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하원 외교위원회가 지난 17일(현지시간) 건설적이고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를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하원 외교위는 ‘공동의 이익 추구를 위한 한미·미일 간, 그리고 3국 간 협력의 중요성과 활력에 관한 하원의 인식’에 대한 결의를 전체회의에서 가결했다. 엘리엇 엥걸 위원장이 지난 2월 대표 발의한 이 결의안이 이 시점에서 통과된 것은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로 치닫는 최근 상황을 우려하는 미 의회의 인식이 반영된 것으로 봐야 할 것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KPF) 주최로 18일 오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일본의 경제보복과 한일관계’포럼에 참석한 패널들이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왼쪽부터 정인교 인하대 국제통상학과 교수, 이원덕 국민대 국제학부 교수, 남 교수, 유의상 식민과냉전연구회 이사(전 주영 한국대사관 총영사). 김정근 기자


한·일 갈등에 대해 미국은 중립을 지키고 있지만, 갈등이 수위를 넘어설 경우 미국의 동북아 전략에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을 경계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차관보의 17일 발언에서도 이런 인식이 엿보인다. 그는 “미국은 가까운 동맹인 한국·일본과의 관계를 강화하는 데 큰 비중을 두고 있다”며 “미국은 가까운 친구이자 동맹으로서 ‘해결 노력’을 지원할 수 있는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일본은 미국 행정부와 의회의 우려 표명을 가벼이 넘겨서는 안된다.


18일은 일본이 제안한 ‘제3국을 통한 중재위원회 구성’의 답변 시한이다. 청와대가 이미 수용거부 입장을 밝혔는데도 일본은 아랑곳없이 답변을 채근하고 있다. 자신들이 일방적으로 시한을 그어놓고 이를 도발의 빌미로 삼으려는 태도는 용납할 수 없다. 중재위는 본질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고,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쌍방 간에 분노만 키울 뿐임을 일본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일본은 중재위 대신 현안을 포괄적으로 논의할 수 있는 외교협상에 나서야 한다.


일본이 협상에 전향적인 태도를 취한다면 한국도 협상에 응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일본은 한국 정부 관계자가 17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한 발언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관계자는 “우리는 건설적 제안에 열려 있고 융통성을 발휘하려 한다.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릴 수 있다”고 했다. 일본과 물밑에서 접점을 찾으려고 노력할 의향이 있음을 명확히 밝힌 것이다. 


일본은 상황이 더 이상 악화되지 않도록 자제하면서 한국과의 외교협의에 나서야 한다. 대화할 의지가 있다면 ‘화이트리스트’ 한국 제외 등 추가도발은 삼가야 한다. 한국 정부도 강제징용 배상 문제를 실질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폭넓은 대안을 찾으려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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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 무대에는 문명과 야만이 공존한다. 대화·타협·배려·상호존중·설득에서는 문명이, 협잡·배신·모욕·완력·이기심에서는 야만이 얼굴을 내민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불만을 가진 국가가 만족하는 나라를 상대로 집적거리는 무질서한 세상”이라는 폴 케네디의 말을 빌리면, 문명보다는 야만의 힘이 우세한 세계임이 틀림없다. 이른바 문명국가라고 자부하는 한국과 일본에서 작금에 벌어지고 있는 일이기도 하다. 


한·일 갈등은 대부분 과거사 문제에서 출발했다. 과거사에 대한 공감의 정도에 따라 한·일관계는 춤을 추었다. 요즘 상황도 궁극적으로는 과거사 정리가 미흡했기 때문이다. 1965년 한·일 양국은 모호한 내용을 놔둔 채 청구권협정을 체결했다. 양국은 이를 자국의 입맛대로 해석했고 국민 설득에 이용했다.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돈을 받음으로써 일본이 한일합병의 불법성을 인정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일본은 불법성과는 무관하게 경제원조라고 풀이했다. 


일러스트_김상민 기자


지난해 대법원의 판결은 한일합병이 불법이었고 따라서 일본이 불법행위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일본은 이미 청구권협정으로 5억달러를 한국에 지불함으로써 모든 배상이 끝났다는 입장이다. 일본의 반발은 불 보듯 했다.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행위들이 이뤄진 마당에 정부는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하면서 양국 관계를 새롭게 정립할 방안을 찾아야 했다. 한·일관계는 청구권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북, 한·중, 한·미, 나아가 동아시아와 글로벌 이슈에 머리를 맞대고 협조해야 할 국가다. 


그런데 한일의원연맹 소속 의원과 일본 관련 전문가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정부가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선 모습은 찾기 힘들다. 오히려 일본이 한국 정부에 한국 사법부의 판결에 대한 협의를 요구했으나 한국 정부가 미온적으로 대처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일본의 반격 가능성을 전문가들이 정부에 경고했다는 말도 나온다. 한·일 간 정면충돌에 정부의 책임이 없다 할 수 없다. 하지만 ‘일본 정부가 아무런 외교적 협의나 노력 없이 일방적으로 조치를 취했다’는 게 정부의 입장이다. 정부는 일본이 비상식적인 방식으로 대응하지 않을 것이라고 낙관한 것 같다.


그러나 한국은 일본에 허를 찔렸다. 일본은 무역보복 조치를 감행했다. 일본은 반도체 제조에 쓰이는 고순도 불화수소 등 3가지 품목의 한국 수출규제에 나섰다. 한국이 절대적으로 일본에 의존하는 소재다. 규제 이유는 ‘북한 화학무기나 독가스 개발에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얼토당토않다. 하지만 문제는 일본이 갖은 이유를 대면서 앞으로도 보복수단을 동원할 것이라는 점이다. 


일본은 수출규제를 하면서 적어도 2가지를 각오하고 있다. 먼저 한·일 간 신뢰관계의 균열이다. 일본은 “한국 정부를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밝혔다. 한·일 정부 간 믿음에 금이 갔고, 기업 간 수십년 동안 쌓아온 신뢰도 흔들리고 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불신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일본이 자국 기업의 피해를 각오하고 있다는 점이다. 두 나라 기업은 국제분업의 사슬에 매여 있다. 서로가 필요한 공생관계다. 한국 기업이 피해를 입으면 일본 기업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자해적인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하겠다는 생각이다. 


아베 총리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중국을 상대로 했던 방식을 원용하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가장 아파할 곳을 찔렀다. 미국이 타깃으로 삼은 중국 화웨이는 미래산업인 5G산업의 총아다. 미국은 화웨이 규제 이유를 ‘미국 안보 위협’이라고 했다. 일본은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반도체산업을 공략 대상으로 삼았다. 이유도 ‘일본 안보 위협’이라고 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규제 강도를 높이면서 궁지에 몰아넣고 있다. 미국은 중국이 저항하자 관세규제 대상을 전체 수입품으로 확대했다. 일본도 수출규제 품목은 3가지로 출발했으나 대폭 늘어날 것이다. 당장의 대처 방안이 없다. 시간은 공격자의 편이다. 미·중 갈등 속에 중국의 올 2분기 성장률이 27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으로 떨어졌다.


외교는 도덕이 아니다. 정의(正義)도 각자의 해석에 달려 있다. 한·일 무역갈등이 장기화하면 한국의 미래산업은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다. 한국의 피해가 일본보다 크다. 자신의 힘을 과소평가하는 것이 문제라면, 더 큰 문제는 과대평가하는 것이다. 반일감정이나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대책이 아니다. 우리 기업에 부메랑이 될 수 있다. 위정자는 감상이나 울분이 아닌, 냉정한 시각으로 세상을 진단하고 행동해야 한다. 지금 필요한 건 죽창가가 아니라 거란 소손녕의 입을 틀어막고 강동6주를 획득한 서희의 외교술이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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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데자뷔다. 일본이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판결에 수출규제로 반발한 가운데 66년 전에도 한·일 간에 역사 문제가 통상 갈등으로 비화된 적이 있다. 바로 1953년 열린 국교정상화 교섭에서였다. 한국이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요구하자 일본 측 수석대표인 구보다 간이치로는 “일본도 철도·항만에 대한 청구권을 말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만약 일본이 (한국에) 진출하지 않았다면 중국이나 러시아에 점령돼 더욱 비참한 상태에 놓였을 것”이라고도 했다. 격분한 이승만 정부는 즉각 일본과의 무역중단을 선언했다. 이른바 ‘구보다 망언’ 사건이다.


