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외교라인에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외교의 원로로 노동당 정치국원인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 모든 직책에서 제외되고, 김정은 시대 대미 전략을 총괄해온 리용호 외무상도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특히 리 외무상의 후임으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주 이런 내용의 외교라인 교체를 북한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들에 통보했다고 복수의 외교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정부 당국은 “아직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대외 전략의 전환을 예고하는 외교라인 변화를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왼쪽 원)과 리용호 외무상(오른쪽 원)도 함께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북한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외교 원로인 노동당 부위원장(국제담당) 리수용과 자타 공인 미국통 리용호 외무상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상당한 변화이다. 그동안 대미 협상을 주도해온 외교의 양대 축을 동시에 바꾼 것은 외교 원로들의 퇴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 외교라인에 대해 하노이 담판 후 북·미 핵협상 복원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선권의 외무상 임명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훨씬 강하다. 군 출신으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평통을 이끌어온 리선권을 외교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상당한 파격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측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핀잔을 준 강경파이다. 과거에도 북한에서 외무상 출신이 대남 업무를 관장(허담)하거나 대남 업무를 관장하다가 외무상이 된(백남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외교 경력이 전혀 없는 리선권을 기용한 것은 북·미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후임자들의 당내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불안하다. 외교적 해법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북한이 외교 진용을 대폭 교체해 대미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것이 곧 대미 강경 대응과 모험적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이라는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대남 업무를 담당해온 리선권의 기용이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북한 외교라인 교체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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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해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어디 있으랴마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역대급’으로 악화되는 정치·경제 양극화 양상을 고려하면 사즉생(死卽生)의 전쟁 같은 선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11월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 및 상·하원 선거는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외교정책과 향후 세계전략도 영향을 받을 테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최우선 관심사는 물론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다. 대부분 박빙 승부를 예상하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1% 이내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이들 3개주와 플로리다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트럼프의 주요 정치적 결정들이 이들 경합주에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외교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무력충돌은 트럼프가 이민자, 경제 문제에 더해서 종교 문제를 선거전략으로 꺼내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대 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다. 2019년 조사에서도 성인의 65% 이상(가톨릭 20%)이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복음주의 개신교계다. 인구 4명 중 1명이 복음주의 신자로 추산되고 이들 절대다수는 백인으로 중남부주들에 밀집해 있다. 여기에 보수적인 가톨릭계, 유태계 일부가 결합되어 현재 공화당 보수정치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광적인 지지층과 겹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폭살에 대해 부정적, 회의적이다. 특히 공격 시기가 공교롭게도 상원의 탄핵심판 직전이다. 이란 및 중동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략도 혼선을 드러내고 있다.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철군을, 이란 및 이라크에는 군을 증파하고 있다. 물론 이란으로부터의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이렇게 공격받을수록 그의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 실제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되는 공화당원의 95%는 여전히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관점과 행동이 선과 악의 명징한 이분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보수주의자들은 십자군 원정을 포함, 천년전쟁의 연속선상에서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 간의 싸움을 세계사 해석의 기본 축으로 본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이성의 싸움에선 늘 신앙이 승리해 왔다고 믿는다. 이들에겐 이슬람문명권의 중심국이 되려는 이란과의 싸움은 역사의 필연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이란을 다루는 방식은 북한을 상대해 온 방식과 판박이다. 그는 북한이 경제제재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왔듯,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해야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북한이나 이란은 미국의 실제 의도가 그들 체제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응한 건 그들이 미 본토에 도달 가능한 핵미사일 능력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인식해온 듯하다. 좁히기 쉽지 않은 인식의 간극이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의 북·미 간 합의들을 먼저 깬 것은 미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의 정권교체나 의회권력의 교체 이후 북한과의 합의는 결렬되어 왔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에서의 경수로 2기 건설 약속, 2000년 10월의 북·미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공동합의문, 6자회담(2003~2007)을 통한 9·9합의, 2·13합의, 10·3합의의 불이행은 미국의 국내정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트럼프가 정권교체 후 2015년 이란과 맺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검토와 판단을 끝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다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2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통해 맺은 협정도 관련국과 상의 없이 폐기한 나라가 미국이다.


