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의 시민운동단체 ‘한몸평화’와 함께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기행의 막바지에 이에지마(伊江島)를 찾았다. 오키나와 북부의 모토부(本部)항에서 뱃길로 30분, 10㎞도 안되는 거리다. 둘레 18㎞, 인구 4500명의 땅콩깍지 모양의 조그만 섬에는 2차대전 당시 동양 최대의 군용비행장이 있었으며 섬의 최고봉, 172m의 성산을 둘러싼 공방에서 일본 군민 3500명이 죽고, 1120명의 미군 사상자가 나오는 격전이 벌어졌다. 섬을 점령한 미군은 비행장을 확장하여 훈련장으로 사용했다가 6·25전쟁이 터지자, 북한을 겨냥한 모의핵폭탄 투하훈련장으로 이용했다.

 

섬의 절반(지금은 20%)이 군용지로 강제 수용되어 주민들은 2년 동안 수용소 생활을 하다 집도 땅도 빼앗기고 내동댕이쳐졌다. 농민들은 1954년부터 토지의 반환과 보상, 미군의 폭력 반대를 외치고 목숨을 건 투쟁에 나섰다. 그때부터 수백명의 남녀노소는 섬을 나가서 오키나와의 마을마다 걸식하면서 미군의 포악과 농민들의 곤경을 호소하는 ‘거지행진’을 벌였다. 같은 처지에 있던 수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불러일으켜 전 오키나와를 뒤흔드는 ‘시마구루미’(온 섬, All Okinawa) 투쟁으로 발전하니, 1958년 미군은 토지사용료의 대폭 인상을 약속하게 되었다.

 

지난해 10월1일 열린 일본 오키나와현 지사 선거에서 다마키 데니 전 중의원 의원이 당선된 후 활짝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다. AFP연합뉴스

 

‘시마구루미’ 투쟁이 다시 주목을 받은 것은 2014년 당시, 자민당 소속 나하시장이던 오나가 다카시(翁長 雄志)가 당의 정책을 거슬러 헤노코(野古) 기지 건설 반대를 표명하여 출당되면서도, 범야권 후보로 현(縣)지사에 당선되었기 때문이다. 오나가는 “이데올로기보다 아이덴티티”라는 구호로 초당파적 선거태세를 만들어 ‘All Okinawa’라고 불렀다. 일본에 의한 오랜 오키나와 지배와 차별, 그리고 일본 면적의 0.6%에 지나지 않는 오키나와에 주일미군기지의 70%가 몰려있는 부조리를 권력과 돈으로 밀어붙이려는 아베 정권의 오만은 오키나와 사람들의 비위를 거슬러 그들을 각성시켰다. 그래서 오나가 지사는 아베의 헤노코 기지 건설 강행에 완강하게 맞서다가, 작년 8월에 갑자기 암으로 죽었는데, 9월에 다마키 데니(Deny 玉城)라는 이색적 인물이 현 지사로 뽑혔다.

 

그는 미 해병과 이에지마 출신의 아메라시안(미국인과의 혼혈아) 여성 사이에 태어났다. 다마키는 미국으로 가버린 아버지의 이름도 주소도 모른다. 그는 고교를 졸업하고, 라디오의 MC, 프로듀서로 일하면서 경묘한 우치나구치(오키나와 말)로 노인들의 인기를 모았다. 2009년에 민주당 후보로 중의원에 출마하여 내리 4선을 했는데, 소수정당 소속의 그가 국회의원이나 현 지사가 된 것은 다분히 운이 작용했지만, 미군병사를 생물학적 아버지로 둔 가난한 미혼모의 아이가 지사가 된 것은 미군이 버리고 간 아메라시안 아이들이나, 미군기지에 성적 착취를 당하며 사는 여성들이 신기하지 않은, 오키나와니까 가능한 일이었다.

 

이번 지사선거에서 다마키는 39만6632표를 얻어 자민당 후보에 비해 8만표가 많은, 역대 최대 표차로 승리했다. 선거 출정식을 벽지인 어머니의 고향 이에지마에서 연 것은 정체성에 대한 그의 집착을 시사해준다. 그의 승리요인에는 요즘 보수화되어 가는 젊은이들의 높은 지지율도 있다고 한다. 노래 부르고 춤추고 쉽게 말하는 다마키는 권위에 얽매이지 않는 젊은이들의 호감과 지지를 받았다. 오만불손한 아베에게 감연히 맞서는 그 모습은 포스트모던적인 동아시아의 표상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 오키나와가 아베의 과거회귀 구상에 걸림돌로 버티고 있다. 오키나와는 태평양의 요석(Key Stone)으로 미국의 냉전 최전선의 구실을 해왔다. 한국도 그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지배체제의 구도 속에 위치해 왔다. 바로 그 ‘요석’이 다마키라는 표상을 얻어 오히려 부메랑이 되어 아베의 뒤통수를 치려 하고 있으며, 미국의 동아시아 군사지배에 심각한 균열을 내고 있다. 오키나와는 우리 문제이기도 하다.

 

<서승 우석대 석좌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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