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사회의 특징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단어 중 하나가 ‘멜팅폿(melting pot)’이다. 인종의 용광로, 즉 다양한 인종들이 어울려 살아가는 사회란 의미다. 강대국 미국에는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피부색의 사람들이 모여 산다. 스타벅스를 가도, 동네 마트를 가도, 영화관을 가도 뜻을 알 수 없는 다양한 언어가 들린다. 나의 두 아들은 미국인들의 세금으로 운영하는 공립학교를 공짜로 다녔다. 초등학생 둘째 아들은 같은 피부색의 일본, 베트남 친구와 자주 어울렸지만 프랑스 여자 친구도 있었다. 큰아들은 공립학교이지만 인도, 중국 출신 학생들이 대부분인 고등학교에 다녔고 점심시간 식당에는 카레 냄새가 가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2일(현지시간) 백악관 집무실에서 임란 칸 파키스탄 총리와의 회담에 앞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인종적 다양화는 시간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브루킹스연구소가 2018년 미국 인구통계를 인종별로 분류한 데 따르면 백인은 전체의 60.5%였다. 유권자 중 백인 비율은 아직 절대 다수다. 지난해 11월 중간선거에서 전체 투표자 중 백인 비율은 72.8%로 압도적이었다. 하지만 젊은층에서 비백인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있고 2045년이면 백인 인구는 49.7%로 과반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백인들이 미국 사회에서 절대적 우위를 상실하고, 미국이 그야말로 소수민족의 나라가 되는 날이 머지않은 것이다.


백인들 사이에는 이 같은 미국 사회의 변화가 싫은 이들이 적지 않은 듯하다. 백인들의 지위, 미국 사회의 구조와 주류 문화가 달라지는 게 두려운 이들이다. 민주당 지지자들이 많은 버지니아 북부 지역에서도 피부색이 다른 이들을 향해 별 이유 없이 가운뎃손가락을 세우는 백인들을 어렵지 않게 목격할 수 있다. 이 불만의 백인들에게 ‘정치적 올바름’이란 굴레를 벗어던지고 노골적인 백인 중심주의를 외칠 수 있게 해준 이가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역대 공화당 정치인들도 백인 유권자들을 선동했지만 특정 그룹만 속내를 이해할 수 있는 메시지를 보내는 ‘도그 휘슬(dog whistle)’ 정도였다. 하지만 트럼프는 다르다. 이제 이민자 출신 비백인 여성 하원의원까지 “원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대놓고 공격한다. 그는 지지자들이 “그녀를 돌려보내라”고 외치는 모습을 흐뭇한 미소로 지켜본다. 트럼프 자신도 독일 이민자의 후손이고, 세 부인 중 두 명이 이민자다. 그가 공격한 여성 하원의원들이 퍼스트레이디 멜라니아와 다른 점은 피부색 하나뿐이다. 결국 트럼프는 미국은 백인 중심 나라이니 불만이 있는 비백인 이민자들은 본래 나라로 돌아가라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정말이지 뼛속까지 인종주의자다.


잇따른 인종주의 선동은 ‘정체성 정치’의 변종이다. 정체성 정치는 성, 종교, 인종, 성적지향 등 공유되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정치적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를 말한다. 여성운동, 민권운동, LGBT운동 등으로 표출됐다. 반면 트럼프는 미국 사회의 인구통계학적 다양성이 증가하면서 백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소수가 될 수 있다는 공포가 확산되는 현실을 활용한 백인 정체성 정치를 재선 전략으로 공식화했다. 트럼프와 참모들은 여기에 더해 민주당 여성 의원 등 비백인 이민자들을 향해 미국을 사랑하지 않는 급진좌파, 사회주의자라고 공격을 퍼붓는다. 자신의 정적에 빨간 딱지를 붙이는 색깔론이자 매카시즘이다.


트럼프의 백인 정체성 정치가 시대 흐름을 바꿀 수는 없다. 누구도 시간을 거꾸로 돌릴 수 없다. 미국은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이민자들의 나라이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미국 포크 음악의 아이콘 우디 거스리의 노래처럼 “이 나라는 너와 나를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인종주의와 색깔론에 기대는 트럼프의 재선 전략은 위험하다. 멜팅폿 미국 사회에서 인종적 조화를 어렵게 하고 사회의 건전성을 망가뜨릴 수 있다. 민주당 유력 대선주자 조 바이든의 비판처럼 트럼프는 재선을 위해 미국의 사회 조직을 갈기갈기 찢고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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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북한 비핵화 외교가 리얼리티 쇼처럼 이어지고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6·30 판문점 회동은 반전과 감동이 있는 최고의 한 편이었다. 방한 직전 비무장지대를 방문할 것이며 김 위원장과 만나 악수하고 싶다는 트윗을 올렸을 때만 해도 설마 진짜 만날까 생각했다. 하지만 31시간여 만에 즉흥 제안은 현실이 됐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1953년 정전협정이 체결된 지 66년 만에 상호 적대국인 북·미의 정상이 분단의 상징인 판문점에서 웃으며 손을 마주잡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땅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갔고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북한 땅을 밟은 대통령이 됐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역사적 만남이 이뤄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세번째)이 지난달 30일 판문점 자유의집에서 진행된 북·미 정상회동에 앞서 리용호 북한 외무상(왼쪽),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오른쪽)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시간을 조금만 확장하고 주인공들의 면면을 뜯어보면 쇼는 더욱 흥미롭다. 불과 2년 전만 해도 북·미관계는 최악이었다. 북한은 연일 장거리탄도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을 강행했고 미국 내에서는 북한의 핵탑재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 본토까지 도달할 수 있다는 경고가 이어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화염과 분노를 경고했고 일부 미국 언론은 대북 군사적 대응 가능성의 확률을 계산했다. 그랬던 북·미관계가 드라마처럼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북·미 정상은 이미 두 번의 정상회담을 했고, 이제는 손을 맞잡고 북한 땅까지 밟았다. 


반전 드라마의 연출자이자 주인공은 워싱턴의 아웃사이더 트럼프 대통령이다. 집권 초기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그의 변덕이 전쟁을 불러올지 모른다고 경고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해 6월12일 역사상 첫번째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켰고 노벨 평화상이란 연관 검색어까지 등장했다. 또 다른 주인공은 핵개발을 완료했다며 미국에 맞대응할 수 있다고 위협하던 김 위원장이다. 그는 미국이 지정한 대표적 인권침해국가 북한을 삼대에 이어 통치하고 있는 30대 젊은 독재자다. 그가 인민의 삶을 개선하겠다며 미국과 운명을 건 외교에 나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6월30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물론 역사상 처음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에 비해 실속이 없다는 비판은 가능하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이란 목적지는 제시됐지만 그곳으로 가기 위한 구체적 방법은 합의된 게 아직 없다. 친서와 악수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는 지적은 맞다. 하지만 전에 없던 북·미 정상의 관여 행보를 사진촬영용, TV용이라고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한국전쟁의 치유되지 않은 상처를 상징하는 판문점을 북·미 정상이 함께 밟은 것 자체가 역사적 사건이다. 70년 적대를 이어온 북·미가 한 번에 불신을 씻어낼 수는 없다. 새로운 관계 수립을 위해 두 나라는 더 많은 시간을 공유하며 서로에 대한 신뢰를 키워야 한다. 북·미 정상의 계속되는 만남은 그 동력이 될 것이다. 전략적 인내로는 북한을 변화시킬 수 없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북한 정상을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자신은 행동하고 있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자평은 정당하다. 안타깝게도 “사진 촬영 기회에 미국의 영향력을 낭비하지 말고 독재자와 러브레터를 주고받지 말라”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의 주장은 틀렸다.


아직까지 북·미 정상 주연 리얼리티 쇼의 결말을 맞히기는 어렵지만 흐름을 바꿔놓을 수 있는 결정적 시점은 예측 가능하다. 2020년 11월 미국 대선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계속 대통령으로 남을지, 재선 성공 후 어떤 대북 정책을 펼지 불확실하다. 북·미관계는 그전에 돌이킬 수 없는 지점까지 달려가야 한다. 아직 계절이 여섯 번 바뀔 시간이 남았다. 곧 실무협상이 시작될 것이고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의 길도 열렸다. 남·북·미·중 정상의 종전선언도 가능하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북·미 정상의 휴전선 회동까지 이뤄졌으니 트럼프 대통령의 평양 방문이나 김 위원장의 워싱턴 방문이 성사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리얼리티 쇼 속편이 기대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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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의 정상이 역사상 처음으로 싱가포르에서 만나 정상회담을 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당선 만큼이나 놀라운 일이었다. 당시만 해도 트럼프였기에 회담이 가능했고 트럼프이기에 뜻밖의 성과가 있을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북핵 협상 역시 트럼프식 협상 전략의 한계에 묶여있다는 지적이 다수다. 


