고 말했다.


 

카다피군에 자원해 친위부대 카미스여단 소속으로 반군과 교전하던 중 다친 이브라힘 마흐무드가 지난 31일 트리폴리 살라에딘 병원에서 V자를 그리고 있다. 트리폴리 _ 이지선 기자

1층 다른 병실에서 만난 모하메드 파우지(43)는 카디피군에 의해 무차별 공격을 당한 경우다. 트리폴리에서 동쪽으로 60㎞가량 떨어진 소크나 출신인 파우지는 사무직 직원이었다. 지난 21일 밤 볼일이 있어 택시를 타고 트리폴리에 도착했다.


샘소나이트 가방을 들고 택시에서 내리자마자 카다피 정부군 1명이 다가와 그를 쓰러뜨리더니 권총으로 그를 쐈다. 그러고 움직이지 못하는 그를 향해 다시 여러 발의 총알을 발사했다. 팔에서 목 쪽으로 관통한 총알은 아직까지 목과 어깨의 연결 부위에 박혀 있고, 한 발은 척추를 관통해 그는 하반신 마비 상태다. 평생 걸을 수 없게 돼 휠체어를 타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 의사의 소견이다. 파우지는 “대체 왜 나를 쐈는지 아직까지도 모르겠다”며 “카다피가 잡히면 새장에 가둬 옆에 들고 다니면서 죽이고 싶을 때 죽이겠다”고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 파우지를 직접 일행에게 소개해주면서 통역과 안내를 맡은 의사 압둘 카피 타샤니(52)는 “그는 하반신이 마비됐다”며 “이런 과격한 말을 하는 것도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 반군과 한 병동 긴장감 팽팽


이들의 말을 종합하면 반군이 트리폴리를 손에 넣기까지 6개월 동안 카다피 치하의 트리폴리는 말 그대로 ‘공포의 도시’였다. 외과의사 이남은 “내 외가 친척 3명을 비롯해 이웃에서만 100명은 죽은 것 같다”면서 “트리폴리에 있는 거의 모든 가정은 일가친척 가운데 한 명꼴로 카다피군에 의해 희생된 셈”이라고 말했다. 그의 병원 동료 한 명은 자녀 4명을 한꺼번에 잃고 완전히 미쳐버린 경우도 있다고 했다. 


외신에서 ‘트리폴리 시민들이 위험하다’ ‘트리폴리에 저격수가 활보한다’는 등의 내용을 접한 적이 있지만 상황이 이렇게 심각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직접 듣고도 믿겨지지 않는 현실에 입이 떡 벌어졌다.


카다피군은 병원도 위협했다. 리비아의 상황을 실시간 업데이트하는 알자지라 방송 웹사이트에 따르면 지난 2월22일 트리폴리의 의사들은 총에 맞은 병사를 치료했다는 이유로 위협받고 살해되고 있어, 환자들을 제대로 치료하지 못하고 돌려보냈다고 한다. 이남이 전한 상황과 일치했다. 그는 “카다피군은 병원을 때때로 찾아와 반대 세력이 오면 치료해주지 말라고 위협했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시민들에게 트리폴리로 진격해 카다피군을 쫓아준 반군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지금 반군들이 들고 다니는 총은 숨어서 민간인들을 쏘기 위해 카다피군과 용병들이 쥐고 있던 총과는 다른 의미일 수밖에 없다. 병원마다 반군 깃발이 휘날리고, 병원 인력이 모자라는 상황에서 반군을 지원하는 시민들의 자원봉사 손길이 이어지는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이 병원 한쪽에는 교전 중 다친 카다피군과 수단, 나이지리아, 우간다 등에서 온 아프리카 용병들도 함께 치료를 받고 있다. 치열한 교전을 벌인 양쪽이 같은 병동에서 치료를 받는 상황이었다. 이들 만나기 위해 6층으로 올라갔다. 이 층에만 40명, 전체적으로는 100여명의 카다피 지원군이 이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고 한다.


카다피군에 자원해 카다피 최정예 친위부대인 카미스여단(32여단)에 배속된 스무 살 이브라힘 마흐무드가 누워 있는 병실로 갔다. 그는 일주일 전쯤 병원 인근 지역을 지키다 반군과 마주쳐 교전을 벌였고, 왼쪽 골반에 총격상을 입은 상태였다. 그는 취재진을 보고 처음에는 경계하는 눈빛을 보였다. 하지만 이내 입을 열고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서부 나푸사 사막지대 미르다 출신의 그는 텔레비전을 보고 카다피군에 지원했다고 했다. 마흐무드는 “TV에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가 우리를 공격하고 있다고 했다”며 “기쁜 마음으로 나라를 보호하기 위해 군대에 자원했다”고 말했다. 그가 카다피군에 자원한 것은 지난 6월. 3개월의 훈련 기간을 거치는 것이 보통이지만 한 달 만에 바로 총을 받아 전장에 투입됐다.