구보다 망언사건은 일본이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부정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또한 이 때문에 불법성을 주장하는 한국과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도 시사한다. 이 문제는 한·일 양국이 타협할 수 없는 역사문제의 하나가 되었다. 이번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의 본질도 여기에 있다. 법원이 1965년 한일협정에 따라 일본이 한국에 지불한 3억달러로 모든 청구권이 매듭되었다는 일본의 주장을 수용하지 않았고, 일본이 이에 반발해 일으킨 것이 이번 사태이기 때문이다.


물론 1953년의 한·일 무역분쟁과 수출규제 사태는 공통점 외에 차이도 있다. 무엇보다 양국의 위상이 크게 달라졌다. 일본은 여전히 동북아 강국이지만 한국은 무역대국으로 성장했다. 문제는 이런 현실을 일본이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양국 갈등이 발생할 때마다 한국을 힘으로 윽박질러 해결하려 드는 태도가 여전하다. “국제정치의 본질은 권력(힘)”이라고 주장한 정치학자 한스 모겐소 신봉자가 아닌가 싶을 정도다. 그러나 그런 모겐소도 힘의 본질과 한계를 인식하고 협상 등 외교적 수단을 고수하라고 권장했다.


이번 사태를 돌아보면 과연 ‘준비의 일본’답다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경제와 안보 분야를 한국의 아킬레스건으로 간주하고, 이 분야를 포괄하는 반도체를 콕 집어 공격 대상으로 삼은 것부터가 용의주도하다. 반도체를 집중 공격하면 기업들이 비명을 지르고 한국 정부를 ‘종북’으로 몰아 무릎을 꿇릴 수 있을 것으로 계산한 것 같다. 특히 대북 문제는 한국과 미국의 보수 세력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뒤집어씌운 이른바 ‘김정은 대변인’ 프레임을 염두에 뒀을 것이다. 과거 진주만 공습 1년 전부터 어뢰투하훈련을 했다는 나라이니 이런 정도는 약과일지 모른다.


하지만 일본의 스텝은 시작부터 꼬였다. 한국에 대한 ‘대북제재 불이행 의심국가’란 일본의 의혹제기는 1주일도 안돼 근거 없는 허위로 판명났다. 오히려 일본이 레이더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수출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에 따라 수출규제 명분은 무너지고 한국으로부터 국제기구의 대북제재 위반 조사를 받자고 역공당하는 처지에 몰렸다. 자유한국당의 ‘초당대처’ 방침으로 ‘종북몰이’도 큰 기대를 걸기 어려워졌다. 수출규제 조치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을지 점점 더 불분명해지고 있다. 근거 없는 주장과 억지 논리의 끝이 드러나고 있는 셈이다.


일본이 간과한 대목은 더 있다. 국제사회는 정글 같은 곳이지만 동시에 이성과 상식이 여전히 통용되는 무대란 점이다. 역사를 통상 문제와 엮는 것은 21세기 자유무역질서에 반하는 행동이다. 여태껏 자유무역을 주장해온 일본의 태도와도 모순된다. 따라서 이런 시도는 성공할 수도 없고 해서도 안된다.


현시점에서 일본의 한국 보복이 실패할 것이라고 결론짓는 것은 성급한 일이다. 비록 수출규제 명분이 약화됐어도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은 분명하다. 지금 일본을 지배하는 것은 ‘약속을 안 지키는’ 한국 정부를 혼내줘야 한다는 의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지, 가능하다 해도 근본적인 해결책인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한국은 66년 전의 만만한 국가가 아니다. 혹시 일본이 미국에 차이고 중국에마저 추월당해 구겨진 자존심을 세울 상대로 한국을 선택했다면 잘못 고른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다.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이웃국가다. 같은 아시아 경제 블록의 주요 국가로, 서로 부품과 완제품 제공국가로 종횡으로 얽혀 있다. 북한 등 동북아 안보 문제에 대해 협력해야 하는 관계이다. 더구나 관광과 한류 등 양국 민간 교류도 긴밀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인권이라는 보편의 가치를 신봉하는 동북아 ‘유이(有二)’의 국가들이기도 하다. 양국 갈등으로 인해 이런 소중한 공유자산을 훼손하지 않기 바란다. 이들 가치는 식민지배의 불법성 문제와 연계해 논의할 수도 있을 터이다. 특히 아베 총리가 이 대목에 유의했으면 한다. 일본 참의원 선거가 열리는 21일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닫아둔 마음의 문을 열기 바란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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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유력 신문 뉴욕타임스(NYT)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무역보복 조치를 세계무역질서에 대한 도전이라고 비판했다. NYT는 ‘일본이 도널드 트럼프를 따라 하며, 한국에 대해 무역을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 기사를 통해 일본이 확실하지도 않은 국가안보상의 우려를 이유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가했다고 보도했다. 또 아베 신조 총리가 국가안보 등을 이유로 상대국에 관세폭탄을 안기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모방하고 있다는 표현도 썼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2일 (출처:경향신문DB)


NYT의 이 보도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일본의 조치가 자유무역이라는 오랜 가치와 모순된다고 지적한 점이다. NYT는 아베 총리가 지난달 말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서 주최국 의장으로서 “자유롭고 개방된 경제는 글로벌 평화와 번영의 근간”이라며 자유무역의 가치를 강조해놓고 이틀 뒤에 한국을 상대로 이를 정면으로 뒤집었다고 지적했다. NYT는 “(이런 조치로) 아베가 자유무역에 타격을 가한 가장 최근의 세계 지도자가 됐다”고 일침을 놓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언론이 제3자의 시각에서 하는 비판을 일본과 아베 총리는 뼈아프게 받아들여야 한다. 또 이 신문은 일본이 ‘한국과의 신뢰 관계’ ‘수출관리를 둘러싸고 부적절한 사안’ 등을 수출규제의 명분으로 내세운 것도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정치와 무역 등 경제 활동은 분리하는 것이 지난 수십년간 국제 경제를 발전시켜온 근간이었는데 일본이 이를 무시했다는 것이다. 일본을 미국과 러시아에 이어 3번째로 안보를 무역에 연관시켜 보복한 국가라고 지적했다. 게다가 일본은 핵·화학 무기 제조에 쓰이는 불화수소를 몰래 북한으로 밀수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가 슬며시 거둬들였다. 일본이 억지 논리와 근거 없는 주장으로 자유무역 질서를 흐리고 있다는 것이 국제사회의 시각임을 이번 보도는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그런데도 일본 측은 같은 주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고노 다로 외무상은 16일 한국의 강제동원 피해자들이 미쓰비시중공업의 자산을 매각하면 보복 조치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이 다음 조치로 한국과 산업 기술교류 중단을 선언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오는 21일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이 이기면 더 공세를 펼 가능성도 있다. 일본이 지금 할 일은 추가 대응이 아니다. NYT 보도 같은 국제사회의 객관적인 지적을 새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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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일본 신문이나 TV를 보는 게 심란했던 적이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를 두둔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억측과 중상, 불만과 조롱이 넘치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이나 ‘촛불혁명’ 등을 두고 일본의 ‘한국 깎아내리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의구심이 간다는 억지뉴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보복조치의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을 들면서 확인되지 않는 얘기를 흘리고 북한과의 연관 의혹까지 제기한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일본 정부·여당 관계자발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흘린다. 아베 신조 정권과 가까운 신문·TV가 근거 없이 한국의 수출관리가 엉망이라는 보도를 내보낸다. 사린가스나 VX 같은 생화학무기 제조에 전용 가능한 물자 유출설도 곁들인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국을 ‘안보 문제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TV <와이드쇼> 프로그램들이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다룬다. VX가 북한이 김정남(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을 암살할 때 사용됐다고 설명하면서 사건 당시의 자극적인 화면을 내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등장해 이번 조치를 정당화한다. 생각해볼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불신과 냉소다.


