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부는 지난 1일 “국내 정세가 혼란스럽지만 주요 외교·안보 사안은 흔들림 없이 추진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박근혜 정부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 의혹에 따른 파문이 외교·안보 분야까지 확대되면서 한국의 대외정책 기조에 대한 불신이 커질 것을 의식한 발언이다. 외교부는 또 윤병세 장관 명의로 ‘우리의 외교·안보 태세와 경제상황에 대해 국제사회에 불필요한 우려가 확산되지 않도록 정부 주요 정책이 정상적으로 추진되고 있음을 적극 설명하라’는 내용의 전문을 재외공관에 발송했다.

 

‘흔들리지 않겠다’는 외교부의 다짐은 역설적으로 지금 흔들리고 있거나,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방증이다. 국정 기능이 마비되고 정치가 혼수상태에 빠졌는데 국내 정치와 표리의 관계인 외교가 제대로 작동할 리 없다. “그동안 외국과 현안을 협의할 때 정부로부터 받았던 훈령은 도대체 누구의 훈령이었는지 혼란스럽다”는 외교부 관계자의 말을 농담으로 치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순실 사태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외교·안보 분야에서 일어났던, 상식과 잘 부합하지 않는 모든 일들을 되돌아보게 만든다. 박 대통령의 대북정책 골격을 완성한 것으로 알려진 최대석 이화여대 교수가 정권 출범도 하기 전에 대통령직인수위원을 사퇴한 것을 시작으로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깜짝 인사’가 줄을 이었다. 외국 사절 접견, 정상회담, 각종 대외 연설에서 대통령의 발언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이례적 언급이 계속됐지만 누가 이 같은 발언요령을 청와대에 제공했는지 지금도 알 수가 없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턱없이 강경한 대일 자세를 고수하다가 하루아침에 대일 유화책으로 선회하더니, 결국 국민 정서를 완전히 배반하는 일본군 위안부 합의를 가져왔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내세우다가 뜬금없이 ‘통일 대박’을 외치고 “북핵 문제의 궁극적 해결은 통일”이라는 말로 모든 사람을 혼란스럽게 하기도 했다. 중국 전승절 기념일에 톈안먼 망루에 올라 열병식을 참관하는 깜짝 이벤트를 벌이고 곧이어 미국 펜타곤을 방문해 공고한 한·미동맹을 과시하는 오락가락 외교를 선보였다.

 

지난 3년8개월 동안 지인들로부터 ‘지금 대통령의 외교·안보 정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 누구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나 자신도 이게 가장 궁금했던 터라 수없이 많은 사람을 상대로 확인해봤지만 지금까지도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이 모든 사안에 최씨가 개입했다고 단정할 근거는 없다. 하지만 지금 최씨는 그동안 명쾌히 설명되지 않은 모든 의문의 배후인 것처럼 인식된다. 개성공단 폐쇄, 사드 배치, 국방부 무기 도입 등에도 최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만약 사실이 아니라면 청와대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마을에 불미스러운 일이 생기면 평소 행실이 나빴던 자가 의심받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최순실 사태로 인한 가장 큰 국가적 피해는 외교·안보 분야에서 발생할 수 있다. 이미 외교무대에서 한국의 발언은 존중을 받기 힘든 상태가 됐다. 기독교와 무속이 뒤섞인 정체불명의 주술적 종교가 최고 통치자의 눈을 가리고 정치권의 어두운 세력과 결탁해 국정을 좌지우지하면서 닥치는 대로 욕망을 채운 전근대적 사건이 벌어지는 ‘신정체제’ 국가와 정상적인 외교가 가능할 것이라고 믿을 나라는 없다. 한국이 진정으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와 신념을 공유하고 있는 나라인지도 확신하기 어려울 것이다.

 

한국의 외교 상대국들은 지금까지 있었던 한국과의 외교를 의심할 것이고 앞으로 벌어질 외교는 신뢰하지 않을 것이다. 당장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체결 논의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다. 일본과 미국은 이 협정을 연내에 마무리짓겠다고 나선 박근혜 정부의 결정을 반기면서도 “진짜 할 수 있겠느냐”며 의구심을 나타낸다.

 

지금 한국의 외교적 환경은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중국은 시진핑(習近平) 1인 지배체제를 선언하면서 대변혁을 예고하고 있고 일본의 우경화를 주도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장기집권의 틀을 마련했다. 북한은 핵능력을 비약적으로 키우면서 때를 기다리고 있다. 미국은 다음주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한다. 미국의 새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마지막 1년을 함께하게 된다.

 

미국의 새 행정부가 북한 문제를 포함한 아시아정책의 틀을 만들어 나갈 내년 1년은 동북아시아에 가장 역동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시기다. 한국에도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시기다. 한국은 이 결정적 순간을 ‘식물정부’와 함께 맞아야 한다. 운명이라면 지나치게 가혹한 운명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이 올해에만 2차례의 핵실험과 20회가 넘는 중장거리 미사일 발사실험을 감행하고 있는 것은 수십년간 매달려온 ‘핵무력 체계 완성’의 끝이 서서히 보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북한은 지금처럼 국제사회가 북한 문제에 손을 놓고 있는 기회를 활용해 핵무장으로 가는 마지막 고비를 넘으려 할 것이다. 적어도 미국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새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여하기 시작할 때까지는 북한의 핵 폭주를 막을 현실적 방법이 없어 보인다.

 

이대로라면 북한의 핵개발 저지를 위한 국제사회의 노력은 실패로 끝나게 된다. 박근혜 정부도 그토록 기다려왔던 북한 정권의 붕괴보다 핵무기와 투발수단을 모두 갖춘 ‘핵무장국 북한’의 출현을 먼저 보게 될 것이다. 북한의 ‘핵전력화’가 눈앞으로 다가온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국민의 안위를 걱정하는 정상적인 정부라면 무엇보다 먼저 군사적 충돌을 막는 일에 매달릴 것이다. 남북은 현재 모든 소통 채널이 끊긴 상태에서 험악한 말폭탄을 주고받고 있다. 사소하고 우발적인 충돌이 연쇄 상승작용을 일으켜 대규모 교전으로 확대될 위험성이 있다. 또한 미국은 한국에 대한 확장억제 제공을 재확인하며 선제타격 옵션을 테이블에서 치우지 않고 있다. 전쟁이 일어난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상태다. 핵과 핵이 부딪치는 상황은 재앙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따라서 지금으로서는 전쟁 방지를 위한 군사적 소통 채널과 통제 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가 느슨해지지 않도록 조이는 일도 중요하다. 북한의 최종적 목표는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는 것이다. 핵보유국 지위 인정 여부는 제재와 직결된 문제다. 핵을 갖고도 제재를 받지 않는 상태가 된다면 그것이 곧 핵보유국의 지위를 얻는 것이며 ‘핵·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이다. 따라서 국제사회가 제재를 포기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속적으로 관리하고 경각심을 갖게 하는 외교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고는 정상적인 국제사회의 일원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북한이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당장 북한을 아프게 하는 제재가 아니더라도 촘촘하게 빈틈을 막는 작업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

 

북한이 비핵화로 돌아오도록 유도하는 접근법도 포기해서는 안된다. 이를 위해서는 협상의 발판을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제재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좌우 한 짝씩 갖춰야 비로소 한 켤레의 신발이 되는 것처럼 제재와 협상은 함께 가야만 쓸모가 있다. 협상이 병행되지 않으면 제재의 정당성도 높이기 어렵다. 

 

군사적 충돌 방지 체제를 만들고, 제재를 넓고 촘촘하게 확대하고, 제재와 협상을 병행하는 이런 조치들은 사실 새로운 것도 획기적인 것도 아니다. 북한 핵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했던 방안이다. 지금 전 세계 전문가들이 내놓는 모든 북핵 해법 제언도 이 범주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말하고 있는 것을 한국 정부가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통령은 북한 주민에게 탈북을 권유하면서 북한 정권 자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뜻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고 외교부 장관은 북한을 국제사회에서 축출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군사적 긴장 완화는 고사하고 오히려 충돌을 부추기는 듯한 태도로 국민들을 불안하게 만든다. 출구를 열어놓지 않고 제재와 압박에 매달리는 것은 협상 재개가 아닌 북한 체제 붕괴를 목표로 하고 있는 것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 문제를 궁극적으로 해결하는 것은 통일이라고 여러 차례 언급했다. 하지만 이 말은 “북한 문제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북한을 붕괴시켜 북핵·인권 등 모든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하려는 것은 망상이다.

 

북한과의 협상은 엄청난 인내를 필요로 한다. 험난하고 까마득하게 먼 길을 한 발자국씩 옮기는 작업이다. 입만 열면 ‘무자비한 타격’ ‘잿더미’ 운운하는 새파랗게 젊은 독재자와 대화하는 것이 역겹다고 느끼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그 길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는 엄혹한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 체제 붕괴는 당장 일어날 수 있는 일이 아니며 전쟁은 공멸의 길이다.

 

‘악마와의 식사를 위해 긴 숟가락을 준비하라’는 영국 격언이 있다. 때로는 불가피하게 악마와도 마주 앉아 대화를 해야 할 때가 있다는 의미다. 국가의 미래와 국민의 안위를 위해서 하는 일인데 상대가 김정은이어서 대화를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일본 정부가 31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을 위해 설립된 ‘화해·치유재단’에 10억엔을 송금함에 따라 지난해 12월28일 한·일 정부 간 위안부 합의는 사실상 이행됐다. 앞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양국 정부 간 현안으로 불거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일본의 10억엔 송금 완료는 그동안 양국관계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현안이었던 위안부 피해자 문제가 공식적으로 종료됨을 의미한다. 1991년 8월14일 위안부 피해자였던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자신의 경험을 처음으로 공개 증언해 이 문제가 세상에 알려진 지 정확히 25년 만이다.

 

하지만 위안부 합의 이전과 이후를 비교해 봐도 일본은 달라진 게 없다. 일본은 위안부 문제가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으로 이미 해결된 사안이며 10억엔은 배상금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은 여전히 인정하지 않고 있고 법적 책임이 없다는 입장도 불변이다. 피해자들에 대한 진정한 사죄는커녕 미안한 기색도 없다. 지난해 위안부 문제 한·일 합의 직후 “잃은 것은 10억엔뿐”이라고 말했던 일본은 지금 “10억엔 송금으로 이제 일본이 해야 할 의무는 다했다”고 말한다. 일본은 앞으로도 여전히 위안부 문제에 대한 ‘망발’을 멈추지 않을 것이다.

 

반면 한국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합의에 따라 위안부 문제는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기 때문에 정부는 이에 관한 문제제기를 할 수 없다. 국제사회에서 위안부 문제로 일본을 비판하는 것도 자제해야 한다. 게다가 일본은 앞으로 틈만 나면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있는 ‘평화의 소녀상’을 이전하라고 한국 정부를 닦달할 것이다.

