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 판도가 민주당 조 바이든 후보의 우세로 바뀌자 국내에서 ‘전략적 인내’라는 단어가 다시 등장했다. 민주당이 집권하면 미국이 허송세월하면서 북한의 핵개발을 방치한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대북정책이 되살아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 같은 인식은 트럼프가 승리해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재개될 수 있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오바마는 정말 북한에 관심이 없었을까. 재임 시절 그의 대북 행보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오바마는 2009년 1월 취임 직후 북한과 직접 접촉을 모색했다. 그러나 북한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북한은 4월5일 오바마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설파하던 날을 골라 장거리미사일을 발사했다. 그리고 한 달 뒤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취임 첫 행보부터 북한에 모욕을 당한 오바마에게 국내적 비난이 쏟아졌다. 그럼에도 오바마는 그해 12월 특사를 평양에 보내 6자회담 복귀를 설득했다.

 

북한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았다. 이듬해 3월 천안함 사건이 발생했다. 북한은 그해 11월 원심분리기를 공개해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버린 뒤 곧바로 연평도 포격 사건을 일으켰다. 대북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오바마는 비공개 접촉을 시도했다. 언론은 물론 의회에도 자세히 알려주지 않을 정도로 보안에 신경을 썼다. 결국 오바마는 2011년 8월 김계관 북한 외무성 부상을 뉴욕으로 불러 북·미 고위급회담을 시작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두 차례 추가 회담을 거쳐 만들어진 것이 ‘2·29 합의’다. 이 합의는 북한이 죽었다고 선언한 6자회담과 9·19 공동성명을 되살리고 비핵화 목표를 재확인한 의미 있는 성과였다. 북한은 또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미사일 발사, 우라늄 농축 등 핵활동을 중단하기로 했다. 2·29 합의는 북한과의 합의에 반드시 포함되어야 할 모든 요소가 갖춰진 전범(典範)이었다.

 

하지만 2·29 합의는 북한이 그해 4월 태양절을 맞아 위성 발사를 감행하면서 깨졌다. 북한은 위성 발사가 평화적 우주 개발의 권리라고 강변했지만, 2·29 합의에 들어 있는 미사일 발사 중단 약속에 위성 발사도 포함된다는 사실은 북한 스스로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합의를 깨고 위성 발사를 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해 많은 전문가는 권좌에 오른 지 석 달밖에 안 된 김정은의 불안한 권력적 위상과 관련이 있을 것으로 분석하고 있다. 

 

2·29 합의 파기로 얼마 남지도 않은 미국 내 대화론자들은 ‘멸종’했고 오바마는 정치적 위기에 몰렸다. 글린 데이비스 협상대표는 언론의 눈을 피하려 한동안 국무부 뒷문으로 다녔다. 그 와중에도 오바마는 백악관팀을 극비 방북시켜 대화 복원을 시도하다 공화당의 비난을 받았다. 오바마 2기도 다르지 않았다. 오바마가 재선에 성공하자 북한은 장거리미사일을 쐈고 2기 행정부 출범 직후에는 3차 핵실험을 했다. 이어 2013년 3월 핵·경제 병진노선 채택, 4월 원자로 재가동으로 내달렸다. 

 

오바마 재임 시절은 북한이 김정일 말기~김정은 초기에 걸쳐 위기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시기다. 북한은 그 위기를 핵능력 완성으로 돌파하려 했다. 북한은 일단 핵을 손에 넣은 뒤 뒷일을 감당하겠다고 작정하고 ‘만패불청’의 태도로 핵·미사일 개발에 매달렸을 것이다.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 들어서도 2번의 핵실험과 무수한 미사일 발사를 거듭하다 2017년 11월 화성-15형 발사 성공과 함께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면서 폭주를 멈췄다. 그리고 곧바로 남북, 북·미 대화에 나섰다. 오바마 시절 대화가 없었던 것은 오바마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다. 또한 대화 국면이 열린 것은 트럼프가 잘했기 때문이 아니다. 모든 것은 북한의 시간표에 따른 것일 뿐이다.

 

바이든이 승리해도 대화 기조는 유지될 것이다. 그러나 접근법은 지금과는 다를 것이다. 민주당은 대북협상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 집단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은 트럼프처럼 정치적 과시를 위해 이행도 하지 못할 합의문에 도장을 찍고 이후에는 드러누워버리는 무책임한 협상을 하지는 않을 것이다.

 

민주당은 다자적 접근, 동맹국과의 조율을 통한 정책을 선호한다. 하지만 민주당의 대외정책은 매우 현실적이기 때문에 달라진 북한의 핵능력을 감안한 정책을 펼 수도 있다. 따라서 바이든이 이긴다면, 한국은 지금보다 훨씬 정교하고 전략적인 대북정책이 필요하다. 그렇지 않으면 미국과의 공조는 물론 한반도 미래가 걸린 북핵 협상에서 국익을 지키기는 것이 어려워질 수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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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항하던 남북관계가 군사적 충돌을 우려해야 할 정도로 급변했다. 정부와 여당 일각에서 ‘한·미 워킹그룹’이 남북관계를 파탄에 이르게 한 원인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미국이 워킹그룹을 통해 남북 협력사업에 사사건건 개입해 제동을 걸고 남북사업을 방해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워킹그룹은 남북관계의 족쇄’라는 인식은 현재 한반도 정세에 대한 정확한 판단이 아니다.

 

워킹그룹은 대북제재를 포함한 북한 문제 전반을 다루기 위해 2018년 11월에 만들어진 한·미 간 논의의 틀이다. 미국이 지금까지 가만히 있다가 워킹그룹이 생기고 나서 갑자기 한반도 문제에 개입하기 시작한 것은 아니다. 미국은 북핵 문제가 발생한 이래 지속적으로 한국과 이 문제를 논의하면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왔다. 이 같은 논의 방식이 지난해 11월부터 워킹그룹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뿐이다. 만약 워킹그룹이 없었다면 미국은 다른 방식으로 남북관계와 한반도 문제에 개입했을 것이다. 따라서 워킹그룹을 해체한다고 해도 미국의 개입이 없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이 남북관계에 개입할 수 있는 근거는 북핵이다. 북핵은 남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동북아시아 안보와 비확산체제를 흔드는 국제적 사안이다. 특히 북한이 미국을 타격할 수 있는 미사일 능력을 입증한 이후 북핵은 미국의 직접적인 안보 위협이 됐다. 북핵은 이제 미국의 안보 문제이기도 하다.

 

남북관계는 남북이 주도해야 한다는 한국의 인식과 남북관계 진전 과정에서 대북제재의 효과를 반감시키고 북·미 핵협상에 장애가 될 정도의 인센티브가 북한에 주어져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입장이 충돌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2007년 8월 노무현 정부가 남북정상회담을 갖는다고 발표했을 때도 미국의 첫 반응은 지금의 입장과 다르지 않았다. 미국이 “남북관계 진전 노력을 지지하며, 이 같은 노력이 비핵화에 긍정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하는 것은 “남북대화는 반대하지 않지만 북한의 비핵화 의지를 약화시킬 정도의 인센티브는 곤란하다”는 의미다.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의 충돌적 요소를 조화시켜서 한 방향으로 진전을 이루는 것은 한국 외교의 숙명적 과제가 된 지 오래다.

 

남북 국정 우선순위 차이가 원인
북한에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남북’보다 ‘미국과의 핵담판’
정교한 한·미 공동 전략으로
북·미 대화 재개를 유인해야

 

남북관계가 풀리지 않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의 성의가 부족했기 때문도 아니고 북한이 남측의 태도에 실망했기 때문도 아니다. 남과 북이 상정하고 있는 최우선 국정과제가 서로 다르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순위는 남북이 서로 평화를 유지하면서 교류하고 협력하는 단계까지 관계를 진전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북한에 가장 시급한 것은 남북관계 진전이 아니라 ‘미국과의 핵담판을 통해 위협을 제거하고 제재를 풀어 정상국가가 되는 것’이다. 따라서 미국과의 북핵 협상이 잘 진행되지 않는 상태에서 남북문제가 북한의 눈에 들어올 리 없다. 북·미 대화가 끊긴 이후 남북관계가 경색된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북관계, 비핵화, 북·미 관계는 서로 꼬리를 물고 얽혀있는 톱니바퀴와도 같다. 그리고 북한이 지금과 같은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남북관계를 움직여 비핵화와 북·미 관계의 톱니바퀴를 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이유는 이처럼 다른 생각을 가진 당사국의 이해관계를 조율해가면서 동시 병행적으로 일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이다. 북한에 핵이 없고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을 감안하지 않아도 된다면 남북경협과 교류가 어려울 이유가 없다. 북한이 핵을 보유하고 있는 한 정상적인 남북관계는 불가능하고 미국과 국제사회도 한반도 문제에 깊이 개입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따라서 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남북관계 복원이 아니라 정교한 한·미 공동의 전략을 만들어 북·미 대화가 재개되도록 유인하는 것이다.

 

워킹그룹은 미국의 개입만을 위한 통로가 아니다. 만에 하나 북핵 논의가 한국의 입장을 배제한 채 북·미의 이해관계만을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진행될 경우 한국은 워킹그룹을 통해 미국을 견제하고 한국의 입장을 반영시켜야 한다. 워킹그룹은 해체 대상이 아니라 용도에 맞게 활용해야 하는 도구다. 한반도 문제의 구조적 요인을 도외시하고 워킹그룹 탓을 하는 것은 비겁할 뿐 아니라 현명하지도 않다. 이런 식으로는 성공은 고사하고 실패를 통해 교훈을 얻는 것도 기대하기 어렵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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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반대로, 일본이 반성은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배상만 하면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한·일 갈등의 핵심요소인 위안부 문제는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된 지 오래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짓밟은 위안부 문제를 법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이 상황은 지독한 역설이자 한·일 모두의 불행이다. 


법은 인간사회의 가치체계에서 가장 하위의 개념이다. 특히 동양적 사고체계에선 가장 정점에 있는 ‘성(聖)스러움’을 인간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현실적 의미를 담아 구체화할 때 정의-도덕-예의-법의 순서로 내려온다. 정의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도덕은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다. 예의가 없으면 비난을 받게 되고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적 계약에 따라 처벌받는다. 법은 인간이 지켜야 할 행동의 최소한일 뿐이다.