이번 조치가 “안보상 우려에 따른 무역관리 재검토”라는 일본 정부 주장을 답습한다. 일본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관리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대로 수출관리를 하고 나서 국제사회에 호소하라”고 비아냥댄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가 인기가 많으니 맥주수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엔 실소만 나온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지난 12일 한·일 당국 간 첫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은 ‘부적절한 사례’가 북한 밀반출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치고 빠지기’ 식이다. 이미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안보 문제를 건드려 ‘코리아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억지주장은 ‘신문·방송 → 와이드쇼 → 주간지 등 잡지’ 순서로 확대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보수 매체와 우익 댓글러들의 합작으로 ‘한국 때리기’ 기사는 야후저팬 같은 인터넷포털 뉴스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조치가 ‘타당하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에 불신과 혐오의 연료를 대고 불을 붙이면서 ‘한국 때리기’의 구조를 짠 게 누구인지 곱씹어봐야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있는 일본과 마주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전개 과정을 보면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것을 빼곤 무슨 명분과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 같은 조치”라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나왔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한국이 두 손을 들 거라고 보는 건 판단 미스”라고 했다. 오히려 한국 여론을 강경하게 만들어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 일본 측이 20년 전 외환위기 때 일본에 손을 벌리던 한국을 상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을 괴롭히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은 무얼 노리는 걸까. “한국에 일본의 불신을 명확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나갔다. 일본을 추월할 한국의 산업성장을 막고,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걸까. 자꾸 기어오르는 한국을 밟아주고 쥐락펴락하겠다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맞다면 일본은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대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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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의회에서 의미 깊은 결의가 지난주에 채택됐다. 미국의 내년 국방예산안인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안에 ‘외교를 통한 대북 문제 해결과 한국전쟁의 공식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가 포함된 것이다. 이 조항은 지난 11일(현지시간) 하원 전체회의의 구두표결로 가결됐다. 미 연방의회가 한국전쟁의 종전을 촉구하는 결의를 의결한 것은 사상 처음이다. 


결의에는 북핵 문제의 외교적 해결과 북한과의 군사충돌을 피하기 위한 노력, 동맹과의 협력을 통한 북한 억지를 촉구하는 내용이 담겼다. 특히 ‘미국은 북한의 비핵화를 달성하고 69년간 지속한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해 지속적이고 신뢰할 만한 외교적 노력을 추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비록 ‘의회의 인식’이라는 단서가 붙어 구속력은 없지만 미국의 법안에 삽입된 것도 전례없는 일이다. 이번 결의의 가결은 미 의회에서 북한과의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종전과 평화협정 체결을 추진하자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했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의회가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에 대립각을 세워온 점을 고려한다면 매우 바람직한 일이다. 


미 의회의 이번 결의는 북·미 실무협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때마침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지난 12일(현지시간) “북한이 필요로 하는 안전보장이 갖춰지도록 확실히 해야 한다”고 공개리에 언급한 것은 미 의회의 결의와도 부합하는 취지여서 주목된다. 북한은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경제제재 해제보다 체제안전보장을 더 강조해온 만큼 실무협상 재개를 앞두고 대화 분위기를 진작시키는 효과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은 최근 외교경로를 통해 북측에 실무협상을 이번주에 열자고 제의했지만 북한은 명확한 답을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마도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실질적인 첫걸음을 어떻게 뗄지를 놓고 전략을 가다듬느라 시간이 걸리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8월 초 태국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북·미 고위급회담이 내실 있게 진행되려면 늦어도 다음주에는 실무협상이 열려야 한다. 북·미 정상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회동을 통해 하노이 이후 교착상태를 해소한 만큼 실무협상도 속도감 있게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다. 미 의회까지 가세해 마련된 대화동력을 살려나가려면 북한은 실무협상 제의에 조속히 응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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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디세이아>는 트로이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가는 과정을 그린 여행기다. 오디세우스는 여행 도중 만난 괴물이나 식인종들을 물리치고 10년 만에 귀향에 성공한다. 그가 난관을 극복하고 귀향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지략과 담력 때문이었겠지만, 여행길에서 만난 사람들의 환대가 없었다면 불가능했다. 오디세우스는 그들이 제공한 숙식과 향응 덕분에 긴 여행을 이어갈 수 있었다. <오디세이아>는 오디세우스의 모험담이면서 그리스인들의 환대담이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에 대응하는 첫 실무회의에 참석했던 산업통상자원부 전찬수 무역안보과장(왼쪽)과 한철희 동북아통상과장(오른쪽)이 지난 13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으로 귀국한 뒤 굳은 표정으로 차량에 탑승해 있다. 연합뉴스


‘환대’는 인간 문명화의 핵심가치다. 인간은 환대를 통해 관계를 맺고 사회를 발전시켰다. 옛사람들은 나그네나 이방인을 외면하지 않았다. 인류 최초의 환대는 아브라함이 방문객들을 극진히 영접한 일이다(<구약성서> 창세기). 이는 결과적으로는 하느님을 접대한 일이었지만, 당시 아브라함은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방문객들을 환대했다. 동양에서 낯선 이방인은 귀한 손님이었다. 인도 출신 허황옥을 김수로왕의 부인으로 맞이하고, 바다를 건너온 석탈해를 신라의 임금으로 떠받든 것은 고대인들에게 이방인을 환대해야 한다는 의식이 있었기 때문이다. 철학자 레비나스의 말대로 환대는 ‘인간의 근원적인 덕목’인지 모른다.


환대에 관한 한 일본만큼 자부심 강한 민족도 없다. 일본인들은 자국 문화의 특징으로 ‘오모테나시(おもてなし)’를 꼽는다. 오모테나시란 ‘최고의 환대’를 말한다. 식당이나 료칸(旅館)에서 무릎을 꿇고 안내하는 종업원처럼 때론 지나친 오모테나시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오모테나시 정신은 일본 접객 문화의 모델로 활용되고 있으며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앞두고 더욱 강조되고 있다. 


지난주 일본 도쿄에서 한·일 통상당국 실무자 회의가 열렸다.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 문제를 논의하는 자리였지만, 호스트격인 일본은 한국 대표단을 환대하기는커녕 노골적으로 냉대했다. 참석자 명패도 없는 회의장은 썰렁했고, 양국 대표 간의 인사말이나 명함교환도 없었다고 한다. 명백한 ‘외교결례’다. 환대(hospitality)와 적대(hostility)의 어원이 되는 프랑스어 ‘hote’에는 ‘주인’과 ‘손님’의 뜻이 다 있다. 일본인의 ‘환대’는 ‘적대’의 다른 얼굴일까.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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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이유와 관련해 말바꾸기를 계속하고 있다. 처음에는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 배상 판결 등에 따른 ‘양국 간 신뢰훼손’ 때문이라고 하더니 얼마 안 가 한국의 대북 제재 위반 등 ‘안보 우려’를 꺼내들었다. 하지만 거꾸로 일본이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 전력이 드러나자 ‘안보 우려’ 주장은 슬그머니 자취를 감췄다. 도쿄신문은 지난 12일 열린 한·일 양자 실무회의에서 일본이 수출규제를 이유로 제기한 ‘부적절한 사안’에 대해 “북한 등으로의 물자 유출이 아니라 일본과 한국 사이에서의 사안”이라고 설명했다고 13일 보도했다.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으로 유출할 우려가 있다’는 식으로 공세를 펴다가 거꾸로 일본이 북한 유출 혐의를 받게 되자 ‘꼬리를 내린’ 셈이다. 수출규제 이유가 애초에 정당했고, 자신이 있었다면 이렇게까지 스텝이 꼬이지는 않았을 것이다. 일본의 말바꾸기 행각이 안쓰러울 정도다.  


일본이 전략물자 수출관리에 허술했던 정황은 고구마 줄기처럼 드러나고 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 패널이 2010년부터 올해까지 안보리에 제출한 보고서 10건을 분석한 결과 군사용으로 전용될 수 있는 품목들이 일본에서 북한으로 수출된 사례가 다수 확인됐다고 연합뉴스가 14일 보도했다. 품목 중에는 레이더, 기중기, RC수신기 등이 포함돼 있다. 이 중 레이더는 대함 미사일 발사능력을 갖춘 군함에 장착돼 있었고, 기중기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BRM) ‘화성-12호’를 발사대로 옮기는 데 사용됐다. 무인기에 쓰인 부품들도 여럿 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9일 (출처:경향신문DB)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공개한 일본 산케이신문 2009년 3월21일자 기사가 ‘일본이 북한 핵물자를 대주는 짐꾼 노릇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을 보면 일본 내에서도 이런 우려가 오래전부터 있었던 셈이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가장 호들갑을 떨던 일본이 정작 자국 기업들의 ‘뒷거래’는 방치해왔던 것이다. 그래놓고 한국이 전략물자를 북한에 넘겨온 듯한 의혹제기를 하다니 이런 적반하장도 없다. 


김유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처장은 지난 12일 청와대 브리핑에서 “유엔 안보리 전문가 패널이나 적절한 국제기구에 한·일 양국의 4대 수출통제체제 위반에 대한 공정한 조사를 의뢰하자”고 제안했다. 국제기구 검증을 통해 소모적인 논란을 끝내자는 이번 제안에 일본 정부는 성실히 응해야 한다. 아니면 그간의 근거 없는 의혹제기에 대해 정식으로 잘못을 인정하고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해야 한다.


