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횡무진’ 시진핑의 고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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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칼럼=====/오관철의 특파원 칼럼

‘종횡무진’ 시진핑의 고민

by 경향 신문 2015. 11. 9.

베이징에서 ‘중국에 대한 이해’를 주제로 열린 국제포럼에 참석한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3일 저녁 베이징 특파원단과 만난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중국 외교의 고민을 전했다. 박 시장은 푸잉(傅瑩) 전국인민대표대회 외사위원회 주임의 말이라며 “이분이 아주 우아하게 영어로 잘 설명했는데 실제로는 중국 외교의 큰 고민들을 눈치채게 됐다”고 했다. 푸 주임은 외교부 부부장(차관) 출신으로 중국 외교에서 늘 ‘여성 최초’란 수식어를 달고 다닌 베테랑 외교관이다.

박 시장은 “그가 현존하는 세계질서를 제대로 존중하고 참여하겠다고 하면서도 현존하는 세계질서라는 것이 결국은 중국을 배제하는 게 아니냐, 이런 관점의 미묘한 이야기를 했다”고 전했다. 박 시장은 “푸 주임이 미국과 정직한 대화가 많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했다”며 “미·중관계를 신형대국관계라고 하면서 운명을 같이하고 책임을 같이하는 것이 중국의 꿈이고 세계의 꿈이라고 얘기했다”고 말했다. 한국이 미국의 확고한 맹방이란 점에서 그의 이야기를 유심히 들었다고 박 시장은 설명했다.

푸 주임의 인식은 중국의 부상을 미국이 인정하고 국제무대에서 동등한 파트너로 인정해주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예를 들면 중국은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지만 국제통화기금이나 세계은행 등 서방 주도의 국제금융기구에서 제대로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구조이며 변방에 불과하다는 한탄이 나올 정도다.


박원순 서울시장_경향DB


박 시장 간담회 얘기를 꺼낸 것은 최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보여주고 있는 어지러울 정도의 외교 행보가 푸 주임이 털어놓은 고민과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시 주석의 행보를 돌아보자. 지난 9월 미국 국빈방문에서 시 주석과 중국 인사들은 신형대국관계를 역설했으나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국 측 인사들은 크게 호응하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2013년 6월 미국 캘리포니아주에서 열린 정상회담 회담 당시와 미국의 반응은 사뭇 달랐던 것 같다는 게 베이징 외교 소식통의 전언이다.

아무튼 시 주석은 10월엔 미국의 오랜 동맹국인 영국을 찾았다. 영국 여왕으로부터 특급 환대를 받은 그는 영국과 ‘글로벌 전면적 전략동반자’ 관계로 양국 관계를 격상시켰다. 역시 중국의 경제력이 무기였다. 최근에는 미국과 일본이 공을 들이는 남중국해 분쟁의 주요 당사국 베트남을 찾았고, 싱가포르에서는 마잉주(馬英九) 대만 총통과 역사적인 양안(兩岸·중국과 대만) 정상회담을 주도했다. 양안 정상회담은 아시아 재균형 전략을 구사하는 미국을 견제하려는 중국의 의도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있다.

시 주석이 해외로 나간 것은 이렇고, 베이징에는 최근 선진 주요 7개국(G7) 국가인 독일의 메르켈 총리와 프랑스의 올랑드 대통령이 모습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시 주석은 오는 14일부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잇따라 참석하며 파리 기후변화회의와 남아공 방문 일정도 잡혀 있다.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가 미국과 관계를 맺고 있지만 시 주석의 외교 일정은 미국을 겨냥한 행보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을 듯하다. 중국에 대한 미국의 불신은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 후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과 규칙을 지키지 않으려 할 때 미국이 말하는 것처럼 한국도 중국에 말을 해달라”고 얘기한 데서 엿볼 수 있다. 부상하는 중국을 어떻게 볼지 의견이 제각각이나 상대방의 실체를 인정하지 않으면 건설적 대화는 어렵다. 물론 중국은 상대하기 어려운 나라다. 영유권 분쟁만 해도 먼저 일을 저지른 후 수습하고,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저지르는 식의 행보를 통해 세력을 넓혀가고 있다. 분명한 점은 중국이 주변국을 대상으로 계속 영향력 확대를 도모할 것이란 점이다. 경제와 정치를 분리해 한·중관계를 유지하기가 시간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


베이징 오관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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