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한반도 칼럼'에 해당되는 글 532건

  1. 2019.12.05 [사설]심상치 않은 북·미 움직임, 대화 해결의 원칙 이어가야
  2. 2019.12.04 [사설]한 달도 안 남은 북·미 협상 시한, 이대로 흘려보낼 건가
  3. 2019.12.02 [사설]미 의회도 “한국이 방위비에 상당한 기여한다”는데
  4. 2019.11.29 [사설]북한 또 발사체 도발, 협상판 깨질 수 있다는 걸 알아야
  5. 2019.11.20 [사설]북한, 더 조건 달지 말고 대화 나서야
  6. 2019.11.19 [세상읽기]북한 비핵화와 그 적들
  7. 2019.11.18 [사설]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 북·미 회담으로 이어져야
  8. 2019.11.13 [이대근 칼럼]북한이 모르는 북한의 힘
  9. 2019.11.12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미국의 ‘군사적 요구’ 대처법
  10. 2019.11.04 [정동칼럼]미국이 주둔비보다 먼저 생각할 것
  11. 2019.11.04 [사설]스틸웰 미 차관보 방한, 한·일 갈등 해결 모색 기회로
  12. 2019.10.29 [사설]북한, ‘금강산관광’ 대면 회담 제의 수용해야
  13. 2019.10.25 [정동칼럼]위기의 트럼프와 북핵협상
  14. 2019.10.24 [사설]금강산관광의 문 닫혀선 안된다
  15. 2019.10.15 [사설]월드컵 평양 경기 남측 응원단·취재진 막은 북한, 유감이다
  16. 2019.10.15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회색지대 사태’와 북한의 대처법
  17. 2019.10.07 [사설]북·미 실무협상 결렬, 조속한 시일 내 재개해야
  18. 2019.10.04 [사설]북·미 협상 분위기를 깨는 북의 미사일 발사
  19. 2019.10.02 [사설]북·미협상 재개, 한반도 평화 대전환의 서막이기를
  20. 2019.09.24 [세상읽기]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가 불안해진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일 영국을 방문하는 중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해 무력을 사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아주 좋은 관계라고 거듭 강조한 뒤에 한 말이지만 지금껏 북한을 두둔해오던 트럼프 대통령이 무력 사용을 언급한 것은 예사롭지 않다. 김 위원장을 조롱하듯 불렀던 ‘로켓맨’이라는 말도 2년 만에 다시 입에 올렸다. 그런가 하면 북한 매체들은 4일 김 위원장이 군 고위간부들과 함께 군마를 타고 백두산에 오르는 장면을 보도했다. 중대 사안을 결정한다며 노동당 중앙당 전원회의도 소집했다. 전날에는 리태성 외무성 부상이 연말까지 새 협상안을 내놓으라며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 재개를 시사했다. 연말 시한을 앞두고 북·미 대화를 둘러싼 난기류가 심상치 않다.


최근 북·미 간 신경전은 2년 전 상황을 상기시킨다. 북한이 2017년 7월4일 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에 이어 ‘완전한 파괴’를 위협했다. 이후 전략무기 전개 등이 이어지면서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았다. 그때처럼 ‘연말 협상’ 시한이 다가오면서 북·미 양측의 군사대응 수위가 높아지고 있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4일 전군주요지휘관 회의에서 “북한이 군사활동을 강화하고 있어 예의주시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에 맞서 미군도 연일 한반도 상공에 최첨단 정찰기들을 띄워 북한을 감시하고 있다.


지금 북·미가 쏟아내는 강경 메시지는 일종의 협상 전술로 보인다. 하지만 대화 분위기는 한번 흐트러지면 회복하기가 쉽지 않다. 최근 미국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북·미 협상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하면 내년 11월로 예정된 미국 대통령 선거를 위해 북한을 몰아붙일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만약 트럼프의 ‘무력 사용’ 언급이 북한에 대한 엄포를 넘어 재선을 위한 대응책의 시작이라면 보통 문제가 아니다. 자칫 협상판 자체가 깨질 수도 있다.


물론 북·미가 아직은 서로에 대한 기대를 접지 않고 있다는 점은 다행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여전히 김 위원장을 좋아한다”고 했고, 북한도 “크리스마스 선물을 무엇으로 할지는 미국에 달렸다”고 했다. 북·미 양측은 이대로 극한 대치로 치달아서는 안된다. 그러려면 우선 군사대결 행동을 중지해야 한다. 마침 북·미 협상 미국 측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이달 중순 방한한다. 북·미는 대화를 통한 해결이 유일한 답이라는 점을 확인, 연말까지 해법을 찾아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도 북·미 양측이 대화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도록 촉진자 역할을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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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북·미 협상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북한담당 부상은 3일 담화를 발표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면서 “연말 (북·미 협상) 시한부가 다가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새로운 해법’을 들고 오라고 한 시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결단을 압박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이날 또다시 E-8C 조인트 스타즈와 RC-135U 컴뱃 센트 등 최첨단 정찰기 2대를 동시에 한반도 상공에 띄워놓고 대북 감시 활동을 벌였다.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동향을 집중 감시하는 것으로, 최첨단 정찰기 2대가 동시 출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협상 분위기는커녕 북·미 간 긴장만 고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백두산 인근 양강도 삼지연군에 건설 중인 신도시 읍지구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을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향했던 백두산을 50여일 만에 다시 찾았다. 연합뉴스


연내 북·미 협상이 무산될 경우 벌어질 상황은 심각하다. 리 부상이 언급한 ‘선제적 중대조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동안 유예해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재개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이를 선언할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2일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중대 결심을 할 때마다 찾는 북한 혁명의 발상지 격인 삼지연군을 방문한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이 지난여름부터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올려놓는 콘크리트 토대를 전국 수십곳에서 증설하고 있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도 있다. 만약 김 위원장이 강경 대응을 한다면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 대화는 물 건너간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앞서 1차적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첨단무기 도입에 반발해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오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내년 상반기 또는 하반기까지 잠정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연결됐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직 서로에 대해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남은 한 달 동안 북·미 양측은 보다 유연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미국은 실효성 있는 협상 카드를 보여야 하며, 북한 또한 핵무기와 중장거리미사일 시험만은 계속 유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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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협상이 3~4일 미국 워싱턴에서 재개된다. 지난달 19일 서울에서 열린 협상에서 미국이 ‘공정하고 공평한 부담 분담’을 요구하며 1시간여 만에 회의를 결렬시킨 지 2주 만에 열리는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기조가 바뀌었다는 징후가 보이지 않는 만큼 난항이 예상된다. 