결국 이란이나 북한 모두 미국의 대선 및 상·하원 선거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선 선뜻 핵협상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부결속을 다지며 장기항전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서두르는 쪽이 더 잃는 형국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랬다고, 지속 가능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교한 협상전략에 힘을 더 쏟을 때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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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표명하면서 예기치 않게 시동이 걸렸던 한반도 평화정착프로세스가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던 김 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 유예 약속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대화 복원이나 진전은 고사하고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세계적 관심과 기대 속에 시작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좌초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각양의 진단과 분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북한은 물론 미국·한국 등 대화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가장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요소인 ‘비핵화’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한 것은 정치적 성과였다. 전임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한 방에,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해냈음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요청을 즉각 수락하고 곧바로 아무런 준비 없이 정상회담에 뛰어들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비핵화 전략이 아닌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였다.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무모한 시도의 결과가 싱가포르 합의다.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리고 ‘새로운 북·미관계’와 ‘신뢰구축’을 앞세운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을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싱가포르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동시·병행적 이행’을 내세워 비핵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합의문을 이미 받아든 북한이 이에 응할 리 없었다. 북·미 대화가 꼬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흥미를 잃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비핵화 진전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어떻게 재선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남북관계 진전이었다.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긴 했지만 정작 북·미 대화에서 비핵화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지에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보다 남북관계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북·미 간 대화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9·19 남북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문재인 정부의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이 합의는 북·미 대화와 비핵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미래 전망을 가불받아서 만든 것이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가 사라지면서 이 합의는 빛을 잃었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 국가로서 정체성을 세우고 국가 번영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미래지향적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선후관계에 문제가 있다. 신북방정책은 대북제재 해제를 필요로 하고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풀려야 한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교한 비핵화 전략이다.


북·미 대화와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자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남북협력 사업 추진을 올해 신년구상으로 꺼냈다.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의 독자적 영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북·미 대화가 정체됐다고 남북관계까지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인식과 함께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핵화는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를 통해 제시한 한반도평화 3원칙은 전쟁불용·상호안전보장·공동번영이다. 핵문제는 신년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작업인 이유는 비핵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남북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하는 것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물론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를 할 뜻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보다 한·미가 비핵화 목표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정교한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협상을 잘못하면 핵을 내놓을 생각이 있다가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또 협상을 잘하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바꾸게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외교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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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 아니라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종교·사회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와 별개로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한 ‘남북관계 선행론’이 정부의 올해 대북 기조로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 대화가 정체되면 남북관계도 따라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부가 이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가운데)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미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단합된 대북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며 ‘남북관계 선행론’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던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반응을 문 대통령과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트럼프뿐 아니라 어느 정부이건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가는 것을 견제해왔다. 그럼에도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고 때로는 마찰도 불사하면서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장해왔다.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성찰과 자성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가 이제 와서 미국이나 보수세력들의 반응을 신경쓰며 좌고우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대북 기조의 전환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부가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지역 개별관광이 성사되려면 북한과의 협의는 필수다. 자연 북한의 호응 여부가 관건이다.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의 담화가 대남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관계 중재 역할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나온 남북관계 복원의지에 화답해야 한다. 개별관광 협의를 위해 남북이 조속히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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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미래 통일독립국가의 국호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맞섰다. 그러나 이어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두 이름은 통일국가가 아닌 분단국의 국호가 됐다. 1948년 8월 남쪽에서 ‘대한민국’을 수립하자,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분단국의 국호가 이처럼 판연히 갈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국과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처럼 ‘중화’를 공유한다. 통일 전 남북 베트남의 국호는 각각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었고,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역시 ‘독일’을 함께 썼다(강응천,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한국’ 또는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려 했던 꿈은 분단과 함께 좌절됐다. 그럼에도 남은 북을 ‘북한’으로, 북은 남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국호를 강제했다. 강렬한 통일 욕구와 민족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분단이 공고화되고, 국제사회까지 두 개의 국가로 공인했음에도 남북은 상대방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분단의 역사가 이어지고 남북의 경제 격차, 분단 의식이 심화되면서 민족·통일보다 공존·평화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도둑처럼’ 오는 통일은 없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주의란 ‘상상된 공동체’일 수 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존과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향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어제 한 신문에 ‘한국과 조선: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를 접근하기보다는 ‘한국’과 ‘조선’으로 서로 대면”하게 하자는 취지다. ‘조선’을 소환해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한번 음미해볼 얘기다. 요즘 TV에서는 “북한은 개성 영하 4도, 함흥 영하 8도로 우리나라보다 쌀쌀하겠다”라는 식의 날씨정보를 종종 접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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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타이주는 중국 고위 관료들을 취하게도 하고 긴장하게도 만든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중국 남부 선전시 국유기업인 광밍(光明)건설발전그룹 장(張)모 회장은 송년회 때문에 해임됐다. 정확하게는 송년회 테이블에 올라온 마오타이주 때문에 잘렸다.


지난 4일 이 그룹 임직원들은 5성급 호텔에서 연간 보고회를 한 뒤 테이블당 83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었다. 병당 134만원짜리 마오타이주를 식사와 곁들였다. 11개의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마신 마오타이주는 2688만원어치다. 이들은 마오타이주는 옆방에 숨겨놓고 다른 병에 따라 마셨다. 그러나 ‘암행어사’식 조사로 초호화 송년회 행태가 드러났고, 결국 장 회장은 면직 처분됐다.