뉴욕타임스는 협박을 기반으로 하는 트럼프의 협상법을 다음과 같이 정리했다. ‘가혹한 조치로 상대방을 위협하고, 마감 시한을 설정하고, 양보를 압박하다가, 불완전한 협상을 타결함으로써 파국을 피하고, 자체적으로 승리를 선언한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트럼프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_AP연합뉴스


북·미 비핵화 협상도 이 범주에 포함된다. 북한은 2017년 11월까지 대륙간탄도미사일 실험 발사를 이어갔고, 트럼프는 북한을 향해 ‘화염과 분노’ ‘완전한 파괴’라는 말로 위협했다. 지난해 2월 평창 동계올림픽을 계기로 한 특사외교로 국면이 급변했고 친서외교를 통해 역사적인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됐다. 양측은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 한반도 평화체제 건설,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미군 유해송환 이란 네 개의 기둥으로 이뤄진 합의를 도출했다. 하지만 합의 이행을 위한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2차 정상회담은 성과 없이 끝났고, 그럼에도 트럼프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성과로 내세우며 성공론을 펴고 있다. 


트럼프의 자화자찬에도 불구하고 냉정하게 본다면 북핵 협상은 아직 한 걸음도 제대로 떼지 못했다. 북·미는 한반도 비핵화의 최종 상태에 대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고 비핵화 달성을 위한 로드맵도 그리지 못했다. 트럼프는 선 비핵화 대 선 제재완화로 맞붙은 하노이 정상회담에서 빈손으로 걸어나오면서 북한 비핵화가 생각보다 복잡하고 시간도 많이 걸린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것이다. 


문제는 트럼프의 대북 관여 정책이 활력을 유지할 수 있을지다. 일각에서는 비핵화 협상의 교착 상태가 지속되면서 전략적 인내 전략을 택하기 시작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트럼프는 집권 후 오바마 정부의 전략적 인내가 “핵 문제가 곪아 터지게 만들었다”며 폐기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최대의 압박과 관여를 병행하는 정책 기조를 제시했다. 하지만 1년 간의 관여 정책이 한계에 봉착하자 결국 한층 강화된 대북 제재에 기반한 수정된 전략적 인내로 기울고 있다. 2020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 입장에서 미국민을 향한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막았다는 선전만으로 정치적 효과는 충분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트럼프의 대북 정책이 기존 정부의 실패한 정책들과 차별점을 만들 수 있는 지점은 바로 지금이다. 버락 오바마를 넘어서기 위해서는 비핵화와 북·미 관계 개선이란 원론적 합의를 구체적 실행으로 옮기는 첫 번째 미국 대통령이 돼야 한다. 트럼프가 진정한 협상의 기술을 보여줄 때다. 때문에 트럼프는 싱가포르 정상회담 1년만에 대북 제재만 믿고 전략적 인내로 돌아설 것이 아니라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관여에 나서야 한다. 협박에 기반한 트럼프식 협상 공식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협박이 아닌 상호 존중에 기반한 협상이 필요하다. 지지층만 보는 정치적 과시가 아닌 실질적 성과가 중요하다. 


북한은 올해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한 상태다. 트럼프가 전략적 인내로 돌아서고 북·미 대화가 결국 단절된다면 내년부터 다시 2017년 때와 같은 위기 국면이 조성될 수 있다. 대선에 가까이 갈 수록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은 더 큰 정치적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북한 역시 비핵화 로드맵 조차 내놓지 않으면서 제재 해제만 요구할 때가 아니다. 미국의 외교정책은 항공모함과 같다는 말이 있다. 방향을 선회하는 데 시간이 걸리지만 한 번 돌면 다시 방향을 틀기 어렵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 후에도 대북 관여 정책이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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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 3년차에 접어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외정책이 혼란 상태다. 북핵 협상은 위기 상태이고, 미·중 무역협상은 보복관세를 주고받는 악순환에 빠졌고, 이란과는 전쟁 위기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이 혼란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트럼프의 협상 스타일은 최근 미국 조야의 최대 관심사인 이란 문제에서 확인된다. 그는 20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이란과의 협상준비 보도는 가짜뉴스”라며 협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전날에는 “이란이 싸우길 원한다면 그것은 이란의 공식적인 종말이 될 것”이라고 위협했다. 이라크 바그다드의 미국 대사관 근처에 로켓 포탄이 날아든 데 대한 반응이었다. 트럼프는 멀쩡하게 지켜지던 이란 핵합의를 파기하고, 이란의 원유수출 금지 제재를 부활하고, 이란 정부가 운영하는 군대를 테러단체로 지정했다. 이란이 반발하자 항공모함과 B-52 폭격기를 급파했다. 그러면서 뒤로는 대화를 모색 중이다. 백악관은 이란에서 미국 대표부 역할을 하고 있는 스위스 정부에 직통 전화번호를 알려주고 트럼프가 전화를 기다린다고 전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CNN은 보도했다.


대북 정책에도 같은 협상 패턴이 적용됐다. 그는 2017년 여름 북한에 대해 “완전한 파괴”와 “화염과 분노”를 위협했다. 하지만 정상회담이 시작된 후에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사랑에 빠졌다”며 180도 달라졌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좋은 관계를 강조하면서 한편에선 관세폭탄을 퍼붓고 있는 미·중 무역협상에서도 전형적인 스타일을 볼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4일 루이지애나주 방문을 마치고 백악관에 귀환하고 있다. 워싱턴/AP연합뉴스


트럼프의 협상법은 이른바 ‘미치광이 전략(madman strategy)’에 비유된다. 미국 대통령이 핵전쟁도 일으킬 수 있는 위험한 인물이라고 상대국들에 믿게 해서 쉽게 저항하지 못하게 하려는 전략이다. 리처드 닉슨 정부 당시 헨리 키신저 국무장관이 고안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스콧 케네디 선임고문은 트럼프의 미·중 무역협상을 ‘미친 삼촌 전략(crazy uncle strategy)’으로 평가했다. 테리 매컬리프 버지니아 주지사는 하루 종일 폭탄 트위터를 날리는 트럼프를 향해 “다락방에 사는 미친 삼촌 같다”고 말했다.


극단적인 대결로 치닫는 치킨게임에서 미치광이 전략은 통할 수 있다. 진심을 알 수 없는 트럼프의 발언들은 예측 불가능성을 키워서 협상력을 높인다. 트럼프이기 때문에 무슨 일을 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상당하다. 실제 트럼프의 전격적인 1차 북·미 정상회담 취소 발표에 김정은은 공손한 표현의 친서를 보낸 바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왼쪽에서 두번째)이 20일 장시성 간저우시에 있는 희토류 생산업체 진리영구자석과기유한공사에서 희토류 생산시설을 둘러보고 있다. 간저우_신화연합뉴스


하지만 한계도 분명하다. 이 전략은 한두 번은 몰라도 계속해서 통하지는 않는다. 트럼프의 예측 불가능성은 이제 예측 가능한 스타일이 됐다. 실제 중국, 북한, 이란 어느 나라도 트럼프의 압박에 굴복하지 않는다. 케네디는 “트럼프의 미친 삼촌 전략은 피로감뿐 아니라 듣는 이들이 그의 폭발에 익숙해지고, 그 폭발이 순간적 불만인지 실질적 위협인지를 구분하는 데 어려움을 겪으면서 무색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게다가 집권 3년차에 접어들면서 트럼프의 전략은 완전히 노출됐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데이비드 이그나시우스는 “트럼프 대외정책의 문제는 집권 2년이 넘으면서 해외 국가들이 그를 간파했다는 점”이라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트럼프의 파괴적인 스타일은 중국과 북한 정책에서 수익률을 떨어트렸다”고 지적했다. 또 강경책과 외교 사이를 오가는 그의 언급이 “한때 협상력을 만들어 줬지만 이제는 혼란만 야기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식 협상의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예측 불가능성은 미국의 신뢰 추락으로, 특히 불확실성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 치킨게임 당사자들이 모두 미치광이 전략을 구사한다면 상황은 더욱 위험해진다. 트럼프는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백악관에는 ‘전쟁을 속삭이는 자’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도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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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만들겠다’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하면서 미국 정치의 화두만이 아니라 주인공들도 과거로 돌아간 모습이다. 트럼프가 백인 전성시대의 향수를 앞세워 70대 대통령 시대를 열더니 이제는 민주당에서도 70대 후보들이 선두로 나섰다.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이 민주당 대권 도전을 선언하면서 워싱턴에서 노인정치(gerontocracy) 논란이 일고 있다. 올해 72세인 트럼프는 76세인 바이든이 출마를 선언한 지난 25일 트위터에 “졸린(sleepy) 조, 레이스에 온 것을 환영한다”고 적었다. 바이든이 기운 없고 졸린 노인처럼 보인다며 놀린 것이다. 그는 다음날에도 백악관 기자들을 만나 바이든에 비해 자신은 “젊고 활기찬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바이든도 응수했다. 그는 ABC에서 ‘졸린 조’라는 호칭은 처음 들었다며 자신은 ‘하이퍼(hyper) 조’로 불린다고 말했다. 자신은 활력이 넘치는 사람이란 것이다. 


차기 대권을 노리는 여야의 선두 주자들이 모두 70대다. 트럼프는 취임 기준 70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 기록을 세웠다.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69세 기록을 갈아치웠다. 재선에 성공한다면 2021년 재임식 때는 74세로 본인 기록을 다시 깨게 된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1위인 바이든은 당선되면 78세다. 취임 기준으로 이미 레이건이 재임 후 퇴임할 때보다 한 살 더 많다. 젊은층의 지지 열기 덕에 나이가 부각되지는 않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미친(crazy) 버니’라는 별명을 지어준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은 현재 77세로 여야 후보들을 통틀어 최고령이다. 민주당 대선후보 선호도 1, 2위가 모두 70대 후반으로 80대 대통령 시대를 열 수 있는 사람인 셈이다. 