도의적 책임은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천벌 받을 짓은 했으나 사람에게 벌 받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인류 보편적 가치 짓밟은 범죄

법적 책임 여부로만 해결 안 돼

시민단체에 휘둘린 정부는 방치

천덕꾸러기 된 위안부 문제

도덕적 우위 회복으로 

뒤틀린 정의 바로잡아야


법적 책임이 없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청구권협정 문구를 머리칼 쪼깨듯 잘라 해석하는 것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를 자신들이 했다는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한국도 배상이 아니라 이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뒀어야 한다.


한국이 처음부터 법적 배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일본은 은폐하지 말고 진상을 조사해 이를 역사에 남김으로써 후세를 교육하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인 한국의 의연한 태도에 일본은 더욱 위축됐다. 일본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위안부 문제 해결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피해자의 주장과 국민 감정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낼 때까지 회피·외면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용기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의 주도권이 시민단체에 넘어가고 정부가 이들이 주도하는 위안부 운동 방향과 여론 조성에 휘둘리게 된 것은 어쩌면 정부의 업보인 셈이다. 


특히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정하고도 일본과 법적 해석 차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다. 이 결정으로 정부는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인 청구권협정의 법적 해석을 놓고 일본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그 결과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합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행을 거부했지만 파기할 수는 없었다. 재협상을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얻어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5년 합의를 이행도 파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허공에 띄워놓자 피해자들은 다시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헌재는 2011년 결정 때와는 달라진 태도를 보이며 “이 문제는 위헌심판 대상이 아니다”라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미해결 상태로 방치하고, 헌재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갖고 오지 말라 하고, 상징적 시민단체의 대표는 국회의원으로서 정계로 진출해버리고, 가해자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30년간 끌고온 한국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어놓고 끝낼 사안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다음 정부, 앞으로 ‘환골탈태’된 시민단체, 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위안부 문제에서 실종돼 버린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되찾아 오는 것이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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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라과이 산페드로주에 건립한 종합병원.


코로나19 방역에서 ‘한국형 모델’로 모범적인 성과를 거둔 정부는 지금 두 번째 과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코로나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기업의 해외 인프라 수주를 위해 향후 3년간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주요 파트너 국가를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승인 규모를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풀어보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인 신남방·신북방 정책 거점 국가에 대규모 ODA를 지원해 인프라 사업을 발굴하고 그 사업을 국내 기업이 수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정부의 외교전략 추진과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일거양득의 방책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은 개발원조의 국제적 규범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ODA는 빈곤국의 발전을 위해 선진국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냉전시대 ODA는 개도국을 자기 진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에는 인도주의와 인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ODA를 국가전략이나 경제적 이익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현재 ODA는 유엔이 새천년개발계획(MDGs),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해 제시해온 빈곤 퇴치·평등·환경·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1980년대 시작된 한국의 초기 ODA는 재벌기업의 해외 진출 수단이었다. 무상원조가 아닌 유상원조가 대부분이었고 사업 시행은 물론 자재·용역 조달까지 국내 기업이 맡도록 제한된 ‘구속성 원조’였다. 그러다가 2009년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은 ODA 국제기준 충족을 요구받게 됐다. 당시 한국의 DAC 멤버십은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고 구속성 원조를 25% 이하로, 무상원조 비율을 90% 이상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DAC 가입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은 이 약속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구속성 원조로 해외 인프라 수주

ODA, 대외전략·수출의 도구로

원조 국제규범에 역행하는 정책 

코로나 경제위기 대처도 좋지만

개발원조 지향점 분명히 해야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해외 인프라 수주 프로젝트’는 차관 형태의 유상원조이며 구속성 원조다. 구속성 원조는 지원금이 수원국의 경제에 유입되지 않고 고스란히 공여국 기업에 되돌아가는 구조여서 개발 효과도 낮고 ‘수원국 중심’이라는 ODA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한국 ODA가 저평가받는 이유도 구속성 원조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계획은 신남방·신북방 거점인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우즈베키스탄·동구권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DAC의 수원국 리스트에 있기는 하지만, 원조가 절실한 빈곤국이 아니다. 원조보다 정상적인 경제협력이 더 어울리는 국가들이다. ODA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외교전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그것도 국가의 연간 ODA 총액의 3배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유상·구속성 원조를 향후 3년 동안 배정하겠다는 이 계획은 국제적 규범은 물론 정부가 2018년에 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경유착의 소지도 있다.


물론 ODA는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국익을 고려치 않고 타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또한 ODA도 큰 틀에서 외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국가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ODA는 국익을 직접 목표로 하기보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의 결과’로 국가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반 외교나 경제협력과는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정책을 내놓기까지 ODA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이라도 한 번 해본 흔적이 없다는 게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하고 “사람 중심의 개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해외 인프라 수주 계획은 이 발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임기 반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의 ODA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100대 국정과제 중 99번째에 ODA가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ODA 철학은 무엇인지 정리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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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6일 오후 청와대 여민관에서 테워드로스 아드하놈 거브러여수스 세계보건기구(WHO) 사무총장과 전화 통화하고 있다. 청와대 제공


인류 문명사의 전환점에는 항상 바이러스가 있었다. 페스트는 13~14세기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25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급격한 인구 감소에 따른 노동력 부족으로 봉건제가 무너지고 시민사회가 출현하는 단초가 됐다. 16세기 유럽의 정복자들과 함께 남미에 상륙한 천연두는 당시 내성이 형성되지 않았던 원주민 90%를 절멸시킴으로써 남미 문명의 몰락을 가져왔다. 남미 정복으로 얻은 막대한 금과 은이 유럽으로 유입되면서 자본주의의 기초가 형성됐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의 패권이 미국으로 넘어가게 된 이면에는 1918~1920년 전 세계에서 5000만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스페인 독감이 있었다.  


지금 전 세계를 휩쓸고 있는 코로나19도 세계 질서를 바꾸게 될 것이다. 지금 전 세계를 짓누르고 있는 불안과 공포 속에는 단지 감염에 대한 우려뿐 아니라 코로나19 이후 어떤 변화가 올지 알 수 없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포함돼 있다. 어떤 세상이 오게 될 것인지는 사실 선택의 문제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인류가 ‘분열’과 ‘국제연대’라는 길을 두고 선택의 기로에 섰음을 지적했다. 그는 “각국이 각자도생의 분열을 선택한다면 더 큰 재앙이 닥칠 것이며 국제연대를 선택한다면 승리로 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감염병 유행 인류 모두의 문제 

미·중 이전투구에 리더 안 보여 

한국 코로나 대응, 세계가 주목 

개방적이고 투명한 모델 ‘울림’

‘독자적 외교정책’ 반전의 기회



만일 국제사회가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국제연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생태·기후변화 문제에 대해 각성하며, 다자주의 정신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인다면 코로나19는 세계적 교훈을 남기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현실은,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 방향으로 향하지 않는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현지시간) 백악관 브리핑룸에서 열린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매우 참혹한 시기에 다가가고 있다”고 말했다. 워싱턴 _ UPI연합뉴스


코로나 사태 발생은 시기적으로 매우 좋지 않았다.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이 ‘미국(만)을 위대하게’라는 구호로 세계를 분열시키며 ‘고립주의의 세계적 유행’을 선도하고 있고, 미·중 무역갈등으로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이 커졌으며, 유럽연합(EU)은 영국의 탈퇴로 하나가 되기로 한 결정이 과연 옳은 것이었는지 의구심을 갖기 시작할 때 코로나 위기가 시작됐다. 과거 유행했던 다른 감염병 사태 때와 달리 이번 코로나19 발생 초기부터 인종주의적 편견과 혐오가 강하게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팬데믹 선언은 단순히 감염병 대유행 현상만을 지칭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이제 이 감염병은 ‘모두의 문제’이며 다른 나라가 안전하지 못하면 나도 안전하지 못하다는 인식을 갖고 연대·공조하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다. 하지만 각국은 팬데믹 선언 이후 더욱 장벽을 높였다. G20 정상들은 코로나19 피해와 국제무역 붕괴를 막기 위해 국제적 연대가 필요하다고 공감했지만 아직도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수출통제, 입국제한은 강화됐고 백신·치료제 개발을 위한 국제적 협력과 빈곤국에 대한 지원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리더 역할을 해야 할 나라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중국은 초기 발병 상황을 은폐·축소해 세계가 이번 사태를 초기 진압할 기회를 제공하지 않았다. 미국은 사태를 오판해 안이하게 대처하다가 재앙을 맞았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처음부터 정치적 편향성을 드러내 신뢰를 잃었다. 가장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할 미·중은 상대를 서로 비난하며 아직도 이전투구를 벌이고 있다. 


코로나 이후 전 세계는 새로운 물결과 만나게 될 것이다. 미·중 갈등이 더욱 깊어지고 국제무역이 마비된 상태여서 독특한 안보환경과 높은 대외무역 의존도를 가진 한국에는 더욱 험난한 앞길이 예상된다.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한국이 인권침해적 봉쇄나 비밀주의 대신 개방성과 투명성을 유지하는 정책을 채택해 성과를 거뒀다는 것이다. 다소 운이 따라주기는 했지만, 한국이 다른 나라를 따라하지 않고 독자적인 전략을 성공시킴으로써 선진국들이 한국의 경우를 참고하기 시작한 것은 전례가 없었던 일이다. 이번 코로나 사태에서 한국이 제시한 ‘개방적이고 투명한 자유주의 모델’은 글로벌 리더가 없는 현재의 세계에 커다란 울림을 가질 수 있다. 만약 코로나 사태를 계기로 한국이 ‘외교정책의 정체성’을 선명히 하고 한국의 현실에 부합하는 정책을 독자적으로 제시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된다면 코로나19는 한국에 반전의 기회를 제공할 수도 있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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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의 국제선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이 텅 비어 있다. 이날 김포국제공항을 오가는 국제선 항공기는 ‘0’편, 이용객도 ‘0’명을 기록했다. 중국, 일본, 대만행 비행기가 출발·도착하는 국제선의 운항이 없었던 날은 김포공항이 인천공항으로부터 국제선 운항을 넘겨받은 2003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김창길 기자


감염병은 대중에게는 공포이지만 정권에는 위기다. 관료제는 돌발적 위기 대응에 효율적이지 않아서 어느 나라든 위기가 닥치면 정부가 비난을 받기 쉽다. 정권의 위기감은 외교의 기조를 바꾼다. 국내정치와 외교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이라는 보건의학적 이슈는 이처럼 정치라는 경로를 통해서 외교의 영역으로 침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피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내놓은 가장 쉬운 선택은 입국제한이다. 대중의 공포와 정권의 위기 앞에서 외교적 관례나 국제예양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봉쇄는 감염병을 지연시킬 뿐 궁극적 대책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잡아야 하는 정권의 입장에서는 제한적 조치라도 마다하기 어렵다. 코로나19 감염국에 대한 입국제한이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지금 전 세계 국가 절반 이상이 한국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된 배경이다.