중국에서 마오타이주는 고급술의 대명사이자 부패의 척도다. 중국 관영 CCTV가 12일부터 방송한 반부패 선전용 특집프로그램 <국가감찰>에서는 부패로 낙마한 구이저우 전 부성장 왕샤오광(王曉光)의 집에서 4000여병의 마오타이주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왕 전 부성장은 2009년 마오타이주 가격이 급등하자 마오타이그룹에 압력을 가해 대리점 경영권과 131t의 마오타이주 할당량을 받아냈다.


1934년 11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홍군이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마오타이주는 홍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술이었다. 상처를 소독하는 약품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독특한 향과 깊은 맛에 홍군 대장정과 맞물리는 역사 스토리까지 덧입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가 됐다. 즐기려는 사람은 많은데, 5년 정도인 긴 제조 기간으로 공급량이 적다보니 투기나 뇌물 대상이 된다. 소장하고 있으면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위 관료들만 마오타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마오타이 사랑도 그 못지않다. 지난해 상하이에 중국 1호점을 낸 미국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대성공에도 마오타이주가 큰 몫을 했다. 중추절(추석)을 앞두고 시중보다 1위안(170원) 싼 1498위안짜리(약 25만원) 마오타이 페이톈(飛天) 제품을 내놓았다. 1인당 1병으로 구매를 제한했지만 이틀 만에 준비한 1만병이 모두 동났다. 마오타이 회장이 중추절 당일 “마오타이주는 마시는 것이지 투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투기에 가까운 마오타이주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춘제(중국 설)를 앞두고 마오타이주 사랑은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우한시는 2016년부터 부패 공직자들에게 몰수한 뇌물을 공개 경매하고 있다. 지난해 경매에서는 총낙찰액 321만위안(약 5억4000만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30만위안(약 3억8300만원)이 마오타이주에서 나왔다. 주로 5~6병씩 함께 포장된 뇌물용 마오타이주는 15년산부터 50년산까지 다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매에서는 진품 여부를 감별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간지 남방주말은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도 가짜 마오타이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다고 전했다. 


가짜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까지 감수하면서 고가에 낙찰을 받는 것은 중국인들의 마오타이주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허영 때문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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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2019·2·27~28) 굴욕으로 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국을 향한 분노와 불신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노동당 전원회의(7기 5차) 보고를 무려 나흘씩이나(12·28~31) 할 이유가 없었다. 신년사마저 생략하고 전원회의 발언문 공개 형식을 통해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상을 엎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개최된 7기 4차 전원회의(2019·4·11) 이후 8개월여 기간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으로 간주했다. 김정은에게 이 기간은 분명 자득의 시간이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지점을 끝까지 찾아보려는 간절한 모색의 시간이었다. 자력갱생과 미국과의 불화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는 공개적 다짐의 배경에는 더는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려있었다.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정면돌파전이 시대적 과제임을 투쟁적으로 강조했다. 새로운 전략무기체계를 확보했음도 시사했다. 이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말하자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인 셈이다.


벼랑 끝에서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 보내기를 유보한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고수하는 한 비핵화는 없을 것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철회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특유의 조건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미국이 가시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대북 무시를 견지한다면 선물은 언제라도 공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비핵화를 두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맞붙어 협상할 시간은 많지 않다. 시간은 쥐고 있는 협상카드의 속성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 시간은 한반도 정세와 북·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공(攻)과 수(守)의 시간은 서로의 급소를 향해 치닫고 있다. 승부의 관건은 시간이 누구에게 유리한가이다.