이 정도면 고령 문제를 지적할 만하다.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리처드 코언은 대놓고 “샌더스와 바이든은 대통령이 되기에는 나이가 너무 많다”고 반대한다. 그는 “시대정신은 항상 움직인다. 당신이 70세가 넘었다면 그것은 이미 당신을 지나갔다고 봐야 한다”고 말한다. 바이든이 모바일 메신저 스냅챗을 아침 시리얼 정도로 알고, 샌더스가 인기 래퍼 드레이크를 영국 해적으로 알아도 이상할 게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중간선거로 하원의원의 평균 나이가 10세 낮아진 것을 보면 대선후보 고령화는 시대적 요구에도 맞지 않다. 


물론 건강하고 지적 능력이 유지된다면 생물학적 나이는 문제될 게 없다는 반론도 가능하다. 73세로 재선에 도전하던 레이건이 56세의 월터 먼데일 후보가 “나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자 “이번 선거에서 나이를 문제 삼을 생각은 없다”며 먼데일이 너무 젊고 경험이 없어도 문제 삼지 않겠다고 멋있게 되돌려준 사례도 있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프랭크 브루니는 ‘노인정치를 변호하며’라는 칼럼에서 올해 78세인 민주당 1인자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모범 사례로 들며 “나이 많은 게 더 좋을 수도 있다”고 주장한다.


70대 대통령 시대의 진짜 문제는 물리적 나이만이 아니라 미국 정치의 방향성에 있다. 버락 오바마라는 40대 흑인 대통령의 집권으로 미래를 말하던 미국 정치가 불과 몇 년 만에 백인들의 추억 되살리기 경쟁으로 후퇴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미국 사회가 미래에 대한 개척과 모험을 원하는 역동의 시대를 지나 과거의 영광을 그리워하는 황혼기에 접어들었음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다. 사실 백인들의 풍요로운 과거를 되돌려주겠다는 트럼프의 등장으로 미국의 역주행은 이미 예고됐다. 그 역주행을 멈추겠다고 나선 바이든 역시 미래를 말하기보다는 트럼프식이 아닌 민주당 버전의 옛날 미국을 되살리겠다고 강조할 뿐이다. 미국의 대선전이 비전 경쟁이 아니라 과거 해석 경쟁이 된 듯하다. 어쩌면 황혼은 미국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 현실일지도 모르겠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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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2016년 대선과 2018년 중간선거를 지켜보며 미국의 선거제도에 보완할 지점이 적지 않다는 인상을 받았다. 미국 정치권 내에서도 투표권 제약, 게리맨더링 등 제도 관련 시비가 이어지고 있다. 2020년 대선전이 시작되면서 제도 보완 논란은 벌써 점화됐다. 미국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인 선거인단제도(electoral college) 폐지 공방이 대표적이다. 


선거인단제 폐지를 앞장서서 공론화하는 인물은 대선 출마를 선언한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이다. 그는 지난달 18일 타운홀 미팅에서 “모든 미국 시민의 투표권을 보호하기 위해 개헌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선 출마를 선언한 커스틴 질리브랜드 상원의원과 브라이언 슐츠, 다이앤 파인스타인 등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지난 3일 선거인단제를 폐지하는 헌법수정안을 제안했다. 대선 출마를 공식화한 카말라 해리스, 코리 부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베토 오르어크 전 하원의원 등도 선거인단제 보완에 긍정적 입장을 밝혔다.


선거인단제는 각 주에서 상·하원 의원 수 535명(상원 100명, 하원 435명)과 워싱턴 3명 등 538명의 투표인단을 통해 대통령을 선출하는 제도를 말한다. 주별 선거에서 1등을 차지한 대선 후보는 그 지역 선거인단을 독식한다. 승자독식제로 전체 유권자 득표수에서는 앞서고 선거인단 확보에서는 패하는 현상이 벌어진다. 민주당은 21세기 들어 두 번이나 그 피해를 봤다. 2000년 앨 고어 후보와 지난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 후보는 각각 공화당 후보보다 54만표와 290만표 더 얻고도 패배했다.


승자독식의 문제는 분명하다. 절반에 가까운 득표를 해도 1등에 0.1%라도 뒤지면 한 명의 선거인단도 확보할 수 없다. 지난 대선에서 클린턴 후보는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218만표를 얻었지만 도널드 트럼프 후보에게 3%포인트 뒤져 한 명의 선거인단도 얻지 못했다. 클린턴을 지지한 수백만표는 사표가 된 것이다. 몇 개의 스윙스테이트(경합주)에만 집중하는 선거전이 펼쳐지는 문제도 있다. 


표의 등가성이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은 더 심각한 문제다. 인구에 상관없이 각주별로 상원의원 2명을 두는 제도의 영향으로 주별 선거인단은 인구에 정비례하지 않는다. 미국 통계국의 2016년 커뮤니티 조사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인구의 84%가 백인인 와이오밍주에서는 주민 18만명당 선거인단 1표가 배정됐다. 반면 62%가 소수인종인 캘리포니아주에는 주민 67만명당 1표가 주어졌다. 선거인단제는 도시 지역의 소수인종 유권자를 저평가하고 시골 지역의 백인 유권자들을 유리하게 만들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헌법 개정은 현재로선 쉽지 않아 보인다. 대선 때마다 되풀이되는 논란에 그칠 수도 있다. 헌법 개정을 위해서는 상·하원의 3분의 2 이상과 전체 주의 4분의 3인 38개 주 이상이 동의해야 한다. 공화당은 개헌에 부정적이다. 사우스캐롤라이나주가 지역구인 린지 그레이엄 공화당 상원의원은 민주당의 요구는 “정치에서 시골 지역의 역향력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비판했다. 시골 백인 유권자를 지지층으로 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이 제도를 포기할 이유가 없다. 2012년에는 선거인단제가 “민주주의의 재앙”이라고 비판했던 그는 이 제도 덕분에 대선에서 승리한 후에는 “천재적”이라고 입장을 바꿨다. 그는 지난달 20일 트위터에서 “인기투표를 하면 당신은 거대 주만 찾아갈 것이고 작은 주들과 중서부는 모든 힘을 잃을 것”이라며 폐지론에 대해 반대를 밝혔다.


선거인단제는 북부에 비해 인구수가 적은 남부 지방의 하원 비중을 높여주기 위해 노예 인구의 5분의 3을 유권자로 계산하는 소위 5분의 3 타협이 이뤄지던 시대에 만들어진 제도다. 미국적인 게 모두 민주적인 것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시대에 맞게 변화하고 진화해야 한다. 미국 대선 제도도 예외는 아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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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비핵화 대화가 본격화되면서 20년 전의 ‘페리 프로세스’가 다시 주목받고 있다. 1998년 북한이 대포동 1호 미사일을 발사하자 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은 윌리엄 페리 전 국방장관을 대북정책조정관으로 임명해 대북정책을 재검토하도록 했다. 페리 전 장관은 1999년 10월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을 권고하는 보고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보고서는 북한이 핵과 장거리미사일을 제거하면 북·미 관계를 정상화하고 경제제재를 완화하는 등 “북한에 기회를 제공하는 긍정적인 단계를 취할 것”을 권고했다.

 

최근 북·미 관계는 마치 페리 프로세스가 추진되던 20년 전의 데자뷔를 보는 듯하다. 2000년 10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조명록 국방위 부위원장이 사상 처음으로 워싱턴을 방문해 미국 대통령과 면담했다.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은 그 18년 후인 지난해 5월에 이어 지난 17~19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특사 자격으로 워싱턴을 찾아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2000년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이 미국 각료 중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해 북·미 정상회담 개최를 논의했다. 지난해 4월에는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 겸 국무장관 내정자가 트럼프 대통령의 특사로 북한을 찾았고 정상회담 준비가 본격화됐다.

 

페리 보고서는 현시점에서도 참고할 부분이 많다. 보고서는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와 미사일 개발 중단이란 목표를 이루기 위한 방법론으로 단계적이고 상호적인 접근법을 제안한다. 북·미가 역사적 정상회담으로 완전한 비핵화와 새로운 북·미 관계 수립에 합의하고도 이행에선 한발도 나아가지 못한 것은 이 충고를 무시했기 때문이다. 선핵폐기론은 북·미 불신의 역사를 고려할 때 현실성 없는 항복 요구에 가깝다. 트럼프 정부가 2차 정상회담을 앞두고 비핵화와 상응조치의 단계적 이행을 수용한 것은 지극히 현실적인 선택이다.

 

물론 시간이 흘렀고 상황도 달라졌다. 북한은 2017년 말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과거 핵개발 권리를 주장하는 북한과 협상했다면 이제는 핵 프로그램을 보유한 북한과 협상해야 한다. 그만큼 협상은 더 어려워졌다. 회의론이 커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하지만 이상론만 설파하며 상황 악화를 방치해서도 안된다. 미국인의 안전을 우선시해야 하는 트럼프 정부는 북한의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실어 나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개발을 중단시키는 게 급선무다. 북한이 가진 핵무기를 봉쇄하고 억지하는 게 우선이다. 비현실적 기대는 협상을 망칠 뿐이다.