 

정부는 10억엔에 ‘배상금의 성격’이 포함된 것이라고 설명해왔다. 그렇다면 정부에 묻고 싶은 게 있다. 이제 정부는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배상의 의무를 다한 것으로 간주할 텐가. 2011년 헌법재판소가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노력하지 않고 있는 부작위(不作爲)는 위헌’이라고 결정한 효력도 이젠 소멸된 것으로 봐야 하는가.  외교부에 이에 대한 공식 답변을 요청한 지 열흘이 지났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을 스스로 인정하도록 만드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 해방 이후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에서부터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현대사를 지금 와서 모두 뒤집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 해도 일본이 합의문에 잉크도 마르기 전에 위안부 강제동원의 근거가 없다고 부정하고, 법적 배상 책임은 원래부터 없었다고 하고, 10억엔 줬으니 이젠 이 문제를 더 이상 꺼내지 말고 소녀상이나 치우라고 큰소리칠 수 있도록 면죄부를 준 합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다.

 

이제 남은 것은 화해·치유재단이 10억엔을 피해자들에게 나눠주는 일뿐이다. 정부는 이미 생존자에게 1억원, 사망자 유족들에게 2000만원 규모의 현금을 지급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위안부 피해자가 245명이며 이 중 생존자가 40명이니 이들에게 돈을 나눠주면 기금 대부분이 소진되고 재단은 조만간 문을 닫아야 한다.

 

결국 이 재단은 배상금의 성격을 희석시키기 위해 일본 정부 대신 피해자들에게 돈을 전달하는 창구 역할을 하고 사라지는 ‘떴다방 돈세탁 재단’이나 마찬가지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뀐 듯한 이 같은 어이없는 합의는 ‘박근혜 외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일 위안부 합의는 박근혜 외교의 철저한 실패가 낳은 부산물이다.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한·일관계를 전략적으로 다루지 않고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일본을 상대하지 않겠다는 식의 강경한 대일 자세를 보이며 스스로 퇴로를 차단했다.

 

하지만 미국이 일본을 앞세우고 한국을 동참시켜 중국을 견제하려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펴는 마당에 이 같은 대일 강경기조는 애초부터 오래 유지될 수 없는 자충수였다. 결국 궁지에 몰린 박 대통령은 일본의 요구가 모두 관철된 합의문에 동의해주고 위안부 문제에서 벗어났다. 그 부담은 고스란히 위안부 피해자와 국민들에게 돌아왔다.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한·일 정부 간 현안의 목록에서 지워졌다. 하지만 역사에서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위안부 문제와 같은 반인도주의적 범죄는 인류보편의 가치를 담은 국제인권법에 의해 다뤄지기 때문에 해당 정부 간 합의로 종료될 수 없다.

 

위안부 문제 해결은 진실을 규명하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사죄와 용서, 화해가 이어져야 비로소 종료됐다고 말할 수 있다. 정부는 그 작업을 포기했다. 25년 전에 그랬던 것처럼 다시 시민사회의 몫이 됐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지 않은 핵강국 인도를 국제적 핵통제 제도에 편입시키는 것은 핵비확산체제 강화에 도움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NPT 체제를 오히려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까. 요즘 국제 비확산계에서는 인도의 원자력공급그룹(NSG) 회원국 가입 문제를 놓고 논란이 일고 있다. 이 문제는 북핵 문제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한국에도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NSG는 핵 관련 물품·장비의 수출에 대한 모든 것을 규율하는 통제체제다. NPT 규약만으로는 핵확산을 막기 어렵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이를 보완하기 위해 1978년 미국과 캐나다 등이 주도해 NSG를 설립했다. 현재 한국을 포함한 48개국이 회원국이다.

 

NPT에 가입하지 않은 핵보유국 인도의 NSG 가입을 허용하는 것은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더욱이 1974년 인도의 핵실험이 NSG를 탄생시킨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아이러닉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지난달 20~24일 서울에서 열린 제26NSG 총회에서도 이 문제는 가장 뜨거운 이슈였다. 미국과 중국으로 대표되는 찬반 양론이 격돌하면서 결론을 내지 못했지만 논란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의 가입을 강력히 지지하는 미국의 논리는 현실론이다. NPT 장외에서 코끼리처럼 덩치 큰 핵보유국으로 남아 있는 인도를 그대로 두는 것은 위험하기 때문에 국제 비확산체제에 끌어들여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인도가 핵확산 전력이 없는 신뢰할 만한 모범국가라는 점을 강조한다. 반면 중국은 인도를 NSG에 받아들이면 다른 나라의 핵개발을 막을 명분이 없어지고 NPT 체제를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인도를 NSG에 가입시킬 경우 역시 NPT 비가입국이면서 사실상의핵보유국인 파키스탄 같은 나라도 동등하게 대우해줘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이들의 주장에는 전략적·정치적 계산이 깔려 있다. 미국은 인도의 원자력시장을 선점하고 인도와의 전략적 협력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지정학적 필요에 따라 움직인다. 중국은 이에 맞서기 위해 파키스탄을 끌어들여 미국을 견제하는 중이다.

 

논란의 시발점은 2005년 미국과 인도의 원자력협정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행정부는 NPT 비가입국과 핵거래를 하지 않는다는 기존 정책을 깨고 이 협정을 강행해 인도 시장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로 인해 핵통제 국제규범이 약화되고 남아시아의 긴장을 고조시킬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지만 미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핵기술 발전에 따라 원칙도 변해야 하며 NSG의 문호를 넓히는 것이 확산 방지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미국의 주장은 일리가 있다. NPT 비가입국이 NSG 회원국이 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합법적 핵보유국인 프랑스도 NPT보다 NSG에 먼저 가입한 전례가 있다. 하지만 인도의 예외를 인정하게 되면 파키스탄·이스라엘·북한에도 할 말이 생긴다. 인도를 받아들임으로써 NPT 체제에 균열이 생기고 세계 안보는 더욱 불안해질 수 있다는 중국의 주장에 명료하게 반박하는 것은 쉽지 않다. 특히 북한은 이번 사태를 예의주시할 것이다. 인도처럼 군수용과 민수용 핵시설을 구분하고 핵무기는 그대로 유지하면서 민간 분야 핵협력의 길을 열 수 있다면 그것이 곧 ·경제 병진노선의 성공이며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미국은 북한에 우리와 친해지려면 핵을 버려야 한다고 말하지만, 북한은 지금 벌어지고 있는 논란을 지켜보면서 미국과 친해지려면 핵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을 굳힐 것이다.

 

인도의 NSG 가입이 비확산체제에 도움이 되는지 여부를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렇다면 보다 근본적인 문제로 돌아가야 한다. 지금 이 문제로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미··인도·파키스탄 등은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을 비준하지 않음으로써 20년째 이 조약이 발효되지 못하고 있는 것에 책임이 있는 나라들이다. 핵확산 방지의 기초가 되어야 할 핵분열물질생산금지조약(FMCT)도 이들의 이해관계 싸움에 말려 20년이 넘도록 빛을 보지 못하고 있다.

 

NPT 체제가 지금까지 유지될 수 있었던 것은 이 체제가 공정하고 흠결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핵보유국이 권리를 인정받는 대신 핵실험금지·핵감축·비보유국의 안전 및 평화적 핵이용 보장 등을 약속했기 때문에 NPT 체제는 무기연장될 수 있었다. 하지만 핵강국들은 이 약속을 지키지 않고 있다. 이들이 진정으로 비확산체제 강화를 원한다면, 지금 인도의 NSG 가입 문제로 싸울 것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부과된 의무를 얼마나 성실히 이행하고 있는지 먼저 자문해 봐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부가 우리나라의 공적개발원조(ODA)와 관련된 사안을 설명할 때 빼놓지 않는 단어가 ‘원조선진국’이다. 한국이 2009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산하 개발원조위원회(DAC)의 24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하지만 한국이 원조선진국다운 ODA 정책을 갖고 있었던 적은 없다.

ODA는 빈곤국의 사회·경제 발전을 위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ODA는 제국주의 시절 서구 열강들이 식민지에서 더 많은 이익을 뽑아내려면 현지 개발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식하면서 시작됐다. 착취의 개념에서 출발한 것이다. 착취가 됐든, 교역이 됐든 상대국이 발전하고 규모가 커져야 이익이 많아진다는 것은 분명하기 때문에 식민지 독립 이후에도 개발원조는 필요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서유럽 재건을 위해 실시한 ‘마셜 플랜’은 현대적 개발협력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이 역시 공산주의 팽창을 막기 위한 전략적 정책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시간이 흐르면서 ODA는 달라졌다. 이제는 모두가 행복하게 잘 사는 세계를 만드는 것을 지향한다. 기술과 자본만을 제공하던 단계를 넘어 효율성과 자립, 교육, 거버넌스 등이 중요해졌다. 현대의 ODA는 빈곤퇴치, 평등, 인권, 인도주의 등 인류 공동번영 이상을 실현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2000년 유엔은 빈곤감소·보건·교육·환경 등의 분야에서 2015년까지 달성할 8개의 목표를 설정해 ‘새천년개발목표(MDGs)’로 채택했고, 지난해부터는 ‘지속가능한 발전목표(SDGs)’ 17가지를 제시했다. SDGs는 ‘누구도 뒤처지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세계가 함께 고민해야 할 도전과제와 이행방안을 담고 있다. 이젠 개발협력이 인류의 미래를 위한 세계 전체의 의무가 됐음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한국 ODA는 어떤 과정을 거쳤을까. 초창기 한국 ODA는 경제적 이득을 위한 것이었다. 무상원조가 아니라 장기 양허성 차관을 제공하는 유상원조가 절대적으로 많았고, ODA 사업도 한국 기업만이 수주할 수 있는 구속성 원조가 대부분이었다. 사업 발굴부터 시공까지 한국 기업이 맡았고 자재도 한국 것만 쓰도록 돼 있는 구조여서 해당국가에 제공한 차관은 고스란히 한국 기업의 주머니로 되돌아왔다. ODA는 재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을 위한 도구였던 셈이다. 반기문 외교장관이 유엔사무총장 선거에 나섰을 때는 각국의 표를 얻기 위해 선심성 ODA를 남발하기도 했다.

한국의 공적개발원조(ODA) 규뫼 및 GNI 대비 비율_경향DB

2009년 DAC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 ODA는 양적·질적 개선을 요구받게 됐다. 하지만 정부는 원조 선진국이 됐다는 홍보에만 열을 올렸을 뿐 ODA를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지 못했다. 이명박 정부는 ODA를 빈곤국이 아닌 자원 보유국에 집중 투입해 ‘자원외교’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한·미동맹 강화를 위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미국이 벌인 전쟁 뒤치다꺼리에도 ODA가 투입됐다.

이명박 정부는 DAC 가입 당시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고 구속성 원조를 25% 이하로, 무상원조 비율을 90% 이상으로 바꾸겠다고 약속했다. 이 계획의 이행을 전제로 가입 심사를 통과했으니 ‘원조 선진국’ 칭호는 사실상 가불받은 것이었다. 하지만 2016년 현재까지 그 약속은 지켜지지 않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ODA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최근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에 맞춰 내놓은 ‘코리아에이드’라는 원조 프로그램은 순방 효과를 포장하기 위해 급조한 ‘날림 공사’임이 한눈에 드러난다. 경제·사회·교육·환경이 균형적으로 통합된 지속가능한 미래를 목표로 전 세계가 고민하고 있는 마당에 의약품과 비빔밥을 싣고 다니면서 K팝 영상이나 틀어주는 게 새로운 개발협력 모델이라고 주장하니 할 말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ODA 정책에서 특히 심각한 것은 ‘새마을운동 세계화’다. 군사독재정부가 주도한 강제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 SDGs의 취지와 부합할 리도, 실행 가능할 리도 없다. 하지만 정부는 모든 빈곤국 농촌지원사업에 새마을운동이라는 이름을 붙인다. 사업 내용을 살펴보면 새마을운동과 아무 관련이 없다. 타당성 조사를 거쳐 해당국가의 형편에 맞도록 설계한 평범한 농촌개발 사업이다. 결국 새마을운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세탁해 미화·홍보하는 작업에 불과하다.

