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에 해당되는 글 564건

  1. 2020.02.04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총·균·쇠, 북한 위기의 출발점
  2. 2020.02.03 [기고]통일의 절대적 선행 조건은 ‘국민 통합’
  3. 2020.02.03 [아침을 열며]가지 않은 길
  4. 2020.02.03 [정동칼럼]북한의 ‘새 길’에 대처하는 법
  5. 2020.01.23 [기고]남·북·미, 일체의 군사훈련을 중단하자
  6. 2020.01.20 [사설]북한의 파격적인 ‘외교 라인’ 교체가 말하는 것
  7. 2020.01.17 [정동칼럼]미 대선, 이란 그리고 북한 문제
  8. 2020.01.16 [사설]‘남북관계 선행론’, 북한 개별관광부터 성과 내야
  9. 2020.01.16 [여적]남북의 국호
  10. 2020.01.14 [세상읽기]김정은에게 두 개의 다른 ‘봄’
  11. 2020.01.13 [사설]대남 독설 쏟아낸 북 김계관 담화, 유감스럽다
  12. 2020.01.09 [사설]전쟁으로 치닫는 미국과 이란, 한국군 파병 안된다
  13. 2020.01.07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미·중 충돌과 자기주도외교
  14. 2019.12.31 [여적]미 정찰기의 한반도 출격
  15. 2019.12.30 [정동칼럼]북한의 ‘새로운 길’
  16. 2019.12.30 [사설]사흘 남은 김정은 신년사, ‘한반도 평화 초심’ 잃지 말아야
  17. 2019.12.27 [사설]대이란 외교 보다 세심하게 관리해야
  18. 2019.12.27 [편집국에서]북·미의 체면 살리기
  19. 2019.12.26 [사설]문 대통령의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 미국이 관심 보여야
  20. 2019.12.26 [사설]‘솔직한 대화’ 다짐한 한·일 정상, 실질 성과로 이어져야

중국 우한에서 발생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신종 코로나) 창궐로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전염병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신종 코로나를 잡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하지만 작년에 발생한 아프리카돼지열병에 이어 설상가상으로 후난성에서는 치사율이 높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병해 전염병의 확산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진화생물학자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총·균·쇠>에서 인류의 운명을 바꾼 3대 요소 중 하나로 병균을 들고 있다. 역사적으로 장티푸스, 흑사병, 천연두, 독감과 같은 전염병이 고대에서 근세에 이르기까지 인류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치사율이 높은 전염병이 창궐하면 민심이 흉흉해져 체제불안이 커질 뿐 아니라 인구감소로 생산이 줄고 국력이 약해진다. 


이번 전염병사태에 북한당국도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북한당국은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해 1월21일부터 중국여행객의 입국 금지, 북한 거주 내외국인의 중국여행 제한, 중국에서 들어온 내외국인의 한 달간 격리, 개성 남북연락사무소 잠정 폐쇄, 1월31일엔 북·중 간 항공기, 국제열차 운행중단을 발표했다. 북한은 몇 년 전 사스나 메르스 사태가 발생했을 때도 국경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했었다. 


북한당국이 전염병 유입에 극도로 민감한 것은 오랜 경제난으로 영양상태 악화와 의약품 부족으로 주민들의 면역력이 크게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최근년 들어 중국에서 구제역과 조류인플루엔자가 유입된 데 이어 작년에는 아프리카돼지열병이 유입돼 대북 제재로 가뜩이나 어려운 북한경제와 주민생활에 커다란 짐이 되고 있다. 


그간 북한은 그런대로 전염병 위기에 잘 대처해 왔다. 하지만 북한의 위기는 전쟁(총), 경제(쇠)에서도 온다. 북한은 냉전해체 후 외부 군사위협에 대처한다는 구실로 핵무기를 개발했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이란에 대한 군사공격과 달리 북한에 쉽게 무력을 사용하지 못하는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비핵화를 협상카드로 안전보장과 경제발전을 꾀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최근 장기성을 띤 정면돌파전으로 방향을 바꾸었다. 


하지만 비핵화 없이 경제발전을 이루기 어려울 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안전보장의 토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경제난의 장기화는 김 위원장이 내건 ‘인민생활 향상과 경제강국 건설’의 목표달성을 어렵게 할 뿐 아니라, 북한주민들의 영양상태 악화와 면역력 저하로 전염병에 취약해질 수밖에 없다. 유엔보고서는 작년도 북한의 실질 GDP 성장률이 1.8%라 밝혔지만, 최근 발표된 한국은행 북한경제 보고서는 유엔제재로 북한의 보유외화가 크게 감소해 물가·환율 불안정 위기를 경고했다. 


북한이 원하는 제도안전과 경제발전은 미국과의 관계정상화와 국제경제체제 편입 없이 자력갱생이나 옛 사회주의 대국과의 연대만으로 이룰 수 없다. 11월 미 대선까지 트럼프 대통령이 기존 셈법을 바꿀 가능성이 없다면, 북한은 남한과의 관계개선을 통해 장기국면에 대처하는 게 합리적 대안이 될 것이다. 북·미 협상의 답보국면 속에서 남북대화에 대한 미국의 양해가 있었고 정부의 개별관광 추진도 그 연장선에서 제안된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북한 측 이해와도 맞는다. 북한은 자력갱생을 통한 정면돌파전의 핵심으로 관광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관광이 제대로 되려면 각종 인프라가 깔려야 하고 그 출발점은 철도·도로가 될 것이다. 북한은 기존 철도·도로의 연결이 아니라 단번도약을 위해 고속철도·고속도로의 건설을 원한다. 따라서 2018년 12월의 착공식에서 더 나아가 고속철도 공동조사·설계작업부터 남북이 시작하면 된다.


작년 2월 북·미 정상회담의 노딜 이후 남북관계가 사실상 단절되어 있다. 하지만 이번 신종 코로나의 발생은 남북협력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시진핑 주석에게 위로 서한과 지원금을 보낸 것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북한에는 여전히 아프리카돼지열병이 남아있고, 신종 코로나 확진환자가 언제라도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이들 감염병에 대한 공동방역을 위해 남북 보건의료협력이 필요하다. 따라서 정부는 신종 코로나 검사시약, 방역물자뿐 아니라 아프리카돼지열병 치료제 제공 등 남북 긴급의료협력을 북한에 제안할 필요가 있다. 


