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끝나도 식사는 고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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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에 가다 /리비아 서바이벌

라마단 끝나도 식사는 고역

by 경향 신문 2011. 8. 30.

ㆍ현지 교민 집서 김치찌개… 어찌나 맛있던지 한그릇 뚝딱


리비아 라마단(이슬람 단식 성월)의 마지막 날인 30일(현지시간). 숙소인 알 와단 호텔이 반군 기숙사로 쓰이고 있는 덕분에 찬물이라도 물은 잘 나오지만 식사는 고역이다. 그동안 온종일 금식 끝에 오후 7시30분쯤 먹는 라마단의 저녁식사, 이프타르가 하루 중 제대로 된 유일한 식사였다. 


하지만 배경음악처럼 창문 너머로 들리는 총소리가 익숙하지 않다. 호텔 엘리베이터 앞에서 마주치는 총 든 반군 청년들도 어색하긴 마찬가지다.


무슬림들은 라마단이 끝나면 이슬람권 최대 명절의 하나인 이드 알 피트르(이드) 연휴를 시작한다.


 

일상의 평화 찾아가는 트리폴리 거리 리비아 수도 트리폴리의 중심가인 라시드 거리에서 29일 시민들이 라마단 뒤 열리는 이슬람의 최대 명절인 이드 알 피트르 때 쓸 식료품을 사고 있다. 트리폴리 _ AFP연합뉴스


각 지역의 종교 지도자가 달을 보고 “달을 보았다”는 공식선언을 하면, 라마단이 끝나고 그 다음달 첫날 5일간의 이드 연휴가 시작된다. 대부분 고향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큰 명절이다. 


각 지역의 종교 지도자가 달을 보고 “달을 보았다”는 공식선언을 하면, 라마단이 끝나고 그 다음달 첫날 5일간의 이드 연휴가 시작된다. 대부분 고향의 가족들과 함께 보내는 큰 명절이다. 


그래서인지 29일 트리폴리 시내에는 생기가 돌고 있었다. 트리폴리 서쪽의 구트샤알 거리는 전날만 해도 상점이 모두 철시하고 인적이 없던 거리가 맞나 싶게 북적였다. 


서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이곳에서는 옷가게, 빵집 등 생필품 상점은 물론이고 보석상까지 문을 열었다. 사람과 노점상, 차들이 뒤엉켜 상점가 앞 도로를 가득 메웠다. 신발가게에 들어가 “언제부터 문을 열었느냐”고 물어봤더니 “오늘부터”라고 답했다. 


트리폴리가 하루가 다르게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는 증거였다. 거리를 지나는 한 여성이 두 손을 번쩍 들더니 “리비아는 자유다”라고 외쳤다.


트리폴리 항구에서는 이드를 가족과 함께할 수 없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들은 트리폴리에서 취업했었거나 반군 활동에 참여했던 사람들로 귀향 방법을 찾기 위해 부두에서 무작정 배를 기다리고 있었다. 


지난 25일 국제이주기구가 파견한 전세 선박이 트리폴리로 들어와 난민들을 태우고 벵가지로 이동했고, 전날인 28일에도 벵가지로 향할 배가 들어왔다. 덕분에 집에 갈 수도 있다는 사람들의 기대가 커졌다. 


항구를 출입하는 철문 앞에 20명쯤 돼 보이는 한 무리의 청년들이 앉아 있었다. 무하마드 아비디(22)도 그중 하나였다. 벵가지 출신인 아비디는 트리폴리에서 보안요원으로 일했다. 지난 2월 처음으로 반정부 시위 소식을 듣고 반군에 합류했다. 얼마 전까지 나푸사(Nafusa) 산에서 벌인 전투에 참여했다고 전한다. 리비아 서쪽에 위치한 나푸사 산맥은 수도인 트리폴리로 들어오는 길목에 있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중요한 위치이고 지난 3월부터 최근까지 반군과 카다피군 간의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진 곳이다.


