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11일부터 1주일간 이뤄진 문희상 국회의장의 방미 활동은 그 규모나 시기 면에서 특별했다. 한민족의 운명을 좌우할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을 2주가량 앞두고 5당 대표 및 원내대표 등 14명의 초당적 의원단을 이끌고 미국을 방문한 것 자체가 사안의 절박성과 시급성을 잘 말해준다.

 

워싱턴에서 펠로시 하원의장, 엥겔 외무위원장, 매카시 공화당 원내대표, 코리아코커스 의원 등 총 22명의 의원을 만났고, 설리번 국무장관대행과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 등 행정부 인사들과도 대화를 나눴다. 한반도 전문가 15명과 진지한 토론을 벌였고 뉴욕 코리아소사이어티 연설에서는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정책을 밝혔다. 외교정책에 영향력 있는 행정부, 의회, 언론, 학계 등 조야를 모두 만나 한반도 문제 당사자인 우리의 생각을 전했다. 한반도 전문가와 2시간, 다른 면담도 1시간을 훌쩍 넘겼고 여야 모두 각자 생각을 솔직히 개진하는 브레인스토밍이 됐다.

 

이번 방미에서 국회대표단은 첫째,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는 인정할 수 없으며 완전한 비핵화는 한·미의 흔들림 없는 목표임을 재확인했다. 문 의장은 ‘최종적이고 완전히 검증된 비핵화(FFVD)’를 수차례 언급하며 ‘스몰 딜’이나 동결은 중간 과정일 뿐 종착역이 아님을 강조했다. 특히 2차 북·미 정상회담은 8000만 한민족의 명운과 직결되기에 성공시켜야 한다는 절박성을 미국 조야에 분명히 인식시켰다.

 

둘째, 남북관계와 북·미관계 및 비핵화 목표에 대한 우리 입장을 설명했다. 일각에서 우려하듯 남북관계만 일방적으로 앞설 의도가 없으며, 북한에 경협을 제시한 것은 우리의 대북협력 진정성을 미리 보여줘 비핵화 결단을 촉진하기 위함임을 설명했다. 핵보유와 경협은 양립할 수 없음도 강조했다.

 

셋째, 한·미는 비핵화가 이뤄지면 북한에 밝은 미래가 있을 것이며 서로 신뢰를 쌓아 관계를 개선하고 북이 정상국가가 되어 공존·공영하는 것이 궁극적 목표라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우리는 미국이 북한에 침략이나 적대의사가 없음을 지속적으로 언급하여 신뢰를 쌓길 희망했다. 다소 부정적이던 미국 인사들이 대화를 통해 정상회담 결과를 기대하는(hopeful) 인식을 보이기 시작했다.

 

넷째, 양국은 한·미동맹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견인하는 기관차임을 재확인하였다. 문 의장은 한·미동맹은 우리 안보와 외교의 알파요, 오메가이며 한 치의 오차도 없는 동맹임을 강조하면서, 가치동맹, 글로벌동맹으로 확대돼 평화체제 구축과 통일 이후에도 굳건할 것이라 했다.

 

문 의장은 북한의 비핵화 의지 진정성에 대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지와 관련 시설 폐쇄는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며 김정은 위원장의 핵폐기 의지에 회의적인 미측 인사들을 설득했다. 김정은을 완전히 신뢰하지 않지만 북의 경제회생은 정권의 사활적 문제고, 경제발전의 전제인 제재 완화는 핵 폐기 없이 어려운 만큼 북한은 비핵화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예정된 30분을 넘겨 1시간여에 걸쳐 진행된 면담 후 문 의장이 펠로시 의장에게 선물한 친필 족자의 글, ‘만절필동(萬折必東)’에는 이런 뜻이 담겼다.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가 21일 오후 1시30분쯤(현지시간) 베트남 하노이의 ‘뒤 파르크’ 호텔에 들어서고 있다(왼쪽 사진). 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주베트남 미대사관을 방문했다가 오후 8시쯤 같은 호텔로 복귀하고 있다(오른쪽). 북·미는 이날 이 호텔에서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제 관련 첫 실무협상을 4시간30분가량 진행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노이 _ 연합뉴스

 

현 비핵화 논의가 과거와 다른 점은 10개 안보리결의에 의한 촘촘하고 강력한 제재하에 진행 중 이라는 것이다. 실질 비핵화 조치 없이 풀리기 어려운 제재 레짐은 상당한 레버리지가 된다. 비핵화가 지체되면 제재는 그대로일 수밖에 없다. 시간이 북한편이라고 보기 어려운 이유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비핵화와 상응조치 합의에 기대와 회의가 교차한다. 가능한 한 완전한 비핵화 원칙에 따른 큰 틀의 로드맵 아래 단계적·병행적 조치를 뒤로 미끄러지지 않는 톱니바퀴(ratchet-up)처럼 지속적으로 합의해 신뢰를 쌓아가야 한다. 김정은·트럼프, 김혁철·비건 라인이 시너지를 내도록 해야 한다. 이것이 문 의장이 강조한 사자성어, 즉 주도면밀히 살피면서 뚜벅뚜벅 나아간다는 호시우행(虎視牛行)의 의미이다.

 

문 의장은 폭스뉴스 회견에서 하노이 회담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한다고 했다. 이제 한·미가 할 일은 지나친 낙관론과 비관론에서 벗어나 북한의 진의에 괘념치 말고 양국이 단호한 의지와 긴밀한 공조로 북핵 문제를 최종 해결하고 한반도에 공고한 평화를 구축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는 것이다.

 

<한충희 국회의장 외교특임대사>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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