사실 미국은 어떤 공이 와도 칠 수 있는 타자이다. 그러나 이란과 사실상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술책에 말려들 경우 자신의 재선에 악재가 될 수 있음을 트럼프가 모를 리 없다. 트럼프는 가능한 한 11월 대선까지는 북한의 행동에 ‘화염과 분노’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북핵 문제를 최대한 로키(low-key)로 이끌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미뤄졌던 시진핑의 방한과 방일이 상반기에 이뤄진다고 볼 때 김정은이 굳이 이 시기에 동북아 정세를 초긴장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다급한 쪽은 김정은이다. 북한 매체는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1년 사이 트럼프를 세 번이나 만나고서도 북·미관계가 파국을 맞을 경우 궁핍한 주민들의 실망감이 김정은에게는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거리다. 오죽했으면 새해 벽두부터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절약정신을 체질화하자고 수 차 강조해야 했을까. 발언문을 읽으면서 마치 망인의 피부를 눌러도 되돌아오지 않을 때 느끼는 막막함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꺾어지는 해이자 집권 9년차에 접어든 1984년생 김정은에게도 봄은 오겠지만 그 봄은 우리가 생각하는 봄이 아닐 수도 있다. 봄(春)이 봄(bomb)으로 이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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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11일 담화를 내 일부 제재와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는 협상이 다시는 없을 것이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계관 고문은 “일부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며 “조미 사이에 대화가 다시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담화에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탄핵과 대통령 선거, 이란 문제 등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 섣불리 나설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협상의 전제조건을 높인 것이나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한 데서도 이런 고민이 엿보인다. 북한의 현 정세에 대한 판단과 북·미 대화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불필요한 독설을 퍼부은 점은 유감천만이다. 김 고문은 “남조선 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친서로 전달받은 상태”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들 사이에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것이 북으로서는 그토록 불쾌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레발’ ‘호들갑’ ‘주제넘은 일’ 같은 거친 언어를 쏟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미 메시지는 절제된 톤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는 비아냥과 독설을 퍼붓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한국 내의 남북화해를 바라는 여론마저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 북한은 대남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이번 담화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 중재역할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내놓은 남북협력 제의를 거부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김 고문의 담화에 남측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깔려 있는 걸 보면 올해 남북관계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년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관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남북협력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았음을 북한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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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 11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로 나선 차이 총통은 817만표(57%)를 얻어 중국국민당의 한궈위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차이 총통이 얻은 표는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 시행 이후 가장 많고, 득표율도 4년 전 당선 때보다 1%포인트 더 높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는 민진당이 입법위원(국회의원) 의석의 과반을 차지했다. 대만인들이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차이 총통을 크게 지지했다는 증거다. 


차이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 대륙으로부터 대만의 독립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차이 총통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우리 인민은 더욱 큰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외칠 것”이라며 “중국의 압력에는 계속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정부는 “대만 정부는 중국의 내정”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중국의 한 개 성(省)일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내세우며 ‘대만의 독립’이나 ‘두 개의 중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만 총통 선거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홍콩 시위로 중국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흔들리고, 차이 총통이 연임하게 되면서 ‘하나의 중국’마저 도전을 받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홍콩, 마카오를 포함해 대만까지 통일해 ‘하나의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해 왔다. 중국이 중국몽 실현을 위해 홍콩처럼 대만에까지 압박 수위를 더 높일 것은 명확하다. 벌써부터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들에 대한 단교압력,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 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 보았듯이 강경 노선이 국제사회의 반발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차이잉원 2기 시대의 양안관계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대만의 독립 노선이 충돌하면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통일과 독립이라는 대립구조만으로는 양안관계가 풀릴 수 없다. 차이 총통은 물론 중국 정부도 양안관계의 평화로운 발전에는 공감하고 있다. 양측은 모두 통일이나 독립과 같은 궁극적 목표를 내세우기 앞서 평화·공존·상생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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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내 핵심 군사기지 두 곳을 미사일 20여발로 공격했다. 지난 3일 미군 폭격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사망한 지 닷새 만에 군사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반격을 경고했다. 40년 앙숙인 양국이 무력 충돌하면서 중동이라는 화약고가 폭발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7일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뷰하는 간접 형식이지만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처음으로 공개 요청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현실화하면서 정부가 파병에 대해 결단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추가 대응이 없으면 확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양쪽 모두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이날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80명이 숨졌다는 이란 국영방송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의 반격은 불가피할 터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민간항공사들은 걸프지역 운항을 금지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전면전에 돌입할 경우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벌써 전 세계 금융시장과 원유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서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진다. 세계 평화를 위해 양국은 공격을 멈춰야 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시급히 중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한국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 수입을 하는 만큼 중동 해상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반드시 미군과 공조해서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은 핵 합의를 먼저 깬 데다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이란을 선제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법 위반인 문화재 공격까지 언급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이란은 친미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하면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이란 간 교역은 물론 대중동 외교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일본도 미국의 파병 요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양측의 전쟁에 끼어들어 국익을 손상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정 실장은 한국군 파병에 명분이 없다는 점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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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를 세운 아랍의 예언자 마호메트는 칼을 들고 중동지역을 신흥종교로 물들였다. “칼은 천국과 지옥을 모두 여는 열쇠다. 신의 대의명분을 위해 흘린 피 한 방울, 싸우며 보낸 하룻밤은 두 달의 금식이나 기도보다 효과가 있다. 심판의 날, 상처는 눈부신 주홍빛으로 빛나고 사향처럼 향기로울 것이며, 잃어버린 팔다리는 천사들과 케루빔의 날개가 대신해 줄 것이다.” 마호메트의 말에 중동은 종교전쟁으로 불타 올랐다.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세계는 후계자 계승방식의 이견으로 분열했다. ‘선출’과 ‘마호메트의 혈통 존중’ 사이에 간극이 컸다. 680년 마호메트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카르발라전투에서 살해된 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후세인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시아파라고 부른다. 세계 16억명의 무슬림 가운데 90%는 수니파, 10%가 시아파다. 시아파는 이란,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표된다. 


