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에 해당되는 글 1802건

  1. 2019.08.05 [아침을 열며]한국 외교의 힘이 필요하다
  2. 2019.08.05 [사설]국제예술제서 ‘소녀상’ 전시 중단시킨 일본의 “역사적 폭거”
  3. 2019.08.05 [사설]INF 폐기 하루 만에 미사일 아시아 배치 들고나온 미국
  4. 2019.08.02 [사설]한·일 외교장관회담마저 무위, 파국으로 가자는 일본
  5. 2019.08.02 INF 폐기한 미국의 의도와 한반도의 운명
  6. 2019.08.02 [기고]일본의 옹졸함이 던진 교훈
  7. 2019.08.01 [사설]미국 중재와 한·일 외교장관 회담, 파국 막는 전기 되길
  8. 2019.08.01 [사설]북한 엿새 만에 또 미사일 발사, 평화 위협 행동 중단해야
  9. 2019.08.01 [경향의 눈]‘아베의 일본’과 양심적 일본인, 영화 ‘주전장’
  10. 2019.07.31 톈안먼과 조기
  11. 2019.07.31 [사설]일본, 전면전 원치 않는다면 ‘화이트리스트’ 도발 멈추라
  12. 2019.07.29 [사설]아베 정부, 일본 지식인들의 고언에 귀 기울여야
  13. 2019.07.26 [편집국에서]세 살 아이에게 ‘소피의 선택’ 강요한 미국
  14. 2019.07.26 [세상읽기]참의원 선거가 보여준 세 가지 일본
  15. 2019.07.26 [사설]북한 또 미사일 발사, 협상 동력 깨면 안된다
  16. 2019.07.25 [사설]영토 도발·백색국가 제외, 일본 ‘루비콘강’ 건너지 마라
  17. 2019.07.24 트럼프의 백인 정체성 정치
  18. 2019.07.23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1965년체제 종식과 새 한·일관계
  19. 2019.07.23 [사설]참의원 선거 개헌선 확보 실패, 아베 ‘폭주’ 멈추라는 뜻이다
  20. 2019.07.22 [김택근의 묵언]두려운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한·일관계가 빙하시대로 들어가고 있다. 일본의 반도체·디스플레이 관련 소재를 1차 타깃으로 삼았고, 한 달 뒤에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한국을 예고대로 뺐다. 한국은 맞대응을 선언했다. 양측의 충돌, 피해는 점점 가시화할 것이다. 그러나 지금 갈등의 깊이가 어느 정도인지, 앞으로 어디까지 치달을지 알 수가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이런 상황이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올 초부터 ‘한국을 아프게 할’ 구체적 실행 계획을 짰고, 그 시나리오대로 일본이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자유무역의 선도자처럼 굴더니 통상을 보복수단으로 삼는 것은 언행불일치 아니냐는 비판, 가뜩이나 불안정한 동북아 정세에 괜한 소란을 일으키냐는 국제사회의 우려에는 귀를 닫았다. 일본의 조치는 한국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보복이 절대 아니고, 문제가 있는 한국의 수출관리제도 때문이라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때그때 바뀌는 말은 장기간 준비치고는 논리 구조가 어설프다는 것을 드러낸다. 누가 뭐라건 한국을 집요하게 물고늘어지겠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일 갈등 상황은 빨리 수습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 판결을 구실로 시작된 보복조치는 경제·무역 문제로 가시화했다. 민간 분야 교류도 줄어들고 있다. 안보 분야로 번질 조짐이다. 그동안 양국이 과거사와 독도 문제로 숱하게 얼굴을 붉혔지만, 한·일관계는 지속적으로 발전해왔다. 정경분리가 밑바탕에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근간이 허물어지니, 양국관계는 파국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최측근들이 “한국과는 신뢰가 깨졌다”고 하는 말은 지금 상황을 그대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 책임을 온전히 한국에 묻는 것은 가당치 않다. 그럼에도 신뢰가 없다고 대화를 못하는 건 아니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대화의 필요성은 커진다. 문제를 풀 생각이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아이디어를 만들어낼 것이다. 관건은 지금 서로가 그럴 의지가 있냐는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본의 화이트리스트 배제를 비판하면서도 “우리 정부는 지금도 대응과 맞대응의 악순환을 원치 않는다”고 했다. 일본이 한국으로선 납득 불가한 부당한 조치를 거둬들이면 대화할 뜻이 있음을 내비쳤다. 당장 일본이 반겨줄 리는 만무해 보인다. 외무성 부대신이 TV에 나와 문 대통령의 ‘적반하장’ 표현을 문제 삼으며 “품위 없는 말을 쓰는 것은 정상적인 것이 아니다. 무례하다”고 막말을 할 정도다. 


한국 시민들의 ‘NO 아베’ 움직임에 연대하는 일본 시민들이 4일 오후 도쿄 신주쿠 아루타 마에에서 ‘친하게 지내요’ 등 한국어가 함께 쓰인 손팻말을 들고 반아베 집회를 열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악화일로인 상황은 양국의 미래에 불안감을 던진다. 젊은 세대의 반일, 반한 감정이 가슴 깊숙이 새겨지면 다음 세대에서의 한·일관계도 힘겨워진다. 한·일관계사에서 2019년이 어떻게 기록될 것인지는 지금부터 양국이 하는 일에 달려 있다. 반전의 계기가 필요하다. 현재로선 양국 정부도, 국민도 너무 격앙돼 머리 맞대고 진지하게 얘기할 분위기가 아니다. 아베 총리의 구상이 한국과의 마찰을 유발해 숙원인 ‘전쟁할 수 있는 나라’를 만드는 개헌을 실현하고, 중국의 부상으로 쪼그라든 위상을 회복하는 것이라면 한·일 충돌은 장기화·만성화된다.


한국은 미국을 쳐다본다. 미국의 주요 동맹 간 갈등이 미국 경제에 영향을 줄 수 있고, 동북아 안보 지형 관리에 파장이 미치게 된다. 한국의 대응 카드로 거론되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폐기도 그러하다. 이는 버락 오바마 행정부 때 한·미·일을 삼각끈으로 묶기 위해 미국이 강하게 원했던 사안이다. 그런데 GSOMIA에 대해선 강한 우려의 메시지를 던지는 미국 입장이 분명치 않다. 한·일 사이의 일이라고 거리를 뒀던 미국은 양국에 ‘현상유지 협정’으로 중재를 시도하는 듯하더니, 일본이 이를 무시하고 화이트리스트 제외를 결정한 이후에는 ‘중재자’가 아니라 ‘대화 촉진자’ 역할을 할 뜻을 내비쳤다. 미국 국무부는 “한·일이 창의적 해법을 찾기를 권고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계속 관여는 하지만 해결책을 모색할 당사자는 한·일이라는 뜻으로 읽힌다. 미국의 적극성에 기대기보단 한국이 주도적으로 움직여야 하는 상황임을 보여준다.


일본이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 체제를 재편하려 한다면 일본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없는 강제징용 문제를 해결하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 될 것이다. 해결을 장담할 수도 없다.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배상 판결에 응하지 않는 일본 기업의 국내 자산을 강제매각으로 현금화하는 시점이 또 한번의 중대 분수령이 될 터이다. 이대로 가면 예상 시기는 올해 말 또는 내년 초. 시간이 넉넉하지 않다. 한국 외교의 힘을 보여줘야 한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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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최대 국제예술제인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출품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강제로 중단됐다. 일본 정부의 공공연한 압력과 오무라 히데아키 아이치현 지사가 일방적으로 전시 중단을 통보한 결과다. 트리엔날레 기획전으로 마련된 ‘표현의 부자유, 그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기리는 소녀상을 비롯해 그간 일본 정부의 외압으로 전시되지 못한 작품을 한데 모은 전시다. 양식 있는 일본 예술인과 시민들의 노력으로 어렵게 성사되어 ‘평화의 메신저’ 역할을 기대했던 소녀상이 사흘 만에 강제 철거되고, 해당 전시도 통째로 중단됐다. 한 일본 작가의 지적처럼 “역사 문제를 직시하지 않는 불관용과 인권의식이 없는 국가”임을 백일하에 드러낸 꼴이다. 전시회 이름처럼 ‘표현의 부자유’를 자인한 것이기도 하다.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아이치 트리엔날레 2019’에서 4일 관람객이 폐쇄된 전시장 입구를 촬영하고 있다. 나고야 _ 연합뉴스


이번 전시는 개막하자마자 일본 정부의 노골적인 중단 압력과 우익 세력의 위협에 부딪혔다.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은 보조금 중단을 거론하며 압박했고, 가와무라 다카시 나고야 시장은 ‘위안부 망언’을 퍼부으며 전시 중단을 요구했다. 우익 세력은 “가솔린 탱크를 몰고 전시장을 들르겠다”는 협박을 서슴지 않았다. 아이치트리엔날레 큐레이터들은 성명에서 “전후 일본 최대의 검열 사건이 될 것”이라며 ‘역사적 폭거’로 규정했다. 일본 정부의 ‘평화의 소녀상’ 전시 방해는 해외에서도 자행되고 있다. 독일 베를린의 ‘게독’ 전시관에서 지난 2일 시작된 ‘토이스 아 어스’에 소녀상이 출품 전시되자 공문을 보내 철거를 압박했다고 한다. 앞서 독일의 한 기념관에 상설 전시된 10㎝도 채 안 되는 작은 소녀상마저 일본 정부가 기념관 측을 압박해 철거하도록 한 사실도 뒤늦게 확인됐다.