이 상황을 ‘외교 참사’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이 입국제한 대상이 된 것은 외교적 역량부족이나 판단 착오로 빚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각국이 적절한 절차를 거쳤다면 입국제한 조치를 비난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대처 능력도 다르다. 각국은 자신들의 의료체계와 행정력, 국가적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대응책을 선택하게 된다. 정치·경제·외교적 고려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방역이 국가 주권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교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해도, 어쨌든 8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결과는 인정해야 한다.


한국이 선택한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봉쇄와 차단이 아닌 ‘개방을 유지하는 투명한 통제’다. 방역 능력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이 이 같은 선택에 일조했을 것이다. 방역 외에 경제·외교적 고려도 물론 있었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매우 크고 엄청난 숫자의 재외국민을 가진 나라다.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 연간 교역액 3000억달러, 교류 인원 1000만명의 한·중관계를 감안하면 입국 차단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시를 피한 왕래로 감염이 일어날 경우 추적이 불가능해지고 방역체계가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정부가 다 잘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 중국 후베이성에 대한 입국제한 이후 다른 1~2개 지역으로 점차 확대하는 조치는 방역뿐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필요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지나치게 중국을 배려하는 듯한 ‘외교적 레토릭(수사)’은 국내 여론은 물론 외교적 측면에서도 적절치 못했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용수철처럼 반발하며 똑같은 ‘정치적 조치’로 대응함으로써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유지해왔던 정책의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일본의 무리수에 같은 무리수로 대응하는 것은 이기는 방법이 아니다.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감염병 사태에 완벽히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외교적 손실을 입긴 했지만 촘촘한 공공의료 체계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행정서비스 덕분에 아직은 통제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망자 수도 여타 감염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일상적 위험인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자 수보다도 적다.


지금 전 세계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선택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어렵더라도 지금과 같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도시 위주의 높은 인구밀도와 아파트식 집단주거형태 등 최악의 조건을 갖고 있는 한국이 개방을 유지한 채 바이러스를 통제하게 된다면, 인권 침해적이며 글로벌 밸류체인을 깨뜨리는 봉쇄정책과 비밀유지에 급급한 소극적 대응을 하지 않고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앞으로도 ‘감염병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어떤 국가도 혼자 힘으로 팬데믹을 막을 수 없으며 세계적 차원의 개방과 소통, 협력강화 등의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한국의 경우를 통해 인식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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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오래 공들인 결과물이다. 트럼프 구상의 골자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도록 하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10년간 500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불법을 힘으로 합법화하려는, 중동에 평화가 아닌 혼란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하고 부당한 시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대해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이 있다. 1960년대부터 무수히 만들어진 안보리결의, 유엔총회 결의는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확장한 영토가 불법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정착촌 합병은 국제법 위반이다. 또한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도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구상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전부 통치하도록 했다. 동예루살렘을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그곳은 팔레스타인이 말하는 동예루살렘이 아니라 분리장벽 바깥의 변두리 땅이다.


트럼프는 이를 ‘현실적인 2국가 해법’이라고 했다. 2국가 해법은 원래 1967년 이전 국경을 기준으로 이·팔이 각각 국가를 건설해 공존한다는 뜻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 개념이 확립된 이후 2국가 해법은 중동분쟁 해결의 기본원칙으로서 국제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다. 2국가 해법의 핵심은 정착촌 철수·동예루살렘 지위·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에 대해 양측이 합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구상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입장만을 반영했다. 트럼프의 ‘현실적 2국가 해법’은 국제사회가 원칙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2국가 해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다. 


사실 오슬로 협정은 20년이 넘도록 휴면상태다. 그 사이 정착촌 규모는 160여개, 인구 60만명으로 확대됐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위협과 빈곤, 무능한 리더십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도 쌓여 있다. 트럼프는 이런 여건을 활용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친미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결의와 국제법, 1967년 이전의 국경선에 기초한 2국가 해법을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구상은 국제적 합의를 벗어난 것”이라며 거부 성명을 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노력을 평가하며, 이·팔 문제가 2국가 해법에 기초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냈다.


이 논평에 나오는 2국가 해법이 ‘트럼프식 2국가 해법’인지,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으로서 2국가 해법인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는다”며 선을 그음으로써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임을 인정했다. 백악관이 트럼프 구상을 지지하는 각국 반응을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한국 외교부의 논평을 자랑스럽게 포함시킨 것을 보면 미국 측의 요청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5월 예루살렘의 지위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다수 국가들이 지지하는 2국가 해법에 입각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논평은 정부가 그동안 유지했던 중동문제 원칙에서 이탈한 것이어서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물론 한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외교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어야 외교적 자율권과 독자영역을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에는 중동 평화가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준이 어디서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평화의 개념도 지역을 불문하고 같아야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있고 진보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입장이 나온 것은 유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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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표명하면서 예기치 않게 시동이 걸렸던 한반도 평화정착프로세스가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던 김 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 유예 약속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대화 복원이나 진전은 고사하고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세계적 관심과 기대 속에 시작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좌초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각양의 진단과 분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북한은 물론 미국·한국 등 대화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가장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요소인 ‘비핵화’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한 것은 정치적 성과였다. 전임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한 방에,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해냈음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요청을 즉각 수락하고 곧바로 아무런 준비 없이 정상회담에 뛰어들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비핵화 전략이 아닌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였다.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무모한 시도의 결과가 싱가포르 합의다.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리고 ‘새로운 북·미관계’와 ‘신뢰구축’을 앞세운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을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싱가포르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동시·병행적 이행’을 내세워 비핵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합의문을 이미 받아든 북한이 이에 응할 리 없었다. 북·미 대화가 꼬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흥미를 잃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비핵화 진전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어떻게 재선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남북관계 진전이었다.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긴 했지만 정작 북·미 대화에서 비핵화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지에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보다 남북관계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북·미 간 대화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9·19 남북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문재인 정부의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이 합의는 북·미 대화와 비핵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미래 전망을 가불받아서 만든 것이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가 사라지면서 이 합의는 빛을 잃었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 국가로서 정체성을 세우고 국가 번영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미래지향적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선후관계에 문제가 있다. 신북방정책은 대북제재 해제를 필요로 하고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풀려야 한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교한 비핵화 전략이다.


북·미 대화와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자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남북협력 사업 추진을 올해 신년구상으로 꺼냈다.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의 독자적 영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북·미 대화가 정체됐다고 남북관계까지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인식과 함께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핵화는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를 통해 제시한 한반도평화 3원칙은 전쟁불용·상호안전보장·공동번영이다. 핵문제는 신년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작업인 이유는 비핵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남북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하는 것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물론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를 할 뜻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보다 한·미가 비핵화 목표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정교한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협상을 잘못하면 핵을 내놓을 생각이 있다가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또 협상을 잘하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바꾸게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외교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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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주한 외국공관의 한 외교관과 사담을 할 기회가 있었다. 한국의 외교적 상황에 대해 맥락없는 대화를 나누다가 그가 내린 결론은 “내가 한국의 외교관이 아닌 것이 정말 다행”이라는 것이었다. 한국 외교가 직면하고 있는 어려움이 그만큼 크다는 뜻일 것이다. 실제 상황이 그렇다. 한국은 세계 최강대국 사이에 둘러싸여 있다. 또한 냉전시대부터 이어져온 분단을 아직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에서 미·중 패권경쟁으로 비롯된 ‘신냉전’ 기류의 여파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아야 하는 위치에 있다. 한국만큼 복잡하고 중층적인 외교적 난제를 안고 있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다.


1980년대 후반 냉전 구도 해체 전까지 한국은 미국의 날개 밑에서 비교적 안온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나 냉전 종식 이후 북한이 핵개발을 생존전략으로 선택하면서 북한 문제가 국제적 이슈로 부상하자 비로소 외교전략의 필요성을 절감하기 시작했다. 각국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는 국제관계 틀 속에서 북핵 문제를 풀어야 하는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한국 외교의 복잡성을 극적으로 증대시킨 사건은 2008년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세계 금융위기였다. 금융위기는 미국의 신자유주의 파산과 함께 ‘세계유일 초강대국’ 지위가 무너지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미국 국채를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던 중국이 굴기하기 시작해 곧바로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의 경제대국이 되면서 미·중이 세계질서를 좌우하는 세상이 됐다.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기 위해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는 아시아·태평양 지역에 군사·외교력을 집중하는 ‘아시아 재균형 정책’을 꺼내들었다. 미국의 군사력을 아시아 지역에 집중투사하고 미·일 동맹, 한·미 동맹을 새롭게 재편해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하는 것이 골자다. 이에 편승한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은 우경화, 군사대국화로 치달았고 한·일 갈등이 증폭됐다. 미국의 이 같은 정책기조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들어 ‘인도·태평양 전략’이라는 더욱 거칠어진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다.


중국의 부상과 미국의 대외정책 변화, 아시아에서의 미·중 패권경쟁, 북핵 능력 고도화, 일본의 우경화 등이 만들어낸 안보 환경 변화가 한국을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로 떠밀고 있다. 안보를 한·미 동맹으로 대표되는 기존 질서에, 경제를 중국으로 대표되는 대외무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의 취약한 대외관계 구조 때문이다. 한반도의 새로운 미래를 위해 한국은 미·중의 협력이 모두 필요하다. 하지만 미·중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압박은 더욱 거세지고 있다.