신종 코로나사태가 어느 정도 진정된 뒤에는 민간 차원의 교류·협력부터 재개하고 개별관광을 위한 남북당국자 대화를 적극 추진해야 할 것이다. 북한당국은 제재 국면하에서 새로운 정면돌파를 위해서도 더 이상 남측이 내미는 손을 뿌리쳐서는 안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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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을 언급조차 하지 않고 오로지 ‘통합(Integration)’을 교육하고 외쳤던 독일은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이뤘는데, 분단 직후부터 ‘통일’을 외쳐온 우리는 75년이 지난 지금 통일이 더욱 요원해졌다. 통일을 위한 절대적 선행조건인 ‘통합’을 경시한 탓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남북통일은 다음과 같은 장벽들로 막혀 있음을 국민들에게 알리고 ‘국민 통합’을 호소해야 한다.


첫 번째 장벽은 ‘미·중 한반도 분점 밀약’이다. 1972년 2월21일 닉슨과 마오쩌둥 간의 최초 미·중 정상회담에 앞서 1971년 8월과 10월에 극비리에 중국을 방문한 헨리 키신저 국가안보보좌관이 저우언라이 총리를 만나 대만과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중 양국 간의 룰’을 정했다. 이를 토대로 양국은 정상회담에 이어 국교 수교(1979)를 했고, 오늘의 G2 시대까지 이르렀다. ‘미·중 밀약’의 핵심 내용은 트럼프 정부 초대 국무장관 틸러슨이 “유사시 중국 군대가 북한지역에 들어오게 될 경우 미군이 휴전선을 넘어갔더라도 다시 38선 이남으로 후퇴하겠다고 중국 측에 미국이 보장했다”라는 2017년 12월 언론 인터뷰를 통해 확인된다. 미·중은 패권 다툼의 적처럼 보이나 경제적으로는 상호 4000억달러에 이르는 직접투자를 하고 있는 ‘경쟁적 연대’ 속에서 ‘남북 분단’을 고착화시켜온 것이다. 유사시 중국군의 북한지역 점령 계획은 미국 의회가 출자해 설립한 방송인 ‘자유아시아방송(RFA)’도 상원 외교위원회 전문위원 보고서를 토대로 2012년 12월 보도한 바 있다. 또 중국이 매년 실전을 방불케 하는 ‘북한 진입’ 훈련을 오래전부터 해왔음은 미연방 국제방송인 ‘VOA’ 등 국내외 다수의 언론 보도를 통해서도 확인된다. 두 번째 장벽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미·중의 남북 분단전략을 간파한 가운데 핵무기를 기반으로 미·중 양국을 활용해 ‘독자적 국가 구축 전략’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장벽은 통일의 절대적 선행조건인 ‘국민 통합’이 초토화된 국내 상황 때문이다. 정치권은 오히려 이를 자신들의 기득권 확장 수단으로 편승·악용하고 있다. ‘국민 통합’의 부재, 북한의 통일 거부, 4대 열강의 통일 방해가 사라지지 않는 한 남북통일이 불가능함은 자명하다. 


국가원수로서 문 대통령의 통치행위 차원의 결단이 요구되는 중차대한 시점이다. 먼저, 통일을 ‘미래지향적 가치’로 명시한 뒤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는 내용으로 헌법 및 관계 법령 개정이 긴요하다. 그런 뒤 중국·러시아 등과 관계를 개선했듯이 북한과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 그러다 보면 ‘유럽연합(EU)식 국가연합’에 이어 ‘미국식 연방국가’도 지향할 수 있지 않겠는가. 


분단시대 독일은 ‘통일’이 아니라 ‘통합’ 및 ‘통합과정’에 국가역량을 집약해서 오늘의 통독시대를 일궜다. 나토 구성국인 터키는 국민 통합을 통해 미국을 위시한 강대국 속에서 국가적 자존감을 확고히 했다. 문 대통령은 잔여 임기를 국민 통합에 전심전력함으로써, 부디 국민 통합의 초석을 다진 대통령으로 역사 속에 남기를 바란다.


<홍원식 | (사)피스코리아(국민통합비전)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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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는 차갑게 식어버렸다. 3차례의 남북정상회담, 2차례의 북·미 정상회담을 지켜보면서 느꼈던 두근거림과 달뜬 기대, 평화에 대한 열망은 가라앉은 지 오래다. 남북의 지도자가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을 연출하고, 독설을 주고받았던 북·미 지도자가 서로 우의를 다졌던 몇몇 장면들이 아득한 옛일 같다.


북한은 ‘새로운 길’을 예고했다. 미국은 외교적 해법을 강조하지만 대화할 진짜 의지는 없어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때 ‘중재자’로 성가를 높였지만, 지금은 종영드라마의 주인공처럼 존재감이 없다. 북한 매체들은 문 대통령을 수차례 조롱했으며, “남조선 당국자들과 더 이상 할 말도 없으며, 다시 마주 앉을 생각도 없다”고 자른다. 물밑에서 들리는 정보들을 종합하면 전망은 어둡다. 그럼에도 남·북·미가 연출했던 몇몇 장면과 성취들을 허비하기엔 아깝다. 왜 이렇게 됐을까. 되짚어봐야 한다.


따지고 보면 북·미 모두 비핵화에 대한 진정성이 결여됐던 것이 문제의 출발점이었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나치게 정치적이었다. 바람 잘날 없는 내치로 욕을 먹던 그로선 이 모든 것을 가리는 이벤트가 필요했을 것이다. 잘되면 노벨 평화상도 탈 수 있고, 재선에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했을 것이다. 장사꾼 트럼프의 머릿속에 한반도 평화에 대한 큰 그림이 있기나 했을까. 탄핵 등 정치적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내놓은 조악한 ‘중동평화구상’을 대단한 성취인 양 자랑하는 모습을 보면 안다.


더군다나 트럼프는 북한을 너무 몰랐다. 김정은 위원장을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북한이 감격할 줄 알았다. 춥고 배고픈 문제를 해결해 준다고 약속만 하면 냉큼 핵을 포기할 거라 믿었다. 붕괴 공포감에 시달려온 북한이 핵을 체제유지의 근본으로 여긴다는 것도 제대로 몰랐다. 이에 대해선 미국 언론도 지적한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해 12월22일 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완전한 비핵화’ 개념을 규정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북한에 뒤섞인 메시지를 보냈고, 이행할 수 없는 약속도 너무 많이 했다고 했다.


북한도 진지한 비핵화 의지를 가지고 협상에 나섰을지 의심스럽다.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에게 “내 아이들이 핵을 지닌 채 평생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고 했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이 말을 믿었다. 한반도 평화를 바라는 많은 사람들도 그의 비핵화 진정성을 믿고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표정은 금세 바뀌었다. 협상이 교착되고 제재완화 등이 이뤄지지 않자 미사일 발사 등 무력시위에 손댔다. 김 위원장은 시정연설에서 “핵무장력의 급속한 발전”을 언급했으며, 협상이 잘되는 듯 했을 때 깍듯이 대했던 문 대통령을 “오지랖 넓은 중재자”라고 했다.