‘역사적 폭거’를 되돌리려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본격화하고 있다. 해당 기획전의 실행위원들은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일본펜클럽은 전시 계속을 촉구하는 성명을 냈다. 아사히와 도쿄 신문 등 언론의 비판도 이어지고 있다. 전시 작품 철거에 반대하는 온라인 서명운동은 하루 새 5000명을 돌파했다. 일본 정부는 강제징용 배상 판결 문제를 그것 자체로 풀지 않고 ‘경제침략’으로 전용해 한·일관계를 파탄으로 내몰고 있다. 그 무도함과 졸렬함이 상징적으로 드러난 게 이번 소녀상 전시 중단이다. 역사 왜곡과 ‘한국 때리기’를 위해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예술의 의의마저 짓밟는 일본, 그 반문명을 규탄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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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3일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아시아 지역에 배치하고 싶다고 밝혔다. 에스퍼 장관은 호주를 방문하는 중에 이같이 밝힌 뒤 “몇 달 내를 선호한다”고 말해 조기 배치를 희망한다는 뜻까지 피력했다. 뉴욕타임스는 중거리 미사일이 일본이나 한국에 배치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개발·배치를 전면 금지한 중거리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한 바로 다음날 ‘아시아 지역 중거리 미사일 배치’ 발언까지 한 것이다. 미국이 신속하게 대중국 포위 전략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일본과의 갈등을 포함해 외교안보 현안들이 중첩된 상황이라 한국으로서는 촉각을 곤두세우지 않을 수 없다.


아시아에 지상발사형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하고 싶다고 밝힌 마크 에스퍼 미 국방부 장관(왼쪽). 시드니(호주)_AP연합뉴스


미국의 INF 탈퇴는 그 자체로 기존의 국제안보 질서를 흔드는 행동이다. 게다가 미국이 2021년 만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까지 탈퇴하면 핵통제 체제의 양대 축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 패권국 간 군비경쟁을 촉발하는 위험한 행동을 미국이 주도한 것은 유감스럽다. 미국의 INF 조약 폐기는 중국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미국은 미국과 러시아가 INF 조약에 묶여 있는 사이에 중국이 중거리 미사일 전력을 높여왔다고 판단하고 있다. 결국 양국 간 패권 경쟁이 무역갈등에 이어 안보갈등으로 확대된 것이다.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 배치 지역으로는 괌 지역을 우선 검토하고 있는 모양이다. 국방부도 주한미군의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로 한·중이 그 난리를 벌였는데 미국이 또다시 한국에 미사일을 배치하겠느냐고 분석했다. 하지만 에스퍼 장관은 중거리 미사일의 조기 배치를 언급하면서 “이는 동맹과의 논의 등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에스퍼 장관은 오는 9일 정경두 국방장관과 회담하기로 돼 있는데, 자칫 이 자리에서 중거리 미사일의 한반도 배치가 거론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만일 미국이 이번 한·미 국방장관회담에서 중거리 미사일 한반도 배치를 거론하면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중국의 강력 반발은 물론이려니와 북한과의 핵 협상까지 한꺼번에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한국의 의사에 반하여 미국이 중거리 미사일을 한반도에 배치하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 혹여 추후에라도 미국이 방위비 분담금 증액 등을 지렛대 삼아 중거리 미사일 배치를 압박한다면 한·미동맹은 심각히 위협받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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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태국 방콕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열렸지만 현격한 입장 차만 확인한 채 무위로 끝났다. 강경화 장관은 반도체 소재 수출규제 문제를 제기하고 수출심사 우대 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를 보류·중단할 것을 촉구했으나 “일본 측 반응에는 큰 변화가 있지 않았다. 양측 간 간극이 상당했다”(외교부 당국자)고 한다. 이날 회담은 미국이 적극적인 중재 입장으로 돌아선 시점에서 이뤄져 기대감을 갖게 했지만 일본은 수출규제 강화가 안보를 목적으로 한 정당한 조치라는 기존 주장을 되풀이하는 데 그쳤다. 이날 도쿄에서는 한국 국회 방일 의원단이 일본 여당인 자민당의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면담하려다 불발에 그쳤다. 자민당 측은 전날 오후로 잡혔던 면담 일정을 이날 오전으로 연기하더니 다시 6시간 만에 내부 회의를 이유로 취소하겠다고 통보했다. 여야 중진의원들이 주축을 이룬 의원단을 석연치 않은 핑계를 들어 ‘문전박대’한 셈이다. 의회 간 대화조차 기피하는 일본의 태도는 무례라는 표현도 부족해 보인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7월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웃고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일본의 이런 태도로 미뤄 2일 오전 열리는 각료회의에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 관리령 개정안 의결을 강행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렇게 되면 한국은 이달 하순부터 수출우대를 받는 27개 국가에서 제외돼 식품과 목재를 제외한 1115개 일반 공산품에 대한 수출규제가 강화된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예고한 한·미·일 외교장관회담은 각의 결정 이후여서 ‘버스 지난 뒤 손 흔드는’ 격이 될 공산이 크다. 미국의 설득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이 좀처럼 자기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고 외교부는 보고 있다. 대외관계에서 모처럼 ‘미국 추종’을 벗어나려는 모습을 국민에 어필하려는 아베 정권의 얄팍한 태도가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 한국으로서는 사태해결을 위해 동원할 수 있는 외교적 노력은 다한 셈이다. 공은 일본에 넘어가 있다. 일본이 도발을 멈추지 않는다면 모든 수단을 동원해 의연하게 맞설 수밖에 없다. 관련 부처들이 대책 마련에 만전을 기해줄 것을 당부한다. 


강 장관은 이날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와 관련해 고노 외무상에게 추가 보복을 결정하면 안보 협력의 틀을 검토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정의당 김종대 의원에 따르면 2018년 이후 양국이 교환한 군사정보는 4건에 그칠 정도로 빈약한 실정이라고 한다. 동북아 정세를 감안할 때 양국 갈등이 안보 분야로까지 번진 것은 위험하고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먼저 ‘안보우려’를 내세우며 도발한 쪽은 일본이다. 일본은 파국으로 가자는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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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8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백악관에서 군축 역사의 기념비적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생산·보유·실험하지 않기로 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다. 냉전 종식의 신호탄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1991년까지 모두 2700기의 미사일이 폐기됐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는 이 조약을 승계했다. 


‘핵군축의 골드스탠더드’라는 평가와 함께 가장 성공적 핵군축 사례로 꼽히던 INF가 2일(현지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은 지난 2월2일 국무부 성명을 통해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도 같은 날 즉각 탈퇴 선언으로 맞받았다. 그리고 6개월의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이날부터 ‘포스트 INF’ 시대가 열린다. 31년간 이 조약이 유지되는 동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NF가 결국 ‘미국 최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종말을 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INF 폐기를 지론으로 내세워온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영향도 컸다.


INF 폐기로 양대 핵강국 미·러 간 군비통제 체제는 껍데기만 남았다. 이미 2002년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이 폐기됐고 2007년에는 유럽재래식전력감축조약(CFE)이 러시아의 탈퇴로 무력화됐다. 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핵심 8개국의 비준을 받지 못해 지금까지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만료되는 미·러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도 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INF 폐기는 핵통제 체제 약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이 INF를 폐기한 것은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러가 INF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은 장외에서 마음껏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확대했다. 그중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미군 전력이 중국 주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배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만 조약을 지키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직접 중국을 겨냥했다.


문제는 INF 파기 이후 미국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미국은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조약을 지향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정말로 미국이 ‘보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포함하는 새로운 군축 메커니즘을 원한다면 이런 식으로 INF를 깨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축은 적과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 합의에 이르는 힘든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개적이고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국제 통제체제가 되려면 중국 외에 중거리미사일 전력을 가진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제기구를 통한 공개적인 토론과 협의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중국과 양자 간 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중국의 20배다. 핵전력이 열세인 중국은 비선제공격과 최소억제 원칙의 핵전략을 갖고 있으며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은 중국 핵전력의 근간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만들지 않으니 중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의 군축은 서로 똑같은 무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로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를 제거하는 조치를 교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냉전 시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에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을 집중배치하고 중국을 굴복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동북아에서 중국·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한국에 미사일 기지나 탐지 레이더 등 MD 체계를 두려 할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에 냉전구도가 다시 펼쳐지는데 ‘한반도 냉전 해체 작업’이 제대로 될 리 없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동북아 군비경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중·러가 한반도 주변에서 합동초계비행을 하고 북한이 INF 위반 논란을 촉발시킨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고 있는 것은 그 전조일지도 모른다.


INF 폐기는 장차 한국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포스트 INF 시대’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비 전략이 현시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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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아베 정부의 불화수소 등 반도체 소재에 대한 수출규제 여파가 쉽게 가라앉지 않고 있다. 우리 정부는 자동차나 항공기의 주요 산업 소재인 탄소섬유에까지 규제 불똥이 튀지 않을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관련법 개정, 행정절차 간소화 및 예산지원 등을 검토하며 소재 산업 지원 의사를 밝혔고, 기업은 정부와 함께 소재, 부품, 장비산업에 대한 국산화 가속화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일본의 경제보복 조치를 소재와 부품산업 중흥의 기회로 만들자는 분위기다. 