이런 가운데 미국 의회가 심의 중인 내년도 국방예산 법안에서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에 상당한 기여를 하고 있으며, SMA 협상에서 이를 감안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의회 홈페이지에 공개된 2020 회계연도 국방수권법 법안에서 상원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약 2.5%인 한국의 국방비 지출이 미국 동맹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이라면서 “상당한 분담 기여에 대해 높게 평가한다”고 밝혔다. 상원은 한국이 ‘캠프 험프리스’ 기지 건설 등 직접비용 분담과 동맹 관련 지출을 통해 상당한 재정적 기여를 해왔다면서 방위비 분담금 협상이 “공동의 이익과 상호존중, 한국의 상당한 기여를 적절히 고려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 하원도 법안에서 한국·일본에 요구할 분담금의 세부 내용을 국방장관이 제출토록 했다. 행정부가 적정한 수준의 분담금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세목별로 검증하겠다는 것이다. 미 의회가 트럼프 행정부의 한국에 대한 과도한 방위비 분담금 요구를 견제하겠다는 움직임으로 해석해도 틀리지 않는다.   


미국 조야에서는 이미 트럼프 행정부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에 비판 목소리가 커진 상태다. 뉴욕타임스는 지난달 22일자 사설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터무니없는 요구는 미국의 신뢰를 의심케 하는 모욕”이라며 “동맹을 돈으로만 바라보면 미국의 안보·번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같은 날 미 전직 고위 관리들은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미국의 욕심에 대한 한국인의 분노가 커지고 있다”고 했다. 방위비 분담금 5배 인상 겁박이 한·미동맹 훼손은 물론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란 우려가 뚜렷해지면서 미 의회도 제동 걸기에 가세한 셈이다.  


동맹국을 현금자동인출기(ATM) 취급하는 트럼프 행정부의 무례한 겁박에 한국인들의 인내가 임계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더 이상 동맹을 흔들면 소탐대실할 수 있다. 서로가 납득할 수 있는 선에서 분담금 협상에 임해 동맹의 훼손을 막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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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8일 오후 함경남도 연포 일대에서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되는 단거리 발사체 두 발을 동해상으로 발사했다. 지난달 31일 평안남도에서 같은 발사체를 발사한 지 28일 만이며, 올해 들어 13번째 발사다. 그동안 세 차례 시험에서 실패한 연속사격 성능을 이번에는 입증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참은 이례적으로 작전부장이 직접 브리핑에 나서 “북한의 행위는 한반도 긴장 완화 노력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강력한 유감을 표한 뒤 군사적 긴장고조 행위를 즉각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북한의 의도는 미국과 남측을 강하게 압박해 북·미 회담을 촉진하려는 것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이달에만 군 관련 행사를 세 번이나 했고, 다시 발사체까지 쏘았다. 지난 25일에는 김 위원장이 연평도 포격 9주기(11월23일)에 맞춰 서해 창린도를 방문, 해안포 수발을 발사했다. 9·19 군사합의를 처음으로 위반했다. 대남 매체를 통해 금강산관광특구 내 남측 시설도 다 부수겠다고 엄포를 놨다. 북·미 대화가 교착에 빠지자 다시 벼랑 끝 전술을 펼치고 있다. 


하지만 이는 미국을 협상장으로 불러들이기는커녕 한반도의 긴장만 높이는 위험천만한 행위이다. 북한의 연이은 도발 행위에 미군은 정찰기를 띄워 감시를 강화했다. 27일 RC-135V 정찰기에 이어 28일에는 북한의 미사일과 장사정포, 잠수함 등을 정밀감시하는 첨단 지상감시정찰기 E-8C까지 띄웠다. 한반도에서 긴장이 이미 고조되고 있다.


북한은 연말까지 북·미 협상이 잘되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했다.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재개할 수 있다는 말이다. 한·미 군당국은 북한이 추가 도발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협상하자면서 도발하는 것은 옳은 태도가 아니다. 북한은 당장 도발을 멈추어야 한다. 일방적으로 제시한 연말 시한에 얽매이지 말고 협상 조건과 내용을 놓고 미국과 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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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철 북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위원장이 19일 담화를 내고 “조선반도 핵문제의 근원인 미국의 대조선(대북) 적대시 정책이 완전하고도 되돌릴 수 없게 철회되기 전에는 그에 대해 논의할 여지도 없다”며 미국은 비핵화 협상에 대해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김영철 위원장은 “조미(북·미) 사이에 신뢰구축이 선행되고 우리의 안전과 발전을 저해하는 위협들이 깨끗이 제거된 다음에야 비핵화 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고도 했다. 김계관 북한 외무성 고문이 전날 내놓은 담화와 거의 동일한 메시지다.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도 내달 북·미 실무협상 재개와 관련해 “미국이 대조선 적대시 정책을 철회할 결단을 내리지 않는 한 조미 대화는 열리기 힘들게 되어있다”고 이날 밝혔다. 한·미 당국이 연합공중훈련을 전격 연기해 협상 재개의 명분을 제공했지만, 북한은 이를 평가절하한 채 미국이 한 발짝 더 움직여야 대화가 이뤄질 수 있다고 버틴 것이다.


북한이 경직된 태도를 나타내고 있는 것은 협상 의제 선점을 위한 기싸움의 성격도 있겠지만, 비핵화 협상의 ‘연말 시한’이 50여일밖에 남지 않은 데 따른 초조감의 발로로도 보인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 17일(현지시간) 김정은 국무위원장을 향해 “당신은 빨리 행동해야 하며 합의를 이뤄야 한다. 곧 보자!”면서 3차 정상회담 가능성을 시사했지만, 북한을 설득할 카드를 미국이 들고 오지 않는 한 북한은 협상장에 나서기 힘들다는 입장을 시사해왔다. 지난 2월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의 악몽을 반복하고 싶지 않기 때문일 터이다. 또한 임기가 1년이 채 남지 않은 데다 탄핵 정국에 몰려 있는 트럼프 행정부와 ‘큰 거래’를 하는 것이 타당한 건지 의문을 품고 있을지도 모른다. 북한이 핵실험 및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시험발사 중단 등 ‘선제적 조치’를 무위로 돌릴 가능성까지 시사한 것은 트럼프 행정부가 비상한 각오로 ‘통 큰 결단’에 나서달라고 주문한 것이다. 