미국의 상응조치가 없고 제재완화를 끌어내려는 남측 노력이 성과를 내지 못했더라도, 비핵화 의지가 진정이었다면, 북한이 그렇게 쉽게 과거 행태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기대했던 여권 관계자들도 고개를 젓는다. 비핵화 협상과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북한이 핵동결 정도의 조치로 국제사회 대북제재에서 벗어나고, 정상국가로 인정받겠다는 계산을 한 것 같다”고 했다. 핵 실험과 미사일 발사 중단, 영변 핵 폐기 등 몇 가지 눈에 보이는 이벤트를 한다면 핵 이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성과에 목마른 트럼프를 대충 어를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은 아닐까.


결국 지금의 교착은 양쪽 모두 진심으로 협상에 임하지 않은 결과로 보여진다. 출발부터 틀렸으니, 그 이후가 제대로 전개되기 쉽지 않다. 단계적·동시적 비핵화 해법을 둘러싼 논쟁,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개념 차이 등 기술적 쟁점들이 거론되지만 근본은 잘못된 출발에 있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고, 그동안의 성과를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다. 북·미가 내켜하지 않더라도, 테이블에 다시 않을 수밖에 없도록 상황을 만들어야 한다. 북·미도 이제와서 포기한다면 본전 생각이 나지 않겠는가. 그 틈을 파고들어야 한다. 


결국 한반도 당사자인 정부가 나설 수밖에 없다. 북한 개별관광 추진 등 정부의 대북 정책 독자 드라이브도 이런 절박함에서 나왔을 것이다. 미국이 딴지를 걸고, 북한이 냉대하고, 국내 보수세력이 비판해도, 주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 잠시나마 드리웠던 평화의 햇살에 박수를 보냈던 국제사회 다수 여론은 박수를 칠 것이다. 가지 않은 길이지만 뚜벅뚜벅 걸어야 한다.


<이용욱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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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본다면, 북한이 주장한 ‘새로운 길’에서 희망과 낙관보다 비관적인 전망을 떠올리는 것이 정상적이다. 앞으로 우리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 상황이 흘러갈 가능성이 그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미국의 북핵 대처가 실패했기 때문이다.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미국은 원하는 것과 가능한 것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했다. 현실을 정확하게 진단하고 합리적인 처방을 제시하기보다는 처방을 먼저 내려놓고 상황을 거기에 맞추려 했다. 처방에 부합하지 않은 신호와 사실은 억지로 무시했다. 현실적 대안을 찾기보다는 북한의 거친 언사에 분노하여 그 뒤에 숨어있는 신호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다. 그 결과 북한에 번번이 의표를 찔렸다. 한국은 북핵 문제의 당사자라는 착각 혹은 국내정치적 이용이라는 유혹에 빠져서 사태 해결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 또한 현실인식의 부재에서 기인했다.     


북한이 선언한 ‘새로운 길’은 통상적인 수사적 표현이 아니다. 지금까지와 차원이 다른 정책전환을 의미한다. 장거리미사일 한 번 발사하는 것 정도로 보면 곤란하다. ‘정면돌파’와 ‘자력갱생’은 ‘새로운 길’의 실천적 내용이다. 대화와 타협이 아닌 힘과 실력으로 ‘정면돌파’하여 전략적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되, 그 이후 돌아오는 어려움은 외부의 도움 없이 ‘자력갱생’으로 감수하고 극복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읽어야 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상황에서는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 것이 중요하다. 다양한 시나리오를 구상하는 것은 전략적 사고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는 북한이 이용할 수 있는 시나리오의 한 축이다. 예상할 수 있는 북한의 행동은 다음 두가지 정도일 것이다. 첫째는 금강산 시설 철거를 이용해 긴장국면을 조성하는 것이다. 북한은 2월까지 금강산 시설을 철거하라는 최후통첩을 보낸 바 있다. 2월이 지나면 자신들이 직접 금강산 시설을 철거할 것이다. 그 경우 폭파와 같은 충격적인 방법을 이용해서 기존의 남북관계를 전면 재조정하겠다는 신호를 보내려 할 수 있다. 신형 코로나바이러스를 이유로 철거시기를 연기한 것은 극적 효과를 위한 전술로 볼 수 있다.     


두번째는 직접적인 군사 도발이다. 북한은 수차례에 걸쳐 한·미연합훈련과 우리 군의 전력증강 사업이 9·19 군사합의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3월에 예정된 한·미연합훈련을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해상이나 지상에서의 국지적 도발로 긴장국면을 조성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9·19 군사합의의 상징적인 성과에 반하는 지상 도발도 충분히 예견할 수 있다. 


미국에 대해서는 차원이 다른 도발이 예상된다. 이제까지의 외교적 교섭과 달리 미국민의 심리를 강력하게 타격하여 양보를 강요하는 방법을 생각할 수도 있다. 2019년 12월31일, 북한은 제7기 제5차 당전원회의에서 ‘새로운 전략무기’로 미국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실제행동’을 감행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2년 전부터 태평양에서 핵실험을 예고했다. 지나간 말이라고 무시하면 안된다. 최근 미국이 항모 시어도어 루스벨트호를 기함으로 한 제9항모강습단을 태평양 지역에 파견한 것은 이런 가능성을 미리 예상했기 때문인 듯하다.     


북한이 극적인 정책전환을 예고하고 있음에도, 한·미 안보당국은 아직 그 신호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것 같지 않다. 북한은 원칙 없이 대화와 강압 사이를 널 뛰듯 오간 미국을 더 이상 대화할 수 없는 상대라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정부의 불분명한 태도도 북한이 지금 같은 어정쩡한 남북관계에 기대를 접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정부의 개별관광 구상에 북한이 어떻게 반응할지 의문이다. 남북관계 발전은 요란한 구호나 약속보다 쌍방의 진정성이 가장 중요하다. 신종 코로나 사태와 관련하여 남북 간 실질적인 협력을 강구하는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북한에 부족한 방역장비와 물자를 인도적인 차원에서 지원하는 것이다. 북한을 비난하고 정신승리를 즐기기보다 실천적 노력을 고민해야 한다. 북한도 수틀린다고 도발하면 전략적 이점을 상실할 수 있다.          


북한이 선언한 ‘새로운 길’은 한반도 및 동북아 안보질서가 급변하는 변곡점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미 북한은 그런 행동을 위한 국내외적 준비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뼈아프지만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처지를 냉철하게 인식하는 것은 중요하다. 현실과 희망을 혼동하면 최악의 상황을 자초할 수도 있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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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켜보면, 2017년 12월 문재인 대통령이 미국 NBC와의 인터뷰를 통해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한·미 연합훈련의 연기 조치를 시사하면서 고장 난 평화의 시계가 다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본격적으로 가동되기 시작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로 한반도는 평화의 봄을 만끽했다. 그러나 작년 북·미 정상의 하노이회담 노딜 이후 남북관계도 얼어붙었다.