이슬람 사회에는 당한 만큼 돌려주는 ‘키사스’라는 형벌이 있다. 바빌로니아왕국의 함무라비법전에 나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보복법에서 출발한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처벌규정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란·이라크·파키스탄 등지에서 키사스를 형사처벌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다. 이란에선 형법에 명시된 ‘생명의 키사스’에 근거해 살해 피해자 가족이 법원에 가해자의 사형을 요청할 수 있고 사형집행에도 참여한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8일 새벽 이라크 내 미국 기지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앞서 미국이 지난 3일 이란군의 상징적 존재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폭격으로 제거한 뒤 닷새 만이다.


솔레이마니가 폭사한 다음날인 지난 4일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쿰의 ‘잠카란 모스크’ 정상에 피의 전투와 복수를 의미하는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 깃발에는 ‘이맘 후세인을 위한 복수’를 의미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란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던 경고를 실행에 옮겼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공격 개시시간도 솔레이마니가 죽은 시각과 정확히 맞췄다. 키사스 방식 대응이다. 전쟁의 깃발이 올랐는가. 세계는 복수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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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최근 발표한 연말 보고서가 미국 언론 주목을 받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거짓 정보 유통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위험성을 경고한 대목이 마치 ‘가짜뉴스 공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 같다는 추측을 낳았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 원리는 폭도의 폭력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게 됐고, 시민 교육은 도중에 실패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순식간에 소문과 거짓 정보를 대규모로 확산시킬 수 있는 우리 시대에는 대중이 정부와 정부가 제공하는 보호들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미국 대법원장은 연말마다 짧은 보고서를 내는데 2005년 취임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늘 역사의 일화를 서두에 앞세웠다고 한다. 이번엔 헌법 원리 해설서로 유명한 &lt;연방주의자 논설&gt;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자 훗날 초대 연방대법원장이 되는 존 제이의 일화를 소개했다. 1788년 의대생들이 묘지에서 시신을 도굴해 해부학 실습에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에 분노한 뉴욕 시민들이 일으킨 이른바 ‘의사 폭동’ 당시 제이가 시위를 제압하려고 나섰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글의 폭도 얘기는 여기서 나왔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거나 말거나, 민주주의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우려는 그가 내려온 판결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취임 당시 50세로 역대 세번째 최연소였던 그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제도를 왜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률과 판례를 허무는 데 앞장서 왔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한해 투표 제도 변경 시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약할 수 없도록 한 ‘선거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2013년 ‘셸비 카운티 대 홀더’ 사건 판결, 사법부가 특정 정파의 당리당략을 위해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을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지난해 6월 판결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관점도 엿보인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아니라도 소문과 거짓 정보의 위험성, 시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의 글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을 단순하게 폭도로 싸잡으면서 폄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피지배자 사이의 지식과 정보 유통을 두려워하며 억압했던 봉건시대 지배자를 연상한다면 지나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가 든 역사적 사례도 논지를 뒷받침하기엔 부적절해 보인다. 근대 서구 의학 발달 과정에서 해부용 시신 부족은 공통적 현상이었다. 이른바 의사 폭동 당시 뉴욕에서도 해부 실습을 위한 시신 도굴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일부 시민들은 이를 근절해달라는 청원을 했음에도 뉴욕시는 무시했다. 시민들의 소요 사태가 있은 다음에야 해부용 시신 관련 절차와 규정이 확립됐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 거짓 정보의 유통을 막겠다며 소통 가능성 자체를 억압하는 게 바로 그 꼴이 될 것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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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는 두 강대국의 꿈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그러진 아메리칸드림, 다른 하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다. 원래 아메리칸드림은 전 세계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불법이민자를 내쫓고 자국 이익을 전 세계에게 강요하는 어글리 아메리칸드림으로 바뀌었다.


중국몽은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실현한 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당 대회에서 중국몽을 23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밝혀 중국몽이 패권국가임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몽은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어 과거 중화체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1라운드를 끝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협정 서명을 앞두고 있다. 당초 미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무역전쟁이 중국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이제 1단계 무역협정에 합의했지만 본격적인 패권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며 힘을 엉뚱한 데 쏟는 바람에 중국의 부상을 억누를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두 꿈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새로운 100년의 원년으로 삼고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와 2045년 ‘원 코리아’를 이룬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꿈은 분단으로 이루지 못한 민족국가(nation state)의 완성에 두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시한 우리의 꿈은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공개, 비공개 당국자 접촉을 거부해 왔고 심지어 민간교류마저 중단시켰다. 작년 말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선 남북관계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6일자 북한매체들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이 외신 기고문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궤변’이라 폄하했다. 