하지만 이런 태도로는 시간만 허비하게 될 뿐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북한의 비핵화 의지는 진정성을 의심받게 된다. 그렇다면 한·미 연합공중훈련 연기라는 모멘텀을 지렛대로 삼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미국도 좀 더 유연한 태도로 북한을 설득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대북 제재 유지’에 집착하다 ‘큰 거래’의 기회를 놓치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북·미 모두 결단의 순간을 맞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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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비핵화 꿈이 2년도 채 되지 않아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날 듯하다. 지나치게 낙관했거나 성급했던 까닭에 남·북·미 모두 비핵화 길(로드맵)에서 어긋났다. 북한 비핵화라는 거대한 담론이 썰물처럼 빠져나간 작금의 한반도 안보 상황이 야기하는 (조선인민군이 오래전 한반도에서의 다음 전쟁은 재래식전쟁이 아닌 핵전쟁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던 것처럼) 위협과 불확실성은 작년에 비해 눈에 띄게 높아졌다. 


작년 2월 평창 동계올림픽 개최에 맞춰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여동생 김여정의 방남을 계기로 남북관계는 빠르게 순항했다. 남북 정상 간 직통전화까지 개설되자(2018·4·20) 장삼이사들은 남북한 두 정상이 언제라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했다. 일주일 후 판문점(4·27)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이며, 새로운 평화의 시대가 열리고 있음을 천명했다. 이어진 북·미 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 등에서 한반도 비핵화는 거듭 확인됐다. 신(新)한반도 여정의 서막이 열리는 듯했다. 하지만 비핵화 협상이 장기 뇌사상태다. 비핵화를 통해 북한에 궁핍과 절망으로부터 탈주(脫走)의 길을 터주고자 했던 문재인 대통령으로서는 난망한 처지다. 세간의 지적처럼 비핵화 정의가 합의되지 않아서였을까, 아니면 서로의 계산법이 맞지 않아 사달이 난 것일까. 트럼프와 김정은은 정말로 비핵화를 할 의지가 있기나 한 것일까. 서로 속임수를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기만책이 아니라면 비핵화 발목을 잡는 세력이 있다는 의미인가. 나는 비핵화에 재를 뿌리려는 세력들이 비핵화 길목 곳곳에 잠복해 있다고 추정한다. 


우선 김정은을 둘러싼 200~300여명의 지배 엘리트들을 비핵화의 적들로 분류할 수 있다. 이들이 보기에 비핵화는 체제를 말살하는 아편과 같은 존재이다. 평양 엘리트들의 주된 관심은 북·중동맹 틀 속에서의 현상유지이다. 비핵화 논의가 깊어질수록 현상타파는 불가피하다. 북한 최상부 기득권층인 이들은 자신들의 체제 불안을 대외적 군사적 모험으로 표출할 수 있다. 수세(守勢) 안에 공세(攻勢)를 취하는 격이다. 


둘째, 미국의 군산복합체를 들 수 있다. 군수산업은 지구촌의 크고 작은 전쟁과 각종 분쟁을 주식(主食)으로 하면서 미국 경제를 지탱하는 중심축이 됐다. 군산복합체의 강고한 먹이사슬에 놓여있는 집단은 정계, 관계, 재계, 학계, 언론계, 싱크탱크, 무기중개상 등 직군도 다양하며 국적을 불문한다. 이들 거대 집단의 폐단이 얼마나 심각했기에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퇴임 고별연설(1961·1·19)에서까지 군산복합체의 폐해를 지적했을까. 


셋째, 미국이 제공하는 확장억제력의 신뢰에 회의적인 ‘민족주의’ 성향을 지닌 일군의 사람들이다. 보수, 진보를 막론하고 북핵에 대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독자적 핵무기 개발임을 주창하는 사람들이다. 핵무기의 힘을 욕망하는 이들의 비핵화에 대한 저항은 이미 ‘핵무기가 배태된 저항’이다. 한국이 핵무기를 개발할 능력을 갖추었는지에 대한 분석과 평가는 물론 핵무기 개발을 시도할 경우 닥칠 후과(後果)에 대해서도 애써 침묵한다. 따라서 평화를 바라는 사람들이 오래 생각해보는 비핵화 길의 대척점에 놓여있는 ‘관념적 핵무장론’은 자기만족이자 무책임한 선동과 진배없다. ‘눈에는 눈’의 보복은 우리 모두를 장님으로 만들고 만다. 


판문점, 평양, 싱가포르 그리고 하노이에서 서로 주고받았던 말들을 하나하나씩 곱씹어야 할 때다. 중단(stopping)이 곧 종결(ending)을 뜻하지는 않지만 비핵화 협상 중단으로 북한의 핵 능력이 고도화되고 나아가 비핵화에 비협조적인 세력들의 입지가 오히려 강화되는 기제가 작동하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의) 방위비 분담금 증액, (일본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연장, (북한의) 금강산관광 시설물 철거 요구 등과 함께 비핵화 협상 교착이 문 대통령에게는 손오공의 머리를 조이는 삼장법사의 긴고주가 됐다. 삼장법사는 나쁜 동기로 긴고주를 외는 일은 없다고 했는데,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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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두 국방부 장관과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이 17일 태국 방콕에서 회담을 열어 이달로 예정했던 한·미 연합공중훈련을 연기하기로 결정했다. 에스퍼 장관은 “이번 결정은 (북한 비핵화를 이끌어내려는) 외교적 노력과 평화를 촉진하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선의의 조치”라면서 북한을 향해 조건 없는 대화 복귀를 촉구했다. 북한의 비핵화를 이끌어내기 위한 한·미 양국의 결단을 평가한다. 지난달 5일 스톡홀름 회담 후 열리지 못하는 북·미 실무협상의 조속한 재개를 기대한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왼쪽)이 17일 태국 방콕 아바니 리버사이드 호텔에서 열린 한·미·일 국방장관 회담에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왼쪽에서 두번째)과 고노 다로 일본 방위상과 맞잡은 손을 들어보이며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번 훈련 연기 결정 과정은 그 자체로 북·미 간 성공적인 협의라고 할 수 있다. 한·미는 당초 ‘비질런트 에이스’(Vigilant Ace)를 대체해 이달 중에 대대급 이하의 연합공중훈련을 실시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북한이 지난 13일 국무위원회 대변인 담화를 통해 “우리 공화국(북한)을 과녁으로 삼고 연합공중훈련까지 강행하며 사태발전을 악화일로로 몰아넣은 미국의 분별없는 행태에 대해 더는 수수방관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에 에스퍼 장관이 방한길에 훈련의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고, 북한도 14일 김영철 아·태평화위원장 등의 연쇄 담화를 발표하면서 긍정적으로 반응했다. 한·미는 15일 연례안보협의회(SCM)에서 연합공중훈련 조정 문제를 협의했고, 방콕에서 추가 협의해 훈련 연기를 최종 결정했다. 남·북·미가 나흘 동안 한·미 연합훈련을 고리로 공개적으로 ‘직간접 대화’를 하며 의미 있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훈련 연기로 군사 위협은 물론 재정적 부담도 더는 이중의 이득을 얻었다. 이제 북한은 북·미 간 실무회담에 응해야 한다. 에스퍼 장관이 언급한 대로 미사일 실험도 중지해야 한다. 