입장이 궁해지니 억지주장까지 펴며 대화를 기피하는 일본 정부의 태도는 볼썽사납기 짝이 없다. 도쿄의 양자 실무협의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한국으로부터 “문제제기는 있었지만 ‘철회’라는 말은 없었다”고 했다. 일본 보복조치의 부당성을 지적하기 위해 일본까지 찾아간 한국 정부 대표가 철회 요구를 하지 않았다니 상식적으로 말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속기록에 ‘철회’라는 글자가 없었다는 일본 언론 보도를 보면 듣고 싶은 것만 기록한 모양이다.  


일본은 한국이 제안한 추가 실무협의 요청도, 김현종 청와대 안보실 2차장이 제안한 한·미·일 고위급 협의도 응하지 않을 태세다. 이런 식의 태도는 일본의 국격만 떨어뜨릴 뿐이다. 일본은 당장이라도 한국과 대화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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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이 한국에 대해 불화수소 북한 밀반출 의혹을 부풀리고 있지만 실제로는 일본이 불화수소를 북한에 밀반출하다 적발된 사례가 다수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11일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일본의 사단법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의 ‘부정수출사건개요’ 자료를 확인한 결과 1996년부터 2013년까지 30건이 넘는 대북 밀수출 사건이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는 일본 기업이 1996년 1월 오사카항에 입항 중인 북한 선박에 불화나트륨 50㎏, 2월 고베항에 입항 중인 북한 선박에 불화수소산 50㎏을 각각 선적해 북한에 밀수출했다가 20만엔의 벌금형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2003년 4월 직류안정화전원 3대가 경제산업상과 세관장 허가 없이 태국을 거쳐 북한으로 수출됐으며, 2004년 11월에는 주파수변환기 1대가 화물 항공편으로 중국을 경유해 북한으로 갔다. 전략물자 수출관리를 문제 삼아야 할 나라는 한국이 아니라 오히려 일본이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을 상대로 근거 없는 의혹을 부풀리다니 ‘도둑이 도리어 매를 든다’는 말 그대로다.  


바른미래당 하태경 의원이 11일 국회 정론관에서 일본이 과거 불화수소 등 전략물자를 북한에 밀수출한 사실이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ISTEC) 자료에서 확인됐다고 밝히고 있다. 권호욱 선임기자


일본 정치권과 언론들은 한국 기업이 불산을 북한에 유출한 의혹이 있다는 설들을 연일 쏟아내고 있다. 산케이신문은 이날 1면에 한국이 “생화학무기를 포함해 대량파괴무기 제조로 전용 가능한 물자를 시리아, 이란 등 북한의 우호국에 부정수출했다”며 한국 산업통상자원부의 ‘전략물자 무허가 수출 적발 현황’ 자료를 인용해 보도했다. 하지만 산업부 조사결과 국내 일부업체가 무허가로 수출한 나라는 아랍에미리트연합,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이며, 문제의 불산은 일본에서 수입한 것도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또 산케이가 무허가 수출 건수가 2016년 1월부터 올해 3월까지 142건에 달하는 등 적발건수가 많아 수출통제 제도의 실효성이 의심된다고 한 것에 대해 산업부는 “이는 무허가 수출 적발건수가 많은 미국의 수출 통제제도를 신뢰할 수 없다는 주장과 다름없다”고 반박했다. 총 적발건수를 공개하지 않고 일부 사례만 선별해서 공개하는 일본이야말로 수출통제 제도를 제대로 운영하는지 의심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일본 정치권과 언론들은 더 이상 한국에 대한 근거 없는 음해를 중단할 것을 요구한다. 아무리 분쟁 중이라고 하지만 가짜뉴스까지 동원해서야 되겠는가. 정부는 앞으로도 일본의 근거 없는 음해공세에 대해서는 신속하게 대처할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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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주도하는 유엔군사령부가 한반도 유사시 전력과 장비를 지원받을 ‘전력 제공국’에 일본을 추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듯한 정황이 드러나 논란이 일고 있다. 주한미군이 최근 발간한 ‘2019 전략 다이제스트’를 통해 “위기 시 필요한 일본과의 지원 및 전력 협력을 지속할 것”이라고 밝힌 것이 빌미가 됐다. 미국이 아시아 지역에서 안보 책임을 일본과 분담하기 위해 일본의 역할을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미군 측은 “미국이 일본에 7군데 후방기지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일본과 협력한다는 뜻”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연례적으로 발간하는 문서에 처음으로 이런 문구를 넣은데다 지난해 한국 몰래 독일을 전력 지원국에 넣으려고 한 사실이 있어 의구심이 증폭되고 있다. 


미국이 전시작전통제권을 한국에 이양하더라도 유엔군사령부를 통해 역할을 확대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013년 6월 비무장지대 철책 부근에 유엔기와 태극기가 나란히 걸려 있다. 연합뉴스


유엔사 18개 회원국 중 전력 제공국은 한국전쟁 발발 직후 유엔사에 전력을 제공한 국가 중 워싱턴선언을 통해 한반도 전쟁 재발 시 재참전을 결의한 전투부대 파견 16개국이다. 따라서 참전국이 아닌 일본은 원칙적으로 전력 제공국이 될 수 없다. 국방부는 언론 보도 후 즉각 “일본은 6·25전쟁 참전국이 아니기 때문에 전력 제공국으로 활동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 의료 지원국으로 인정된 독일이 유엔사에 연락장교를 파견하려다 무산된 사례도 있다.


일본은 과거 식민지배에 대해서조차 진솔하게 사과하지 않고 있다. 식민지배 과정에서 침탈했던 독도를 자국 영토라고 교과서에 기술하고 있다. 해상자위대 함정은 틈만 나면 독도 주변의 한국 영해를 침범한다. 지난해 말에는 동해에서 북한 어선을 구조하는 해군 함정을 초계기로 위협하는 적대행위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가 취임한 이후 일본은 급속도로 전쟁할 수 있는 국가로 줄달음질치고 있다. 이런 일본 군대를 한국 영토에 발을 들여놓게 한다는 것은 한국민으로서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


미국은 유엔사 전력 제공국에 일본을 참여시키는 방안을 추진해서는 안된다. 주한미군 사령관이 유엔사령관을 겸하고 있는 점을 활용해 한국의 뜻을 무시하고 유엔사의 역할을 확대하는 것은 매우 유감스러운 일이다. 또 일각에서는 미국이 유엔사의 역할과 기능을 확대해 전시작전권을 한국에 넘겨준 이후에도 실질적으로 작전 지휘권을 행사하는 것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전시작전권 이양의 취지를 근본적으로 흔드는 위험한 발상이다. 미국도 한국민의 이런 생각을 잘 알고 있으리라 본다. 이런 일로 한·미 양국 관계가 불편해지면 안된다. 정부도 혹여 이런 논의가 나오지 않게 철저히 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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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반도체 소재 등의 한국 수출 규제를 강화한 진짜 이유가 ‘강제징용 배상 판결’인지 의문이 든다. 


일본의 수출 규제는 반도체, 디스플레이 등 한국 수출을 견인해 온 정보통신기술(ICT) 산업의 소재를 대상으로 한다. ICT 산업은 한국을 포함해 과거 개발도상국들이 빠르게 성장하는 세계화 제조 네트워크에 참여하고 발전하는 발판이었다. 1997년 세계무역기구(WTO) 정보기술협정에 따라 2000년 대다수 ICT 품목에 대한 관세를 철폐해 개발도상국의 성장을 가속화했고, 놀라운 판세 변화가 일어났다. 40개 주요국에 대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ICT 수출 통계를 보면, 2000년 당시 미국은 전체의 22%로 1위, 일본은 15%로 2위, 한국은 8%로 3위, 중국이 6%로 4위였는데, 가장 최근 자료인 2012년 자료에서는 중국이 전체의 44%로 1위, 미국이 2위(11%), 한국이 3위(7%), 일본이 4위(6%)다. 1~2% 정도의 근소한 차이지만 우리가 일본을 앞서간 것은 2009년부터다. ICT 산업에서 미·중 무역전쟁이 1·2위전이라면, 일본의 이번 조치는 3·4위전의 시작이 아닐까?