70년 가까이 이어진 한·미 군사동맹의 미래와 대(對)중국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에 한국 외교의 사활이 달려 있다. 이제 이 문제에 대한 방향성을 갖지 않고는 국가의 미래를 논할 수 없다.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물론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 남중국해, 한·일 갈등,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주한미군 감축 등 한국이 갖고 있는 모든 민감한 외교 현안의 배경에는 모두 ‘미·중의 전략적 이익 충돌’이라는 공통의 요소가 있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OSOMIA) 파동과 방위비 협상에서 볼 수 있듯이 한·미 동맹의 성격 변화는 이미 진행 중이다. 미국은 북한의 위협을 억제하기 위해 출발한 한·미 동맹을 중국을 견제하기 위한 한·미·일 동맹으로 바꿔나가려 한다. ‘한·미·일 안보협력 강화’를 말할 때 한국은 북한을 떠올리지만, 미국은 중국을 염두에 두고 있다. 동서 냉전과 식민지배의 잔재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한 상태에서 미·중 패권경쟁의 신냉전까지 감당해야 하는 한국의 입장에서는 관성처럼 한·미 동맹과 한·미·일 협력에 의존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지금 당장 기존의 틀을 뛰쳐나가기도 어렵다.


이 같은 난관을 벗어나려면 전략이 있어야 한다. 전략을 세우려면 국가적 목표가 정해져야 한다. 국가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서는 한국이라는 국가 체제가 지향하는 가치가 무엇인지에 대한 국민들의 공감대가 형성되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사회는 이 부분에서 결함이 있다. 유독 외교·안보 문제에 대해서만큼은 감성적인 이상주의와 확증 편향, 지독하게 뿌리 깊은 보수와 진보의 진영 논리가 건전한 담론 형성을 가로막고 여론을 왜곡하기 때문이다. 안보 문제에서 자신과 다른 견해를 가진 사람을 종북·빨갱이 또는 적폐·토착왜구 등으로 매도하는 조건반사적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냉정한 현실 인식과 객관적 시각에 바탕을 둔 합리적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는다면 한국이 처한 외교적 난관을 절대 헤쳐나갈 수 없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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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2015년 ‘전후 70년 담화(아베 담화)’를 발표하면서 과거사 문제를 반성한 역대 일본 내각의 입장을 소개했을 뿐 자신의 반성은 담지 않았다. 오히려 “러일전쟁은 식민지 지배하의 많은 아시아·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었다”고 당당히 밝혀서 듣는 사람의 귀를 의심케 했다. 단언컨대, 아베 담화는 지금까지 일본 정부가 내놓은 과거사 관련 문건 중 최악이었다.


그럼에도 당시 박근혜 정부는 아베 담화의 수많은 내용 중 ‘역대 내각의 입장은 앞으로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한 문장만을 갖고 담화 전체에 긍정적 평가를 내렸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박근혜 정부는 처음부터 위안부 문제 해결 없이는 일본과 외교를 못한다고 못 박았다. 위안부 문제로 한·일 갈등이 깊어지고 이로 인해 미국의 아시아 전략에 차질이 생기자 미국은 화해하라는 압력을 가하기 시작했다. 결국 박근혜 정부는 관계 개선에 나서야 했다. 그러자니 명분이 필요했다. 일본의 태도는 변한 것이 없었지만 ‘노선 변경’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흉물스러운 아베 담화를 긍정 평가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4개월 뒤 한·일 위안부 합의가 이뤄졌다. 박근혜 정부는 대일 외교의 첫 단추를 잘못 끼운 실수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합리화시키려다 ‘외교 참사’를 일으키고 국정에 치명적 타격을 입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4일 태국 방콕 임팩트포럼에서 열린 아세안+3 정상회의에 앞서 기념촬영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방콕 _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의 강제징용 판결 문제 처리 과정은 박근혜 정부와 같은 패턴의 반복이다. 한·일관계를 파탄낼 수 있는 폭발력을 가진 강제징용 문제가 대법원의 최종확정판결만을 남겨두고 있는 상황이었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에 대한 위기의식도, 문제 해결을 위한 고민도 없었다. 판결 이후에는 일본의 협의 요청에 응하지 않고 ‘사법부 결정에 정부가 개입할 수 없다’며 스스로 퇴로를 끊는 강경 자세를 취했다.


대일 외교에서 감정이 앞서면 안된다. 일본을 위해서가 아니다. 한국 외교는 일본 문제를 잘못 다루면 외교의 축이 흔들리게 되는 구조적 취약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아베 총리의 역사의식이 끔찍하다는 것은 누구나 안다. 하지만 상대가 국정 철학을 공유하는 관계가 아니라서 외교를 못하겠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때로는 긴 숟가락을 갖고 가서라도 악마와 마주앉아 식사를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외교다.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무리수였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중단시켜 미국을 판에 끌어들이는 잘못된 대응 카드를 꺼냈다. 이 때문에 한국은 GSOMIA 중단 효력이 발생하기 전인 22일까지 원상복구를 해달라는 미국의 압박을 받게 됐다. 정부는 일왕 즉위식에 특사를 보내고 다자회의장에서 환담 기회를 만드는 등 대화를 적극 시도하고 있지만 상황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


정부가 앞으로 2주 내에 일본과 문제 해결에 합의하거나 시간을 벌 수 있는 창의적 수단을 마련하지 못하면 ‘매우 험난한 한·미관계’를 감수해야 한다. 그렇다고 시간에 쫓겨 강제징용 문제를 대충 마무리하면 박근혜 정부의 위안부 합의 같은 것이 나올 수도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한·일 갈등에 미국이 개입하면 어떤 결과가 오는지를 바로 직전 정부에서 목도하고도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고 있다.


공자는 사람의 수준을 넷으로 분류했다.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生而知之)은 성인에 가깝고, 배워서 아는 사람(學而知之)은 그다음이다. 곤란을 겪으면서 배우는 사람(困而學之)은 그보다 한 단계 아래이며, 최하의 부류는 곤란을 당하고도 교훈을 얻지 못한다(困而不學)고 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 중 어디에 해당하는가.


지금이라도 접근법을 바꿔야 한다. 왜냐하면 한·일관계에서 강제징용 문제는 빙산의 일각이기 때문이다. 한국 헌법은 식민지배가 불법임을 명시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 구조적 문제가 풀리지 않는 한 충돌은 끊이지 않을 것이다. 강제징용 문제를 어찌어찌 해결한다 해도 유사한 분쟁이 계속 이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강제징용에 버금가는 난제가 지금 또 닥쳐오고 있다. 이번에는 위안부 피해자들이 일본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이 13일부터 시작된다.


거듭된 정부의 대일외교 실패가 낳은 가장 안타까운 부분은 한국이 도덕적으로 절대 우위를 가져야 마땅한 역사 문제에서 일본이 오히려 큰소리를 치는 초현실적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일 접근법이 잘못됐음을 인정하는 정부의 용기가 필요하다. 외교안보라인을 전면 개편하고 심기일전하기를 간곡히 당부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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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4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갖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실무협상은 서로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진짜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실무협상이 조속히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 문제에서 어떤 것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이번 실무협상이 결정하게 된다. 국가전략노선의 대전환과 함께 모험을 시작한 북한의 운명도 여기에 걸려 있다.


예를 들면 북·미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한반도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단초를 만들 수도 있고 현실적 성과를 얻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또는 파국적 결별을 맞아 군사적 대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며, 친구도 적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관계와 북핵 문제가 동면에 들어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실무협상은 대화국면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


지금까지 남·북·미는 모두 전략적으로 면밀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성과에 집착해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리고 미국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북·미 모두 원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서두르다가 남북과 북·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북한은 ‘트럼프=미국’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북한은 지금도 트럼프만을 상대해 대미관계를 풀어가려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야구 경기에 비교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가 속출한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모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실무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성공적인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북한 문제를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올인’하다시피 공을 들인 문재인 정부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북·미 대화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몰라도 정부의 현재 상황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가 확정된 직후 급히 만들어낸 뉴욕 한·미 정상회담과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함이 묻어난다. 미국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약간 흥분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에서는 북·미 대화 전망을 낙관할 만한 요소보다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미관계에 커다란 대전환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인지,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실무접촉은 쉽지 않은 협상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진과 “리비아 방식은 틀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와는 무관하다. 


볼턴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한 적이 없고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것도 리비아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말한 ‘새로운 방법’은 그 실체가 있는지조차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최근 북한의 대미 메시지에는 실무협상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못한 미국에 돌리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한반도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전쟁 위기의 한반도 상황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자신의 임기 내에 거둬야 한다는 조급함은 덜어내는 것이 좋다. 은행나무는 손자가 덕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심는다는 의미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 프로세스는 공손수를 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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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강제징용 판결과 일본의 무역보복 조치로 한·일이 충돌하면서 생긴 불똥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을 태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22일 GSOMIA 연장 시한을 이틀 앞두고 이 협정 종료를 결정했다. 결정 배경은 한·일 갈등과 일본의 부당한 경제보복 조치에 대한 대응이지만 GSOMIA 종료 결정은 한·일 갈등과는 또 다른 차원의, 그리고 한·일 갈등 못지않은 중대한 파장을 낳을 새로운 문제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일 수도 있다. 


GSOMIA는 사실 한·일 간에만 존재하는 특별한 협정이 아니다. 한국은 30여개국과 GSOMIA를 체결하고 있다. GSOMIA는 국가 간에 오가는 군사정보를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한 것이 목적이다. 따라서 정보를 공유하도록 의무화하지 않는다. 다만 정보를 주고받을 때 GSOMIA에서 규정하고 있는 보안원칙·제공경로·관리방법·보호의무 등을 따르라는 것이다. 음식을 담아 나르는 그릇이나 자동차가 빠르고 안전하게 다닐 수 있도록 만들어놓은 고속도로 같은 것이라고 보면 된다. 


NHK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폐기 소식을 보도하고 있다. 도쿄 _ 연합뉴스


일본과의 GSOMIA가 국민정서에 안 맞는 것도 사실이다. GSOMIA가 체결되기까지 국내에서 벌어진 갖은 우여곡절이 이를 상징한다. GSOMIA로 인해 일본이 더 큰 정보상의 이득을 본다는 주장도 있고 GSOMIA가 한·미·일을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로 묶기 위한 기제이므로 한국이 아닌 미·일의 안보를 위한 거라는 주장도 있다. 2016년 GSOMIA 체결 이후 지금까지 파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것도 이 때문이다.