양측은 대화의 불씨를 어렵사리 살려낸 만큼 실무협상에서 진전을 이끌어내야 한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때처럼 빈손으로 돌아가지 않으려면 정상들 간 협의뿐 아니라 그를 뒷받침할 내실 있는 실무협상이 필수이다. 북한의 주장대로라면 북·미 회담의 시한은 이제 50여일밖에 남지 않았다. 북한은 최근 금강산에 있는 남측 관광시설을 철거하겠다고 최후 통첩을 보냈다. 북·미 회담으로 조성된 대화 분위기가 남북 간 대화를 촉진해 금강산관광 재개 해법까지 도출하기를 기대한다. 이번 한·미 연합공중훈련 중단이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의 실질적 전기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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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북한은 기대하는 것을 얻을 수 있을까? 미국이 연말까지 북핵 문제 계산법을 바꾸지 않으면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북한의 압박에 미국이 굴복하는 것 말이다. 미국은 결코 그러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북한은 연말이 다가올수록 대미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단순히 협상 방법의 문제를 넘어 근본적 전환을 요구한다. 지난달 6일 북·미 실무협상 결렬 뒤 “역스러운 협상” 운운하며 공격적인 언사를 마다 않던 북한은 체제 안전, 대북 제재 해제를 비핵화하기도 전에 다 보장하라고 요구한다. 그게 뜻대로 될 리 없다. “기회의 창이 매일 조금씩 닫혀가고 있다”는 지난 8일 외무성 미국국장의 자못 여유로워 보이는 경고에는 조급성이 잔뜩 묻어난다.


북한은 협상할 생각이 없어 보인다. 북한의 관점에서 실무협상은 포괄적 합의 압박을 받는 자리다. 포괄적 합의를 위해서는 비핵화의 최종상태를 명확히 해야 한다. 북한은 이걸 싫어한다. 하지만 거부할 논리가 약하다. 북한의 ‘선 신뢰구축, 후 비핵화’보다 합리적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김정은은 ‘북한의 제도 안전과 발전’을 막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면서 그걸 위해 도널드 트럼프가 연말 정상 간 담판에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상 담판을 끌어내기 위해 북한이 동원하는 명분의 하나는 한·미연합훈련 중단이다. 북한은 협상의 진전을 원할 때 주한미군 철수, 한·미훈련 중단 입장을 거둬들인다. 1992년 북·미 간 첫 고위급 회담 때 그랬다. 2000년 일련의 회담, 즉 남북정상회담, 조명록 인민군 차수 방미,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 방북 때도 북한은 통일 이후 주한미군이 필요하다고 했다. 협상에 기대하는 것이 없을 때는 미군철수, 훈련 중단을 주장한다. 1990년대 후반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4자회담이 좋은 예다.


훈련 중단 거론 여부는 향후 협상을 전망할 수 있는, 꽤 일관성 있고 신뢰성 높은 신호다. 김정은이 지난해 4월 예년 수준의 훈련은 반대하지 않겠다고 한 이후 대외관계는 전례 없는 속도와 범위로 진전됐다. 반면 훈련 중단을 요구하면서 협상은 지지부진해졌고, 대외관계는 단절되거나 정체됐다.


‘미국의 신뢰 조치 결여론’도 북한이 동원하는 주요 명분이다. 북한은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 중단에 상응하는 미국의 신뢰 조치가 없다고 비판한다. 이렇게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비핵화가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말인즉 옳다. 문제는 서로 기대하는 신뢰 조치가 맞아떨어지지 않는 데 있다. 북한이 미국에 불만인 것처럼 미국도 신뢰감을 주지 못하는 북한에 불만이다. 최근 신뢰 부재의 상당 몫은 북한이 공약한 완전한 비핵화 불신에서 비롯된다. 비핵화를 믿을 수 없는데 비핵화를 전제로 먼저 내줄 수는 없는 일이다. 북한이 미국에 최종상태(적대시 정책 폐기)를 요구하면서 자신의 최종상태(비핵화 정의)는 제시하지 않겠다는 것도 자가당착이다.


그런 현실에서 비핵화를 신뢰구축 다음 단계로 미루는 것 자체가 신뢰 형성을 막고, 바로 그 때문에 비핵화는 더 어려워진다. 이 딜레마를 벗어나려면 신뢰·비핵화 분리가 아니라, 신뢰·비핵화 조치 병행으로 신뢰·비핵화를 서로 촉진하는 선순환을 하도록 해야 한다. 그러자면 역시 포괄적 합의가 필요하다.


그럼에도 김정은이 연말 중거리 혹은 대륙간 탄도 미사일을 쏜다면 북한의 미래는 기약할 수 없다. 미국은 이미 연말 시한을 무시했다. 시한에 구속된 존재는 김정은뿐이다. 북한으로선 자신의 발목을 잡고 있는 걸 스스로 풀면 그만이다. 중장거리 미사일을 쏠 것처럼 행동하되 쏘지는 않고, 비핵화는 하지 않되 비핵화 공약을 내세우며 시한을 연장하는 것이 그로서는 현실적 대안이다.


그렇게 회색지대에 들어간 뒤 기존 핵 정책을 재점검하는 숙고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 그동안 상대 지도자를 눈속임하거나 상대 정권이 바뀌거나 인기를 잃거나 하는 국내 정치변수를 이용하려는 앝은수에 집착하지 않았는지 성찰해야 한다. 북핵 문제는 지도자 한 사람, 임기가 정해진 특정 정권만 유혹하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 전체, 집권당, 야당, 국회, 여론을 설득할 묵직하고 진지한 대안이 있어야 한다. 나아가 시간을 견딜 수 있을 만큼 단단한 것이어야 한다.


북한은 ‘만능의 보검’이라며 핵의 힘을 과신한다. 힘은 상대를 자신의 의지대로 행동하게 하는 능력이다. 그런 점에서 핵의 힘은 제한적이다. 김정은도 핵을 가졌음에도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북한이 가진 진짜 힘은 따로 있다. 그 힘을 믿고 죽 밀고 가야 한다. 바로 비핵화다. 그것이 있으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지만, 그것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이대근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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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5일 서울에서 한·미 군사위원회(MC)와 안보협의회의(SCM)가 열린다. 우리 측은 정경두 국방장관, 박한기 합참의장, 최병혁 연합사 부사령관, 정석환 국방정책실장, 미국 측은 에스퍼 국방장관을 필두로 밀리 합참의장, 데이비슨 인도·태평양 사령관, 에이브럼스 연합사령관, 내퍼 국무부 한·일 담당 부차관보,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참석한다. 이들에 앞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와 크라크 미 국무부 경제차관, 드하트 한·미 방위비분담금협상 수석대표가 잇따라 한국을 방문했다. 