우리의 꿈은 북한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평화통일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우리가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남북관계의 목표에만 우리의 외교안보 역량을 쏟을 수는 없다. 미국이나 중국이 남북관계를 한민족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미·중 세력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이루기 위해서도 미·중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풀어야 한다. 이제 강대국 관계 속에서 우리의 꿈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우리 외교는 어느 강대국에 편승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 강대국 외교는 더 이상 양자택일이나 양자절충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 오늘날 국제정치는 전 세계를 이끌던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는 ‘G-Zero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국가비전과 외교원칙을 세워야 한다. 


작년 6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접점을 찾아 조화롭게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12월2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 연계 협력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같은 정책은 강대국의 정책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목표와 정책을 중심에 놓고 강대국의 지역구상과의 협력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처럼 기존 편승외교와 자주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의 국가목표를 향한 새로운 외교원칙을 자기주도외교(Self-Directed Diplomac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강대국의 대외전략이 나올 때마다 참여 여부를 놓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포용성과 개방성을 기초로 우리의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립한 뒤 미·중의 대외정책과 접점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강대국 관계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 외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연초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하고 이란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등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파견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자칫 이란과의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크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향후 자기주도외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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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대해 구체적 일정과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10월 한국에 비준을 최종 권고하고,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평가한 결과를 지난달 9일 통보한 것이다. 파국으로 끝난 정기국회 폐장 전날이었다. 위원회는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한국 정부의 계획과 조치를 평가하지만, 비준을 위한 시간 정보가 부족한 점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EU가 지난달 30일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며 전문가 패널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유엔도 직접 조속한 비준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올 것이 겹쳐 온 격이고, ‘약속을 지키라’는 국제사회 요구는 당연하다.


ILO 핵심협약 87호·98호는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 기본규약이다. 한국에선 실업자·해고자가 있다고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무원노조 가입 대상 확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대학교수 등의 노조 가입 허용 문제가 걸려 있다. 정부는 제29호(강제노동 금지)까지 3개 협약 비준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논의가 장기 공전하자 환경노동위원회를 향해선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과 사용자단체, 재계 등이 “시기상조”라며 막아선 여파가 컸고, 노동계가 단협기간 3년 연장 입법안 등에 고개 젓는 사이 여당의 ‘정기국회 우선처리 리스트’에서도 빠졌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ILO 100주년 총회에서 약속한 ‘정기국회 처리’는 완전히 허언이 돼버렸다. 이대로라면 비준안은 파국으로 치닫는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가타부타 논의도 없이 21대 국회로 넘기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유엔의 지적과 EU의 전문가 패널 소집은 ‘같은 판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권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고, 정부 노력이나 개선 약속마저 ‘함흥차사’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6년 연속으로 국제노총이 한국에 ‘노동권 최악 5등급’을 매기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유엔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노동후진국’이라는 주홍글씨로 보면 된다. EU 조사는 무역 제재를 낳을 수 있는 위험도 품고 있다. ‘노동 존중’ 약속이 머쓱해진 정부는 국제사회의 차가운 ‘노동 총평’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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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보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허다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은 그 직후 부인 김성애가 체코에 있는 딸과 통화한 것을 포착해 알아냈다. 또 연평해전 때도 북한 함정이 본부와 교신하는 내용을 가로챘다. 이처럼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는 인공위성과 정찰기, 그리고 지상의 시설을 통해 북한 내 영상 및 신호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 사람을 들여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최첨단 정찰기들이 연일 한반도 상공으로 출격하고 있다. 한 종류만 떠도 주목할 판에 여러 기종의 정찰기가 한꺼번에 날아들고 있다. 이 중에는 미 공군에 단 두 대밖에 없는 기종도 있다. 과거 긴장이 높았을 때도 대북 감시 시간이 20~22시간 정도라고 했는데 지금은 24시간 감시 상태에 있다. 주 임무는 미사일 발사를 전후로 발신되는 마신트(MASINT, 계측 및 기호정보) 수집이다. 신호와 음성 정보 수집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집중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찰기는 공격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머리 위에 늘 떠 있는 이 ‘척후병’들은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이쯤 되면 미사일 이동은 물론 관련 기관과 주요 인사들 간 일상적인 통화·대화조차 불편할 것이다. 미 정찰기들의 출격은 북한을 향해 내부를 손바닥의 손금 보듯 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도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그 덕분인지 북한의 도발이 성탄절에 이어 연말도 넘기는 분위기다. 지금은 미국의 무력시위가 정찰기들의 출동에 머물러 있지만 상황이 언제 급변할지 알 수 없다. 미 당국자들이 최근 북한 타격을 부쩍 자주 언급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미 정찰기들이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카데나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이들은 수집한 정보를 한·미 공동 정보분석센터(오산)로 보내지 않고 주일미군에 직송하게 돼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은 한국에 알리지도 않은 채 정보분석 요원들을 대거 입국시켜 북폭을 준비한 바 있다. 한국과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인데도 그랬다. 미 정찰기들의 출격을 마음 편하게 보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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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의 시기에 북한이 언제 미사일을 발사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처량할 정도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련의 무력과시 옵션을 사전 승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 위협이 한반도를 뒤덮을 수 있는 현실은 암울하다. 미국의 대응으로 북한이 연말연시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다.


