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에 해당되는 글 1802건

  1. 2011.04.04 [워싱턴리포트] ‘한·미 소통’ 필요한 대북 식량지원
  2. 2011.03.30 [기자메모]정몽준 “전술핵 재도입” 위험한 발상
  3. 2011.03.22 [워싱턴리포트] 핵안보 - 핵안전, 더이상 별개 아니다
  4. 2011.03.14 [국제칼럼]리비아에 대한 오바마의 딜레마
  5. 2011.03.14 [국제칼럼]카다피, 혁명가와 독재자 사이
  6. 2011.03.14 [국제칼럼]G20 서울회의 그 후, 한국은 어디에
  7. 2011.03.14 [국제칼럼]‘이슬람 혁명’이 주는 교훈
  8. 2011.02.25 이집트 혁명은 한국사회와 무관한 것인가?
  9. 2011.02.14 [국제칼럼]무엇이 아마존을 절망케 하는가
  10. 2011.02.11 [기자메모] ‘한국 기억상실증’ 럼즈펠드의 오진
  11. 2011.02.01 [기자메모]‘외교소식통’ 색출 전에 알아야 할 것
  12. 2011.01.24 [워싱턴리포트] ‘성장한 중국’ 어디로 튈까
  13. 2010.12.23 [기자메모]‘러시아’ 잘못 읽은 김성환 외교장관
  14. 2010.12.14 [워싱턴리포트] '北정권 붕괴’만 기다리는 한국과 미국
  15. 2010.11.30 [경향의 눈]대중국 외교의 반성문
  16. 2010.11.23 [워싱턴리포트] 한·미 동맹의 ‘발목지뢰’ FTA
  17. 2010.11.02 [워싱턴리포트] 파이로프로세싱의 ‘불편한 진실’
  18. 2010.11.01 [워싱턴리포트] 한·미 ‘북핵 대응 강화’의 모순
  19. 2010.10.21 시진핑 선장의 ‘중국호’와 한·중 관계
  20. 2010.10.15 지구촌 '노인 인구폭탄' 어떤 영향 미칠까
북한에 대한 식량지원은 ‘인도주의적 차원’이라는 전제를 달고 있지만 실상은 정치적 차원의 결단이다. 인도주의는 명분이고 실제 식량지원 여부는 정치적 영역에서 결정된다.

지금 한국과 미국은 세계식량계획(WFP)의 ‘북한 식량사정 보고서’를 놓고 머리를 싸매고 있다. 한국은 북한의 식량사정이 예년에 비해 나쁘지 않으며 보고서 내용을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북한 식량사정이 매우 좋지 않다는 것은 정부가 더 잘 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은 지난 2월 외교부 공관장회의 강연을 통해 “북한 식량이 1년에 100만t씩 부족한 게 3년 됐다”면서 “식량난은 엄청나게 심각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럼에도 정부가 WFP에 계산 근거를 추궁하며 지원을 거부하고 있는 것은 대북 지원문제가 인도주의와 무관하다는 불편한 진실을 스스로 입증하는 것이다.

미국 역시 WFP 보고서에 대한 신뢰성을 내세워 최종 결정을 미루고 있다. 하지만 실제 이유는 신뢰성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정부가 직접 조사한다 해도, 북한이 보여주는 장소와 자료만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기다리는 것은 한국과의 조율, 북한의 입장 변화 등 정치적 문제의 해결이다. 만약 북한이 대남 도발 중단을 선언한다거나 비핵화와 관련된 진전된 태도를 보인다면, 또 한국 정부가 미국의 식량지원을 말리지 않는다면 미국은 WFP 보고서의 신뢰성을 더 이상 문제삼지 않고 식량지원에 착수할 것이다. 

문제는 미국이 안 줘도 그만인 식량문제를 왜 고민하느냐다. 미국은 천안함·연평도 사건 이후 한반도에 꽉 찬 긴장의 에너지를 우려하고 있다. 미국 내에서 북한과 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고개를 드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대화로 북핵 등 한반도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은 미국 내에 거의 없다. 다만 대화통로를 만들고 이를 통해 긴장의 에너지를 조금씩 분출시킴으로써 폭발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이다.

미국은 당초 남북관계 진전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북·미 접촉을 시작해 긴장관리에 나서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다. 미국은 지난 1월 북한으로부터 북·미 고위급 군사회담 제안을 받고 20일 가까이 대답을 하지 않고 있다가 남북 군사실무접촉이 무산된 것을 보고나서야 북한에 거부 의사를 표시했다. 남북 군사회담이 제대로 진행된다면 미국도 그 기회를 살려볼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당시 미국은 남북대화가 무산된 것에 대해 상당한 실망감을 표시한 것으로 전해진다. 

지금은 상황이 더 나빠졌다. 이명박 대통령은 지난 1일 특별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저질러 놓은 일에 대해 사과 표시를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면서 천안함·연평도 문제 사과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못을 박았다. 한때 정부가 북한과의 대화 통로를 만들기 위해 ‘남북간 비핵화 회담’과 ‘남북 관계 진전을 위한 회담’을 분리시키는 등 천안함 출구 전략을 모색하던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다시 강경모드로 돌아간 셈이다.

한국이 지금처럼 남북 긴장관리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미국도 움직이지 못하게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면 어떤 결과가 일어날지 예측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조만간 북한이 다시 도발을 일으키거나, 미국이 북한과 비밀접촉에 나섰다는 소식이 들려도 크게 놀랄 일은 아닐 것이다. 지금 먼저 필요한 것은 북한과의 대화보다 한·미 간의 솔직한 의견 교환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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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핵에 대응하기 위해 미국의 전술핵무기를 한반도에 재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해온 정몽준 전 한나라당 대표의 소신이 워싱턴에서도 이어졌다.

한나라당 정몽준 전 대표가 25일 국회 본회의 대정부질문에서 "(미국) 전술핵무기의 재반입을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정 전 대표는 29일 존스홉킨스대 국제관계대학원 특강에서 중국이 북한에 핵포기 압력을 가하도록 압박하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인 핵 대응카드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우리는 지난 30년간 북핵에 아무 대안 없이 지내왔다”면서 “전술핵 재도입은 최소한의 조치”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그의 주장은 합리적이지도, 현실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지극히 위험하다. 핵무기 운반능력의 발달로 전술핵과 전략핵의 개념이 불분명해진 지금 전술핵을 특정국에 고정배치하는 것은 미국의 현대적 해외주둔군 운용 개념에 맞지 않는다. 실효성도 없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핵정책을 역주행하는 주장이기도 하다.

더구나 정 전 대표가 말하는 전술핵은 우리 것이 아니다. 남의 나라 무기를 우리나라에 갖다놓아야 한다고 우기는 것은 자기 집 제사에 옆집 보고 감놔라 배놔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동북아시아에 핵무장 도미노를 일으켜 지역 전체를 핵 화약고로 만들고, 북한이 절대 핵을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이유를 제공함으로써 오히려 북한 핵을 영구화시키자는 주장이기도 하다. 냉전시대로 돌아가자는 말인가.

우리도 핵무장을 함으로써 북한과 이른바 ‘공포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생각이라면 더욱 위험하다. 그런 발상은 북한이 우리와 같은 논리구조를 갖고 합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정 전 대표가 실제로 전술핵을 재도입해야 한다고 믿는지는 알 수 없다.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엄포라고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런 주장이 제기되는 것으로 인해 국제적으로 얻는 것과 잃는 것을 따져보면 단연 손해가 크다. 한국이 이만큼 북핵 문제를 절박하게 여기고 있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세계에 전해진 것 같으니 이제 그만 접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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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성물질 누출 사고는 원자력이 과연 인류의 미래와 함께할 수 있는 에너지인지를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 볼 수 있는 기회를 전 세계에 제공했다. 치명적인 독성 물질을 내뿜으며 타들어가는 핵연료봉을 어떤 수단으로도 제어하지 못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사람들은 금단의 초자연적 에너지를 개발한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가졌다.
 
원전 수소폭발로 폐허로 변해버린 후쿠시마 원전 1호기 | AP연합뉴스 | 경향신문DB

공교롭게도 기후변화와 에너지원 고갈이라는 난제에 부닥친 세계 각국이 원자력에 다시 눈을 돌리면서 이른바 ‘원자력 르네상스’가 도래하려는 시점이었다. 이번 사고로 각국은 원자력의 위험을 다시 한 번 실감하면서, 원자력이 풍력·태양력·바이오매스 등과 함께 신재생 에너지의 항목에 포함되는 것이 타당한지를 돌아보았다. 또 일본 원전의 사고원인이 무엇인지, 원자력 발전의 어떤 과정에서 결점이 있었는지를 규명하기 전에는 현 상태에서 더 나가지 말아야 한다는 신중론도 제기된다. 

그러나 신흥 원자력 강국을 자처하며 원전수출을 국가적 전략으로 삼고 있는 한국의 반응은 독특했다.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일성은 “우리 원전은 안전하다”였다. 인간에게 원자력이란 과연 어떤 존재인가를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목전에 있음에도 한국의 관심은 엉뚱한 곳으로 향하고 있다.

일본의 사고 원전이 가동된 지 40년이 지난 노후 시설임을 감안하면 한국의 원전이 상대적으로 사고 확률이 낮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번 사고의 본질은 어떤 원자로가 더 안전한가를 따지는 데 있지 않다. 일본의 비등형경수로보다 한국형 가압경수로가 구조상 더 안전하다느니, 우리나라는 지진과 같은 자연재해의 위험이 적다느니 하는 말들은 이번 사태가 인간에게 던진 진지한 질문에 대한 동문서답이며, 경박함의 표본이다. 마치 학급 전체를 꾸중하는 선생님 앞에서 “난 안 그랬는데요”를 외치는 초등학생과 다를 바가 없다.

이번 사고로 세계가 당장 원자력을 포기할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는다. 화석연료에만 의존할지, 아니면 원자력을 계속 이용해야 할지 장기적 안목에서 판단해 보겠지만 결국 원자력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그렇다면 결국 안전이 문제다.

이번 사고는 그동안 별개의 것으로 인식해왔던 핵 안보(nuclear security)와 핵 안전(nuclear safety)의 경계를 허무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그동안 핵물질이 테러리스트의 손에 넘어가는 것을 막는 핵 안보에 치중해왔다. 핵 안전은 상대적으로 비중이 적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원전의 전원공급이 차단된 상태에서 원자력 안전의 최후의 보루인 비상용노심냉각장치(ECCS)가 망가지거나 사용후 핵연료봉의 관리가 잘못되면 원자로의 구조·연식과 무관하게 참사가 벌어질 수 있다는 것을 이번 사고는 똑똑히 보여줬다. 핵물질을 구해 테러를 하는 것보다 훨씬 간단하게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테러리스트도 깨달았을 것이다.