금년도 SCM은 한·미동맹의 방향을 결정지을 주요 쟁점들이 다뤄질 예정이어서 어느 때보다 주목을 받고 있다. 주요 의제는 방위비 분담금 책정, ‘미래 국방비전’ 채택, 전작권 전환을 위한 제1단계인 초기운용능력(IOC) 평가, 전작권 전환 뒤 한·미동맹의 범위를 한반도 유사시를 넘어 미국 유사시까지 확대하기 위한 ‘한·미동맹 위기관리 각서’ 개정, 그밖에 중거리핵전력(INF)조약 파기에 따른 중거리탄도미사일 한국 배치, 호르무즈해협에 대한 한국군 파견,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문제 등이 있다.


이번에 미국이 SCM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목표는 무엇일까? 미국 관리들이 각자 들고온 한·미동맹의 현안들 하나하나도 중요하다고 생각하겠지만. 이들은 결국 하나의 목표로 수렴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미국이 주도하는 ‘자유롭고 열린 인도·태평양전략(FOIPS, 인·태전략)’에 한국의 전면 동참 약속을 받아내는 것이다. 미·중 무역협상이 일단 봉합되면서 미국은 다음 단계로 동맹 재편에 나서고 있는 것이다.


2017년 11월 미국이 인·태전략 동참을 요구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은 그 취지가 불분명하다면서 입장 표명을 유보한 바 있다. 금년 6월1일 미 국방부가 ‘인·태전략보고서’를 공개하자 6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개방·포용·투명성이라는 역내 협력 원칙에 따라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태전략을 조화롭게 추진키로 했다”고 합의한 바 있다. 이러한 입장은 한·미·일 안보협력에는 적극 동참하되 지역동맹 전환에는 반대한다는 역대 한국 정부의 외교방침을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바람직한 한·미동맹 관계는 전통적인 허브·스포크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다. 한·미동맹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평화·안전을 위한 린치핀이라면,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은 동아시아 안보정세의 불안정에 대비한 안전판이다. 한국은 한·일 안보협력의 중요성을 인정하지만, 일본의 태도변화가 없는 상황에서 GSOMIA 종료를 취소할 수는 없다. 예정대로 GSOMIA가 종료된다면, 이후 한·미·일 군사협력은 한·미·일 정보보호약정(TISA)을 활용한다면 일정한 수준에서 유지될 수 있을 것이다.


이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한·중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도 불가결한 한 축이다. 아베 총리도 작년 10월 기업인 500여명을 이끌고 베이징을 방문해 일대일로 구상 참여를 발표했다. 미 국방부가 이미 일대일로 구상의 핵심인 해상실크로드 구상을 ‘진주목걸이 전략’이라고 부르며 군사적 의미를 부여했다. 이 때문에 당시 야치 국가안보국장이 반대했지만 이마이 총리 정무비서관의 조언에 따라 일대일로 구상이 안보전략이 아닌 경제전략이라는 논리를 만들었다. 이러한 아베 정권의 태도는 중국시장이라는 경제적 실리를 놓칠 수 없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이번 SCM에서 미국은 GSOMIA 종료를 용인하고, 방위비 분담금을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조건으로 한국이 인·태전략에 조건 없이 전면 참여하는 내용을 ‘미래 국방비전’에 담길 바랄 것이다. 이렇게 포괄적 합의를 해주면 앞으로 한국은 미국의 군사전략에 계속해서 ‘연루’될 수밖에 없다. 이와 관련해 역외 군사협력 동참을 요구받았을 때 보여준 일본의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 냉전시대가 끝나고 일본이 보통국가를 지향하면서 1999년과 2015년 추가로 개정돼 성격이 많이 변했지만, 1978년 미·일 방위지침을 처음 만들 당시 일본 정부는 자국 안보와 직접 관계없는 군사적 ‘연루’를 피하려 외교적 노력을 다했다. 


우리 정부는 ‘6·30 한·미 정상 합의’를 기본으로 삼으면서 인·태전략의 전면 참여 요구에 대해 포괄적 합의가 아니라 한·미 협력의 대상과 범위를 담은 세부목록을 달라고 요구해야 한다. 그다음, 미국이 제시한 세부목록 가운데에서 대한민국 헌법과 한·미 상호방위조약의 저촉 여부, 군사적 연루 위험성을 고려해 한국이 받을 수 있는 것과 받기 어려운 것을 선별해낸다. 최종적으로 선별된 항목을 미국과 재협의해 인·태전략과의 협력범위를 확정해야 한다. 미국의 일방적 요구가 아닌 한국과의 조율로 안보협력이 이루어질 때 한·미동맹이 더욱 굳건하고 건전하게 발전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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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예년보다 5배나 많은 주한미군 주둔비용을 요구하고 있다. 미국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타결된다면 올해는 미군 군사력 수출의 원년이 될지 모르겠다. 지금도 주한미군 주둔 분담금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미국의 50억달러 요구는 상식적인 범주를 넘는다. 얼마만큼의 주한미군 주둔비용이 적절한지는 한·미 간 생각이 다를 수도 있다. 정말 중요하고 필요하다면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지불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아무리 적더라도 지나칠 수 없다. 주한미군의 주둔비가 적절한지 평가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주한미군은 한국전쟁 이후 북한의 남침 위협 때문에 주둔해왔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은 핵 위협과 재래식 군사력 위협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그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은 엄밀하게 말해 우리의 몫이 아니다.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것은 세계 평화를 위해 핵무기 확산을 방지하는 데 동참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상대방이 핵으로 위협할 때 핵으로 대응하는 것은 자위권적 권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않는 것은 미국이 핵우산으로 보호해주겠다는 약속을 믿기 때문이다. 


미국이 우리를 위해 북한의 핵을 억제하지 않겠다고 한다면,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약속도 원천무효이다. 당연히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비용은 주한미군 주둔비에 포함될 성질이 아니다. 유사시 전락자산의 한반도 전개도 우리가 핵을 보유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대가로 미국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 할 것이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적 위협은 과거에 비해 그 성격이 달라졌다. 북한이 6·25전쟁 같은 전면전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한 지 이미 오래다. 우리의 지속적인 군사력 건설로 남북 간 재래식 군사력이 이미 역전되었다. 지금은 오히려 북한이 우리의 강력한 군사력을 걱정하고 있다. 북한이 9·19 남북군사합의에 서명한 것도 갈수록 격차가 벌어지는 재래식 군사력의 열세를 최소화해보겠다는 의도가 작용한 측면을 부정할 수 없다. 앞으로 남북 간 군사력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북한의 재래식 군사적 위협만 고려한다면 주한미군 의미는 과거와 다르다.