청와대는 종료 배경에 대해 일본이 ‘안보상의 신뢰’를 문제 삼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함으로써 양국 간 안보협력환경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고, 이런 상황에서 민감한 군사정보를 다루는 협정을 일본과 지속하는 것은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청와대는 또 GSOMIA가 없어도 한·미 연합자산과 다른 한·미·일 정보공유 기제를 통해 일본과 협력이 진행될 수 있기에 정보·감시 공백은 없다고 했다. 일본을 제외한 주변국과 공조가 훌륭하고 남북군사합의로 군사적 긴장도가 낮아진 점, 북·미가 대화 국면에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안보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이 말대로 되려면 앞으로 한·미 공조가 더욱 공고해져야 하고 남북군사합의는 계속 효력을 발휘하며 작동해야 한다. 또한 북·미는 계속 대화를 이어가면서 비핵화 협상에서 진전을 만들어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자신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지금 남북관계는 올스톱 상태다. 북·미는 대화를 재개키로 합의했지만 이른 시간 안에 성공적인 합의에 도달할 것으로 보는 사람은 별로 없다. 


특히 GSOMIA 종료로 한·미 공조가 더욱 공고해질 것으로 생각되지는 않는다. GSOMIA에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이 깊이 얽혀 있다. 어떤 의미에서 GSOMIA는 일본보다 미국에 더 필요한 것일 수도 있다. 2015년 12월 박근혜 정부는 졸속적으로 한·일 위안부 문제 합의를 한 데 이어 이듬해 콩 구워 먹듯 일본과 GSOMIA를 체결했다. 그리고 몇 달 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사드) 배치가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모두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박근혜 정부를 압박해 순차적으로 이뤄놓은 것들이다. GSOMIA가 미국의 아시아전략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소라는 점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GSOMIA를 한국이 종료시키면 미국도 큰 피해를 입는다. 미국의 국익에 손상이 가는데 한·미관계에 영향이 없을 리 없다. 물론 한국이 GSOMIA를 깨겠다면 미국은 한국의 결정을 존중해야 한다. 다만 그에 따른 책임은 한국이 진다. GSOMIA 종료가 미국과 실시간으로 소통하며 내린 결정이며 미국도 한국의 결정을 이해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한·미 공조에 아무런 영향이 없을 것이라는 청와대의 설명이 맞는지 여부는 앞으로 벌어지는 일을 봐야 알 수 있다. 


청와대가 처음 GSOMIA 카드를 들고나왔을 때 미국이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서도록 압박해보겠다는 의도라는 해석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결국 GSOMIA를 종료시켜 미국을 움직이기 위한 카드가 아님을 입증했다. 어쨌든 이제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GSOMIA 중단으로 빚어질 파장이 매우 심대할 것임은 자명하다. 청와대는 정치·안보·국민정서 등 모든 것을 고려해 내린 결정이라고 했다. 청와대의 말대로 이번 GSOMIA 중단 결정은 모든 것에 대비하고 검토한 ‘철저하게 준비된 조치’여야 한다. 준비없이 시작했다 갈 데까지 가게 돼서 결국 마지막 수단으로 아베마리아를 외치며 시도하는 ‘헤일매리 패스’가 아니기를 간절히 바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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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2월8일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은 백악관에서 군축 역사의 기념비적 합의문에 서명했다. 사거리 500~5500㎞의 지상발사 탄도·순항미사일을 생산·보유·실험하지 않기로 한 중거리핵전력조약(INF)이다. 냉전 종식의 신호탄이었다. 이 조약에 따라 1991년까지 모두 2700기의 미사일이 폐기됐다. 소련 해체 이후에도 러시아는 이 조약을 승계했다. 


‘핵군축의 골드스탠더드’라는 평가와 함께 가장 성공적 핵군축 사례로 꼽히던 INF가 2일(현지시간)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미국은 지난 2월2일 국무부 성명을 통해 INF에서 탈퇴하겠다고 선언했다. 러시아도 같은 날 즉각 탈퇴 선언으로 맞받았다. 그리고 6개월의 유예기간이 종료되는 이날부터 ‘포스트 INF’ 시대가 열린다. 31년간 이 조약이 유지되는 동안 갈등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INF가 결국 ‘미국 최우선주의’를 표방한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에서 종말을 고한 것은 우연이 아니다. INF 폐기를 지론으로 내세워온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 영향도 컸다.


INF 폐기로 양대 핵강국 미·러 간 군비통제 체제는 껍데기만 남았다. 이미 2002년 탄도탄요격미사일조약(ABM)이 폐기됐고 2007년에는 유럽재래식전력감축조약(CFE)이 러시아의 탈퇴로 무력화됐다. 1996년 9월 유엔총회에서 결의된 포괄적핵실험금지조약(CTBT)은 핵심 8개국의 비준을 받지 못해 지금까지 발효되지 못하고 있다. 2021년 만료되는 미·러의 신전략무기감축협정(뉴스타트)도 연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하지만 INF 폐기는 핵통제 체제 약화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 미국이 INF를 폐기한 것은 러시아와의 갈등 때문이지만 실제적으로는 중국에 대한 견제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미·러가 INF에 묶여 있는 동안 중국은 장외에서 마음껏 중거리미사일 능력을 확대했다. 그중 대부분이 동아시아의 미군 전력이 중국 주변에 접근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배치돼 있다. 트럼프 대통령도 “우리만 조약을 지키는 상황은 받아들일 수 없다”며 직접 중국을 겨냥했다.


문제는 INF 파기 이후 미국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어떻게 다루느냐이다. 미국은 중국을 포함하는 새로운 조약을 지향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신빙성이 없어 보인다. 정말로 미국이 ‘보다 안전한 세계’를 만들기 위해 중국의 중거리미사일을 포함하는 새로운 군축 메커니즘을 원한다면 이런 식으로 INF를 깨지는 않았을 것이다.


군축은 적과의 대화를 통해 신뢰를 쌓아 합의에 이르는 힘든 과정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개적이고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 진정한 국제 통제체제가 되려면 중국 외에 중거리미사일 전력을 가진 나라들을 모두 포함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국제기구를 통한 공개적인 토론과 협의과정이 있어야 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그런 시도를 한 적이 없다.


중국과 양자 간 군축 협상을 하려는 것 같지도 않다. 미국이 보유한 핵탄두는 중국의 20배다. 핵전력이 열세인 중국은 비선제공격과 최소억제 원칙의 핵전략을 갖고 있으며 지상발사 중거리미사일은 중국 핵전력의 근간이다. 그런데 트럼프는 ‘미국이 중거리미사일을 만들지 않으니 중국도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자 간의 군축은 서로 똑같은 무기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합리적인 수준에서 서로에게 가장 위협적인 무기를 제거하는 조치를 교환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이 같은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중국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 뻔하다.


트럼프는 냉전 시대 유럽에서 그랬던 것처럼 아시아에 새로운 중거리미사일을 집중배치하고 중국을 굴복시키려 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이 경우 동북아에서 중국·러시아와 미국 사이의 군비경쟁이 불가피하다. 미국은 한국에 미사일 기지나 탐지 레이더 등 MD 체계를 두려 할 가능성이 있다. 동북아에 냉전구도가 다시 펼쳐지는데 ‘한반도 냉전 해체 작업’이 제대로 될 리 없으므로 북핵 문제 해결은 더욱 어려워질 것이다. 결국 동북아 군비경쟁의 최대 피해자는 한국이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중·러가 한반도 주변에서 합동초계비행을 하고 북한이 INF 위반 논란을 촉발시킨 ‘이스칸데르’급 미사일을 잇달아 발사하고 있는 것은 그 전조일지도 모른다.


INF 폐기는 장차 한국의 생존과 직결된 안보 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는 중대 사안이다. 


‘포스트 INF 시대’에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분석과 대비 전략이 현시점에서 마련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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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지난해 10월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 기업이 배상해야 한다는 대법원 최종 판결에 아직까지 공식 입장도 정하지 못한 채 안팎의 공세에 시달리고 있다. 정부가 무능해서만은 아니다. 판결이 나온 이상 이 문제는 ‘노답’이다. 정부가 대법원 판결의 취지대로 한·일관계를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법원의 판결은 한마디로 ‘첫 단추를 잘못 끼운 한·일관계를 바로잡으라’는 것이다. 1965년 한일기본조약과 청구권협정에서 일제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적시하지 못한 ‘역사적 과오’를 지적한 것이다. 하지만 1965년 체제가 비록 지금 한계에 도달했다고는 하나, 이미 한·일관계와 근대 한국을 형성하는 뿌리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지금에 와서 역사를 되돌릴 방법은 없다. 그렇다고 행정부가 사법부의 판단을 수용하지 않을 수도 없다. 대법원의 이 판결은 정부를 ‘완벽한 딜레마’에 빠뜨렸다.


이 판결은 수십만의 강제징용·근로정신대 피해자들에게 ‘승소가 보장되는’ 소송의 문을 열어줬다. 일본 기업들이 배상해야 할 액수는 수십조원에 달할 것이며 한·일관계는 단절 위기를 맞을 것이다. 이런 상황은 2012년 5월24일 대법원 1부(주심 김능환)가 항소심 판결을 뒤집고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을 때 이미 예정됐던 것이다. 


하지만 이 판결의 국제법적 문제나 외교적 파장 등에 대한 합리적인 토론과 논쟁은 별로 이뤄지지 않았다. 물론 파기환송이 된 이상 결과가 다시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최종 확정판결이 나올 때까지 수년이 걸리는 동안 국내적으로 이 문제가 공론화되고 문제의 심각성에 대한 인식이 확산됐다면 정부의 대책 마련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을 것이다. 엄청난 폭발력을 가진 폭탄의 심지가 점차 타들어가고 결국 예상했던 상황이 현실화되기까지 6년 동안 정치인·관료·전문가·언론·시민단체 등 어디에서도 공개적이고 진지한 문제 제기가 없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다. 


어쨌든 일은 벌어졌고 이제는 수습을 해야 한다. 일단 길은 두 가지다. 법대로 끝장을 보는 것과 외교적 합의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논란 종식을 위해서는 ‘법대로’가 쉽다. 대법원 판결 취지에도 그게 부합한다. 청구권협정의 분쟁해결 절차에 따라 대법원의 판결이 맞는지 일본의 주장이 맞는지 국제사법재판소(ICJ)에서 결판내면 된다. 하지만 이 방식은 승소 가능성은 둘째 치고 한·일관계 회복을 불가능하게 만든다. 과문한 탓인지는 몰라도 ICJ가 국제분쟁 해결에 기여했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ICJ 제소는 결과와 무관하게 양국관계를 파탄내는 결정적 계기가 될 것이다. 