이제까지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북한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려 하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내몰린 것은 물리적인 힘의 부족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인식능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말이다. 북핵 문제를 주도한 미국의 책임만이 아니다. 남의 일처럼 뒤에 숨어 눈치를 보거나 북핵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고자 했던 우리의 잘못이 더 크다.


냉정하게 현 상황을 평가해 보면 북·미 간 핵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물리쳤다. 북한핵을 비난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가 현 상황의 핵동결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요청했으나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간 것은 북한의 주도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할 듯하다가 조용해진 것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 때문이라기보다 북한이 과거와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켰다.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상대방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은 강대국의 특권이다. 만일 크리스마스 선물이 블러핑(허풍·엄포)이라면, 이는 북한이 강대국의 전유물이던 게임의 세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블러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과거처럼 신뢰성을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핵과 미사일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북한을 상대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들이 말과 행동의 자유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 그러나 모두들 ‘새로운 길’보다는 미사일 발사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달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생존을 보장받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북한이 말한 비핵화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현 상황에서 동결하겠다는 것이지 자신들이 가진 핵과 미사일 능력을 제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개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때, 하노이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는 약속 위반이다.


북한이 주장한 ‘새로운 길’은 더 이상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접근방식을 모색하지 않고 완전한 핵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를 위한 조건도 갖춰지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지금의 분위기로 비추어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추가적인 유엔 안보리 제재에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는 무력화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에서 비롯된 유엔 안보리 무력화는 미·중 패권경쟁과 맞물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국제질서 변화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중앙의 균열은 항상 변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은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2020년 미국의 대선정국은 북한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료다. 대선기간 동안 북한은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새로운 길’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의 행동은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새로운 길’ 선언으로 대화와 타협 방식의 북핵 해결은 불가능해졌다. 완전한 핵능력을 갖춘 북한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북핵을 그냥 인정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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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현 정세하에서 당과 국가의 당면한 투쟁 방향과 혁명의 새로운 승리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문제들이 상정됐다”고 전했다. 또 “혁명 발전과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의 요구에 맞게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진군 속도를 높여나가기 위한 투쟁 노선과 방략”이 회의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28일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번 회의는 김정은시대에 개최된 5차례 당 전원회의가 하루 만에 끝난 것과 달리 이틀 이상 진행됐다. 정치국과 당 중앙위, 당 중앙검사위 성원 등 정규 참가자들 외에 노동당과 내각 성 및 중앙기관, 각 도 인민위원장, 시·군당 위원장 등이 방청객으로 대거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다. 규모도 커지고 기간도 길어진 것은 북한이 현 정세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 ‘연말 시한’이 성과 없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북한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정하는 중차대한 회의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 1월1일 발표할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리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대미 강경 노선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 자력갱생 경제발전 전략 등이 거론된다. 전원회의에서 ‘전략적 지위’라는 표현이 나온 것으로 미뤄 핵보유국 지위 강화를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떤 것이 됐건 한반도 긴장지수를 끌어올리는 방향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안고 있는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 정책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형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했고, 한국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대북 제재 일부 완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주변국들의 행보와 고민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30일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김 위원장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사흘 뒤에 나올 새해 신년사에도 이런 초심이 반영돼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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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 간의 긴장이 한창인 가운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0일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일본 자위대 구축함 1대와 대잠 초계기 1대를 이란 인근 해역에 파병할 계획에 대해 설명하며 사전 양해를 구하는 모양을 갖췄다. 로하니 대통령은 파병안을 투명하게 설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중동의 긴장완화와 안정화를 위해 일본 정부가 노력하겠다면서 이란이 미국 등과의 핵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2000년 이후 19년 만으로, 아베 총리의 지난 6월 이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도 띠고 있다. 