우리 스스로 북한의 재래식 군사력을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의 안정자라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역할은 여전히 중요하다. 최근 중국과 러시아의 전략폭격기 및 정찰기가 한반도 주변을 넘나든 것은 미국의 패권적 지위를 훼손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미국과 세력경쟁 차원에서 동맹국인 우리를 위협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비상식적인 주한미군 주둔비를 요구하기에 앞서, 우리 국민들이 미·중 패권경쟁의 와중에서 중국과 러시아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는 한국과 한국민의 입장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미국과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패권경쟁으로 인해 한반도 주변의 안보관계는 점차 악화되고 있다. 한국이 이를 감수하는 것은 강력한 한·미동맹이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변화하는 안보상황에도 불구하고 한국민들은 미국의 한반도 방위공약을 믿고 중국과 러시아의 압력을 견뎌내고 있다.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가 한국의 방위보다 미 본토 보호를 위한 것임은 모두 다 알고 있다. 미국의 방위를 위해 사드를 배치하면서 한국은 중국의 심각한 압력과 함께 피해를 당하고 있다. 미국은 사드 배치 이후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당하고 있는 군사적 위협과 경제적 피해를 못 본 척하면 안된다. 그런 한국에 아파트 방세보다 주둔비용을 쉽게 걷었다고 조롱하는 것은 자신을 위해 피해를 당하고 있는 동맹국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6조원 정도의 방위비를 매년 지불하게 되면 한국은 복지와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예산운용에 상당한 지장을 받게 될 것이다. 미국의 도가 지나친 주둔비용 요구에 한·미동맹 관계를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젊은 장교들의 볼멘소리를 모른 척해서도 안된다. 우리 군이 매년 6조원 정도의 방위비를 지속적으로 증액하면, 불과 몇년 후 우리 스스로 주변국의 군사적 위협에 상당부분 대응 가능한 능력을 확보할 수 있다. 주변국을 군사적으로 패배시킬 수는 없어도 감당할 수 없는 피해를 입힐 능력을 갖추는 것은 가능하다. 미국이 한국에 일방적인 손해만 요구하면, 한국도 선택할 수 있는 길이 그리 많지 않다.


지금 미국은 동맹국에 일방적인 경제적 부담을 강요하던 델로스동맹의 아테네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동맹을 무시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던 아테네가 어떤 처지에 직면했는지 보여주는 역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


<한설 예비역 육군준장·순천대 초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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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비드 스틸웰 미국 국무부 동아·태담당 차관보가 5일부터 사흘간 한국을 방문해 북한 비핵화와 한·미동맹, 한·일 갈등 해소 방안 등을 놓고 한국 외교당국과 협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양국의 관심이 각자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한국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의 시한이 3주도 채 남지 않은 만큼 한·일 갈등 해결을 위한 미국의 역할에 주목하고 있다. 반면 미국은 인도·태평양 전략과 한국의 신남방정책 간 접점 찾기에 적극적인 듯 보인다. 미 국무부가 지난달 24일 배포한 스틸웰 차관보 방한 보도자료에도 양대 의제로 ‘한·미동맹의 힘’과 ‘인도·태평양 전략과 신남방정책 간 협력’을 꼽았다. 양국은 지난 2일(현지시간) 태국 방콕에서 윤순구 외교부 차관보와 스틸웰 차관보가 만난 자리에서 에너지·인프라·디지털 경제·인적 역량 강화, 평화와 안전보장 등의 협력 동향을 망라한 ‘설명서’를 마련했다. 미 국무부는 이 설명자료를 배포하면서 ‘신남방정책과 인도·태평양 전략 간 협력에 대한 미국과 한국의 공동성명’이라는 제목을 붙여 무게를 실으려 했다. 


인도·태평양 전략은 중국 견제를 위해 트럼프 행정부가 역점을 두고 있는 동아시아 전략구상으로, 일본·호주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중국 포위전략’으로 비칠 수 있는 이 구상에 한국을 깊숙이 연계시키려는 미국의 의도가 엿보인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잡아야 하는 한국 외교의 기본 원칙을 감안한다면 인도·태평양 전략에 지나치게 쏠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6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간 조화로운 협력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조화로운 협력’에 미·중에 대한 한국의 적절한 균형유지가 포함돼 있음은 물론일 것이다. 외교당국의 지혜로운 대처를 당부한다.   


스틸웰 차관보는 지난달 26일 도쿄에서 “미국과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도 GSOMIA는 유익하다”면서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한 바 있다. 미국은 GSOMIA 종료가 일본의 부당한 수출규제에 대한 불가피한 대항수단이었음을 익히 알면서도 일본 편만 들어왔다. 가뜩이나 터무니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요구로 한국인들의 대미 감정이 나빠진 터에 그가 한국에 와서도 같은 주장을 되풀이한다면 한·미동맹에 도움이 안된다. 미국은 일본이 수출규제를 유지하는 한 한국 정부가 GSOMIA를 복원할 수는 없는 현실을 전제로 해법 마련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스틸웰의 방한이 한·일 갈등 해결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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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8일 북한의 금강산지구 남측 시설 철거 요구에 대해 금강산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남북이 일단 만나 북측이 요구하는 시설 철거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까지 함께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북한은 지난 25일 보낸 통지문에서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시설을 철거하라며 실무적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하자고 한 바 있다. 하지만 문서를 주고받는 형식으로는 금강산관광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실무회담을 역제의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관계의 모든 현안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금강산관광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일방적 조치는 국민 정서에 배치되고 남북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남북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측의 철거 요구를 대화의 기회로 활용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통일부가 창의적 해법과 관련해 “금강산지역이 관광지역으로서의 공간, 이산가족 만남의 장, 사회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를 종합 고려하겠다고 한 것은 관광재개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개별관광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남북현안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할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북측은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미국의 기류가 바뀌지 않는 한 남측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실무회담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쌓아온 불신의 벽을 허물 기회가 될 수도, 반대로 남북관계 장기 단절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북·미 협상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기를 기대했을 뿐 톱니바퀴가 역진할 상황에 대한 복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번 ‘금강산사태’는 ‘북·미 협상이 풀리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손 놓고 있어도 되는가’라는 난문을 던진 셈이 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지금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 차원이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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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동료 중 한 명이 그의 재임기간에 어쩌면 내전(civil war)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 가볍게 농담조로 넘겨 버렸다. 요즘은 그 설마가 현실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국내정치의 갈등이 심하다.