북한은 한·미가 합의를 어기고 군사력을 증강하고 있다고 비난하면서 미사일 시험을 시작했고, 연말엔 동창리 미사일 발사장에서 연속적으로 엔진 개량 시험도 진행했다. 작년 12월30일엔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 제재 해제에 대한 기대를 버리고 자력부강, 자력번영의 장기전을 준비하겠다고 선언했다.


올해 11월3일 미국 대선 결과를 살펴야 하는 북한으로서는 제재에는 버티고, 핵·미사일 능력은 계속 강화하면서 이를 더 큰 협상카드로 이용하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만일 북한이 성능이 향상된 ICBM이나 인공위성 등을 발사할 경우, 한반도는 다시 2017년의 위기의 어두운 터널로 들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앞으로 1~2개월 동안 대화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북·미 실무회담, 미·중을 포함한 유관국 모두의 절대 협력이 필요하다.  


북·미 대화가 샅바싸움을 지속하면서 남북관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북한이 대화의 문을 열어두고 있는 만큼 남북관계 엔진을 가동하기 위한 남북한의 소통과 협력도 절실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올해 신년사와 신년 기자회견에서 적극적인 행동으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거듭 밝혔다. 우리 정부는 개별관광 허용 등 남북교류 활성화를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준비하고 있다. 북·미 대화가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남북관계 개선으로 현재의 답답한 국면을 ‘정면돌파’하고, 잠시 멈춰 선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를 재가동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북한의 적극적인 호응이 있어야 한다. 북·미 협상의 순항도 중요하지만, 그 어떤 상황에서도 남북관계가 기본이다. 제재에 발목 잡힌 평화만을 서로 탓할 일은 아니다. 한반도 문제는 미·중 패권 다툼과 아시아의 새로운 질서 변화라는 다층적이고 복합적인 환경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기에 더욱 기본에 충실해야 한다. 이런 시점에 2032 서울·평양 올림픽 공동 유치를 위해, 도쿄와 베이징 등 이웃 도시들에서 열리는 평화 대제전의 성공을 위해, 한반도 주변에서 모든 적대적 행위를 중단하자는 박원순 서울시장의 지난주 미국 외교협회(CFR)에서의 제안은 의미가 크다.


남북관계와 함께 한반도에서 평화를 지키는 힘은 무엇보다 시민의 평화 의지를 모으고, 평화 협력의 공간을 더욱 넓혀 나가는 일이다. 우리 사회 내부에서부터 평화를 향한 일관되고 강력한 지지가 필요하다. 한국전쟁 발발 70년, 광주민주화운동 40주년,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 뜻깊은 2020년, 시민 모두가 일상에서 평화를 누리고 즐길 수 있도록 지방정부, 시민사회가 다시 신발 끈을 고쳐 매고,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서 각자의 평화프로세스를 시작해야 한다. 


다시, 평화의 봄을 기대한다.


<김용현 | 동국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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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교라인에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외교의 원로로 노동당 정치국원인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 모든 직책에서 제외되고, 김정은 시대 대미 전략을 총괄해온 리용호 외무상도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특히 리 외무상의 후임으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주 이런 내용의 외교라인 교체를 북한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들에 통보했다고 복수의 외교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정부 당국은 “아직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대외 전략의 전환을 예고하는 외교라인 변화를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왼쪽 원)과 리용호 외무상(오른쪽 원)도 함께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북한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외교 원로인 노동당 부위원장(국제담당) 리수용과 자타 공인 미국통 리용호 외무상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상당한 변화이다. 그동안 대미 협상을 주도해온 외교의 양대 축을 동시에 바꾼 것은 외교 원로들의 퇴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 외교라인에 대해 하노이 담판 후 북·미 핵협상 복원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선권의 외무상 임명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훨씬 강하다. 군 출신으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평통을 이끌어온 리선권을 외교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상당한 파격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측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핀잔을 준 강경파이다. 과거에도 북한에서 외무상 출신이 대남 업무를 관장(허담)하거나 대남 업무를 관장하다가 외무상이 된(백남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외교 경력이 전혀 없는 리선권을 기용한 것은 북·미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후임자들의 당내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불안하다. 외교적 해법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북한이 외교 진용을 대폭 교체해 대미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것이 곧 대미 강경 대응과 모험적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이라는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대남 업무를 담당해온 리선권의 기용이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북한 외교라인 교체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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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해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어디 있으랴마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역대급’으로 악화되는 정치·경제 양극화 양상을 고려하면 사즉생(死卽生)의 전쟁 같은 선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11월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 및 상·하원 선거는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외교정책과 향후 세계전략도 영향을 받을 테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최우선 관심사는 물론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다. 대부분 박빙 승부를 예상하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1% 이내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이들 3개주와 플로리다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트럼프의 주요 정치적 결정들이 이들 경합주에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외교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무력충돌은 트럼프가 이민자, 경제 문제에 더해서 종교 문제를 선거전략으로 꺼내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대 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다. 2019년 조사에서도 성인의 65% 이상(가톨릭 20%)이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복음주의 개신교계다. 인구 4명 중 1명이 복음주의 신자로 추산되고 이들 절대다수는 백인으로 중남부주들에 밀집해 있다. 여기에 보수적인 가톨릭계, 유태계 일부가 결합되어 현재 공화당 보수정치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광적인 지지층과 겹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폭살에 대해 부정적, 회의적이다. 특히 공격 시기가 공교롭게도 상원의 탄핵심판 직전이다. 이란 및 중동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략도 혼선을 드러내고 있다.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철군을, 이란 및 이라크에는 군을 증파하고 있다. 물론 이란으로부터의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이렇게 공격받을수록 그의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 실제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되는 공화당원의 95%는 여전히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관점과 행동이 선과 악의 명징한 이분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보수주의자들은 십자군 원정을 포함, 천년전쟁의 연속선상에서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 간의 싸움을 세계사 해석의 기본 축으로 본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이성의 싸움에선 늘 신앙이 승리해 왔다고 믿는다. 이들에겐 이슬람문명권의 중심국이 되려는 이란과의 싸움은 역사의 필연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이란을 다루는 방식은 북한을 상대해 온 방식과 판박이다. 그는 북한이 경제제재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왔듯,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해야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북한이나 이란은 미국의 실제 의도가 그들 체제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응한 건 그들이 미 본토에 도달 가능한 핵미사일 능력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인식해온 듯하다. 좁히기 쉽지 않은 인식의 간극이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의 북·미 간 합의들을 먼저 깬 것은 미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의 정권교체나 의회권력의 교체 이후 북한과의 합의는 결렬되어 왔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에서의 경수로 2기 건설 약속, 2000년 10월의 북·미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공동합의문, 6자회담(2003~2007)을 통한 9·9합의, 2·13합의, 10·3합의의 불이행은 미국의 국내정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트럼프가 정권교체 후 2015년 이란과 맺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검토와 판단을 끝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다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2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통해 맺은 협정도 관련국과 상의 없이 폐기한 나라가 미국이다.