내년 핵안보 정상회의의 주최국으로서 한국은 핵 안보와 핵 안전이 별개의 사안이 아니라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것임을 인식하고 이 문제를 적극 논의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야 한다. “우리 원전이 남의 것보다 더 안전하다”는 낯뜨거운 주장을 하기에 앞서 이번 사고에서 얻을 수 있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먼저 숙고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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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지난 번 칼럼에서 이집트에 대한 미국의 선택을 다루었다. 불과 5주 만에 또 다른 국가를 다루게 만드는 중동의 급격한 변화가 진정 놀랍다. 작금의 사태에 제대로 대처하기 위해 1990년대 초 동유럽을 연구하라고 지시한 오바마 대통령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고 있는 민주화 물결은 냉전붕괴에 비견되는, 또는 더 나아가 완결판이 될 수 있는 충분한 함의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집트와는 달리 현재 리비아는 결말의 향방을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녹록치 않은 국내외 여론

오바마는 카다피에게 권좌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했으며, 그렇지 않을 경우 군사개입을 포함해서 모든 가능한 수단을 동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집트 사태에 대해서는 무바라크의 퇴진을 단호하게 요구하는 것 이상을 할 필요 없이 독재는 종식되었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미국은 이런 결말에 대해 스스로도 만족할 만한 성공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루이 14세를 떠올리게 하듯 ‘자신이 곧 리비아’라고 선언하는 과대망상의 카다피는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자국민들에게 무차별 폭격을 가하고 있다. 독재에 대한 분노와 민주화 열정으로 기세등등하던 반군은 정부군의 무기 및 수적 우세에 점점 밀리고 있는 형국이다. 이 때문에 리비아 사태는 미국 현대사를 통틀어 거의 모든 대통령들이 직면했던 해외 개입의 문제를 오바마에게도 제기한다. 늘 그랬지만 이 문제는 결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으며, 그런 만큼 논란에 휩싸이고 있다.

오바마 대통령은 일단 매우 신중하다. 그가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또 다시 중동문제에 군사개입을 한다는 인상을 줌으로써 그렇지 않아도 악화된 이슬람과의 관계가 더 나빠질 수 있다는 점이다. 벌써 일부 비판론자들은 미국의 중동장악을 위한 음모이론과 연결하기 시작했다. 게다가 이미 치르고 있는 2개를 포함해 3개의 전쟁을 동시에 수행하는 최악의 시나리오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카다피의 광기는 그 어느 때보다 미국의 개입을 정당하게 만들고 있지만, 국내외 현실은 녹록지 않다. 당장 러시아와 중국은 군사개입 반대를 표명했으며, 나토 역시 유엔 결의 없이는 움직일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경향DB


미국 내 의견도 갈린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일반 국민 60% 이상이 개입에 반대하지만, 매케인을 비롯한 공화당의 유력인사들은 오바마의 소극적 태도에 연일 비판을 쏟아내고 있다. 더욱 부담인 것은 같은 당 소속이며 외교에서 늘 원군이었던 존 케리 상원의원과 클린턴 전 대통령까지 오바마의 보다 과감한 결단을 촉구하고 있다는 점이다. 클린턴은 재임시절 가장 후회스러운 일이 르완다에 대한 개입시기를 놓친 것이라고 했다. 반면 공화당 성향의 게이츠 국방장관은 불개입을 주장하고 있다. 지상군 투입 같은 본격적 개입은커녕 ‘비행금지구역 설정’을 놓고도 이렇게 찬반양론이 갈린다. 프린스턴대의 국제정치학자 게리 베이스의 지적처럼 개입을 해도 오버액션이라고 비난을 받을 것이고, 하지 않아도 학살을 방조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 딜레마 상황이다.

신의 지혜가 함께 하기를

리비아 사태의 개입에는 두 가지 조건이 필수라고 생각한다. 하나는 미국 단독이 아니라 국제공조가 있어야 하고, 두번째는 리비아 내부에서 스스로 개입을 요구할 때이다. 그러나 어느 것 하나 쉽지 않다. 특히 후자는 반군 내부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고 있다. 아니 반군의 구심체조차 분명하지 않은 실정이다. 반정부세력의 가장 큰 과제는 물론 카다피를 무너뜨리는 것이지만, 그만큼 중요한 것은 새로운 리비아를 건설할 세력을 만드는 것이다. 이 둘은 결코 선후가 분리된 과제라고 할 수 없다. 후자는 전자를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더욱 높여줄 것이기 때문이다. 오바마에게는 신의 지혜가, 리비아인들에게는 신의 보호가 있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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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아랍 민주화 시위가 계속되고 있다. 튀니지의 벤 알리 대통령이 금괴를 갖고 해외로 도피하고, 30년 철권통치의 이집트 무바라크 대통령도 물러났다. 42년째 집권하는 리비아의 카다피는 지금 자신의 국민들을 상대로 대량학살을 자행하고 있다. 그러나 카다피는 당초 자살하거나 곧 붕괴되리라는 서방의 기대와는 달리 아직도 잘 버티고 있다. 그것은 특이한 그의 성격 탓도 있지만, 카다피가 리비아에서 갖는 역사적 의미를 너무 과소평가했기 때문이다.

청년시절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

나는 카다피를 세 번 만났다. 대학원 재학시절 카다피가 창안한 제3의 보편이론에 관심을 두고 그의 저서인 <그린북>에 관한 한 편의 논문을 쓴 것이 인연이 됐다. 초청을 받을 때마다 장장 3시간이 넘는 연설을 직접 들을 기회가 있었다. 그는 천부적인 웅변가이자 대중 선동가였다. 1969년 9월1일, 27세의 청년 카다피가 혁명을 성공시키고 반외세 반굴종의 기치를 내걸며 국민들이 진정한 주인이 되는 도덕적 자주국가를 표방했을 때, 리비아 국민들은 물론 많은 제3세계 청년들에게 카다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였다. 서구식 자유민주주의를 대신한 국민집회를 통한 직접민주주의, 자본주의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도덕적 경제와 이슬람 사회주의, 여성 해방과 남녀역할 분담론, 완고한 이슬람 율법체계에 대한 과감한 개혁 등을 통해 진정 사람 사는 세상을 꿈꾸었다.

         무아마르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경향DB)


또 하나, 카다피가 행한 아랍세계를 위한 큰 공헌은 석유수출국기구(OPEC)를 자극해 원유 제값 받기 운동에 불을 붙였다는 점이다. 그는 메이저 석유회사 대신 주로 리비아 석유에만 의존하던 개별 석유회사들을 상대로 원유가 인상을 성사시켰다. 1970년대까지 국제유가는 배럴당(약 169ℓ) 겨우 2달러 수준이었다. 그 결과 1973년 1차 석유파동으로 우리나라와 서방경제는 큰 타격을 받았지만 배럴당 15달러 이상으로 치솟으며 누적된 가격 착취구조를 개선하는 계기가 됐다.

장기집권은 반드시 부패한다는 불변의 진리처럼 카다피의 이슬람 사회주의 통치방식도 1980년대 말 구소련의 사회주의 블록이 붕괴하면서 변질됐다. 무모하게 반미와 반서구를 부르짖었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를 공공연히 지원하면서 테러지원국으로 낙인찍히고 경제제재도 받게 됐다. 국민들은 고통과 불만을 토로했고, 카다피는 가혹한 통제와 검열, 야당 인사에 대한 탄압으로 맞섰다. 가장 큰 정권 위협세력인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을 감금하고 추방해 버렸다. 알 카에다가 카다피의 목숨을 노리는 배경이 됐다. 결국 카다피는 1980년대 이후부터 서방세계와 이슬람 세계 모두에게 적으로 남았다. 아프리카와 일부 라틴아메리카의 닮은꼴 지도자의 지지가 있었지만 이것은 그들만의 향연에 불과했다.

최근 20년, 독선과 아집의 전형

이처럼 카다피는 두 얼굴을 갖고 있다. 혁명 초기 20년 동안의 두터운 국민적 지지와 최근 20년간의 독선과 아집으로 국민들을 고통으로 몰아넣은 독재자라는 명암의 두 축을 갖고 있다. 적어도 리비아에는 절망의 시기에 희망의 빛을 준 카다피에 대한 충성스러운 국민들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카다피 붕괴를 속단하던 서구가 놓친 부분이다.

그러나 국민들을 학살하는 카다피가 물러설 곳은 더 이상 없다. 충성파 국민들이 혁명 지도자의 과거 영광을 기억한다 해도, 옆에서 죽어가는 가족과 이웃들의 학살에 더 이상 지지를 보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미국이 직접 군사개입을 한다면 리비아는 걷잡을 수 없는 혼란으로 빠져들 것이다. 아랍연맹이나 중립적 국가들이 중재에 나서 당사자 사이의 협상을 통해 카다피 출구전략을 마련해 주어야 한다. 물론 카다피의 범죄에 대해서는 국제사회가 끝까지 책임을 물어야 한다. 아무리 민주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지만 리비아 내전과 시민학살은 너무나 끔찍해 민주화 투쟁 이후가 더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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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열 | 연세대 교수·국제정치학


지난 20일 폐회한 파리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 총재회의는 작년 11월 서울 정상회의를 개최하면서 “대한민국, 세계 중심에 서다”를 선언한 한국의 향후 G20외교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이번 파리회의의 중심에 한국은 보이지 않았다. 단군 이래 최대 규모의 국제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하여 자국의 국제적 지위를 드높이고 선진국과 개도국을 잇는 글로벌 가교국가로 발돋움하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하였다고 자부한 지 불과 3개월 만이다.

뒤이은 파리회의선 존재감 미미

지난 서울 정상회의는 국제금융기구 개혁, 글로벌 금융안전망 등에 대한 합의를 도출하는 성과를 거두었고, 서울 개발 컨센서스를 띄울 수 있었으며, 예기치 않게 돌출한 미국과 중국 사이의 환율전쟁을 원만히 봉합할 수 있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이 의장국으로서 기여하였음은 물론이다.