장기침체에서 벗어났다고는 해도 2019년 일본의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1%가 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수출시장이 확대되지 않고 있는 이유가 크다. ICT 산업은 수출 확대에 핵심 역할을 하는데 2012년 일본의 ICT 산업 수출액은 727억달러로 2000년의 67% 정도로 축소됐다. 수출에서 ICT 품목이 차지하는 비중도 2005년 16.95%에서 2017년 8.35%로 지속해 줄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 ICT 수출은 2000년에 비해 157% 확대됐고, 수출 비중도 2017년 24.74%로 건실하게 수출에 기여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 일본이 확실한 서열 정리를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런데 왜 자국의 수출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수출 규제를 선택하고, 왜 ‘국가안보’를 이유로 내걸고 있을까?


보통의 무역전쟁에서는 미·중 무역전쟁과 같이 상대국으로부터 수입되는 품목에 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데, 오랜 대일 무역적자에서 보듯 일본이 한국에서 수입하는 액수가 적기 때문에 수입 관세로 우리에게 치명타를 입히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자신들이 판매자인 분야의 수출 규제를 택했고, 세계적으로 드문 수출 규제를 정당화하기 위해 대량살상무기의 확산 방지를 목적으로 하는 국제협약을 바탕으로 ‘국가안보’를 언급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즉 강제징용 판결과 같은 한·일 간 해묵은 문제들이 진짜 이유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속내는 다르며, 이번 기회에 기술 패권 다툼에서 한국에 자신들의 우위를 확실히 해놓고 싶은 게 그 이유 중 하나인 것으로 보인다.


해외 저널에서는 종종 세계 경제대국, 기술대국 일본이 FDI와 합작회사를 통해 자국의 기술을 이전한 덕분에 우리나라가 오늘날의 기술 발전과 수출 성장을 이뤘다는 불편한 이야기가 나온다. 일견 맞는 말이지만, 일본은 그 과정에서 핵심 기술을 쏙 빼고 저렴한 인건비로 부려먹을 수 있을 만큼만 기술을 이전했고 일본에 의존하지 않고서는 홀로 설 수 없는 기술무역구조를 만들었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서 우리가 외교적인 협상이나 단기적인 해법으로 이들이 만들어 놓은 경직된 구조를 깨고 기술 독립과 지속적인 성장 기반을 마련할 수 있을까? 어렵다고 본다. 하지만 에둘러 가는 길은 없다. 아베 내각의 저의를 꿰뚫고 기술 발전과 산업에 대한 이해, 장기적인 기업의 경쟁력과 역량을 먼저 챙기라는 세간의 말들이 단지 ‘원론적’이라고 치부돼선 안된다.


<이지수 호서대 교수 글로벌통상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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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10일 30대 기업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일본 정부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우리 경제에 타격을 주는 조치를 취했다”며 “(일본이) 더 이상 막다른 길로만 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문 대통령은 또 “아무런 근거 없이 (수출규제 조치를) 대북 제재와 연결시키는 발언을 하는 것은 양국의 우호와 안보협력 관계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등이 최근 한국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를 하면서 대북 제재 이행과 연결한 것을 정면으로 비판한 것이다. 기업인들과 수출규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에서 이런 말을 한 데서 문 대통령의 절박한 인식이 느껴진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이번 사태의 배경에 아베 정부의 정치적 목적이 있다고 지적한 점이다. 지금까지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를 직접 비판하지 않고 자유무역주의로 돌아가라는 말만 해오던 것과 딴판이다. 직접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아베 총리와 자민당 지도부가 오는 21일 참의원 선거를 겨냥해 일부러 한국에 대한 공세를 벌이고 있다고 본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김기남 기자


특히 일본 측이 수출규제의 이유를 북한과 연루시킨 대목은 묵과할 수 없는 거짓 선전이라고 판단했다. 일본은 불화수소가 한국을 거쳐 북한으로 흘러들어갔다고 주장했으나 이를 입증할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또 이 불화수소를 이용해 사린가스를 제조하는 것 자체가 무의미하다고 지적하고 있다. 비용 측면에서 더 비싼 불화수소를 쓸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문 대통령이 아베를 향해 터무니없는 가짜뉴스로 이웃나라를 공격하는 것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가 할 일이 아니라고 비판한 셈이다. 외교적 해결을 우선시하는 기조를 유지하더라도 일본의 일방적 주장을 묵과해서는 안된다고 판단한 것으로, 문 대통령으로서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일본은 이틀 전에도 문 대통령의 수출규제 조치 자진 철회 요구를 일언지하에 일축했다. 이에 문 대통령은 세계무역기구(WTO) 이사회 긴급 안건으로 상정해 국제 여론을 환기시키는 한편 유명희 통상교섭본부장을 미국으로 보내 중재를 요청할 방침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또다시 협의를 통한 해결을 강조했다. 중요한 것은 더 이상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는 것이다. 일본은 수출규제 대상을 확대하는 등 추가 공세를 해서는 절대 안된다. 양국이 12일 도쿄에서 실무협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외교부 국장급이 방일도 추진하고 있다. 양국 정부는 진지한 자세로 소통에 나서야 한다. 파국만은 피하자는 요구에 일본은 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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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홍콩 노래 ‘상하이탄’이 최근 상하이에서 ‘쓰레기 분리 송’으로 옷을 갈아입었다.


“물티슈는 물기가 얼마나 있든 마른 쓰레기, 해바라기씨 껍질은 말라비틀어졌어도 젖은 쓰레기, 돼지가 먹을 수 있으면 무조건 젖은 쓰레기….”


가창자의 진지함이 가사 내용과 대비되면서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화제를 끌고 있다. 상하이탄이 쓰레기 분류 노래로 패러디된 이유는 상하이시가 지난 1일부터 역사상 가장 엄격한 ‘생활쓰레기 관리 조례’를 시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 사는 대다수 한국 교민들은 인터넷 등 각종 통제에 미치도록 답답함을 느끼지만, 쓰레기에 관해선 ‘자유’를 느끼곤 한다. 정해진 요일에 쓰레기를 배출할 필요가 없고, 음식물과 재활용품을 따로 분리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 아파트는 층마다 수거 통이 있어 쓰레기를 들고 건물 밖으로 나가지 않아도 된다. 


그러나 새 조례가 시행된 상하이를 시작으로 쓰레기 배출 풍경이 크게 바뀌게 됐다. 모든 생활쓰레기는 젖은 쓰레기, 마른 쓰레기, 재활용품, 유해 쓰레기 4가지로 분류해 배출해야 한다. 아무렇게나 버리면 개인은 최고 200위안(약 3만4000원)의 벌금을 내야 한다. ‘가오카오’(중국 수능)보다 더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 분류 기준 때문에 ‘분리배출 애플리케이션’ ‘분리배출 대행업’ 같은 새로운 산업도 등장했다. 


14억명 가까운 인구 대국인 중국은 쓰레기 배출도 ‘대국’이다. 2001년 이후 도시 쓰레기 배출량이 빠르게 증가했다. 2017년 중국의 생활쓰레기양은 1억3470만t에서 2018년 2억1521만t으로 60% 가까이 늘었다. 배달음식 시장이 커지면서 일회용 포장 용기 사용이 급증했고, 온라인 상거래 발달로 택배상자가 증가한 것이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중국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레기 분류 제도를 도입한 나라로 꼽힌다. 1965년 베이징 시내 주택 단지에서 분리배출을 실시해 세계에서 가장 먼저 쓰레기 분류 제도를 도입했기 때문이다. 2000년 들어 베이징, 상하이, 광저우, 선전 등 8개 도시를 생활쓰레기 분류 수집 시범도시로 지정하고 본격적으로 나섰다. 


그러나 쓰레기 처리 시스템 미흡과 부족한 시민의식 등으로 20년 가까이 정착되지 못했다. 배출된 쓰레기는 수집, 운반 과정에서도 분리 처리돼야 하는데 시스템 미흡으로 완벽한 분리 처리가 이뤄지지 않은 지역도 많았다. 또 중국의 쓰레기 분류를 ‘쓰레기를 주워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拾荒人)들에게 의존한 측면도 있다. 8만2000명 정도로 추산되는 이들은 뒤섞여 버려진 쓰레기 속에서 팔 수 있는 재활용품을 알아서 수거했다.


최근 쓰레기양이 급증하고, 처리 능력이 한계에 다다르면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직접 칼을 빼들었다. 지난달 3일 관영매체들은 시 주석이 “쓰레기 분리배출은 자원 절약과 사회 문명 수준의 중요한 구현”이라고 지시했다며 일제히 보도했다. 


시행 일주일 남짓 된 상하이 쓰레기 분리배출의 효과는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 음식배달 앱인 얼러머 집계 결과 상하이에서 지난 1일부터 나흘간 일회용 수저를 거부한 비중이 전달 대비 149% 늘었다. 


