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지에 몰린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정부가 화학무기 사용을 경고하고 나섬에 따라 시리아 사태가 최악의 국면을 맞이하고 있다. 시리아 정부는 지난 23일 화학무기 보유 사실을 공식 인정하면서 ‘외부의 공격이 있을 경우’ 이를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정권붕괴라는 극한상황에 몰릴 경우 군용기를 동원한 화학탄 투하를 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현 대통령의 아버지 하페즈 알 아사드는 1982년 중부 하마에서 소요가 발생하자 시안화수소탄을 동원해 주민 2만여명을 학살한 바 있다. 국제사회의 우려는 시리아 내부보다는 외부에 집중돼 있다. 정국이 통제불능 상태에 빠진다면 반이스라엘 투쟁을 벌이고 있는 시아파 헤즈볼라의 손에 화학무기가 넘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벌써부터 공격 가능성을 흘리고 있다. 알 아사드 정권을 적극 비호해온 러시아까지 사용금지를 촉구하고 나선 것은 시리아 화학무기의 폭발성이 그만큼 크기 때문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이 의회에서 연설한 뒤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경향신문DB)


우리가 그동안 국제사회의 적극적인 개입을 촉구한 것은 무엇보다 상시적으로 주민학살을 자행하는 알 아사드 정부의 축출 외에는 해법이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지난 16개월 동안 어떠한 합의도 도출하지 못한 채 오히려 사태악화를 방관 또는 조장하고 있다. 그 사이 민간인 피해는 1만명을 훌쩍 넘어섰다. 미국과 서방은 러시아와 중국의 반발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채택이 두차례나 실패한 뒤 사실상 평화적, 외교적 해법을 포기했다. 이후 카타르와 사우디아라비아 등 아랍권 친미국가들이 나서 반군 측에 무기를 공급하는 대리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은 통신장비와 자금을 지원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국제사회의 편법적, 우회적 개입은 사태의 장기화를 부를 뿐이다. 


알 아사드 정부가 화학무기 카드를 꺼내든 것은 서방의 직간접적인 지원으로 역량이 강화된 반군 측이 수도 다마스쿠스까지 위협하고 있는 전황과 무관치 않다. 지난주에는 다마스쿠스 시내 1급보안시설인 국가보안청이 자살폭탄테러 공격을 받았다. 서방 언론에서는 알 아사드 정권의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낙관론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번에 처음 존재가 확인된 시리아 화학무기는 사태의 조속한 해결이 결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일깨워주었을 뿐이다. 국제사회가 복잡다단한 시리아 안팎의 위험을 일거에 제거할 방법은 없다. 하지만 적어도 완화시키는 노력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안보리를 중심으로 더 큰 불행을 막기 위한 합의 도출에 재차 나서야 할 것이다.


시리아 정부의 유혈진압을 피해 터키로 건너간 한 시리아 남성이 야일라다기 난민캠프에서 아이들과 함께 바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비난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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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7월20일 이슬람세계는 일제히 금식기간인 라마단에 돌입했다. 15억 무슬림들은 한달간 새벽부터 일몰까지 아무것도 먹고 마시지 않는 고통을 함께 감내한다. 그러면서 공동체적 나눔을 실천하고 용서와 화해의 마음을 북돋운다. 이집트 민주화 시위의 진원지였던 카이로 타흐리르 광장에는 또다시 대규모 천막촌이 형성됐다. 시위의 천막이 아니라 단식이 끝나는 저녁시간에 맞춰 서민들에게 식사를 제공하기 위한 나눔의 천막이다. 이집트 새 대통령 무르시가 라마단 특별사면을 통해 아랍민주화 시위 도중 군부에 의해 투옥됐던 572명의 민간인을 석방한 것도 바로 화해와 용서의 제스처이다.

아랍민주화 이후 처음 맛보는 자유선거에서 민심은 예외없이 이슬람 정당을 선택했다. 반면 미국과 서구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국내언론에서도 ‘이슬람 원리주의자 대통령의 탄생’이라는 헤드라인을 달면서 걱정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리비아의 경우도 일단 자유주의 연합이 승리했지만, 집권과정에서 이슬람세력을 끌어안아야 하기 때문에 아랍 전역은 이슬람 돌풍이라 해도 좋을 만큼 새로운 양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슬람의 약진은 예측 가능했던 당연한 결과이다. 혼란과 당혹감은 이슬람에 대한 기초인식의 오류와 서구식 잣대에 기인한다. 가장 결정적 오류는 이슬람을 종교적 도그마로 접근한 것이었다. 이슬람은 종교라기보다는 삶 속에 깊숙이 들어와 있는 문화적 총체다.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탈레반 같은 일부 과격한 정교일치 집권세력에 혼쭐이 난 서구가 모든 이슬람 운동을 위험한 원리주의 정치세력으로 몰고 갔던 후유증이다. 예를 들면 무슬림형제단은 폭압적 독재정권에서 거의 유일한 대안적 풀뿌리 시민단체였다. 처음에는 무장단체였지만, 시대의 흐름에 따라 진화를 거듭하면서 신뢰받는 시민사회조직이 됐고, 혼란기에 가장 효율적인 정치적 대안으로 등장했다. 그들은 무모한 정치적 투쟁 대신 학교를 지어 교육복지를 담당하고, 병원을 지어 가난한 서민들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했다. 재단을 설립해 극빈층을 책임지고 우수한 인재들을 모아 미국과 유럽으로 유학 보냈다. 그리고 서구에 무조건 대항하는 20세기적 투쟁방식이 아닌, 서구를 배우고 받아들임으로써 협력하고 공존하는 지혜를 익히게 했다. 이슬람 정신으로 무장된 첨단 엘리트 두뇌집단을 양성한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주민들이 코란을 소각한 미군을 규탄하며 반미 구호를 외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부정부패와 독재에 신음하던 서민들이 갈구했던 것도 배고픔의 한풀이보다는 정의가 살아있는 원래의 이슬람 사회였다. 이슬람의 ‘정의’는 ‘이슬람=테러리즘’이라는 서구식 마녀사냥에 갇혀 빛을 발하지 못했다. 오랜 세속주의 군부독재정권은 물론 그들을 감싸고 공생했던 서구도 이슬람의 정치세력화를 무조건 테러와 연계시켰다. 1992년 알제리에서는 이슬람구국전선(FIS)이 48%의 득표율로 의회의석 231석 중 188석을 차지하며 집권이 확실시되는 시점에서 군부가 선거를 무효화하고 정당을 해산하는 폭거가 있었다. 이때 미국과 서구는 이슬람원리주의의 위험성을 강조하며 독재정권을 옹호했다.

2006년에는 팔레스타인 민주선거에서 하마스가 국민들의 압도적인 지지로 집권했지만, 미국이 끝까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민의가 선택했더라도 이슬람 정당의 집권에는 반민주적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그래서 최근 이슬람 정치세력들이 정당명에 ‘정의’를 달고 속속 집권하는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이슬람 정당들이 서구의 앞선 제도를 받아들여 진화하지 못하면, 언제든지 민심이 떠나갈 것임을 잘 인식해야 한다. 오랜 갈등과 투쟁에 지친 아랍민심은 반서구라는 이념적 구호보다는 일자리와 기초생활의 보장, 의료 복지와 인간의 기본권이라는 소박한 요구를 담고 있고, 앞선 서구에 대항하는 무모함보다는 협력하고 공존하면서 실리를 취하는 유연하고 실용적인 이슬람을 강하게 갈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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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상환 | 경상대 교수·경제학

 

유럽 재정위기 확대로 세계경제가 디플레이션으로 접어들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15일 발표한 세계경제전망 보고서에서 올해와 내년 세계 경제성장률을 종전보다 각각 0.1%, 0.2% 낮춘 3.5%와 3.9%로 각각 전망했다. 


독일 메르켈 총리가 스페인에 대한 구제금융을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등 유럽재정위기 해소를 위한 유럽연합 국가간 정책공조는 불확실하다. 유로존 17개국 가운데 7개국이 2분기 연속 마이너스 성장이다. IMF는 유럽의 올해 경제성장이 마이너스 0.3%로 경제규모 자체가 축소될 것으로 전망한다. 중국경제는 수출 부진으로 2분기 성장률이 7.6%로 고용 유지에 필요한 최소 수준인 8%보다 낮았다. IMF는 중국경제가 경착륙할 가능성도 있다고 한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 (경향신문DB)


 루비니 미국 뉴욕대 교수도 내년 세계 경제에 ‘퍼펙트스톰’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한다. 더 심해진 유럽 채무위기, 증세와 지출 삭감으로 후퇴국면에 접어든 미국 경제, 중국 경제의 경착륙, 인도·브라질 등 침체를 면치 못하는 신흥국 경제, 금수조치 중인 이란과의 군사적 대치 상황 등 5대 요인 때문에 2013년 세계 경제가 최악의 위기를 맞게 된다는 것이다. 


세계경제 침체의 영향으로 수출의존도가 높은 한국경제도 부진하다. 한국은행은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작년 12월 3.7%로 설정했다가 이번 달에는 3.0%로 내렸다. IMF도 작년 9월 4.4%에서 올해 6월에 3.25%로 내려 잡았다. JP모건과 UBS도 올해 한국 경제가 2%대 성장에 머물 것으로 보고 있다. 


요컨대 현재 세계경제 위기는 각국의 회복책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방법이 없는 상태다. 여기에다 경제성장을 지속하기 어려운 환경적 조건이 조성되고 있다. 산업혁명으로 화석연료와 광물자원을 공산품 제작과 수송, 전기생산 등에 사용할 수 있게 되면서 대량생산, 대량소비가 가능해졌다. 그런데 에너지와 광물자원, 식량, 토양, 종다양성 등 자원이 고갈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의 2010년 세계에너지전망에 따르면 전 세계 연간 원유생산은 2006년 수준을 넘지 못하고 있지만 생물연료 등을 포함한 모든 액체연료는 2035년까지 증가한다. 그러나 심해 등으로 채굴기지가 옮겨지고, 오일샌드 등이 이용되므로 채굴비용이 올라간다. 싼 화석연료의 시대는 끝났다. 원자력은 사용후 처리비용이 크게 증가하고, 태양열과 풍력의 대량 이용도 자연적 제약이 크다. 생물자원을 연료로 사용하면서 식량 공급을 축소시키는 문제를 야기한다. 


