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론(共富論)의 부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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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공부론(共富論)의 부상

by 경향 신문 2015. 12. 1.

중국에서 가난에 시달리는 농촌 주민들의 생활을 얘기할 때 “소금이 있는데 간장은 뭐하러 사?”라는 말이 사람의 입에 자주 오르내린 적이 있다. 구이저우(貴州)성의 한 빈농이 했던 말로 기억된다. 주중 미국대사를 지낸 화교 출신의 게리 로크는 지난해 2월 이임을 앞두고 “베이징 같은 대도시는 중국을 대표할 수 없다”면서 “외딴 지역의 작은 마을들을 방문해야 중국의 진면목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중국 농촌에서 정부가 정한 빈곤선인 연간 2300위안(약 41만원)을 밑도는 소득으로 살아가는 인구는 7017만명으로 남북한을 합친 수와 맞먹는다.

중국에서 공동부유론(共同富裕論)이 최근 화두로 떠올랐다. 개혁·개방에 따른 경제 성장의 과실을 공동으로 누리자는 말이다. 지난 10월 하순 열린 공산당 제18기 중앙위원회 제5차 전체회의(18기5중전회) 이후 부쩍 강조되고 있다. 이 회의가 내년부터 5년 동안 진행되는 13차 5개년 계획을 집중 논의한 만큼 공동부유론은 향후 중국 국정의 주요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13·5 계획은 단순한 경제발전 계획이라기보다 총체적인 국가발전 전략이다.

지난주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관련 회의에서 “빈곤을 제거하며 민생을 개선하고 점진적으로 ‘공동부유’를 실현하는 것이 사회주의의 본질적 요구이며 당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규정했다. 그의 말 중 눈에 띄는 부분이 바로 공동부유다.

공동부유론은 줄여서 공부론(共富論)으로도 불린다.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사람이 먼저 부유해지는 것)과 함께 중국에서 치열한 노선 다툼의 대상이 돼 왔다. 공부론은 선부론이 득세하면서 빚어진 불균형 성장과 빈부 격차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가장 대표적인 논쟁은 2011년 당시 보시라이(薄熙來) 충칭(重慶)시 서기와 왕양(汪洋) 광둥(廣東)성 서기 간에 벌어졌다. 보시라이는 “중국이 파이를 잘 분배할 때”라며 공공임대주택 건설, 호적개혁 등 빈곤층을 겨냥한 정책을 주장하면서 신좌파의 기수로 각광받았다. 반면 왕양은 “파이를 더 키워야 한다”며 시장경제를 중시하는 당내 개혁파를 대변했다. 보시라이는 시진핑 체제의 전복을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반부패의 덫에 걸려 실각한 인물이다. 그의 몰락과 함께 공부론도 덩달아 수면 아래로 들어갔다. 물론 공부론이 보시라이의 전유물은 아니었고 역대 지도자들도 언급하긴 했지만 보시라이는 강한 추진력으로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중국인들에게 남겼다.


보시라이 중국 전 충칭시 서기_AP연합뉴스


중국 지도부가 국민들에게 보시라이를 떠올리게 만들 수 있다는 정치적 부담에도 불구하고 공부론을 부각시키는 것은 중국 내 빈부격차가 갖는 심각성을 반영한다. 시장경제를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소홀해졌던 사회주의적 가치와 균형을 맞추려는 시도이며 백성을 잘 먹이는 것이 진짜 공산당이란 초심으로 돌아가자는 신호이기도 하다. 공부론은 사회안전망을 중시하는 만큼 중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은 앞으로 자국에서 생산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뿐 아니라 국내 소비도 더 늘려야 한다. 내수 위주의 경제구조 전환을 추진 중인 상황에서 국민들의 주머니를 채워줘야 하고 소득분배 개선은 필수적이다. 보시라이와 격돌했던 왕양 부총리가 국무원(행정부) 빈곤퇴치 영도소조(태스크포스)를 이끌고 있다는 점도 흥미롭다.

중국 공산당은 2021년 창당 100주년을 맞는다. 그전까지 빈곤인구를 해방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 정치적 구호에 그치지 않고 얼마나 효과를 거둘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빈곤층 껴안기가 포퓰리즘으로 매도당하고 있진 않다. 진보와 보수 간 정권 교체가 불가능한 중국이지만 성장과 복지에서 균형을 유지하려는 의지만은 툭하면 포퓰리즘 논란이 불거지는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도 적지 않아 보인다.


베이징 오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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