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쿠바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민 10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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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 국제칼럼

[기고]쿠바 한인 디아스포라의 이민 100년

by 경향 신문 2021. 3. 29.

지난 25일은 쿠바 한인 이민 100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쿠바는 미수교국이지만 양국의 인연은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에네켄 농장에서 비롯된 이야기다.

 

구한말이던 1905년 5월14일. 제물포항을 떠난 한인 1033명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메리다시 외항인 프로그레소 항구에 도착했다. 그들은 가시 돋친 선인장(에네켄) 농장의 뙤약볕에서 4년의 계약노동이 끝난 뒤 멕시코 전역과 쿠바로 흩어졌다. 일제 식민지가 된 조국은 돌아갈 곳이 못되었다. 300여명의 한인들은 1921년 3월25일, 자신들이 도착했던 프로그레소 항구에서 쿠바행 배에 올랐다. 그 여정이 100년의 디아스포라가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필자는 이달 중순 프로그레소를 방문해 에네켄 이민을 기념하는 동판 설치의 뜻깊은 행사를 가졌다. 지난 17일에는 메리다 시내 ‘한국의 거리’에 유영호 작가의 6m 높이의 조형물 ‘그리팅맨’을 세웠다. 그리팅맨은 한인 이민 후손들이 살고 있는 쿠바 북부를 향해 살가운 인사를 건네고 있다.

 

코로나19 탓에 미뤄두었지만 연내 쿠바를 찾아 한인 이민 3~5세대와 100주년 기념 행사를 가지려고 한다. 멕시코대사관은 쿠바 한인 이민 100년사 편찬을 추진 중이다. 한인들이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한 푼 두 푼 모아 독립운동 자금에 보태면서 조국 광복을 꿈꾸고, 한국인다움을 유지한 발자취를 기록하려 한다.

 

우리 정부는 독립운동 공훈자 후손 찾기 사업을 하여 훈장과 후손 장학금을 전달하고 있다. 아울러 한인회관 운영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하고 있다. 코로나19로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쿠바 한인들에게 생필품도 보냈다. 또 세계식량계획(WFP)과 유니세프를 통해 30만달러 상당의 긴급 식량과 국산 마스크 25만장을 쿠바에 지원했다. 쿠바가 어려울 때 쿠바인들에게 한국을 각인시키는 한편, 한인 후손들에게 조국이 기억하고 있음을 보여주려는 작은 성의의 표현이다.

 

쿠바는 1959년 혁명 이후 60여년간 미국의 제재와 사회주의 블록의 붕괴 탓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왔다. 작년부터는 코로나19가 겹쳐 주요 외화 수입원인 관광업이 타격을 받았다. 연 1만명에 달했던 한국인 관광객도 찾지 못한다.

 

쿠바 정부는 경제난 타개를 위해 올 1월 이중통화제도를 폐지하고, 민간 개방 분야를 넓히는 등 개혁조치를 취하고 있다. 다음달 5년 만에 열리는 공산당 전당대회에서는 라울 카스트로 당 제1서기가 퇴진하고 신진 개혁세력이 전면에 등장할 것으로 예상된다. 점진적으로나마 쿠바식 개혁·개방이 이뤄질 것이라는 국제사회의 기대가 무르익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의 등장으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4년 동안 사실당 중단된 미국·쿠바 관계의 해빙무드가 재개될 것이라는 희망적 시각이 힘을 얻고 있기도 하다.

 

우리는 2005년 아바나에 코트라 무역관을 설치하고, 주멕시코 한국대사관과 주멕시코 쿠바대사관 간에 공식 창구를 개설했다. 하지만 한인 후손 및 한국인 관광객들을 보호하고, 양국 간 실질적 관계 증진을 도모하는 데 충분치 않다.

 

이민 100주년을 계기로 한국과 쿠바가 좀 더 가까워질 수 있길 바란다. 동시에 새로운 100년을 내다보며 쿠바 한인들이 그 가교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한다.


서정인 | 주멕시코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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