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아 칼럼]4년 후, 해리스와 오바마가 겨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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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김민아 칼럼]4년 후, 해리스와 오바마가 겨룬다면

by 경향 신문 2020. 11. 10.

카멀라 해리스(56)는 흰색 바지정장 차림이었다. ‘서프러제트 화이트.’ 20세기 초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가(서프러제트)들이 흰옷을 입은 데서 유래한 용어다. 미국 최초의 여성 부통령 당선자에게 더할 나위 없는 선택이다. 지난 7일(현지시간) 델라웨어주 윌밍턴 체이스센터에서 승리 연설을 한 해리스는 말했다. “저는 첫 여성 부통령이 되겠지만, 제가 마지막은 아닐 겁니다. 오늘 밤 모든 소녀들이, 이 나라가 가능성의 나라임을 지켜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퓰리처상 수상자인 워싱턴포스트의 로빈 깁핸은 해리스의 당선을 이렇게 표현했다. “최초. 최초. 최초(First. First. First).” 최초란 표현을 세 번 쓴 건 해리스가 여성·흑인·아시아(인도)계라는 3중의 장벽을 한꺼번에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해리스는 인도 출신 암 연구자인 어머니와 자메이카 출신 경제학자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났다. 흑인 교육을 목표로 세워진 하워드대를 나온 뒤 법조인이 됐다. 샌프란시스코 지방검사, 캘리포니아주 법무장관에 이어 흑인 여성으로는 역대 두 번째로 상원의원에 당선됐다.

 

해리스의 성취가 값진 건 단순히 ‘최초’여서만이 아니다. 인종주의와 성차별을 딛고 얻어낸 승리여서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해리스를 “괴물”이라 불렀다. “화난” “심술궂은” “공격적인” 등의 표현도 사용했다. ‘앵그리 블랙 우먼(논쟁적이고 호전적인 흑인 여성)’이라는 인종적 고정관념을 끌어들인 것이다. 때로 “비호감”이란 용어도 동원했다. 해리스 입장에선 ‘줄타기 곡예’ 상황이었다. 이른바 ‘남성적’ 행동은 지도자처럼 보이게 하지만 비호감도를 높이고, ‘여성적’ 행동은 호감을 불러일으키는 반면 지도자다운 이미지를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어처구니없는 이중잣대를 해리스는 뚝심으로 돌파했다.

 

유리천장을 차례로 격파하며 마침내 ‘넘버 투’에 오른 해리스에게 대중이 열광하고 있다.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당선이 확정된 7일, 소셜미디어와 거리에선 (바이든보다) 러닝메이트(해리스)에 대해 더 흥분한 사람들의 열기가 분출됐다”고 보도했다. CNN방송은 “해리스는 정치권력의 새로운 얼굴을 대표한다”고 전했다. 조엘 골드스타인 세인트루이스대 명예교수는 LA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부통령 선출이 대통령 선출보다 더 역사적 의미를 갖는 건 미국사에서 이번이 처음일 것”이라고 했다.

 

다른 시각도 있다. 소수 여성이 고위직에 진출한다고 모든 여성, 특히 빈곤층이나 노동계층 여성의 삶이 개선되는 건 아니다, 라는 반론이다. 조지아주의 흑인 여성 욜란다 래티모어(46) 이야기를 들어보자. 래티모어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해리스의 부통령 당선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진 못한다는 걸 안다”면서도 “하지만 흑인 소녀들에게 ‘무엇이든 가능하다’는 점을 상기시키고 투지를 불러일으킬 것”이라고 했다.

 

2018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3년 뒤 정계를 은퇴하겠다고 발표하자 흥미로운 일이 벌어졌다. 청소년들 사이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남성도 총리가 될 수 있는가?”란 문구를 올리는 일이 유행처럼 번졌다. 14년째 메르켈이 집권하던 터라 10대 초중반 세대에게 남성 총리는 생소했던 것이다. 해리스가 메르켈처럼 탁월한 리더십을 발휘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유색인 여성도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는 인식을 심는 일만으로도 그의 의미는 작지 않을 것이다.

해리스가 ‘예외적 1인’으로 소모되지 않기를 바란다. 경쟁자이자 동반자가 생기기를 기대한다. 나는 미셸 오바마를 떠올린다. 2018·2019년 갤럽 조사에서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여성’ 1위에 오른 인물이다. 해리스와는 공통점이 많다. 1964년생 흑인 여성이며 유능한 법률가이다.

 

1964년은 인종·피부색·종교·국적·성별에 따른 차별을 금지한 ‘민권법’이 통과된 해다. 두 사람은 민권법 제정 이후 보다 평등해진 미국을 상징하는 세대이다. 해리스가 부통령 후보로 지명됐을 때 미셸이 전한 축하메시지도 해리스의 승리연설과 닮아 있다. “소녀들은 자신과 닮은 누군가가 나라를 이끌 수 있음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해리스가 최초가 되겠지만, 마지막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고령의 조 바이든 대통령 당선자가 연임에 도전하지 않을 경우, 4년 뒤 두 여성이 대선후보를 놓고 겨룰 수도 있다. 미셸 오바마는 공직 출마에 관심 없다고 밝혀왔다. 그럼에도 상상한다. 정치는 늘 변하니까.

 

김민아 토요판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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