만일 한·일 모두 파탄을 원치 않는다면 외교적 타협이 순리다. 지금 가장 먼저 할 일은 한·일 모두 ‘파탄을 피해야 한다’는 공통의 인식이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한국 정부는 이미 입장을 밝힌 것으로 봐야 한다. 지난 19일 정부가 제안한 ‘한·일 기업의 자발적 위자료 지급’은 대법원의 배상 명령과 별개여서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한다”는 정부의 설명과 맞지 않는다. 1965년 체제의 한계를 구조적으로 극복하려는 자세도 아니다. 하지만 파국을 피해 외교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신호를 처음으로 보낸 것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이 제안대로 실행하자고 요구한 것이 아니라 이 제안을 논의의 기초로 삼아 외교적 타협을 해보자는 의사타진이다. 


일본은 이 제안을 거부했다. 하지만 그것이 외교적 타협 자체를 하지 않겠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걸로는 부족하다는 것인지 불분명하다. 만일 일본이 외교적으로 타협할 뜻이 있다면 분명한 답을 해야 한다.    


외교적 해결을 시도함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이 문제는 한국 정부 혼자 해결할 일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인식의 일치를 이루는 것이다. 일본의 협조 없이 한국 혼자 할 수도 없고 그렇게 돼서도 안된다. 이 문제는 한국 대법원의 판결 때문에 생긴 게 아니라 ‘한·일 간의 불행했던 과거’가 그 근원이기 때문이다. 


특히 일본은 한·일관계를 법으로만 규정하려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한·일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역사적·도덕적 요소를 법으로 대치하려는 일본의 태도는 자기기만이다. 한·일 해결을 모색하는 과정에서는 강제징용에 대한 일본의 사죄와 반성이 어떤 식으로든 반드시 반영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문제는 의외로 쉽게 풀릴 수도 있다. 사실, 일본이 처음부터 이 문제를 법적으로만 해결하려는 태도를 취하지 않고 진정으로 사죄하는 모습을 단 한번이라도 보였다면 사태가 여기까지 올 일도 없었을 것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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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은 대북 협상을 ‘미국의 방식’으로 주도하기로 작정했다.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보여준 태도는 1년 전 싱가포르 합의에서 나타난 신뢰구축과 관계개선, 평화체제, 비핵화로 이어지는 순차적이고 단계적인 협상에 대한 분명한 거부 의사다. 미국의 방식은 먼저 비핵화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하게 개념을 정리해 놓고 최종단계까지 가는 로드맵을 만든 뒤 그에 따라 행동에 착수하겠다는 것이다. 말로는 싱가포르 합의를 이행한다고 하지만, 실상은 단계적 구조의 싱가포르 합의를 대체할 ‘포괄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 목적이다.


이 같은 근본적 접근법이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러려면 시작부터 그랬어야 했다. 정상회담을 2차례나 하고 이미 정상 간 합의도 해놓은 지 1년이 다 되어가는 지금에 와서 할 말은 아니다. “올바른 합의가 필요하다”는 트럼프의 말은 자신이 덜컥 도장을 찍어준 싱가포르 합의가 ‘잘못된 합의’라는 고백인 동시에 더 이상 그것에 얽매이지 않겠다는 뜻이다. 미국이 골대를 옮긴 것이니 북한으로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것이 현실이다. 북한은 협상에서 한 수 삐끗하면 끝장이지만 미국은 실수를 해도 바로잡을 수 있는 힘이 있다.


당황한 것은 북한뿐 아니다. 청와대도 적지 않게 당황하고 있다. 사실 미국의 태도는 돌변한 것이 아니라 싱가포르 합의 직후부터 이어졌던 것이다. 청와대가 그것을 몰랐을 리 없다. 다만 어떤 방식으로든 북·미관계가 앞으로 나가기만을 원했을 것이다. 부실한 싱가포르 합의를 기초로 그 위에 남북 경제협력 등의 구조물을 올리고 북·미가 모두 되돌아갈 수 없는 지점을 빨리 통과하기를 기다리다가 암초를 만난 것이다. 


이제 상황은 원점으로 돌아갔다. 북·미는 협상의 방식을 논하는 초기 단계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청와대는 북한의 단계적 방식과 미국의 포괄적 접근법 사이에서 접점을 찾으려 한다. ‘포괄적 합의와 단계적 이행’으로 절충점을 모색하려는 생각인 듯하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미국의 입장은 ‘포괄적 합의를 위한 동시·병행적 추진’이다. ‘동시’는 상응조치의 시퀀싱(배열)을 의미하는 것이며 ‘병행’은 비핵화·관계개선·안전보장 등 협상의 모든 요소를 한꺼번에 입체적으로 다뤄나간다는 말이다. 언뜻 보기에는 단계적 접근과 유사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다르다. 포괄적 합의에 도달하려면 협상의 모든 요소들이 다 논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접근법은 근본적이긴 하지만 합의를 만드는 것 자체가 어렵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미국이 원하는 비핵화의 최종적 모습을 보여줬다. 포괄적 합의가 이뤄지려면 김정은도 자신이 원하는 비핵화의 최종적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그리고 양측이 비핵화 조치, 관계 정상화 방안, 구체적 체제안전 보장책 등 모든 요소를 테이블에 올려놓고 합의해야 한다. 군사적 문제는 물론 주한미군이나 핵우산 제공과 같은 문제들도 포함된다. 


북한이 미국의 방식을 따를지도 불투명하지만 그렇게 한다고 해도 합의에 이르는 것은 더욱 어렵다. 트럼프가 지금 “서두르지 않겠다”고 말하는 이유다. 북한도 조기에 제재 해제를 얻어내려는 생각을 접고 ‘자력갱생’을 외치며 장기전에 대비하고 있다. ‘조기 수확’이 절실히 필요한 청와대로서는 난감한 상황이 아닐 수 없다.  


청와대는 북·미관계를 서둘러 봉합하려는 조바심을 버려야 한다. 현재의 평화 상태를 유지하는 데 주력하면서 장기적 관점에서 비핵화를 포함한 한반도 평화정착프로세스를 추진해야 한다. 지금은 빠른 진전이 아니라 뒷걸음치지 않는 견고한 진전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임기 내에 결실을 보려는 생각을 버리고 초석을 놓는 데 집중해야 한다. 남북관계와 한·미 동맹을 유지하면서 비핵화를 완성하고 한반도에 항구적 평화를 정착시키는 일이 1~2년 사이에 이뤄질 일은 결코 아니다.


특히 청와대가 한반도 문제 해결의 기본전제인 비핵화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당시부터 비핵화 자체보다 비핵화 진전을 전제로 한 한반도의 미래에 집중해왔다. 지금도 북·미를 만나게 하고 어떤 방식이든 북·미가 앞으로 나가기만 하면 그것을 기초로 한반도의 미래를 그려나가야 한다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청와대에서 ‘굿 이너프 딜’과 같은 무책임한 표현이 나오는 것이 그 방증이다. 한반도의 미래는 물론 중요한 일이지만 그보다 앞서 모든 것의 전제가 되는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정교한 전략을 세우는 데 집중하는 게 먼저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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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결렬은 어쩌면 필연이다. 두 정상이 회담장에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기이한 대화방식 때문만은 아니다. 그동안 드러나지 않았던 인식 차이가 하노이에서 비로소 충돌했다는 것이 직접 원인이다.   


‘하노이 노딜’의 씨앗은 지난해 싱가포르 1차 정상회담에서 뿌려졌다. 싱가포르 합의는 신뢰구축을 통한 새로운 관계수립-평화체제-비핵화의 순서로 정리돼 있다. 미국의 ‘선(先)비핵화’ 요구를 차단한 김정은의 승리이자, 준비 없이 회담장에 들어간 트럼프의 패배다. 내색하지는 못했지만 트럼프는 싱가포르에서 돌아온 다음날부터 그 합의에서 벗어날 길을 찾았다. 지난해 북·미 대화가 일시중단되고 위기를 맞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트럼프는 싱가포르 합의를 덮어버릴 새로운 합의가 필요했다. 반면 북한은 싱가포르 합의를 구체화하기 위해 2차 회담이 필요했다. 하노이 회담은 북한에는 ‘싱가포르 합의 굳히기’였고 미국에는 ‘싱가포르 합의 바로잡기’였다. 


미국의 접근법은 현실적으로 변했다. 완전한 핵신고, 핵탄두 반출과 같은 1차 때의 황당한 발상을 접었다. 하지만 그것이 북한의 단계적 비핵화 기조와 가까워진 것은 아니었다.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지난 1월 스탠퍼드대 강연에서 “싱가포르 합의를 동시·병행적으로 추진하겠다”고 했다. 이 말은 싱가포르 합의를 순차적으로 이행하지 않고 동시에 하겠다는 뜻이다. 후순위로 처져 있는 비핵화를 앞으로 끌고 나오겠다는 선언이다.


트럼프는 하노이에서 ‘모든 대량살상무기(WMD)의 동결과 폐기 약속’을 요구했다. 싱가포르 합의에 담지 못해 엄청난 비난을 받았던 바로 그 내용이다. 하지만 김정은은 ‘영변 핵시설 폐기와 제재완화’만을 반복했다. 비핵화는 싱가포르에서 이미 정리됐으니 이번에는 그 연장선에서 신뢰구축의 이행, 즉 제재완화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다. 또한 영변 핵시설 폐기라는 ‘큰 선물’을 내주면 트럼프가 반색할 것으로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영변 핵시설보다 WMD 폐기 약속이 더 절실했다. 그 약속이 없으면 영변도 소용없다. 만약 영변 폐기만을 들고 미국으로 돌아갔다면 트럼프는 ‘죽은 말’을 또 사왔다는 비난과 영변 이외의 핵시설은 어떻게 할 것이냐는 공격을 감당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반면 WMD 폐기 약속을 받으면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공격했던 반대파들에게 할 말이 생긴다. 영변 폐기는 실질적 비핵화 조치이지만, 정치적으로는 WMD 폐기 약속이 훨씬 잘 팔리는 상품이다. 트럼프가 그런 약속이 없는 영변 폐기를, 그것도 유엔제재의 핵심요소를 풀어주고 받아올 수는 없었다.