결국 이란이나 북한 모두 미국의 대선 및 상·하원 선거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선 선뜻 핵협상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부결속을 다지며 장기항전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서두르는 쪽이 더 잃는 형국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랬다고, 지속 가능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교한 협상전략에 힘을 더 쏟을 때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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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 아니라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종교·사회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와 별개로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한 ‘남북관계 선행론’이 정부의 올해 대북 기조로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 대화가 정체되면 남북관계도 따라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부가 이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가운데)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미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단합된 대북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며 ‘남북관계 선행론’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던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반응을 문 대통령과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트럼프뿐 아니라 어느 정부이건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가는 것을 견제해왔다. 그럼에도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고 때로는 마찰도 불사하면서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장해왔다.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성찰과 자성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가 이제 와서 미국이나 보수세력들의 반응을 신경쓰며 좌고우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대북 기조의 전환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부가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지역 개별관광이 성사되려면 북한과의 협의는 필수다. 자연 북한의 호응 여부가 관건이다.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의 담화가 대남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관계 중재 역할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나온 남북관계 복원의지에 화답해야 한다. 개별관광 협의를 위해 남북이 조속히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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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미래 통일독립국가의 국호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맞섰다. 그러나 이어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두 이름은 통일국가가 아닌 분단국의 국호가 됐다. 1948년 8월 남쪽에서 ‘대한민국’을 수립하자,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분단국의 국호가 이처럼 판연히 갈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국과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처럼 ‘중화’를 공유한다. 통일 전 남북 베트남의 국호는 각각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었고,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역시 ‘독일’을 함께 썼다(강응천,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한국’ 또는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려 했던 꿈은 분단과 함께 좌절됐다. 그럼에도 남은 북을 ‘북한’으로, 북은 남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국호를 강제했다. 강렬한 통일 욕구와 민족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분단이 공고화되고, 국제사회까지 두 개의 국가로 공인했음에도 남북은 상대방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분단의 역사가 이어지고 남북의 경제 격차, 분단 의식이 심화되면서 민족·통일보다 공존·평화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도둑처럼’ 오는 통일은 없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주의란 ‘상상된 공동체’일 수 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존과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향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어제 한 신문에 ‘한국과 조선: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를 접근하기보다는 ‘한국’과 ‘조선’으로 서로 대면”하게 하자는 취지다. ‘조선’을 소환해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한번 음미해볼 얘기다. 요즘 TV에서는 “북한은 개성 영하 4도, 함흥 영하 8도로 우리나라보다 쌀쌀하겠다”라는 식의 날씨정보를 종종 접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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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2019·2·27~28) 굴욕으로 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국을 향한 분노와 불신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노동당 전원회의(7기 5차) 보고를 무려 나흘씩이나(12·28~31) 할 이유가 없었다. 신년사마저 생략하고 전원회의 발언문 공개 형식을 통해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상을 엎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개최된 7기 4차 전원회의(2019·4·11) 이후 8개월여 기간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으로 간주했다. 김정은에게 이 기간은 분명 자득의 시간이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지점을 끝까지 찾아보려는 간절한 모색의 시간이었다. 자력갱생과 미국과의 불화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는 공개적 다짐의 배경에는 더는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려있었다.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정면돌파전이 시대적 과제임을 투쟁적으로 강조했다. 새로운 전략무기체계를 확보했음도 시사했다. 이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말하자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인 셈이다.


벼랑 끝에서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 보내기를 유보한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고수하는 한 비핵화는 없을 것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철회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특유의 조건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미국이 가시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대북 무시를 견지한다면 선물은 언제라도 공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비핵화를 두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맞붙어 협상할 시간은 많지 않다. 시간은 쥐고 있는 협상카드의 속성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 시간은 한반도 정세와 북·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공(攻)과 수(守)의 시간은 서로의 급소를 향해 치닫고 있다. 승부의 관건은 시간이 누구에게 유리한가이다.


사실 미국은 어떤 공이 와도 칠 수 있는 타자이다. 그러나 이란과 사실상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술책에 말려들 경우 자신의 재선에 악재가 될 수 있음을 트럼프가 모를 리 없다. 트럼프는 가능한 한 11월 대선까지는 북한의 행동에 ‘화염과 분노’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북핵 문제를 최대한 로키(low-key)로 이끌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미뤄졌던 시진핑의 방한과 방일이 상반기에 이뤄진다고 볼 때 김정은이 굳이 이 시기에 동북아 정세를 초긴장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다급한 쪽은 김정은이다. 북한 매체는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1년 사이 트럼프를 세 번이나 만나고서도 북·미관계가 파국을 맞을 경우 궁핍한 주민들의 실망감이 김정은에게는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거리다. 오죽했으면 새해 벽두부터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절약정신을 체질화하자고 수 차 강조해야 했을까. 발언문을 읽으면서 마치 망인의 피부를 눌러도 되돌아오지 않을 때 느끼는 막막함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꺾어지는 해이자 집권 9년차에 접어든 1984년생 김정은에게도 봄은 오겠지만 그 봄은 우리가 생각하는 봄이 아닐 수도 있다. 봄(春)이 봄(bomb)으로 이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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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11일 담화를 내 일부 제재와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는 협상이 다시는 없을 것이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계관 고문은 “일부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며 “조미 사이에 대화가 다시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담화에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탄핵과 대통령 선거, 이란 문제 등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 섣불리 나설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협상의 전제조건을 높인 것이나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한 데서도 이런 고민이 엿보인다. 북한의 현 정세에 대한 판단과 북·미 대화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불필요한 독설을 퍼부은 점은 유감천만이다. 김 고문은 “남조선 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친서로 전달받은 상태”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들 사이에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것이 북으로서는 그토록 불쾌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레발’ ‘호들갑’ ‘주제넘은 일’ 같은 거친 언어를 쏟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미 메시지는 절제된 톤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는 비아냥과 독설을 퍼붓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한국 내의 남북화해를 바라는 여론마저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 북한은 대남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이번 담화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 중재역할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내놓은 남북협력 제의를 거부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김 고문의 담화에 남측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깔려 있는 걸 보면 올해 남북관계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년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관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남북협력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았음을 북한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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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내 핵심 군사기지 두 곳을 미사일 20여발로 공격했다. 지난 3일 미군 폭격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사망한 지 닷새 만에 군사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반격을 경고했다. 40년 앙숙인 양국이 무력 충돌하면서 중동이라는 화약고가 폭발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7일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뷰하는 간접 형식이지만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처음으로 공개 요청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현실화하면서 정부가 파병에 대해 결단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추가 대응이 없으면 확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양쪽 모두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이날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80명이 숨졌다는 이란 국영방송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의 반격은 불가피할 터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민간항공사들은 걸프지역 운항을 금지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전면전에 돌입할 경우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벌써 전 세계 금융시장과 원유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서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진다. 세계 평화를 위해 양국은 공격을 멈춰야 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시급히 중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한국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 수입을 하는 만큼 중동 해상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반드시 미군과 공조해서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은 핵 합의를 먼저 깬 데다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이란을 선제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법 위반인 문화재 공격까지 언급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이란은 친미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하면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이란 간 교역은 물론 대중동 외교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일본도 미국의 파병 요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양측의 전쟁에 끼어들어 국익을 손상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정 실장은 한국군 파병에 명분이 없다는 점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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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는 두 강대국의 꿈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그러진 아메리칸드림, 다른 하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다. 원래 아메리칸드림은 전 세계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불법이민자를 내쫓고 자국 이익을 전 세계에게 강요하는 어글리 아메리칸드림으로 바뀌었다.