그는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데 배를 구할 수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차를 이용하면 어떻겠느냐고 했더니 “너무 위험하다”고 말했다. 서쪽 트리폴리에서 동쪽 벵가지까지 잘 뚫린 해안도로를 따라 달리려면 무아마르 카다피의 고향인 시르테를 거쳐야 한다. 시르테에는 전국의 카다피군이 속속 집결하고 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군이 카다피군의 무장 차량과 주요 시설을 타격하고, 반정부군도 시르테로 집결하고 있는 상황이라 해안도로 이용은 어렵다. 남부 사막 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경로 역시 사정이 녹록지 않다. 그는 “이드 연휴가 내일모레인데…”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 육로는 카다피군 집결 위험


트리폴리 항도 정상을 되찾아가고 있다. 이날은 터키로부터 들어온 물과 식량을 항구로 보내는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물과 식량을 항구로부터 도시로 싣고 나오는 작업이 아니라 다시 항구로 내보내는 작업을 하고 있는 것이 이상했다. “고생해서 내린 물건을 왜 다시 항구로 내보내느냐”고 물었다. 항구 물류 담당인 피투리 알바쉬(23)는 트리폴리의 도로가 정부군 공격을 막기 위해 봉쇄됐기 때문에 배를 이용하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알바쉬는 “특히 이드를 앞두고 각 지역의 물자 수요가 더 많아져서 항구가 바쁘다”고 전했다.


알바쉬는 반군에 참여했다가 지난 7일부터 항구에서 컨테이너를 관리하는 물류 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 트리폴리 동쪽 외곽의 타주라 출신인 그는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나오다 정부군의 총격을 받아 총상을 입고 반군이 됐다고 한다. 셔츠를 들어 왼쪽 복부의 총격 자국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는 “거의 100% 반군에 의해 장악됐지만 아직 트리폴리가 완전히 안전하지는 않다”며 “아직 정부군 일부가 남아 폭탄 공격을 시도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어느새 항구 관리인도 반군에 참여한 청년으로 바뀐 것에서 보듯 트리폴리 항구는 그 전략적 중요성으로 인해 주인이 끊임없이 바뀌어왔다는 사실이 새삼 떠올랐다. 아프리카 북부와 지중해를 낀 유럽 도시들 간의 중요한 교역루트, 그곳이 바로 트리폴리 항을 끼고 있는 수도 트리폴리이기 때문이다. 미 해군의 첫 전투는 1801년 바르바리 전쟁(트리폴리타니아 전쟁)으로 트리폴리타니아는 바로 현재의 트리폴리 항을 중심으로 한 트리폴리 인근 지역이다. 1804년에는 이 지역이 미국 함대에 의해 봉쇄되기도 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는 이탈리아가 장악했고, 2차대전 때 독일·이탈리아군과 영국군이 싸운 격전지도 바로 이 트리폴리 항 인근이었다.


이렇게 빠르게 정상을 찾아가는 일상 이면에 잠재한 문제도 눈에 띄었다. 우선 다양한 집단이 화해를 이룰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날줄과 씨줄처럼 엮인 부족 간의 복잡한 관계는 반군 과도국가위원회가 다뤄야 할 최대 현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곳 사람들은 과도국가위가 구성부터 제대로 이뤄지지 못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벵가지에 기반을 뒀던 과도국가위가 트리폴리를 포함해 다양한 부족을 아우르는 게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부족 간의 문제뿐 아니라 친·반 카다피로 나뉘어 보복의 보복이 거듭될 가능성도 열려 있다. 한 소식통은 “(과도국가위는) 카다피 정부에서 고위직을 지낸 수뇌부 인사들을 보복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요르단, 레바논, 독일 등의 경호업체에 경호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과도국가위 측은 트리폴리를 장악한 뒤 반군들에게 카다피 정부에서 일했던 인사들에 대한 보복을 삼가라는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려보내고 있다. 하지만 일선 반군 개개인들이 그것을 지켜낼지는 미지수다.


