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소, 당신은 사민주의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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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목수정의 파리 통신

그렇소, 당신은 사민주의자요?

by 경향 신문 2014. 1. 17.

지난 14일,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은 취임 후 세번째 공식 기자회견을 했다. 2013년 말 프랑스 국민을 향해 던진 신년사에서 그는 완전한 우향우를 선언하는 듯한 청사진을 내비치며 정국을 술렁이게 한 바 있다. 이날의 기자회견은 바로 그 수상쩍은 계획에 대한 세부내용을 소개하는 자리였다. 공교롭게도 기자회견을 목전에 두고 그에게 새 연인이 생겼다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가파른 내리막길을 타고 있던 대통령 올랑드는 갑자기 관심의 세례를 한몸에 받으며 600여명의 내외신 기자들 앞에 섰다. 스쿠터를 타고 연인을 찾아 밤길을 가르는 중년 남자 올랑드의 모습이, 밋밋해 보이던 보통 대통령 올랑드의 이미지에 새로운 활기라도 불어넣은 듯, 이날의 흥행 성공에 그의 새 연애가 큰 역할을 한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어보였다. 하지만 정작, 기자들에게는 연말부터 부풀어 오르던 더 큰 질문이 있었다.

“올랑드, 당신은 누구지요?” 이것은 그의 커밍아웃을 추궁하는 질문이었다. 거기에 올랑드는 이렇게 답했다. “그렇소, 나는 사민주의자(social-democrate)요.” 1991년 시인 박노해에게 사형을 선고하게 만든 ‘그렇소, 나는 사회주의자요’라는 선언의 패러디처럼 들리는 이 선언은 박노해의 그것과는 정반대로 자신이 더이상 사회주의자가 아님을 선언하는 말이었다. 집권 초반부터 조금씩, 신년사 이후로는 더욱 또렷이, 올랑드를 겨냥한 신자유주의자 ‘커밍아웃’이 개봉 박두했다는 소문이 널리 메아리치고 있었다. 이날, 올랑드는 ‘실업’이라는 프랑스의 가장 시급한 과제의 해법으로 ‘친기업’ 노선을 선택했으며, 350억유로에 해당하는 사회보장기금에서 기업 분담금을 2017년부터 면제해주겠다는 제안을 해법으로 내세운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 (경향DB)

기업의 고용 부담금을 줄여주고 모자라는 돈은 국가재정을 긴축하는 것으로 메우겠다는, 공공지출이 줄어들면 서민들의 부담과 고통이 더 커지겠지만, 그래도 위기니 감당해야지 어쩌겠느냐는…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내세우면서도 그는 끝내 커밍아웃은 거부했다. 사회당 출신의 대통령이기는 하나, 더이상 사회주의와는 무관하며, 오른쪽으로 상당히 이동한 자신을 나름 대담하게 인정하느라 난데없이 사민주의를 들먹이게 된 것이다. 사회당에서 가장 왼쪽 날개에 속하는 저명한 노조활동가 제라르 필로쉬는 올랑드가 지금까지 실천해온 정책 가운데 80%가 친기업적인 것이었으며, 20%만이 사회당으로서의 사명을 실천한 것이었다고 평가한다.

이날 쏟아진 35개의 질문들 가운데 7개는 그의 사생활에 관한 것이었다. 우파 언론 피가로의 기자가 물었다. “발레리 트리에르바일레는 여전히 프랑스의 퍼스트레이디인가?” 올랑드는 “사생활은 사적으로 다루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즉답을 피했으나, 대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 그에게 되돌아왔다. 결국 “2월 미국 방문 전에 이 문제를 분명히하겠다”고 올랑드는 답해야 했다. 어쩌면 대통령 부인 자리가 바뀔지도 모른다고 국민들은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올랑드는 그 질문을 온전히 사적인 영역이라며 피할 수만은 없었다. 사적 스캔들이 그에게 드리울지 모르는 올가미를 피하려 열변을 토하며 애쓰는 올랑드의 노력을 프랑스 국민들이 가상히 여긴 듯, 그의 기자회견을 지켜본 프랑스인들 가운데 54%가 올랑드가 프랑스의 미래를 향해 있다고 답했고, 51%는 그의 용기있는 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지만 그의 계획이 설득력 있다고 답한 사람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보여준 용기는 가상하지만, 국가가 기업에 혜택을 베풀면, 기업이 알아서 고용을 확대해 줄 거라고 믿는 프랑스인은 많지 않았던 모양이다. 기자회견 다음 날, 르몽드는 ‘올랑드, 기업의 선택을 좌파에 강요하다’라는 헤드카피를 뽑아 걸었으며 그의 새 연인이라는 여배우 모습은 머리카락도 보이지 않았다. 정치인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결국 그의 약속이 얼마나 이행되는가에 있을 뿐이다.

목수정 | 작가·파리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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