그러나 보다 장기적이고 근원적인 대책이 빠졌다. 소재개발을 할 인재를 키우는 교육과 소재개발의 바탕을 이루는 기초과학의 육성이다. 최근 한 언론과 종로학원하늘교육의 공동조사 결과 발표에 따르면, 전국 4년제 대학의 48.9%, 서울지역의 32개 대학 중 8개 학교가 자연계 기초과학 관련 학과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31일 (출처:경향신문DB)


국가정책을 만드는 많은 사람은 기초과학이 국가 발전을 이끄는가에 대해 의문을 갖는다. 그들은 기초연구 결과가 응용연구로 이어지고, 나아가 국가의 산업발전과 생산물로 이어져야 한다는 기초과학의 선형적 모델을 중시한다. 그래야 투자할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과연 그럴까?


전자기학의 아버지 톰슨은 1916년의 한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산업에 적용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연구를 수행하지는 않죠. 단순히 자연의 법칙에 관한 지식을 확장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합니다.” 그는 한 예로 엑스레이를 들면서, 엑스레이가 수술실에서 총알 부상 부위를 찾기 위해 개발된 게 아니라, 전기의 본질을 찾는 순수과학에서 비롯된 것임을 강조한다. 


유럽입자물리연구소장이었던 크리스토퍼 르웰린 스미스는 입자가속기가 물리학의 기초연구를 넘어서 반도체, 비파괴검사, 암 치료를 비롯한 의료, 핵폐기물처리 등 다양한 분야로 전파된 것을 예로 들면서 기초과학이 사회의 문화에 이바지하고, 경제적 가치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으며, 산업을 진작시킴은 물론 교육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언급한다. 


오늘날 많은 자동차에 이용되는 유도코일을 개발한 건 자동차회사가 아니다. 물리학을 사랑한 패러데이가 전자기 유도법칙을 발견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영하 273도에서 전기저항이 0이 되는 초전도성 이론은 물리학자에 의해 연구되어 오늘날 병원에서 이용하는 MRI(자기공명영상장치)까지 확대되었다. 오늘날 꿈의 컴퓨터라 불리는 양자컴퓨터 역시 물리학의 양자역학 원리 없이는 불가능하다. 1900년 독일의 플랑크가 에너지 양자 개념을 도입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후에야 가능한 일이었다. “하늘은 왜 파란가요?” “무지개는 왜 생기죠?” 이런 질문이 현대의 고해상도 현미경을 만드는 분광학의 기초가 되었다. 


미국의 거대입자물리가속기연구소장이었던 밥 윌슨은 의회에서 가속기 연구소가 미국의 국방에 어떤 이바지를 했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는다. 그는 이렇게 답한다. “아무것도 없어요. 그러나 우리 연구소는 국가 방위의 의미를 가치 있게는 할 거예요.” 


우리나라 역시 연구비를 따내기 위해 제출하는 연구계획서의 거의 마지막 부분의 질문 항목은 연구과제가 미칠 사회경제적 효과를 기술하는 것이다. 많은 연구자는 자기 믿음에 기반을 둔 천문학적 숫자를 경제적 효과로 적어낸다. 행여나 “청소년의 호기심을 자극할 수 있음”이라고 기술한다면 과제로 채택될 확률은 그리 높지 않다.


기초과학이 호기심을 원동력으로 해서 탄생한 것이라면, 응용과학은 특정 질문에 대해 답하기 위해 고안된 방법이다. 응용과학이 낡은 방법을 개선한다면, 기초과학은 혁명으로 이끄는 과정이다. 첨단소재, 부품, 장비산업은 분명 기초과학으로부터 시작한다. 꺼지지 않는 기초과학연구실의 불빛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엄치용 미국 코넬대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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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한국과 일본에 대해 일정 기간 분쟁을 멈추는 ‘현상유지 협정’에 합의할 것을 양측에 촉구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또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은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에서 한·미·일 외교장관 회담을 열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폼페이오 장관은 “강경화 외교장관과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을 만난 뒤 두 사람을 함께 만나 그들이 앞으로 나아갈 길을 찾도록 장려하겠다”고 했다. 폼페이오는 “그들은 모두 우리의 중요한 파트너”라면서 “우리가 좋은 대화를 나누고 좋은 돌파구를 찾도록 도울 수 있기를 희망한다”고 했다.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갈등에 대해 관망 자세를 보이던 트럼프 행정부가 본격적인 중재에 나설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30일(현지시간) 워싱턴 인근 앤드루스공군기지에서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참석을 위해 태국행 전용기에 오르고 있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미국이 한·일 양국에 추가 행동을 멈추는 신사협정을 제안하면서 외교장관 간 대화 자리를 마련하겠다고 한 것은 이번 갈등이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고 봤기 때문일 것이다. 공히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 간 분쟁이 격화될 경우 동아시아 전략이 차질을 빚을 우려가 큰 데다 불똥이 미국 기업으로까지 튈 수 있다는 우려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미국의 이번 중재가 갈등을 완전히 가라앉힐 것으로 보기는 어렵다. 하지만 한·일 양국이 일단 싸움을 멈추고 타협을 시도하는 기회가 제공된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미국의 중재 노력이 파국을 막고 한·일 갈등의 출구를 찾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8월 1일 (출처:경향신문DB)


미국의 움직임과 별개로 한·일 양국 간 대화 시도가 이뤄지고 있는 것도 주목할 만하다. 무소속 서청원 의원을 단장으로 하는 국회의원단이 31일 일본의 주요 정계 인사들을 만나기 위해 1박2일 일정으로 방일했다. 지난 5월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의원들을 냉대한 것과 달리 이번에는 집권 여당인 자민당의 실력자인 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을 비롯해 누카가 후쿠시로 일한의원연맹 회장 등 주요 여야 의원들이 망라됐다. 1일에는 ARF 회의가 개최되는 태국에서 일본의 경제도발 이후 처음으로 한·일 외교장관 회담이 열리게 된다. ‘파국’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마련된 이번 대화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서청원 의원은 누카가 회장 등과의 오찬 간담회 후 기자들에게 양국 의원들이 “ ‘이렇게 가서는 안된다’는 것에는 공감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양국 국민 대다수의 심정이 그 말 그대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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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31일 새벽 원산 갈마 일대에서 또 단거리 미사일 두 발을 동해로 발사했다. 지난 25일 호도반도에서 북한판 이스칸데르로 불리는 KN-23 두 발을 쏜 지 엿새 만이다. 이날 미사일은 약 30㎞ 고도로 250㎞가량을 비행했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더딘 북·미 간 협상과 다음주 실시되는 한·미 연합훈련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보인다. 하지만 이런 미사일 발사는 대화 분위기에 역행하는 평화 위협 행위다. 국제사회와 함께 강력 규탄한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그 자체로 큰 위협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무시할 수도 없는 도발 행위다. 북한의 이번 미사일 발사는 그 주기가 짧아지고 종류도 다양해졌다는 점에 위험성이 있다. 지난주에는 석달 만에 미사일을 발사하더니 이번에는 1주일도 채 안돼 쏘았다. 게다가 이번에는 종류가 다른 미사일을 실험발사했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한국의 F-35A 스텔스기 도입이 대화 분위기에 어긋난다고 주장한다. 또 자위력을 강화하기 위해 미사일 실험을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미 연합훈련은 규모를 대폭 축소해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실시한다. F-35A는 9·19 군사합의 이전에 도입이 확정된 것이다. 거꾸로 북한의 미사일 발사야말로 탄도미사일의 실험을 금지한 유엔 결의안 위반의 소지가 다분하다.


다행히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 분위기를 해치지 않으려 신경 쓰고 있다. 북한 매체는 최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3발을 동시 탑재할 수 있는 신형 잠수함을 소개하며 “작전수역은 동해”라고 설명했다. 북한의 잠수함과 미사일이 미국을 겨냥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도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개의치 않는다며 여전히 김정은 위원장에 대한 신뢰를 표시했다. 지난주 미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당국자가 비무장지대에서 북측 당국자와 만났다. 이 자리에서 북측이 곧 실무협상을 재개할 의향이 있다고 전했다고 한다. 북·미 실무협상이 가시권에 들어온 셈이다. 


이런 중차대한 시기에 북한이 모험적 행동을 하는 것은 위험하다. 미사일 도발을 일삼는 북한에 한·미가 마냥 인내를 발휘할 수는 없다. 북한은 지금껏 미사일과 핵 실험을 중단한 것 이외에는 특별히 보여준 게 없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은 자기파멸적 행동이 될 수 있다. 미국에서 북한의 핵무기에 대비하기 위해 한·미·일 3국이 전술핵을 공유하자는 발상이 나오는 판이다. 과거 벼랑 끝 전술을 펼쳐 상대방을 압박하듯 북한이 함부로 미사일을 쏴댈 때가 아니다. 북한은 긴장을 고조시키는 미사일 발사 행위를 중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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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누구예요. 뭣 하는 사람이에요. 왜 우릴 두 번 죽일라카는 거예요.”


영화 <주전장(主戰場)>은 일본군 성노예로 고통스러운 삶을 강요당했던 이용수 할머니(91)의 호통으로 시작한다. 2015년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 내용을 설명하러 온 임성남 외교부 1차관을 향해 이용수 할머니는 울분을 쏟아낸다. “(협상)하기 전에 먼저 피해자를 만나야 될 것 아니에요. 이렇게 한다고, 알려주어야 할 것 아니에요. 모른다고, 나이 많아서 모른다고, 무시하는 거예요. 그래 가지고 지금 일본은 아베가 사죄했다, 사죄하고 전부 다 배상했다, 이렇게 보도해 가지고 외국까지 다 나가 있어요. 뭐 하는 거예요. 어데 외교통상부예요. 일본 외교부예요?”