 

페리 프로세스는 제대로 시행도 못해보고 폐기됐다. 대선 패배로 클린턴 대통령의 방북은 무산됐다. 후임 조지 W 부시 대통령은 2001년 3월 미국을 찾은 김대중 대통령에게 북한과의 대화 중단을 통보했다. 그는 다음해 국정연설에서 북한을 악의 축으로 규정했다. 페리 전 장관은 회고록에서 부시 대통령의 선택과 이어진 북한의 핵개발을 두고 “미국 역사상 가장 실패한 외교”라고 지적했다.

 

20년 만에 북한 비핵화와 북·미 관계 정상화를 위한 외교전이 다시 시작됐다. 북한에 대한 군사적 옵션까지 경고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고 있다. 그는 지난해 6월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열고 ‘트럼프 프로세스’의 본격화를 알렸다. 정상국가를 바라는 북한이나 핵위협을 제거하려는 미국이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일지 모른다. 기회의 창을 계속 열어두기 위해서는 2월 말~3월 초로 예상되는 2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프로세스를 돌이킬 수 없는 단계로 진입시켜야 한다. 이제는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 다행히 공화당 출신 대통령의 평화 프로세스는 민주당에서도 부정하기 어려운 만큼 생명력이 더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결국 트럼프 프로세스는 페리 프로세스의 실패를 극복할 수 있을까. 신뢰하기는 어렵지만 그렇다고 희망을 버리지는 말자.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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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대 미국 연방의회가 지난 3일(현지시간) 출범했다. 의원 선서가 있던 하원의 첫날 풍경은 인상적이었다. 검은색 정장으로 가득했던 본회의장에는 밝고 다양한 색상의 의상이 넘쳐났다. 민주당 진영이 특히 그랬다. 역대 최대인 102명의 여성 의원들 덕분이었다.

 

새내기 여성 의원들 중에서도 유난히 주목받은 인물이 있었다. 브롱스와 퀸스를 포함하는 뉴욕 14지구 출신 29세 최연소 하원의원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표방하는 그는 민주당의 이념적 정체성을 평가할 상징적 인물로 떠올랐다.

 

코르테스는 푸에르토리코 출신 부모를 둔 히스패닉계다. 일상을 팔로어들과 공유하는 인스타그램 덕후이기도 하다. 그는 보스턴대를 졸업한 후 고향인 뉴욕 브롱스에서 웨이트리스, 바텐더로 생계를 꾸리며 시민운동을 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지지자 그룹인 ‘정의 민주당원들’의 지원으로 선거에 출마했고, 당내 예비선거 때부터 돌풍을 일으키며 10선의 거물 현역의원을 꺾었다.

 

의회 개원 첫날 하얀색 바지 정장을 입은 신인 코르테스가 핑크색 치마 정장을 입은 민주당 주류의 상징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포옹하는 장면은 많은 이들의 시선을 끌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는 이렇게 묘사했다. “경력의 정점을 찍은 78세 펠로시와 막 경력을 시작한 29세 통제불가 코르테스, 두 치열한 여성이 대통령 집무실의 72세 네안데르탈인과 싸우기 위해 힘을 합쳤다.”

 

코르테스는 샌더스 키즈답게 이념적으로 민주당 내에서 가장 왼쪽에 위치한다. 그는 의료 분야에서는 ‘모두를 위한 의료보장’, 교육에서는 ‘공립대 등록금 무료화’, 기후변화 부문에서는 ‘친환경 뉴딜’, 노동에서는 ‘보장된 일자리 프로그램’을 내세운다. 국가가 세금으로 모든 국민의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기후변화와 싸우기 위해 정부 투자를 획기적으로 늘려 12년 안에 화석연료 제로(0)로 산업구조를 재편할 것을 요구한다. 이를 위해 부자들에게 소득의 최고 70%까지 세금을 물리자고 말한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눈에 그는 뭣도 모르는 위험한 사회주의자다. 의원 선서 다음날 트위터에 화제가 된 코르테스의 동영상은 그에 대한 보수 진영의 반감을 그대로 보여줬다. ‘어나니머스Q’라는 트위터 계정은 코르테스 의원의 대학 시절 춤추는 모습이 담긴 영상을 공개하며 “여기 미국인이 좋아하는 똑똑한 체하지만 사실 멍청하게 행동하는 사회주의자가 있다”고 적었다. 코르테스는 다음날 트위터에 의회 집무실 앞에서 춤추는 자신의 모습을 담은 동영상을 올리며 역공했다. “공화당원들은 여성이 춤추는 걸 추잡하다고 생각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들이 여성 의원 역시 춤을 춘다는 걸 알게 될 때까지 기다리자.” 여론은 코르테스 완승으로 결판났다.

 

오히려 진짜 싸움은 민주당 내부 투쟁일지 모른다. 민주당 주류 시각에서 그는 당의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는 좌파 급진주의자다. 크리스 쿤스 민주당 상원의원은 “만약 남은 2년 동안 비현실적 제안 내놓기 경쟁을 한다면 우리가 집권해야 한다고 말하기 어렵게 될 것”이라며 당내 좌편향을 비판했다. 좌파 티파티를 대표하는 코르테스가 민주당 주류와의 싸움에서 이기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실제 그는 친환경 뉴딜 실현을 위한 위원회 설치와 하원 운영규칙 문제를 두고 펠로시와 맞붙었지만 모두 패했다.

 

코르테스는 너무 급진적인 것 아니냐는 CBS 앤더슨 쿠퍼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 나라를 바꾼 사람들은 모두 급진주의자였다. 에이브러햄 링컨은 노예해방선언에 서명하는 급진적 결정을 했고,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사회보장 프로그램을 도입하는 급진적 결정을 했다.” 코르테스는 영감을 주는 이상주의적 반항인이 될 수 있을까 아니면 순진한 시대착오적 반짝 신인으로 끝날까. 초선의원 코르테스의 투쟁 결과가 궁금하다.

 

<박영환 워싱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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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거짓말을 잘한다. 워싱턴포스트의 팩트체크에 따르면 그는 취임 후 지난 10월 말까지 649일 동안 6420개의 거짓말이나 오해를 살 수 있는 주장을 했다. 하루 평균 10개의 거짓말을 한 셈이다. 지난 10월1일 한 정치 유세에서는 84가지 거짓말을 쏟아냈다. 중간선거 기간에는 하루에 평균 30건의 거짓말을 했다. 이 정도면 거의 입만 열면 ‘뻥’이다. 밥 우드워드와 함께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해 퓰리처상을 받은 칼 번스틴은 역대 미국 대통령들 중에서도 트럼프의 거짓말은 특별하다고 평가한다. “우리는 자신의 정책과 믿음을 실현하고 세계에 관여하는 데 있어 거짓말과 거짓을 기본 수단으로 활용하는 이런 대통령을 가진 적이 없다.”

 

도널들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숨 쉬듯이 계속되는 트럼프의 거짓말이 국내 문제에만 국한될 리 없다. 일반적으로도 대통령의 거짓말은 대외 정책과 관련된 이슈에서 국내 유권자들을 상대로 자주 목격된다고 한다. 존 미어샤이머 시카고대 교수는 <왜 리더들은 거짓말을 하는가>라는 책에서 세계 정상들의 대외정책 관련 거짓말들을 분석한다. 그는 서로를 늘 의심하고 상대방의 말을 검증할 수 있는 정상들 간에는 거짓말을 할 동기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반면 권위주의 국가나 민주주의 국가 구분 없이 지도자들은 대외정책을 국내정치용으로 활용하기 위해 대중에게 거짓말을 할 동기가 충분하다고 결론내린다. 거짓말에는 여론을 관리하기 위한 정보 조작과 숨기기가 포함된다. 정부와 대중 사이의 정보 불균형은 대통령의 거짓말을 가능하게 하는 요인이다.

 

트럼프의 북한 관련 발언은 어떻게 봐야 하나. 그는 취임 첫해 유엔총회 연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로켓맨’이라고 조롱하고 북한을 완전히 파괴하겠다고 위협했다. 그러던 그가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김정은과 정상회담을 했고 입장을 180도 바꿨다. 공동성명에는 북한의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가 포함되지 않았다. 북한은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 등을 앞세우면서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트럼프는 이를 두고 “더 이상 북한의 핵 위협은 없다”고 선언했다. 미국 언론들은 그가 합의문을 이해하지 못했거나 거짓말을 한다고 지적했다.

 

실제 북·미는 합의문 이행을 두고 6개월이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하고 있다. 제재 문제가 걸림돌이 되면서 협상마저 중단됐다. 그럼에도 트럼프는 내년 1월이나 2월에 김정은과 2차 정상회담을 할 것이라면서 “우리는 잘하고 있다”고 자신한다. 북·미 간의 내밀한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 없으니 그의 말이 거짓말인지 확신하기는 어렵다. 다만 잘되고 있다는 말이 현실과 부합하지 않는다는 비판은 점점 강해지고 있다. 미국 주류 언론과 리버럴 싱크탱크들은 북한의 미사일 개발 등을 소개하며 트럼프의 대북 낙관론이 근거 없음을 증명하려고 노력 중이다.