식량도 삼림, 초지 등을 경지로 전환하고, 에너지를 대량 사용하는 방식으로 단위 면적당 생산과 전체 식량생산을 크게 높였다. 그러나 이제는 물 부족, 표토 유실, 토양 비옥도 저하, 경지 확대의 한계, 종 다양성 축소, 투입 자재 증가, 화석연료 비용 증가 등으로 더 이상 생산을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 2008년과 2011년의 식량위기가 이를 말해준다. 또한 탄산가스 배출로 인한 지구 온난화, 화학비료로 인한 하천과 바다 오염, 기름유출사고, 일본 쓰나미와 지진 등 자연재해 피해 확대 등 환경훼손에 따른 피해가 커지고 있다.


여기에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화폐, 금융체제는 자산거품을 유발하고 경제위기를 심화시키는 작용을 했다. 감세로 국가채무가 증가한 가운데 경제위기에 부딪치자 정부는 이자율 인하로 민간투자를 촉진하려 했지만 생산적 투자보다는 민간부채 누적만 초래했다. 이번 경제위기에서는 민간채무 문제를 국가채무 증가로 해결하려 했지만 이제는 재정위기가 경제위기를 유발하고 있다. 경제위기 해결책을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것이다. 또한 금융자본은 자원과 식량, 토지조차 투기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자원, 식량위기를 부추겼다. 


신자유주의와 환경파괴 그래픽 (경향신문DB)


이제는 자원고갈과 지구 온난화, 환경훼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제로 경제성장의 길을 모색해야 할 때다. 경제성장, 생산과 이윤 확대로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더 이상 불가능해졌다. 소득과 재산의 재분배, 부채의 대대적 탕감, 생산목적의 변경 등으로 빈곤과 양극화 문제를 직접 해결하는 길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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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지난 주말 파리는 1789년 대혁명을 기념하는 축제에 휩싸였다. 해마다 혁명기념일인 7월14일이 되면 여름 바캉스 시즌을 맞아 세계 각지에서 파리를 찾은 수많은 사람들도 파리지앵과 함께 다양한 문화를 표출하면서, 왕권의 압제를 타도하고 보편적 인권과 민주주의의 원칙을 만천하에 공표한 기쁨을 공유한다.

한국에서는 ‘프랑스’나 ‘파리’하면 흔히 예술과 문화의 산실로 생각하지만 전통적으로 프랑스는 혁명의 나라이며 파리는 바로 그 혁명을 주도한 수도이다. 실제 1789년 대혁명뿐 아니라 역사적 변화를 이룬 1830년 7월혁명, 1848년 2월혁명, 그리고 1871년의 파리코뮌의 혁명 등도 모두 파리에서 일어났다. 20세기 사회 변혁 운동으로 불리는 68혁명만 해도 문화적 보수주의와 경제적 소비사회에 반발하는 파리의 학생과 노동자들이 주도했고 몇 주간 20세기 버전의 해방구를 만들기도 했다.

하지만 놀랍게도 20세기가 끝날 때까지 파리의 시정은 우파가 독점했다. 파리코뮌 이후 좌파가 다시 파리의 시정을 장악하기 시작한 것은 2001년 사회당의 베르트랑 들라노에가 파리 시장에 당선되면서부터다. 들라노에는 진보정치를 주도하며 파리를 새롭게 변화시켰는데 특히 모든 것을 경제적 가치로만 평가하는 자본주의적 논리에 제동을 걸었다. 일례로 파리시가 관리하는 15개 박물관을 모두 무료로 시민에게 공개했다. 역사와 예술과 문화는 사고파는 상품이 아닌 모두가 공유하는 자산이라는 철학에 따른 결정이다.

 

베르트랑 들라노에 파리 시장 ㅣ 출처:경향DB

서민을 고려하는 일련의 정책도 눈에 띈다. 특히 여름 바캉스 시즌에 돈이 없어 여행을 떠나지 못하는 시민을 위해 ‘파리-해변’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매년 여름 한달가량 센강 강변도로를 막아 차를 다니지 못하게 한 뒤 그곳에 모래나 잔디를 덮어 일광욕도 즐기고, 비치 배구도 하면서 ‘무료’ 바캉스를 즐기도록 배려한 것이다.

턱없이 부족한 파리의 보육시설을 개선하기 위해선 사회당 시정부가 공공 보육 시설을 확장했다. 또한 들라노에는 파리 시청에 1000㎡에 달하는 시장 공관을 시 공무원 보육 시설로 내놓고 자신은 개인 아파트에 계속 거주할 정도로 솔선수범을 보였다.

개인의 승용차 사용을 억제하고 공공 교통시설을 확대하는 등 친환경 도시를 만드는 일에도 앞장섰다. 새로운 전철 노선이 만들어지고, 버스와 자전거 전용 도로 등이 확장됐다. 지금 파리 시민과 관광객은 자유로운 공짜 자전거라는 의미의 ‘벨리브’ 프로젝트를 통해 2만여대의 공공 자전거와 3만5000여개의 주차 시설을 이용하면서 편리하게 이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벨리브’를 운용하는 데는 시민의 세금이 한 푼도 들어가지 않는다. 민간회사에 광고 공간을 허용하는 대신 모든 투자를 일임한 덕분이다.

세계적인 문화의 도시 파리를 전통과 과거에만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예술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주도적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한 것도 들라노에의 업적이다. 예를 들면 ‘유행과 디자인 센터’를 설립하고, 전자음악과 디지털 예술에 적합하도록 기존의 극장을 개조했으며 ‘힙합의 집’도 열었다. 또 파리의 빈곤 지역에 ‘104센터’라는 종합예술센터를 만들어 시민 참여를 유도함으로써 가난이 예술을 향한 장벽으로 작용해서는 안된다는 의지를 보여주었다.

들라노에는 2008년에 재선되어 2014년까지 파리를 이끌 예정이다. 그는 혁명의 수도를 관리하는 진보 시장으로서 시정의 변화를 선도했다. ‘파리-해변’이나 ‘벨리브’는 프랑스의 다른 도시는 물론 유럽의 다른 도시로 확산되고 있다. 노동계급이 거의 사라지고 중산층이 다수를 차지하는 파리에서 진보정치가 성공한 것은 이례적이다. 지금 파리에선 관대한 나눔의 문화, 공적 공간과 서비스 강화가 창의적인 생각과 조화를 이룰 때 정치는 모두에게 새로운 행복을 선사한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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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simon@kyunghyang.com


 

미국 워싱턴의 ‘한국 관찰자들(Korea watchers)’은 올해 말 대선 이후 펼쳐질 차기 행정부의 한·미관계에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다. 어떤 후보가 유력한지, 그 후보의 한·미관계 철학은 무엇인지 촉각을 곤두세운다. 특히 유력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에게 관심이 많다. 최근 워싱턴의 한 민간연구소 주최 세미나에서 만난 미국의 전직 관리는 박 전 위원장의 성향을 알기 위해 과거 발언 등을 찾았지만 찾을 수 없었다면서 “유력 대권주자이면서 이처럼 한·미관계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이 놀랍다”고 말했다.


박 전 위원장이 선명한 자기 견해를 제시하기보다 현안에 침묵함으로써 지금의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는 것을 모르는 미국인들은 충분히 그럴 수 있다. 하지만 막연하나마 그가 대통령이 되면 지금의 한·미관계의 큰 틀이 유지될 것으로 기대한다.


 많은 사람들은 ‘더 없이 좋았던’ 지난 4년간 한·미관계가 지속되길 원한다. 하지만 박 전 위원장이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이 한 번 더 대통령을 한다 해도 그렇기는 쉽지 않다. 차기 행정부는 그동안 미뤄왔던 껄끄러운 현안과 맞닥뜨려야 하고 외교보다 국내 문제에 더 집중해야 한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어려운 사안을 피해왔다. 숙제를 안 하고 파티에 먼저 갔다가 밤늦게 돌아온 부담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로 넘어간다. 


(경향신문DB)


한·미관계를 어렵게 만들 가장 큰 폭발력 있는 이슈는 일본의 군사대국화 움직임이다. 일본은 지난해 무기수출 3원칙을 완화한 데 이어 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설치법에 ‘평화목적’ 조항을 삭제해 우주개발을 군사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길을 텄다. 또 지난달에는 원자력기본법을 개정하면서 ‘국가안보에 기여한다’는 조항을 삽입함으로써 핵무장의 법적 근거도 마련했다. 여기에 최근 총리실 산하 정부위원회가 “집단적 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작성해 이제는 전수방위 원칙까지 무너뜨릴 기세다.


일본의 이 같은 움직임에 미국은 철저히 침묵하고 있다. 사실 미국은 일본의 군사력 강화를 적극 지원하고 있다. 중국을 봉쇄하는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서 일본의 군사력 확대는 핵심적 요소이기 때문이다. 미국은 22개국이 참가하고 있는 다국적 해상 연합훈련 ‘림팩(RIMPAC·환태평양훈련)’에서 정식 군대도 아닌 일본 해상자위대의 소장을 부사령관으로 임명해 지휘권을 맡기기도 했다. 


미국은 최근 무산된 한·일 군사협정에 대해서도 아쉬움을 표시하고 있다. 전략적으로 모두에게 필요한 사안임에도 한국 내에서 과거사에 발목을 잡혔다는 반응이 많다. 지난 7일 뉴욕타임스는 사설에서 “아시아에서 필수적인 한·일 간의 군사협력에 과거사가 장애물이 돼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어떤 인사는 “대선을 앞두고 있는 한국에서 정치인들이 대놓고 이 문제에 찬성할 수 있었겠느냐”면서 정치인들의 정략적 판단으로 일시 연기됐을 뿐 결국 한국도 따라올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견해를 보이기도 했다.


미국 당국자들은 그동안 한·일 간의 역사적 배경과 국민정서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다고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이명박 정부는 그동안 미국의 지원하에 일본이 군사력을 확대하는 것에 침묵해왔다. 하지만 조만간 한·미·일의 이해관계가 막다른 골목에서 맞부딪치고 더 이상 침묵할 수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때가 되면 한국이 지나간 과거에 연연해 좀 더 큰 국면을 바라보지 못하는 어리석은 짓을 저질렀는지, 아니면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각국에 씻을 수 없는 고통을 주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의 군대를 부활·확대시켜 아시아 전략의 기초로 삼으려 한 미국의 결정이 어리석었는지 판가름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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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12년 전에 자취를 감춘 공룡이 다시 돌아왔다. 공룡은 과거 71년간 집권한 멕시코의 제도혁명당을 말한다. 페냐 니에토 후보는 38%의 지지표로 좌파 후보인 로페스 오브라도르를 6% 차이로 물리치고 승리자가 됐다. 부정투·개표 시비로 현재 절반가량을 재검표하고 있긴 하지만 결과에 영향을 주진 않을 것이다. 2000년에 그렇게 힘들게 밀어낸 제도혁명당을 멕시코 시민들은 어떻게 쉬 받아들일 수 있었을까? 당시 제도혁명당은 권위, 부패, 경제적 실패, 선거부정과 동의어였다.