<주전장>은 일본계 미국인 감독 미키 데자키(36)가 제작한 역사기록물이다. 일본 내 역사부정론자, 양심적 역사가들의 인터뷰와 실제 일어난 일들을 토대로 일본군 성노예 실체와 그로 인해 유린당한 식민지 여성의 인권을 파헤치고, ‘아베의 일본 우익’도 조명한다.

영화 '주전장' 포스터. 사진제공 시네마달


일본이 수출규제를 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일본의 공격은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위자료 청구소송에 대한 대법원 판결과 한·일 위안부 합의 파기가 계기였다. 대법원 판결 요지는 일본이 불법적 한반도 강제점령을 인정하지 않은 점을 지적한 것이다. 강제노역도 인정하지 않았고, 배상도 이뤄진 적이 없기 때문에 개인 청구권은 살아 있다는 것이다. 일본은 1965년 한일협정 내용을 들어 배상 문제는 해결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협정문 어디에서 ‘강제’라는 단어는 없다. 일본의 한반도 강제점령은 열강의 묵인하에 이뤄진 부정할 수는 없는 역사다. 일본은 위력을 동원하거나(한일의정서), 어새(御璽)·서명이 없거나, 매국노에 의한 불법 조약·협정(을사늑약·한일병합)을 통해 한반도를 강제 통치했다. 진실이 이런데도 일본은 식민지 지배에 대해 사과는 하면서도 “한국은 어리석은 국가” “조선 지배는 조선을 발전시키려 한 것” 등 망언들을 쏟아냈다. 나카소네 야스히로, 고이즈미 준이치, 아베 신조 총리 등은 대놓고 태평양전쟁 A급 전범자들을 기리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도 했다. 


<주전장> 후반부에선 아베를 중심으로 한 일본 우익의 실체를 확인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의 외손자다. 영화는 그가 일본의 교과서 왜곡과 일왕 중심의 입헌군주제인 ‘메이지 헌법 체제로의 복귀 운동’을 주도함을 증명해 나간다. 고바야시 세쓰 게이오대 교수는 “정말 무섭다. 그들은 전쟁 전의 일본을 신봉한다. 인권 감각은 없다. 그들은 헌법 개정에 곧 착수할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들’은 1997년 창설된 일본회의다. 일본 내각의 대다수가 이 조직의 회원이라고 한다. 일본회의가 일본의 정치·행정을 장악하고 있는 것이다. 일본회의 의원연맹 도쿄본부장 가세 히데아키의 말에서 일본회의의 인식은 그대로 드러낸다. “중국은 붕괴될 것이고 한국은 일본에 의지할 수밖에 없게 된다. 그 순간부터 한국은 이 세상에서 가장 친일적인 나라가 된다. 한국은 정말 귀여운 나라다. 버릇없는 꼬마가 시끄럽게 구는 것처럼 말이다.”


2019년 일본과 <주전장> 속 일본은 다 같은 ‘아베의 일본’이다. 그들의 의도는 분명해 보인다. 100여년 전 일본으로 돌아가려 하고 그 지렛대로 또 한국을 삼은 것이다. 그런 일본을 상대로 완전한 해결책을 찾기란 쉽지 않다. 이용수 할머니의 호통 속에 하나의 실마리가 있다. 국민이 다친 국가 간 분쟁에서 진실의 규명, 그리고 진심을 담은 사죄와 보상·배상이 없는 한 그 어떤 협정이나 합의도 일시적 봉합에 그칠 뿐이라는 것 말이다. 후세에까지 아픈 역사를 물려주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일 양국은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역사 청산작업을 해야 한다. 희망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다. 일본의 지식인들은 최근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고 사죄하고 반성해야 한다는 것이 대부분의 일본 국민의 공통 인식”이라며 경제보복 철회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영화 <주전장>이 진실에 다가갈 수 있었던 것도 고바야시 교수, 와타나베 미나 액티브 뮤지엄 관장, 도쓰카 에쓰로 인권변호사 등 양심적 일본인들의 증언 때문이었다. 일본군 성노예 피해자를 기리는 ‘평화의 소녀상’이 일본 최대 국제예술제가 열리는 나고야에 전시되는 것 역시 일본인의 도움없이는 불가능했다. 이런 움직임이 모아지면 아베의 일본도 움직일 수 있을 것이다. 새로운 한·일관계의 정립을 위해서라도 아직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미키 감독은 영화 말미에 위안부 지지자들에게 당부한다. “최악의 이야기, 과장에 초점을 맞추지 말아달라. 일본 우익들의 주장에 박차를 가할 뿐이며 일본인과의 공감대를 형성할 기회도 박탈시킨다.”


<김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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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일 중국 베이징 톈안먼(天安門) 광장 국기게양대에는 오성홍기가 깃봉에서 한참 내려와 달려 있었다. 지난 22일 사망한 리펑(李鵬) 전 총리의 영결식이 이날 치러졌다. 톈안먼 광장의 조기는 오롯이 리 전 총리에게 조의를 표하기 위해 게양됐다.


리펑 전 총리. 그는 ‘톈안먼 학살자’라는 오명을 달고 있다. 1989년 민주화를 요구하는 대학생들의 시위인 톈안먼 사태 때 그는 총리였다. 계엄령을 선포했고 탱크를 앞세운 군부대를 투입했다. 중국 당국이 밝힌 희생자는 수백명이지만, 1만명이 넘는다는 주장도 있다.


이들이 톈안먼에서 사라져 간 지 30주기 되던 6월4일, 중국 당국은 톈안먼 광장의 경계수위를 최고조로 높였다. 어떤 추모 행사도 열리지 못했다. 중국 영토 중에서는 겨우 홍콩에서만 톈안먼 희생자를 기리는 집회가 진행됐다. 그러나 ‘학살 주범’으로 지목받는 리펑은 톈안먼 광장에서 대대적이고 공개적으로 추모됐다.


톈안먼 광장에서 국무원 기자회견장까지는 2㎞ 남짓이다. 이날 국무원 산하 홍콩·마카오사무판공실은 이곳에서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처음으로 기자회견을 열었다. 40분의 기자회견 동안 법치라든가, 법률 및 기본법 준수 같은 말이 20여차례 나왔다. 대변인은 “현재 가장 중요한 것은 법치를 지키는 일”이라고 했다. 그리고 “어떤 주장의 목표가 아무리 숭고하다고 해도 폭력은 폭력이고 위법은 위법”이라고 했다. 범죄인 인도 조례(송환법) 반대 시위를 폭력 시위로 규정했고, 법의 잣대에 의해 처벌하겠다고 했다. 


리 전 총리는 톈안먼 시위 유혈 진압 외에도 논란이 많다. 1992년 생태계 파괴 우려에도 홍수 예방과 물 부족 문제를 해결하겠다며 싼샤댐 프로젝트를 승인했다. 광둥성 다야만 핵발전소 건설도 그의 재임 기간 중 이뤄졌다. 1998년 창강에 큰 홍수가 나자 모래주머니로 방지둑을 쌓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중국인들은 ‘중국에서 가장 큰 풀주머니(草包·차오바오)’로 홍수를 막자고 했다. 리 전 총리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국어에서 차오바오는 바보라는 뜻이 있다.


리 전 총리에 대한 지지율은 바닥이었다. 그러나 10년간 총리를 지낸 후에도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을 하며 권좌를 누렸다. 장남인 리샤오펑은 2016년부터 교통운수부 장관을 맡아 권력의 대를 이었다. 


법치를 강조하는 중국은 리 전 총리의 수많은 논란과 과오는 한번도 객관적 잣대로 평가한 적이 없다. 법으로 판단받은 적은 더더욱 없다. 법치는 때때로 특정한 곳에서 강력하게 작용한다. 


장커우커우는 13세 때 어머니가 이웃에게 맞아 죽는 것을 직접 보았다. 그러나 살해범이 미성년이라는 이유로 가벼운 판결을 받자, 군에 입대해 특공무술을 익혔다. 지난해 춘제 때 고향으로 돌아가 살해범과 그 가족을 죽이고 자수했다. 어머니의 억울한 죽음을 목도한 그는 성장과정 내내 괴로움에 시달렸다고 한다. 미성년 범죄 처벌에 대한 비판과 구제 여론이 높아졌다. 변호인은 최후 변론문에서 “법원이 인간의 연약함을 헤아려 자비심을 가지고 역사에 남을 위대한 판결을 내려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법에 따라 17일 사형이 집행됐다.


보통의 중국인들에게 법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다. 중국의 법치가 지도자들에게도 엄격하게 작용할까? 


리 전 총리는 생전 기고문에서 논란 속에 강행한 톈안먼 시위 진압, 싼샤댐과 핵발전소 건설 등 3대 결정은 모두 덩샤오핑의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 리펑이 죽은 후 인민일보와 신화통신은 그가 “1989년 정치적 풍파 당시 결단력 있는 조치로 소란을 억제하고, 반혁명 폭동을 진압해 국내 정세를 안정시켰다”고 했다. 또 “전심전력으로 인민을 위해 봉사한 일생이었다”고도 했다. 객관적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이들의 주장이 공허하기만 하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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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 대한 일본의 반도체 3대 품목 수출규제가 국제통상 규범에 위배될 뿐 아니라 일본 스스로가 국제사회에서 취해온 입장을 정면으로 뒤집은 것이라는 증거들이 연일 등장하고 있다. 통상전문가 송기호 변호사는 30일 일본이 수출품 통과제한을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 분쟁과 관련해 지난 4월 세계무역기구(WTO)에 제출한 의견서를 공개했다. 


