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인접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생활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그동안 뫼비우스의 띠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과의 여러 가지 국면에서 한국의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항일은 일본에 대항한다는 의미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의 빛나는 항일을 보여준다. 극일은 일본을 극복하고 넘자는 것이다. 한국의 부품 국산화는 극일의 단면을 반영한다. 배일은 일본을 배척한다는 것인데 일본제품 불매운동처럼 다소 감정적이지만 파급력이 있다. 반일은 일본보다는 한국 내부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 식민지 시대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를 단죄하려 했다가 실패한 반민족특위, 그 이후 친일인명사전에서 반일을 찾을 수 있다. 벌일은 일본을 정벌한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에서 북벌 추진이 있었듯이 남벌도 있었다. 광개토대왕, 고려의 여몽연합군, 세종의 대마도 정벌 등이 그것이다. 탈일은 일본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일본에 없거나 일본이 할 수 없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에게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극일이지만 반도체에 몰입하지 말고 기계보다는 휴먼메타기술 같은 다른 먹거리를 개발하면 탈일이 된다.


반면 이 모든 것과 다르면서 오래된 미래인 용일은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선 일본의 정한론, 조선 도자기, 치욕적 일제 식민지 시대, 지금의 부품전쟁은 용한(用韓·한국을 이용)에 가깝다. 현재도 비슷한데 과거엔 명나라를 침략하려고 조선에 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핵, 국제정세 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완충 방패막이로 쓸모가 있다. 


역으로, 용일은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을 도구화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 소니 제품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삼성의 갤럭시 폰은 선망을 넘어서 필수품이 되었다. 그것은 극일보다는 용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일은 여러 가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어렵지만 방사능 오염 위험이 있는 도쿄 올림픽 일부 경기를 좋은 시설을 갖춘 한국 경기장에서 할 수도 있다. 우수한 한류와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적 밀정을 심을 수도 있다.


대전환의 시대에 지울 수 없는 울분과 냉철한 열기를 간직한 채 어떻게 일본과 다시 만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강병노 | 서울한영대학교 조교수>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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