제도혁명당의 귀환은 결국 12년간 집권한 국민행동당의 무능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12년간 경제는 저성장과 위기 속에서 헤맸고, 마피아와의 전쟁에서 거의 6만명의 인구가 살상됐다. 특히 치안에 대한 국민들의 불안으로 집권당 후보는 3위로 처질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온갖 개혁안을 내놓았지만 여소야대의 구도 속에서 아무것도 통과시킬 수 없었다.

선거전은 무색무취의 인기 정치인 페냐 니에토의 독주로 시작됐다. 하지만 제도혁명당의 귀환을 막으려는 학생운동이 개입하면서 열기를 더해갔다. “나는 132번”이란 운동이 소셜 미디어를 이용해서 공룡의 귀환을 막고자 했다. 주도층은 중산층 출신의 사립대생들이었다. 이들은 마피아 전쟁에서 살상을 당한 대부분이 청년층이고, 자신들도 안전하지 않다고 느낀다. 이런 와중에 지난번 선거에서 석패한 로페스 오브라도르에게 다시 한번 기회가 온 것이다.

로페스 오브라도르는 멕시코 시장 출신으로 매우 유능한 정치인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속한 민주혁명당은 늘 분파 싸움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2006년 대선에서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저항하다가 인기가 다소 침체돼 있었다. 이번에는 브라질의 룰라 이미지로 선거전에 나섰지만, “나는 132번”이란 학생운동의 간접적인 지원에도 막판 판세를 뒤집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다.

 

멕시코 대통령에 당선된 엔리케 페냐 니에토 제도혁명당 후보 ㅣ 출처:경향DB

페냐 니에토 당선자는 제도혁명당의 제3세대에 속한다. 자신은 제도혁명당의 어두운 그림자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한다. 또 “당은 과거의 오류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고 말했다. 그는 이념에 관심이 없고, 실용주의 해결책을 선호하는 정치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지난 12년간 제도혁명당이 집권했던 몇몇 주를 보면, 후보 자신의 멕시코 주를 포함해서 인권침해가 남달리 심각한 것으로 드러난다. 따라서 집권 이후에도 얼마나 바뀐 모습을 보여줄지 두고 볼 일이다.

물론 과거 화려했던 제도혁명당의 치세 시절로 돌아갈 수는 없다. 과거에는 대통령, 정당, 의회, 시민사회가 한 수족처럼 움직였다. 대통령은 6년간 수명을 누리는 반신(半神)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제는 3당체제가 안착됐고, 관료들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하는 제도와, 정보공개법을 통해 정치적 부패를 감시할 장치도 마련됐다. 제도혁명당과 대형노조의 관계도 과거와 달리 현저하게 약화됐다. 그렇다고 할지라도 제도혁명당이 얼마나 참신하게 바뀌었는지는 여전히 미지수이다.

비관적인 논평자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고 말한다. 제3세대 출신의 주지사들의 행태는 여전히 봉건영주처럼 움직인다. 페냐 니에토의 마피아와의 전쟁도 여전히 밀어붙이기로 일관할 것이다. 당선자는 콜롬비아 방식을 벤치마킹하여 엘리트형 군경대를 창설하여 해결하겠다고 말했으니, 여전히 피는 계속 흐를 것이다.

지난 12년간 민주화 이행에도 불구하고 민주개혁의 실적은 형편이 없다. 선거관리는 오히려 후퇴했다는 느낌을 준다. 지난 대선에 이어 이번 대선까지 투·개표 부정시비에 휘말리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멕시코 시민들의 민주주의에 대한 지지도가 2011년 기준으로 40% 정도에 머물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투·개표 부정시비를 넘어서 정치체제의 정당성이 상당히 훼손되어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페냐 니에토 당선자는 제도혁명당이 과거의 오류에서 배운 것이 무엇인지를 국민들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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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은홍 |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아웅산 수치 버마 민족민주동맹(NLD) 대표가 2주가 넘는 긴 유럽 5개국 순방을 마쳤다. 특히 옛 식민모국인 영국 의회에서 아웅산 수치는 ‘최고의 양심’으로 소개되었다.

주지하다시피 버마에서는 지난해 3월 말 현정부 출범 이후 테인 세인 대통령 주도의 정치개방이 시작되면서 그동안 1990년 총선거에서의 민족민주동맹 선거 승리 인정, 2008년 신헌법 불인정, 2010년 총선 불참 등 군부와의 대결노선을 불사하던 민족민주동맹이 정당등록과 함께 현 정부 주도의 민주화 로드맵에 참여하였고, 마침내 지난 4월1일 보궐선거에서 압도적 승리를 거두었다. 북한과 함께 버마를 악의 축으로 간주하던 미국도 부분적 제재 완화, 외교관계 재개 등 정치개혁에 대한 적극적인 화답을 보냈다.

이러한 획기적인 정치개방은 지난해 8월에 있었던 테인 세인과 아웅산 수치 간의 회동에서 성사된 대타협에 근거하고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웅산 수치는 테인 세인과의 전면적인 협력은 유보하고 있다. 그 단적인 예가 정치개혁의 대가로 서방의 경제제재 해제를 기대하는 테인 세인 정부와는 달리 아웅산 수치는 경제제재의 전면적 해제를 반대하고 있다. 수치는 여전히 서방에 의한 제재가 버마 정치개혁의 후퇴를 막을 수 있는 수단으로 보고 있기 때문이다. 대외 교역관계와 관련해서도 인권친화적인 윤리적 책임투자를 요구하고 있다. 이러한 수치의 ‘신중한 낙관론’은 테인 세인의 개혁에 대한 전면적 지지 차원에서 서구의 제재를 전면적으로 철회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아세안(동남아국가연합)의 입장과 배치된다.

 

아웅산 수치 여사가 노벨평화상 수상연설을 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아세안은 한때 ‘독재자들의 클럽’이라는 불명예를 감수해야 했지만 1990년대에 들어와 지역내에서 민주화가 진전되면서 인권 감수성을 높여왔다. 대표적인 예로 불문율과 같았던 내정불간섭 원칙을 넘어 ‘조용한 압력’을 통해 버마 군사정부가 2006년 아세안 의장국을 포기하도록 한 것을 들 수 있다.

1997년 아세안이 서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버마를 회원국에 가입시킬 때 내건 명분은 ‘포용을 통한 변화’였다. 그런데 아세안이 포용만이 아니라 아주 미약한 수준이지만 압박도 가했던 것이다. 이는 서구의 네거티브 방식과는 확연하게 다른 것이었다.

대부분 서구 선진국들의 식민주의 경험을 갖고 있는 아세안 회원국들에 인권을 명분으로 한 서구의 간섭은 여전히 ‘인권제국주의’의 얼굴로 비추어지고 있다. 버마 식민지 시기 영국의 분리통치 전략만 하더라도 버마에서 버마족과 비버마족 간의 불신의 장벽을 만들어 이것이 독립후 내전의 불씨가 되었고 결국 버마를 추락시킨 군부의 정치개입 배경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번 영국 순방에서 아웅산 수치는 아쉽게도 영국 의회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찬사만 보냈다.

이제 노벨 평화상 수상자가 아닌 아시아의 대표적 정치지도자로 부상한 아웅산 수치는 아시아와 적극적 만남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버마에서의 서구에 의한 ‘제재의 효과’만이 아니라 아시아가 취했던 ‘포용의 효과’도 같이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러한 차원에서 수치가 강조하는 ‘화합’에는 테인 세인 정부의 개혁을 지지하고 있는 아세안과의 적극적 대화도 포함되어야 한다. 그것은 곧 테인 세인 정부의 개혁을 고무시키면서 행정과 입법에서 군의 지도적 역할을 강조하는 군부내 강경파를 고립시키는 효과를 가져오는 전략이기도 하다.

거대한 전환기에 놓여 있는 아시아를 고려할 때 수치 대표가 아시아의 식민지 트라우마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으면서 동시에 아시아의 인권 감수성을 끌어올리는 명실상부한 아시아의 지도자가 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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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


이명박 정부의 대외정책을 한마디로 규정하면 ‘친미반북’이다. 두 전임 정부에서 한·미동맹이 흔들렸던 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것은 부시 행정부의 패권적 일방주의 때문인 동시에, 탈냉전 도래가 가져온 필연적 압력 때문이었다. 즉 한·미동맹은 북방으로부터의 위협을 기초로 형성된 냉전의 산물이기에, 북방위협의 소멸 또는 약화가 불안정을 초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진보정부의 과오로 규정했고, 이념의 굴레를 덧입힘으로써 정권 획득에 성공했다. 집권 이후 대북 강경책과 한·미동맹 강화에 매진하였으며, 중국과 러시아와의 관계악화는 북한의 핵무기 개발과 도발을 내세워 정당화했다.