일본은 의견서에서 “WTO 회원국들이 자국 안보를 지키기 위해 가진 재량권은 무제한이 아니다”라면서 안보상 예외조치를 규정한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21조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필수적 안보이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특정해야 하고 무역조치와 필수적 안보 사이의 합리적 연관성이 있어야 한다고도 지적했다. 그러던 일본이 몇 달 만에 입장을 뒤집어 합리적 연관성에 대한 설명 없이 ‘안보상 예외조치’를 내세워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행했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 7월 31일 (출처:경향신문DB)


송 변호사가 전날 공개한 일본 경제산업성 고시를 보면 일본 기업들은 한국에 대해 수출규제를 취한 반도체 3대 품목을 중국과 대만, 홍콩, 싱가포르에 수출할 경우에는 3년에 한번만 허가를 받도록 하는 포괄허가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 4개 국가·지역은 모두 생화학무기 국제통제체제인 호주그룹(AU)뿐 아니라 바세나르체제(WA), 핵공급국그룹(NSG), 미사일국제통제체제(MTCR) 등 전략물자 국제 수출통제체제에 가입하지 않았다. 한국보다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허술한 나라에도 포괄허가를 내주면서 한국을 개별허가로 규제하는 것은 명백한 차별로, WTO 협정 위반이다. 한국 수출규제가 애초부터 무리였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다. 이처럼 수출규제에 논리적 정당성이 없으니 일본이 WTO 이사회에서 한국의 대화제의에 응하지 않고 피해다닌 것이다.


일본 정부는 오는 8월2일 각료회의를 열어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대상인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결정을 할 가능성이 크다. 일본이 ‘막가는’ 결정을 내린다면 한국도 특단의 조치를 취하지 않을 수 없다. 


때마침 이날 국회에서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유지 여부가 도마에 올랐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상황 전개에 따라 (협정 폐기) 검토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양국이 신뢰관계를 회복할 수 없는 상황이 된다면 신뢰의 기반 위에서 운용돼야 할 군사정보보호협정이 제대로 기능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과거사 갈등이 경제를 거쳐 외교·안보로까지 비화되는 전면전을 바라지 않는다면 일본은 추가도발을 중단하고 부당한 조치를 되돌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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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학자, 변호사, 시민단체 활동가 등 지식인들이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 철회를 촉구하는 서명운동에 나섰다. 와다 하루키 도쿄대 명예교수, 우치다 마사토시 변호사, 오카다 다카시 교도통신 객원논설위원, 다나카 히로시 히토쓰바시대학 명예교수, 여성학자 우쓰미 아이코 등 77명은 지난 25일부터 인터넷 사이트를 개설해 수출규제 철회 촉구 서명운동을 벌이고 있다. 전직 외교관, 의사, 작가, 언론인 등도 포함된 참가자들은 ‘한국은 적인가’라는 성명을 내걸고 8월15일을 1차 기한으로 서명자를 모집하고 있다. 양국이 정면충돌의 파열음을 내고 있는 상황에서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들이 경제도발 철회와 대화에 의한 문제해결을 촉구한 것은 의미가 크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22일 (출처:경향신문DB)


이들은 성명에서 “반도체 제조가 한국 경제에 갖는 중요한 의의를 생각하면 이번 조치는 한국 경제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다”며 이를 “적대적인 행위”라고 규정했다. 또 일본이 한국을 침략하고 식민지로 지배한 역사를 거론하며 “한국과 대립하더라도 특별하고 신중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성명은 또 아베 신조 총리가 올해 시정연설에서 한국을 아예 언급하지 않고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한·일 정상회담을 생략한 것을 지적하면서 “마치 한국을 ‘적’처럼 다루는 조치를 하고 있는데 이는 말도 안되는 잘못이다. 한국은 자유와 민주주의를 기조로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구축하고 있는 중요한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는 “징용공들의 소송은 민사소송이고, 피고는 일본 기업”이라면서 그런데도 처음부터 일본 정부가 뛰어들면서 국가 대 국가의 다툼이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중국인 강제연행·강제노동 문제에 대해서는 일본 기업들과 중국인 피해자들 간에 화해가 이뤄졌을 당시 일본 정부가 민간의 일이라며 개입하지 않았던 것을 들어 아베 정부의 이번 조치가 이율배반임을 부각시켰다. 


최근 일본의 분위기로 볼 때 성명이 다수의 목소리라고 보긴 어렵다. 하지만 성명의 지적 어느 하나라도 사실에 어긋난 것이 없다. 한·일관계를 직시하면서 아베 정부의 태도를 바로잡으려는 세력이 일본 시민사회에 건재한 것은 마음 든든한 일이다.  


그럼에도 아베 정부의 폭주는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본 정부는 다음달 2일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개정안을 처리할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되면 한·일관계는 돌이키기 힘든 단계에 접어들게 된다. 그 후유증을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아베 정부가 지식인들의 고언을 무겁게 받아들여 추가 도발을 멈출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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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피는 어린 아들딸과 함께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도착한다. 소피의 미모에 호감을 가진 수용소 장교가 수작을 건다. 그가 묻는다. 폴란드인이냐 공산주의자냐고. 소피는 답한다. 유대인도 아니고, 가톨릭 신자라고. “공산당원이 아니라고? 기독교인이라고?” 하지만 장교는 단호하다. “예수는 아이들을 나에게 보내지 않았다.” 그는 한 아이를 선택하라고 한다. 둘 중 하나는 죽어야 한다며. 소피가 선택할 수 없다고 하자 선택하지 않으면 둘 다 죽이겠다고 한다. 소피의 입에서 “내 딸을”이라는 말이 튀어나온다. 한 군인은 울부짖는 딸을 안고 가스실 쪽으로 간다. 그런 딸을 바라만 볼 수밖에 없는 소피…. 대표적인 홀로코스트 영화인 <소피의 선택>(1982)의 명장면이다. 반인륜적 선택을 강요하는 극단적 상황에서 의지와 무관한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던 소피의 그 후 삶은 사는 것이 아니었다. 죄의식에 빠져 절망과 슬픔의 심연 속에서 몸부림치던 소피의 선택은 자살이었다. 


미국 망명을 기다리는 중남미 출신의 다섯 살 소년 하산 부스틸로가 26일(현지시간) 멕시코 북동부 타마울리파스주 국경도시 마타모로스의 국경다리 근처에서 식량 배급을 기다리고 있다. 마타모로스 _ AFP연합뉴스


영화 같은 일이 최근 미국에서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이 사건의 주인공도 소피다. 어린 자식에게 부모 중 한 명을 선택하게 한 점은 영화와 다르다. 사건은 이달 중순 텍사스주 국경 도시 엘파소의 한 불법이민자 수용시설에서 있었다. 남편, 세 아이와 함께 온두라스에서 악명 높은 갱단 MS-13의 살해 위협을 피해 온 타니아는 직원에게서 기막힌 말을 들었다. “가족이 미국에 체류하려면 부모 중 한 명이 멕시코로 돌아가야 한다.” 불법체류자는 ‘멕시코 땅에 머물러야 한다’는 이민정책 탓에 두 차례나 멕시코로 쫓겨났다가 돌아온 터였다. 타니아는 가족 모두 가야 한다며 버텼다. 직원은 세 살 막내딸 소피에게 물었다. “엄마, 아빠 중 누구와 함께 가고 싶니?” 소피는 “엄마”라고 대답했다. 아빠와 헤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챈 아이들은 울며불며 아빠에게 매달렸다. 직원의 다음 말은 말문을 막히게 했다. “왜 우니? 네가 엄마와 가고 싶다고 했잖아?” 다행히 미국판 ‘소피의 선택’은 희극으로 끝났다. 건강 사유가 있는 경우 돌려보내지 않는다는 규정 덕분이었다. 소피는 심장 수술 전력이 있었다. 이 사실은 미 공영라디오 방송 NPR의 지난 15일 보도로 드러났다. 지난해 6월에는 국경순찰대원이 수용소 아이들을 조롱하는 일도 있었다. 네 살에서 열 살까지 아이 열 명이 “엄마, 아빠”를 부르며 울었다. 부모와 떨어진 지 24시간이 채 안된 아이들이었다. 한 직원이 목소리를 높였다. “여기 오케스트라가 있군. 지휘자만 있으면 되겠군.” 비영리 탐사보도 매체 프로퍼블리카의 폭로로 사실이 알려졌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20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이민정책, 인종주의 등에 반대하는 ‘여성들의 행진(Women’s March)’이 열리고 있다. 지난해에 이어 2년 연속 미국 전역에서 열린 이 시위에는 50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된다. 로스앤젤레스 _ AFP연합뉴스


지난해 4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불법이민자 부모와 아이를 분리하는 이민정책을 도입한 후 벌어지는 반인권적인 장면들이다. 그 후 2300명의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졌다. 네 살이 안되는 아이들도 100명이 넘는다. 열악한 수용시설과 아이들에 대한 비인간적 처우는 끔찍하다. 지난달 말 수용시설 두 곳을 돌아본 소아과 의사는 “고문시설 같다”고 abc뉴스에 말했다. 24시간 내내 불이 켜져 있었고, 아파도 의료시설에 접근할 수 없었다. 기본 위생관리는 물론 적절한 물과 음식조차 공급되지 않았다. 그는 “당신의 아이들이 거기 있다고 생각해보라”고 했다. 22년간 활동해 온 이민 변호사는 여덟 살 아이가 네 살 아이를 돌보는 상황을 AP통신에 고발했다. 또 다른 변호사는 104명 정원에 약 350명이 수용돼 있는 현실을 폭로했다. 그는 NPR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에서 비인간적인 걸 보리라고는 생각조차 못했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용시설이나 그곳에서 나온 뒤 숨진 아이만 7명이나 된다. 


