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북전단법에 투영된 정부의 인권·민주주의 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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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유신모의 외교 포커스

대북전단법에 투영된 정부의 인권·민주주의 인식

by 경향 신문 2020. 12. 28.

대북전단 살포를 막기 위한 개정 남북관계발전법에 비판이 제기되자 정부는 이 법의 당위성을 설명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국과 유엔 등 국제사회 설득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하지만 정부가 국제사회의 우려를 불식시키는 것은 쉽지 않아 보인다. 법의 문제점에 대한 해명이 비논리적인 데다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차원의 인식’을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접경지역 주민 상당수가 전단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기 때문에 대북전단살포금지법이 필요하다고 설명하고 있다. 동문서답이다. 이 법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전단 살포가 정당하다거나 막지 말라는 게 아니라, 법을 만들어 처벌하는 게 무리라는 것이다. 전단 살포를 법으로 금지하고 처벌하는 것은 민주주의의 핵심가치인 표현의 자유를 훼손하기 때문에 어렵더라도 금지법이 아닌 다른 수단으로 막으라는 것이다.

 

정부의 논리에는 인권과 민주주의에 대한 박약한 인식이 드러나 있다. 정부의 말대로 헌법상 권리도 제약할 수 있다. 문제는 너무 쉽게 제약을 가한다는 것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정립한 것은 인류 최대 업적이다. 하지만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다. 오랜 세월과 무수한 희생의 대가로 이뤄낸 것이다. 이에 역행하는 조치를 허용하는 것은 위험한 선례가 될 수 있기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미국이 수정헌법 1조에 표현의 자유를 명시한 것은 민주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프랑스는 일개 언론사의 이슬람 모독 만평으로 테러가 발생하고 인명피해가 속출해도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공익을 위해서라면 ‘표현의 자유 정도는 쉽게 제한해도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민주주의의 기본전제인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전단 살포가 생명과 직결돼 있다는 명백하고 직접적인 인과관계를 분명하게 입증하고 구체적으로 규정해 놓아야 한다. 지금처럼 모호하고 불분명한 법으로 징역형까지 가능하도록 한 것은 국제적 인권 기준에 미치지 못할 뿐 아니라 선례를 구성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를 ‘한반도 상황에 대한 이해 부족’이라고 반박하는 것은 위험하다. 인권은 상황에 따라 기준과 범위가 변하는 것이 아니다. 인권을 ‘인류보편의 가치’라고 부르는 이유다. 인권 문제 지적을 ‘내정간섭’이라고 받아치는 것은 홍콩 민주화 시위에 대한 중국의 논리나 유신헌법을 ‘한국적 민주주의’라고 강변한 박정희 정권의 주장과 다를 바 없다. 이번 일로 정부는 국민 반대에도 불구하고 전단을 뿌려대는 극단주의 세력을 민주투사·인권주의자로 만들어주는 우를 범하고 있다.

 

정부는 2016년 대법원 판결을 주요 근거로 들고 있으나, 이 판결은 군경이 전단 살포를 제지하는 것은 위법하지 않다고 판단한 것이지 전단살포금지법을 만들어 처벌해도 된다는 의미가 아니다. 특히 판결에는 ‘그 제한이 과도하지 않는 한 위법하다고 볼 수 없다’는 단서가 달려 있다. 표현의 자유를 의식한 것이다. 법원이 ‘과도하지 않은 방법으로 제한할 수 있다’고 판결한 것을 끌어다 원천봉쇄의 근거로 삼은 것은 무리다.

 

대북전단이 북한 인권에 기여하지 못한다거나 틀린 사실과 외설적 내용을 담고 있다는 주장은 의미 없다. 표현의 자유는 정확하고 건전한 주장만 골라 보호하는 것이 아니다. 정확하지 않고 불건전한 내용을 표현의 자유에서 배제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는 이유는 악용될 위험성이 있기 때문이다. 허위주장과 인신공격이 난무하는 인터넷 댓글을 없애지 못하는 것도 이 때문이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7시간’을 기사화한 산케이신문 지국장을 기소한 것을 비판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각고의 노력과 끊임없는 자기 경계가 필요하다. 사정이 어렵다고 예외를 두기 시작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 정부는 대북전단법 이전에도 별 고민 없이 코로나19 방역을 위해 자가격리자에게 손목밴드를 채우고, 광화문집회를 막기 위해 차벽을 세웠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엄중히 인식한다면 금지법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전단 살포를 막아야 하고, 손목밴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격리자를 관리해야 하고, 차벽이 아닌 다른 방법으로 집회를 막아야 한다. 이런 조치를 쉽게, 그리고 빈번하게 내리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진보의 가치를 지향하고 민주주의와 인권에 확고한 원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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