이번 파리회의에서는 서울회의가 물려준 의제인 지구적 불균형(global imbalance)을 해소하기 위한 일환으로서 불균형의 정도를 평가하는 지표설정을 둘러싸고 미·중 양강 사이에 또다시 팽팽한 줄다리기가 이어졌다. 미국은 공공부채, 재정적자, 민간 저축률 및 민간부채, 무역 및 투자불균형 등과 함께 외환보유액과 환율을 핵심 지표로 삼으려 하였으나 중국의 완강한 반대에 직면하여 어정쩡한 타협을 했다. 여기서 한국이 가교국가로서 중재에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 또 지난번 한국이 주창한 서울 개발 컨센서스는 제대로 논의되지 못했다. 결국 3개월 전 서울에서 누렸던 한국의 지위는 의장국 프리미엄이었던가. 2008년 세계금융위기가 발발한 이래 등장한 G20은 그간 소수 서구선진국 중심의 거버넌스를 넘어 신흥국의 목소리를 담는 최상위 국제경제제도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의 활동무대는 분명 확장됐다. 문제는 어떤 연기를 펼칠 것인가이다. 더 이상 의장국이 아닌 꼬마 한국이 오바마와 후진타오란 거인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세계경제질서의 변화를 정확히 분별하고 창의적인 해결책을 내어놓을 수 있는 지식의 힘을 갖추어야 한다.

         경향DB


얼마전 세계경제포럼(다보스포럼)은 금융위기 이후 세계에는 다양한 위험요소들이 등장, 서로 연계된 채 도사리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G20 등 기존의 국제제도들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음을 경고하고 있다. 실제로 G20의 경우, 금융위기 극복을 위한 국제공조로부터 시작하여 위기 이후 국제제도의 재구축을 모색해 온 와중에, 2010년 토론토회의는 재정위기, 서울회의는 환율전쟁, 이번 파리회의는 석유 및 식량 등 원자재가격의 급격한 상승, 중동민주화 등 예상치 못한 새 이슈들과 마주하여 해결책에 골몰하여야 했다. 더 큰 도전은 이런 위험요소들이 서로 연계되어있다는 데 있다, 유동성 위기는 재정위기와 지구 불균형 악화로 이어지고, 원자재 가격 상승, 식량위기, 경제적 양극화 심화, 환경 악화, 부패 확산, 지정학적 위험 증가 등이 서로 거미줄처럼 연결되어 있다. 어느 한 곳에 문제가 터지면 연쇄적으로 확산되어 지구 전체가 동요하는 세상에 살고 있는 것이다.

세계경제 문제 창의적 대응을

G20에서 한국이 성공하려면 금융뿐만 아니라 재정, 자원, 환경, 무역, 개발, 사회, 안보 등 세계경제 문제의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을 파악하고 대응하는 복합 외교가 필수적이다. 주어진 문제가 지구 전체의 위험네트워크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어떤 문제들이 연쇄적으로 발생할 것인지를 파악하고 잘 조율된 통합적 대응책을 제시할 때 국제사회는 한국을 경청할 것이다.

이런 점에서 범정부적 준비위원회 해체 이후 G20이란 글로벌 거버넌스 외교를 기획재정부의 일개 국(기획조정단)에 맡겨서는 부족하다. 지난 서울회의가 일회용 행사임을 자인하는 꼴이다. 외교 주무부처와 총리실 등이 함께하여 ‘정부知’를 결집하고 또 민간과 연계하여 ‘국가知’를 총동원할 수 있는 네트워크적 외교시스템을 갖추어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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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2011년은 아랍 및 이슬람 세계의 민주화를 위한 시민혁명으로 시작됐다. 자유와 해방을 향한 민중의 에너지가 거침없이 확산되는 실정이다. 1월에 튀니지의 재스민 혁명은 23년의 독재자 벤 알리를 퇴임시켰고, 2월에는 이집트에서 타흐리르 광장의 힘이 30년의 독재자 무바라크를 물러나게 했다. 이제 아랍세계 주요 도시의 광장은 압제와 빈곤의 종식을 요구하는 시민의 함성으로 가득 차고 있다.

리비아 카다피의 40년 철통 독재도 시위대가 경찰을 공격하며 조금씩 붕괴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오일 달러로 부유한 바레인에서도 왕정을 향한 반발의 파도가 거세다. 알제리와 모로코, 예멘과 이라크 등 북아프리카·중동 전 지역에서 민주화의 열풍이 휘몰아친다. 2009년 대선에서 이미 봉기가 일어났지만 실패했던 이란의 민중도 다시 거대한 변화의 흐름을 타고 민주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지난 3주간 유럽에 머물면서 바라본 이슬람의 민주혁명은 한반도에서 듣는 것보다 훨씬 가깝고 뜨겁게 느껴졌다. 지중해만 건너면 튀니지나 이집트라는 지리적 근접성도 있지만 무엇보다 유럽에는 1500만명에 달하는 북아프리카·중동의 이민자들이 생활하면서 실질적으로 두 대륙을 연결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성찰을 중시하는 프랑스의 일간 르몽드는 1848년 유럽의 시민혁명, 1989년 동유럽의 민주혁명, 그리고 2011년 아랍세계의 민주혁명을 비교하는 특별대담을 실었다. 이미 하나의 세계사적 변화의 기미를 보인다는 인식이다. 첫째, 세 혁명은 모두 아주 부조리하지만 변화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던 정치적 상황에서 갑자기 역동적인 전개가 이뤄졌다. 둘째, 시민이 독재의 탄압에 대한 내면의 공포를 극복하고 자신의 존엄성을 요구하는 순간 혁명의 도화선이 형성된다. 셋째, 혁명은 민주화로 연결되어 성공하기도 하지만 때로는 반(反)혁명으로 실패할 수도 있다. 그러나 반혁명도 혁명의 소중한 성과를 완전히 돌이키지는 못한다는 교훈이다.


다른 한편 장기간 아랍세계의 독재체제와 밀월관계를 유지해 왔던 유럽 각국의 외교정책은 최근 신랄한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다. 민중의 삶의 조건이나 인권에는 무관심한 채 ‘이슬람 근본주의 세력의 확장을 막기 위해서는 안정된 정치체제가 필요하다’는 현실주의적 논리는 이제 머쓱해졌다. 특히 서구 정치인과 경제인이 아랍 독재정권으로부터 갖은 특혜와 선물을 누려왔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가가 아닌 개인을 위한 현실적 계산이었다는 비판도 등장했다. 유럽연합이 독재자와 가족, 측근의 재산을 동결하는 조치를 취했지만 ‘아랍 민중의 신뢰’라는 소를 잃고 외양간을 고치는 격이다.

이번 민주화 운동이 한반도에 줄 수 있는 의미는 무엇일까. 시민을 굶기고 독재집단을 살찌우는 정권은 반드시 무너진다는 진실이다. 외부와의 접촉을 차단하고 눈과 귀와 입을 틀어막는다 해도 부당한 지배는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것이야말로 과거 한국의 민주화를 이끄는 정신이었고, 진보를 자임하는 민주세력이라면 남과 북, 한반도와 중동을 막론하고 지속적으로 흔들어야 할 투쟁의 등불이다.

한국의 진보세력이 할 일은?

하지만 한국의 자칭 진보, 민주 세력은 조로(早老)했다. 투쟁의 등불 대신 선거 정치의 계산기를 들고 2012년의 양대 선거만 준비한다. 그리고 벤 알리와 무바라크와 카다피를 합한 것보다 더 폐쇄적이고 억압적인 북의 체제에 대해 현실주의적 대화와 지원만을 노래한다. 비록 3대 세습과 같은 비정상적인 행태를 보이지만 그래도 부드럽게 다뤄야지 안그러면 전쟁이 날 것이라고 호들갑을 떤다. 1989년 동유럽 혁명에서 얻은 ‘북한도 언젠가는 반드시 무너진다’는 교훈은 애써 외면하면서도 사회주의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포함하여) 대안이 아니라는 성급하고 왜곡된 결론을 내린 한국의 민주세력이다. 2011년에는 올바른 교훈을 얻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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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권/새사연 부원장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촉발된 중동의 민주화 운동이 시간이 갈수록 중동 전체 지역으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특히 지난 1월 25일부터 시작되어 2월 11일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이 사임하기까지 18일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폭발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이집트의 민주화 혁명은 이집트와 중동은 물론이고 전 세계에 큰 충격을 주면서 중동의 국제질서의 재편 조짐마저 예상 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에서도 이집트 혁명에 대한 관심이 지대한 가운데, 그 여파가 예멘과 사우디, 리비아나 이란 등 중동의 여타 국가로 얼마나 확산되어갈지, 그 결과 중동 석유시장이나 국내 진출기업들에게 어떤 영향을 줄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심지어는 중동을 넘어 중국이나 북한 등으로 민주화 운동이 확산될 수도 있다는 섣부른 전망까지 나오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이집트 혁명을 1987년 한국의 6월 항쟁에 비견하는 분석도 간간히 보이고 있다. 한마디로 민주화가 이루어지고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넘어선 2011년 우리나라에는 해당사항이 없다는 얘기다. 과연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이미 우리나라가 20여 년 전에 이미 겪었던 후진국에서나 볼 수 있는 과거형의 사건이고 지금은 우리에게 아무런 교훈도 주지 못하는 것인가.

우선 확인해 둘 것이 있다. 이집트 혁명이 발발한 원인을 무바라크의 30년 장기독재 체제에 대한 정치적 민주화 요구로만 국한해서 설명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물론 튀니지나 이집트를 포함한 중동의 적지 않은 국가들에서 장기 독재체제가 존속하거나 심지어 왕정 형태를 띤 정치체제가 21세기까지 이어온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누적되어 왔던 것도 사실이다. 이집트 혁명의 도화선도 지난해인 2010년 6월 부패경찰이 마리화나를 나누는 장면을 유튜브에 올렸다가 억울한 죽음을 당한 29세 청년 인권운동가 칼레드 사이드에 대한 분노였다.
 

           이집트 반정부 시위 참석자가 무바라크 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경향DB)


그러나 현재 중동의 민주화 바람은 기본적으로 2008년 이후 세계 경제위기가 미치고 있는 파장과 영향권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 또한 엄연한 진실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현재 글로벌 경제위기 충격이 시작된 이래 4년을 지나고 있지만 세계 경제는 아직도 그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외형적인 지표경기 등은 다소 호전되고 있고 금융 불안도 일정하게 완화되고는 있으나 국민 생활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실업률이나 소득은 여전히 개선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금융위기의 진원지였던 미국을 보더라도 이는 명확하다. 미국 경제는 3%수준의 성장률 회복조짐을 보이고 있고 부실 은행들이 수익률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실업률은 9% 이상의 고공행진을 이어가고 있고 유럽 역시 9~10% 수준의 실업률이 떨어지지 않고 있다. 경제위기 이전 4%에 머물던 미국의 실업률과 비교한다면 두 배가 넘는 실업률이다. 당연히 소득도 개선되지 않았다. 경제위기는 실생활에서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라는 얘기다.