우리는 지금 ODA가 해외시장 개척과 대외정책의 수단으로 활용되는 단계를 넘어 대통령 개인과 가문의 치적을 포장하는 데 이용되는 ‘ODA 사유화’ 현상을 목도하고 있다. 이게 원조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요웨리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은 1986년 쿠데타로 집권해 32년째 대통령을 하고 있다. 철권통치자인 그를 국제사회에서 좋게 볼 리 없다. 지난 12일 5선 취임식에서는 그의 국제형사재판소(ICC) 비난 발언에 항의해 미국과 유럽 특사들이 중도 퇴장하기도 했다. 이달 말 아프리카 3개국 순방에 나서는 박근혜 대통령이 바로 이 무세베니와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그가 국제사회가 기피하는 독재자를 굳이 만나려는 속내는 ‘새마을운동’을 가장 성공적으로 해외에 전파한 대표적 사례로 꼽는 나라가 우간다이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한국형 개발원조(ODA) 모델로 적극 키우고 있는 새마을운동의 우수성을 홍보하고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 업적을 부각시키려 한다.

박 대통령은 새마을운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면 예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 9월 유엔개발정상회의에서는 새마을운동을 빈곤퇴치와 세계발전 패러다임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새마을운동은 농촌운동이기에 앞서 유신독재를 유지하기 위한 농촌 장악 수단이었다. 관(官) 주도의 강압적 국민동원형 의식개조 운동이자 전시행정의 표본으로 꼽힌다. 강력한 충격으로 단기간에 농촌을 변화시켰지만 지속가능하지 않은 정책이었다. 1970년대 급격한 이농(離農)·농촌 황폐화 현상이 이를 단적으로 입증한다. 살벌한 시절임에도 ‘함평 고구마 사건’과 같은 농민저항운동이 일어난 것만 봐도 새마을운동이 어땠는지 짐작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톨영과 무세베니 우간다 대통령이 29일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_강창광 기자

물론 우간다에서 통일벼가 아닌 일반미를 심었다고 면사무소 직원이 장화발로 논바닥을 뭉개거나, 갈퀴로 초가지붕을 강제로 뜯어내고 슬레이트를 얹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지금 빈곤국 새마을사업은 현대화된 농촌사업이다. 다만 그 이름을 새마을이라고 붙였을 뿐이다. 모든 ODA 사업에 ‘새마을’ 딱지를 붙여 새마을운동의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고 ‘박정희 브랜드’의 성공적인 농촌개발운동으로 포장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같은 맥락의 ‘박정희 우상화’ 작업이다.

박 대통령의 아프리카 순방으로 새마을운동이 다시 화제가 되는 것은 나쁘지 않다. 역사바로잡기 차원에서 새마을운동에 대한 재평가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북한이 지향하고 있는 ‘핵·경제 병진노선’은 이제 북한의 국가 브랜드가 됐다. 외국 언론들도 별다른 용어 설명 없이 ‘병진(Byungjin)’이라고 표기할 정도로 국제적으로 널리 알려진 고유명사다. 지난 6~9일 북한이 36년 만에 처음으로 개최한 제7차 조선노동당대회는 핵·경제 병진노선이 북한의 ‘국시(國是)’로 자리 잡았음을 보여주는 행사였다.

병진노선은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이 처음 제시한 개념은 아니다. 병진노선은 김 위원장이 통치 스타일을 벤치마킹하고 있는 조부 김일성 주석 시절의 정책이었다. 북한은 1962년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한 손에는 총을, 다른 한 손에는 낫과 망치를”이라는 구호와 함께 ‘경제건설과 국방건설 병진노선’을 제시했다.

북한이 1980년대까지 성공적인 공업국가의 길을 걸을 수 있었던 것은 군수산업과 중화학공업을 연계시킨 이 같은 병진 정책노선에 힘입은 것이었다.

북한이 병진노선을 다시 들고나온 것은 김정은 정권 출범 1년 뒤인 2013년 3월 역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전원회의를 통해서였다. 당시 북한은 전쟁 억지력을 포기했다가 침략을 초래한 발칸반도와 중동의 교훈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하면서 “경제와 핵무력 건설의 병진은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합법칙적 요구에 맞는 새로운 전략적 노선”이라고 소개했다.

북한은 병진노선 성공을 통해 과거 중국이 1970년대 ‘양탄일성(兩彈一星, 원자폭탄·수소폭탄·인공위성의 성공을 의미하는 말)’ 국가가 된 직후 미국과 대화를 시작해 국교수립까지 이어진 전례를 재현하고 싶어하는지도 모른다. 또 김일성 주석 시절 병진노선의 성공적 이행을 염두에 두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고 국제적 환경이 달라진 지금 과거와 같은 방식이 통하기는 어렵다.

핵없는사회를위한공동행동 소속 회원들이 26일 서울 광화문 원자력안전위원회 앞에서 열린 체르노빌 핵발전소 사고 30주년 기자회견에서 핵발전의 위험성과 탈핵을 주장하는 손피켓을 들고 있다._정지윤기자

병진노선의 성공은 북한이 핵보유국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지 여부에 달려 있다. 핵개발로 인해 강력한 국제적 제재를 받고 있는 북한이 대외무역을 늘리고 외자를 유치할 수는 없다. 따라서 핵과 경제성장을 동시에 이루는 것은 각국의 독자제재, 유엔결의를 통한 각종 제재가 모두 해제돼야 한다. 이는 곧 국제사회가 북한 핵을 용인하고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상황은 상상하기 어렵다. 북한은 인도나 파키스탄의 경우를 염두에 두고 있는지 모르지만 애초부터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 밖에 있었던 인도·파키스탄과 NPT에 가입했다가 탈퇴해 핵개발을 한 북한은 출발부터가 다르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자신들이 핵보유국임을 강조하면서 “책임 있는 핵보유국으로서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핵확산을 하지 않을 테니 핵보유국 지위를 예외적으로 인정해달라는 뜻이다.

하지만 북한이 아니라 그 어느 나라도 예외를 인정받을 수는 없다. 지금은 과거와 달리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으면서 하지 않고 있는 나라가 수십개국에 달한다. 핵비확산의 비중이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

만일 국제사회가 북한 핵문제를 용인한다면 다른 나라의 핵무장도 막을 수 없다. NPT 체제가 무너지고 세계는 핵무장국으로 가득 차게 된다. 북핵 문제는 북한만의 문제가 아니라 세계공멸이라는 위험한 폭탄으로 이어지는 도화선이다. 국제적 시각으로 보면 북한이 핵물질을 생산하고 핵실험을 통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핵확산 행위이기 때문에 “핵전파방지의무를 성실히 이행하겠다”는 북한의 주장은 성립되지 않는다.

북한은 이번 당대회에서 병진노선을 일시적 대응책이 아닌 항구적 전략노선으로 규정하고 당 규약에도 자신들이 핵보유국임을 명시했다. 앞으로 북한에서 비핵화를 언급하는 것은 반당분자가 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핵문제에 대한 퇴로를 스스로 차단해버린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북한이 병진노선을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예단하는 것도 옳은 태도는 아니다. 헌법과 당 규약에 핵보유국을 명시했다고 해서 핵포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고지도자가 마음만 먹으면 하루아침에도 바뀔 수 있는 ‘1인 영도체제’이기 때문이다.

병진노선에 국가의 명운을 건 북한의 무모한 시도는 실패가 자명해질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 기간에 가장 고통받는 것은 북한의 무고한 국민들이다. 국제사회는 북한이 병진노선을 포기할 수 있도록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는 작업을 멈춰서는 안된다. 또한 북한이 핵을 포기할 수 있는 안보환경을 조성하는 일에도 눈을 돌려야 한다.


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최근 파리 기후변화협정 서명식을 위해 뉴욕의 유엔본부를 방문했던 리수용 북한 외무상의 동선은 독특했다. 리 외무상은 평양에서 고려항공을 이용해 중국 베이징에 도착한 뒤 아랍에미리트연합 두바이로 날아가 뉴욕행 에미리트항공기를 타고 대서양을 건너 뉴욕에 도착했다. 돌아갈 때도 같은 코스를 되짚었다.

과거 북한 관리들은 미국을 방문할 때 베이징에서 태평양을 건너는 직항로를 택했다. 이번에 리 외무상이 이처럼 복잡한 경로로 뉴욕을 오간 것은 미국이나 중국 항공기를 타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 미국과 핵전쟁을 벌이겠다고 호언하는 북한 외교장관으로서 미국 국적기를 탈 수 없는 사정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중국 국적기도 굳이 타지 않으려는 그의 행보에서는 현재의 북·중관계가 어떤 상태인지 상징적으로 드러난다.

1949년 북·중 수교 당시 북한과 중국의 군 간부들은 ‘전우애’를 지닌 사이였다.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 북한과 중국은 혈맹의 우방이자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뜻)’의 관계를 유지했다. 하지만 냉전 종식으로 북·중 혈맹관계는 존립 근거를 잃었다. ‘중·조(북한)우호협력 및 상호원조조약’은 아직 유지되고 있지만 이 조약에 포함돼 있는 ‘유사시 자동 군사개입’ 조항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면서 북·중 지도부 간의 유대는 약해지고 혈맹의 의미는 퇴색하고 있다. 특히 시진핑(習近平)·김정은 시대의 북·중관계는 그 어느 때보다 덤덤하다. 추궈홍(邱國洪) 주한 중국대사는 지난해 “(북·중관계를) 정상적 국가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중국 정부의 목표”라고 공공연히 밝혔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원국 대표들이 대북 제재 결의안에 대해 찬성의견을 표시하고 있다._연합뉴스

중국은 북한과 외교적 경로를 통해 의견을 주고받는 관계가 되기를 원한다. ‘당 대 당’의 채널을 통해 은밀히 소통하거나 북한 지도자가 중국을 방문해 정상회담을 마치고 돌아갈 때까지 모르쇠로 일관하면서 북한의 편의를 봐주는 일은 앞으로 점차 사라질 것이다. 최근 중국의 북한식당에서 종업원들이 집단탈출해 한국으로 왔을 때 중국 외교부가 “이들은 유효한 신분증을 소지하고 합법적으로 출국했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것은 북한을 여타 국가와 똑같이 대우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중국은 북한의 4차 핵실험 이후 고강도 대북제재안을 담은 유엔안보리 결의 2270호에 동의하고 전면적인 이행을 천명했으며 실제로 착실하게 이행하고 있다. 이 역시 중국이 북한을 정상적인 국가의 관계로 취급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현재 북·중관계가 위기에 봉착한 것처럼 비치는 이유는 새로운 관계 설정을 원하는 중국과 전통적 관계를 기대하는 북한의 입장이 충돌하는 단계이기 때문이다.