그동안 가장 큰 난제로 꼽혔던 시민의식도 개선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상하이에서는 ‘개방의 선진도시 상하이에서 먼저 앞장서자’ ‘나부터 시작하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한다. ‘중국인들이 져서는 안되는 전쟁’이라는 말도 나온다. 쓰레기 분리배출은 이제 더 미룰 수 없는 숙제라는 공감대가 형성된 듯하다. 수십년간 시도에만 그쳤던 쓰레기 분리배출이 대륙에 뿌리내릴 적기를 만난 듯하다. 이제는 더 미룰 수도 없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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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가 항상 도둑처럼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떤 위기는 느리고 긴 걸음으로 온다.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부각된 한·일관계 위기가 그렇다. 이 위기는 무역보복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는 설명될 수 없는, 오래된 위기다. 지난 7년 동안 그것은 한·일관계에 깊고 넓게 퍼져 있던 보편적 현상이었다. 


2012년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하라는 역사적 판결을 했다. 1965년 한일협정으로 징용 문제가 종결됐다는 한·일 정부 입장과 배치되는 결정이다. 당연히 정부는 수용할 수 없다는 일본과 해결책을 모색해야 했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한·일관계 위기의 시작이다. 정당, 언론, 지식인도 뒤늦은 역사적 정의의 실현이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출 뿐 곧 닥칠 난관은 무시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더 나아갔다. 대통령 최초 독도 방문, 일왕 사죄 발언과 같은 반일공세로 일본을 자극하고 갈등을 조장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6일 오사카 상점가에서 참의원 선거 지원 활동을 하며 시민들과 인사하고 있다. 교도 _ 연합뉴스


이후 아무런 대책 없이 5년이 흘러 2017년 대선 국면을 맞았다. 여야,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모든 후보가 2015년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를 공약했다. 합의 과정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이 국가 간 합의를 깰 정당한 사유가 될 수 있느냐는 성찰은 없었다. 선거 상황에서의 약속이 국가 통치를 책임지는 무게를 감당할 수 없다는 걸 안다면, 집권 후 합의 파기에 신중해야 했다. 문재인 정부는 그러지 않았다. 아마 다른 정당이 집권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과거사에 관한 한 최대주의가 선이다. 대소 경중 선후 완급이 없다. 강경 입장만이 정치적 쓸모가 있기 때문이다. 합의 폐기에 관해 정부와 시민사회 간 이견도 거의 없었다. 아니, 누가 더 단호한지를 두고 경쟁했다. 위기는 지속됐다. 


이렇게 6년을 허송세월하는 사이 지난해 10월 대법원은 일본 기업이 제기한 재상고에서 2012년 판결을 최종 확인했다. 법원은 위자료 확보 절차에 들어가야 한다. 막다른 길이다. 이명박 정부는 박근혜 정부에, 박근혜 정부는 문재인 정부에 숙제를 떠넘긴 결과다. 사법부 결정 존중과 54년간 한·일관계 기초였던 한일협정 사이에서 묘수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다. 피해자 중심의 접근도 버릴 수 없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일본과 막전막후 협력해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소극적이었고, 8개월이 그냥 지나갔다. 그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우리는 잘 안다. 


위안부 합의로 설립된 화해·치유재단 해산 방침 발표, 한·일 레이더 조사(照射) 및 초계기 갈등, 문희상 국회의장의 일왕 사죄 발언, 세계무역기구(WTO)의 후쿠시마산 수산물 수입금지 관련 한국 승소, 일본의 징용 문제를 위한 중재위원회 개최 요구와 한국의 불응, 한국의 양국 기업 공동 기금에 의한 징용 피해자 위자료 지급 제안과 일본의 거부. 양국 간 불화 위에 불화가 차곡차곡 쌓였다. 일본의 관점에서는 좋은 소식이 하나도 없는 시간이었다. 


그들이 보기에 한국은 합의를 깨고 국제법을 무시하고, 일본을 모욕하고, 이유 없이 도발하는 존재였다. 그래서 아베 신조는, ‘한국과 개별 현안을 논해봤자 소용없다, 한국인이 일본의 힘을 깨닫는 것이 우선이다’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마도 그게 정경분리, 즉 하나의 갈등이 다른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쳐둔 칸막이를 제거, 한국에 투사할 힘을 키운 이유일 것이다. 이런 전략이 아니더라도 전후 체제 탈각을 내세운 아베의 역사수정주의 자체가 문제의 근원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베의 도발로 우리가 성찰할 기회를 잃으면 안된다. 그에게 책임을 묻는 것과는 별개로 우리에게 과거사에 기반한 반일 애국주의, 민족주의적 열정의 과잉은 없었는지 돌아봐야 한다. 그것이 미래로 나아가려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욱일기 시비만 해도 그렇다. 지난해 10월 일본 해상자위대 함정은 한국이 자위대기인 욱일기 게양을 반대해 제주 국제관함식에 참석하지 못했다. 한국인들이 욱일기를 전범기로 인식하고 있지만 해상자위대는 1998년, 2008년 한국에서 열린 국제관함식에 욱일기를 달고도 아무런 시비 없이 참석했다. 


일본 건국 설화를 형상화한 욱일기는 ‘빛나는 아침의 태양’(朝日·아사히)을 상징하는 것으로 일본의 문화적 전통에 속한다. 진보적 언론 아사히신문이 1800년대부터 사용하고 있는 로고도 욱일 문양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한·일관계 위기가 지속된 7년 우리 안에 민족주의가 팽창했다. 그런 열정과 욕망은 일본과의 협력은 부끄러운 일로, 갈등은 정치적으로 인기 있는 일로 만들었다. 이런 조건에서 한·일관계의 발전은 없다. 아베의 지나침에서 우리의 지나침을 볼 줄 알아야 한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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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8일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를 직접 언급하면서 일본 정부의 철회를 촉구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로) 한국 기업들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할 경우 정부로서도 필요한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며 “저는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문 대통령은 “일본의 무역 제한 조치에 따라 우리 기업의 생산 차질이 우려되고 전 세계 공급망이 위협받는 상황에 처했다”며 “일본 측의 조치 철회와 양국 간 성의 있는 협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언급은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사태 자진 철회가 해법임을 분명히 한 것이다. 문 대통령은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은 양국 모두에게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면서도 기업에 실질적인 피해가 발생할 경우 맞대응할 것임을 경고했다. ‘싸움을 바라지는 않지만, 싸우게 되면 물러서지 않겠다’는 메시지다. 일본 정부가 문 대통령의 언급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수출규제 조치를 철회할 것을 촉구한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5일 (출처:경향신문DB)


문제는 일본이 자진 철회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아베 총리의 지난 7일 ‘수출규제 북한 관련성’ 시사 발언은 귀를 의심케 한다. 아베 총리는 이날 일본 민방TV에 나와 “한국은 ‘(대북)제재를 지키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며 “(하지만) 징용공(강제징용 피해자) 문제에 대해 국제적인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이 명확하게 됐다. 무역 관리도 지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했다. ‘약속을 지키지 않는’ 한국이 대북 제재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을 것이니 일본의 전략 품목들이 북한에 유출될 수 있다는 얼토당토않은 논리다. 한 나라의 최고지도자가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이웃나라를 음해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했다는 것이 기가 찰 노릇이다. 아베 총리의 측근들은 더 노골적이다. 하기우다 고이치 자민당 간사장 대행은 “(한국에 수출한 화학물질의) 행선지를 알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다”고 했다. 또 다른 정치인은 “화학무기 생산에 사용될 수 있는 에칭가스가 한국에 수출된 이후 행방이 묘연해졌는데 행선지는 북한”이라고도 했다. 수출규제를 합리화하기 위해 가짜뉴스들까지 동원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정부는 이날 문 대통령의 수출규제 철회 요구에 대해 한국측이 개선 움직임을 보이지 않으면 응하지 않겠다며 거부했다. 규제 대상을 일부 공작기계와 탄소섬유 등 다른 수출품목으로 확대할 것을 검토한다는 보도도 나온다. 사태가 장기화할 공산이 크다. 사태가 악화될 경우 한국은 물론 일본에도 좋을 게 없다. 지금이라도 일본이 이성을 되찾아 외교적 방식으로 사태 해결에 나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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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부가 4일을 기해 반도체·디스플레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동했다.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대한 경제보복 조치 실행에 들어간 것이다. 이날은 오는 21일로 예정된 일본의 참의원(상원) 선거운동 개시일이기도 하다. 집권 자민당이 선거를 앞두고 ‘한국 때리기’로 표를 모으겠다는 정략적 술수가 아니냐는 의심을 살 만하다. 그동안은 북풍(北風), 즉 ‘북한 때리기’로 선거를 치러오더니 한반도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자 ‘혐한풍(嫌韓風)’이라도 일으키겠다는 속셈인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28일 오전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공식환영식에서 의장국인 일본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한 뒤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하지만 이번 조치가 선거에 득이 될지는 의문이다. 일본 주요 일간지들이 연일 사설을 통해 아베 정부의 조치를 정면 비판하는 등 역풍이 거세기 때문이다. 마이니치신문은 이날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통상국가의 이익을 손상한다’는 제목의 사설에서 “외교 문제와 전혀 관계가 없는 무역 절차를 들고나와 정치 도구로 사용한 것”이라며 “일본이 중시해온 자유무역의 원칙을 왜곡했다”고 지적했다. 보복조치 방침이 발표된 지난 2일부터 일본의 6대 주요 일간지 중 마이니치와 니혼게이자이, 아사히, 도쿄 등 4개 신문이 비판대열에 선 것이다. 수출규제 조치가 합리적이지 못하다는 여론이 일본 내에서도 팽배해 있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인 셈이다. 아베 총리와 일본 정부는 지금이라도 이런 비판에 귀를 열어야 한다.