북한의 위협 증가를 빌미로 동맹을 강화해온 결과 한국은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 철저하게 종속되기에 이르렀다. 더할 나위 없이 굳건해졌다고 자찬하는 한·미동맹이 실제로는 미국의 국익을 우선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임기 초 추진했던 전략동맹은 한반도 내에서 북한의 위협을 억지하는 것에 머무르지 않고, 한반도를 벗어난 미국의 전략에 동원될 가능성을 열었던 것이다. 2009년 대량살상무기방지구상(PSI)에 전면 참여했고, 최근에는 한·미 미사일 공동운영과 한국형미사일방어(KAMD)계획을 발표했다. 미국의 MD체제 편입의 정지작업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그리고 급증하고 있는 대미 무기구입까지 모두 동일한 맥락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들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버웰 벨 사령관으로부터 '한.미 동맹상'을 건네받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중국 봉쇄의 글로벌 전략을 완성하기 위한 또 하나의 핵심 퍼즐이 한·미·일 군사협력 체제의 결성이다. 미국은 오래전부터 오매불망 원했으나, 껄끄러운 한·일관계와 진보정권의 저항으로 어려움을 겪다가 ‘뼛속까지 친미와 친일’인 이명박 대통령의 등장으로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6월14일 발표된 한·미 외교국방장관회의의 공동선언은 중국을 겨냥한 한·미·일 3각동맹의 구축에 초점이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을 조속히 체결하도록 미국 정부가 한국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고 전해진다. 미국은 이명박 정부의 임기 안에 처리하려는 조급함으로 한국을 압박했고, 국내 여론의 반발을 의식한 정부는 밀실통과를 시도했던 것이다. 정부가 미국의 MD체제 참여는 전혀 고려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나, 이번 협정이 한·미·일 3각 동맹과는 무관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정부가 알면서도 본질을 호도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은 점점 미국의 대중 봉쇄 프레임에 갇히고 있다. 사실 탈냉전 직후부터 동맹의 재조정 문제가 등장했었고, 특히 한·미 간 비대칭성 문제를 놓고 이견이 불거졌었다. 미국이 원하는 조정은 동맹이 미국을 위해서 더 많이 기능하게 만드는 것인 반면, 한국은 미국에 대한 지나친 의존성을 줄이고, 보다 동등한 지위로 변화되는 것을 원했다. 전시작전권 환수도 그런 의도에서 추진됐었다. 진보정권 10년간에는 미국 입장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도, 우리 입장을 최대한 반영하기 위해 노력했던 반면 이명박 정부에 와서는 후자는 사라지고 전자로 완전히 기울어져버렸다. 원인은 맹목적인 친미노선이며, 북한 위협을 부풀림으로써 미국의 입장을 거절하거나 약화시킬 명분을 스스로 상실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과는 미국의, 미국에 의한, 미국을 위한 한·미동맹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의 핵위협이 가시화되고, 중국의 부상이 현실화됨에 따라, 미·일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PSI든, MD든, 한·미·일 군사협정이든 참여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그야말로 ‘과잉안보’다.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 막는 정도를 넘어 가래로도 막을 수 없을 만큼 한반도의 평화에 치명상을 입힐 수 있다. 미·소의 대리전을 치렀던 한반도가 또다시 미·중 충돌의 터가 될 수 있다. 한·미동맹에 일본을 끌어들이는 이유가 북한의 위협 증가 때문이라는 식의 억지논리를 앞세워, 일본의 군사대국화를 가능하게 만들고 신냉전으로 가는 도박에 뛰어드는 반민족적 행태를 정부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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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워싱턴 특파원


 

정부가 지난 26일 국무회의에서 일본과의 군사협력 협정을 국민적 동의 절차도 거치지 않고 비공개로 의결 처리하는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인 배경의 중심에는 미국의 대외전략 변화가 있다. 


이번 사안은 미국이 아시아·태평양 시대를 선언하고 이 지역에 군사·외교적 자산을 집중하는 전략적 선택을 한 이후 한국에 닥친 첫 번째 시련이다. 


밀실 한일군사협정 비판하는 박지원 원내대표 (경향신문DB)



 미국의 대(對)아시아 전략은 아·태 지역에서의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군사력 팽창을 막는 것으로 요약된다. 미국은 이를 위해 동남아에서는 각국의 반(反)중국 정서를 이용해 자신들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었다. 동북아에서는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명분으로 내세운 한·미·일 안보협력체제를 구축함으로써 중국을 견제하려 한다. 


미국의 강력한 요구와 일본에 대한 국민적 반감 사이에서 고민하던 정부가 어이없게도 비공개 각의 통과를 선택함으로써 미국의 의도는 달성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미국이 남북한, 중국, 일본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동북아의 역학관계를 얼마나 심각하게 고민했는지 의문이다. 특히 일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경험한 역사적 배경과 한국민의 정서는 단순히 정부의 정치적 결정만으로 덮이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협력체 구축이라는 미국의 구상은 시대정신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무리다. 미국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민족주의적 색채가 강한 한국의 사회적 특성을 간과하고 있다. 이번처럼 역사적 배경과 국민 정서를 무시한 미국의 밀어붙이기는 한국 내의 반미 감정을 자극해 한·일 간 협력은 고사하고 한·미의 사이마저 멀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도 마찬가지다. 지금 미국이 중국 견제의 포스트로 삼으려 하는 베트남·필리핀·버마 등은 모두 외세의 침략과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다. 이들이 중국에 위협을 느끼는 것은 사실이지만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미국의 품에 덥석 안길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아시아 지역의 정서와 민족적 특성을 감안하지 않은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성공할 수 없다. 동양의 경전인 <논어>에 따르면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이 있고, 배워서 깨닫는 사람(學而知之)이 있는가 하면, 곤란을 당하고도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困而不學)도 있다.


미국은 이미 아시아에서 여러 번 실패해본 경험이 있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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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의동|도쿄특파원 phil21@kyunghyang.com

 

노다 요시히코(野田佳彦) 일본 총리가 정치생명을 걸고 추진해온 소비세 인상법안이 지난 26일 일본 중의원을 통과하자 한국에서는 노다 총리의 리더십을 칭송하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 일본이 ‘제자리걸음 정치’에서 탈피해 결정하는 정치를 오랜만에 보여줬다거나, 정권 유지보다 국가의 미래를 더 우선시하는 결단을 내렸다는 이야기들이다.

하지만 현지에서 소비세 증세과정을 지켜본 기자로서는 이런 칭찬 일변도의 해석에 동의하기 어렵다. 우선 증세의 방법이 잘못됐다. 노다 정권은 증세로 가장 손쉬운 소비세를 택했다. 소비세란 한국의 부가가치세에 해당한다. 상품에 붙는 세금을 올리는 것인 만큼 조세저항이 적고, 징수도 쉽다.

하지만 소비세는 영세 중소기업과 저소득층이 세금 인상의 직접 피해를 보는 소득역진적 세금이다. 대기업에 납품하는 중소기업이 증세로 늘어난 비용을 대기업에 전가할 수 있을까. 서민들이 소비를 줄이면 영세상점들은 타격을 입게 된다. 도쿄의 양과자점에서 일하는 한 종업원은 일본의 한 일간지에 “소비세가 오르면 가게 수입은 늘지 않으면서 가격만 올라간다”면서 “손님이 줄어들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노다 요시히코 일본 총리 ㅣ 출처:경향DB

반면 ‘부유세’인 상속세나 소득세 인상 논의는 흐지부지됐다. 일본의 소득세는 연간 과세소득 1800만엔 이상에 대해 40%의 최고세율을 적용한다. 초고소득자에 대해 최고세율을 올리고, 상속세도 공제를 줄이는 한편 금융자산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는 논의는 내년 이후로 미뤄진 채 소비세에만 초점이 맞춰졌다.

사실 일본은 1990년대 이후 감세정책으로 신자유주의 종주국인 미국보다도 부유층의 부담이 적은 나라가 돼 버렸다. 대장성(현 재무성) 관료 출신인 저널리스트 다케다 도모히로(武田知弘)의 분석에 따르면 연소득 3억4000만엔(2010년 기준)인 도요타 아키오(豊田章男) 도요타자동차 사장의 세부담은 21%인 반면 평균 연소득 430만엔인 사원들의 세부담은 35%에 달한다. 왜 그럴까. 부자들의 부담을 줄여주는 여러 조치들 때문이다. 우선 주식 등의 배당소득에는 소득·주민세를 합해 최대 10%밖에 징수하지 않는다. 세금이나 다름없는 사회보험료도 상한이 설정돼 있어 연소득 1억엔을 넘는 이의 부담률은 평균 소득자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일본 정부는 1990년대 초 거품경제가 무너지자 경기 활성화를 명분으로 부유층 소득세를 대폭 줄였고, 대규모 토목사업에 예산을 마구 투여했다가 재정을 돌이킬 수 없는 수준으로 악화시켰다. 그 뒷감당을 서민의 호주머니를 털어 충당하겠다는 것이 소비세 인상의 본질이다.

노다 정권은 서민의 부담을 강요하면서도 고통분담의 노력은 보여주지 않았다. 재정지출을 줄이려는 노력은커녕 신칸센 3개 구간, 도쿄 외곽순환도로, 얀바댐 등 불요불급한 대규모 토목사업을 재개했다. 국회의원 정원 삭감 논의는 아직도 ‘제자리걸음’이다. 도쿄시내 금싸라기 같은 땅에 지어진 호화판 기숙사는 시중가보다 몇 배나 싼 임대료를 받고 국회의원들에게 빌려준다.

노다 총리가 부자증세에 정치생명을 걸었다면 몰라도 중소기업과 서민의 팔을 비트는 법안 통과에 성공했다고 ‘뚝심’이라고 칭송할 수 있을까. 야당과 타협하느라 2009년 중의원 선거에서 내걸었던 공약을 깡그리 내던진 것도 결단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재정건전성이 선진국 중 최악의 수준인 일본이 증세로 방향을 튼 것은 일단 바람직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이번 증세는 방법과 수순이 틀렸다. 한국의 증세 논의에서 일본은 ‘모델’이 아니라 ‘반면교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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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희수 | 한양대 교수·중동학


 

이집트의 첫 민선 대통령으로 자유정의당의 무르시 후보가 당선되었다. 그렇지만 이집트가 가야 할 민주주의의 길이 멀고도 험난해 보인다. 이집트 군부가 아랍민주화의 첫 결실부터 무참히 짓밟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군사독재와 폭압의 사슬을 끊고 60여년 만에 실시된 이집트 대선 결선투표는 6월18일 개표가 완료된 이후에도 결과를 밝히지 않는 초유의 사태를 맞았다. 더욱이 선거직전 총성 없는 쿠데타를 통해 군부가 상상을 초월하는 초법적인 방식으로 대통령 당선자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춰 바꾸려 한다는 의혹도 난무했다. 주도면밀하게 계획된 일련의 쿠데타 조치들이 이를 뒷받침해 주었다. 자유로운 선거에 의해 개원한 의회를 대선을 눈앞에 두고 헌법재판소를 압박해 해산을 명했고, 무바라크 독재정권에 협력한 고위인사들의 대선 출마를 금지한 입법을 위헌처리하면서 전 총리였던 샤피크에게 대선 출마의 길을 열어주었다. 대선 개표결과 군부와 앙숙관계인 무슬림형제단이 주축이 된 자유정의당의 승리가 확실해지자, 하룻밤 사이에 개헌 쿠데타를 주도해 대통령의 군통수권과 전쟁 선포권, 의회의 입법권, 행정부의 군 인사권과 국방장관 임면권 등을 박탈하는 초법적 조치를 취했다.