이 같은 변화를 목도하면서 국내 일각에서는 중국이 남북 문제에서 한국을 지지할 것이라는 기대가 고개를 들고 있다. 하지만 북·중이 정상국가 관계가 된다고 해서 중국이 북한을 버리고 한국과 손을 잡거나 남북 문제에서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지는 않는다. ‘북·중 정상국가 관계론’은 북·중관계가 달라졌다는 데 방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이는 북·중관계가 정상국가의 관계로 변해가고 있는데 한·미, 미·일 관계는 여전히 시대에 뒤떨어진 군사동맹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가고 있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중국 외교부가 이례적으로 “한·미 군사동맹은 냉전시대의 유물”이라고 공개 비난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북핵 6자회담에서 양자 간 군사동맹에 의존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고 있는 동북아시아 안보질서를 해체하고 집단안보체제로 바꾸자고 약속해놓고 왜 거꾸로 가느냐는 질책이었다.

중국이 최근 ‘비핵화·평화협정 동시 논의 추진’을 제안한 것도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 오랜 시간이 걸리는 평화협정 논의를 시작해 한반도 문제를 현재 상황에 묶어두려는 것이 진짜 의도일 수 있다. 또한 중국이 말하는 한반도 평화체제는 통일로 가는 단계로서의 평화체제가 아니라 분단을 영구화하려는 현상 유지책일 가능성이 있다.

중국이 북한과의 관계를 재설정한다고 해도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사라지거나 중국이 생각하는 한반도 문제 해법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자신들만의 원칙과 시각을 갖고 있음을 감안하지 않고 ‘어려울 때 손을 잡아주는 것이 최상의 파트너’라는 식으로 중국을 이해하려는 것은 지나치게 도식적이고 단순한 인식이다. 북·중관계는 북·중관계이고, 한·중관계는 한·중관계일 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국가 간 외교관계를 나타내는 용어는 매우 다양하다. 단순히 국교를 맺은 사이는 우호·협력국 정도이다. 사인(私人) 간의 관계로 치면 ‘아는 사이’쯤 된다. 거기서 약간 더 나아가면 동반자 관계라는 표현을 쓴다. 친구 사이라는 의미다. ‘전략적’이라는 수식어가 들어가면 특정 사안에 이해관계가 일치하는 사이다. 지금 한·중, 한·러 관계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표현하는 것은 양자관계를 넘어 글로벌 현안까지 협력한다는 의미다. 이 정도면 국제관계에서는 최상의 표현이다. 그런데 이를 뛰어넘는 미사여구가 있다. 한·미, 한·일 관계를 지칭할 때 쓰는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말이다. 민주주의·시장경제·인권·법치 등의 가치를 공유한다는 뜻이다. 미국과는 안보·경제동맹을 넘어 가치동맹을 추구한다는 취지로 사용한다.

일본이 다음주 공개할 예정인 ‘외교청서’에서 올해에도 한국에 대해 “기본적 가치를 공유하는 이웃국가”라는 표현을 뺐다고 한다. 대신 한국을 “전략적 이익을 공유한 가장 중요한 이웃국가”라고 서술했다는 것이다. 양국관계가 조금 나빠졌다고 해서 한국과 더 이상 가치를 공유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일본의 경박함이 눈에 거슬리기는 하지만 화낼 일은 아니다. 가치를 공유하는 국가라는 말이 본래 취지와 다르게 남용된 지 이미 오래됐기 때문이다. 요새 이 표현은 한·미·일 공조를 강화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의도를 포장하는 말로 쓰인다. 민주주의·법치·인권에 약점이 있는 중국과 선을 그음으로써 아시아에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려는 미·일동맹의 틀 안으로 한국을 끌어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말로 변질된 것이다. 지난달 말 워싱턴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일 3국 정상회의를 열어 북핵·남중국해 문제 등에 대해 중국을 압박하는 모양새를 만들어 놓고 “3국은 가치와 비전을 공유하는 나라”라고 설명한 것이 단적인 예다.

동반자든, 전략적 관계든, 가치동맹이든 아무리 화려한 외교적 수사를 동원해도 국제관계에서 각국이 추구하는 궁극적 가치는 결국 ‘힘’과 ‘자국의 이익’일 뿐이다. 미·일과 가치를 공유한다는 것이 득이 되지도 않는다면 더 이상 집착할 이유도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의 4차 핵실험·장거리 로켓 발사로 가장 곤란한 상황에 빠진 나라는 중국이었다. 중국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강력한 대북 제재 결의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배경이기도 하다. 하지만 중국은 안보리 결의 채택 이후 국면에서 주도권을 쥐고 있다. 사실 중국은 잃은 것이 없다. 대북 제재의 실효성 여부는 중국이 하기에 달려있다. 역대 최강의 제재라는 커다란 채찍을 중국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북한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준 셈이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 이행을 명분으로 북·중관계 훼손을 최소화하면서 북한을 제재할 수 있다. 또 제재의 ‘완급 조절’을 통해 북한을 통제하고 미국도 움직일 수 있다.

정권 교체기를 맞고 있는 미국은 앞으로 최소 1년 동안은 정책적 변화를 주거나 북한 문제에 매달릴 수 없다. 미국이 중국에 운전석을 내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미국이 대책없이 중국에 주도권을 넘긴 것은 아니다. 미국은 중국의 일방적 독주를 막기 위한 카드를 갖고 있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의 한반도 배치, 중국이 직접 대상이 될 수 있는 ‘세컨더리보이콧’ 실행 등이 그것이다. 북한 문제는 이처럼 미·중의 전략적 이해관계의 틀 속에서 다뤄지고 있다. 미국이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서는 중국이 요구하는 ‘신형대국관계’를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은 지난 8일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중국은 안보리 결의를 전면적이고 완전하게 이행할 것”이라고 천명했다. 중국은 안보리 결의에 제재 방안뿐 아니라 한반도 평화와 안정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음을 강조한다. 따라서 중국의 ‘전면적이고 완전한 결의 이행’은 제재 강화와 함께 대화 재개를 위한 노력에도 적극 나서겠다는 의미다. 왕 부장이 북·중관계를 ‘정상적 국가 관계’라고 언급한 것도 한·미를 겨냥한 발언이다. 중국은 북한과 더 이상 ‘혈맹의 특수관계’를 유지하지 않고 있는데 한·미는 여전히 군사동맹 강화에 매달리는 냉전시대적 태도를 고집하면서 한반도 평화·안정·비핵화를 위한 노력에 역행하고 있다는 중국의 관점을 드러낸 것이다.

왕이 중국 외교부장이 8일 베이징 미디어센터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한반도 정세와 대북 제재안에 관한 입장을 말하고 있다._AP연합뉴스

아무리 혹독한 제재를 가한다고 해도 결국 최종적으로 문제를 푸는 것은 외교적 협상이다. 중국은 이제 자신들의 방식으로 한반도 문제를 풀기 위해 강력히 움직일 것이다. 중국은 이미 ‘비핵화와 평화협정 논의의 병행추진’이라는 실행 방안까지 마련해두고 있다. 한·미는 비핵화가 평화협정보다 우선이라는 공식적인 입장을 유지하고 있지만 앞으로 어떤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더라도 평화협정 문제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어렵다. 그동안 한국을 포함한 당사국들이 북핵 문제에 몰두하지 않은 탓에 이제는 북핵만을 떼어서 따로 논의할 수 있는 단계는 지나버렸다. 앞으로 비핵화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안보구조를 바꾸는 과정에서 하나의 구성요소로 다뤄지게 될 것이다. 그만큼 비핵화의 길은 험난해졌다.

평화협정은 60년 이상 지속돼온 한반도의 냉전구도를 해체하는 작업이다. 시작과 과정이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마지막 단계는 비핵화, 북·미관계 정상화, 평화협정 체결이 동시에 이뤄지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 전인미답의 길이며 정치·군사·경제·민족 등 중층적 요소를 동시에 다뤄나가야 하는 외교의 ‘종합예술’이다. 수순이 틀리거나 한 발만 잘못 내디뎌도 민족의 운명이 뒤바뀔 수 있는 위험천만한 길이기도 하다. 평화협정이 체결된다고 해도 평화를 유지할 수 있는 평화체제가 구축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체제는 남북관계와 주변 강대국의 정치·군사적 이해관계가 상호작용을 하면서 국제적·제도적으로 평화 상태를 보장받을 수 있어야 가능해진다. 특히 한국은 ‘분단을 영구화하는 평화체제’가 아니라 ‘통일을 지향하는 평화체제’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주변 강대국과도 입장이 다르다.

정부가 과연 이 같은 고도의 외교적 과제를 감당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드러난 박근혜 정부의 외교적 역량으로는 가능하지 않아 보인다. 이 정부는 지난 3년간 남북관계를 더 이상 손댈 수 없을 정도로 악화시켰고 미·중 균형외교에도 실패했다. 북한 핵실험 대응 과정에서 중국·러시아에 대한 외교적 자산을 모두 탕진했고 대일 외교에도 철저히 실패했으며 굴욕적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로 국격을 땅에 떨어뜨렸다. 손대는 외교 사안마다 ‘불가역적으로’ 망가뜨린 탓에 다음 정부는 이를 수습하는 데만도 벅찰 것이다.

박근혜 정부가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유지의 유일한 수단으로 남은 평화협정 문제까지 다루게 되는 것은 위험하다. 제발 이 문제만은 손대지 말고 다음 정부에 넘겼으면 한다. 천하의 이순신 장군이 다시 나타난다고 해도 배 12척은 남겨줘야 나라를 구할 수 있다.


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해 12월28일 한·일이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에 합의한 직후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박근혜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한 일본 법적 책임은 1965년 한일협정으로 이미 끝난 문제”라고 재확인했다. 의회에서는 위안부 문제는 국가 범죄가 아니라고 부인했고 유엔에 제출한 문서에는 위안부 강제연행 증거가 없다고 명시했다. 합의 이후에도 달라진 것은 없다. 그런데도 정부는 위안부 문제가 ‘최종적·불가역적으로’ 해결됐다고 스스로 종지부를 찍고 이것에 발목이 잡혀 할 말도 제대로 못한 채 일본의 눈치를 보고 있다. 반인도주의적 전쟁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에게 피해자가 이런 모습을 보이고 있으니 대체 뭐가 뭔지 정신이 혼미할 지경이다.

어떻게 이런 합의가 나올 수 있었는지 파악하려면 박근혜 정부 들어 한·일 관계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되짚어봐야 한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모든 것을 좌우하는 주제가 아니었다. 중요하고, 고통스럽고, 풀기 어려운 문제이긴 했지만 이 문제 때문에 한·일 관계가 중단될 위기에 처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취임 초기부터 위안부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한·일 정상회담도 없다는 초강경 대일외교 기조를 들고 나와 한·일 관계의 입구를 거대한 바위로 막아버렸다. 위안부 피해자들과 국민들이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일본 총리를 만나지 말라’고 요구한 것도 아니다. 박 대통령 스스로 위안부 문제를 한·일 관계의 최대 걸림돌로 만들어 버렸다.


