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에서 평화는 서로 다른 정치체제가 무력갈등이나 분쟁을 벌이지 않고, 안보를 위협하지 않는 정도의 상태라고 할 수 있다. 평화로운 삶을 위해서는 국가나 정치체제 사이의 협력과 제도적 보장이 필수다. 흔히 이런 경우를 ‘평화협정’이라고 말한다. 한반도에서 남한과 북한은 지리적 의미에서 출발한 분단이 정치체제의 주요 관점으로 변해온 역사를 안고 있다. 오늘날 사람들의 인식으로 보면 분단은 서로 다른 체제와 동의어로 쓰이고 있다. 


해방 이후 남한과 북한은 두 개의 독자적 사회로 형성되어 왔다. 때에 따라 남한이 북한에 미치는 영향과 북한이 남한에 미치는 영향을 서로 주고받기도 했지만, 근본적인 사회구조는 전혀 다른 체제를 향하는 것이었다. 근대국가의 정치제도를 근간으로 하지만 남북한은 한 번도 동질적인 현대사회의 형태로 나타나지 않았다. 같은 성질이나 특성이 있다면 그것은 해방 이전 과거의 것이지, 분단사회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남북한 사회의 독자성을 받아들이는 것은 ‘분단’을 재인식하는 것이 아니라 두 ‘사회’의 고유성과 내적 중심성을 강조하고, 항구적인 평화로 이끄는 접근 방식이다. 영구 평화를 분단의 고착으로 폄하할 이유는 없다. 통합을 이룬다면 평화적인 방법이 최선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일부 정치세력은 남북관계를 한·미관계의 종속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북한 문제에 대한 정부의 취약성 중 하나가 미국과의 관계라는 의미다. 이런 면에서 문재인 정부는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로서 외교정책과 대북정책의 자율성을 확대해 나가는 게 중요하다. 이것은 북한의 협력과 정부의 대미 외교에 달려 있다. 북한을 껴안은 채 미국을 설득하지 않고서는 문재인 정부가 추진하는 평화를 위한 자율성은 계속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한반도 비핵화를 실현하기 위해 미국을 설득하는 것은 북한의 안전보장과 미국의 이해관계를 맞바꾸는 것이다. 


2018년 4월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에 이어 남북한이 각 분야별로 평화를 위한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추진 중이다.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평화선언’이나 ‘평화협정’은 남북한과 북·미관계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요청하는 데 시대적 사명이 있다. 상대방의 체제를 보장하면서 극한의 대립에서 벗어나는 방안, 우호적이고 안정된 사회질서를 유지할 수 있다면 이것이 평화이다. 평화의 좌표를 설정했다면 이제 그 나침반을 따라서 나아가야 할 것이다. 때로 지남철이 심하게 떨리기도 하겠지만, 그 끝이 가리키는 평화의 좌표는 시민사회와 시민들의 강력한 지지를 필요로 한다. 우리가 가진 힘의 한계를 명확히 인식하고 주변국의 신뢰를 얻기 위한 치열한 외교 노력을 해야 할 때다. 한반도의 이해관계를 추구하는 유일한 길은 평화공존이다.   


분단의 특징이기도 한 제도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할 수 있는 길은 장기적인 평화가 유일하다. 통일은 일종의 정치 현상이다. 어설픈 통일 방안에 대한 모색이 아니라 충분한 평화를 위한 공존이 선행되어야 한다. 오랜 평화의 전진이야말로 통합을 위한 전제 조건이다. 흡수통일을 정강정책으로 삼지 않는 이상 어느 정치세력이 정부를 장악하더라도 한반도 평화는 우리의 삶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이다. 독일 통일의 주역 빌리 브란트의 비전대로 “평화가 전부는 아니다. 하지만 평화 없이는 어떤 것도 가능하지 않다.”


<한성훈 | 연세대 국학연구원·사회학 박사>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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