이집트의 한 남성이 무슬림형제단 지지자들과 함께 구호를 외치고 있다. (경향신문DB)



 이집트 대선은 아랍근대사에서 21세기 전환기적 대사건이다. 아랍은 1920년대만 해도 언어, 종교, 종족을 공유하는 하나의 문화 공동체였다. 양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22개의 개별국가로 쪼개져 독립한 이후에는 일부 산유국들은 엄청난 부의 정치로 세습적인 왕정을 유지했지만 대부분의 아랍국가들은 군사쿠데타를 통해 사회주의 권위주의 정권으로 돌변했다. 게다가 중동 석유를 지키려는 미국의 자국 이익 극대화 전략으로 독재군부와 결탁하는 왜곡된 정치구도가 고착화됐다. 2011년 봄부터 시작된 아랍민주화 혁명은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는 거대한 민심의 표출이었고, 이집트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첫 지도자를 선출하게 된 것이다. 그 결과가 이슬람 정권이라도 공정한 선거를 통해 국민들이 선택한 정권이라면 최소한의 존중을 표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기본예의이다. 그럼에도 무슬림형제단이기 때문에 위험하고 시대착오적이라는 낙인이 통용된다면 아랍의 민주주의는 또다시 10년을 후퇴할지도 모른다.


무슬림형제단은 1928년, 영국의 식민통치하에서 독립과 자유를 쟁취하기 위한 풀뿌리 저항조직으로 출발했다. 당시 무슬림형제단은 이슬람을 중심가치로 하면서 부패한 세속정권을 대신하는 보다 실용적인 정치적 변혁을 내걸었다. 무슬림형제단도 시대를 거치면서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무바라크 군사정권의 극심한 탄압으로 정치일선에서의 무모한 투쟁보다는 민심을 헤아리면서 좌표를 잃고 방황하는 사회의 새로운 미래희망으로서의 역할을 분명히 했다. 병원을 지어 아픈 서민들을 보살피고, 학교를 지어 가난한 아이들을 가르쳤다. 구호재단 설립을 통해 중앙정부의 부패구조에 꽉 막혀버린 분배의 흐름을 도왔다. 이슬람 정신이 살아있는 젊은 엘리트들을 외국에 유학 보내 급변하는 세계의 흐름을 익히게 했다. 시민단체가 통제되거나 와해된 이집트 정치환경에서 지난 80여년간 무슬림형제단은 사실상 서민들이 의존하는 가장 신뢰할 만한 풀뿌리 시민조직이었다.


현실정치로 돌아온 무슬림형제단은 이념적이고 종교적인 보혁논쟁에서 벗어나 훨씬 자유로운 선택을 할 것이다. 무르시 후보가 소수 종교의 보호와 기독교인들의 등용, 종교적 복장의 자유화 등을 선거공약으로 내세우며 서구나 세속주의자들의 이슬람화 우려를 일축한 것이 좋은 예다. 군부와의 관계에서도 우선은 대중적 선동정치보다는 협상을 통해 약간의 권력을 분점하더라도 집권하는 쪽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나 막강한 군부 기득권 세력이 무슬림형제단과의 협상을 거부하고, 변화를 갈구하는 민의를 읽지 못한다면 민주주의는 또 다른 희생과 엄청난 피의 투쟁을 부를지도 모른다. 모처럼 시작된 아랍의 민주화 과정이 부디 이집트를 시작으로 연착륙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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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규 | 삼성경제연구원 수석연구원


 

유럽 재정위기의 끝이 보이질 않는다. 지난 17일 그리스 총선에서 신민주당이 승리함으로써 당장의 급한 불을 끄기는 했지만, 향후 긴축 재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질 수도 있으며, 스페인이나 이탈리아로 위기가 확대될 우려도 있다. 또한 당장 이달 말로 예정된 유럽연합(EU) 정상회의 합의사항, 7월부터 출범하는 ESM(유럽재정안정메커니즘) 등 다양한 요인들이 향후 재정위기 전개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그리스 신민주당의 안토니스 사마라스 대표가 총선 승리를 선언한 뒤 웃고 있다. (경향신문DB)



 현재까지의 재정위기 과정은 ‘공통적인 패턴’을 보였다. 위기가 해소되기 위해서는 유동성 문제(EU 차원)와 채무상환 문제(회원국 차원)가 동시에 극복되어야 하나, 이 두 가지 전제조건들이 충족되지 못함으로써 불안이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먼저 특정 회원국에서 문제(채무상환 위기)가 발생한다. 그러면 어김없이 EU 차원에서 회원국을 지원할 능력이 있는지, 주요국들은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유동성 문제가 불거진다(유동성 위기). 그러다가 겨우 단기적인 대책을 마련하면서 시장의 급한 위기가 진정된다. 하지만 특정 회원국에서 채무상환 문제가 재차 발생하면서 시장은 더 큰 규모의 자금과 더 강한 수준의 통합을 요구한다. 앞으로도 유로 시스템은 시장으로부터 통합 의지와 능력에 대한 시험을 지속적으로 받을 것이다. 


더구나 상황이 더욱 녹록지 않은 이유는 두 가지 측면의 위기가 변질되고 있기 때문이다. 첫째, 유동성 위기가 정치적 위기로 변질되고 있다. 특히, 2012년 5월 그리스 총선과 프랑스 대선 이후 성장 대 긴축 논란이 가열되면서 이러한 경향은 더욱 강화됐다. 즉, 회원국이 긴축을 이행하지 못하거나 거부함으로써 EU 차원의 유동성 공급에 대해 의구심이 증대되는 상황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문제를 풀어가야 할 독일과 프랑스 간은 물론 주요국과 주변국 간의 의견차가 좀처럼 좁혀지질 않고 있다. 이는 재정위기가 정치위기와 EU 통합의 위기로 확산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둘째, 채무상환 위기는 국가의 경쟁력과 관련된 이슈로서 단시일에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중장기적으로 보완해야 하는 문제이다. 하지만 시장은 당장 해결책을 내놓기를 원한다. 즉, 채무상환 위기가 더 이상 중장기가 아닌 단기 문제로 변질되고 있다.


물론 현 단계에서 주요국과 주변국 모두 유로 시스템이 붕괴되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선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을 것이다. 서로에게 돌아갈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시장불안 요인이 불거지면 주요국 간 이견이 발생하고 유로 시스템 지속 가능성에 대한 불신으로 증폭되다가 결국 EU 차원의 미봉책으로 위기가 봉합되는 ‘패턴’이 재연될 가능성이 크다. 그런 만큼 올해도 유로존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상된다. 전 세계 수입의 25.6%를 감당하는 유로존 국가의 경기침체는 세계무역 감소와 직결될 것임은 자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유로존 불안 지속은 글로벌 신용경색을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유럽발 재정위기는 지속되면서 세계경제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글로벌 금융시장의 변동성을 확대시키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할 것이다.


한국은 2012년 하반기에도 유럽 재정위기의 변동성을 상시 모니터링하고 유연하게 대응해야 한다. 특히 재정 취약국들의 긴축안 통과 진통, 성장률 예상치 하회, 국채발행 실패 등의 시기와 맞물려 발생했음을 상기하여 EU의 정치·경제 일정에 맞춰 위기 요인을 점검하고 상황 악화에 대비해야 한다. 또한 회원국 간 양극화 심화, 민간부문 침체에 따른 저가 제품 선호 등 EU 시장의 환경 변화에 대응해 유연한 수출확대 전략을 구사해야 하겠다. 손자병법에서 말하는 순수견양(順手牽羊)의 지혜가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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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 워싱턴 simon@kyunghyang.com

 

국가 간의 동맹 관계에서 여러 가지 현안을 두고 서로의 입장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극히 당연하다. 아무런 견해 차이가 없다면 오히려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관계라고 일컫는 미·영동맹도 국민적 정서, 국익, 국내 정치 등의 이유로 가끔 이견을 드러낸다. 미국의 아시아 기축 동맹인 미·일 관계에서도 이 같은 현상은 종종 발견된다. 최근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이 집권 후 처음으로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을 때도 양국 정상은 각자의 입장 차이를 거리낌없이 밝혔다. 그렇다고 이 나라들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에 문제를 안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 한·미동맹은 조금 다르다. 정부 관리들은 항상 “한·미 간에는 아무런 입장 차이도 없다”고 말해야 한다. 한·미 간에는 언제나 한치의 오차도 없이 의견이 일치해야 하고, 조금이라도 차이점이 있는 것처럼 외부에 알려지면 안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3각동맹의 그림자 (일러스트) ㅣ 출처:경향DB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시대 선언과 함께 한·미동맹은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정, 양국 공동 번영이라는 목표에서 이탈해 미국의 중국 견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다. 지난주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 국방장관(2+2) 회담의 결과물인 양국 공동선언문은 북한의 위협을 지칭하면서 실제 그 대응에 있어서는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이 확연하다.

미국은 아·태 지역에서 미국이 참여하는 소규모 안보체제를 여러 개 만들어 중국을 포위하려는 의도를 본격화하고 있다. 미국이 최근 한국에 부쩍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는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도 그중 하나다.

미국은 한국, 일본과 동맹관계지만 한·일은 군사·안보 분야에 관한 한 기초적인 협력 수준에 머물러 있다. 일제의 침략 역사와 현재 한·일 관계, 국민정서 등을 감안하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미국은 한·미·일 안보협의체에서 가장 약한 고리인 한·일 간 군사협력을 강화해 3국 공동의 전략으로 중국을 견제하고 싶어한다.

지난 15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로스앤젤레스 국제문제협의회에서 한 연설에서 “한·미동맹은 분명히 더 많은 관심과 자원, 그리고 어려운 결정을 수반하게 되겠지만 이는 한·미동맹 진전에 따르는 당연한 비용으로 우리는 이를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동맹관계 진전 자체가 한·미동맹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어떤 비용을 지불하더라도 한·미동맹만은 진전시켜야 한다는 당위는 목표와 전략의 본말전도다. 한·미동맹을 진전시키고 양국 관계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진정 말없이 미국의 대(對)중국 봉쇄에 앞장서고 일본과의 과거 역사를 묻어둔 채 군사협력을 강화하겠는가.

각자 처한 국제 환경과 국내 사정이 전혀 다른 한·미가 모든 사안에 완벽하게 견해를 일치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지금 밖으로 드러나지 않은 한·미 간의 민감한 사안도 많다. 미사일 사거리 연장 논의와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 등이 대표적이다.