2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하고있다._청와대사진기자단


아버지인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일 전력 논란을 차단하기 위해 일부러 일본에 강한 모습을 보이려 했거나, 국민감정에 영합하는 대일 강경책으로 국내정치적 효과를 기대했을 수 있다. 하지만 한·일 관계의 최대 난제인 위안부 문제의 해결을 외교의 전제 조건으로 내걸고,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정책으로 동북아 정세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초강경 대일 자세를 취한 것은 외교적 입지를 스스로 좁힌 심각한 자충수였다.

한·일 관계 경색이 지속됨으로써 생기는 외교적 부담은 날로 커져갔다. 특히 한·미·일 협력을 기본으로 하는 미국의 아시아정책이 펼쳐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대일 강경외교는 애초부터 오래 버틸 수 없는 구조였다. 결국 박 대통령은 위안부 문제의 덫에서 빠져나갈 탈출구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2014년 3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헤이그에서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를 한자리에 앉혀 한·미·일 정상회담을 마련한 이후 이 같은 움직임은 본격화됐다. 박 대통령은 이때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인정하고 위안부 문제 해결을 장기적 과제로 돌린 뒤 일본과 정상적인 외교를 시작했어야 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어떤 식으로든 자신이 저질러놓은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 정치적 곤경에서 빠져나오려 했다.

박 대통령의 대일 태도는 돌변했다. 지난해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 기념식에서 “과거사의 무거운 짐을 내려놓자”는 메시지를 내놓았다. 또 역사수정주의적 시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아베 담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결국 국교정상화 50주년인 2015년이 지나가기 사흘 전에 위안부 문제 합의가 발표됐다. 전쟁범죄 가해국과 피해국의 합의라고는 볼 수 없는 굴욕적인 합의에 국민적 비판이 터져나온 것은 당연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은 이 합의를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했던 일이라고 자화자찬했다. 국민적 비판에 대해서는 “정치공격의 빌미로 삼고 있다”고 호통을 쳤다. 그리곤 이 합의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절규하는 피해자들에게 ‘이게 최상의 결과이니 이제 남은 여생을 편하게 사시라’고 한다.

이 합의는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던 박 대통령이 결국 위안부 피해자들을 밟고 그 함정에서 빠져나온 만행이다. 또 위안부 문제를 해결한 것이 아니라 위안부 문제의 진실을 추후에도 규명하지 못하도록 땅속에 파묻어버린 행위다. 이 합의를 무효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지만, 지금까지 박 대통령이 보여준 모습을 감안하면 그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 어처구니없는 합의는 유지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정부가 바뀌면 뒤집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에 따른 엄청난 부담은 국민과 국가의 몫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야 대통령 잘못 뽑은 죄로감수해야 하겠지만 위안부 피해자들은 대체 무슨 죄인가. 지금이 아니라도 좋으니 박 대통령은 피해자들이 전부 돌아가시기 전에 진심으로 사과해야 한다. 그것이 이 굴욕적 합의에 대한 죄를 조금이라도 덜어내는 길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2011년 11월 호주 의회에서 ‘아시아 회귀(Pivot to Asia)’를 선언한 지 4년이 지났다. 이 정책은 미국 국내정치의 혼란으로 인한 몇 번의 개념적 조정을 거쳐 ‘아시아 재균형(Rebalancing)’이라는 이름으로 오바마 2기 행정부 대외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수전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13년 11월 조지타운 대학 강연에서 정리한 이 정책의 핵심적 내용은 유럽과 중동에 두었던 미국의 외교·군사적 중심축을 아시아로 옮겨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미국의 쇠퇴를 지연시킨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미 해군력의 60%를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배치하고 역내 동맹국과 우방에 안보 유지를 위한 역할을 넘겨주는 것이었다.

애초 시발점은 200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미국의 금융위기였다. 이를 계기로 중국은 패권국으로 발돋움하기 시작했고 냉전 종식 이후 30년 이상 유지됐던 미국 중심의 단극체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위기로 받아들였다. 미국은 아·태 지역에 군사력을 증강시키고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같은 수단을 동원해 중국을 견제하려 했다. 하지만 미국은 그럴 돈이 없었다. 당시 미 국무부의 한 관계자에게 “미국이 구상하는 아시아 정책의 기본 개념이 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는 “pay back(보답)”이라고 답했다. 과거 미국이 ‘돌봐주었던’ 일본과 한국에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군사·안보적 역할을 분담시키는 것으로 그간의 ‘투자금’을 ‘회수’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동북아시아는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의 잔재가 남아 있는 데다 역내 국가들은 19세기부터 시작된 식민주의 시대의 과거사도 청산하지 못한 사이이며 그로 인한 민족주의적 성향이 강하게 남아 있는 매우 독특한 지역이다. 동북아가 필요로 했던 것은 조화로운 질서 창출을 위해 노력하는 안정자이지 동맹관계를 이용해 경쟁과 대립을 촉발하는 갈등 유발자가 아니었다.


뉴욕 타임스퀘어의 ABC방송 전광판에 리먼브라더스의 파산 소식 자막이 보이고 있다_AP연합뉴스


미국의 아시아 정책은 협력을 요구하면서 실제로는 갈등을 심화시키는 구조적 모순도 안고 있다. 일본을 재무장시키면서 한국에 일본과 협력하라고 한 것은 한·일 갈등을 수면 위로 끌어올리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미국이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라는 무거운 돌로 짓눌러 놓았던 부실한 전후관리의 문제가 튀어나올 수도 있는 위험한 짓이었다. 더욱이 일본의 집단자위권 행사와 보통국가화는 평화헌법을 무력화하고 전후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일본의 극우보수가 원하는 방향이다. 미국이 이 같은 변화를 주도하면서 야스쿠니 참배나 극우세력의 역사수정주의를 비판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4년간 아시아에서는 안보환경이 안정되지도, 민주주의적 가치가 증대되지도 않았다. 역내 군사동맹 강화와 거대 자유무역협정을 통해 중국을 견제하려는 미국의 시도는 가뜩이나 혼란스러운 동북아 질서를 더욱 복잡하게 만들었다. 미·중의 대치는 지난 4년 동안 극도로 심화됐고 수면 위로 돌출된 미국의 두 동맹국 간의 갈등은 봉합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우경화로 치닫고 있는 일본은 집권여당 내에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을 처벌한 극동군사재판 등의 역사적 사실을 검증하기 위한 기구를 설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같은 동북아 상황이 미국이 원했던 그림은 아니었을 것이다. 문제는 이처럼 동북아를 휘저어 놓은 미국이 이슬람국가(IS) 출현과 미·러 갈등 등으로 더 이상 아시아에 집중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몰리고 있으며, 이 계획을 추진했던 오바마 행정부의 임기는 끝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큰 피해를 보는 나라는 한국이다. 애초부터 박근혜 정부의 최대 외교과제는 미·중의 각축 속에서 생존전략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미·중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전전긍긍하는 존재로 국제사회에 각인되어 가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동북아평화협력구상’에서 경제적 상호 의존도가 높아지는데도 정치·안보 면에서 갈등이 깊어지는 이른바 ‘아시아 패러독스’를 해소할 것을 주장했지만, 실제로는 자신들도 이를 실천하지 않았다. 한·중 무역규모가 전체의 25%를 넘어설 정도로 중국에 경제를 의존하고 있는 한국이 한·미·일 안보협력을 지향하는 것 자체가 아시아 패러독스를 심화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지금이라도 박근혜 정부가 이 상황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 하지만 박근혜 정부의 임기도 이미 반환점을 돌았다. 기존의 정책을 튜닝하는 정도는 가능하지만 새로운 정책을 추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다. 남은 기간에 뭔가 해주기를 기대해야 할지 새로운 정부가 들어서기를 기다리는 것이 현명한 것인지 판단이 잘 서질 않는다.


유신모 |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달 미 해군 구축함 라센호가 중국이 인공섬을 조성 중인 남중국해 난사 군도의 수비 환초 12해리 이내로 진입하는 무력 시위를 한 이후 미·중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아시아 중시 정책을 통해 본격적으로 중국의 팽창을 견제하고 나선 이래 이처럼 군사적 긴장이 높았던 적은 없다.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대치가 첨예화되면 아시아 각국은 곤혹스러운 처지에 놓이게 된다. 미·중의 강경한 언사는 아시아 각국에 ‘줄서기’를 강요하는 효과를 낳기 때문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내놓은 공식입장은 ‘외교적 해결’ ‘국제법 준수’ ‘남중국해당사국행동선언(DOC) 이행 및 행동규칙(COC) 체결’ 등이다. 내용 면에서 미국에 약간 기울고 있지만 중국을 직접 겨냥하지 않음으로써 표면적 중립을 지켜왔다.

하지만 최근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국제무대에서 중국의 카운터파트를 앞에 놓고 “남중국해의 항행과 상공 비행의 자유”를 공개적으로 언급함으로써 미국 쪽으로 한걸음 다가섰다. 지난달 오바마 대통령이 한·미 정상회담에서 “중국이 국제 규범을 지키지 않으면 한국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고 압박한 결과다. 중국도 ‘세 불리기’에 나서고 있다. 대만과의 정상회담을 거부해오던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임기를 7개월 남긴 마잉주(馬英九) 총통과 전격 정상회담을 하고 최근 아세안 국가들을 잇달아 국빈 방문하고 있는 것도 남중국해 문제를 의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남중국해의 영토 주권을 수호하기 위해 필요할 경우 군사적 조치를 취할 것임을 부인하지 않는다. 하지만 남중국해는 미국의 아시아·태평양 전략의 핵심이라는 점에서 미국도 포기할 수 없다. 여기서 물러서면 미국의 리더십은 결정적으로 타격을 입게 되고 미국의 아시아 전략은 물거품이 된다. 이 때문에 표면적으로는 남중국해에서 미·중의 군사적 충돌은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

하지만 미·중관계의 성격과 양측의 국내적 상황 등을 감안하면 그럴 가능성은 높지 않다. 지금 남중국해에서 벌어지는 미·중 갈등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국이 급부상하면서 형성된 미·중관계의 한 단면일 뿐 전체가 아니다.

미·중관계에는 경쟁과 협력의 요소가 공존한다. 지난 9월 미·중 정상회담에서도 양측은 양국 간에 갈등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협력을 통한 공동이익’이 훨씬 크다는 점을 확인했다.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현황_경향DB



국내 상황을 보더라도 미·중은 서로 충돌할 여력이 없다. 중국은 경제 문제 등 시급한 국내적 현안을 안고 있고 미국은 대선을 앞두고 있다. 중국이 남중국해에서 무리한 방법으로 주변국들을 긴장시키고 미국의 개입 명분을 강화시키는 행동을 할 가능성도 높지 않다. 중국은 1980년대 이후 물리력을 동원해 영토분쟁 지역을 강제 점령한 적이 없다. 중국도 이제는 자신들의 ‘국제적 지위’를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나라가 됐기 때문이다.

또한 중국은 2차대전 이후 형성된 국제질서하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나라이기도 하다. 따라서 중국은 현재의 국제질서를 뒤바꾸려는 시도를 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중국이 원하는 것은 미국과 일전을 벌여 패권을 뺏어오는 것이 아니라 ‘점진적인 현상 변경’이다. 현재의 구도에서 중국의 위상에 걸맞은 지분 확대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남중국해 갈등의 본질은 군사적 힘겨루기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미·중은 결국 충돌을 피하고 적절한 선에서 타협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한국이 지금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해야 할 사안이 아니다. 향후 어떤 타협이 이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선명한 입장 표명을 하는 위험을 택할 필요가 없다.