중국몽은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실현한 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당 대회에서 중국몽을 23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밝혀 중국몽이 패권국가임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몽은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어 과거 중화체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1라운드를 끝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협정 서명을 앞두고 있다. 당초 미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무역전쟁이 중국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이제 1단계 무역협정에 합의했지만 본격적인 패권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며 힘을 엉뚱한 데 쏟는 바람에 중국의 부상을 억누를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두 꿈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새로운 100년의 원년으로 삼고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와 2045년 ‘원 코리아’를 이룬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꿈은 분단으로 이루지 못한 민족국가(nation state)의 완성에 두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시한 우리의 꿈은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공개, 비공개 당국자 접촉을 거부해 왔고 심지어 민간교류마저 중단시켰다. 작년 말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선 남북관계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6일자 북한매체들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이 외신 기고문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궤변’이라 폄하했다. 


우리의 꿈은 북한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평화통일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우리가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남북관계의 목표에만 우리의 외교안보 역량을 쏟을 수는 없다. 미국이나 중국이 남북관계를 한민족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미·중 세력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이루기 위해서도 미·중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풀어야 한다. 이제 강대국 관계 속에서 우리의 꿈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우리 외교는 어느 강대국에 편승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 강대국 외교는 더 이상 양자택일이나 양자절충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 오늘날 국제정치는 전 세계를 이끌던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는 ‘G-Zero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국가비전과 외교원칙을 세워야 한다. 


작년 6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접점을 찾아 조화롭게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12월2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 연계 협력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같은 정책은 강대국의 정책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목표와 정책을 중심에 놓고 강대국의 지역구상과의 협력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처럼 기존 편승외교와 자주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의 국가목표를 향한 새로운 외교원칙을 자기주도외교(Self-Directed Diplomac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강대국의 대외전략이 나올 때마다 참여 여부를 놓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포용성과 개방성을 기초로 우리의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립한 뒤 미·중의 대외정책과 접점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강대국 관계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 외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연초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하고 이란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등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파견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자칫 이란과의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크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향후 자기주도외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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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미국의 대북 정보 능력을 보여주는 사례는 허다하다. 1994년 김일성 주석 사망은 그 직후 부인 김성애가 체코에 있는 딸과 통화한 것을 포착해 알아냈다. 또 연평해전 때도 북한 함정이 본부와 교신하는 내용을 가로챘다. 이처럼 한·미 정보당국의 대북 정보는 인공위성과 정찰기, 그리고 지상의 시설을 통해 북한 내 영상 및 신호 정보를 수집하는 경우가 많다. 북한에 사람을 들여보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미군의 최첨단 정찰기들이 연일 한반도 상공으로 출격하고 있다. 한 종류만 떠도 주목할 판에 여러 기종의 정찰기가 한꺼번에 날아들고 있다. 이 중에는 미 공군에 단 두 대밖에 없는 기종도 있다. 과거 긴장이 높았을 때도 대북 감시 시간이 20~22시간 정도라고 했는데 지금은 24시간 감시 상태에 있다. 주 임무는 미사일 발사를 전후로 발신되는 마신트(MASINT, 계측 및 기호정보) 수집이다. 신호와 음성 정보 수집을 통해 북한의 미사일 도발을 집중 감시하고 있는 것이다.


정찰기는 공격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 자체로 위협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북한으로서는 머리 위에 늘 떠 있는 이 ‘척후병’들은 여간 성가신 존재가 아니다. 이쯤 되면 미사일 이동은 물론 관련 기관과 주요 인사들 간 일상적인 통화·대화조차 불편할 것이다. 미 정찰기들의 출격은 북한을 향해 내부를 손바닥의 손금 보듯 다 들여다보고 있으니 도발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경고인 것이다.


그 덕분인지 북한의 도발이 성탄절에 이어 연말도 넘기는 분위기다. 지금은 미국의 무력시위가 정찰기들의 출동에 머물러 있지만 상황이 언제 급변할지 알 수 없다. 미 당국자들이 최근 북한 타격을 부쩍 자주 언급한다는 말이 들려온다. 미 정찰기들이 일본 오키나와에 있는 카데나 미 공군기지에서 출격하는 것도 신경이 쓰인다. 이들은 수집한 정보를 한·미 공동 정보분석센터(오산)로 보내지 않고 주일미군에 직송하게 돼 있다. 1994년 북핵 위기 때 미국은 한국에 알리지도 않은 채 정보분석 요원들을 대거 입국시켜 북폭을 준비한 바 있다. 한국과 관계가 비교적 좋았던 빌 클린턴 대통령 때인데도 그랬다. 미 정찰기들의 출격을 마음 편하게 보지 못하는 이유이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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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구영신의 시기에 북한이 언제 미사일을 발사할지 몰라 전전긍긍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은 처량할 정도이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일련의 무력과시 옵션을 사전 승인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 위협이 한반도를 뒤덮을 수 있는 현실은 암울하다. 미국의 대응으로 북한이 연말연시에 미사일을 발사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은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다.


이제까지 북한핵 문제 해결에 실패한 것은 한국과 미국의 국력과 군사력 그리고 국제사회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었다. 북한의 말과 행동을 있는 그대로 이해하고 대응하려 하지 않고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고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 내몰린 것은 물리적인 힘의 부족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수용하는 인식능력의 부족 때문이라는 말이다. 북핵 문제를 주도한 미국의 책임만이 아니다. 남의 일처럼 뒤에 숨어 눈치를 보거나 북핵 문제를 정치에 이용하고자 했던 우리의 잘못이 더 크다.


