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태국 정치와 불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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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태국 정치와 불교

by 경향 신문 2014. 7. 23.

태국 정국은 지난 5월 쿠데타 후 표면적으로는 잠잠한 듯 보인다. 쁘라윳 찬오차 국가평화질서회의 의장은 7월 중 임시 헌법을 공포하고, 오는 9월 과도정부를 출범시킨 후 2015년 10월 총선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현재 이에 맞설 반쿠데타 세력들의 움직임 중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전 프어타이당 당수인 짜루퐁 르엉쑤완과 ‘레드셔츠’ 강경파 리더인 짝끄라폽 펜캐가 추진 중인 ‘쎄리타이’(자유타이운동)라고 불리는 망명정부 수립이지만 그 세력의 확장 가능성은 좀 더 지켜볼 일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얼마 전 태국 일간신문에는 반정부 시위대 ‘옐로셔츠’ 지도자였던 쑤텝 트억쑤반 전 부총리가 승복을 입고 탁발하는 사진이 실렸다. 그는 고향인 태국 남부 쑤랏타니도의 한 사원에서 출가했다. 우리에게 출가라는 말은 다소 낯설지만 태국에서는 보편적인 일이다. 이른바 단기출가 습속은 14세기 중엽 쑤코타이 왕조의 리타이왕 때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현재의 푸미폰 국왕도 젊은 시절 출가한 적이 있다. 일반 성인 남성들은 성년의 나이가 되면 출가를 경험하게 된다. 이는 불교도 태국인들이 공덕을 쌓기 위한 가장 중요한 행위인 것이다.

정치인들은 종종 정치적으로 불운한 시절 출가하곤 해 정치적 해석을 낳게 했다. 1932년 입헌혁명의 주역으로 두 차례나 총리직에 올랐으나 1957년 싸릿 타나랏 주도의 쿠데타로 축출된 피분 쏭크람 총리는 일본으로 망명을 했다. 2차 세계대전 중 연합국에 맞서 일본과 공수동맹을 맺은 인연 때문이었다. 그는 망명 중이던 1960년 인도를 방문해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서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에서 출가했다. 그는 그곳에서 꿈에도 그리던 태국으로의 귀국을 원했지만 끝내 돌아가지 못하고 1964년 일본에서 사망했다.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인도 부다가야 숲속의 보리수 (출처 : 경향DB)

1973년 10월 학생혁명 후 독재자로 낙인찍혀 쫓겨났던 타넘 낏띠카쩐 총리는 1976년 귀국해 푸미폰 국왕이 단기출가했던 버원니웻 사원에서 출가했다. 그의 귀국에 대해 반대여론이 많았음에도 이후 태국에서 지낼 수 있었던 것은 출가의 덕이 적지 않았다. 그는 후일 정치에 다시 발을 들이지는 않았으나 훼손된 정치적 이미지를 회복하고자 노력하다가 2004년 사망했다.

정치인들의 출가행위는 전통 태국사회에서 정치와 불교(승가)의 밀접한 관계에서 연유한다고 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불교는 국민들의 도덕적 가치, 사고, 행동양식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쳤으며, 사회질서와 정치체제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정치체제는 항상 불교와의 관련성을 증거함으로써 정당성을 유지하려 했다. 전근대 시대 왕들의 단기출가 습속은 이런 정치적 이유에서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다. 이런 현상은 이른바 ‘불교정치체제’를 유지했던 동남아의 다른 상좌부불교 국가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법명 ‘프라파빠까로(빛을 만드는 사람)’를 갖게 된 쑤텝이 앞으로 머물기로 한 사원은 젊었을 때 이미 한 차례 단기출가한 적이 있는 쑤언목이라는 곳이다. 이곳은 현대 태국이 낳은 가장 저명한 불교 사상가이며 불교개혁운동을 이끌었던 풋타탓 스님이 만든 사원이다.

쑤언목의 의미는 ‘자유와 구원의 정원’이다. 쑤텝은 비타협적이고 외골수적인 보수 정치인으로 알려져 있어 반대세력을 적지 않게 갖고 있다. 심각한 지역 간, 계급 간 갈등의 한가운데 섰던 문제의 인물이다. 그는 얼마 전 지난 시위 기간 중 자신이 군 수뇌부와 내통하고 있었다는 발설로 군부의 비난을 받기도 했다. 사실상 그의 출가는 쿠데타 후 어떤 정치적 입지도 확보할 수 없는 상태에서 택한 정치행위의 일종으로 보인다. 그래서 앞으로 그의 정치행보에 더욱 관심이 쏠린다.


김홍구 | 부산외대 태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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