영토 분쟁에서 제3자가 분명하게 어느 한편을 지지하지 않는 것은 국제적으로 보편적인 현상이다. 미국이 독도 문제에 입장 표명을 하지 않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처럼 한국이 남중국해 문제에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전혀 이상하지 않다. 더욱이 남중국해처럼 수많은 당사국의 이해관계가 얽혀 있고 분쟁성격이 복잡한 사안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기존의 입장만으로는 버티기 어려워 새로운 ‘레퍼토리’를 내놓아야 할 처지라면 어느 한쪽의 입장으로 다가서는 것을 피하고 이 문제가 한국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만 언급하는 것이 적절하다. 남중국해 분쟁은 한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에 커다란 해를 끼칠 것이라는 점을 경고하고 대화를 통한 해결에 역할을 담당할 의지가 있음을 피력하는 정도로 그치는 것이 현명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로마가 멸망한 이유에 대해 “로마는 주변의 바바리안들도 로마인처럼 생각하고 로마인처럼 행동할 것으로 잘못 판단했다”고 했던 어느 역사학자의 말은 항상 북한을 연상시킨다. 지난 세월 서방이 북한의 행동을 예측하는데 지속적으로 실패해왔던 이유가 여기에 있기 때문이다. 지구상에서 가장 폐쇄적인 국가인 북한을 우리 기준의 상식과 보편성에 기초해 판단하는 것이 맞을 리 없다. 어쩌면 북한이 그동안 보여왔던 예상 밖의 행동들은 실상 북한이 의도적으로 허를 찌른 것이 아니라 북한의 실제 상황을 모르는 우리가 북한의 행동을 잘못 예측한 경우가 많았을 것이다.

북한이 노동당 창건 70주년을 계기로 장거리 로켓을 발사하지 않은 것은 상식적인 결정이라는 점에서 의외다. 북한도 현재 상황에서는 로켓을 쏘지 않는 것이 합리적이라는 우리의 판단과 같은 결정을 내린 것이다. 북한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마치 커다란 양보를 한 것처럼 보이는 ‘착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이 의외성 때문이다.

북한이 ‘예상 밖의 상식적 결정’을 하게 된 배경에는 그동안 북한의 행동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해 온 중국의 영향력이 있었다. 김정은 정권 출범 이후 줄곧 북한에 냉랭했던 중국은 이번 행사를 계기로 북·중 관계 개선에 시동을 걸었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자신의 친서와 함께 권력서열 5위의 인사를 평양에 보냈다. 북한이 이를 받아들이고 도발적 대외 메시지를 자제한 것은 중국과의 관계 개선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 탓일 가능성이 크다. 결과적으로 중국은 자신들만이 갖고 있는 ‘독점적 대북 지위’를 활용해 북한의 로켓 발사를 막았다.

이로써 2013년 북한의 3차 핵실험, 장성택 처형 등으로 차갑게 식었던 북·중 관계는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그동안 한번도 악수를 하지 않았던 시진핑-김정은 체제의 북·중 관계가 뒤늦게 출발점에 선 셈이다. 하지만 새롭게 펼쳐질 ‘북·중 관계 시즌2’가 2013년 이전의 후진타오(胡錦濤)-김정일 시대의 북·중 관계와 같을 수는 없다. 북·중이 각자 다른 길을 걸었던 지난 2년간 동북아시아와 한반도 주변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북한 영변 핵시설_연합뉴스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을 명시한 이후 줄곧 핵·경제 병진노선을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병진노선은 처음부터 면밀히 계획된 방향이 아니라 20년간의 북핵 협상이 겉돈 결과로 선택의 여지가 없이 남겨진 정책이다. 북한으로서는 대외관계와 경제 문제 개선이 절실하긴 하지만 3번의 핵실험으로 어느 정도 확보된 핵 억지력을 포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지 않고 있기 때문에 두가지를 모두 추구할 수밖에 없다.

중국은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 정책에 심한 압박을 느끼고 있다. 미·중 관계는 협력보다는 대결적 구도가 더욱 선명해졌다. 일본은 이 같은 미·중 관계에 편승해 안보법제를 제·개정하고 군사적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북한 문제가 미·일의 대중국 압력 증가와 한·미 동맹의 군사적 기능 강화의 명분으로 활용되고 있음을 중국도 분명히 인식하고 있다.

이번 열병식에서 북·중은 우호적 메시지를 주고받았지만 껄끄러운 핵 문제는 정면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문제를 둘러싼 기싸움이 물밑에서 진행되고 있음이 느껴진다. 중국은 완곡한 어법으로 6자회담 재개와 비핵화의 필요성을 언급했으나 김정은은 ‘인민생활 개선을 위한 여건 조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며 핵포기 불가를 분명히 했다. 북한은 앞으로도 핵과 북·중 관계를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고수할 것이다.

향후 북·중 관계는 이 같은 양측의 입장 차이를 어떻게 다뤄 나가느냐에 따라 좌우될 것이다. 그 결과에 따라 한반도 정세도 큰 변화를 맞게 된다. 중국이 북한을 비핵화의 길로 유도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설지, 북한 핵문제를 적당히 관리하면서 북한을 미·일에 맞서기 위한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려 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중국이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북한이 갖고 있는 ‘합리적’ 안보 우려를 해소시켜야 한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는 것이다. 중국이 앞으로 주도할 비핵화 해법이 한·미의 그것과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미국은 연일 북한 문제에 대한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강조하며 중국에 ‘기대 반 우려 반’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현재 한·중이 사상 최고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호언한 청와대도 초조할 수밖에 없다. 한·미가 밤잠을 설치는 나날은 ‘북·중 관계 시즌2’가 본격적으로 개막될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것이다.


유신모 |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헨리 키신저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국가들이 모두 모여 북핵 문제 하나를 풀지 못한다면 그것은 외교가 아니다”라고 말한 적이 있다. 실제로 한·미는 그동안 북한체제에 곧 한계가 올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진지한 북핵 외교를 하지 못했다. 한 방에 해결될 것 같은 생각이 자꾸 드는데 험난하고 까마득한 협상의 길을 걸어갈 의욕이 생길 리 없다.

북한 붕괴에 대한 기대는 뿌리가 깊다. 1980년대 말 노태우 정부가 추진한 ‘북방외교’는 탈냉전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점에서 탁월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중국·소련과 수교하면서 북한이 미국과 수교하는 것은 한사코 막았다. 동구권 공산국가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지던 시절이어서 북한도 곧 무너질 것이라는 확신에 가까운 기대가 있었기 때문이다.

북한의 탈출구는 핵무장이었다. 1990년대 초반 북핵 문제가 불거진 뒤 미국은 우여곡절 끝에 북한과 협상을 벌였고 1994년 10월 북한의 핵포기 대가로 경수로 2기를 지어주는 것을 골자로 한 제네바 합의가 만들어졌다.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사찰을 받아들이되, 그 시기는 경수로 건설이 ‘상당히’ 진척돼 ‘핵심 부품을 북한에 인도할 때’로 정했다. 미국은 10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가장 중요하고 이행하기 어려운 핵심 사안을 10년 정도 뒤로 미뤄놓은 이유는 그 사이에 북한이 붕괴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었다.

네오콘이 장악했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북핵 협상에 나선 것은 의외였지만 근본적 해결책을 추구한 것은 아니었다. 임기 말 ‘외교적 업적 쌓기’가 목적이어서 어려운 문제는 모두 뒤로 돌리고 쉬운 것부터 해결하는 단계적 접근법을 택했다. 쉬운 것부터 해결하다 보면 언젠가 북한 내부에서 변화가 일어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2009년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2차 핵실험으로 제 갈 길을 가버리자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김정일이 있는 한 협상은 안된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 그리곤 건강이 안 좋은 김정일의 수명을 예측하며 기다리기 전략을 택했다. 2011년 북한과 고위급 접촉을 시작해 2·29 합의를 만들어내긴 했지만 목적은 현상 유지였다. 천안함·연평도 사건으로 한반도 전쟁위기가 고조되자 일단 북한과 협상을 시작해 도발과 핵능력 진전을 막고 내부 변화를 기대해보겠다는 것이었다. 당시 미국은 이를 ‘북한을 상자에 가둬놓기 위한 전략(Boxing North Korea)’이라고 불렀다.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후 1년 _경향DB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자 미국은 북한의 변화에 기대를 걸었다. 하지만 북한은 정권의 안정에 매달리면서 2·29 합의 파기, 미사일 발사, 3차 핵실험 등을 감행해 미국의 기대를 저버렸다.

김정은 정권 출범 1년 만에 미국은 “북한의 젊은 지도자에게 실망했다”(힐러리 클린턴 국무장관)는 말을 남기고 핵협상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북한 체제에 이상이 생기기를 기다리며 보낸 세월이 벌써 20년을 넘었지만 ‘북한 붕괴’에 대한 기대는 지금도 여전하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북한 핵 문제의 가장 빠른 해법은 한반도 통일”이라고 말했다. 통일을 어떻게 이룰지 비전이나 전략을 제시한 적이 없으니 이 말은 북한 붕괴로 통일이 이뤄지면 북핵 문제가 저절로 풀린다는 의미로밖에 해석할 수 없다.

언론에 보도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4월 낸시 펠로시 미 하원 민주당 대표가 청와대를 방문했을 때도 박 대통령은 “북핵·북한인권 등 여러 복잡한 문제들을 풀어내는 해결책은 결국 한반도의 통일이라고 믿는다”고 말한 적이 있다. 통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 실언이 아니라 평소 지론임을 보여준다.

언제일지 모를 통일을 바라보며 북핵 문제를 방치하는 것은 무모하다. 박 대통령은 지금 통일이 아닌 북핵에 매달려야 한다. 다음달 한·미 정상회담에서 의욕이 없는 미국을 설득해 진지한 논의를 시작해야 한다.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사실상 마지막 기회다. 내년에는 미국이 대선 국면으로 접어들고 이듬해 새정부가 출범하면 한국이 대선 국면을 맞는다. 의미있는 한·미 정상회담이 다시 열리려면 2018년에나 가능하다. 그때쯤이면 박 대통령의 기대대로 통일이 돼 있거나, 핵탄두 소형화와 장거리미사일 프로그램이 모두 완료된 북한을 마주하고 있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14일 밝힌 전후 70년 담화에는 역사 수정주의적 시각과 어정쩡한 반성이 뒤섞여 있다. 읽는 사람의 정치적·이념적 필요에 따라 입맛에 맞는 부분을 부각시키기에 편리한 구조다. 실제로 대부분의 세계 언론이 아베 담화를 비판했지만, 미국이나 필리핀처럼 정치적 의도를 갖고 아베 담화를 해석하려는 몇몇 국가들은 “환영한다”고 했다.

담화의 속내를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담화는 과거사에 대한 반성과 사죄에 대해 “지속적으로 나타내왔다”며 과거형으로 표현했다. 이 문장이 “전쟁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우리의 다음 세대에게 사죄의 숙명을 안겨주어서는 안된다”와 연결되면 ‘앞으로 사죄는 안하겠다’는 의미가 된다.