냉정하게 현 상황을 평가해 보면 북·미 간 핵협상의 주도권이 북한에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동안 한국과 미국은 주도권을 장악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물리쳤다. 북한핵을 비난만 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우리가 해결책을 제시하고 주도권을 장악하지 못한 것은 그들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가 현 상황의 핵동결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스티븐 비건 미 국무부 부장관이 한국과 중국을 방문해서 북한과의 대화를 요청했으나 성과 없이 빈손으로 돌아간 것은 북한의 주도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크리스마스 선물 운운하면서 미사일을 발사할 듯하다가 조용해진 것은 미국의 군사적 압박 때문이라기보다 북한이 과거와 다른 행동양상을 보이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지금까지 북한은 자신이 한 말을 반드시 지켰다. 강대국을 상대하기 위해서는 신뢰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국제정치에서 상대방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은 강대국의 특권이다. 만일 크리스마스 선물이 블러핑(허풍·엄포)이라면, 이는 북한이 강대국의 전유물이던 게임의 세계에 진입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북한이 블러핑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더 이상 과거처럼 신뢰성을 지키려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판단했다는 것을 뜻한다. 이미 핵과 미사일 능력에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다. 앞으로 북한을 상대하기 더 어려워질 것이다. 그들이 말과 행동의 자유를 확보했기 때문이다.


북한이 ‘새로운 길’을 언급했다. 그러나 모두들 ‘새로운 길’보다는 미사일 발사에 더 많은 관심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마치 달을 보라고 하는데 손가락을 보는 것과 같다. 북한은 그동안 자신들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동결하는 조건으로 생존을 보장받고 국제사회의 제재를 풀어나가려고 했다. 북한이 말한 비핵화란 북한의 핵과 미사일 능력을 현 상황에서 동결하겠다는 것이지 자신들이 가진 핵과 미사일 능력을 제거하겠다는 의미가 아니었다. 알고 있으면서 모르는 척했을 뿐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가능했던 것은 북한이 주장하는 비핵화의 개념에 동의했기 때문이다. 북한의 입장에서 볼때, 하노이에서 보여준 미국의 태도는 약속 위반이다.


북한이 주장한 ‘새로운 길’은 더 이상 미국과의 대화를 통한 접근방식을 모색하지 않고 완전한 핵 미사일 능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감스럽게도 이를 위한 조건도 갖춰지고 있다. 이미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에 대한 유엔 안보리 제재 완화를 요구했다. 지금의 분위기로 비추어 볼 때 중국과 러시아는 북한이 미사일을 발사하더라도 추가적인 유엔 안보리 제재에 찬성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되면 유엔 안보리는 무력화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에서 비롯된 유엔 안보리 무력화는 미·중 패권경쟁과 맞물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지속된 국제질서 변화의 단초가 될지도 모른다. 중앙의 균열은 항상 변방에서부터 시작된다.


북한은 유리한 전략적 상황을 최대한 활용할 것이다. 2020년 미국의 대선정국은 북한이 가장 효과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재료다. 대선기간 동안 북한은 자신들이 가고자하는 ‘새로운 길’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줄 수 있는 결정적인 시기에 결정적인 행동을 할 것이다. 그럴 경우 그들의 행동은 기존의 예상을 뛰어넘는 수준이 될 가능성이 높다.


북한의 ‘새로운 길’ 선언으로 대화와 타협 방식의 북핵 해결은 불가능해졌다. 완전한 핵능력을 갖춘 북한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때 북핵을 그냥 인정하는 것 이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을지 모른다. 그때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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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지난 28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참석한 가운데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를 열었다. 조선중앙통신은 “현 정세하에서 당과 국가의 당면한 투쟁 방향과 혁명의 새로운 승리를 마련하기 위한 중요한 정책적 문제들이 상정됐다”고 전했다. 또 “혁명 발전과 변화된 대내외적 정세의 요구에 맞게 우리 국가의 전략적 지위와 국력을 가일층 강화하고 사회주의 건설의 진군 속도를 높여나가기 위한 투쟁 노선과 방략”이 회의에서 제시될 것이라고 했다.


28일 북한 노동당 제7기 제5차 전원회의가 평양에서 열렸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9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이번 회의는 김정은시대에 개최된 5차례 당 전원회의가 하루 만에 끝난 것과 달리 이틀 이상 진행됐다. 정치국과 당 중앙위, 당 중앙검사위 성원 등 정규 참가자들 외에 노동당과 내각 성 및 중앙기관, 각 도 인민위원장, 시·군당 위원장 등이 방청객으로 대거 참석한 것도 이례적이다. 규모도 커지고 기간도 길어진 것은 북한이 현 정세를 매우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제재와 압박을 유지한다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다고 경고하고 연말까지 ‘새로운 계산법’을 갖고 나올 것을 요구한 바 있다. 그 ‘연말 시한’이 성과 없이 끝나가는 시점에서 북한이 가야 할 ‘새로운 길’을 정하는 중차대한 회의인 셈이다.  


김 위원장은 내년 1월1일 발표할 신년사에서 ‘새로운 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것으로 보인다. 미리 가늠하기 쉽지 않지만, 대미 강경 노선과 자위적 국방력 강화, 자력갱생 경제발전 전략 등이 거론된다. 전원회의에서 ‘전략적 지위’라는 표현이 나온 것으로 미뤄 핵보유국 지위 강화를 내세울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어떤 것이 됐건 한반도 긴장지수를 끌어올리는 방향이 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안고 있는 고민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미국이 제재와 압박 정책을 고수하면서 북한의 선택지가 많지 않은 형편임은 분명하다. 하지만 중국과 러시아가 유엔 안보리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을 제출했고, 한국에서도 여야 의원들이 대북 제재 일부 완화 성명을 발표하는 등 현 상황을 타개하려는 주변국들의 행보와 고민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1년 전인 지난해 12월30일 김 위원장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문 대통령과 자주 만나 한반도 평화·번영을 위한 논의를 진척시키고 비핵화 문제도 함께 해결해 나가자고 했다.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크게 다르지만, 한반도 평화를 이루겠다는 김 위원장의 초심은 변하지 않았을 것으로 믿는다. 사흘 뒤에 나올 새해 신년사에도 이런 초심이 반영돼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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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과 미국 간의 긴장이 한창인 가운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0일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일본 자위대 구축함 1대와 대잠 초계기 1대를 이란 인근 해역에 파병할 계획에 대해 설명하며 사전 양해를 구하는 모양을 갖췄다. 로하니 대통령은 파병안을 투명하게 설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중동의 긴장완화와 안정화를 위해 일본 정부가 노력하겠다면서 이란이 미국 등과의 핵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2000년 이후 19년 만으로, 아베 총리의 지난 6월 이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도 띠고 있다. 