트럼프의 제안도 북한이 원하는 바는 아니었을 것이다. 트럼프는 ‘경제적으로 밝은 미래’를 보장하겠단 말로 북한의 WMD 포기 약속을 받아내려 했지만, 체제보장과 안보환경 변화가 정교하게 제시되지 않은 WMD 포기 약속에 김정은이 도장을 찍을 리 없다. 


트럼프가 하노이에서 보여준 태도는 변덕도, 갑작스러운 전략 변화도 아니다. 싱가포르 합의 이후 지속적으로 추구했던 내용이다. 트럼프가 싱가포르 합의를 구체화한다는 레토릭을 앞세워 실제로는 ‘싱가포르 합의 형해화’를 시도해왔음을 파악하지 못하면 지금 미국의 태도를 이해하기 어렵다. 


트럼프는 원하는 바를 얻지는 못했으나 상황을 싱가포르 합의 이전으로 되돌리는 데는 어느 정도 성공했다. 물론 ‘하노이 노딜’이 끝은 아니다. 하지만 험난한 여정의 원점으로 되돌아온 것은 사실이다. 지난 1년간 북·미는 요란하게 친분을 과시했지만 행동으로 이뤄진 것은 없다. 핵무기는커녕 중고차를 거래할 정도의 신뢰도 아직 없다. 이것이 북·미 대화가 시작된 지 1년이 지난 지금 한반도가 맞닥뜨리고 있는 냉엄한 현실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이 방문을 쾅 닫아버리고 나가지 않았다는 점, 서로의 생각이 얼마나 다른지 비로소 알게 됐다는 점이 위안거리일 뿐이다. 


앞으로가 문제다. 미국은 비핵화 과정에 북한의 의무뿐 아니라 자신들이 해야 할 의무도 있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북한은 자신들의 마지막 카드가 핵무기인 것처럼 미국의 마지막 보루는 제재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또한 미국 내 여론이 북한과의 대화를 얼마나 끔찍하게 여기는지, 트럼프가 지금 정치적으로 얼마나 무모한 길을 가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염두에 둬야 할 것도 있다. 한반도 비핵화가 매우 힘든 작업이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 트럼프가 앞으로 이 문제에 급격히 흥미를 잃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sim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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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차 북·미 정상회담이 구체화되면서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회의론과 북핵 협상 무용론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비관론과 미국은 북한의 완전한 핵폐기 대신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동결해 미국의 안보위협만을 해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는 우려가 팽배하다.

 

북한의 태도에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 북한이 말하는 비핵화와 한·미가 요구하는 ‘완전한 비핵화’가 같은 개념인지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 ‘한반도를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겠다는 지난해 9월 평양 공동선언은 주한미군 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염두에 둔 표현이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이런 의구심들은 북핵협상 무용론의 근거가 되고 있다.

 

과연 북한은 핵을 포기할 의사가 없는가. 트럼프는 정말로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을 목표로 하고 있는 것일까. 지금 단계에서는 누구도 확신을 갖고 단언하기 어려운 질문들이다. 하지만 북한의 핵폐기 의지가 불분명하고 트럼프의 속셈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대화와 협상을 중단해야 할 이유가 되지는 않는다.

 

비핵화는 북한에만 요구되는 의무가 아니다. 미국이 말하는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라는 개념 속에는 북한의 핵무기, 핵물질, 장비를 제거하는 것뿐 아니라, 북한이 핵을 포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길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드는 것도 포함돼 있다. 완전하고 검증가능하게 핵을 폐기하는 것은 북한의 의무지만, 북한이 핵을 폐기한 뒤 다시 핵무장의 유혹이나 필요를 느끼지 않도록 안정적인 안보환경을 유지하는 것은 미·중을 포함한 한반도 문제 관련국들의 의무다. 북한에 비핵화의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달라고 요구하려면 미국 역시 핵폐기 이후 안보환경을 해치지 않고 한반도 평화를 유지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북한이 ‘한반도 비핵지대화’ ‘핵위협 제거’ 등의 표현에 집착하는 것은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요구하기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미국 핵전략자산이 한반도에 미치지 않도록 만드는 것만이 핵위협을 제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기 때문이다.

 

한반도는 미국뿐 아니라 중국·러시아 등 핵강국의 틈바구니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남과 북이 중·러의 핵무기를 생존과 직결된 안보위협이라고 표현하지는 않는다. 중·러와 정상적인 국교를 맺고 있고 우호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이 미국과 우호적인 관계가 되면 미국의 핵위협이 사라지는 결과가 될 수 있다. 북한이 훗날에 대비해 미군철수와 핵우산 철폐를 주장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두려는 것은 분명해 보이지만, 실제로 그런 요구를 할 것인지는 미국과의 협상 전개와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미국이 완전한 비핵화가 아닌 핵·미사일 동결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도 섣부른 예단이다. 동결은 비핵화를 위해 거쳐야 하는 단계다. 미국의 최우선 목표가 자국에 대한 위협 해소인 것은 틀림없지만, 핵비확산체제에 대한 도전을 막아내고 국제질서를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도 포기할 수 없는 중요한 목표다. 핵·미사일 동결이 이뤄진다면 한국은 미·중을 설득하고 한국과 같은 입장에 처한 일본과도 협력해 조속히 핵폐기 단계로 넘어갈 수 있도록 역할을 해야 한다.

 

북핵 위기 발발 이후 북한이 핵문제에서 보여준 완강한 태도와 반복되어온 협상 실패, 이에 따른 불신,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진전된 북한의 핵능력 등을 감안했을 때 북한의 의도를 의심하는 것은 합리적일 수 있다. 또한 동맹의 가치를 거침없이 훼손하고 제멋대로 일을 끌고나가는 트럼프의 돈키호테식 돌진에 불안감을 느끼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도 그런 북한을 강하게 추궁할 생각이 없을 것이다. 큰일 났다. 이런 협상은 그만둬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 북핵 협상은 이미 정해진 결말을 향해 걷는 여정이 아니라 결과를 만들어가는 능동적 과정이다.

 

많은 사람들이 북핵 협상을 지지하는 이유는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정치적으로 지지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안된다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또한 문재인 정부와 트럼프 행정부의 접근법을 가급적 비판적으로 바라보려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는 혹여 잘못된 길로 갈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비판과 망하기를 바라는 저주는 구별되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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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은 한반도의 평화정착 프로세스가 시작된 의미 있는 해로 기억될 것이다. 전쟁을 불사할 듯 극한 대결로 치닫던 북한과 미국이 사상 처음으로 정상회담을 열고 공동성명을 발표한 것 하나만으로도 역사에 기록될 일이다. 이 같은 엄청난 변화에도 불구하고 내년 전망은 그리 낙관적이지 못하다. 지난 1년 동안 대화 국면을 이끌어왔던 환경과 여건이 변화 조짐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에서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신뢰구축이 필요하며 이를 통해 비핵화에 이르게 한다는 공통의 인식을 보였다. 이는 북한 입장에서는 커다란 외교적 승리다. 외형상으로 이 합의는 미국이 줄곧 주장해온 ‘선(先) 비핵화’가 아닌, 북한이 오랫동안 요구해온 ‘상호 신뢰 구축’에 방점을 찍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이 왜 이런 구조의 합의문에 서명하게 됐는지 정확한 내막은 아직도 알 수 없다. 하지만 합의 이후에도 미국이 여전히 ‘선 비핵화’ 요구를 접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미국이 전략적 결단을 내려 북한 요구를 받아들인 것이 아니라는 점은 분명해 보인다. 더욱이 미국은 싱가포르 합의를 만들어낸 원동력인 ‘톱다운 방식’에 더 이상 의존하지 않으려는 기색이 역력하다. 오히려 실무협의를 거친 합의에 더 비중을 두고 있다. 지금 북·미대화가 덜컹거리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이는 미국이 싱가포르 합의를 실패작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북한이 약속을 지키지 않아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필요하다는 존 볼턴 백악관 안보보좌관의 주장은 자신들의 실수를 감추려는 허세일 뿐 아니라 싱가포르 합의에서 잘못한 부분을 2차 정상회담을 통해 만회해야 한다는 자기고백에 가깝다. 과거 북핵 협상을 통해 축적된 미국의 경험과 자산을 활용하지 않고 자신만의 방식을 고집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싱가포르 합의 이후 대화 방식을 바꾸려는 것 자체가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음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마도 트럼프 대통령은 ‘코끼리 냉장고에 넣기 3단계 방법’처럼 핵을 없애고, 제재를 해제하고, 평화협정을 체결하면 된다는 식의 간단한 방법으로 북핵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음을 비로소 깨닫고 있는지도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서두르지 않겠다고 누누이 강조하고 있는 것은 실무협상을 통해 싱가포르 합의를 보완할 수 있는 결과가 보장되어야 김 위원장과 2차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북한이 ‘싱가포르 대첩’의 기억을 쉽게 잊을 리 없다. 북한은 북·미대화 경색의 책임이 싱가포르 합의를 수정하려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 고위관료들에게 있다고 보고 이들을 강하게 비난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조·미 수뇌분들의 신뢰’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트럼프가 또 한번 톱다운 방식으로 대화의 동력을 만들어 주기를 기대하기 때문이며, 이를 통해 싱가포르 합의의 ‘후속편’을 완성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지금의 상황을 축구 경기에 비유하자면, 미국은 상대를 얕보다 전반전에 불의의 골을 먹은 뒤 전술을 바꾸고 선수도 교체해 후반전에 임하려 하고 있고 북한은 전반전의 리드를 끝까지 지키기 위해 수비에 치중하고 있는 셈이다.