이집트를 포함하여 대부분 중동 국가들의 실업률도 마찬가지다. 공식 실업률 기준으로 9% 이상의 높은 실업상태가 지속되고 있고, 중 후진 국가들이 일반적으로 그런 것처럼, 공식 실업률을 뛰어넘는 사실상 실업자들, 그리고 엄청난 빈부 격차로 인해 하루 2달러도 안 되는 소득으로 살아가야 할 빈곤층이 30~40%를 육박하고 있는 형편이다.

경제위기로 인해 높은 실업률과 소득정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치명적인 일격을 가한 것이 최근에 이른바 ‘물가 폭등’이었다. 지난해 하반기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양적 완화’라는 이름아래 경기를 부양한다고 대규모로 풀기 시작한 달러 유동성은 달러로 표시되는 석유, 원자재, 각종 곡물가격을 폭등시키고 있다. 여기에 금융자산에 대한 투자가치가 떨어지고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글로벌 자금들이 이들 원자재와 곡물시장으로 유입되면서 실수요와 무관한 투기적 수요를 발생시키면서 가격폭등을 부채질 하고 있다. 이상 기후로 인해 공급이 차질을 빚은 이유도 있을 것이다.

높은 실업과 소득정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식료품과 생필품 위주의 물가가 10%이상씩 치솟았던 것은 서민들의 생계에 결정적인 어려움을 가중시켰고, 이것이 최근 중동의 민주화 시위의 강력한 경제적 배경으로 자라나게 된 것이다. 일부 언론에서 튀니지 혁명을 ‘굶주림의 혁명’이라고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고, 튀니지 혁명의 도화선이 지난해 12월 대학을 나온 청년 과일 노점상 무함마드 부아지지의 분신자살로부터 시작되었던 것도 이런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정치 민주화에 대한 요구 이전에 경제적인 생계 압박이 중동 혁명의 중대한 이유였던 것이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혁명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세계적 경제위기 자체라고 할 만 하다.
 

                        (경향 DB)


고용불안과 소득정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식료품과 같은 서민물가가 폭등하게 되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지는 지금의 중동이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거니와, 이는 1970~1980년대의 한국사회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2011년 지금 한국사회에도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상황은 존재한다. 한국 역시 세계경제위기 영향권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른바 ‘중국의 고성장 효과’ 덕택에 그 인접국이자 수출의존도 30%라는 막대한 영향을 받고 있는 한국경제는 지난해 6.1%의 고성장을 누려왔고 일자리도 약 30만개 늘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도 고용상황은 여전히 금융위기 이전을 회복하지 못했고, 늘어난 일자리의 상당부분도 사회서비스의 열악한 비정규직 일자리나 정부가 인위적으로 만든 임시직 일자리가 많았다. 올해에는 그나마 경제 성장률도 둔화될 것이고 일자리 증가 속도도 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임금인상과 소득증가도 금융위기 이전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 수준임은 물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 역시 지난해 하반기부터 물가가 오르기 시작했고 주로 해외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석유와 원자재 가격, 그리고 곡물 수입가격이 폭등하고 있다. 중국에서 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중국산 소비재 수입물가 역시 높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는 중이다. 한마디로 국민생활에 직접적 영향을 주는 석유, 원자재, 곡물, 중국산 소비재의 수입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중이고 이는 생산 원가와 생산자 물가, 소비자 물가로 계속 전이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대학들이 등록금 가격 동결 약속을 지키지 않고 인상대열에 합류했고, 잘못된 부동산 정책 탓으로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있으며, 정부의 약속과는 달리 공공요금이 인상 대기 중이다. 물가 상승으로 인한 생활 불안 걱정이 중동국가들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적어도 올해에는 정부가 경제성장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다는 이유로, G20을 개최하여 국격을 높였다는 이유로 국민에게 경제실적을 내세우며 설득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정부가 그토록 강조해왔던 친 서민 - 중도실용정책이 진정한 시험대에 오르고 있다고 할 것이다. 이집트 혁명과 중동 민주화 바람의 여파는 중동과, 중국, 북한 등에게만 해당될 것이라고 기대하며 정부가 안이하게 생각하고 있다면 고용불안과 물가 불안에 걱정을 키워가고 있는 우리 국민의 지지를 받기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다.

 

*이 글은 통일뉴스(www.tongilnews.com)에 기고한 글입니다.

출처: 새사연 http://saesayon.org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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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아마존은 더 이상 눈물을 흘리지 않는다. 눈물샘, 아니 강들이 말라가고 있기 때문이다. 지구 온난화로 인한 가뭄-폭우 사이클이 동반하면서 생태계도 급속히 악화되고 있다. 아마존의 주요 지류 가운데 하나인 네그로 강의 수위는 최고 30m인데, 작년 10월 이래 13m 수준으로 떨어졌다. 106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라고 한다. 곳곳에서 배의 운항이 불가능해서 6만가구가 고립 상태에 있다. 주변 62개 군 가운데 40개가 비상사태 하에 있고, 공군기가 고립된 지역에 식량과 의약품을 투하하고 있는 실정이다. 설상가상으로 우기가 시작되는 3~4월에는 강풍을 동반한 폭우가 몰아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2005년의 경우 풍속 140㎞의 강풍을 동반한 폭우에 6억6000만 주의 나무가 뽑혔다고 한다.

   
가뭄·폭우 사이클에 생태계 악화


가뭄과 폭우 사이클이 왜 생겼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어떤 이는 엘니뇨 현상 때문이라고 하고, 또 다른 이는 태평양의 남방진동 때문이라고 하는데, 아직 확실히 해명된 것은 아니라고 한다. 문제는 마투그로수주나 파라주와 같은 곳에 가뭄이 6개월이나 지속되고 있어 이곳 열대우림이 사바나 식생대로 바뀌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아마존은 360만㎢의 규모로 세계 동식물 종수의 15%를 차지하고 있다. 1999년에서 2009년 사이 10년간 매일 3종의 새로운 생물이 탄생하는 공간이라고 세계자연보호기금이 밝혔다. 하지만 지구온난화로 인해 생겼을 법한 가뭄-폭우 사이클은 종의 다양성을 파괴하는 최대의 위협으로 부상했다. 여기에 더하여 인간에 의한 우림의 직접적인 파괴도 심각하다. 지난 30년간 우림의 17%가 개발이란 미명하에 사라졌다. 파괴 속도도 놀랍다. 지난 20년간 10초당 1개의 축구 경기장 크기가 사라졌다. 최근에는 육우와 대두 가격이 오르니, 열대우림을 태워 목초지와 경작지로 만드는 것이 유행병처럼 퍼졌다. 그 넓은 지대를 실시간 감시할 수 있는 수단은 인공위성밖에 없다. 그러니 규제는 사후약방문 격이다.

        아마존 숲에서 목축업자들이 소 사육장을 만들기 위해 지른 불로 연기가 솟고 있다. [경향 Web DB]

룰라 정부 8년간 아마존은 개발론자와 보존론자 사이에서 표류하다가, 결국 개발 논리에 굴복하고 말았다. 룰라 정부는 임기 말기에 삼림법을 개정하여 2008년 이전의 불법 개발자들에게 면죄부를 제공했다. 대지주와 농업이익이 강하게 포진해 있는 의회 내 논쟁에서 환경론자들이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신 삼림법은 환경규제의 권한을 지방정부에 대폭 이관하여, 향후 불법 파괴의 가능성을 더욱 높였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란 주장이 지속가능성 논리를 밀어낸 것이다. 룰라 정부가 밀어붙인 또 다른 치적(?)은 파라주에 있는 벨루몽치 수력댐 건설이다. 중국의 삼협댐, 브라질과 파라과이 접경의 이타이푸댐에 이어 세 번째로 큰 이 댐은 2015년에 가동이 되면 11만 메가와트의 전력을 생산한다고 한다. 80억유로가 투하된 이 프로젝트는 경제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내건 ‘성장가속화프로그램’의 핵심 사업이었다. 하지만 500㎢의 우림지대가 물속에 잠기고, 5만명의 원주민과 농민들이 소개돼야 했다. ‘아바타’의 감독 제임스 카메론, 배우 시고니 위버까지 가세한 환경주의자들의 반대에도 룰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1만8000개의 일자리가 생기고, 2600만명에게 전력을 공급하는 일이 훨씬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룰라 정부 개발주의에 ‘설상가상’


하지만 아마존에서 지속가능한 개발이 불가능할까? 극소수의 예이지만 아크리주의 경험은 우림을 보존하면서 부가가치가 높은 개발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우림을 태우고 그곳에다 유전자 조작 대두를 심는 것은 대지주와 종자회사의 배만 불려줄 뿐이다. 하지만 자영농민이나 원주민들은 우림을 보호하면서 고부가가치의 자원을 채취하여 경제활동을 하고 있다. 아마존에는 나무 외에도 2150종의 다용도 식물이 있다고 한다. 고부가가치형의 채집형 개발이 대안이 될 법하건만, 룰라는 대지주들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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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W 부시 1기 행정부 국방장관으로 이라크전쟁을 주도했던 도널드 럼즈펠드의 회고록이 지난 8일 출간됐다. 그는 회고록에서 2003년 방한 당시 한국의 이라크 파병 반대 여론에 대해 언급하면서 한국이 ‘역사적 기억상실증’을 갖고 있다고 썼다. 50여년 전 미국의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죽어간 은혜를 망각하고 한국이 미국이 주도하는 이라크전쟁에 동참하기 꺼렸다는 것이 이유다. 
 
한국전쟁과 이라크전쟁을 동일한 성격의 사건으로 믿고 있는 그의 역사 인식이 놀랍다. 유엔 결의를 통해 세계 각국이 자발적으로 참전한 한국전쟁과 ‘명분없는 전쟁’으로 불리는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같을 수는 없다.

한국이 ‘역사적 기억상실증 환자’라면 2차대전 때 미국의 도움으로 나라를 되찾았으면서도 이라크전에 동참하지 않은 프랑스에도 같은 진단이 내려져야 한다. 또 미국을 따라 전쟁에 동참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가 ‘부시의 푸들’이라는 조롱을 받을 이유도 없다.