경위야 어찌 됐건 미국의 맹방인 일본이 미국과 대립 중인 이란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연 것은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미·일동맹의 영향으로 일본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이란 간에 모종의 중재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이란관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이 지난 9월 테러지원을 이유로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란과 의약품 등 인도적 교역마저 중단됐다. 이란 중앙은행이 국내 시중은행에 개설한 원화계좌도 동결돼 이란 당국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외교 당국도 제재를 풀기 위해 미국과의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좀 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이 정상외교에 나선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소리나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건 최근의 중동 긴장이 한·이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수십년간 돈독하게 다져온 한·이란관계를 악화시킬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를 한·미동맹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과 연계하려는 것도 온당치 않다. 명분도 없고, 득보다 실이 큰 파병은 백지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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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 것이다. 지난 10월 스웨덴 만남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하고, ‘일단 만나자’는 미국의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새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연말 시한을 거론하고 ‘새로운 길’을 공론화했다. 최고지도자의 체면이 있으니 뭐라도 할 것이다. 두 차례 ‘중대한 시험’ 실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표현 등으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모종의 조치를 연상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달 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말을 아끼며 신년사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년간 북·미 비핵화 대화를 이끌어온 핵심 키플레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도 트럼프의 대응 방향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한반도 정세는 트럼프의 상황 인식과 결정이 주요 변수인 셈이다. 내년에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는 대선 승리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지지자 여론, 대선 캠페인의 득실이 대북 정책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는 2018년 이후 북한에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음을 자랑한다.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지도 않겠다고 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없었다는 점은 트럼프의 외교적 성과임이 분명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한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좋은 관계”라고 적당히 띄워주고 군사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면 대선 가도에 나쁘지 않다고 볼 것이다.


김정은의 처지는 트럼프와 다르다. 비핵화 결단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트럼프를 두 번 만났지만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실질적 이익은 별로 없다. 현재로선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북한은 더는 기다려주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내년 한반도 정세를 낙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판을 크게 흔들 것이라는 관측, 미국의 강력 대응을 초래하고 중국·러시아도 불편해할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교차한다.


서로가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양측의 기본 입장을 일단 견지하면서도 교착상태를 탈피해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구실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북·미가 격렬하게 부딪치다가도 협상을 앞두고는 체면을 세워줬다. 지난해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을 했던 빈센트 브룩스는 “북한의 ‘체면 지키기’라는 문화적 요소를 항상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들(북한)이 변화하면 우리(미국)도 변화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일부 완화 결의안’ 시도는 북한의 군사행동에 따른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체면 살리기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제재 완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지 않고선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을 감안한 것이다. ‘비핵화 이전 최대의 압박 유지’ 입장이 분명한 미국이 일부 제재 해제에도 공개적으로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유예가 주목받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감안해서다. 북한은 연례적인 한·미 연합훈련에도 ‘전쟁연습을 하면서 무슨 대화냐’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지난해 북·미 대화의 촉매제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었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번에도 이런 주고받기로 대화판을 깐다면 트럼프는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하면서 원칙을 깨지도 않고 외교적 성과도 훼손되지 않는다. ‘대선에 끼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놨던 트럼프도 대화 유지 틀에서 ‘북한 변수’ 관리가 가능하다.


그렇게 상황이 진전되면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의 본궤도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은 ‘제도적 안정을 위한’ 체제 안전보장과 ‘발전권을 위한’ 제재 완화를 비핵화 협상의 조건으로 요구한다. ‘원샷딜’은 비현실적이다. 비핵화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주 서울에서 판문점 회동을 제안하며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로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확인하고, 1단계 비핵화와 일부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찌 됐건 시급한 일은 북·미가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연말·연초 고비를 넘기면 기회가 오도록 말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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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동북아에서 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 평화안보 체제를 이뤄낸다면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러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완화 추진 결의안에 대해 논의한 데 이어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함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동안 연이틀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을 밝힌 것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의 대북공조 대열에서 이탈해 중국·러시아와 함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중·러가 지난 16일 유엔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고, 미국이 반대하고 나서는 등 대북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민감한 시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쓰촨성 청두 세기성 박람회장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대한상공회의소·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한중일 경제인들이 주최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은 빈사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겠다는 충정으로 해석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대북 제재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남북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한 지 26일로 1년을 맞지만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내년에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상태다. 내년 한반도가 2017년을 방불케 하는 긴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북·미 경색은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북한은 지난해 북·미 협상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 등 선제조치에 나섰지만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하노이 제안도 미국은 거부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전체 그림을 제시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양측이 한 발짝씩만 뒤로 물러났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쟁점들이었다.  


중국 환구시보는 최근 시평에서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북·미 간 상호 신뢰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중·러의 제재 완화 결의안을 뒷받침하는 취지이지만,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능력을 더 고도화하는 ‘제재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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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중국 청두에서 45분간 회담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성사된 데 이어 15개월 만이다. 30분 예정이던 회담시간을 15분 넘겨 진행된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 간 현안을 해결하려면 직접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일본과 한국은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교역과 인적 교류에서도 더욱 중요한 매우 큰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베 총리도 양국은 중요한 이웃이라면서 “저로서도 중요한 일·한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며 “오늘은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 24일(현지시간) 한중일 협력 20주년 행사가 열리는 중국 쓰촨성 청두 두보초당에 입장하고 있다. 두보초당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머무른 곳이다. 연합뉴스


한·일 간 현안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7월1일 이전 수준으로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고 했고, 아베 총리는 “수출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했다. 수출규제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시점을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양국 간 입장 차를 확인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데 공감했다고 청와대가 설명했다. 


외견상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 회담이었다. 하지만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한·일관계다. 지난 몇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불신, 오해가 통역을 낀 45분간의 대화에서 모두 풀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두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강조하면서 자주 만나자는 데 뜻을 모은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외교의 미덕은 최고지도자끼리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대화를 거듭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사이에 엉킨 매듭도 자연히 풀리게 마련이다. 물론 알맹이 없는 만남을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꼭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굴곡이 많은 한·일 간에는 만남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긴요하다. 이날 회담을 기점으로 한·일 정상이 ‘셔틀외교’ 방식으로 정례 회담을 지속한다면 양국 간에 깊게 팬 골은 메워질 것이다. 


일본은 회담 나흘 전인 지난 20일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일본은 수출규제의 원상회복 절차에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해법 마련에 지혜를 모아줄 것을 당부한다. 두 정상이 한목소리로 밝힌 ‘솔직한 대화’가 향후 양국관계를 풀어나가는 기본 덕목이 될 필요가 있다.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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