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북한 비핵화와 관련하여 현 단계에서 가장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간 의지와 신뢰의 선순환이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이 협상으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의지가 강하면 강할수록 어떻게 해서든 양국 간에 신뢰를 쌓으려 할 것이고, 신뢰가 쌓여 나가면 핵문제 해결 의지도 더욱 강해지는 선순환이 작동할 것이다. 6월12일 북·미 싱가포르 정상회담 합의문의 구조가 바로 그러한 선순환을 반영하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해 언론과 대화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론적으로 볼 때, 이러한 선순환을 만드는데 유리한 지도자는 역설적으로 민주주의보다는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이다. 그 이유는 미국과 같이 민주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문제 해결의 의지가 있다 하더라도 제도적으로 의회의 견제, 언론의 견제, 보좌진의 견제, 그리고 여론의 견제가 작동하기 때문이다.

 

반대로 권위주의 국가의 지도자는 주변의 견제가 약하기 때문에 의지만 강하다면 상대방과 신뢰를 쌓기에 유리하다.

 

지금 북한 비핵화는 이 의지와 신뢰의 선순환에 브레이크가 걸려 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의 의지를 왜 미국이 안 믿어주는지 답답하다는 심경을 표현할 정도로 일단 비핵화 의지가 강해 보인다. 물론 미국의 상응하는 조치가 있을 때의 비핵화 의지를 의미한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주변의 견제에 의하여 그 의지가 상당히 약해지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당장 종전선언 문제만 보더라도, 이는 이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과 미국을 방문한 김영철 통전부장과의 만남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하기로 약속한 사안인데, 존 볼턴 안보보좌관과 매티스 국방장관 등 주변의 견제로 인하여 아직까지 현실화되지 못하고 있다고 미국의 복스(Vox)뉴스가 여러 정보 소스를 통해서 확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를 약화시키는 또 다른 요인은 중간선거를 앞둔 국내정치 상황이다. 현재 트럼프 대통령은 지지율이 30%대로 추락하였으며, 11월 중간선거에서 하원을 민주당에 내줄 위기에 처해 있다. 만약 그것이 현실화된다면, 트럼프 대통령은 급속한 레임덕으로 빠져들어갈 수 있다. 트럼프 정부 내의 이른바 행정 쿠데타를 폭로한 책 <공포>와 트럼프의 대통령직 수행능력을 비판한 고위관료의 뉴욕타임스 기고문은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위기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앞으로도 어떤 악재가 더 튀어나올지 알 수 없다. 이렇게 흔들리는 트럼프 대통령이 ‘악마국가’로 인식되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에 과연 강력한 의지를 유지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

 

이에 더해 더욱 불안한 징조는 현재 북한 비핵화 협상에 직접 관련이 없는 재무부와 법무부까지 비핵화 협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경험은 2005년 이른바 ‘BDA 제재’의 기억을 되살린다. 이 제재는 미 재무부가 ‘애국법’ 311조를 적용하여 방코델타아시아은행(BDA)을 돈세탁 우려 대상으로 지정하고 그곳의 북한 계좌를 동결한 것인데, 그 결과 순항하던 당시 비핵화 프로세스가 파행하고 북한은 핵실험으로 대응하였다.

 

그때와 마찬가지로 미 재무부가 9월13일 북한의 IT 노동자 국외 송출과 관련하여 북한인 1명과 중국·러시아 기업 2곳에 대한 독자 제재를 단행했고, 법무부는 9월6일 ‘박진혁’이라는 이름의 북한인과 북한 기관을 2014년 소니 영화사의 해킹과 영국 및 방글라데시에 대한 사이버 공격의 배후라고 공식 발표하면서 최근 러시아, 중국, 북한의 사이버 공격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고 있다. 김 위원장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의지를 밝힌 가운데 이러한 악재들이 법무부와 재무부에서 터져나오는 것은 거의 전 부처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에 견제를 하는 모양새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북한의 웬만한 선물로는 종전선언에 합의하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설사 북한의 핵신고와 종전선언이 있어도 1994년의 경험에 미뤄보면 검증 단계에서 위기가 또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시련이 생각보다 빨리, 강하게 닥치고 있다. 김 위원장은 친서외교를 통하여 이 국면을 타개해 나가려 하고 있으나, 이제는 친서보다는 북한이 생각하는 구체적인 비핵화의 로드맵과 시간표를 국제사회에 전격적으로 공개해야 할 시점이다. 누가 진정 비핵화 의지가 있는지를 국제사회가 판단, 검증하게 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근 |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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