 

역사적인 첫 북·미 정상회담의 결과물인 싱가포르 합의가 북·미대화 진전을 가로막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은 실로 아이로니컬하다. 남북정상회담을 통해 북·미 정상이 만나고 싱가포르 합의를 이끌어 낸 것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 변화는 2차 북·미 정상회담을 같은 패턴으로 성사시키는 것이 점점 어려워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김 위원장의 ‘연내 서울 답방’이 무산된 것도 이 같은 기류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또한 2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해도 비핵화와 제재해제의 빅딜이 성사되고 한반도 평화에 실질적으로 기여할 수 있는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청와대와 정부 관계자들은 지금도 ‘1년 전을 되돌아보라’는 말을 자주한다. 전쟁을 걱정해야 하는 일촉즉발 위기 상황에서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초석을 놓는 극적 반전 드라마를 쓴 것은 엄청난 성과라는 것이다. 백번 맞는 말이다. 하지만 지금은 지난 1년간의 성과에 도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북·미대화 정체가 장기화될 경우 한반도 평화정착은 더욱 멀어질 뿐 아니라 정부는 남북관계와 비핵화 진전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 2018년을 역사의 한 페이지에 길이 남기려면 지난 1년간의 관성에 의존해서는 안된다. 변화된 상황에 맞는 창의력과 새로운 상상력으로 한국의 역할을 고민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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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에게 일본기업이 손해배상을 해야 한다는 지난달 30일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판결이 갖는 법적·역사적·외교적 함의는 매우 엄중하다. 한·일관계에 미칠 파장과 법리적 공방이 불가피할 뿐 아니라,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과 배치되는 판결이어서 정부에도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을 안겨주고 있다.

 

파장과 문제점을 논하기에 앞서 일제의 조선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한국의 최고법원이 명확히 재천명했다는 점이 이번 판결에서 가장 의미 있는 부분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 판결은 해방 이후 지금까지 이어져온 한반도 역사의 질곡이 고스란히 드러난 ‘상징적 사건’이다.

 

한·일관계는 애초에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 정부는 1965년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하고 국교를 정상화할 때 일제의 식민지배가 불법이라는 점을 명확히 할 수 없었다. 안보·경제적 이유로 일본과의 수교가 시급했던 탓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은 한국이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제2차 세계대전 종식과 전후질서 수립 과정에 참여하지 못함으로써 일본의 불법적 식민지배에 대한 배상을 받을 수 있는 길이 막혀버린 것에 있다.

 

13년이나 끌어 온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소송 최종 선고가 원고 승소 판결로 내려진 30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청사에서 강제징용 피해 당사자인 이춘식 할아버지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이준헌 기자

 

미국은 태평양전쟁에서 승리한 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을 통해 7년간의 일본 점령통치를 끝냈다.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으로 일본은 독립국가가 됨과 동시에 미·일 안보조약을 맺었다. 미·소 냉전에 대비한 미국의 동아시아 전략에 따라 전범국 일본에 서둘러 면죄부를 준 것이다. 당시 국제적 존재감이 미미했던 한국은 이 과정에 참여할 수 없었기 때문에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중요한 부분들은 미해결 상태로 종료됐다.

 

그럼에도 한·일관계는 상호 필요성에 의존해 유지될 수 있었다. 냉전시대를 거치는 동안에는 ‘가치를 공유하는 우방’이라는 표현까지 나왔다. 그러나 한국이 경제적으로 급성장하고 냉전구도가 해체되면서 한·일은 서로 할 말을 하기 시작했다. 이번 강제징용 판결은 이 같은 한·일관계 변화 추세의 결정판이다. 판결의 핵심은 간명하다. 일제의 식민지배는 불법이므로 강제징용도 불법이고 따라서 배상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그동안 한·일이 외면하고 회피해왔던 한·일관계의 ‘태생적 모순’을 정조준하고 있다. 53년간 덮어놓았던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렸을 뿐 아니라 ‘1965년 체제’로는 더 이상 한·일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파탄낼 수는 없다. 출발이 잘못됐으니 처음으로 돌아가 한·일관계를 근본부터 뒤집고 이미 국제적으로 뿌리내린 전후질서를 바꾸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한국은 미국 주도의 전후질서와 동아시아 전략의 희생물이기도 하지만 미국이 만들어놓은 전후질서의 그늘 아래에서 경제성장과 민주화를 이루는 혜택을 받은 것도 사실이다. 싫든 좋든 현재의 체제 안에서 해법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다.

 

한·일은 이제 1965년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협력모델을 빨리 찾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외교적 해결 노력과 국내 여론 설득을 병행할 수 있는 양국 정부의 ‘용기있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일본은 청구권협정과 한일기본조약의 문구 하나하나를 머리카락 쪼개듯 분석하고 법적 효력에만 집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한다. 한·일관계에는 법으로만 해결할 수 없는 도덕적·역사적 배경이 있음을 알면서도 ‘법적으로 다 끝난 일이니 책임질 일도 없다’는 태도를 보이는 것은 온당치 못하다.

 

한국은 일본 문제를 냉철하게 바라볼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필요하다. 국내에서 일본과 관련된 문제가 불거지면 즉각 비현실적인 강경론 일색의 반응이 나오고 합리적 토론이 불가능해진다. 한국에는 국민적 반일감정을 의도적으로 이용해 이득을 취하려는 부류, 이 같은 선동에 자극받아 대책없는 대일 강경론에 목소리를 높이는 부류, 이 같은 악순환이 잘못된 것임을 알면서도 분위기에 눌려 모른 척 침묵하는 비겁한 부류가 존재한다. 정치인·학자·언론·관료·시민단체 등 사회적으로 영향력을 가진 개인과 집단 대부분은 이 세 가지 부류 중 하나에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일본 문제에 대한 냉철하고 합리적인 담론이 형성될 수 없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한·일 모두에 무거운 숙제를 남겼다. 법리적·현실적으로 논란의 대상이 될 소지가 충분한 판결이지만 과거사 문제를 포함한 한·일관계의 근본적인 사안에 대해 양국 모두 진지하게 고민하고 미래를 위한 새로운 한·일관계를 정립하도록 촉구하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믿기에 가치 있는 판결이라고 말하고 싶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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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20일 평양에서 남북정상회담이 열리고 ‘9월 평양공동선언’이 발표될 때 전 세계 언론은 온통 비핵화 문제에 관심을 쏟았지만, 사실 이번 평양공동선언은 비핵화보다 한반도의 항구적 평화와 공동번영을 남북이 주도해 나갈 것임을 천명했다는 것에 더 많은 역사적 의미를 둬야 할 것 같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한반도에서 더 이상 전쟁은 없을 것임을 선언하고 실천 방안을 명시한 군사분야 합의서를 채택했다. 사실상 ‘남북 간의 종전선언’이다. 특히 능라도 5·1 경기장에서 문 대통령이 15만 평양 군중에게 “나와 김 위원장은 우리 강산을 영구히 핵무기와 핵위협이 없는 평화의 터전으로 만들자고 확약했다”고 선언하는 장면은 70년 분단 역사에 가장 획기적인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한반도 안보 환경의 ‘패러다임 시프트’를 알리는 자주적 선언이라고 할 만하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밤 평양 5.1 경기장에서 열린 ‘빛나는 조국’을 관람한 뒤 평양 시민들앞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서성일 기자

 

평양공동선언은 문재인 정부의 진짜 목소리를 분명하게 드러낸 회심의 카드다. 문재인 정부는 남북관계와 대북정책에서 확실한 어젠다를 갖고 있다. 그동안 한반도 주변정세와 북한의 태도, 미국과의 관계 등을 고려해 드러내지 않았을 뿐이다. ‘북한의 군사적 위협’과 이에 대응하기 위한 ‘확고한 한·미 군사동맹’은 지금까지의 한반도 안보환경에서 절대 변할 수 없는 상수였다. 문재인 정부는 국가 안위를 미국에 의존해야만 하는 이 같은 안보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그리고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꿈틀거리기 시작하는 지금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북·미 비핵화 대화가 정체된 상황에서 이 같은 공동선언이 나왔다는 것은 주목할 만하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 초기 ‘굴욕을 감내하면서 미국의 가랑이 밑을 긴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로 미국을 의식했던 것을 감안하면 실로 대담한 결정이 아닐 수 없다. 문재인 정부 내에서 남북관계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기 시작한 것은 역설적이게도 싱가포르 북·미 정상선언 이후 북·미 대화가 뒤처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국을 기다려주기보다 남북관계를 가속화하여 북·미 비핵화 대화를 끌고 나가야 한다는 주장이 강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은 8·15 경축사에서 “남북관계 진전으로 비핵화를 견인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북·미 대화 정체를 아랑곳하지 않고 3차 남북정상회담과 미국이 그토록 불편해 하는 남북공동연락사무소 개설을 강행했다. 남북관계의 질적 변화로 비핵화 과정을 앞당길 수 있다는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이 자신감은 올해 초 대화에 나서기 시작한 김 위원장의 손을 잡아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도록 견인차 역할을 한 경험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또한 북·미 모두 되돌아갈 수 있는 단계를 이미 지났다는 판단도 과감한 행보에 힘을 실어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문제에 ‘마이 웨이’를 선언하기에 가장 부담 없는 타이밍은 북·미 비핵화 논의가 확실한 궤도에 오르고 평화체제 논의가 순항하기 시작하는 시점일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그 시점까지 기다리면 너무 늦는다고 생각한 것 같다. 어쨌든 주사위는 던져졌고 앞으로가 문제다. 남북의 구상이 순항할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 김 위원장의 표현대로 ‘탄탄대로도 아니고 역풍도 각오’해야 한다. 현실적으로는 아직 평양선언을 이행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은 탓이다.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와 남북 공동번영은 남북의 의지 외에 국제적 지지도 필요하다. 미국은 평양선언의 비핵화 방안과 북·미 대화 접점 마련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내고 있지만, 평양선언 전체에 대한 평가는 다를 수 있다. 미국은 앞으로도 ‘한·미가 같은 페이지를 읽고 있는지’ 끊임없이 확인하려 할 것이다. 일차적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이 남북관계 진전을 뒷받침할 수 있을 정도로 신속히 본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한국 정부는 매우 곤란한 입장에 처할 것이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한·미 군사동맹이 장차 어떤 방향으로 성격 변화를 해야 하는지, 한반도 평화체제 이후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설정할 것인지 등에 대한 물음에 즉각 답할 수 있는 확실한 원칙을 지금 문재인 정부가 갖고 있는지 여부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은 김정은과 트럼프만이 아니다. 문재인 정부 역시 되돌릴 수 없는 선택을 했다. 퇴로가 없는 3자가 벌일 치열한 외교전이 한반도와 동북아시아의 미래를 좌우할 것이다. 맹위를 떨치던 무더위가 스러지고 하루가 다르게 하늘이 높아지고 있다. 시간은 여느 때와 같이 무심하게 흐르고 있지만 지금 한반도는 운명의 변곡점을 지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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