오죽하면 최연소 하원의원인 민주당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는 수용시설을 나치의 강제수용소에 비유했을까. 나치의 강제수용소 언급은 미국에서도 민감한 문제다. 하지만 역사를 보면 그 비유가 지나친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미국은 2차 세계대전 때 간첩이 있다는 이유 등으로 일본계 12만명을 수용소에 감금했다. 8만명은 시민권자였다. 시민권자조차 보호하지 않은 전력이 있기에 비시민인 불법이민자에게 헌법적 권리를 부여하지 않는 걸 당연히 여기는 걸까. 내년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의 계산적인 반인종·반여성 혐오 발언은 극성을 부릴 게 뻔하다. 최근 오카시오코르테스를 비롯한 민주당 여성 초선 의원 4인방을 겨냥해 “너희 나라로 가라”고 한 말이 단적인 사례다. 유색인종이 미국을 지배할 것이라는 백인들의 우려에 편승한 포퓰리즘이다. 미 여성 작가 리베카 솔닛은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에서 “모든 것을 정확한 이름으로 부르는 일”이 “세상을 바꾸는 핵심 작업”이라고 했다.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정확히 보고 이야기하는 게 정의 실현의 시작이다.


<조찬제 국제·기획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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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어느 더운 오후 아들과 영화를 보기로 했습니다. 일본 애니메이션의 대표작 중 하나인 <인랑>을 골랐죠. 내친김에 다음날 또 다른 일본 애니메이션인 <아키라>를 봤습니다. 한국뉴스에 아베 총리가 나와 한·일관계에 대해 설명을 해준 뒤였습니다. 한편으로 일본에 비판적이지만 일본 애니메이션을 같이 보는 아빠의 모습에 아들이 혼란스러워하지 않아 다행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내 사정은 그리 간단하지 않아 보입니다. 식민지 역사 해석을 두고 시작한 갈등은 결국 양국 간 무역분쟁으로 번지는 양상입니다. 정부 사이 거친 말이 오가고, 감정도 격해졌습니다. 덕분에 21일 열린 참의원 선거에 한국 사회의 관심이 이례적으로 뜨거웠죠. 실권 있는 중의원 선거도 아니고, 일본 유권자의 참여도 시들했지만 말이죠. 선거 결과를 두고 여러 해석이 나왔지만, 논의가 좀 덜 된 부분 세 가지만 돌아보겠습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1일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참의원 선거 승리에 대한 입장을 밝히며 웃고있다. 도쿄 _ AP연합뉴스


첫째, 무역분쟁 원인으로서의 선거입니다. 일본 경제산업성은 한국을 에칭가스 등 세 품목에 대한 포괄적 수출 허가 대상에서 제외하면서 포문을 열었죠. 당황스러웠고 그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곧 그럴듯한 설명 하나가 나왔습니다. 바로 참의원 선거 때문이라는 것이었죠. 한국을 때려 반한 감정을 자극, 우파표 모아 의석 3분의 2를 차지, 평화헌법을 개헌해 전쟁을 할 수 있는 정상국가 건설. 아베의 잘 알려진 숙원을 고려할 때 앞뒤가 딱 맞아 보였습니다. 이제 선거가 끝났으니 선거용이었던 수출규제는 끝나야겠죠. 하지만 그럴 기미는 안 보입니다. 왜 그럴까요.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무역규제 뒤에 선거 말고 다른 그 무엇이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 그것에 대한 탐구와 토론이 당장 있어야겠죠. 그래야 더 명확한 사태 이해, 더 효과적 대응이 나올 테니까요. 하지만 기존의 주장이 오히려 더 확대되고 있습니다. 좀 더 유연하고 다양한 사고가 필요해 보입니다.


둘째, 일본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선거였습니다. 일본 사회는 획일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개인은 집단에 희생하고 그 안에서 비슷하게 살려는 구심력이 강합니다. 태평양전쟁에서 보여준 전투력, 남을 배려하는 공공질서 준수, 외국인에 대한 차별 등에서 그 흔적을 볼 수 있죠. 그 반작용일까요. 의외로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도 찾을 수 있습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말이죠. 입헌민주당의 이시카와 다이가는 성소수자로 커밍아웃한 후 당선됐습니다. 루게릭병을 앓는 후나고 야스히코, 뇌성마비 장애인인 기무라 에이코도 당선됐죠. 한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듭니다. 소수자를 존중하고 공존하는 게 현대사회의 척도라면 이번 선거는 일본의 위상을 돋보이게 한 것이죠.


셋째, 일본 정치구조도 잘 드러난 선거였습니다. 일본 선거, 정당구조는 한국과 아주 다릅니다. 어디가 더 낫다고 딱 잘라 말할 수 없죠. 하지만 눈에 확 띄는 장점이 하나 있으니 바로 다양한 정당의 의회 진출입니다. 우리는 일본 공산당의 존재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번 선거에서도 7석을 얻어 13석을 유지하게 됐습니다. 한 석 줄어들기는 했지만, 전체 의석의 5%를 차지하고 있죠. 중의원에서도 12석(전체의석의 2.5%)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침은 있지만, 공산당이 의석 획득에 실패한 경우는 전후 딱 한 번밖에 없습니다. 한국에는 꿈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이유는 많지만, 그중 하나는 국가보안법 때문임에 이견이 없을 겁니다. 국가보안법의 모델은 일제의 치안유지법이었습니다. 공산주의, 민주주의 등에 맞서 ‘천황제’를 지키고자 만들어진 대표적 악법이었죠. 전후 일본에서는 사라졌지만, 역설적이게도 한국에서 명맥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마저 일본이 일깨워주고 있는 것이죠.


결국 일본은 크고 복잡한 나라입니다. 아베 정부가 주요 세력이지만 거대 사회의 일부일 뿐이죠. 뜨거운 ‘전쟁’의 대상인 일본은 게이, 한인, 공산주의자, 평화주의자, 방탄소년단 팬 등을 포함합니다. 서방 경제 제재가 북한 핵무기 개발을 막지 못한 데서 볼 수 있듯, 경제 제재는 큰 효과가 없습니다. 수출규제도, 불매운동도 마찬가지죠. 유연한 사고와 깊은 성찰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그리고 그 성찰은 우리가 어떤 모습인가를 돌아보는 데도 미쳐야 합니다. 우리의 발전이 저들을 움직이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고 효과적이니 말이죠.


<남태현 미국 솔즈베리대 정치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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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5일 오전 강원도 원산 호도반도 일대에서 신형 단거리 미사일 2발을 발사했다.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지난 5월9일에 이어 77일 만이다. 한·미 군당국은 두번째 미사일의 비행거리가 690㎞로, ‘5월 미사일’보다 270㎞가량 늘어난 것으로 분석되자 정체 파악에 주력하고 있다. 북한의 의도에 대해서는 좀 더 정밀한 분석과 판단이 필요하지만, 한반도 긴장을 높이는 군사행동은 어떤 이유에서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은 분명하다.


이번 미사일 발사는 최근 북한의 행보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은 다음달 2일 방콕에서 열리는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외교장관 회담에 리용호 외무상을 파견하지 않기로 했다. ARF에 세 차례를 제외하고는 모두 외무상을 파견했던 전례에 비춰 이례적이다. 이로 인해 리 외무상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간 회담이 무산되게 생겼다. 지난 23일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새로 만든 잠수함을 시찰했다는 북한 매체의 보도가 나왔다. 그 이틀 뒤 미사일 발사에 나선 것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예상 관측보다 지연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이 바람직하지 않은 행동을 보이고 있는 것은 유감스럽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 배경을 살펴볼 필요도 있다. 북한은 지난 6월30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의 판문점 회동에서 8월로 예정된 한·미 연합훈련의 중지를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은 연합훈련을 이유로 문재인 정부가 세계식량기구를 통해 지원하려던 쌀 5만t을 받지 않을 뜻까지 비쳤다. 한·미 군사훈련을 집중 비판함으로써 북·미 협상에서 북한의 체제안전 보장 의제를 부각시키려는 ‘기싸움’의 의도도 엿보인다.


미국은 합동 군사훈련 중지 약속은 사실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하지만 협상하자면서 군사훈련을 하는 것이 대화 분위기 조성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도 분명하다. 그렇다면 한·미 양국은 북·미 협상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훈련을 중단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이번 미사일 발사를 ‘단거리 발사체’로 규정하며 신중한 반응을 보였다. 청와대는 관련 동향을 사전에 인지하고 예의주시해 왔다는 원론적 입장을 밝혔다. 북한의 군사행동에 대해 한·미 당국이 절제된 반응을 보인 것은 바람직하다.


북한은 이런 군사행동이 한국의 대북 여론에 미칠 악영향을 간과하는 것 같다. 하지만 한국 여론을 무시하는 것은 북·미관계에 매우 바람직하지 않은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이 기회에 유념하기 바란다. 북한은 대화 분위기를 해칠 수 있는 군사행동을 자제하고 조속히 협상 테이블로 나올 것을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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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출규제로 시작된 일본의 한국에 대한 도발의 수위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3일 한국 공군이 독도 영공을 침범해 들어온 러시아 공중조기경보기를 향해 경고사격한 것에 유감을 표명했다. 러시아기의 침범에 대응하기 위해 일본의 자위대 군용기가 긴급 발진했다고 밝혔다. 공세의 범위를 교역을 넘어 영토 분야로까지 확대시킨 것이다. 24일에는 일본 정부가 화이트리스트(백색국가·수출심사 우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수출무역관리령 시행령 개정을 위한 의견 수렴을 마감했다. 다음달 하순이면 한국이 지난 60년간 받아온 대일 수출간소화 혜택을 받지 못하게 되는 상황에 봉착할 수 있다. 한·일 양국 간 갈등이 결정적으로 악화될 기로에 서 있다.