한국은 과거에 빚진 것이 있으니 많은 국가들이 거부한 명분없는 전쟁에도 당연히 동참하라고 당당히 요구하는 그의 태도에서는 동맹국 국방장관이 아니라 빚을 못 갚으면 살을 잘라가겠다는 셰익스피어의 희극 <베니스의 상인>에 등장하는 유대인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모습이 연상된다. 

지난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증세가 심각한 쪽은 따로 있다. 사담 후세인이 세계 안보를 위해 제거돼야 마땅한 위험한 독재자가 된 것은 불과 수년 전까지 미국이 이란을 견제하기 위해 후세인에게 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았던 사실을 ‘편리하게’ 망각했기에 가능했다. 또 아부 그라이브 수용소의 야만적 고문을 승인했던 럼즈펠드가 회고록에서 이에 대한 반성을 보이지 않은 것은 불편한 지난 일은 기억하지 못하는 독특한 증상의 기억상실증 때문일 것이다. 

부시 행정부 초기 한·미관계가 삐걱거렸던 이유는 한국이 배은망덕한 탓이 아니라, 미 행정부에 럼즈펠드 같은 인식을 가진 ‘네오콘’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사실만은 기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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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 보도에 가끔 등장하는 ‘소식통’이란 단어는 특정 사안에 정통하고 내막을 잘 아는 사람을 의미한다. 그 사안에 직·간접으로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소식통’의 범주에 포함되기 때문에 정확히 누구를 지칭하는 것인지 분명치 않다.

정확성을 생명으로 하는 언론이 두루뭉술한 표현을 쓰는 이유는 정보를 알려준 취재원의 익명성을 보장해주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국 공무원 사회에는 그 소식통을 반드시 가려내 정보 유출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팽배하다. 특히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을 다루는 외교통상부는 기사 내용은 둘째고 발설자 색출이 우선이다.

 ‘워싱턴 외교소식통’을 인용한 보도가 나오면, 서울의 외교부 간부들은 워싱턴 주재 한국대사관 직원이 발설자라고 곧바로 단정한다. 그리곤 담당자를 질책하고 징계한다. 세계의 정치·외교·안보 중심도시 워싱턴에 수백, 수천의 ‘소식통’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깡그리 무시하는 듯하다.

인맥이 밑천인 기자들은 어디를 가든 필사적으로 광범위한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기자의 본능이자 생존의 과제다. 매일 자신만의 네트워크를 가동시켜 사안의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를 쓴다. 워싱턴 특파원 중에 오직 현지 공관 직원만을 취재원으로 삼고 있는 어리숙한 기자는 한 명도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외교부는 ‘워싱턴 외교소식통’은 곧 대사관 직원이라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특파원의 소스는 대사관이 전부일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는 것 같다. 자기 직원들을 불신하고 기자들의 취재노력을 폄훼하는 일차원적 인식 때문에 생사람을 잡는 경우가 허다하다.

두가지만 당부하고 싶다. 애꿎은 해외의 일선 실무자들을 닦달하기 전에, 본부 고위직 간부 중에 특정 언론에 정보를 흘려주고 그 언론이 자신의 바람막이가 되어주기를 기대하는 인사들은 없는지 먼저 살펴봤으면 좋겠다. 또 기사가 엉뚱한 방향으로 흐르는 것을 막으려면 언론 접촉 차단에 앞서 적극적인 소통이 더 효율적이라는 점을 속는 셈치더라도 한번 믿어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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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여년 전 중국이 계급투쟁 대신 경제성장을 목표로 개혁개방을 선언했을 때 미국을 비롯한 서방은 이를 적극 환영하고 지원했다. 비록 마르크스·레닌주의 등 낡은 정치이념과 공산당 영도의 일당체제를 고수하면서 경제적으로만 문을 여는 부분적 사회 개혁이었지만, 중국은 점진적인 변화를 거쳐 궁극적으로는 미국·유럽과 같은 가치를 공유하는 나라로 변모할 것이라고 기대했다.

                               중국 베이징 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신해혁명 100주년 기념식 | 연합뉴스 | 경향신문DB 

중국의 엄청난 경제성장으로 인해 전 세계가 새로운 부를 창출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가 기대했던 결과였다. 하지만 중국은 역사상 일찍이 볼 수 없었던 독특한 정치체제를 유지하면서 서방 민주주의 국가들이 걸었던 것과 전혀 다른 경로로 접어들었다. 그 결과 중국은 세계의 주류 국가들과 다른 가치관과 사회 시스템을 유지한 채 미국과 함께 세계 질서를 좌우하는 양대축으로 성장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중국의 성장에 당혹감을 느끼고 있다. 중국이 갖고 있는 파워가 당혹스러운 것이 아니라 정치적 투명성이나 내적인 성장 없이 외형을 키운 중국이 장차 어떤 행동을 하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점에 당혹스러워한다.

지난해 중국이 센카쿠열도와 남중국해 문제를 놓고 주변국들에 보여준 강경 대처법과 류샤오보의 노벨평화상 수상 문제를 놓고 노르웨이에 경제적 압력을 행사하려는 모습 등을 보고 이 같은 미국의 우려는 더욱 심각해졌다.

중국은 다른 나라와 평화롭게 공존하며 대국으로 성장한다는 ‘화평굴기(和平 起)’를 내세우고 있다.

그러나 미국은 중국에 대해 ‘강호(江湖)에서 금기시하는 암수(暗數)도 서슴지 않는 무림의 새로운 강자’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지난 19일 백악관 미·중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중국에 인권, 법치, 언론자유 등을 강하게 요구한 것은 단지 도덕적 기준 때문만은 아니다. 사회적 복합성, 정치적 다원화, 투명한 법치를 갖추지 않은 중국의 부상은 전 세계적 위협인 동시에 미국에도 심각한 도전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이 미국과 가치체계를 공유하지 않는 존재로 남아 있는 한 이 같은 우려는 사라지지 않는다.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이 이번 정상회담에서 처음으로 중국의 인권문제를 인정하는 발언을 한 것이 미국산 여객기 수백대를 사들이고 수백억달러의 경제협력을 약속한 것보다 이번 정상회담의 가장 큰 성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문제는 중국 스스로도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현재의 시스템으로는 경제성장이나 사회적 통제력을 무한정 유지할 수 없다는 점을 중국 지도부도 알고 있다. 하지만 정치·사회적으로 완전히 개방된 시스템으로 전환하려는 시도와 함께 13억 인구의 거대 국가를 통치할 수 있는 장악력은 사라지고 엄청난 혼란을 겪을 수밖에 없다는 점도 인식하고 있다. 언젠가는 끊기고 말 길을 달리면서도 방향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이 중국의 현 지도부와 차기 권력이 갖고 있는 딜레마다.

지난해 세계 모든 나라들은 미·중 양국이 사사건건 갈등을 빚는 모습을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지켜봤다. 이번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두 거인은 ‘앞으로 싸우지 않고 지내겠다’는 메시지를 보내 세계를 안심시키는 데 주력했다. 그러나 ‘중국은 장차 어떤 나라가 될 것인가’라는 궁극적 질문에는 여전히 누구도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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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9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긴급회의에서 러시아는 과연 한국의 입장을 지지했을까.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21일 국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러시아가 성명서 채택 과정에서 북한 규탄에 동참한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특정국(중국)’의 반대로 이 성명이 채택되지는 못했다고 설명했다.

외교부에 방문한 러시아 대사

하지만 안보리 논의 과정에서 러시아가 보인 태도는 장관의 설명과 다르다. 러시아는 성명 초안에 연평도 포격사건을 언급하지 않은 채 한국의 사격훈련과 이에 대한 북한의 반발로 무력충돌 위험성이 있다고 지적하고 양측의 자제를 촉구했다.

이 초안은 각국의 반발에 부딪혀 무산됐다. 영국은 “11월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건을 규탄한다”는 내용이 포함된 수정안을 제시했다. 그러자 러시아는 ‘북한’과 ‘연평도’를 빼고 ‘11월23일 사건’으로 할 것을 주장했다.

북한의 연평도 공격에 한국이 대응사격을 한 전후의 사정을 살피지 않고 공격 주체도 없이 ‘11월23일 사건’이라고 뭉뚱그려 놓으면 한국에도 책임이 있다는 의미가 된다. 만약 이 같은 문안이 들어간 의장성명이 나왔을 때 국내 반응이 어땠을지를 상상해보자. 그래도 러시아가 북한 규탄에 동참했다고 주장할 수 있을지 의문스럽다.

러시아는 연평도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분명한 어조로 북한을 비난했다. 그러나 안보리에서는 그러지 않았다. 러시아가 안보리에서 주장한 것은 연평도 사건에 대한 한국의 대응과 북한의 반발로 인해 빚어진 지금의 한반도 긴장상태가 우려스럽다는 것뿐이다.
러시아는 한반도 문제에 대해 자신들만의 독특한 시각과 해법을 갖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 같은 입장을 가진 러시아에 대한 한국의 외교는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것이며, 이번 한국의 사격훈련 강행으로 그나마 러시아와 공유하고 있던 공통인식이 많이 훼손됐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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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_1R|cfile10.uf@20337E484EAA4C8014D880.jpg|width="300" height="402.06185567010306" alt="" filename="cfile10.uf@20337E484EAA4C8014D880.jpg" filemime=""|두만강 상류 중국 지역에서 바라본 북한 양강도 대홍단군 시골 마을 | 경향DB_##]시인 황지우는 세상에서 기다리는 것처럼 가슴 아리는 일이 없다고 했지만, 그건 아마도 간절한 바람 앞에 기다리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고 기다려도 온다는 보장이 없다고 느낄 때 이야기일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통일이 머지않았다”며 북한 정권이 붕괴하기를 더 기다리겠다고 하니, 아직 가슴이 아릴 정도는 아닌 것 같다. 그렇다고 특단의 복안이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저 기다리면 무너지고 항복할 것이라는 확신이 있는 모양이다. 아니면 골치아픈 북한 문제와 씨름하기 싫어 피하기만 한 오랜 세월에 익숙해졌는지도 모른다. 

북한에 대한 한·미의 기다림은 오랜 전통과 뿌리가 있다. 냉전 구도가 해체되고 동구권 공산국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는 이른바 ‘북방외교’라는 발상의 전환을 시도했다. 탈냉전적 국제질서에 맞는 외교전략을 수립하자는 취지로 소련·중국과 수교를 하고 한국 외교는 새로운 장을 열었다. 