 

여기까지가 집권 후반기에 들어서는 트럼프 정부의 대북 정책 현황이다. 트럼프의 북한 관련 발언이 현실과 거리가 있더라도 나름의 의도가 있을 수 있으니 무조건 비난할 필요는 없다. 국내적으로 외교 성과물을 내세우려는 정치적 의도일 수 있고, 북한을 협상에 묶어두고 상황 악화를 막으려는 전략일 수도 있다. 문제는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거짓말은 오래가기 어렵다는 점이다. 보스턴글로브는 지난해 트럼프 거짓말의 사이클을 분석했다. 거짓말, 허세, 현실 시인, 화제 전환의 4단계다. 이 분석이 맞다면 트럼프는 어느 순간 대북 낙관론은 허풍이었다고 시인하고 강경론으로 급선회할 수도 있다. 트럼프가 거짓말을 계속할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성과가 절실한 이유다. 하루빨리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이 재개되고, 내년 초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한 준비가 시작돼야 한다. 북한과 잘하고 있다는 트럼프의 허풍이 내년에도 계속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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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미국 중간선거 투표날이다. 이번 선거의 주인공은 공화당과 민주당이다. 공화당의 상·하원과 주지사 권력 독점이 계속될지, 민주당이 하원 권력을 분점할 수 있을지 확인할 순간이다. 하지만 이면을 보면 이번 선거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선거다. 트럼프 정권 2년에 대한 중간평가이자 그가 제시한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유권자들의 승인 여부를 확인할 기회다.

 

미국 유권자들에게 이번 선거의 의미를 물어보면 꼭 언급하는 단어가 트럼프다. 지난 주말 하원의원 선거 박빙지역인 버지니아 7지구에서 만난 유권자들도 대부분 트럼프 대통령을 거론했다. 그가 여론의 중심으로 부상한 배경에는 반이민 이슈가 자리잡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선거 직전 6일간 11개 주를 돌며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이름의 공화당 후보 지원 유세를 이어갔다. 백인들로 가득한 유세 현장에서 그가 제시한 공화당 선택의 가장 큰 근거는 반이민이었다. 강경한 반이민 정책은 그를 유력 정치인으로 부각시킨 배경이자 대통령 당선의 원동력이었다. 그는 이번 선거에서도 자신을 “민족주의자”라고 부르며 강한 반이민 레토릭을 쏟아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간선거 전날인 5일(현지시간) 인디애나주 포트웨인에서 지원유세를 앞두고 무대에서 대기하고 있다. 포트웨인 _ AFP연합뉴스

 

그는 미국 국경에 도달하지도 못한 중남미 이민자 행렬을 “침략”이라고 규정하고 군대 파견을 명령했다. 이민자들이 돌이라도 던진다면 발포할 수 있다고 위협해 논란을 키웠다. 미국에서 태어난 사람들에게 시민권을 주는 헌법적 권리인 출생시민권을 폐기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트위터에 미국 경찰을 살해한 멕시코 불법이민자가 등장하는 인종차별 정치 광고도 올렸다. 광고는 ‘민주당이 그를 우리나라로 들여보냈다’고 주장했다. 이민자들은 미국인을 죽일 것이고, 그것은 민주당 때문이란 의미다. 이민 이슈로 미국을 둘로 쪼개고 반이민을 원하는 지지층을 결집시키려는 의도다. 시대에 맞게 이민 제도를 손볼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인종주의는 다른 문제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 레토릭은 미국과 미국인의 정체성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지고 있다.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이고, 세계 각지에서 건너온 다양한 인종의 이민자들이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며 공존하는 멜팅팟(melting pot)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원하는 미국은 다른 나라다. 그는 반이민 구호를 통해 백인들의 속마음에 숨어 있던 백인 우월주의, 백인들의 위대했던 과거에 대한 향수를 노골적으로 자극하고 있다. 역사학자 더글러스 브링클리는 워싱턴포스트에서 “남북전쟁 이후로 멜팅팟 이야기를 파괴하려는 대통령은 본 적이 없다. 그것은 자부심의 요인이었다”면서 “하지만 트럼프는 구분을 원한다. 진짜 미국인과 가짜 미국인이 있다”고 평가했다. 트럼프가 말하는 진짜 미국인은 백인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백인 지지층 결집을 위한 트럼프식 정체성 정치(identity politics)는 미국 사회의 분열과 갈등을 키울 수밖에 없다. 그가 말하는 반이민은 결국 절대적 지위를 잃어가고 있는 백인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백인 우월주의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 미국은 이제 백인의 나라도 아니다. 백인 인구는 60%로 아직 다수이지만, 2007년 이후 출생한 소수인종 인구는 이미 백인 인구를 넘어섰다.

 

다행히 공화당 내부에서도 “미국은 이민자의 나라”라며 트럼프 대통령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의 레토릭이 골수 지지층 결집에 유리하겠지만 중도층의 반공화당 투표를 조장할 것이란 분석도 적지 않다. 미국 사회가 백인 우월주의 유혹을 떨쳐낼 수 있을지는 곧 확인된다. 미국 유권자들이 지난 대선에 이어 또 한번 트럼프 대통령의 반이민으로 포장된 백인 우월주의에 손을 들어준다면 그들이 원하는 위대한 미국은 더욱 멀어질 것이다. 개방성과 포용성을 상실한 미국은 더 이상 제국이 아니다. 트럼프 대통령 집권 이후 아메리카 제국이 내부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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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우드워드의 신간 <공포>가 휩쓸고 간 워싱턴에서 최근 떠오르는 화제는 래퍼 카니예 웨스트와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의 대결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지지자인 웨스트는 지난 1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트럼프 대통령을 만났다. 그는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라고 쓰여진 빨간 모자를 쓰고 백악관을 찾아가 트럼프 대통령을 “형제”라고 부르며 브로맨스를 자랑했다. 그는 “이 모자를 쓰면 슈퍼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며 빨간 모자의 힘을 묘사했고, “트럼프는 영웅의 여정을 밟고 있다”고 칭찬했다. 그는 노예제를 금지한 수정헌법 13조 무용론도 폈다.

 

그보다 며칠 전인 6일 스위프트는 인스타그램에 글을 올려 자신의 고향인 테네시주 중간선거에서 민주당 상·하원 후보 지지를 선언했다. 그는 민주당 필 브레드슨 상원의원 후보의 상대인 공화당 마샤 블랜번 후보를 직접적으로 비판했다. “블랙번의 의회 투표 기록은 나를 두렵게 만들었다. 그는 남녀동등임금법에 반대했고, 여성폭력방지 법안에도 반대했다. 그는 업주들이 동성 커플에 대한 서비스를 거부할 권리가 있다고 믿는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팔로어들에게 유권자 등록을 하라고 종용했다.

 

40대 흑인 남성 웨스트와 20대 백인 여성 스위프트의 엇갈린 선택은 둘의 악연과 맞물려 중간선거 최고의 대결로 화제가 되고 있다. 둘의 악연은 2009년 MTV 비디오뮤직어워드(VMA)에서 시작됐다. 웨스트는 신인 스위프트가 최고 여성 가수 비디오상을 받자 시상식 무대로 올라가 마이크를 빼앗고 “비욘세 최고”를 외쳤다. 이후 두 사람은 신곡에 상대를 ‘디스’하는 내용을 꾸준히 담아왔다.

 

두 사람의 변화도 흥미롭다. 시카고 출신인 웨스트는 저소득 흑인들의 문맹률을 낮추기 위한 재단을 설립하는 등 흑인 인권 증진을 강조해왔다. 2005년에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을 향해 “흑인에 대해 신경쓰지 않는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하지만 그는 트럼프 대통령의 인종주의적 발언이나 정책에는 유독 신경쓰지 않는 모습이다. 심지어 지난 5월에는 “노예제가 400년 지속됐으면 선택”이라며 노예제를 흑인의 책임으로 돌렸다가 비난에 휩싸였다.

 

반면 스위프트는 비정치적 연예인이었다. 그는 지난 대선에서 알트라이트 백인우월주의자들이 자신을 ‘아리아족 여신’으로 묘사하며 인종주의적 의제 고취에 활용할 때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침묵하지 않겠다며 셀러브리티(셀럽) 영향력의 정치적 활용을 시작했다. “나는 피부 색깔과 성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인들의 고귀함을 위해 싸울 의지가 없는 사람에게는 투표하지 않겠다.”

 

둘의 정치적 행동에 대한 반응은 엇갈린다. 스위프트의 정치참여는 호응을 얻고 있다. 그의 유권자 등록 종용 후 이틀 만에 미국 전역에서 16만6000명이 추가로 유권자 등록을 했고, 그중 6만2000명 이상이 테네시주에 거주하고 있다. 신규 등록자의 42%가 스위프트의 팬층인 18~24세의 젊은 유권자들이다. 반면 웨스트는 논란은 일으켰지만 팬들을 트럼프 편에 서게 하지는 못할 듯하다. CNN에 출연한 흑인 패널들은 오히려 웨스트를 “관심병자” “흑인이 글을 못 읽을 때 생기는 현상”이라고 비난한다. 친트럼프 채널인 폭스뉴스가 흑인 보수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고 치켜세울 뿐이다.

 

식상하지만 이들이 주는 교훈은 있다. 둘의 사례는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호응을 얻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을 갖춰야 할지를 묻게 한다. 셀럽들의 정치참여가 권력자의 병풍 역할에 그치거나 권력자와의 친분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활용된다면 냉소적 반응을 받기 십상이다. 웨스트가 그 사례다. 더불어 셀럽들의 자유로운 정치적 소신 표명은 환영이지만, 그들을 좋아하는 것과 그들의 정치적 선택을 좇아가는 것은 다른 문제라는 점도 이 기회에 한번 더 생각해보자.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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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정부 정책의 연속성을 좌우하는 계기가 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정부 입장에서도 11월 중간선거는 그래서 중요하다. 공화당이 다수당 지위를 잃는다면 트럼프 대통령의 국정운영 동력은 크게 약화될 수 있다. 북핵 외교도 영향받을 대상 중 하나다.