일본 정부의 독도 영공에 대한 언급은 일고의 가치도 없는 망발이다. 러시아 군용기가 한국 영공을 침범하는 어수선한 틈을 타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행위는 치졸하다. 독도는 역사적·지리적·국제법적으로 명백히 한국의 영토이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에 가장 먼저 희생됐다가 회복한 한국의 영토에 대해 일본은 왈가왈부할 자격이 없다. 화이트리스트에 대한 일본의 주장은 더욱 억지스럽다. 일본은 한국 법령에 재래식 무기 제조에 이용될 수 있는 물자의 수출규제를 위한 ‘캐치올’ 조항이 없다는 점을 문제 삼았다. 하지만 조사 결과 또 다른 화이트리스트인 캐나다 법령에도 캐치올 조항이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캐나다와 같은 조건에 있는데도 한국에 대해서만 차별적으로 규제를 강화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한국의 전략물자 통제 수준이 일본보다 더 높다는 미국 전문기관의 조사결과도 있었다. 일본이 이렇게 자기 원칙과 기준을 무너뜨리면서까지 한국을 차별한다면 국제적인 고립을 자초하게 될 것이다.


일본은 독도에 대한 망동을 거두어야 한다. 정부는 24일 백색국가 제외 방침이 부당하다며 즉각 철회를 촉구하는 의견서를 일본 정부에 보냈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이날 한국의 수출통제 제도 미흡 등 일본 측이 내세운 이유들이 모두 근거가 없다며 사전협의 없이 입법 예고를 강행한 일본에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일본이 이대로 한국을 백색국가에서 제외하면 양국 관계는 수습하기 어려워진다. 양국의 경제 및 안보 파트너십을 이렇게 쉽게 허물어뜨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방한 중인 존 볼턴 미 백악관 안보보좌관도 한·일 문제는 대화를 통해 해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일본 정부가 진정 막다른 길로 몰고 가려는 생각이 없다면 수출무역관리 시행령 개정 시도를 철회해야 한다. 일본의 이성적인 판단을 기대하며 향후 대응을 지켜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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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가 ‘멜팅폿(melting pot)’이다. 인종의 용광로, 즉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란 의미다. 강대국 미국에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스타벅스를 가도, 동네 마트를 가도, 영화관을 가도 뜻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나의 두 아들은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립학교를 공짜로 다녔다. 초등학생 둘째 아들은 같은 피부색의 일본, 베트남 친구와 자주 어울렸지만 프랑스 여자 친구도 있었다. 큰아들은 공립학교이지만 인도, 중국 출신 학생들이 대부분인 고등학교에 다녔고 점심시간 식당에는 카레 냄새가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의 회담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인종적 다양화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2018년 미국 인구통계를 인종별로 분류한 데 따르면 백인은 전체의 60.5%였다. 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아직 절대 다수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중 백인 비율은 72.8%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젊은층에서 비백인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2045년이면 백인 인구는 49.7%로 과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절대적 우위를 상실하고, 미국이 그야말로 소수민족의 나라가 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백인들 사이에는 이 같은 미국 사회의 변화가 싫은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백인들의 지위, 미국 사회의 구조와 주류 문화가 달라지는 게 두려운 이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버지니아 북부 지역에서도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향해 별 이유 없이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는 백인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불만의 백인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노골적인 백인 중심주의를 외칠 수 있게 해준 이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역대 공화당 정치인들도 백인 유권자들을 선동했지만 특정 그룹만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는 ‘도그 휘슬(dog whistle)’ 정도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이제 이민자 출신 비백인 여성 하원의원까지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대놓고 공격한다. 그는 지지자들이 “그녀를 돌려보내라”고 외치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본다. 트럼프 자신도 독일 이민자의 후손이고, 세 부인 중 두 명이 이민자다. 그가 공격한 여성 하원의원들이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와 다른 점은 피부색 하나뿐이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은 백인 중심 나라이니 불만이 있는 비백인 이민자들은 본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정말이지 뼛속까지 인종주의자다.


잇따른 인종주의 선동은 ‘정체성 정치’의 변종이다. 정체성 정치는 성, 종교, 인종, 성적지향 등 공유되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정치적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를 말한다. 여성운동, 민권운동, LGBT운동 등으로 표출됐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인구통계학적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백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소수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는 현실을 활용한 백인 정체성 정치를 재선 전략으로 공식화했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여기에 더해 민주당 여성 의원 등 비백인 이민자들을 향해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 급진좌파, 사회주의자라고 공격을 퍼붓는다. 자신의 정적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색깔론이자 매카시즘이다.


트럼프의 백인 정체성 정치가 시대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누구도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미국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 포크 음악의 아이콘 우디 거스리의 노래처럼 “이 나라는 너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종주의와 색깔론에 기대는 트럼프의 재선 전략은 위험하다. 멜팅폿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조화를 어렵게 하고 사회의 건전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조 바이든의 비판처럼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미국의 사회 조직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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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이 도쿄를 거쳐 23일 서울에 온다. 그는 서울에서 북·미 실무협상 재개, 호르무즈 호위 연합체 동참 외에 트럼프 대통령이 중재 가능성을 시사한 한·일 문제에 대해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양국 갈등이 증폭된 직후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 차관보도 한·일 양국을 방문했지만 이렇다 할 중재는 없었다.


한·일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은 양국이 스스로 해결하라는 것이다. 때문에 당장 미국이 중재에 적극 나설지도 의문이지만, 나서더라도 쉽게 해결될 것 같지는 않다. 작금의 한·일 갈등은 단순한 이해조정으로 해결될 수 없는 역사적이고 구조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일관계를 1965년체제라고 부르고 있다. 1965년 체결한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 등 4개 협정이 양국관계의 토대가 됐기 때문이다. 일본은 한일기본조약과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식민지 지배의 법적 문제와 보상 문제가 모두 해결됐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일본군 성노예, 근로자 강제동원에 대한 한국 측 문제제기로 양국관계의 법적 근간이 훼손됐다며 반발한다. 


하지만 한국은 일본 정부가 불법적인 식민지 지배를 인정하지 않은 데서 모든 문제가 파생했다고 본다. 일본 정부가 여전히 식민지 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지 않고 그에 따른 진정한 사과를 회피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한일청구권협정에서 다루지 않은 개개인에 대한 인권유린 등 불법행위에 대한 대법원의 배상판결은 별개라는 인식이다.


이같이 양국 갈등이 일본산 전략물자의 수출규제로까지 미치는 등 장기화 조짐을 보이자 국내 일각에서는 미국의 중재 역할을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1965년체제의 성립에 미국이 깊이 관여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역할에 한계가 있다. 당시 미국은 지역통합전략에 따라 일본을 핵심파트너로 삼고 한국, 대만 등을 참여시켜 역내 냉전을 관리할 샌프란시스코체제를 구축했고, 1965년 체제도 그 일환으로 지원했다. 미국의 안보우산으로 경제건설에 매진할 수 있었고 일본의 청구권자금이 종잣돈이 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당시와 상황은 크게 변했다. 그동안 샌프란시스코체제는 변화를 거듭했다. 1972년 2월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 뒤 이후 일본과 미국이 중국과 수교했고 남북 간에는 7·4공동성명이 발표됐다. 1990년대 초 냉전체제 해체로 한·러 및 한·중 수교가 이루어지고 남북한도 남북기본합의서를 채택하는 등 공존의 모색이 시작됐다. 최근 중국의 급부상은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해체를 촉진하고 있다. 


1965년체제의 근간도 흔들려 왔다. 한국의 경제력이 급속히 향상되어 작년 말 국민총소득 GNI가 3만600달러로 일본의 80%에 근접했다. 인구 5000만명에 GNI 3만달러를 의미하는 ‘5030클럽’에도 세계 7번째로 가입했다. 지난해 수출액은 6011억달러로 일본을 1315억달러 차이로 바짝 쫓고 있다. 세계 제4위의 수출대국 자리를 놓고 한국이 일본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 들어 샌프란시스코체제의 재강화와 해체의 상반된 움직임이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 한편으로 힘에 의한 평화를 내세운 미국은 중국을 겨냥한 무역 및 기술전쟁, 최근 들어 군비경쟁을 본격화했다. 다른 한편으로 비핵화 프로세스가 진행되고 새로운 남북관계와 북·미관계가 수립되는 등 한반도 평화가 만들어지고 있다. 


아베 정권은 전후 부흥의 토대가 된 샌프란시스코체제와 불평등한 1965년체제를 토대로 전전 일본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것 같다. 한반도 비핵화·평화 프로세스 진행은 북한 위협론을 근거로 재무장을 서둘러온 아베에겐 커다란 도전이다. 아베 정권이 줄곧 북·미 정상회담에 시비를 건 배경이다. 한국 주도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와 일본 패싱에 대한 불편한 심경은 이번 경제도발의 한 원인이 됐다.


그렇다면 현 한·일 갈등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해법은 간단하다. 일본은 경제도발을 멈추고 한국의 국력과 지위를 인정하는 데 기초해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해야 한다. 과거사 문제는 별도의 외교채널을 마련해 공동의 해법을 모색하도록 한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이 당시 한·일 역학관계를 반영한 것이라면, 현재의 변화된 역학관계에 맞춰 새로운 한·일관계를 맺는 것이 국제정치의 순리다. 