그러나 북방외교의 목적 중 하나는 북한을 국제적으로 고립시키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에 한국은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는 것은 결사적으로 막았다. 한반도에만큼은 냉전구도를 고착화시키는 ‘반쪽짜리 탈냉전 외교’였던 셈이다. 동구권처럼 북한도 조만간 무너질 것이라는 기대감에서 비롯된, 긴 기다림의 시작이기도 했다. 

김영삼 정부는 임기 초반 미전향 장기수 북송, 대북 쌀지원 등의 유화적 대북정책을 펴다가 북한의 호전적 반응에 이내 냉담해졌다. 북·미가 핵협상을 벌이는 동안 정부는 한국이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렸다. 미국 역시 제네바 합의로 북한 핵문제를 ‘동결’시키고 궁극적 해결은 10년 정도 뒤로 밀어놓았다. 뒷날 빌 클린턴 행정부 인사들이 고백한 것처럼 북한이 그 기간 안에 붕괴할 것으로 믿고 기다린 것이다. 

조지 W 부시 행정부 역시 북한 문제를 진지하게 다루지 않았다. 그러다 북한이 핵실험을 감행하자 얼마 안 남은 임기 동안 외교적 업적을 만들 요량으로 북한과 대화를 시작했다. 당시의 단계적 접근법은 쉬운 문제부터 풀자는 의도였기 때문에 어려운 협상은 모두 뒤로 돌렸다. 북한과 쉬운 합의를 거듭하면서 이를 이행하다 보면 언젠가 북한에 천재지변이 생겨 일거에 수가 날 것이라는 기다림이 여기에도 작용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명박 정부와 뜻이 맞아 아예 노골적으로 기다리고 있다. 북한이 비핵화에 진정성을 보이고 올바른 선택을 해야 대화한다는 것이다. 진정성이니, 올바름이니 하는 말들은 외교 용어가 아니다. 따라서 ‘전략적 인내’는 정책이 아니라 단지 북한을 바라보는 관점이나 태도일 뿐이다. 상대가 결혼하겠다는 진심을 보여야 함께 차 마시고 영화 보러 갈 수 있다는 태도나 마찬가지다. 

한·미·일은 중국 때문에 일이 안된다며 중국을 탓한다. 중국의 어정쩡한 태도가 밉기는 하지만 한국을 비롯해 나머지 국가들은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하게 북한 문제를 고민해봤는지 묻고 싶다. 

세계 최강대국들이 머리를 맞대고도 북한 문제를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 감 떨어지길 기다리는 것 말고, 진지한 정책을 갖고 고통스러운 과정을 감내하면서 진짜 외교를 해본 적이 한 번이라도 있는가. 지금 감이 떨어진다 해도 누구의 입으로 떨어질지는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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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 논설위원


한·중 수교를 앞둔 1992년 초다. 대만정부 초청으로 타이베이를 방문한 외교부 출입기자단은 현지 고위 관리들과 정치인들을 잇달아 만났다. 

이들에게 했던 질문이다. “대만은 중국 본토에 엄청난 투자와 교역을 하고 있다”는 지적과 함께 “한국이 미래의 거대시장인 중국 본토와 수교를 하지 않고 경제발전을 계속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들은 “대만이 막대한 투자로 조만간 중국을 실질적으로 통일할 것”이라며 “그때 한국이 본격적으로 투자하면 된다”고 대답했다.

이제 그들의 야무졌던 꿈은 흔적 없이 사라져버렸다. 중국은 대만을 한낱 1개 ‘성(省)’ 정도로 간주하는 반면 대만은 제발 ‘성’이라는 호칭만은 붙이지 말아달라고 애소하는 형편이다. 

기자의 눈에 비친 한·중관계도 마찬가지다. 수교 초기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두 나라의 관계는 좋기만 했다. 2대 황병태 주중대사가 96년 2월 이임할 때 장쩌민 당시 국가주석이 환송연까지 열어주었을 정도로 중국은 한국을 대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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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지금 한·중관계는 중국이 헛기침이라도 할라치면 한국이 경기(驚氣)를 일으킬 만큼 많이 바뀌었다. 지난 주말 긴급 수석대표 6자회담 개최 제의가 중국이 생각하는 한국의 무게를 짐작하게 한다. 
이명박 대통령이 방한한 다이빙궈 부총리에게 부정적 의사를 내비쳤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외교부는 자신들의 중대발표 예고대로 수석대표회동 개최를 제의했다. 다이빙궈의 대통령 면담은 중국에 요식행위였던 셈이다. 이 대통령-다이빙궈 부총리 대화에 비공개 내용이 없다면 중국의 외교적 모욕으로 볼 수밖에 없다. 

다이빙궈 방한 ‘외교적 모욕’

왜 이렇게 됐을까. 두말할 것 없이 중국의 정치·경제적 위상이 커진 것이 근본적 이유다. 그러나 중국의 부상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부분이 있다. 중국의 발전에 따라 응당 우리의 대중 외교도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어야 할 텐데 우리는 여전히 단선적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 데도 원인이 있다. 

우선 우리는 한·중관계를 한·미관계 속에서 바라보고 있다. 즉 미국과 중국을 저울의 양 끝에 놓고 어느 쪽이 무거운지를 버릇처럼 계산해왔다. 노무현 정부의 균형자론을 둘러싸고 벌어진 논란이 좋은 예다. 친미(親美)면 반중(反中), 반중이면 친미라는 단순 논리에 따라 미국이나 중국이 한마디 할 때마다 깜짝 놀랐다. 

우리는 남북관계의 시각에서 중국을 인식한다. 그런데 다분히 2중적이다. 북한과 중국의 혈맹관계에 촉각을 곤두세우면서 또 한편으로 중국의 긍정적 역할을 주문하는 것이다. 중국은 이를 이용해 외교적 지렛대로 마음껏 활용해왔다. 6자회담에서 중국이 의장국이라는 감투를 쓰고 한 역할을 되짚어보면 실상을 알 수 있다. 

우리는 경제측면에서 중국을 바라본다. 다른 어떤 나라와도 비교할 수 없다. 중국의 경제적 중요성을 감안할 때 절대적 관심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긴 하지만 우리에게 외교적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천안함 사건과 연평도 사건으로 표면화한 한·중 간의 불편한 관계는 수교 18년을 지나면서 겪을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성장통일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도 우리가 미국, 북한, 경제라는 안경을 통해서 중국을 바라본다면 바람직한 한·중관계를 세울 수 없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중국은 미국이나 일본 유럽 등 다른 나라와 다른 외교행태를 보인다는 점에서 새로운 한·중관계 구축이 쉽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포기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전 지구적 시야에서 볼 필요

정답을 찾지 못할 경우 최선의 해결책은 역시 정도(正道)를 걷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시야를 넓혀 중국을 미국, 북한, 경제만이 아니라 전 지구적 시야에서 볼 필요가 있다. 

인도를 예로 들 수 있다. 미국, 일본 등 많은 나라들이 중국을 의식해 인도를 경제적 측면뿐 아니라 정치적 측면에서 관계 강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인도를 수출시장이나 요가의 나라 정도로밖에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인도 전문가가 없는 것은 물론이다. 이와 함께 시민단체 등 중국 내부의 다양한 세력들과 접촉면을 넓히는 것은 중요하다.

인권과 인류보편적 가치에 대해서 명확한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우리가 추구해야 할 자세다. 당장은 중국과 불편할 수 있지만 장기적 시각에서 우리가 지향해야 할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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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무역을 통한 경제적 이득을 고려하긴 했지만 애초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시동을 걸게 한 것은 전략적 판단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커지는 중국에 대한 과도한 무역 의존을 벗어나고 군사동맹을 축으로 한 미국과의 관계를 경제적 측면까지 확대해 입체화시키기 위해 추진한 것이 한·미 FTA다. 

<경향신문DB>

하지만 지금 한·미 FTA는 정치적 이유로 발목이 잡혀 재협상을 해야 하는 부메랑을 맞았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을 갖고 FTA를 타결지으려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시도는 실패했다. 한국 정부는 미국이 제시한 시간과 형식에 맞춰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고 FTA를 타결지을 경우 국내 정치적 후폭풍을 감내하기 어렵다는 판단을 내린 듯하다.

업계를 중심으로 “미국이 요구하는 자동차 조항을 다 양보해도 큰 영향이 없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것을 보면 한국이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은 것은 경제적인 손익 계산보다 정치적 파장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하지만 FTA 실패로 오바마는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에 참패하고 한국을 찾아온 오바마는 한·미 FTA를 해결함으로써 FTA에 긍정적인 공화당과 타협할 수 있는 통로를 확보하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이 계획이 무산되면서 오바마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에까지 공격을 받고 국정운영 능력을 거의 상실한 상태다. 

가장 큰 잘못은 오바마에게 있다. 대선 후보 시절 한·미 FTA 반대 입장을 보이던 오바마는 대통령이 된 이후 이를 지지하는 입장으로 변했다. 상황에 따라 정치적으로 도움이 되는 입장을 취한 것이다. 이 때문에 ‘더 이상 좋을 수 없다’던 한·미 관계는 처음으로 엇박자를 냈다. 그동안 한국의 모든 요구를 다 들어준 오바마로서는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와주지 않은 이명박 대통령에 대해 배신감을 느꼈을 법하다. 실제로 미 행정부 내에서는 한·미 FTA 불발 이후 한국에 대한 곱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인사가 상당수라는 전언이다. 

한국도 미국을 다시 보게 됐다. ‘린치핀’ 같은 동맹국이라고 하지만 미국도 어느 순간 자신의 이익을 위해 협정문에 서명까지 한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없던 일로 할 수 있음을 국민들은 똑똑히 봤다. 

이렇게 양국은 FTA 논의 과정에서 국내 정치적으로, 외교적으로 서로에게 상처를 주고 있다. FTA 재협상이 길어질수록 양국 관계의 골은 깊게 파일 수밖에 없다. 한·미 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추진한 FTA가 오히려 동맹 관계에 흠집을 내는 ‘위험 요소’가 돼버린 현실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지금부터가 문제다. 한국이 농업을 포함한 모든 분야의 무역에서 관세를 전면 철폐하는 환태평양 경제동반자협정(TPP)에 가입함으로써 쇠고기 개방에 합의했다는 이야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다음 협상에서 일사천리로 도장 찍을 일만 남았다는 설도 있다. 