좋은 동맹이란 ‘빛 한줄기 새어들어올 틈도 없이’ 완벽하게 일치된 견해를 항상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수시로 발생하는 충돌을 합리적인 방법을 통해 조율하고 서로가 만족할 수 있는 해결책을 신속히 내놓을 수 있는 관계가 최상의 동맹 관계다. 호혜 평등의 원칙하에 맺어진 주권 국가 간의 동맹 관계라면 더욱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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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 군부가 잇달아 반동적인 행보를 내보이면서 지난해 ‘아랍의 봄’ 시민혁명 이후 일궈왔던 민주화 전망이 흐려지고 있다. 지난해 2월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난 뒤 과도정부를 이끌어왔던 이집트 군최고위원회는 지난 16~17일 대선이 끝난 뒤 군통수권을 포함해 대통령의 권한을 대폭 박탈하는 내용의 임시헌법을 일방적으로 발표했다. 이는 대선 하루 전인 15일 이슬람주의 정당이 장악한 의회를 전격 해산한 데 이어 군부가 실질적인 민정이양을 사실상 거부한 것이다. 군부는 또 새로운 국방위원회를 구성해 대통령의 권한을 추가로 제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건 군부를 보필하면서 행정실무를 맡는 제한적인 권한을 위임받게 될 공산이 커졌다. 무슬림형제단을 비롯한 이슬람주의 세력과 일반 시민들이 “총성 없는 쿠데타”라며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이집트 시민들이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에 대한 재판 결과에 항의하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이집트 군부의 강수는 이번 대선에서 무슬림형제단이 내세운 모하메드 무르시 자유정의당 후보의 당선 가능성이 점쳐지면서 나온 것으로 보인다. 공식 선거 결과는 21일 발표되지만 무슬림형제단은 자체 출구조사 결과 무르시 후보가 52.5%의 득표율로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이집트 현지 언론은 물론 주요 외신 역시 무르시의 당선 가능성을 전하고 있다. 군부가 어깃장을 걸고 나선 이유는 1952년 쿠데타로 왕정을 무너뜨린 뒤 60여년 동안 누려온 정치적, 경제적 기득권을 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문민정부의 형식적인 출범을 허용하더라도 군부의, 군부에 의한, 군부를 위한 체제를 계속 유지하려는 속셈인 것이 분명하다.

무바라크 퇴임 직후만 해도 “시위과정에서 목숨을 내던진 모든 순교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던 이집트 군부가 민심을 정면으로 거스른 것은 시리아 유혈사태의 장기화로 드러났듯이 아랍권 민주화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이 시든 것과 무관하지 않다. 특히 1979년 이스라엘과의 평화협정 체결 이후 한해 수십억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원조에 의존해온 이집트 군부는 미국 입장을 무시하기 어려운 처지이다. 이런 점에서 미국이 즉각 “이집트 군부가 권력이양을 하지 않을 경우 미국과의 관계가 크게 훼손될 것”이라며 경고한 것은 일단 긍정적이다. 하지만 미국과 국제사회가 사태를 방관한다면 아랍권 최대 국가의 민주화가 물거품이 되는 것은 물론 중동지역의 안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집트 군부는 민주화의 장애가 아닌, 동반자가 돼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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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홍식 | 숭실대 교수·정치학

 

주말에 프랑스와 그리스에서 각각 치러진 총선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프랑스 총선 결과는 지난달 새 대통령으로 취임한 올랑드의 유로권 성장 전략에 얼마만큼의 힘을 실어줄 수 있을지를, 그리스 총선은 현재의 경제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안정적인 정부 구성이 가능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다.

한국이 유럽발 위기의 진화와 향방에 촉각이 곤두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불행히도 유럽 위기에 대해 한국 사회에서 쏟아내고 있는 시각과 해석은 지나치리만큼 정치적 이념 다툼으로 물들어 있다. 예컨대 2010년, 유럽위기가 확산되자마자 대통령을 필두로 한 한국의 보수 진영은 경제위기가 과잉 복지국가 때문이라는 타령을 늘어놓았다. 반대로 이번 상황에선 진보 진영이 위기의 주요 원인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규정하고, 강대국 독일은 오만한 가해자이며 약소국 그리스는 순수한 피해자라는 식의 이념적 프레임으로 덧칠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리스의 한 남성이 쓰레기통에서 토마토를 골라 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우선 그리스의 위기는 과도한 복지국가를 지향하다 초래된 것이 아니듯, 과감한 신자유주의 정책을 실현한 결과로 생긴 것도 아니다. 통상 신자유주의란 경제사회 영역에서 국가의 개입을 차단하고 정부의 비중을 축소시키는 변화를 의미한다. 하지만 그리스는 오히려 공무원 숫자를 꾸준히 증가시키면서 정부의 체중을 늘렸다. 또 국제금융시장에서 무분별하게 돈을 빌려 쓰는 무책임한 정책도 추구했다. 국제금융시장이라는 것이 신자유주의로 인해 확대되었고, 그 때문에 그리스가 그곳에서 큰돈을 빌렸으니, 작금의 위기가 신자유주의 때문이라는 주장은 억지스럽다. 백번 양보하더라도 신자유주의는 위기를 허용한 배경일 뿐, 위기를 초래한 주체이자 원인은 국가를 방만하게 경영했던 그리스 정부와 정책이다.

다음으로 독일을 유럽 통합과 유로 출범의 최대 수혜자이면서도 그에 따른 책임은 회피하려고 하는 오만한 강대국으로 묘사하는 것도 명백한 오류다. 60년이 넘는 유럽 통합의 역사에서 독일은 지속적으로 통합의 비용을 부담했다. 유럽연합을 주변 지역에서 중심으로 부를 집중시켰던 과거의 제국과 달리, 중심에서 주변 지역으로 부를 이전하는 새로운 성격의 정치통합체로 부르는 이유다. 게다가 독일은 유로 출범을 바랐던 나라가 아니다. 자국의 강한 도이치마르크를 유지하려 했고, 지금도 자국만의 화폐를 가지기를 희망하는 여론이 강하다. 독일이 현재 누리고 있는 경제적 지위는 유로 출범 이후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한 결과이며, 유로가 도입됐다는 사실 때문에 시장을 공짜로 차지한 것이 아니다.

끝으로 그리스를 유로권의 희생양인양 그리는 것도 현실 오도다. 그리스는 유로 출범 이후 위기 발생 직전까지 임금과 소득을 가장 많이 늘린 국가다. 달리 말해서 유로의 혜택을 가장 많이 누렸던 나라다. 다만 좋은 시절, 미래를 준비한 것이 아니라 소비를 하면서 나랏빚을 늘렸을 뿐이다. 상대적으로 그간 유로의 혜택을 그다지 누리지 못했던 포르투갈은 유럽의 지원에 대한 긴축 조건을 충실하게 이행하는 중이다. 아일랜드 역시 지난달 31일 국민투표에서 유럽이 요구하는 긴축협약을 60%의 찬성으로 받아들였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의 80%가 유로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유럽이 제시하는 긴축안에 대해선 70%가 반대한다는 그리스 상황에 대해 유럽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는 이유다.

그리스의 만성 질환은 정치다. 사회당의 파판드레우 가문과 신민주당의 카라만리스 가문 등 좌우를 막론한 정치권력의 세습, 폐쇄적 엘리트 집단의 정경유착으로 인한 감세와 탈세, 정치적 지지자를 위해 비효율적 공직을 만들어 주는 악습, 국제사회를 대상으로 벌이는 통계 조작 등은 그리스의 고질적인 병폐다. 국민을 무시하고 속이는 정치권의 자기 이익 챙기기가 나라를 수렁에 빠뜨린 그리스 사태는 12월 대선을 앞둔 한국 국민이 복지국가나 신자유주의 거대 담론은 잠시 접어두고 천천히 곱씹어봐야 할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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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관철 베이징 특파원 okc@kyunghyang.com

 

중국 상하이에서 광저우에 이르는 동남부 연안 지역은 30년 개혁·개방의 최대 수혜지역이다. 덩샤오핑(鄧小平)은 선부론(先富論·능력 있는 자가 먼저 부유해지는 것)을 주창하면서 이들 지역의 발전에 힘을 실어 줬다.

지난 2일부터 1주일여 동안 광둥성 주요 도시와 저장성 닝보시를 방문했다. 광저우는 쑨원(孫文)이 세운 황푸군관학교가 있는 중국 혁명의 요람으로 지금은 베이징, 상하이와 함께 중국의 3대 도시로 성장했다. 닝보는 인접한 상하이, 항저우와 더불어 1인당 GDP가 1만2000달러 수준으로 중국 평균의 두 배를 웃돈다. 중국을 선도하는 이들 도시가 글로벌 경제위기의 파고를 어떻게 넘기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중국의 동남벨트는 환골탈태를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다. 홍콩·마카오와 연결되는 주하이시의 헝친다오 신구와 닝보시의 항저우만 신구 같은 초대형 산업단지는 한결같이 생태와 환경을 중시하고 있었다. 공무원들도 하드웨어에서 소프트웨어로, 양에서 질로 발전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대세였다. 광둥성은 2015년이면 기존 해양산업에 레저, 서비스 산업, 해양문화 등을 포괄하는 해양경제가 GDP의 4분의 1을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중국 저장성 닝보항 부두에서 인부들이 하역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l 출처:경향DB

닝보의 한 기업인은 “항저우만 신구에 최신 공장을 지은 중국 지리자동차의 멘토가 도요타에서 현대차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지리자동차는 중국의 토종 메이커로 기술 수준은 현대차가 쏘나타 2를 만들 때의 수준과 비슷하지만 격차를 빠르게 좁혀가고 있다고 한다. 광둥성 둥관시에 있는 태양광발전 설비업체인 이스트그룹의 허스모(何思模) 회장은 “나는 개혁·개방에 감사하는 세대지만 100년을 갈 수 있는 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중국의 시성(詩聖) 두보(杜甫)가 태산을 바라보며 ‘언젠가 반드시 저 꼭대기에 올라 소소한 뭇 산을 한번 굽어보리라’라고 읊었던 것처럼 중국의 토종 기업들에서 결기가 느껴졌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갈 길이 멀다는 느낌 또한 지울 수 없었다. 경제 파트너로서의 신뢰를 잃게 만들 수 있는 무감각, 무신경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한 회사는 매출액이 얼마냐는 질문에 “홈페이지를 찾아보면 될 것”이란 말로 대신했다. 매출 전망은 고사하고 과거의 수치도 공개를 꺼렸다. 다른 기업에서는 부채 비율이 얼마냐는 질문에 “계열사가 많아서…”란 답이 돌아왔다. 홍콩 증시 상장 6년째인 회사가 기본적인 정보조차 자신들의 입으로 얘기하지 못했다. 올해 주가 상황을 묻는 질문에 “주식시장에 우리의 펀더멘털이 반영되지 않는다”는 심드렁한 답을 내놨다. 중국의 경제 통계에 외국의 불신이 깊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 법보다 관계가 우선시되는 중국 특유의 현상도 외국 기업엔 여전히 골칫거리로 보였다. 눈이 획획 돌아갈 정도로 무섭게 변신하는 중국을 보면서 경외감도 일었지만 다른 한편으로 한숨이 절로 나왔다. 중국이 우리와 자유무역협정 협상을 진행 중이고 아시아, 나아가 세계의 미래를 좌우할 수 있는 중추적 국가란 점에서 가슴에 답답함이 밀려 왔다.

