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의 동상이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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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강상중 칼럼

동아시아의 동상이몽

by 경향 신문 2014. 5. 1.

‘동상이몽(同床異夢)’은 중국 남송시대 유학자 진량(陳亮)의 ‘여주원회서(與朱元晦書)’의 한 구절에서 따온 사자성어이다. ‘잠자리는 같은데 서로 다른 꿈을 꾼다’는 이 이야기는 어떤 뛰어난 정치가가 있더라도 각각의 입장이 다르다면 침상을 함께한다고 해도 서로 다른 꿈을 꾸고 만다는 것이 아닐까.

이 중국의 고사를 바탕으로 말을 하자면, 동아시아의 주요 나라인 한·중·일 3개국은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에서의 ‘리밸런스’를 주창하는 미국까지 포함한 동아시아는 바야흐로 동상이몽의 관계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동아시아 순방은 동아시아라고 하는 공통의 지정학적 조건에도 불구하고 관련된 여러 나라들이 다른 꿈을 꾸고 있다는 것을 드러냈다.

먼저 미·일관계이다. 변칙적인 국빈대우로 오바마 대통령을 초대한 아베 정권의 목적은 무엇보다도 중국과 영유권을 다투는 도서들에 대해서도 미·일안보조약이 적용된다는 것을 미국 대통령의 입에서 공언받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바마 대통령은 아베 정권의 요청에 응하는 자세를 보였다. 안보 또는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 아베 정권은 점수를 딸 수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측에서 보면 안보조약이 일본이 실효지배하고 있는 분쟁지역에 미친다고 해도 실제로 중·일 간의 무력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 미군이 자동적으로 참전할 것인가는 다른 문제이다. 오바마 정권은 중·일의 무력 충돌을 진심으로 걱정하고 두려워하면서, 또 거기에 말려들어가는 것을 피하고 싶어할 것이다.

그러한 오바마 정권의 본심은 박근혜 대통령과의 공동기자 회견에서 분명히 나타났다. 오바마 대통령은 중국을 ‘봉쇄하겠다’는 의지도 전략도 없음을 분명히 함으로써 북한의 비핵화를 필두로 한 동아시아의 중대 문제에 대해 중국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분명히 미국과 일본 사이에는 대중국 관계의 기본방침과 전략에 ‘어긋남’이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일본이 집단적 자위권을 ‘해금(解禁)’하는데 발을 디디는 것을 환영하는 태도를 취하고 있고, 이는 일본의 군사 및 안전보장이라는 측면에서의 ‘대국화(大國化)’에 ‘고(Go)’ 사인을 내고 있다는 점도 읽을 수 있다.

그것이 일본과 한국 및 중국과의 간극이나 대립을 보다 깊게 하게 함으로써 일본을 동아시아 안전보장의 초석으로 하는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대한 한·중의 불협화음을 보다 키울지도 모른다.

한편 오바마 대통령이 국빈대우로 일본을 방문했는데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서 미·일은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양국이 생각하고 있는 것의 차이만 부각시켰다.

그러면 한·미관계는 어떨까. 오바마 대통령의 방한은 타이밍이 좋다고 할 수 없다. 엄청난 해난사고로 젊은 생명이 희생되면서 한국이 ‘상을 당한’ 상황이 된 것과 함께 정권에 대한 여론의 반발이 확대되는 가운데 열린 정상회담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상황에서 오바마 대통령은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으로 ‘종군위안부’ 희생자와 관련해 ‘무서운 인권침해’이며 진상 규명이 필요함과 동시에 일본 정부와 국민이 조치를 취하도록 측면에서 못을 박기에 이르렀다.

이런 미국 대통령의 발언은 한국 측을 깊이 고려한 배려였지만, 그러나 동시에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함으로써 균형을 잡는 것 또한 잊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 대통령의 한·일 순방으로 한·일관계가 바로 현저하게 좋아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정부의 대응 부실로 국민의 빈축을 산 박근혜 정권은 대일관계에서 타협의 여지를 남기는 것이 더욱더 곤란하게 됐기 때문이다.

게다가 대중국 관계를 둘러싼 한·미 간의 미묘한 온도차는 박 정권의 미·중에 대한 밸런스 외교에 그림자를 드리울 것이 틀림없다.

미 대통령의 한·일 순방에서 보이지 않는 주역이 중국이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서울에 있어도, 도쿄에 있어도 오바마 대통령의 시선은 베이징에 쏠려 있었을 터이다.

대중국 관계에 대한 입장에서, 오바마 대통령의 서울과 도쿄 발언에 미묘한 차이가 있지만 ‘중국 봉쇄’가 아니라 오히려 중국의 ‘평화적인’ 대두와 동아시아에의 관여를 재촉하는 자세를 나타냈다. 우크라이나 정세가 긴박도를 높여 러시아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사이의 군사적인 충돌까지 염려되는 가운데 중국의 존재가 더욱더 커지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

냉전은 완전히 과거의 것이 되고, 세계는 ‘글로벌 플랫(global flat)화’가 진행된다고 예측되었음에도 미국 일극지배의 종언 이후의 동아시아는 혼돈이 심화되고 각국이 동상이몽의 꿈을 꾸면서 동시에 대립하고 연대하는 복잡한 정황으로 향하고 있다.

그 안에서 과연 국민의 신뢰와 정통성이라는 점에서 현저하게 상처를 입은 박 정권은 이런 안팎의 난처한 정황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인가. 정권의 근간이 추궁당하고 있다.


강상중 | 일본 세이가쿠인대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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