꼼수와 밀실협상으로 국민들의 눈을 피할 수는 없다. 투명하고 공정한 협상을 통해 합의점을 찾는 노력이 필요하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합의에 실패하거나 국민적 동의를 얻는 데 실패한다면 현실을 겸허히 받아들이는 것이 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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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지금 핵폐기물 처리문제, 핵무기 전용 가능성 없이 핵연료를 재활용하는 문제, 원전수출 걸림돌 제거 등 핵 이용에 관한 여러가지 고민을 안고 있다. 그런데 한국 원자력계의 설명을 인용한 국내 언론보도에 따르면 이 같은 문제는 파이로프로세싱(사용후 핵연료의 건식처리) 방식을 도입하면 일거에 해결된다. 2014년 3월로 만료되는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협상에서 반드시 이 기술이 허용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같은 논리전개 과정에서 말하지 않은 ‘불편한 진실’이 있다. 2007년 이후 미국에서 발표된 논문들과 전문가들의 견해에 따르면 파이로프로세싱은 여전히 핵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이 있는 재처리 방식 중 하나다. 만약 허용한다 해도 국제 비확산체제를 흔드는 협정이 미국 의회 비준을 통과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한국에서는 파이로프로세싱으로 핵폐기물을 20분의 1로 줄일 수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게 가능하려면 파이로프로세싱 외에도 고속로라는 새로운 원자로가 필요하다. 세계 각국이 1000억달러 이상을 투입해 50년간 연구하고도 아직 성공하지 못한 기술이다. 미국·일본도 고속로 완성을 2050년 이후로 미뤘다. 또 고속로가 개발돼도 이미 쌓인 1만t 이상의 핵폐기물을 처리해 원료로 태우려면 엄청나게 많은 고속로를 설치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같은 설명은 누구도 자세히 하지 않는다. 

2016년에 핵폐기물이 포화상태가 된다는 주장에도 다른 견해가 있다. 밀집저장하거나 원전부지에 임시 저장시설을 더 지을 경우 그보다 십수년은 버틴다는 것이다. 우라늄 가격이 급격히 오르기 때문에 핵연료 재활용이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실제 핵연료 제조과정에서 우라늄 단가가 차지하는 비중은 미미한 수준이어서 큰 변수가 되지 않는다. 최소 몇십년 동안은 재활용하는 것보다 우라늄 연료를 사다 쓰는 게 훨씬 경제적이다. 

원전 수출에 불리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약하다. 현재 원전을 수출하면서 재처리 기술을 함께 파는 나라는 없다. 지금처럼 미국과의 합작으로 원전을 수출하는 것이 사고 위험부담을 줄이고 시장개척에도 유리하다는 견해도 있다. 그럼에도 앞으로 수십조원의 국민세금이 들어가야 하고 효율성도 불투명한 미완의 기술인 파이로프로세싱에만 목을 매는 이유가 궁금하다.

만일 ‘핵주권’ 차원에서 원하는 것이라면 차라리 재처리를 요구하는 게 낫겠다. 더 이상 고압적인 태도로 일일이 간섭하지 말고 자유롭게 원자력을 연구·개발할 수 있는 권리를 달라고 하는 편이 솔직해 보인다. 1970년대 한국이 핵개발을 시도한 ‘전과’가 있긴 하지만 모든 나라가 핵무기를 원했던 냉전시대에, 그것도 북한과 대치하고 있었던 한국이 잠깐 핵개발을 꿈꿨다고 해서 지금까지 발목을 잡힐 이유는 되지 못한다고 항변할 수도 있다. 더구나 한국이 PSI(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와 같은 미국 주도 비확산 체제에 적극 참여하고 있고 미국도 한국을 ‘린치핀’과 같은 동맹국이라고 하니, 지금처럼 한·미 관계가 좋을 때가 아니면 언제 또 그런 요구를 하겠는가. 그럴 배짱이 없다면 당면한 문제 해결을 위해 재처리 외의 다른 방법도 고민해 봐야 한다. 파이로프로세싱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파이로프로세싱이 아니면 안된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설득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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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양국 국방장관이 지난 8일 워싱턴에서 열린 제42차 한·미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발표한 공동성명에는 확장억제의 실효성 제고를 위해 ‘확장억제 정책위원회’를 제도화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한·미 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내용이 확장억제의 수단으로 미국의 핵우산을 명문화한 ‘선언’이었다면, 이번 합의는 북한의 핵 위협이 실제 상황으로 발생했을 때 핵무기로 대응하는 행동 계획을 구체화한 것이다.
 
북한이 영변 핵단지 재처리시설 재가동 통보한날 평양거리를 궤도 차량이 오가고 있다 | 2008.09.25 | 로이터 연합뉴스 | 경향DB


확장억제력 강화는 국민의 안보불안 해소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줄 수 있다. 하지만 핵 억제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는 것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추구하고 있는 ‘핵 없는 세상’과는 정면으로 충돌하는 논리다. 북한 핵을 제어하기 위해 한국에 강화된 핵우산을 씌움으로써 북한의 핵무기 보유를 기정사실화하고 한반도에서의 핵경쟁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모든 국가는 평화적 핵 이용의 권리가 있고, 핵 보유국은 핵 군축을 해야 하며, 핵 비보유국은 핵무기 보유의 야망을 버려야 한다는 원칙이 한반도에는 적용되지 않고 있다. 또 전 세계적인 핵 군축을 지지하면서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을 요구하는 한국 정부의 딜레마도 지속되고 있다.

북한과의 외교적 프로세스를 통해 북핵을 폐기한다는 핵 협상의 측면에서도 확장억제력 강화는 역주행이다. 한반도에서 북한의 핵무기와 미국의 핵우산이 서로 맞서고 있는 양상을 구체화하기 때문이다.

2008년 6자회담이 북한의 핵프로그램을 신고·검증하는 단계를 넘지 못하고 주저앉게 된 것도 북한이 9·19 공동성명에 입각한 ‘조선반도(한반도) 비핵화’를 내세워 남북한 동시사찰을 주장했기 때문이다. 핵포기는 북한에만 부여된 의무가 아니며 미국도 한국에 제공하는 핵우산을 철폐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만약 6자회담 프로세스가 조만간 재개되면(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이지만) 북한은 핵우산 문제를 핵심적 이슈로 전면에 내세울 수 있다. 한발 더 나아가 미국의 핵우산 제공의 근거가 되는 한·미방위공약의 폐기를 조건으로 내걸지도 모른다. 이는 북한이 핵을 폐기하지 않아도 될 확실한 명분 하나를 추가해 줌으로써 가뜩이나 어려운 ‘협상을 통한 핵폐기’를 더욱 요원하게 만드는 요인이 된다.

어쩌면 한·미는 북핵에 관한 한 상대와 필요한 것을 교환하는 형태의 협상을 이미 포기했는지도 모른다. 북한과 협상이 가능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뭔가를 양보하고 싶은 생각도 없어 보인다. 대화의 문이 열려 있다고 주장하지만, 이는 북한에는 옵션이 될 수 없다. ‘대화와 제재의 투트랙 기조’란 백기를 들고 투항하든지, 아니면 ‘먹을 수 없는’ 핵을 끌어안고 굶어 죽든지 둘 중의 하나를 고르라는 말이기 때문이다.

어차피 북한 핵은 협상으로 풀기 힘든 단계에 와 있다. 북한 체제가 붕괴되거나 정권이 교체되는 과정에서 예기치 않은 변화가 발생하는 일이 아니고서는 북핵 문제를 외교로 해결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번 SCM의 합의는 한·미가 이 같은 ‘불편한 진실’을 솔직히 인정한 결과물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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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근 | 상하이 동화대 교수·국제관계학 woosukeun@hanmail.net


중국의 ‘17기 5중 전회’가 지난 18일 폐막되었다.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폐막 당일의 전체회의에서 시진핑(習近平) 국가부주석을 당 중앙군사위 부주석에 선출하였다. 중국에서 군사위 부주석은 국가 지도자가 되려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이다.

이로써 시진핑은 2012년 가을 제18차 당 대회를 통해 마오쩌둥(毛澤東), 덩샤오핑(鄧小平), 장쩌민(江澤民) 및 후진타오(胡錦濤) 주석의 뒤를 잇는 중국의 제5세대 지도자로 등극하게 되며, 이변이 없는 한 10년 동안 거대한 ‘중국호’의 키를 거머쥐게 된다.



한국에서는 이른바 ‘친한파’인 시진핑의 집권으로 한·중관계도 호전될 것이라는 기대섞인 전망이 대두되고 있다. 물론 그렇게 되어야 하고 또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희망한다. 하지만 아무리 친한파 지도자의 등극이라 하더라도 한국에 대한 우호적 정책 전개가 여의치 않은 분위기 속에서는 한·중관계의 해빙과 호전 등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시진핑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 국가의 수장으로 등극하게 되었지만, 그 앞날은 순탄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최대 규모라는 화려한 수식어의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하기조차 힘들 정도로 엄청난 국내 및 대외 문제, 그리고 국경 문제 등이 마치 고도비만의 합병증 같이 똬리를 틀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이미 잘 알려진 빈부격차, 농민공문제, 환경문제, 부정부패 및 금융문제 등과 같은 중국의 국내 문제만 하더라도 어느 것 하나 해결이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그런데 더 심각한 것은 농민공문제가 농민공 자녀문제를 파생시키는 등 이들 문제는 또 다른 부차적인 문제들을 양산하며 더 꼬이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의 차기 지도자로 결정된 시진핑


그뿐만이 아니다. 대외문제 또한 국제 사회에서 중국의 부상이 지속될수록 그에 못지않게 경계와 견제 전선이 합종연횡으로 강화되고 있다. 또한 네팔, 인도, 몽골, 타지키스탄 등 15개국과 접하고 있는 국경문제도 아직까지 영토획정조차 이뤄지지 못한 곳이 있을 만큼 잠재적 활화산이 아닐 수 없다. 중국 내 소수민족 문제도 간과할 수 없다.


이처럼 첩첩산중의 난제 속에 놓인 중국이 굳이 한국과의 경색국면을 지속하거나 또 다른 대립전선을 구축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바로 이러한 사실은 한·중관계에서 우리에게 최소한 다음과 같은 점을 시사한다. 

