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팁’과 ‘서비스’ 사이
본문 바로가기
=====지난 칼럼=====/김민정의 '삶과 상상력'

‘팁’과 ‘서비스’ 사이

by 경향 신문 2011. 6. 14.


미국의 한인사회에서는
“‘을 주는 것이 아깝지 않으면 미국사람 다 된 것이다라고들 말한다. 그만큼 한국 사람들은 미국식 팁 관행에 익숙해지기 힘든데, 한국과 미국은 서비스보상()’에 관한 한 상반된 가치와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 같다.
 

1.
미국에서 팁 문제를 가장 일상적으로 마주하게 되는 식당을 예로 들어보자. 미국에서는 식사를 잘 마칠 수 있도록 종업원이 적절한 서비스를 해주면 손님은 이에 대한 보답으로 을 준다. 종업원이 웃고 반기며 좋은 자리로 안내해주고, 그날의 재료와 메뉴에 대해 필요한 정보를 알려주고, 양념이나 음료, 식기 등을 잘 챙겨주는 지 그 서비스를 평가하여 주는 것이지만, 사실은 식대의 15-20% 정도를 주는 것이 관행이다. 관광지에서는 팁 관행에 익숙지 않은 관광객들이 이를 무시하지 않도록 영수증에 18%의 팁을 합산한 금액을 적어 줄 정도로 일정 금액이 요청된다.


반면 한국에는 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식당측이 오히려 자주 오는 손님이나 기대 이상 많은 주문을 한 손님에게 서비스라는 명목으로 공짜 음식을 내준다. 한식집에서는 전을 부쳐 주기도 하고, 새로 만든 반찬을 추가로 내오기도 한다. 사실 한국의 거의 모든 식당에는 무한정으로 제공되는 기본 서비스반찬이 있다. 이런 관행이 반영되어서인지 한국의 우동집이나 중국집, 스파게티집이나 피자집에서도 단무지나 짜사이, 오이 피클 등은 기본으로 제공한다. 모든 식당이 손님이 얼마나 팔아주는 지와는 무관하게 무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제스처를 취하는 것이다.


2.
이러한 차이에서는 서비스를 둘러싼 인간관계가 다르게 인식된다는 점이 엿보인다. 미국에서 식당서비스 거래는 손님과 종업원, 식당주인이라는 삼자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 손님이 서비스를 사는 주체로 등장하며 종업원은 이들을 식당주인과 연결해주는 제삼자의 역할을 담당한다. 식당에서는 팁을 전제로 종업원에게 최소한의 월급만을 지급한다. 실제 대부분의 주에서는 팁을 받는 종업원에게 최저임금제를 적용하지 않는다. (한편 팁은 세금부과를 피해가는 소득이 되기도 하다.) 종업원이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여 식당이 더 많은 매상을 올릴수록 자신에게도 도움이 된다. 하지만 구매 액에 비례하여 팁을 주는 방식이기 때문에 팁은 종업원의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인 대가가 아니라, 손님의 구매능력에 대한 사회적 용인, 나아가 일종의 사회적 재분배 장치로도 보인다.

반면 한국에서 식당서비스 거래는 식당주인과 손님간의 이자관계이다
. 여기서는 식당주인이 손님을 대접하는 주체로 등장하며 종업원은 식당주인 쪽에 완전히 편입되기 때문에 팁을 받을 여지가 적어진다. 식당주인은 모든 손님에게 서비스 메뉴를 넉넉하게 주어야 하고, 일부 손님에게 특별한 서비스를 제공할 때에는 다소 은밀한 방식으로 해야 한다
. 이러한 거래 관계에서 식당 주인에게는 가격에 정확히 맞추어 음식과 서비스를 합리적으로 판매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고픈 사람에게 음식을 넉넉히 제공하는, 최소한 지나가는 길손도 먹여 보내던옛 정서를 알고 장사하는 사람의 역할이 기대된다. (이런 맥락에서는 식당주인이 나서서 남는 음식을 싸줄 수는 있어도 손님이 싸가겠다고 요구하는 것은 불편해진다.)


3.
이러한 인식의 차이는 음식에
문제가 생겼을 때의 대응방식에서도 나타난다. 미국에서의 경험으로는, 튀김옷이 덜 익었다거나, 햄버거가 충분히 뜨겁지 않다거나, 추가선택 재료가 (토핑 등이) 잘못 나왔다거나 하는 점을 지적했을 때, 식당에서는 새 것으로 바꾸어 줄 뿐 아니라 가격을 깎아 주거나 디저트 메뉴를 싸주는 등 즉각적인 보상의 제스처를 취한다. (그리고 이렇게 처리를 중재해 준 종업원에게는 팁을 좀 더 주게 된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경험으로는 식당주인이나 종업원이 문제가 있다는 점을 부인하거나, 왜 별 문제가 아닌지 자기 입장을 설득하려 들거나, 마지못해 새것으로 바꾸어 주는 데 그치는 경우가 많다. 음식에 문제가 생긴 상황이 미국에서는 손님의 입장에서 또 다른 거래로 처리해야 하는 사안으로 인식되지만, 한국에서는 식당주인이 손님을 제대로 대접하지 못해 체면 깎이는 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서비스 거래 관계에서 사회적 차별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도 상반된다
. 미국에서는 종업원의 인종/민족 소속에 따라 팁의 액수가 달라진다는 연구결과가 나와 있다. 손님들이 유색인종이나 소수민족 종업원에게는 팁을 덜 준다는 것이다. 한편 한국에서는 손님이 식당에서 차별을 받을 가능성이 생긴다. 내 경험을 예로 들어 보면, 교수들끼리 단체로 지방의 모르는 식당에 들어간 적이 있는데 마침 바쁜 시간대였고, 중년 여성 종업원분들은 굳이 여자교수들을 골라 (손님이기 이전에 같은 중년 여성이라고 생각하여) 그릇 전달이나 음식 더는 일 등을 부탁하셨다. 또 다른 예로는 이주자 조사 도중 동남아 남성 노동자 두 명과 동행하여 서울 공단지역의 한 식당에 간 적이 있는데, 먼저 들어간 그 두 사람만 본 식당주인은 다짜고짜 뭐 먹게?”라며 반말을 한 적이 있었다.


미국의 팁 문화는 서비스에 대한 합리적 대가도 아니며 탈세의 여지가 있어 선진적이라 볼 수도 없지만 쉽게 바뀔 것 같지 않은 관행이다. 종업원을 통해 손님과 식당주인이 서로 거래상의 이익을 도모하는 구조이지만, 실제로는 팁의 비율이 관행으로 굳어져있기 때문에 거래상 손님의 권한은 약화되며 과시적·시혜적 지출의 의미가 더 부각된다. 한국의 서비스 문화는 오래전부터 밑반찬 재활용 같은 위생문제나 음식물 쓰레기 같은 환경오염 문제가 지적되어 왔지만 역시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 손님이 기본으로든 특별하게든 서비스를 받고 있다는 분위기가 연출되어야 거래의 양측 모두가 안심하기 때문이다.

 

반응형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