일제 식민지배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한국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고 위안부 문제는 전쟁의 비극 중 하나로 스치듯 언급하는 데 그쳤다. 대신 ‘과거보다 미래가 중요하다’는 메시지를 강조해 국제여론을 호도하려는 의도를 담았다. 특히 한반도 식민지배의 발판이 됐던 러일전쟁에 대해 “많은 아시아와 아프리카인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평가한 대목은 혹시 오타가 아니었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아연할 따름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4일 도쿄 총리 관저에서 ‘전후 70년 담화’를 발표하기 전 일장기 앞에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_AP연합뉴스



아베 담화는 국내외적 압력을 회피하는 수단으로 반성·사죄 같은 단어를 맥락 없이 섞어 놓았을 뿐 본질은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식민지 제국주의를 구가했던 과거에 대한 예찬이며 조선의 식민지배는 합법이라는 인식의 연장선상이다. 더 이상 과거에 대한 사과는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하지만 정부는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담화의 한 대목을 집어내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한·일 관계 개선 기조를 유지할 것임을 밝혔다.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한·일 관계를 어떻게 가져가야 할지 고민하는 정부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베 담화를 걷어차고 양국 관계를 결딴내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는 점에도 동의한다. 지금 상황에서는 국익을 위해 장기적 안목으로 한발 물러서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그 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박근혜 정부가 처음부터 다툴 것은 다투고 협력할 것은 협력하는 당당하고 실용적인 자세로 일본과 정상적인 외교를 했더라면 이처럼 한국을 무시하는 담화 앞에 궁색한 입장을 취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아베 담화의 위험한 역사인식을 얼마든지 준엄하게 지적하고 경고하면서도 미래의 협력을 논할 수 있었다. 싫든 좋든 일본을 피할 수 없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초기부터 일본이 태도변화를 보이지 않으면 상대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공식화함으로써 곤란을 자초했다.

그러다 보니 일본과 어쩔 수 없이 외교를 해야 하는 상황이 닥치면 항상 핑계와 명분이 필요했다. 지난해 3월 미국의 강권으로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한·미·일 정상회담을 할 때는 일본과 국장급 협의를 정례화하기로 했다는 점을 과대선전하면서 “그간 우리의 원칙에 입각한 외교적 노력의 성과”라고 포장했다. 국제정세 변화로 한·일 관계개선이 불가피해지고 비정상적인 한·일 관계에 대해 국제적으로 따가운 시선이 쏟아지자 정부는 지난 6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대일외교 기 변화를 보이기 시작했다. 하지만 일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꿀 만한 대외적 명분이 없었다. 결국 박 대통령은 국교정상화 기념식을 앞두고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 해결이 막바지 단계에 와 있다”고 허세를 부렸다.

박근혜 정부의 대일 외교는 철저히 실패했다. 이제 일본은 한국을 염두에 두지 않을 것이다. 한국 정도는 제치고 가도 좋다는 오만함이 이미 아베 담화에 배어있다.

이번에 일본은 한국을 한·미·일의 틀 속에 얼마든지 가둘 수 있고 중국을 끌어들이면 한국은 어쩔 수 없이 따라올 것이라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한국을 완전히 제압했다고 생각하는 아베가 앞으로 위안부 문제에 성의를 보일 까닭도 없어 보인다.

국민들은 이번 광복절에 망언에 가까운 일본 총리의 담화를 들어야 했다. 또 그 흉측한 담화에 ‘발가락 하나라도 예쁘게 생긴 구석은 없는지’ 샅샅이 뒤지고 진심인지 아닌지 모를 구절을 하나 찾아내 거기에 과도하게 긍정적인 의미를 부여하면서 한·일 관계 개선의 명분으로 삼기에 급급한 정부의 모습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봤다.

대한민국의 광복 70주년이 이래도 되나. 박근혜 정부의 무능한 대일외교가 빚어낸 참사 앞에 할 말이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5일 세계유산위원회에서 일본이 메이지 산업혁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이 시설에서 조선인 징용자와 전쟁포로들의 강제노동이 있었다는 사실을 인정한 것은 본의가 아니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세계유산 등재가 불가능한 상황에 몰리자 어쩔 수 없이 한국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등재 작업을 주도한 가토 교코(加藤康子) 내각관방참여가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이 세계유산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일본이 허용하고만 것이 분하다”고 말한 것에서 이번 사안에 대한 일본 정부의 시각이 잘 드러난다.

지난 3월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가 이 시설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도록 세계유산위원회에 권고하는 결정을 내렸을 때만 해도 일본은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자신했다. 한국의 반발 정도는 국제사회에서의 영향력을 앞세워 뭉개고 갈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일본의 계획은 뜻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일본이 자신의 안방이나 다름없는 유네스코의 산하 기관에서 오랫동안 치밀하고 야심차게 준비해온 ‘역사 세탁 작업’을 성공시키지 못한 것은 이를 저지하려는 한국의 외교적 힘이 강해서가 아니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의 주장이 확고한 ‘도덕적 우위’를 갖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아무리 일본의 영향력이 강하다고 해도 조선인 징용자와

반도인도망방지철조망신축"…조선인강제노동문서_연합뉴스

전쟁포로들이 노예 노동을 강요받았다는 명백한 인권유린을 외면하고 일본을 지지할 수 있는 문명국가는 없었다.


일본은 결국 메이지 산업시설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하는 대가로 강제노동을 인정해야 했다. 이 문제로 인해 일제의 강제노동 사실이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지기 시작하자 재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덮어버리는 것이 좋다는 판단을 한 것이다.

일본은 정부대표인 사토 구니(佐藤地) 주유네스코 대사가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명백하게 강제노동을 인정했음에도 국내적으로 “그런 사실이 없다”고 부인하고 있다.

그리고 사토 대사의 해당 발언이 일본 외무성의 공식자료에는 한 줄도 나오지 않도록 감춰버렸다.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은 한술 더 떠서 “조선인 징용은 강제노동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점을 대외적으로 적극 설명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일본은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다. 국제사회에서 그런 궤변이 통할 리도 없고 오히려 강제노동 사실을 국제사회에 더욱 널리 알리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는 것은 일본이 더 잘 안다. 지금 일본의 강경 자세는 “한국의 훼방을 허용해버렸다”며 아베 정부를 비난하고 있는 보수세력의 분노를 달래기 위한 정치적 레토릭에 불과하다.

이번 세계유산 등재 과정에서 드러난 것처럼 한·일 간의 과거사 문제는 궁극적으로 일본이 이기기 어려운 싸움이다. 인류보편적인 가치에 비춰 한국의 주장이 도덕적으로 훨씬 우월하기 때문이다. 과거 제국주의 시절 강대국들이 여전히 국제사회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에 식민지배에 따른 과거사 문제에 국제사회가 그리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또 한·일 양자 간의 문제에는 잘 개입하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제노동이나 일본군 위안부 등의 인권 문제는 누구도 외면하기 어렵다.

따라서 일본과의 과거사 문제에서 한국이 지향해야 할 첫번째 원칙은 도덕적 우위를 유지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 지금 한·일 간의 최대 현안인 위안부 문제도 전혀 그럴 생각이 없는 일본에 책임을 인정하라고 다그치기보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제사회에서 지속적으로 일본의 지위와 위신이 깎이고 이로 인해 커다란 불이익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일본이 인식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일본의 도발과 궤변에 자극받아 감정적으로 대응하거나 민족주의적 정서에 기반을 둬 과도하게 주관적인 주장을 하는 것은 일본에 ‘물타기’를 허용하는 빌미를 제공할 수 있다. 자칫 한국이 갖고 있는 도덕적 우위를 상실하고 국제사회에 양쪽 모두에게 잘못이 있다는 인식을 줄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사회에서는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일본산 수산물 수입 규제, 쓰시마 불상 반환 금지 조치,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박근혜 대통령 명예훼손 재판 등의 문제에 대해 국제사회가 어떤 시각을 갖고 있는지 냉정하게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을 계기로 한·일 관계를 회복하려는 시도가 시작된 것은 분명 긍정적 변화다. 그런데 새로운 한·일 관계의 미래를 그리기에 앞서 드는 생각은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어찌할 것인가’이다. 실제로 양국 정상은 미래를 말하면서도 현재 한·일 관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사안인 위안부 문제에 대해서는 말을 아끼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2일 워싱턴포스트 인터뷰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일 양국 간에 의미 있는 진전이 이뤄졌고 협의가 마지막 단계에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솔직히 잘 믿기지 않는다. 대통령의 언행을 신뢰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위안부 문제 합의가 과연 가능할지 의문이 들 정도로 이 문제가 난관에 봉착해 있기 때문이다.

위안부 문제는 단순한 외교적 사안이 아니라 1965년 한일청구권협정과 깊이 연관된 법적 성격을 가진 사안이다. 한국은 일본 정부가 위안부 강제동원에 개입한 만큼 법적인 책임을 지고 그에 따른 조치를 피해자들에게 취할 것을 원한다. 일본은 1993년 고노 담화를 통해 강제성이 있었음을 공식 인정했지만 ‘위안부 문제에 대한 법적 책임은 한일청구권협정에 의해 해결됐다’는 입장은 한번도 바꾼 적이 없다. 법적 책임과 배상을 인정하는 것은 한일청구권협정의 근간을 흔들고 전후 질서를 바꾸는 것이라 판단하기 때문이다.

한국이 처음부터 일본에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배상을 하라고 요구한 것은 아니다. 2005년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사할린 동포·원폭 피해자 문제는 청구권협정에 포함되지 않았기 때문에 일본 정부의 법적 책임이 남아 있다’는 공식입장을 정리했을 때도 일본에 이를 인정하고 배상하라는 요구는 하지 않았다.

하지만 2006년 위안부 피해자들이 헌법재판소에 한국 정부를 상대로 위헌소송을 제기하면서 새로운 국면이 전개됐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정부가 위안부 문제를 청구권협정에 따라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고 있으며 이는 피해자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이 판결로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와 위안부 문제의 법적 책임 존재 여부를 놓고 정면으로 충돌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나눔의 집에서 생활하는 강일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 국제소송과 한일수교 50년에 대한 입장발표 기자회견도중 생각에 잠겨 있다. (출처 : 경향DB)


일본이 법적 책임을 인정하고 특별법을 만들어 피해자들에게 배상과 사죄를 하면 가장 좋겠으나 그간 일본의 태도와 국내 분위기를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위안부 동원에 강제성과 국가의 개입이 있었음을 재확인하도록 하는 것은 가능할지 몰라도 법적인 책임이 남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도록 할 방법은 없어 보인다. 법적 책임 부분을 한국이 양보하고 일본이 기금을 조성해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이미 헌법재판소의 판결이 있기 때문에 청구권협정으로 일본의 법적 책임이 해결됐다는 것을 전제로 한 해법에 한국 정부가 동의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청구권협정 3조에 의거해 중재위원회를 여는 방법이 있지만 양측 모두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이 방법은 상정하지 않고 있다.

어쩔 텐가. 위안부 문제는 이처럼 빼도 박도 못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박 대통령이 말한 ‘위안부 문제 협상의 마지막 단계’는 어떤 방안의 어떤 단계를 지칭하는 것인가. 애초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정상회담이나 한·일 관계 새 출발을 할 수 없다는 대통령의 선언은 잘못된 것이었다. 위안부 문제는 한·일 관계의 입구에 갖다놓을 선결 과제가 아니라 다른 분야의 진전과 함께 관계 개선이 이뤄진 결과로 해결되어야 하는 장기적 과제였다.