일본 언론들도 지적했지만 이번 조치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기업에도 광범위하게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한국의 반도체 생산이 줄면 일본 업체가 생산하는 유리기판, 반도체 제조장비는 물론 컴퓨터, TV 생산에도 차질이 빚어지게 된다. 경제의 상호의존이 심화돼 있는 양국이 치고받으면 결국 득을 보는 것은 중국뿐이라는 전문가들의 경고가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청와대는 이날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 회의를 열고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소하는 방안과 국제사회에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설명하는 방안 등 외교적 대응을 적극 강구하기로 했다. 마땅한 대응이다. 다만 의연하고 치밀하게 대처해 후유증이 없도록 할 것을 당부한다. 소셜미디어 등에서 일고 있는 일본 제품 불매운동 논의 등도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간의 일본 제품 불매운동이 용두사미에 그쳤던 전례를 감안하면 성과도 거두지 못한 채 일본 국민들의 감정만 나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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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직업 면에서 세 개의 모자를 쓰고 있다. 


첫 번째는 그의 본업인 부동산 사업자, 즉 비즈니스맨이다. 매우 현실적이어야 하고, 이득과 비용을 항상 계산해야 하며, 사업상 막힌 것이 있으면 뚫고 나가야 하는 직업이다. 현실적 ‘해결사’여야 한다. 


두 번째 모자는 우리 식으로 말하면 셀럽, 즉 셀러브리티(celebrity)이다. 사실 이 직업은 상당히 미국적인 연원을 가지고 있는데, 우리가 이해하는 스타나 유명인과는 매우 다른 성격의 직업이다. 미국의 셀럽은 꼭 연예인일 필요가 없다. 유명인 중 누구나 항상 화제를 뿌리고 다니면서 대중의 관심을 유발하면 셀럽이 된다. 그리고 대중과 언론은 그 셀럽의 일상을 쫓아다니면서 그 사람의 삶에 대한 정보를 만들어 팔고 소비한다. 요즘 한국의 아이돌 스타가 그런 면에서 셀럽에 해당된다. 정치인 중에서는 지금은 고인이 된 미국의 케네디 대통령이 선구적인 셀럽이었다. 트럼프는 브랜드 사업을 하기 위해 자신이 셀럽이 되었는데, 리얼리티쇼 방송 출연을 통하여 그 직업을 더욱 확고히 하였다. 셀럽은 끊임없이 화제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에 예측하기 쉬운 사람이 되면 실패한다. 그리고 항상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속칭 ‘관종’이 되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30일 오후 판문점에서 군사분계선을 사이에 두고 악수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트럼프의 세 번째 모자이자 현업은 대통령, 즉 정치인이다. 트럼프가 현실 정치에 관심을 가진 것은 매우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그가 남긴 인터뷰 기록을 보면 젊었을 때부터 경제, 사회, 정치 이슈에 대해 상당히 분명한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즉 뚜렷한 정치 지향이 있었다는 얘기다. 이러한 정치 지향은 예측하기 어려운 셀럽과 다르게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 매우 일관되고 뚜렷한 성향을 보이게 된다. 그리고 그 직업이 대통령인 경우에는 자신이 내건 선거 공약에 그의 정치적 성향이 드러나 있으며, 그 공약을 이행하는 것이 그 직업을 잘 수행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에 대한 인격적인 평가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위에서 말한 모든 직업에 다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는 다 성공하였다. 그리고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의 현업이 대통령이라는 것이고, 이 역시 충실히 하고 있다. 그의 공약에 대한 선호를 떠나, 그는 현재 공약 이행률에 있어서 역대 미국 대통령 중 매우 우수한 대통령으로 기록되고 있다. 지금의 그는 해결사형 정치인에 제일 가깝다. 셀럽은 대중의 관심을 끄는 소프트파워로 활용할 뿐이다. 


그래서 우리는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서 셀럽 트럼프가 아닌 해결사적 대통령 트럼프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의 대통령이 중요한 안보 이슈인 북핵 문제를 셀럽과 같이 취급할 리 없다. 그는 해결을 줄곧 공약해 왔다. 


그런데 요즘 북한과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을 셀럽으로만 주목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생기고 있다. 북한과 우리 정부가 소위 정상 간의 톱다운 어프로치를 고수하는 이유가 셀럽 트럼프가 세기적인 이벤트를 위해 과거 대통령과는 달리 통 크게 정상 간에 딜을 할 것이라고 보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아마도 2018년 6월12일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별로 준비도 안된 채로 매우 추상적이고 모호한 합의문을 덥석 받는 모습을 봤기 때문일 수 있다.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인 방법론도 들어있지 않은, “한반도 비핵화”라는 문제적 용어도 사용하고 있는 문서에 서명을 하였고, 또 기자회견에서 단번에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중지시키고, 그 훈련을 도발적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트럼프 대통령은 본인이 주인공이 되고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으면 무엇이든 가능한 사람이라는 강한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그래서 2019년 2월 하노이 정상회담에 딱 한 장의 무리한 협상카드를 가지고 나온 북한, 하노이 회담에 대해 유난히 낙관적인 기대를 하고 있었던 우리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이 이벤트만 된다면 경제 제재도 쉽게 풀어줄 것이라고 셀럽 트럼프에만 너무 주목한 느낌이 강하게 든다. 


하지만 만약 그런 계산을 했고, 또 아직까지 그런 전략을 가지고 있다면, 이는 큰 오산이다. 정치인 트럼프 대통령은 일관되게 시간은 급하지 않으며 비핵화의 최종단계에서 경제 제재 해제를 할 것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이번 판문점 번개 정상회담을 보면서 북한과 우리가 다시 셀럽 트럼프에 대한 믿음을 강화해 과도한 낙관론을 갖게 된다면, 하노이와 같이 또 한 번 뒤통수를 맞을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깜짝 판문점 정상회담 후에도 시간은 급하지 않고 제재는 그대로 갈 것이라고 똑같은 해결책을 반복하였다. 


도널드 트럼프는 셀럽이 아니라 미국의 대통령이다.


<이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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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야 중요한 역사를 뒤늦게 알았다. 서기 663년 백강전투. 이는 한·일 간 해묵은 갈등을 이해하는 실마리도 준다. 일본의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는 단지 경제 문제가 아니다. 오히려 ‘역사 전쟁’의 연장선이다.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등을 설거지하다가 깨진 그릇 하나다. 정부가 다소 거칠게 다루다가 떨어뜨린 꼴이랄까.


역사상 동북아 판도 변화에 주요 영향을 미친 세력은 다름 아닌 왜(倭)다. 요즘 고교생의 국사 교과서가 궁금해 삼국시대 편을 훑어보다 놀랐다. 우리 때와 달리 백강전투가 당당히 기록됐다. 백강전투는 민족주의 관점에선 다소 꺼림칙하다. 외세를 빌려 삼국을 통일한 나당연합에 더해, 백강전투로 왜구까지 개입했기 때문이다. 왜가 망해가는 백제를 도와서 약 5만 대군에, 함선 1000척이나 동원한 사건이란다. 대륙세력인 중국과 해양세력인 일본이 국가 차원에서 충돌한 첫 전쟁으로 평가된다. 백강전투는 오늘날 동북아 질서의 원형을 낳은, 약 1000년 뒤에 재연된 임진왜란(1592년)의 전초전이다.