 

최근 워싱턴의 움직임들은 50일도 남지 않은 중간선거에 맞춰지고 있다. 임기의 4분의 1을 골프장에서 보낸 트럼프가 지난 주말 백악관을 지키며 남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대응을 지휘했다. 반면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연일 트럼프 정부의 난맥상을 고발하며 반트럼프 여론을 키우고 있다. 현재로선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라는 게 대체적 평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6월12일 싱가포르에서 열린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나란히 서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싱가포르_AP연합뉴스

 

출간 첫날인 지난 11일(현지시간) 미국에서만 75만부가 팔린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의 <공포:백악관의 트럼프> 출간과 지난 5일 뉴욕타임스에 익명으로 실린 트럼프 정부 고위 당국자의 칼럼은 트럼프의 위기를 잘 보여준다. 우드워드는 트럼프를 통제하는 정부 내 ‘어른들’의 역할, 뉴욕타임스 칼럼은 트럼프의 정책을 좌절시키기 위한 ‘레지스탕스’의 존재를 공개했다.

 

로버트 뮬러 러시아 게이트 특검은 트럼프 정부를 흔드는 가장 큰 손이다. 트럼프 대선 캠프 선대본부장이었고 특검의 기소 1호인 폴 매너포트는 최근 자신의 유죄를 인정하고 감형받기 위해 특검 수사에 협조하기로 했다. 하루에 수십건씩 올라오는 트럼프의 특검 비판 트위터는 커지는 위기감을 보여준다. 여기에 트럼프의 두번째 연방대법관 지명자인 브렛 캐버노는 고교 시절 성폭행 미수가 폭로되면서 인준 위기를 맞고 있다. 상황이 이러니 16일 갤럽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지지율은 38%로 추락했다.

 

문제는 트럼프의 정치적 위기가 북·미 대화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6·12 북·미 정상회담 이후 석 달이 넘게 북·미는 완전한 비핵화를 위한 구체적 행동에서는 한 걸음도 전진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비핵화 협상의 모멘텀이 유지되는 것은 트럼프 때문이다. 정부 안팎에서 북·미 대화 회의론이 고조되고 있지만 트럼프는 북한의 비핵화 의지에 대한 믿음을 접지 않고 있다. 그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요청에 고맙다고 화답하며 “우리 둘이서 모두가 틀렸다는 것을 증명하자”고 말했다.

 

참모들의 생각은 트럼프와 다른 듯하다. 시사주간지 뉴요커는 지난 15일 “대북 정책에 있어 정부 내에서 트럼프 편을 드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전했다. 특히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도 대북 협상 성공 가능성에 회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뉴요커는 폼페이오와 대화를 나눈 전직 관리의 말을 인용해 “폼페이오는 대북 대화가 작동할 가능성은 100분의 1에 불과하다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NBC도 백악관의 2차 북·미 정상회담 추진 발표 다음날 “트럼프의 훈훈한 트윗은 잊어라. 그의 팀은 북한을 엄중히 단속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폼페이오는 깊은 회의를 갖고 북한과의 대화에 임했고, 그 과정을 거친 후 대화가 작동하지 않을 것이란 믿음이 더욱 확고해졌다”고 전했다. 북·미 대화에서 트럼프는 외로운 섬인 셈이다. 이는 중간선거 이후 북·미 대화를 이어갈 정치적 필요성이 사라지고 트럼프의 의지가 약화되면 대북 협상론은 정부 내 레지스탕스나 어른들에 의해 언제든 뒤집어질 수 있다는 의미다.

 

제3차 남북정상회담은 레지스탕스에 포위된 트럼프의 원군이 되어야 한다. 김정은은 구체적 실천으로 비핵화 의지를 증명할 시점이 됐다. 북한이 비핵화에 머뭇거리면서 국제사회의 제재 압박에서 살아남을 숨구멍으로 남북관계 개선만 추구한다면 트럼프의 대북 대화론도 힘을 유지하기 어렵다. 트럼프가 중간선거 이전에 한반도 평화체제를 위해 돌이킬 수 없는 걸음을 내딛도록 유인해야 한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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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 색깔만으로 특권을 누렸던 시대를 그리워하며 폭력적인 행동을 하고 있다. 그들을 멈춰야 한다.” 지난 12일(현지시간) 오후 워싱턴 백악관 앞 라파예트 광장에서 만난 50대 백인 여성인 수전의 말이다. 그는 ‘당신의 인종주의를 애국주의인 척하지 말라’는 손팻말을 들고 있었다. 수전은 이날 오후 라파예트 광장을 채운 1000여명의 시위대 중 한 명이었다.

 

시민들이 휴일 오후 백악관 앞에 모인 이유는 극우단체의 집회를 저지하기 위해서다. 시민들의 “부끄러움을 알라”는 야유는 바리케이드 너머에서 ‘우파 단결2’라는 제목의 집회를 열고 있는 20여명의 백인 우월주의자들을 향했다. “나치는 꺼져라” “당신들은 소수지만 우리는 다수다”라는 구호가 이어졌다. 압도적인 반대 시위에 눌린 데다 때마침 천둥까지 치며 내린 비로 극우단체의 집회는 30여분 만에 마무리됐다. 집회를 조직한 제이슨 케슬러는 확성기로 연설을 했지만 반대 시위대의 함성에 눌렸다. 결국 이들은 준비된 차량에 나눠 타고 광장을 빠져나갔고 시위대는 환호했다. 경찰은 극우단체가 집회장에 등장할 때부터 주변을 둘러싸며 반대 시위대와의 충돌을 저지했다. 워싱턴으로 들어오는 고속도로에는 수백m 간격으로 경찰차가 배치돼 만약의 사태에 대비했다. 이날은 백인 극우단체 청년의 폭력에 의해 반대 시위대 여성 한 명이 사망한 샬러츠빌 사태 1주년이었다.

 

라파예트 광장의 풍경은 도널드 트럼프 정부 출범 후 인종주의 문제가 다시 부각되고 있는 미국 사회의 현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노골적인 백인 우월주의가 표출되고 있고 이에 대한 경계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백인들의 절대적 지지를 받고 집권한 트럼프 대통령은 인종주의 행태에 미지근한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광장에서 만난 그레그란 이름의 70대 백인 남성은 “트럼프 정부 출범 이후 미국이 점점 우익화되고 있다. 인종주의는 미국의 정신이 아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최근 미국 사회에서는 퇴행이 곳곳에서 감지된다. BBC 보도에 따르면 지난 8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에서 음주운전으로 적발된 32세 여성은 경찰에게 “나는 깨끗한 순수혈통 백인”이라며 석방을 요구했다. 한편에서는 흑인에 대한 노골적 차별이 논란이 되고 있다. 미국프로풋볼(NFL) 선수들은 경찰의 흑인에 대한 폭력 행사를 비판하며 무릎꿇기 시위를 하고 있다.

 

트럼프 정부는 태생적으로 인종주의 문제를 안고 있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 9일 발표한 2016년 대선 유권자 분석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이 얻은 표의 88%는 백인 표였다. 특히 지지자의 절반이 넘는 63%가 대졸 미만 백인들이었다. 대졸 미만 비백인은 7%, 대졸 이상 비백인은 4%에 불과했다. 트럼프 대통령을 만든 절대 다수가 백인이고, 과거에 대한 향수가 강한 대졸 미만 백인들이 최대 주주임을 알 수 있다.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대선 구호가 사실은 ‘미국을 다시 하얗게’를 의미한다는 비판도 제기됐다. 그런 탓인지 트럼프 대통령은 샬러츠빌 폭력 사태를 두고 양비론을 펴는 등 인종주의 논란에 명확히 선을 긋지 못한다. 흑인 하원의원을 “IQ가 낮다”고 비난하고, 아프리카 국가는 “거지소굴”이라고 말한다.