반군들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냐고 했더니 “주변에서 일부 반군에 합류한 사람들이 있었지만 TV에서 ‘반군은 쥐새끼’라고 했고 모스크의 이맘도 나쁜 사람이라고 했다”며 반군에 대한 나쁜 이미지가 있었다고 답했다. 통역을 맡은 의사 타샤니는 “지난 2월부터 알자지라를 비롯해 리비아 내 민영방송도 모두 볼 수 없었기 때문에 마흐무드처럼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마흐무드는 이웃끼리 민영방송을 보는지 서로 감시하고 만약 그럴 경우 당국에 신고가 들어가기 때문에 도저히 민영방송은 볼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했다. 카다피가 철저하게 미디어 선전전을 벌였고, 거기에 세뇌된 젊은이들이 카다피군에 가담했다는 것이다. 카다피 정권은 철저히 미디어를 통제하면서 무작위로 총구를 들이대는 공포의 정치로 자신의 최대 지지기반인 트리폴리를 끝까지 유지하려고 했던 것 같다.


그 힘이 커지는 것을 우려해 자신의 아들이 이끄는 카미스여단 말고는 군대를 키우지 않았던 카다피는 거액을 들여 용병을 많이 고용했다. 이 병원에서는 용병 부상자도 만날 수 있었다. 용병들의 병실을 찾기 전 의사 이남은 “이들은 대부분 보복이 두려워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등의 핑계를 댈 것”이라며 “하지만 모두 교전 중 다쳐 반군에 의해 이송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이남의 말처럼 차드 출신 하심 아메드(33)는 “출근길에 트리폴리 시내에서 교통사고를 당했다”며 “총을 쏴 본 적이 없고 반군과 싸운 적도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카다피 측 용병으로 활동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어느 쪽 말이 맞는지는 정확히 확인할 수는 없지만 이들 사이의 팽팽한 긴장감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얼마 전까지 자신의 이웃을 살해한 사람들을 바라보는 심정이 얼마나 복잡할까. 이남에게 물어봤다. 그는 “솔직히 이들을 직접 죽이고 싶다”고 했다. 그는 “이 사람들이 아이들과 여성들도 모두 쏴서 죽였고, 용병들이 우리 돈으로 하루에 3000~5000디나르(266만~435만원)라는 거액의 돈을 받았다는 얘기가 리비아 사람들 사이에 파다하다”며 “마음속에서는 이들을 증오하고 있다”고 말했다.


■ 증오 이면에 내전 상처 깊어


그가 이렇게 분노하는 배경에는 카다피 정권의 실정도 한몫했다. 병원에는 약품과 의료기구가 턱없이 모자라고, 1999년부터 2001년까지 3년 동안 월급을 못 받고 일한 적도 있지만 카다피는 용병을 고용하는 등 자신의 배를 채우는 데만 돈을 펑펑 썼다는 것이다. 이남은 “치과의사인 여동생도 4년째 일자리가 없어서 집에서 놀고 있고 남동생도 실직상태”라며 “카다피는 오일머니를 이런 데 쓰고 있었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그는 “나의 종교가 그들을 동등하게 대하라고 가르치고 있다”며 “신이 그들을 처벌할 것”이라고 말했다. 카다피 정부군 역시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과 동등한 치료와 처우를 받고 있다고 했다.


내전은 이렇게 많은 사람들에게 상처를 남겼다. “치료받고 나간 반군이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정부군을 쏘는 것을 보았다”는 병원 직원 압둘 하말의 말에 의사 타샤니는 내전에서 겪은 괴로움을 털어놨다. 그는 “누군가를 치료해주면 병원 밖으로 나가 다시 서로를 죽인다”며 “모두가 리비아인들인데 서로 싸우는 것이 마음 아프다”고 말했다.


병원을 나서면서 카다피군에 가담한 것을 후회하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하며 수줍게 웃던 마흐무드의 얼굴이 떠올랐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반군의 승리를 뜻하는 V자도 그려보이던 그였다. 선전전에 속아 나라를 구하겠다는 생각에 카디피군에 가담한 그에게 행여 보복이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뜩 떠올랐다. 마흐무드는 복수를 당할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그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리비아의 미래가 밝지 않을까 점쳐본다. 이남이 “보복은 하고 싶지만 처벌은 신이 할 것”이라고 말했듯이.


<트리폴리에서>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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