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누스’ 일본을 대처하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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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누스’ 일본을 대처하는 방법

by 경향 신문 2013. 12. 30.

각기 앞과 뒤를 보고 있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진, 문과 모든 일의 시작을 지배하는 두 얼굴의 신을 고대 로마에서는 야누스라고 불렀다. 현재 일본의 움직임을 보고 있으면, 이 야누스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것으로 생각된다. 전력(戰力)의 포기를 강조하는 평화헌법을 보유한 일본, 그러나 한편으로는 세계 유수의 통상(通常)전력을 과시하는 일본, 어느 쪽이 일본의 진짜 얼굴인가. 또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을 사과하는 무라야마 담화와 고노 담화를 내세운 일본. 하지만 현직 총리 스스로 그 선언과 담화를 부정하고, 침략의 정의에 대해 애매한 견해를 거리낌 없이 공언하는 일본.


이런 야누스 같은 일본의 태도는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오키나와현 나고(名護)시 헤노코(邊野古)기지의 매립신청 승인이라는, 이 역시 퇴행적인 얼굴과 전향적인 얼굴이라는 두 개의 얼굴을 드러낸 것이다.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가 연내에 이뤄질 것이라는 점은 예상됐던 일이다. 또 내각 중추에서 참배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발은 예상범위 내의 것이었음에 틀림없다.


다만 미국의 반응이 우려사항이었을 것이다. 예전에 야스쿠니를 참배한 고이즈미 전 총리는 당시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밀월관계를 과시했고, 결과적으로 미국은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를 묵인했다. 대테러전쟁도 포함해 일본을 끌어안는 것이 미국의 국익에 부합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베 총리는 오바마 대통령과 그런 개인적 신뢰관계로 묶여있지 않고, 미국 내에서 아베 총리를 ‘극우’ 또는 ‘역사수정주의’라고 의문시하는 움직임도 있다. 


일본대사관,야스쿠니 신사참배 규탄 회견(출처 : 경향DB)


이런 미국의 우려와 관련해 제공된 ‘희생’이 오키나와현 나고시 헤노코의 매립신청에 대한 오키나와 지사의 승인 발언이다. 이 발언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같은 날 있었다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알기 쉽게 말하면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와 매립 승인은 미국에 대한 메시지이고, 또 야스쿠니 참배는 국내적으로는 헤노코의 매립 승인이라는 빅뉴스를 상쇄하고, 그 쇼크를 완화시키는 효과를 겨냥한 것이 된다. 대외적으로는 야스쿠니 참배에 대한 미국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키나와 기지라는 희생을 제공하고 또 국내적으로는 참배에 대한 국민 불안을 가라앉히기 위해 그간 교착상태에 빠져있던 오키나와 기지문제 해결의 전도를 제시한다. 이런 국내외에 걸친 야누스적인 대응이, 아베 내각이 노리는 바였음에 틀림없다. 


하지만 아베 내각의 노림은 반드시 성공한 것은 아니다. 미국이,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 ‘실망했다’라는 상당히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 것은 물론 헤노코의 매립신청 승인에 입각한 미·일 방위당국 수장의 전화협의도 급거 중지하겠다는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게다가 러시아도 아베 총리의 참배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고, 유럽도 일본에 ‘신중한 외교’를 요구하면서 일본의 대외적 고립이 두드러지게 됐다.


아베 총리의 지금까지의 언동과 정치적 구상에는 분명히 어떤 체제에 대한 강한 반감이 읽힌다. 그것은 일본의 과거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단죄한 도쿄재판(극동국제군사재판)으로 대표되는 역사관을 매장해버리고 싶은 강한 바람이다. 


평화에 대한 죄, 인도주의에 대한 죄로 과거 일본의 군국주의와 침략의 역사를 단죄한 도쿄재판은 식민지 지배의 참화와 그 책임을 명백히 했다고는 말하기 어려우며, 여러 문제점을 남긴 것은 부정할 수 없다. 그럼에도 도쿄재판은 뉘른베르크 재판과 함께 전후 평화적인 국제질서의 형성에 결정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전후 일본의 국제사회로의 복귀도, 이 도쿄재판을 전제로 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 의해 처음으로 가능해졌던 것이다. 다만, 한국도 중화인민공화국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의 당사자는 될 수 없었다. 


게다가 냉전과 함께 미국이 일본에 대해 온정적으로 재건을 꾀했고, 6·25동란과 함께 한국은 냉전의 최전선에 서게 됐다. 동아시아에서 ‘동·서 독일과 같은’ 운명은 일본이 아니라, 한국으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 일본이 아베 총리 하에서 도쿄재판사관에 도전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의 역사를 수정주의적으로 왜곡하고, 동시에 군사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보다 강한 나라를 지향하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이 반발하는 것도 어떤 의미에서는 당연하다.


그러나 일본의 야누스적인 대응은 한국과 미국 간에 온도차를 유발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미·일 간의 방위·외교당국자 간 회담인 2+2에서 일본의 집단적 자위권 행사에 대한 미국 측의 긍정적인 반응과 한국의 강한 우려는 대일관계에 대한 양국간 온도의 다름을 나타낸다. 그러나 이번 아베 총리의 야스쿠니 참배에서 명백해진 것은 미국이 지금 이상으로 아베 총리의 정치적 스탠스를 동아시아의 안정을 해치는 불안정 요인으로 보게 됐다는 것이다. 앞으로 한국은 단지 국내의 반일 내셔널리즘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아베 정권에 대한 국제여론을 똑똑히 주시하고, 특히 미국 내의 여론과 동시에 일본 시민사회와 미디어, 평화운동에 적극적인 메시지를 보내야 한다. 단순한 반일 내셔널리즘은 오히려 아베 정권을 도와주는 것이 될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강상중 일본 세이가쿠인대학 교수

<번역 | 서의동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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