또 다른 문제는 치안이다. 갑자기 반군이 된 이들은 전투를 위해 총기를 소지하고 있는데 ‘저러다가 사고 한번 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안전에 대한 생각 없이 총을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윤규 전 리비아 한인회장(59)은 “하늘을 향해 총을 쏘던 시민군이 벨 소리에 무심코 휴대전화를 들었다가 총구가 아래로 내려오면서 옆 동료가 총에 맞는 장면을 본 적이 있다”고 전했다. 한인 민박집을 운영하고 있는 교민 박경옥씨(54)는 “총을 든 반군 두 명이 서로 언쟁을 하다가 감정이 격해지자 한 명이 들고 있던 총으로 다른 사람의 종아리를 쏘는 장면을 봤다”며 “앞으로 총기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총’을 혁명의 수단으로 이용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이 한껏 부풀어오른 미래에 대한 기대가 채워지지 못했을 때 또다시 ‘총’을 꺼내들 가능성 역시 우려된다. 상황이 안정되면 자신의 본업으로 돌아가겠다는 반군이 많지만 학생 또는 무직 상태에서 ‘혁명’에 참여해 그 ‘열매’를 맛봤던 반군들은 새로운 정부에서 일하길 원하고 있다. 새 정부가 이런 욕구를 제대로 받아내지 못할 경우 혁명을 가능하게 했던 총이 위험한 도구로 변하게 될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만은 없어 보인다.


■ 몇 달째 실직, 생업 복귀 바라


트리폴리의 일반 시민들은 이런 ‘거창한 문제’보다는 생업으로 복귀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가장 크다. 시가총액 1위의 미국 정유회사 엑손모빌에 근무하는 유세프 파토리(34)는 2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3월부터 현재까지 5개월째 실직상태로 있다. 미국인 사장의 운전기사였던 그는 엑손모빌이 철수하면서 실업자 신세가 됐다. 회사가 5개월치 월급을 주기로 약속했지만 아직 받지 못했다.


파토리는 “저금해둔 돈을 아껴서 살고 있지만 앞으로의 상황이 조금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임신한 아내와 두 딸에게는 “돈을 좀 아껴 쓰고 용감하게 버티자”고 격려한다고 한다. 그러나 회사가 언제 다시 문을 열게 될지 아무 정보도, 기약도 없다. 바로 이런 게 지금 리비아인들의 마음일 것 같다. 희망으로 충만했지만 불안 역시 상존한다. 이들이 내년에는 가족들과 함께 평범하고 편안한 이드 연휴를 보낼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명절 분위기는 시장기를 돋운다. 다행히 어제 저녁에는 현지 교민을 만나 오랜만에 한식을 포식할 수 있었다. 어묵을 넣은 김치찌개와 감자볶음, 갈치조림과 멸치, 김. 별로 특별할 것 없는 백반이 어찌나 맛있던지 ‘감사합니다’를 연발하며 한 그릇을 뚝딱 비웠다. 


당초 30일 트리폴리를 떠날 예정이었지만 며칠 더 잔류하게 됐다. 고락을 함께해온 동료들의 의견을 좇아서다. 계약기간이 끝나 집으로 돌아가는 튀니지인 운전기사의 표정이 왠지 밝아보였다. 전화가 전혀 안돼 인터넷으로만 교신을 하는데, 부모에게 전화로 매일 안부를 전해주던 서울의 동료가 “어머님이 오늘 나오는 줄 알고 계시다가 실망하신 목소리더라”고 전해주었다. 이드를 맞기 위해 모두 집으로 돌아가는데 이곳에 더 남게 됐다는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그 마음을 꾸욱 눌러본다. “이드 무바라크!(Eid Mubarak·행복한 명절을 보내라는 뜻의 이슬람 인사)” 

<트리폴리에서>


이지선 기자 jsl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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