백강전투에서 참패하고서야 백제가 끝내 멸망한 뒤 왜는 국호를 일본으로 바꿔 새출발했다고 한다. 당시 일본 지도층에 백제 땅은 돌아가고픈 고향일 것이다. 백제인의 피가 섞였다고 토로한 아키히토 전 일왕이 지난 4월 서둘러 물러난 까닭도 생전 한국을 방문키 위한 수구초심 때문일 거란 풀이까지 나온다.


한·일이든, 한·중, 한·미 관계든 민족감정을 넘어 동북아 국제질서의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더욱이 북한 비핵화를 놓고 세기의 담판이 진행되는 마당이다. 이번 경향포럼에 기조연설을 한 리처드 하스 미국외교협회장 등은 미국과 중국 사이에 이른바 ‘투키디데스의 함정’을 얘기한다. 다만 동북아에선 중국과 일본이 맞부딪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정치학자 즈비그뉴 브레진스키도 저서 <거대한 체스판>에서 중국이 일본이나 인도와 충돌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런 와중에 한반도는 어떤 구상으로 앞날을 그려가야 할까. 단지 눈앞에 북한 비핵화란 우물에만 갇혀서는, 동북아에 끓어오르는 큰 냄비를 못 느낄 위험이 있다. 장차 중국의 초강대국 부상에 대응할 경우 한반도는 일본과는 더 가까워지는 게 유리할 수 있다. 지금 현실에선 참 껄끄럽지만. 이처럼 나당전쟁, 백강전쟁은 사실상 진행형이다.


화해한 한반도가 미래에 중립국 균형자가 될 수 있을까. 국력에 바탕을 두지 않으면 고래 사이에 낀 새우 꼴이 될 한반도는 또 동북아 싸움터로 전락할 것이다.


우선 단단히 끼워야 할 첫 단추는 남북관계다. “남북관계가 문제 해결의 근원이다. 한국이 버팀목 역할을 할 때다. 한국이 무너지면 모든 게 수포로 돌아간다.” 경향포럼에 온 중국동포 진징이 베이징대 교수의 조언은 울림이 컸다.


한국은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이자 운전자다. 미국이 ‘내비게이션’을 찍어주더라도 막히는 길을 돌아갈 줄 알아야 베스트 드라이버다. 금강산관광을 막는 건 유엔 대북 제재가 아니라, 이명박 대통령의 ‘5·24 조치’다. 여기에 아직 벌벌 떠는 문재인 정부가 과연 운전대를 잡은 게 맞나 싶다. 미국은 오토 웜비어 사망 전까지는 북한 관광을 허용해왔다. 남한 관광객이 가는 게 문제냐고 미국에 따진 적이나 있을까. 차라리 한·미 군사훈련을 내주더라도, 5·24 조치는 풀자. 자기들 아쉬울 때만 ‘우리민족끼리’를 앞세우다가, 유리할 때는 ‘통미봉남’ 해온 북측 책임 또한 크다. 문득 1997년 어느 날 K-16에서 주말 당번근무를 설 때 들은 미군 하사놈의 비아냥거림이 기억에 되살아났다. “한국은 미국의 51번째 주 아니냐?”


지금은 남북이, 좌우파가 자존심 다툼을 할 한가한 때가 아니란 사실을 1000년 역사로 되새겨보자.


<전병역 산업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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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외교가 리얼리티 쇼처럼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6·30 판문점 회동은 반전과 감동이 있는 최고의 한 편이었다. 방한 직전 비무장지대를 방문할 것이며 김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을 때만 해도 설마 진짜 만날까 생각했다. 하지만 31시간여 만에 즉흥 제안은 현실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 만에 상호 적대국인 북·미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웃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땅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대통령이 됐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세번째)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진행된 북·미 정상회동에 앞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시간을 조금만 확장하고 주인공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쇼는 더욱 흥미롭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북한은 연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경고했고 일부 미국 언론은 대북 군사적 대응 가능성의 확률을 계산했다. 그랬던 북·미관계가 드라마처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미 정상은 이미 두 번의 정상회담을 했고, 이제는 손을 맞잡고 북한 땅까지 밟았다. 


반전 드라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은 워싱턴의 아웃사이더 트럼프 대통령이다. 집권 초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변덕이 전쟁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6월12일 역사상 첫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노벨 평화상이란 연관 검색어까지 등장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핵개발을 완료했다며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하던 김 위원장이다. 그는 미국이 지정한 대표적 인권침해국가 북한을 삼대에 이어 통치하고 있는 30대 젊은 독재자다. 그가 인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며 미국과 운명을 건 외교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역사상 처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이란 목적지는 제시됐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합의된 게 아직 없다. 친서와 악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맞다. 하지만 전에 없던 북·미 정상의 관여 행보를 사진촬영용, TV용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한국전쟁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상징하는 판문점을 북·미 정상이 함께 밟은 것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다. 70년 적대를 이어온 북·미가 한 번에 불신을 씻어낼 수는 없다.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두 나라는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워야 한다. 북·미 정상의 계속되는 만남은 그 동력이 될 것이다. 전략적 인내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 정상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자신은 행동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평은 정당하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 기회에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하지 말고 독재자와 러브레터를 주고받지 말라”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주장은 틀렸다.


아직까지 북·미 정상 주연 리얼리티 쇼의 결말을 맞히기는 어렵지만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은 예측 가능하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으로 남을지, 재선 성공 후 어떤 대북 정책을 펼지 불확실하다. 북·미관계는 그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달려가야 한다. 아직 계절이 여섯 번 바뀔 시간이 남았다. 곧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이고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길도 열렸다. 남·북·미·중 정상의 종전선언도 가능하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의 휴전선 회동까지 이뤄졌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나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이 성사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리얼리티 쇼 속편이 기대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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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480년 아버지 다리우스 1세가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뒤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는 설욕을 다짐하며 500만 대군을 이끌고 그리스로 출정했다. 헬라스인들은 힘을 합해 페르시아에 맞섰다.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도 전사를 이끌고 아테네를 돕기 위해 건너왔다. 그는 페르시아군의 화살이 구름처럼 쏟아질 것이라는 말에 “그늘에서 싸우게 되어 좋다”면서 부하들을 고무하며 싸웠다. 그러나 300인의 결사대와 함께 테르모필레에서 몰살당했다. 풍전등화의 상황에서 아테네는 페르시아군을 살라미스 바다로 끌어들여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폭풍이 지나가자 상황이 변했다. 아테네가 ‘제국의 권리’를 주장하고 나섰다. ‘첫째는 두려움이, 다음에는 체면이, 끝으로는 우리 자신의 이익이 그렇게 하도록 강요했다’고 했다. 페르시아 침공에 어깨를 맞대고, 힘을 모아 대항했던 아테네와 스파르타는 서로에게 적이 되었다. 제국이 된 아테네가, 부상하는 스파르타와 충돌하는 상황(투키디데스 함정)이 왔다.


결전의 무대는 그리스에서 수백킬로미터나 떨어진 시라쿠사(시칠리아). 시라쿠사는 스파르타인들이 이주해 사는 땅이다. 아테네는 밀 곡창인 시라쿠사가 스파르타에 넘어가면 패권에 위협받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아테네는 원정길에 나섰다. 그러나 참혹하게 패배했고 지휘관 니키아스는 생명을 구걸하다 처형됐다. 그리스의 패권은 스파르타가 차지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8일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사이에 앉아 있다. 오사카/AFP연합뉴스


스파르타의 영화도 오래가지 못했다. 아테네와 스파르타의 패권경쟁은 테베가 힘을 키우는 기회가 되었다. 스파르타는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테베로 들어갔다. 레욱트라 평원에서 일전이 벌어졌다. 테베의 지휘관 에파미논다스의 전술에, 스파르타군은 종잇장처럼 날아갔다. 곧이어 테베도 그리스 북부변방에서 세력을 키우던 마케도니아의 수중에 떨어졌다. 불화와 다툼은 모두를 패자로 만들었고, 시대의 주인공 자리도 넘어갔다.


미·중이 패권경쟁을 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IT산업에서 유사한 상황이다. 대법원의 징용판결문제로 일본이 경제보복에 나섰다. 양국은 협조와 공생에서 갈등과 보복의 관계로 악화되고 있다. 서로가 만신창이로 끝날 싸움이라면 승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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