알려진 것처럼, 미 민주당 주도의 하원이 지난 9월 말 공식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를 시작했고, 이에 맞서 트럼프는 자신이 탄핵당하면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하원(House)의 과반수가 넘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트럼프 탄핵에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문제는 상원(Senate)인데, 최소 20명 정도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찬성해야 탄핵이 통과된다. 현재로선 난망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탄핵당하든, 그렇지 않든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지형은 극심한 갈등과 불안정성이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이런 미국 내 정치갈등은 북핵협상에도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는 트럼프가 국내정치 위기의 타개를 위해, 또 대선에 본인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북핵협상을 타결지으려 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나 김정은 본인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닐까 싶다. 누가 미래를 정확히 알겠는가. 다만 미국 국내정치에 초점을 맞춰 현 국면을 보자면, 결국은 ‘노딜’로 끝날 공산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 양극화 심화로 북핵 관련 초당적(bipartisan) 협력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90% 이상이 트럼프의 국정수행을 지지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5%도 채 안되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정치 양극화다. 탄핵정국에 접어들자 트럼프 열혈지지층과 열혈반대층이 더욱 뚜렷이 갈리고 있다. 다음 대선을 가를 주요 6개 주에서의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 또한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본격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 이 갈등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러니 북한의 입장에서도 트럼프의 탄핵이나 재선 여부와 상관없는 ‘지속 가능한’ 포괄적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이나 북·미 수교 등은 미 의회의 지지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가 이번 탄핵조사를 받게 된 건 미국 대선에 외국정부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입장에선 북한과 일시봉합식(interim deal) 협상결과라도 만들어내고 싶어 할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고, 만에 하나 내년 대선 국면에서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하게 될 경우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북한의 부분적 핵동결과 일부 경제제재 해제 등을 맞바꾸는 ‘스몰딜(small deal)’을 할 경우,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탈출 및 대선용으로 활용하려 든다는 공격에 직면해 더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트럼프가 모험을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그가 초당적 지지 없이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세 번째는 트럼프가 대북 협상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 온 핵심 추동력은 트럼프의 밀어붙이기식 성향이다. 오바마가 해결하지 못했던 북핵 문제를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유아독존식 성향이 아니고선 설명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불확실해질수록 그의 대북한 협상 추동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정치적 공백을 이용해 종래 한반도 관련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쥐어왔던 군사 및 정보 관련 조직들이 다시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적극 반대해 왔다. 물론 섣부른 보상에도 반대다. 이미 영변 이외의 추가 핵시설 및 SLBM 등의 추가 미사일 프로그램 등이 확인된 상황에서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부분타결을 하느니 아예 결렬을 선언하고 종래의 핵억지 봉쇄전략으로 나아가는 게 국가안보나 그들 조직의 이익에 더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를 택해서 얻을 이득이 불확실하면 언제나 현상유지를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들 조직의 생리는 더욱 그렇다.


결국 미 국내정치 상황상, 북핵협상은 결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외교나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영역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 전망이 보기 좋게 틀리기를 바란다. 다만 희망사항을 투사해 상황을 오판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냉철함이 더 요구되는 국면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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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남측 시설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면서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됐다면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금강산관광을 추진했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금강산이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아래 사진은 금강산관광 관련 남측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고성 온정리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지시는 한마디로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것이어서 충격과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고 한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에도 어긋난다. 북한은 평양공동선언 이후 남측에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해왔고, 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대가 없는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를 의식한 남측 정부가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금강산에서 남북협력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을 해온 셈이다.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봐온 김 위원장은 남한이 앞으로도 한·미 공조의 틀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굳힌 것 같다. 북·미 협상으로 비핵화가 진전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의 표출로도 보인다. 그러나 어떤 명분으로도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금강산관광 사업을 ‘남북관계 파탄의 상징’이 되도록 해선 안된다. 남북 합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에 거액을 투자했던 현대아산의 손실도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북측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정부는 남북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에 함몰돼 대북 제재의 예외항목인 관광사업을 재개할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설득력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는 선순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만 지나치게 북·미 협상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시설 철거를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한 만큼 대화의 계기는 일단 마련됐다. 하지만 북측의 연락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곤란하다. 선제적 대화 제의와 해법 제시 등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금강산의 문이 닫히는 걸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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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전에 남측 응원단과 취재진의 입북이 끝내 무산됐다. 통일부는 14일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차례 북측에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측의 응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상파 TV 3사도 북한과 협상을 벌였으나 중계권 확보에 실패했다. 이로써 1990년 10월 남북통일 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성사된 평양 남북축구 경기는 TV 중계도, 남측 응원단도 없이 치러지게 됐다. 선수단과 대한축구협회 임원, 코치진 등은 서해 직항로가 아닌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방북했다.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다고 비정치적인 스포츠 교류까지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한국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교류까지 중단시켰다. ‘하노이 결렬’로 북한이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에 의구심을 품게 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북·미 협상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등을 들어 대남 비난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 몇달간 미사일 발사시험을 되풀이해온 만큼 일방적으로 누굴 탓할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5월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이 확인된 뒤 정부가 방역협력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남한에서도 휴전선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ASF가 번지기 시작했다. 방역협력이 이뤄졌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남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위해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이 약속이 무색하다.


북한 당국에 묻고 싶다. 북·미관계가 풀리기 전까지 남북관계를 이처럼 계속 닫아놓을 것인가. 남북 화해·협력을 열망해온 남측 시민은 낙담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비정치적 분야의 남북 교류와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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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열린 북·미 실무협상마저 결렬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추진한 한·미 군사연습과 한반도 주변의 전쟁장비 반입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해 한·미 군사연습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문제 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당국이 한국과 미국에 불만을 갖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지난 7일 동해 대화퇴 해역부근에서는 북한 어선이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온 북한 어선이 단속을 거부하다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조선동해수역에서 정상적으로 항행하던 우리 어선을 침몰시키는 날강도적인 행위”라고 반박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EEZ(북한명 전속경제수역)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이익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화퇴 해역은 한·일 중간수역의 밖에 위치하며 일본이 자국의 EEZ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북한도 이 해역을 자국의 전속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대화퇴 해역에서는 지난 8월23일과 24일에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북한해군 깃발을 단 군함이 마주친 바 있다. 당시 북한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전속경제수역에 불법 침입했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선박들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쫓겨났다”고 밝혔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동북아지역에서 전면전쟁의 가능성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해상영토 침범과 EEZ 내 어로활동, 자원개발 등 회색지대(Grey Zone) 사태 발생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무력침공과 같은 정규전은 아니면서도 군함이나 전투기가 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방공식별구역(ADIZ)을 무단으로 항행·진입하거나 일본 해상보안청, 중국 해안경비대와 무장어선 등이 분쟁해역에서 무단활동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 사태가 일어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국들은 고의로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회색지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부르지만,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회색지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전면전에 대비한 군사력 확보에 주력하다 보니 최근 발생하는 회색지대 사태에는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북측에는 저강도 분쟁에 대비한 방위태세와 그에 걸맞은 적절한 재래식 군비가 필요하다.