 

다행스러운 점은 백인 우월주의자들의 잇따른 커밍아웃에도 불구하고 이들을 견제하려는 시민들이 다수라는 점이다. 퓨리서치의 지난달 조사에서 백인들 중에서도 57%는 인종적 다양성 증가로 미국이 살기 좋아지고 있다고 답했다. 나빠지고 있다는 답은 10%에 불과했다. 트럼프 정부는 저소득 백인 계층의 향수를 자극한 게 지난 대선에선 승리 공식이었을 수 있지만 다음에는 약점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노골적인 백인 중심주의는 인종주의에 반대하는 백인들을 자극하고, 비백인 유권자들의 연대를 공고하게 만들 뿐이다. 라파예트 광장 시위는 이를 증명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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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에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는 것으로 6박7일에 걸친 유럽 순방을 마무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번 순방은 트럼프식 정상외교의 특징과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줬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후 18개월 동안 21개 나라를 방문했다. 10개국은 다자 국제회의를 위해 찾았고, 11개국은 양자 정상회담을 위해 방문했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같은 기간 23개국,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28개국을 방문한 데 비하면 상대적으로 순방 횟수는 적었다. 사우디아라비아를 첫 순방국으로 택했고, 싱가포르에서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도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왼쪽)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16일(현지시간) 핀란드 헬싱키 대통령궁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헬싱키 _ AP연합뉴스

 

트럼프 대통령의 정상외교는 기존 미국 외교의 패러다임을 거부한다. 그는 미국의 이익을 앞세우며 동맹 때리기를 서슴지 않는다. 그는 지난 15일 CBS 인터뷰에서 “무역에서 유럽연합(EU)은 미국의 적”이라고 말했다.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에게는 EU와 연을 끊지 않으면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위협했다. 러시아 가스 도입을 추진하는 독일은 “러시아의 포로”라고 비난했다. 동맹국들이 그를 반길 리 없다. 영국을 방문한 트럼프 대통령을 엘리자베스 여왕이 혼자 만났다. 찰스 왕세자 등 누구도 그와 만나고 싶어하지 않았다고 현지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외교에서 규범과 원칙은 무의미하다. 이익만이 최우선이다. 소위 ‘아메리카 퍼스트’ 원칙이다. 그는 “무역에서 동맹은 없다”며 중국은 물론 한국, 일본, EU에 대해 관세 폭탄을 협박한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정상회의에서는 시종 유럽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만 요구했다. 그는 전후 자유주의 세계질서 유지에 관심이 없다.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은 뒷전이다. 오직 국내 지지층만 바라본다. 외교 정책이 국제 관계뿐 아니라 국내 정치의 영향을 받는다는 ‘투 레벨 게임’은 상식이지만, 트럼프 정부에서 외교는 국내 정치의 수단이 된 느낌이다.

 

독재자들과 케미스트리가 잘 맞는다는 것도 트럼프 정상외교의 특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푸틴 대통령,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로드리고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 등과의 만남을 긍정 평가했다.

 

장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특히 한국 입장에서 그렇다. 트럼프 대통령이 아니었으면 전문가들과 정치권의 반대와 불신 속에서 북·미 정상회담을 밀어붙이기 어려웠다. 북·미 정상 간의 개인적 신뢰는 후속 협상의 바탕이 되고 있다.

 

하지만 부정적 측면이 더 많아 보인다. 톰 플레이트 로욜라 메리마운트대 교수는 ‘재떨이 외교’라고 혹평했다. 자기 뜻에 반대하는 나라나 그 나라 정상을 향해 크고 무겁고 각진 재떨이를 날리고 있다는 것이다.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욕설외교’라고 불렀다. 폴리티코는 “메이 총리의 측근들은 트럼프 특유의 브랜드인 욕설외교를 이해하고 있었고, 그의 폭주를 관리하기보다는 견뎌내는 쪽으로 노력했다”고 영국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특히 트럼프 스타일의 정상외교는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위상을 추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이런 식이면 미국은 더 이상 세계의 리더가 아니다. 미국 우선이 미국 혐오, 미국 배제로 이어질 것이다. 미국인이라면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까지 할 경우 6년 후 국제사회에서 자기 나라의 처지가 어떻게 될지를 걱정하는 게 당연한 상황이다.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은 이렇게 지적한다. “트럼프는 미국을 친한 친구도 없고, 완전히 예측 불가능하고, 지속적 가치에 구속받지 않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언제든 등 뒤에서 칼을 찌를 준비가 돼 있으며, 선거로 당선된 민주주의자보다 마피아 같은 독재자들이 더 편한 이기적이고 부정직한 나라로 만들고 있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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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라 허커비 샌더스 백악관 대변인이 한 식당에서 쫓겨난 사건이 화제다. 샌더스는 지난 23일(현지시간) 남편 등 가족들과 함께 버지니아주 렉싱턴의 한 식당을 찾았다가 주인의 나가달라는 요청을 받고 자리를 떠야 했다. 이미 음식을 시켜 먹고 있던 중이었다. 식당 주인은 워싱턴포스트에서 “샌더스는 비인간적이고 비윤리적인 정부에서 일하고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잔인한 정책들을 옹호했다”고 비난했다. 그는 동성애자 군복무 금지와 반이민 정책 옹호 등을 지적했다. 트럼프 정부 관계자들에 대한 망신주기 사례는 샌더스뿐이 아니다. 이민 정책을 다루는 부처인 국토안보부의 커스텐 닐슨 장관과 반이민 정책 입안자인 스티븐 밀러 백악관 선임고문은 각각 워싱턴의 멕시코 식당을 찾았다가 야유를 당했다.

 

트럼프 측근들에 대한 공개적 망신주기의 파장은 정치권으로 번지고 있다. 사건의 이면을 짚어보면 트럼프 정부 들어 극단으로 갈라진 미국 사회의 현실, 권력유지를 위해 통합이 아닌 분열을 조장하고 활용하는 트럼프의 통치 방식이 그대로 보인다.

 

분열과 혐오가 공개적으로 표출되는 원인은 트럼프 정부에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부터 반이슬람 행정명령, 백인 우월주의 옹호, 동성애자 차별 정당화 등의 정책을 추진했다. 최근에는 불법 입국자 부모와 자녀들을 격리 수용하는 정책을 고집하다가 비인간적 정책이란 비난에 직면했다. 지난 18일 CNN 보도에서는 시민권자만 버스에 태워주겠다는 메인주의 한 버스 회사 관계자가 등장했다. 마치 대중교통이나 공공시설 이용에서 유색인종을 공식적으로 차별하던 과거로 돌아간 듯했다. 사회는 분열되고, 반대 진영의 대응은 거칠어질 수밖에 없다. 갤럽이 25일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공화당 지지자의 87%가 트럼프를 지지했지만, 민주당 지지자 중에서는 역대 최소인 5%만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이 와중에 민주당은 강경파와 온건파로 갈라졌다. 트럼프 저격수 맥신 워터스 민주당 하원의원은 24일 MSNBC에 출연해 “식당이나 백화점, 주유소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각료 중 아무라도 본다면 나가서 사람들을 끌어모아 맞서라”며 “그리고 그들에게 당신들은 어디에서도 환영받지 못한다고 말하라”고 촉구했다. “저들이 저급하게 가도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When they go low, we go high)”던 미셸 오바마의 외침과는 상반된다. 반면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괴롭힘을 선동하는 것에는 반대한다”며 공개 망신주기는 “미국적이지 않다”고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 측은 반대 진영의 혐오가 싫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샌더스는 24일 300만명의 팔로어가 있는 백악관 공식 트위터 계정을 통해 식당에서 쫓겨난 사실을 공개했다. 트럼프는 다음날 트위터에서 워터스 의원을 “IQ가 극히 낮은 사람”이라고 비난하며 논란을 키웠다. 그는 “나에게는 하나의 룰이 있는데, 만약 식당의 외관이 지저분하면 내부도 더럽다는 것”이라며 샌더스를 쫓아낸 식당을 향해서도 독설을 퍼부었다. 그가 리트윗한 마르코 루비오 공화당 상원의원의 트위터 글에서 속내를 확인할 수 있다.

 

루비오는 “트럼프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트럼프를 찍었거나 트럼프 혐오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에 대한 자신들의 우월감으로 얼마나 많이 트럼프를 돕고 있는지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불법 입국자 부모들과 미성년자 자녀들을 분리 수용하는 정책으로 곤경에 처한 상황에서 터진 샌더스 망신 사건은 보수 지지층을 자극할 수 있는 호재라고 본 것이다. 트럼프 정부 참모들에 대한 비난과 야유는 뿌린 만큼 거두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정치권력의 정책적 차별과 배제에 비하면 식당 주인의 서비스 거부는 최소한의 저항일지 모른다. 다만 그 와중에 다양성을 존중하던 미국 사회의 매력은 추락하고 있다. 선거철이 다가올수록 편가르기 정치는 더욱 심각해질 것 같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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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이 우여곡절 끝에 확정됐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일(현지시간) 백악관 오벌오피스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들고온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을 90분간 만났다. 18년 만에 이뤄진 북한 고위 당국자의 백악관 방문과 미국 대통령 면담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후 백악관 마당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12일 싱가포르에서 김 위원장을 만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정상회담이 완전한 비핵화로 가기 위한 “과정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 번의 회담으로 끝난다고 결코 말하지 않았다”며 추가 회담 필요성을 강조했다. 북측에 “천천히 하라고 말했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북·미 정상회담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과정(process)이라는 말을 아홉 번이나 사용했다. 앞서 김 부위원장과 고위급회담을 한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기자회견 키워드도 과정과 진전(progress)이었다. 즉각적인 핵폐기, 일괄타결 등을 강조하던 트럼프 정부가 싱가포르 정상회담에 대한 기대치를 현실화하는 모습이다. 정상회담 한 번으로 북핵 문제를 모두 해결할 수 없다는 현실을 인정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를 두고 미국 내에서는 말이 많다. 민주당 성향의 주류 언론들은 기다렸다는 듯 정상회담 성공에 의문을 제기하기 시작했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정 언급 다음날 ‘트럼프가 과거의 실패를 되풀이할 한반도 계획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고 비판했다. CNN은 ‘(이번) 정상회담은 (실패의) 데자뷔 우려를 드러낸다’고 평가했다. 이미 실패한 단계적 해법을 답습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싱크탱크의 강경파 전문가들이 회의론 전파의 전면에 섰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뉴욕타임스에서 “정상회담이 과정이라는 언급 자체가 즉각적인 비핵화 확약을 요구하지 않겠다는 것으로 북한에 대한 양보”라고 평가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4일 민주주의수호재단(FDD) 주최 토론회에서 “북한이 정상회담 극장에서 훌륭하게 연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얼마 전 국무부 대변인 브리핑에서 한 미국 기자가 “어떻게 북한 같은 독재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런데 따져보면 정상회담 목표 현실화를 비판하는 전문가들의 주장도 본질적으로는 이 질문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의 논조는 북한에 대한 불신과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반대로 간단하게 정리된다. 북한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전제에서 현실을 보는 한 모든 것은 위장이고 쇼일 뿐이다. 트럼프 정부의 무능을 비판하지만 현실적인 대안 제시는 없다. 긴박하게 흘러가는 북·미 관계의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고 생존의 문제가 걸린 한반도 당사국 시민들의 절실함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최악의 한반도 전문가다.