올해는 덩샤오핑이 88세의 나이로 우한·선전·광저우·상하이를 돌면서 개혁·개방을 가속화해야 한다고 역설한 남순강화((南巡講話)를 한 지 20년이 되는 해다. 이번에 둘러본 지역은 공교롭게도 남순강화의 발자취가 어려 있는 곳이었다. 경제에서는 속도전을 펴면서 다른 분야는 아직도 만만디인 중국. 중국적인 것을 지켜나가되 세계와 소통하는 글로벌 마인드 습득에도 좀 더 속도를 내야 한다. 누군가의 말처럼 거대한 용이 머리와 몸통 꼬리까지 움직여야 하니 변화가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개혁·개방의 피로를 극복하고 진정한 업그레이드를 위해 누군가 제2의 남순강화에 나서야 할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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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형 | 서울대 라틴아메리카硏 교수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은 달러를 사랑한다. 불안정한 페소에 대한 오랜 불만의 산물이다. 평가절하와 예금 동결을 여러 차례 겪은 국민인지라, 이를 대응하는 방식도 전투적이다. 미 재무성의 한 보고서에 따르면, 브라질 사람들의 일인당 달러 보유액은 고작 6달러에 불과한데,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평균 1300달러를 가지고 있다. 이 항구도시에서는 부동산 거래도 달러로 이뤄진다. 만약에 달러 공급이 원활하지 않으면 부동산 거래는 중단된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는 수출 경기 급락 때문에 달러 공급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고, 달러 사용을 관의 허가를 받도록 했다. 심지어 해외여행도 관에 신고를 해야만 한다. 2002년의 디폴트 이래 아직도 국제금융 시장은 아르헨티나에 문을 닫고 있다. 최근에는 렙솔로부터 석유가스 기업 YPF를 떼어내어 국영화를 한지라 국제 금융환경은 살벌하기까지 하다. 당장 암시장이 창궐했다. 공식 환율은 달러당 4.49페소인데, 환전상들은 6.20페소까지 쳐준다. 사람들은 정부의 들쑥날쑥한 정책을 믿지 않는다. 오로지 달러를 축장하는 것만이 돈 가치를 보전하는 길이라 믿는다.


 상파울루 시민들도 요즘 평가절하와 인플레이션에 대한 불안감이 크다. 하지만 달러에 몰입하진 않는다. 헤알화를 신뢰하고, 저축의 금리 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할 뿐이다. 지우마 호세프 정부는 작년 말부터 경제운용의 방침을 과감하게 바꾸고 있다. 그동안 인플레이션을 퇴치하겠다고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 고금리, 저환율 체제를 전면적으로 개편하고 있다. 당장 토빈세(6%) 제도를 도입하여 투기자본의 유입을 억제했고, 그 덕분에 평가절하의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동안 금융권을 살찌운 고금리 체제도 점차 저금리 체제로 전환하고 있다. 기준금리인 셀릭 금리는 작년 8월에 12.5%였는데, 현재 8.5%까지 떨어졌다.



브라질 최초 여성 대통령에 당선된 지우마 호세프(경향신문DB)



저금리와 적정 환율은 수출업자들과 국내 생산자들에게 큰 기쁨을 준다. 하지만 국공채 투기에서 재미를 보았던 금융귀족들은 울상이다. 비록 올해의 성장률은 3%에 머문다고 해도 경제운용 체제의 전환은 룰라가 이루지 못한, 금융소득자 천국에서 생산자 천국으로의 이행을 의미하고 있다. 이 전환이 브라질의 네덜란드 병을 치유하고, 제조업의 국제경쟁력을 높여 새로운 발전을 가져올지 주목된다.


두 도시의 분위기를 보면 두 여걸의 리더십도 잘 드러난다. 지우마 호세프는 룰라의 그늘에서 벗어나 비전을 가진 통 큰 정치인이란 인상을 주고 있다. 그녀는 그토록 어려운 경제운용의 틀을 바꾸는 데 무리수를 두지 않고, 영리하게 대처했다. 경제위기를 빌미로 과감하게 정책전환을 이룬 것이다. 정치에서도 큰 변화를 주었다. 그녀는 연립내각에서 부패 혐의가 있는 장관들을 모조리 쫓아내 브라질 특유의 합의정치(봐주기 정치)를 깨어 버렸다. 조만간 고위공직자의 소득도 공개하겠다고 했는데, 둘 다 룰라 정부도 하지 못했던 금기사항이었다. 이런 까닭에 상파울루 사람들은 정부를 신뢰하고, 불안정하지만 만들어진 제도를 따른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이익집단이나 사회세력들은 자신의 이익에 아주 민감하다.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정부가 물가안정을 위해 농산물 수출 물량을 줄이고자 수출세나 농지세를 들먹이면, 전국의 농업 생산자들이 궐기를 한다. 친정부 단체들도 이에 반대하는 데모를 조직하고, 거리는 곧 깃발로 뒤덮인 난장판이 된다. 정부 역시 애국주의나 민족주의 감정을 동원하는 즉흥적인 정책을 즐겨 사용한다. YPF를 국영화하는 과정은 한 편의 드라마처럼 흥미진진했다. 하지만 국제사회와의 약속을 자주 어기는 사태가 이어지면서, 아르헨티나는 미국과 유럽연합으로부터 배척을 당하고 있다. 모두가 불안정한 이 나라에서는 국민들은 달러에 탐닉하고, 이익집단은 단기적인 이해관계에 몰입한다. 제도보다는 인치와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정치적 리더십도 이에 따라 춤출 수밖에 없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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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준형 | 한동대 교수·국제정치학


 

시리아 사태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되고 있다. 중동의 민주화 바람을 타고 지난해 3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후, 유엔이 집계한 보수적 통계를 따르더라도 1만명이 넘는 희생자가 발생했다. 더욱이 지난주에는 훌라에서 100명 내외의 민간인이 학살당하는 사건까지 발생했다. 그 절반은 어린이와 부녀자들인데, 모두 손이 뒤로 묶인 채 가까운 거리에서 머리에 총을 맞고 즉결 처형됐다. 아사드 정부는 테러리스트의 소행이라며 책임전가에 나섰지만 세계의 공분을 피하지 못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 국가들이 항의표시로 연이어 자국 주재 시리아 외교관을 추방했다. 


 학살사건을 계기로 시리아에 대한 군사개입 여부가 다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는데, 과연 이번에는 실현 가능할까? 프랑스의 새로운 대통령 올랑드가 가장 적극적으로 군사력 사용의 가능성을 언급했지만 현실은 전혀 녹녹하지가 않다. 무엇보다도 미국의 결심이 서지 않았고, 시리아의 맹방인 러시아가 거부권을 사용할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유엔이 움직이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 보인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경향신문DB)


이라크 종전, 오사마 빈 라덴 저격과 함께 리비아 개입 성공은 오바마 대통령의 3대 외교치적으로 자주 거론돼왔다. 당연히 11월 재선 캠페인의 주요 홍보항목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리비아식 해법이 시리아에서 재현될 수 있을까라는 질문이 나온다. 더욱이 리비아의 벵가지 대학살을 우려해 개입했던 전례로 미루어 이번 훌라 학살이 새로운 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시각이 있다. 미 합참의장 마틴 뎀프시가 그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그러나 실현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옵션들 중에 군사작전도 함께 포함돼 있다는 식의 원론적 언급은 나오지만, 오바마는 움직이지 않을 것 같다.


그렇다면 오바마가 어떤 점에서 시리아를 리비아와 다르게 보고 있을까? 리비아 사례는 유엔은 물론이고 지역 국가들의 단결이 확고했으며, 특히 아랍권의 지원이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금은 시리아의 맹방이자 무기 공급자인 러시아와 이란이 군사조치에 반대하고 있으며, 중국도 동조하고 있다. 또한 리비아에선 카다피를 대체할 세력이 확실했지만, 시리아는 통일된 야권이 없는 데다 최근에는 최대 반정부단체 내에서 분열이 심화돼 리더가 사임했다. 아사드 정권이 무너지면 이슬람원리주의 정부가 집권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점도 미국을 주저하게 만드는 이유다. 최근에는 알카에다 침투설까지 등장하면서 독일이 제안한 반군에 대한 무기제공마저도 난색을 표한다.


언급한 이런 다양한 이유들은 나름의 타당성이 있지만 핵심은 아니다. 오바마가 리비아와 달리 시리아에 군사개입을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성공 가능성이 낮기 때문이다. 그의 지난 4년이 그랬듯이 실용주의 또는 현실주의적 사고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 세계가 동조했으며, 공습만으로도 문제가 해결될 수 있었던 리비아와는 달리 시리아는 그로선 지상군을 투입해도 쉽지 않을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리비아는 미국이 숟가락만 올려놓으면 승리가 예상됐었지만, 시리아는 전혀 앞이 보이지 않는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긴 전쟁을 뒤로하고 철수하는 마당에 다시 미군을 파견한다는 것은 11월 대선을 앞두고 엄청난 부담이 아닐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지난 5월 말 한국의 현충일에 해당하는 메모리얼 데이 연설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미국의 젊은이들을 파병하지 않겠다고 선언했었다.