즉, 우리는 수많은 난제를 지닌 중국에 또 다른 난제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난제가 되어주지 않아 고맙기만 한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수많은 국내 난제들로 정신이 없는 중국임을 고려할 때, 한·중관계는 많은 부분 한국이 주도하기 나름이라는 판단이 든다. 시진핑 부주석이 집권 후에도 ‘친한파’라 불리기를 바란다면, 한국은 시진핑을 도와 그가 계획한 정책 전개에 적합한 환경을 제공해 줄 필요도 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한·중관계는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이 또한 우리에 의해 주도되고 빚어진 바 적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한·중관계는 중국에 대한 낡은 관념에서 탈피하고 중국에 대한 우리 한국만의 고유한 관점을 정립하고, 새로이 접근해 나가지 않는 한 아무리 우호적 친한파 인사가 집권한들 계속해서 어긋나고 균열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 글은 우수근 교수가 경향신문 10월 20일자에 기고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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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지금 새로 태어나는 아이들로 인한 ‘신생 인구폭탄’이 아니라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노인층에 따른 ‘노인 인구폭탄’을 맞고 있다고 미국의 정치외교 전문지 포린폴리시(FP)가 11월호 최신 기고문에서 지적했다.

노인 인구의 증가는 정치, 사회, 경제 전반에 큰 변화를 가져올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기존에 우리의 선입견 중 많은 부분이 사실과 다르다는 지적이다.

기고문을 쓴 필립 롱맨은 ‘뉴어메리칸’재단의 연구원이자 출생률 문제를 다룬 책 ‘빈 요람’(Empty cradle)의 저자이다.






■“전세계는 지금 노인 인구폭탄을 안고 있다”

“어떤 대책을 마련하더라도 1970~80년대에 수억명의 인구가 기아로 사망할 것”이라고 폴 에를리히는 1968년 저서 ‘인구폭탄’을 통해 주장한 바 있다. 하지만 이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대신 세계의 인구증가율은 1960년대 2%대에서 현재 1%대로 절반으로 줄어들었고, 많은 나라에서는 인구감소마저 걱정하고 있다. 이제 인구학자들의 관심 초점은 인구규모 축소다.

향후 40년간 인구규모가 현재 69억명에서 91억명으로 증가할 것으로 유엔에서는 전망하는데, 이는 출생률의 증가가 아니라 노인인구의 증가에 따른 것이다. 전세계 5세이하 인구의 숫자는 21세기 중반에는 4900만명으로 줄어드는 반면 60세이상 노인인구의 숫자는 12억명으로 늘어날 전망이다.

이는 수명연장의 효과이기도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베이비붐 세대의 노화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이다. 결과적으로 전 세계는 과거의 급속한 인구팽창만큼이나 급격한 인구규모 축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러시아의 경우에는 1991년 대비 인구규모가 700만명 감소했고, 일본의 경우 현재의 저출산 추세가 계속된다면 2959년에 마지막 아기가 태어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과학전문지 ‘네이처’가 최근 게재한 논문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는 2070년에 인구축소가 시작된다고 한다. 2150년이면 세계인구는 현재의 절반 수준으로 감소할 것으로 유엔은 내다보고 있다.

■“노화는 단지 선진국의 문제가 아니다”

선진국에서만 고령화의 문제를 겪게 될 것이라는 선입견이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전세계 59개국이 현재 인구수준을 유지하기에 부족한 출생률을 보이고 있으며, 이중 18개국은 유엔이 ‘개발도상국’으로 분류하고 있는 나라다.

사실 여러 개도국이 빠른 속도로 고령화사회에 진입하고 있다. 이란의 경우 1970년대에 여성 1인당 7명을 출산했으나, 현재는 1인당 출산율이 1.74명에 불과하다. 현재와 비교할 때 이란에서 60세 이상 인구의 비중은 현재 7.1%에서 28.1%로 큰 폭으로 증가할 전망이다. 이는 같은 기간 서유럽 국가들의 고령화 수준을 넘어서는 것이다. 하지만 여타 선진국들과 달리 이란, 쿠바, 크로아티아 등의 국가는 노령화 이전에 충분한 부를 축적하기 어렵다.

이처럼 경제수준과 상관없이 전세계적으로 저출산이 나타나게 되는 원인으로는 ‘도시화’가 꼽힌다. 전세계 인구 절반 가량이 현재 도시지역에서 거주하고 있는데, 생활비용이 비싼 도시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또다른 이유는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와 사회보장제도의 발달이다. 국가에서 연금을 보장함에 따라 많은 아이를 낳아 자신의 노후를 의지하는 일이 줄어들기 때문이다.

■“인구감소로 재앙을 맞게되는 지역에는 아시아도 포함”

서방보다 아시아 지역의 전망이 훨씬 좋지 않다. 일본의 경우는 일찌감치 고령화사회로 진입했으며, 한국과 대만은 15년 뒤 인구감소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심각한 인구감소에 직면한 싱가포르는 첫째 또는 둘째를 출산한 여성에게 최고 3000달러의 ‘베이비 보너스’를 지급하고 있으며, 세번째와 네번째 아이를 낳을 경우 4500달러를 선물로 안기고 있다. 중국의 경우에도 조부모 4명, 부모 2명, 아이 1명의 사회로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아시아 지역은 인구가 많음에도 마치 초기 미국의 서부에서나 벌어졌던 심각한 성비 불균형이 벌어지고 있다. 중국은 여아에 대한 선택적 낙태로 인해 현재 남아 숫자가 여아 100명당 16명이 더 많다. 인도 등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발견된다. 짝을 찾지 못한 남성들의 리비도는 다른 배출 방법을 찾게 될 것이다.


전체 인구 중 65세 이상 인구가 차지하는 비율(국가 랭킹)




■“나이들어서도 더 오래 일하면 된다는 것, 건강할 때나 가능”

전문지 ‘헬스 어페어스’에 실린 랜드연구소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미국의 50~65세 인구 중 40% 이상이 걷기나 계단 오르기 등 일상적인 활동이 어려운 수준이다. 이는 10년 전보다 더 나빠진 것이다. 아마도 노인인구의 건강 상태는 갈수록 악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단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1995~2000년에 성인비만 인구는 2억명에서 3억명으로 증가했는데 이중 1억1500만명이 개도국에 살고 있다.

과체중 인구는 전세계 10억명으로 추산되는데, 이에 따라 심장병이나 당뇨병 등 성인질병의 위협은 갈수록 늘어난다. 패스트푸드 문화와 자동차, TV와 컴퓨터 등의 문명의 이기가 이같은 부작용을 가져오기도 한 것이다.

■“고령화 세계는 평화로울 것이란 예상은 틀렸다”

마크 하스와 같은 학자들은 ‘고령화 시대의 평화’가 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논리는 다음과 같다.

“아이를 하나만 둔 가정에서는 군 복무제에 대해 반발하는 움직임이 증가할 것이고, 군 복무 중 사상에 대해서도 쉬쉬하고 참지 않게 될 것이다. 연금과 의료비용의 증가는 군비증강을 어렵게 할 것이다. 중년과 노인인구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위험을 감수하는 행위보다는 실용적이고 국내사안에 대해 좀 더 촛점을 맞추게 될 것이고,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에 의해 움직이는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일본은 이와 같은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며, ‘68혁명’에 참여했던 유럽의 베이비붐 세대의 현재 정치, 사회 어젠다는 이전에 비해 덜 급진적이다.”

하지만 이같은 장밋빛 시나리오에는 몇가지 문제가 있다. 실제로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베이비붐’ 세대 이후 메아리와 같은 인구증가 붐이 나타날 수 있어서다. 특히 분쟁국가에서 그렇다.

이란의 경우 2020년 15~24세 인구의 숫자는 2005년 대비 34% 감소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2020~2035년에는 또다시 34% 증가로 돌아설 것으로 예상된다. 리비아, 파키스탄 등 많은 무슬림 국가들에서도 이같은 인구 증가가 발생할 것이다. 중앙아시아 국가들도 2020년대에 ‘에코 붐’이나타날 것인데, 이 지역이 몽골과 페르시아, 러시아와 영국 등 여러 열강이 자원을 두고 씨름을 벌였던 지역임을 감안하면 그 영향이 적지 않을 것이다. 페루와 볼리비아에서도 이같은 인구증가가 예고되고 있다.

이는 단지 인구의 숫자와 관계된 문제 뿐만이 아니다. 그간 유럽 역사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들은 인구가 증가에서 감소세로 전환하는 기간에 나타났다.

오스왈드 스펭글러의 <서구의 몰락>, 로스롭 스토다르트의 <백인인 우월한 세계에서 유색인종의 부흥> 등의 책과 ‘아리안’족의 인구감소를 우려한 우생학자들의 저서는 유럽에서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를 촉발시켰다.

이전 세대의 파시즘이 역사 속으로 사라져가는 지금, 유럽은 무슬림 이민자의 증가에 따른 불안감에 직면했다. 인도에서는 힌두 내셔널리즘이 부흥하고 있으며, 미국에서는 ‘그라운드 제로’ 자리 인근에 이슬람 관련 시설을 건립하는 문제를 두고 논란이 일었다.

■“고령화 사회가 꼭 빈곤할 것이라는 생각은 버리자”

한 사회의 ‘부’(富)와 인구는 순환 관계에 있다. 출산율의 감소와 노동자의 고령화는 여성의 노동시장 참여와 자녀 세대에 대한 더 많은 교육투자를 가능하게 한다. 다른 모든 조건에서 평등하다면 이 두 요소는 경제발전을 촉진한다. 아시아 국가 중에서 일본은 이같은 단계를 1960~70년대에 지나왔으며, 현재는 중국이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낮은 출산율이 지속될 경우 노동가능한 인구가 감소하고, 이들에게 노후를 의존하는 인구의 숫자가 증가하게 된다. 젊은세대가 감소하는 것은 그만큼 소비시장이 축소되는 것으로 이어진다. 나이들어가는 노동자들은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것보다는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는 데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인다. 아마도 더 많은 대출을 통해 시장에 현금을 늘려서 거품을 유지하려다가 거품 붕괴를 보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해법은, 여성이 일자리와 출산, 양육을 병행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개선하는 것이다. 하지만 많은 나라에서 이같은 ‘스웨덴 식’ 해법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다.

이같은 방식과 정반대의 해법은 여성에게 전통적인 출산과 양육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지만, 원리주의자들에게나 수용 가능한 것이다. 자녀를 ‘짐’으로 여기기 보다는 미래를 위한 자산으로 여기는 사고의 전환이 필요한 요즘이다.


정리 국제부 최민영 기자 min@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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