북한은 회색지대 사태에 대한 대비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증강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이 주변국의 잠재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북한당국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 삼는 한·미 군사연습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는 2014년 10월 한·미 안보협의회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함에 따라 조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하기로 한 세 차례의 훈련 가운데 1단계인 초기운용능력(IOC) 평가를 2019년 8월11~20일에 실시하였다. 앞으로 2020년 완전운용능력(FOC)과 2021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더 실시한 뒤 빠르면 2021년 말~2022년 초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완료될 예정이다.


따라서 최소화된 형태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줄여나가고 북한이 한국군의 군비증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되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남북한이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상호 안보우려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비핵화 협상 중에 대북 군사공격 또는 공격위협을 금지하기로 약속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면 불가침 공약을 제공한다. 이러한 군사적 약속들을 하나로 묶어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법제화를 추진한다.


지난달 러시아 측이 북한 어선 3척을 나포한 데 이어 일본 순시선과 충돌해 북한 어선이 침몰한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당국이 주변국들과의 잠재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그동안 북한당국은 서해어장을 중국 어선에 내주고 동해 EEZ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방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시켜 하루빨리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회색지대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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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협상이 또 결렬된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의 일방주의적 비핵화 접근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비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협상이 결렬된 것은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출발점으로 단계적 합의를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북한과, 최종단계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 차는 한 차례 실무협상에서 좁혀질 만큼 간단치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 국무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 반면 북한은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며 ‘결렬선언’까지 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서도 미리 소개했다”는 미국의 설명을 감안하면 하노이 때보다는 미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경위야 어찌 됐건 북한의 결렬선언으로 협상이 다시 고비를 맞게 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연말로 비핵화 협상시한을 제시한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미 의회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추진이 돌발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날씨마저 험한 형국이다. 


물론 양측 모두 추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낙담은 이르다. 미국은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측의 초청을 수락했고, 북한에도 제안했다고 한다. 김명길 대사는 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외교협상에서 100% 완승은 있을 수 없고, 70년 적대관계를 단기간에 해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유념해야 한다. 7개월 교착 끝에 되살려낸 협상 모멘텀이 꺼지지 않도록 양측이 조속한 시일 내 협상을 속개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한다. 쌍방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면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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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일 강원도 원산 북동쪽 해상에서 동해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시험발사했다. 사거리는 450㎞로 비교적 짧았지만, 정점 고도가 910㎞로 높아 고각으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0㎞를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이 “용인할 수 있다”고 밝힌 단거리 미사일을 넘어서 준중거리 미사일에 해당한다. 북한이 북·미 대화를 재개한다고 발표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단거리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협상정신에 위배된다. 북한의 모험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미 계획된 시험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북·미 협상에서 체제의 안전보장을 최우선 의제로 삼기 위한 포석인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우선 이번 미사일은 단거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데다 종류가 SLBM이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폭격기 등과 더불어 전략핵무기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위협적인 무기체계이다. 북한은 2016년 8월 사거리 500㎞의 ‘북극성-1형’ SLBM을 시험발사한 바 있는데 이번 미사일은 그 개량형인 ‘북극성-3형’으로 추정된다. 사거리를 늘린 이 개량형 미사일을 북한이 지난 7월 개발 중이라며 일부 공개한 대형 잠수함에 탑재한다면 그 위협은 더욱 커진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웬만한 미군기지는 모두 공격할 수 있어 미국에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현재 북·미는 실무협상 재개에만 합의했을 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전날 “조미(북·미)가 4일 예비접촉을 한 뒤 5일 실무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데 비해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 협상을) 일주일 내에 할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이 미심쩍어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SLBM 발사와 같은 행위는 미국 내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협상의 판을 흔들 수도 있다. ‘하노이 실패’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협상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려 있어 북·미 협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가장 피해야 할 일이 오판이다. 모험적인 승부수가 모처럼 맞은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협상안을 다듬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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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일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로 끝난 지 7개월 만에 양측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비록 ‘실무’급 협상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자리가 될 것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을 좁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에 질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 순항시켜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을 섣불리 전망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접근방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왔다. 지난달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공감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선 비핵화’에 집착해온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동시적 접근법’을 ,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단계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교착 끝에 열리는 이번 실무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서막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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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가 몇 년 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 주도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례가 언제 있었나 싶다. 싱가포르(2018·6·12)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2019·2·27~28),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회동(2019·6·3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케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다 사이사이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은 서신은 북·미관계의 청신호들로 해석되기에 충분하고도 강력한 증거였다. 46년생 대 84년생이라는 연령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정치지도자가 어떤 동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을까?


첫째, 두 지도자는 비현실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국제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비틀어 보기로 작심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신념은 국제정치의 이단(異端)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국제정치 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현실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고 믿는, 좋게 해석하면 국제정치학 용어로 구성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 국제정치가 국가들이 간주관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아이디어, 규범, 가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게 구성주의의 골자다. 구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도 상호교류를 하면서 변한다고 인식한다. 이들의 눈에 국제체제의 구조는 관념적이다.


둘째, 두 지도자는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가 그릇된 고정관념들을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역사적 만남이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무사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국내 정치적 요소를 가볍게 여겼다. 특히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들만의 ‘외교문법’들을 무시하고 파격적 방식으로 협상에 나섰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도발적’이고 ‘전쟁게임’이라고까지 칭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비친 것들이 대표적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폭기가 한국까지 비행하는 것을 순전히 ‘돈’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트럼프를 목전에서 지켜본 김정은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주한미군 감군 또는 철수, 핵우산 철폐까지 트럼프가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문구를 성안시켜 1승을 거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온 김정은으로서는 모욕적인 회담 결과였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개최돼 영변비핵화와 연락사무소 맞교환 이상의 합의문을 작성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은 ‘선(先) 비핵화, 후(後) 국교정상화’를 고집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장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이라는 난기류를 만났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중동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는 트럼프 외교팀의 최우선 해결과제는 아니다. 둘째, 시간이 촉박하다. 이전의 실무회담 경험에도 불구, 추수감사절(11·28)과 내년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의제, 장소 등을 확정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발각돼 트럼프 자신이 내부 고발을 당한, 정치적 인화성이 높은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신임 안보보좌관은 냉전 종식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의 사도이자 수호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 회담이 사그라질 암운이 감돈다. 다시 긴장할 때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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