정부는 지금 위안부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는 듯하다. 위안부 해결이 정상회담의 전제조건이 아니라는 유흥수 주일 대사의 최근 발언이나 정부의 ‘분리대응론’이 이를 말해준다. 한·일 관계가 지금 사상 최악의 상태에 빠지게 된 책임을 어느 일방에게만 묻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하지만 정부가 한·일 관계의 안정적 관리에 실패하고 현실적이지 않은 강경일변도 대응으로 임기 초반의 중요한 시간을 허송한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부의 위안부 접근법이 이 같은 결과를 초래할 것임을 알고 있으면서도 침묵한 외교 관료, 전문가, 언론은 모두 공범이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TAG 위안부

댓글을 달아 주세요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상당 기간 여론조사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국정운영 분야는 독특하게도 외교·남북관계였다. 하지만 지금 박근혜 정부가 외교를 잘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다. 오히려 외교에 실패했다고 아우성이다. 이 같은 인식이 퍼지게 된 이유가 몇가지 있다. 최근 ‘미·일 신밀월 시대’ 분위기, 미·일 방위협력지침(가이드라인) 개정, 그리고 중·일 간 화해 움직임 등이다. 한국만 제자리걸음을 하면서 외교 고립을 자초하고 위기를 맞았다는 비판의 근거다.

한국 외교가 고립됐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위기라는 지적에는 동의한다. 그런데 미·일 동맹 격상으로 한·미 동맹이 위축되고, 일본 자위대의 행동반경이 넓어져 한반도가 일본의 군사적 영향권 안에 들어가고, 중·일 화해로 한국의 입지가 축소돼 한국 외교가 위기를 맞은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미·일 동맹 강화는 한국과 무관하게 양국 간 이해관계가 일치한 결과이며 미·일 가이드라인이 개정됐다 해도 일본의 군사력이 한반도를 넘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또 중·일 화해 무드는 동북아시아의 긴장을 완화시켜 주기 때문에 한국에도 좋은 일이다.

한국 외교는 남들이 하는 것을 따라 하지 못해서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해서 위기다. 주변 정세가 변할 때마다 한국은 관성적으로 한·미 동맹을 챙긴다. 이번에도 예외가 아니다. 미·일 가이드라인 개정 이후 정부가 가장 먼저 내놓은 것도 ‘한·미 동맹은 이상 없다’고 강조하는 것이었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지난 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에 출석해 “미·일 동맹은 여전히 동맹의 완성도 측면에서 한·미 동맹과 격차가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어페어스에 기고문을 보내 “한·미 동맹은 아·태 지역 평화와 안정의 핵심이며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2012년 미국이 이른바 ‘아시아 재균형정책’을 본격화하면서 동북아에 격변이 예상되던 시기에도 한국은 가장 먼저 한·미 동맹에 매달렸다. 당시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은 “한·미 동맹은 앞으로 어려운 결정을 수반하게 되겠지만 이는 동맹의 진전에 따르는 당연한 비용”이라며 “우리는 이를 기꺼이 지불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 발언은 한·미 동맹에 틈이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미국의 중국 봉쇄에도 앞장서고 과거사 반성 없는 일본과 군사협력도 강화할 수 있다는 자기암시적 예언으로 들린다.

그토록 애달캐달 한·미 동맹에 매달렸건만 대가는 허망하다. 한국은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다가서면서 천문학적 규모의 무기구입을 강요받는다. 또 ‘한·미·일 안보협력’이라는 명분에 밀려 한국을 무시하는 일본과 억지로 손을 잡아야 한다. 한·미 동맹은 미·일 동맹의 하부구조로 편입돼 중국 견제의 첨병이 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정부는 여전히 미·일 동맹과 경쟁하듯 한·미 동맹 강화를 내세운다. 한국 내 보수층들은 “한국이 중국에 무시당하지 않으려면 미국과 더욱 밀착해야 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다. 주로 냉전시대 미국에서 정치학을 공부한 학자들이 그러하다. 미국의 핵우산 아래로 들어가고,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고, 전쟁을 할 수 있는 권리마저도 미국에 주어버렸는데 한·미 동맹의 어디에 더 강화할 것이 있는지, 얼마나 더 밀착을 해야 안심할 수 있는지 궁금할 뿐이다.

서울 용산구 국방부 앞에서 열린 한·미·일 정보공유 약정 폐기 촉구 집회에서 한 참가자가 아스팔트 바닥에 스프레이를 뿌려 ‘한미일 군사동맹 반대’ 문구를 새기고 있다. _ 연합뉴스


동북아 문제에서 미·일은 이해가 일치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정책의 틀에서 보면 한국과 미·일의 입장 차이는 선명해진다. 북한 핵문제에서도 한·미의 인식 차이는 크다. 북핵은 한국에 사활적 문제이지만, 미국에는 아직 지역적 문제일 뿐이다. 미국은 이미 핵을 가진 북한보다 핵을 가질 가능성이 있는 이란을 더 위협적으로 생각한다.

북핵 문제는 미국이 동북아에 군사력을 투사하거나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한·미·일을 한데 묶고 미사일방어 체계와 같은 군사적 기능을 강화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을 뿐이다. 미국은 자국의 안보를 위협하는 요인에 대해 ‘전략적으로 인내’하는 나라가 절대 아니다. 진정 미국이 북핵을 최대 안보 위협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이대로 방치하지 않고 뭔가를 했을 것이다.

한·미 동맹은 지금 이 수준으로 충분하다. 정부는 한·미 동맹을 어떻게 더 강화할 것인지 골몰할 게 아니라 동북아·북한 문제에서 독자적 영역을 개척하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 또한 동북아 안보 균형이 국가 간 군사동맹에 의지해 아슬아슬하게 유지되던 시대는 이미 지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새로운 안보질서 구축에 눈을 돌려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

다자외교 협상에서 모든 나라가 만족하는 합의문을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의장국은 통상 모두가 불만을 가질 만한 합의문 초안을 제시한다. 특정국이 반색할 내용을 담은 초안은 다른 나라가 반대하기 때문에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모든 나라가 ‘이걸로는 부족하다’는 반응을 보이는 초안이어야 비로소 논의의 기초가 된다. 다자외교 합의문이 대부분 흐리멍덩하게 나오게 되는 이유다.

4년6개월의 협상 끝에 지난 23일 한·미가 가서명한 새로운 한·미 원자력협정은 다자외교 합의문과 비슷하다. 뚜렷한 방향성이 없는 대신 원자력협정에 대해 제각각의 목소리를 내던 국내 산업계·원자력계·정치권·언론의 주장을 모두 담을 수 있도록 틀을 넓혔다.

사실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은 순서가 잘못됐다. 협상에 앞서 국내 원자력 정책의 방향이 먼저 정해졌어야 했다. 하지만 정부 협상팀은 한국의 원자력 정책이 향후 어떤 방향으로 갈지 모르는 상태에서 협상을 시작해야 했다.

협상 초기부터 원자력계는 사용후 핵연료의 재처리(재활용)를 위한 파이로프로세싱(건식재처리) 도입이 꼭 필요하다고 주장했고 시민단체와 일부 전문가들은 이를 ‘원자력 마피아의 밥그릇 지키기’라고 비난했다. 때마침 후쿠시마 원전사고가 터지면서 국내에서도 원전 의존도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반면 현실적으로 원전 이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반론도 높아졌다. 포화상태의 사용후 핵연료를 어떻게 처리할지를 두고도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언론과 정치권은 ‘핵주권’을 들먹이며 농축·재처리 권리를 주장했다.

결국 정부 협상팀은 향후 어떤 원자력 정책이 추진되더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넓은 틀의 협정을 만들 수밖에 없었다. 개정 협정은 농축·재처리를 하지 않는 것으로 돼 있다. 그러면서도 재처리의 일종인 파이로프로세싱의 전단계는 자유롭게 시행할 수 있도록 하고 미래의 농축 가능성도 열어 놓았다. 농축·재처리를 하겠다는 것인지 안 하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또 사용후 핵연료를 중간저장하거나 영구처분할 경우에 각각 대비하고 해외 위탁 재처리 가능성도 살려놓았다. 내용이 모호하고 너무 포괄적이어서 협정문만 봐서는 한국의 원자력 정책 방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을 정도다. 하지만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점 때문인지 이의제기를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22일 서울 외교부 청사에서 한미원자력협정에 가서명을 하고 브리핑을 하고 있다. 한미원자력협정은 4년 6개월여간의 협상 끝에 22일 타결됐다. (출처 : 경향DB)


지나간 협상 과정을 돌이켜 보면 그동안 원자력협정을 둘러싸고 국내에서 벌어졌던 논쟁이 얼마나 소모적이었는지 알 수 있다. 사실 이번 협상 결과는 농축·재처리 권리 확보를 주장하는 국내적 요구가 극에 달했던 2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 포장을 점잖게 하긴 했지만 한국이 농축·재처리를 하지 못하는(또는 안 하는) 본질적 구조에는 변함이 없다.

개정협정으로 한국이 수행할 수 있게 된 파이로프로세싱의 전단계(전해·환원 공정)는 재처리를 위한 사전 단계일 뿐 재처리는 아니다. 또 정부는 미래에 농축을 할 수 있는 길을 터놓았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그 길이 갈 수 없는 길이라는 사실은 누구나 다 안다. 결국 농축·재처리는 미국의 동의 없이는 불가능하다. 달라진 것이 없는데도 2년 전 농축·재처리를 확보하지 못하면 마치 나라가 망할 것처럼 목소리를 높이던 언론과 정치권은 이번 협상 결과에는 별 말이 없다. 이럴 거면 2년 전에는 왜 반대했는지 알 수가 없다.

환영 일색의 원자력계 반응도 의아스럽다. 전해·환원 과정은 파이로프로세싱을 하지 않을 것이라면 의미가 없는 공정이다. 또 미국은 앞으로도 한국에 파이로프로세싱을 허용하지 않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한국은 끝이 막혀 있는 길을 가는 셈이다. 그럼에도 원자력계가 이를 환영하는 걸 보면 연구·개발(R&D)의 방향이 맞든 틀리든 막대한 연구비만 보장받을 수 있으면 된다는 생각을 하는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한국 원자력 산업의 시급한 문제들은 대부분 국내적 결정 사안이어서 한·미 원자력협정으로 모두 해결할 수는 없다. ‘사용후 핵연료 포화’ 문제는 저장 시설을 확보하고 사용후 핵연료 처리 방식을 정책으로 확정해야 풀린다. 또 원전 의존도를 계속 높일 것인지, 장기적으로 줄여나가는 방안을 추진할 것인지 정해야 한다.

또한 만천하에 드러난 원자력계의 비리와 부정을 바로잡아야 하고 원자력 관련 지식과 정보를 독점한 채 자신들의 이권 확보에만 골몰하는 ‘원자력 마피아’와 ‘전문가 카르텔’을 해체해야 한다. 한·미 원자력협정은 타결됐지만 한국 원자력이 가야 할 길은 아직 멀다.


유신모 외교전문 기자

Posted by 경향 신문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