아베 정권의 목표는 한국에 타격을 가해 1965년체제를 유지하는 데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난 54년간 일본은 700조원에 달하는 무역흑자를 기록했는데도 부품·소재의 기술우위만 믿고 도리어 경제보복을 가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의 경제도발은 한국에 여러모로 기회가 될 것이다. 한국이 탈일본화에 성공한다면 중장기적으로 일본 경제의 퇴행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1965년체제의 종식은 샌프란시스코체제의 해체도 가속화해 동아시아 평화를 촉진시킬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일본의 경제도발에 물러설 수 없는 이유다.


<조성렬 |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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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연립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이 21일 실시된 참의원 선거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했다. 그러나 개헌 발의선인 3분의 2 이상 의석을 얻는 데는 4석이 모자라 실패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과반 의석을 확보하면 승리한 것이라고 목표를 설정했지만, 내심 꿈꾸던 개헌 발의선 확보가 실패로 돌아갔기 때문에 ‘반쪽 승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베 총리가 유권자의 뜻을 존중한다면 개헌 작업을 중단하는 것이 상식이다. 또 지지자들을 결집하기 위해 단행했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 역시 선거가 끝난 만큼 철회를 재고하는 게 순리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운데)가 21일 참의원 선거에서 집권 자민당의 완승이 확실시되자 도쿄 자민당 당사에서 당선이 확정된 후보들의 이름에 붉은 리본을 붙이며 환하게 웃고 있다. 도쿄 _ 로이터연합뉴스


그런데 아베 총리는 이런 선거 민심과 정반대의 길로 가고 있다. 아베 총리는 22일 “다른 정당 및 무소속 의원들과 개헌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기자회견에서 “현재 한·일관계를 생각할 때 가장 큰 문제는 국가 간 약속을 지키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것”이라며 한국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한국이 한일청구권협정을 일방적으로 위반했다며 한국에 대해 ‘신뢰의 문제’까지 거론했다. 전날 개표 방송에 출연해 “한국이 청구권협정 위반 상황에 대한 제대로 된 답변을 가져오지 않으면 건설적인 논의가 안될 것”이라고 한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간 초강경 자세다. 일본의 수출규제가 한국의 전략물자에 대한 관리체계 미비에 대비한 것일 뿐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한) 대항 조치가 아니라고 또다시 억지를 부렸다. 일본 유권자들의 뜻에도 반하고 사실에도 맞지 않는 주장이어서 매우 유감스럽다. 청와대도 아베 총리에 대해 “최소한의 선을 지키며 최선의 노력을 하는 게 양국민을 위해 할 일”이라고 반박에 나섰다. 선거 후 일본 측의 태도가 누그러질 것이라던 기대와 달리 한·일 갈등은 더욱 격화될 판이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로 세계 반도체 시장의 불안이 현실화하고 있다. 국제교역 생태계를 교란시키는 것은 일본에도 이롭지 않다. 한국의 전략물자 대북 밀거래 의혹을 제기했다 망신당한 처지에 한국의 신뢰를 거론하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한·일은 23일 세계무역기구(WTO) 일반이사회에서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의 불법성을 놓고 논리 대결을 펼친다. 또 일본은 이달 말 한국을 수출심사 우대 대상에서 제외하는 조치를 법제화한다. 아베 총리는 선거 민의를 수용해 한·일 갈등을 부추기는 공세를 멈춰야 한다. 일본의 공세는 단순히 경제에만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한·미·일 안보 공조를 깨뜨림으로써 동북아 평화에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행위이다. 아베 총리는 개헌 작업을 중단하고, 양국 간 갈등을 외교적으로 풀자는 한국의 제안에 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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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독립선언 100주년 만세소리가 아직 쟁쟁한데 다시 일본이다. 이제는 경제전쟁이다. 정부는 일본의 기습을 예상하지 못했던 듯하다. 그렇다면 미국도 이런 사실을 몰랐을까. 일본이 반도체 등 제조에 필요한 핵심부품을 한국에 팔지 않겠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대뜸 지난 5월에 열린 미·일 정상회담이 떠올랐다. 당시 트럼프와 아베의 포옹은 진했다. 레이와(令和)시대를 선언하며 첫 국빈으로 트럼프를 맞아 볼을 비볐다. 아베는 골프를 치며, 스모를 관람하며, 선술집에서 잔을 부딪히며 이런 얘기를 했을지도 모른다.  


“요즘 한국은 박근혜 정부와 맺은 위안부 문제 합의마저 이행하지 않습니다. ‘불가역적’이란 문구를 집어넣었는데도 그렇습니다. 유엔과 오바마 대통령도 환영했던 합의입니다. 우리 인내에도 한계가 왔습니다.”  


구로다 가쓰히로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은 최근 한국 언론과 인터뷰하면서 경제보복이 외교적인 문제임을 분명히 했다. 또 1965년 일본이 제공한 3억달러가 얼마나 소중하고 귀중했는지 알아달라고 했다. 그러면서 지금 젊은 세대, 한국 국민들이 과거를 모른다고 했다. 우리가 주먹을 쥐고 외치는 ‘과거’를 구로다 또한 태연히 입에 올리고 있다. 그가 생각하는 과거란 지금 한국의 번영이 일본 없이 이뤄졌겠느냐는 빈정거림이다.       


[김용민의 그림마당]2019년7월5일 (출처:경향신문DB)


역사학자 브루스 커밍스는 지난 세기 일본을 “태양을 향해 날고 있는 이카루스”라고 했다. 일본은 섬나라를 벗어나 대륙을 날고 싶었지만 태양은 날개를 녹여버렸다. 그리스 신화에서 이카루스는 밀랍으로 날개를 붙여 크레타섬을 벗어나려 했지만 태양에 너무 가깝게 갔다가 밀랍이 녹는 바람에 추락하고 만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일본의 야망인 동시에 한계였다. 그 절망의 잔해가 고스란히 떨어진 곳이 한반도였다. 일제가 강점했던 한국은 지옥이었다. 그 후 일본은 한국을 예(禮)로 대한 적이 없다.  


아베는 전쟁에 대한 반성만 할 뿐 한국에 대한 반성은 하지 않는다. 강대국에는 몇 번씩 사죄해도 식민지 지배에는 사죄할 생각이 없다. 일본의 대표적 전범기업인 미쓰비시도 강제노역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한국 대법원 판결을 무시하고 있다. 다른 강대국에는 직접 찾아가 사과했지만 한국만은 외면하고 있다. 일본은 이렇듯 한줄기로 엮여있다.     


일본은 군국주의와 결별했음에도 전전(戰前)의 문서들을 공개하지 않는다. 특히 1935년에서 1945년 사이의 기록들을 내놓지 않고 있다. 문서가 공개되었을 때의 파장이 두렵기 때문이다. 일본의 대다수 역사가들은 제국주의 역사를 정직하게 평가하는 작업을 회피하고 있다. 제국주의 잔영이 아직 어른거리고 있음이다.    


그렇다면 사실상 경제전쟁에 돌입한 문재인 정부는 이 난국을 어찌 극복할 수 있을까. 아마 미국은 우리 편 손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어차피 묘책은 없다. 그럴수록 정도(正道)로 대응해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일본의 기습에 대비하지 못한 것은 질책받아 마땅하다. 하지만 경제 문제로 과거사에 굴복할 수는 없다. 위안부, 징용 문제는 다른 모든 과거사와 연계되어 있다. 절세의 독립운동가들, 만세를 부르다 죽어간 양민들, 간도에서 학살당한 동포들, 타국에서 죽어간 이주민들…, 그들의 피눈물을 돈으로 환산할 수는 없다. 우리 모두는 그들이 있어 대신 살아남은 자들이다. 당장 나라 형편이 어려워지더라도 그들을 우리 정의와 양심의 울타리에서 내칠 수 없다. 또 적당한 타협은 문재인 정부를 출범시킨 촛불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겐 일본에 없는 것들이 있다. 바로 독재와 타락한 정권을 물리친 민중의 혁명이다. 그래서 일본보다 앞선 민주주의가 있다. 일본은 전승국 맥아더가 시켜서 민주주의를 도입했지만 우리는 국민들이 쟁취했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니까 경제전쟁 같은 아베의 폭주를 시민의 힘으로 막아내지 못한 것이다. 역사에 지름길은 있어도 생략은 없다고 한다. 어차피 일본이 한국을 계속 부정한다면 맞붙어 결론을 내야 한다.  


엄중한 시국이다. 함부로 말하지 말자. 대안이 있다면 떳떳이 말하고, 대안이 없으면 적어도 침묵하라. 문재인 정부가 미워도 일본을 받들 수는 없지 않은가. 문재인 대통령도 아직은 국민의 이름을 불러서는 안된다. 사생결단의 각오로 싸우다가 마지막에 부를 이름이 국민이다. 우리 국민들은 참을 때와 진격할 때를 안다. 일본이 닌자의 칼을 숨기고 슈퍼마리오를 내세워(아베는 올림픽기를 인수하며 슈퍼마리오로 변신했음) 도쿄 올림픽에서 비상을 꿈꿀 것이다. 그러나 바다 건너의 인권과 정의를 바라보지 않으면 아베의 날개는 태양에 녹아내릴 것이다. 두려울 것 없다. 두려운 것은 우리 자신뿐이다.


<김택근 시인·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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