경위야 어찌 됐건 미국의 맹방인 일본이 미국과 대립 중인 이란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연 것은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미·일동맹의 영향으로 일본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이란 간에 모종의 중재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이란관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이 지난 9월 테러지원을 이유로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란과 의약품 등 인도적 교역마저 중단됐다. 이란 중앙은행이 국내 시중은행에 개설한 원화계좌도 동결돼 이란 당국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외교 당국도 제재를 풀기 위해 미국과의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좀 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이 정상외교에 나선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소리나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건 최근의 중동 긴장이 한·이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수십년간 돈독하게 다져온 한·이란관계를 악화시킬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를 한·미동맹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과 연계하려는 것도 온당치 않다. 명분도 없고, 득보다 실이 큰 파병은 백지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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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 것이다. 지난 10월 스웨덴 만남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하고, ‘일단 만나자’는 미국의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새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연말 시한을 거론하고 ‘새로운 길’을 공론화했다. 최고지도자의 체면이 있으니 뭐라도 할 것이다. 두 차례 ‘중대한 시험’ 실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표현 등으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모종의 조치를 연상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달 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말을 아끼며 신년사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년간 북·미 비핵화 대화를 이끌어온 핵심 키플레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도 트럼프의 대응 방향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한반도 정세는 트럼프의 상황 인식과 결정이 주요 변수인 셈이다. 내년에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는 대선 승리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지지자 여론, 대선 캠페인의 득실이 대북 정책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는 2018년 이후 북한에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음을 자랑한다.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지도 않겠다고 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없었다는 점은 트럼프의 외교적 성과임이 분명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한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좋은 관계”라고 적당히 띄워주고 군사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면 대선 가도에 나쁘지 않다고 볼 것이다.


김정은의 처지는 트럼프와 다르다. 비핵화 결단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트럼프를 두 번 만났지만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실질적 이익은 별로 없다. 현재로선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북한은 더는 기다려주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내년 한반도 정세를 낙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판을 크게 흔들 것이라는 관측, 미국의 강력 대응을 초래하고 중국·러시아도 불편해할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교차한다.


서로가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양측의 기본 입장을 일단 견지하면서도 교착상태를 탈피해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구실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북·미가 격렬하게 부딪치다가도 협상을 앞두고는 체면을 세워줬다. 지난해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을 했던 빈센트 브룩스는 “북한의 ‘체면 지키기’라는 문화적 요소를 항상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들(북한)이 변화하면 우리(미국)도 변화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일부 완화 결의안’ 시도는 북한의 군사행동에 따른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체면 살리기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제재 완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지 않고선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을 감안한 것이다. ‘비핵화 이전 최대의 압박 유지’ 입장이 분명한 미국이 일부 제재 해제에도 공개적으로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유예가 주목받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감안해서다. 북한은 연례적인 한·미 연합훈련에도 ‘전쟁연습을 하면서 무슨 대화냐’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지난해 북·미 대화의 촉매제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었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번에도 이런 주고받기로 대화판을 깐다면 트럼프는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하면서 원칙을 깨지도 않고 외교적 성과도 훼손되지 않는다. ‘대선에 끼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놨던 트럼프도 대화 유지 틀에서 ‘북한 변수’ 관리가 가능하다.


그렇게 상황이 진전되면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의 본궤도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은 ‘제도적 안정을 위한’ 체제 안전보장과 ‘발전권을 위한’ 제재 완화를 비핵화 협상의 조건으로 요구한다. ‘원샷딜’은 비현실적이다. 비핵화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주 서울에서 판문점 회동을 제안하며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로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확인하고, 1단계 비핵화와 일부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찌 됐건 시급한 일은 북·미가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연말·연초 고비를 넘기면 기회가 오도록 말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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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동북아에서 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 평화안보 체제를 이뤄낸다면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러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완화 추진 결의안에 대해 논의한 데 이어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함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동안 연이틀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을 밝힌 것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의 대북공조 대열에서 이탈해 중국·러시아와 함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중·러가 지난 16일 유엔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고, 미국이 반대하고 나서는 등 대북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민감한 시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쓰촨성 청두 세기성 박람회장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대한상공회의소·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한중일 경제인들이 주최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은 빈사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겠다는 충정으로 해석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대북 제재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남북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한 지 26일로 1년을 맞지만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내년에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상태다. 내년 한반도가 2017년을 방불케 하는 긴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북·미 경색은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북한은 지난해 북·미 협상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 등 선제조치에 나섰지만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하노이 제안도 미국은 거부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전체 그림을 제시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양측이 한 발짝씩만 뒤로 물러났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쟁점들이었다.  


중국 환구시보는 최근 시평에서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북·미 간 상호 신뢰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중·러의 제재 완화 결의안을 뒷받침하는 취지이지만,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능력을 더 고도화하는 ‘제재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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