그럼에도 오바마의 고민은 깊어지고 있다. 러시아를 압박함으로써 문제해결을 시도하고 있지만 푸틴과의 기싸움이 쉽지 않다. 국내적으로도 공화당의 정치공세가 강화되면서 다가오는 대선에서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학살을 방관하고 있는 노벨평화상 수상자로서의 도덕적 권위와 유일패권 미국의 리더십에는 큰 흠집이 나고 있다. 이럴 거면 함부로 세계를 가르치려 하지 말았어야 한다는 교훈을 미국은 이참에 되새겨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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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신모 | 워싱턴


버락 오바마는 마리화나(대마초)를 피운 사실을 인정한 최초의 미국 대통령이다. 그는 대통령이 되기 전에 출간한 자서전에서 이를 공개했다. 젊은 시절 오바마가 인종 문제로 정체성의 혼란을 겪고 가정적으로 평탄치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해할 만도 하다. 더구나 그가 고교 시절을 보낸 하와이는 미국에서 가장 양질의 마리화나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작가 데이비드 마라니스가 다음달 19일 출간 예정인 오바마의 전기 <버락 오바마-더 스토리>에 나오는 그의 고교 시절 모습은 마리화나를 단지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라 탐닉하는 수준이었음을 보여준다. 이 책에서 오바마는 ‘조인트(마리화나를 담배처럼 말아 여러 명이 돌려 피우는 것)’를 한번 더 맛보기 위해 새치기도 불사하는 중증 애호가였다. 또 밀폐된 차 안에서 마리화나를 피운 뒤 고개를 뒤로 젖혀 천장에 남아 있는 마지막 연기까지 들이마시는 ‘화려한 개인기’도 갖고 있었다.

과거 공직자에게는 마리화나 경험이 용인되지 않았다. 1987년 연방대법관에 지명된 하버드 법대 교수 더글러스 긴스버그는 대학 시절 마리화나 흡연 사실이 공개돼 스스로 사퇴했다.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이 “피우기는 했지만 들이마시지는 않고 입으로만 뻐끔거렸다”는 낯간지러운 변명을 한 것도 마리화나 경험을 용인하지 않는 당시 분위기 때문이었다. 젊은 시절 마리화나를 피운 것이 분명해 보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은 아예 언급을 피했다. 지금 오바마가 마리화나 흡연 사실을 거리낌없이 공개하는 것은 과거에 비해 큰 인식의 변화인 셈이다.

 

멕시코 티후아나의 마약 밀매범들이 마리화나 더미 뒤에 서 있다 ㅣ 출처:AP연합뉴스/경향DB

그렇다면 미국 사회가 과거보다 마리화나에 관대해진 것일까. 법적으로는 전혀 그렇지 않다. 2010년 미국에서 체포된 마약 사범 가운데 절반 이상인 85만명이 마리화나와 관련이 있다. 그 가운데 88%는 단순히 마리화나를 소지한 혐의였다. 마리화나 소지죄로 체포된 사람은 오바마가 마리화나를 즐기던 시절보다 2배 가까이 늘었다. 오바마의 고교 시절에 지금과 같은 수준의 단속이 시행됐더라면 그의 이력에는 마약 범죄 기록이 남았을 가능성이 크다. 그로 인해 미국 대통령은 언감생심, 경찰서와 법원을 들락거리다 결국 지금 거리에 넘쳐나는 수많은 흑인 실업자 중 한 명으로 전락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런데 마리화나 흡연 사실을 솔직하게 공개하고 대통령이 된 오바마의 마약정책은 전임자들과 다르지 않다. 미국의 마약정책은 그동안 ‘통제와 처벌’ ‘관용과 치료’라는 접근법 사이를 원칙없이 오락가락하면서 범죄자를 양산하고 미국 내 약물중독의 폐해를 키워왔다. 뭔가 다를 것으로 기대했던 오바마 역시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다. 미국의 마약 문제는 중남미 국가의 경제·민생과도 직결되는 사안이다. 콜롬비아·멕시코 등이 마약 문제로 국가적 기능을 위협받고 있는 이유는 연간 300억달러 규모의 미국 마약시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미국민들의 마약 사용을 줄이고 마약시장 규모를 축소시키기 전에는 미국 사회의 건전한 발전은 물론 중남미 국가의 정치 혼란과 치안 불안도 해결할 수 없다.

지금 미국 내에서 마리화나 합법화에 대한 찬반 여론은 거의 반반이다. 오바마는 마약정책 개혁에 앞서 이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마리화나는 여타 약물보다 폐해가 적고 다른 마약의 남용을 막아준다는 주장과 마리화나는 모든 마약으로 통하는 관문이므로 절대 허용해서는 안된다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 있다. 오바마는 과거의 경험을 고백하는 것에 그쳐서는 안된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개방적인 마약정책을 쓸 것인지, 아니면 더욱 강력한 통제로 남용을 억제할 것인지 결단을 내려야 한다. 필요하다면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절친한 친구의 화법을 빌려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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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경제학


천안함 사건에 후속한 5·24 조치가 시행된 지 만 2년이 지났다. 정부는 2010년 천안함 침몰을 북한의 공격에 의한 것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개성공단을 제외한 남북교역과 우리 국민의 방북을 불허하고 북한 선박의 우리 측 수역 항해를 금지하는 내용의 5·24 조치를 발표했다. 이후 남북관계는 단절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5·24 조치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한편에서는 북한에 대한 제재 효과가 있었다고 하는 반면, 다른 한편에서는 남한 기업의 피해가 더 컸다고 주장한다. 모두 사실의 조각을 담은 견해이다. 즉 남북한 치킨게임의 적대관계 속에서 양측 모두 피해를 입고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5·24 조치 속에서 돋보인 것은 개성(開城)의 존재감이다. 5·24 조치는 남북한 당국간 협의·합의의 취약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남북한 국가간 연합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을 약화시켰다. 반면에 5·24 조치의 폭풍을 뚫고 성장해온 개성지역은 남북한 국가간 갈등에도 버텨낼 수 있는 ‘글로벌 지역’으로서의 기반을 마련했다고도 볼 수 있다.

개성공단은 2003년 남북 경제협력사업으로 시작됐지만, 개성지역의 경제적 잠재력은 예사롭지 않은 연원을 지니고 있다. 개성이 지닌 과거의 힘이 현재 개성의 부활과 서로 무관하다고 할 수는 없다. 조선시대의 강력한 상업 억제 속에서도 개성지역은 드러내놓고 상업 이윤을 추구한 곳이다. 개성은 조선 초부터 주민 구성에서 상인이 중심이 되었고 도시재정도 화폐경제를 기반으로 했다. 개성상인이 한국을 대표하는 상인이 된 것은 조선 후기다. 이때 개성상인의 활동은 상업 전 분야와 함께 농업·금융·제조업에 미쳤으며, 육지시장은 물론 전국적 규모의 상선 활동도 전개했다. 17세기 후반 이후 청과 일본과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개성상인들은 의주상인(灣商), 동래상인(萊商)과 함께 국제무역을 주도하는 상인으로 성장했다. 개성상인들은 국내 상업과 국제무역에서 축적한 자본을 생산부문에도 투자해 인삼·홍삼 재배업과 광업에 진출한 바 있다.

 

여야 의원들이 개성공단을 방문해 생산시설을 돌아보고 있다. ㅣ 출처:경향DB

다른 한편 개성지역은 과거와는 다른 ‘글로벌 지역’이기도 하다. 개성공단은 남한의 자본과 기술, 북한의 노동력과 토지가 결합해 추진된 사업이지만, 이제 개성지역은 남북한 양국 정부의 힘으로부터 얼마간 자립성을 지닌 존재로 발전하고 있다.

남북한 분단체제는 각각의 지역을 국가에 강하게 결박시킨 국가간 체제였다. 근대 이후 국가간 체제는 모든 활동을 국내 영역과 국외 영역으로 구분하고 국내 국가체제를 위계제로 조직했다. 특히 북한에서는 국가와 기업이 일체화됐고 시장은 억압됐다.

그런데 어느새 글로벌화가 진행되었다. 이는 지역간 활동, 상호작용, 네트워크를 통해 국가에 의해 구획된 공간적 조직방식을 변화시키는 과정들이다. 개성지역은 국가 개입에 의한 발전방식과는 달리 기업·화폐·정보·자원의 글로벌 네트워크와 이동의 심화를 통한 발전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 분단체제의 국가간 갈등을 뚫고 개성지역에 ‘글로벌 지역’이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지역은 글로벌화한 생산망과 유통망에 연계돼 있다. 1990년대 초 이래 대다수 국가는 해외투자를 자유화하고 자국에 대한 투자를 장려한 바 있다. 대부분의 경우 1차 산품에 대한 해외직접투자는 감소하고 제조업의 투자는 증가했다. 제조업 생산공정을 초국적 차원으로 확장함에 따라 중간제품 거래가 증가하고, 신흥공업국 제조업 수출에서 다국적 기업이 중요해졌다. 개성지역의 발전은 북한이 외부의 제조업 투자를 구하게 된 흐름과 남한이 글로벌 차원에서의 생산네트워크를 발전시켜가는 흐름이 서로 만나는 지점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개성지역 안에서도 네트워크 조직이 만들어지고 있다. 이행기 경제의 일반적 과제는 위계제 경제조직을 유연화·효율화하는 것이다. 개성지역에 형성된 정치·경제 조직은 종래의 위계제적 조직에 비위계제적 성격을 강화하는 네트워크화의 경향을 보이는 쪽으로 발전하고 있다. 물론 가장 뚜렷한 조직형태는 여전히 위계제적이지만, 그 위계성의 정도는 다양해지고 있다. 개성지역 입주기업들 사이의 관계, 입주기업과 노동력 알선기업 간의 관계, 입주기업과 남북한 정부기구 간의 관계 등에서 다양한 네트워크 형태가 나타나고 있다.

개성지역의 경우 정부 조직도 위계원리로만 작동될 수는 없고 여러 행위 주체들의 네트워크 형태가 개입하게 된다. 남한 측 정부기구로는 개성공업지구관리위원회가 있는데, 통일부는 물론 기획재정부, 지식경제부 등이 개입돼 있다. 북한 측 정부기구로는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있다.

개성지역은 글로벌화와 지역화가 동시에 진행되며 서로를 강화해주고 있음을 보여준다. 지역간·지역내 네트워크의 증대는 분단체제하에서 남북한의 국가가 각각의 영토에서 무제한적·배타적으로 공적 권력을 행사하는 시대가 저물고 있음을 의미한다. 이제 신의주와 라선이 개성의 뒤를 이을 것이다. 새로운 한반도 경제가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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