 

북핵 협상은 과정일 수밖에 없다. 70년간 이어진 적대관계의 산물인 북핵 문제를 ‘원샷’에 해결한다는 구상 자체가 비현실적이다. ‘선 핵폐기, 후 보상’은 북한에 대한 일방적 항복 요구이지 협상안이 아니다. 리비아식 핵폐기 주장은 회담의 판을 깨려는 강경파들의 의도적 도발이란 음모론이 제기될 정도다. 영어 속담에 ‘완벽함만 추구하면 좋은 결과를 낼 수 없다(Perfect is the enemy of good)’는 말이 있다. 이는 완벽함에 이르는 게 너무 어렵다며 어떤 일을 아예 시작하지 않는다는 의미도 된다.

 

‘전략적 인내’라는 멋진 말로 포장한 채 북한 체제가 무너지기만을 기다리던 정책을 되풀이할 수는 없다. 그 사이 북한은 핵탄두를 미국 본토로 날려보낼 수 있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까지 개발했고, 미국의 군사적 옵션은 더 이상 공허한 협박이 아닌 상황이 됐다. 북핵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완벽한 해법은 없다. 일방적 항복을 요구할 게 아니라 윈윈의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게 상대가 있는 협상의 기본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이 맞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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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수도 워싱턴 DC의 북서쪽 13번가 1500번지. 원형 교차로 길가의 빅토리안 양식 3층짜리 갈색 벽돌 건물이 보였다. 복원 공사를 마치고 오는 22일(현지시간) 개관식을 앞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이다. 22일은 1882년 조미수호통상조약 체결일이다. 개관식에서는 1905년 을사늑약으로 이 건물에 국기 게양이 중단된지 113년만에 처음으로 국기 게양식이 열린다.

 

개관을 앞둔 공사관을 14일 미리 찾아갔다. 돌계단을 따라 현관에 들어가니 왼쪽으로 손님들을 맞았던 객당, 오른쪽으로 연회공간인 식당이 보였다. 관계자는 사진 자료와 고문서를 바탕으로 1880년대 공사관 모습을 그대로 재현했다고 설명했다. 객당에는 서양식 카페트와 한국 전통의 병풍이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좁은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공사 집무실과 공관원 사무공간이 나온다. 한복 차림에 수염을 기르고 갓을 쓴 채 서양식 탁자에 앉아 있는 공사관 직원들을 상상해봤다. 숙소로 사용했던 3층은 전시관으로 꾸며놨다.

 

복원공사를 마친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외부 전경. 문화재청 제공

 

전시관에서는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의 역사를 통해 우리의 아픈 과거를 그대로 볼 수 있었다. 1888년 1월 워싱턴에 도착한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 일행은 피셔하우스를 임대해 업무를 시작했다. 조선왕조는 이듬해인 1889년 2월 당시 정부 예산의 절반에 육박하는 2만5000달러를 투자해 이 공사관을 사들였다. 그리고 이 공관은 1897년 10월 조선왕조가 대한제국을 선포한 이후 외교 활동의 중심 무대가 됐다. 하지만 을사늑약으로 외교권을 빼앗긴 뒤 건물 관리권도 일제로 넘어갔고, 일제는 이 곳을 단돈 5달러에 강제로 매입해 미국인에게 10달러에 팔아넘겼다. 이후 공사관은 되찾아야 할 독립의 상징으로 남았고, 102년 만인 2012년에서야 문화재청이 350만달러에 매입해 원형 복원 공사에 착수했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1층의 객당. 문화재청 제공

 

공사관을 사용했던 인물들의 이야기는 더 생생하다. 초대 공사 박정양은 고종의 명을 받고 2개월에 걸쳐 미국 군함과 일본 여객선을 갈아타며 39,215리 길을 달려 워싱턴에 도착했다. 당시 조선을 속국으로 여기던 청나라는 그에게 영약삼단이란 해괴한 원칙을 요구했다. 주재국에 가면 먼저 청나라 공사관에 알린 뒤 청나라 공사와 함께 주재국 외교부를 방문하고, 외교 모임에서는 청나라 공사의 아랫자리에 앉고, 문제가 생기면 청나라 공사와 합의 처리하라는 내용이다. 하지만 그는 청나라 관계자 없이 스티븐 클리블랜드 미국 대통령을 만나 고종의 국서를 전달하고 “양국의 우위가 돈독하며 영원히 화평하여 피차 인민이 균등하게 권리를 누리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요청했다.

 

박정양과 함께 근무했던 초대 서기관이 독립협회를 조직했던 월남 이상재다. 1896년부터 주미 공사를 지낸 이범진은 이후 러시아 공사로 자리를 옮긴 후 1910년 나라를 잃자 분을 이기지 못하고 자결했다. 그의 미국 근무 당시 초등학생으로 아버지의 백악관 방문에 동행해 통역을 해줬다는 아들 이위종은 고종의 헤이그특사 중 한 명이 됐다.

 

주미 대한제국 공사관 2층의 공사 집무실. 박영환 특파원

 

전시관까지 살펴보고 되돌아 내려오는데 마음이 무거웠다. 구한말 준비 없이 열강의 힘싸움에 휘말려 일본에 나라를 잃었고, 독립 후에는 다시 냉전 대결의 최전방이 되면서 전쟁과 분단이란 비극을 되풀한 우리의 역사가 스쳐지나갔다. 한반도의 현재 상황을 구한말과 비교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중국은 궐기를 선언했고, 미·중 대결 구도가 심화되면 한국은 또다시 강대국 사이에서 줄타기를 해야 할지 모른다.

 

사상 첫 북·미 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이라 이날 방문이 더 특별했는지 모르겠다. 북핵 문제 해결과 종전 선언은 한반도 냉전 구조 해체의 시작이 될 수 있다. 한국 정부는 북한과 미국을 협상의 장으로 끌어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제는 평화체제로 가는 길을 닦을 수 있는 세기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위해 모든 힘을 다해야 할 시점이다. 한반도의 운명을 가를 역사적인 순간에 서 있는 것이다. 오는 22일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을 찾는 문재인 대통령도 대미 외교 개척의 현장인 이 곳을 찾아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워싱턴|박영환 특파원 yhpark@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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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 워싱턴의 최대 화제는 북·미 정상회담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전직 포르노 배우의 성추문, 그 뒷정리를 하던 트럼프 개인 변호사 사무실 압수수색도 북한 뉴스에 묻혔다. 트럼프가 해고한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의 회고록도 북한 이슈만 없다면 더 팔릴지 모른다.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할 핵미사일을 개발하기 직전이니 북핵 문제는 이제 미국인들에게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북핵 외교전이 쉴 새 없이 이어지고 있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석, 문재인 대통령 특사단을 통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북·미 정상회담 제안, 트럼프의 전격적인 정상회담 수락과 마이크 폼페이오 중앙정보국(CIA) 국장의 김정은 면담으로 이어지면서 상황은 대화모드로 급전환됐다. 북한은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실험 중단, 핵실험장 폐기 카드를 던지며 본격적인 북·미 정상회담 준비에 들어갔다. 오는 27일 남북정상회담이 전 세계로 생중계되고, 이어 북·미 정상회담 장소와 일정도 정해질 것이다.

 

숨가쁘게 돌아가는 상황에 대한 해석은 극단적으로 갈린다. 트럼프는 전직 대통령들이 못 푼 난제를 풀겠다며 북·미 정상회담을 이슈화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의 기대감이 급상승하고 있다. 반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들은 대부분 조심스럽다. 특히 워싱턴 싱크탱크 북한 전문가들의 회의론은 일관된다. 빅터 차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북한의 핵·미사일 동결 선언을 “핵보유국 선언”이라고 규정했다. 정 박 브루킹스연구소 한국석좌는 “김정은이 이성적이며 책임감 있는 핵보유국 정상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브루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은 “비핵화는 미국과의 군축 대화로 실현될 수 있다는 북한의 입장을 확인시켜준다”고 말했다.

 

근거 없는 희망적 관측은 경계해야 한다. 북핵 문제가 해결되면 노벨 평화상은 트럼프, 문재인, 김정은 중 누가 받아야 하는지를 벌써부터 고민하는 사람이 있는 듯하다. 전문가라면 이들과 달라야 한다. 평정심, 신중함, 명확한 현실감각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하지만 지나친 전문가적 회의론도 현 시국을 이해하는 데는 별 도움이 안된다. 회의론자들은 북한의 평화공세는 미국과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완화하고, 핵 개발의 시간을 벌고, 한·미관계도 이간질하려는 의도라고 확신한다. 틀을 벗어난 파격적 현실을 해석하기는 어려운 사고다. 이들은 김정은의 선제적 북·미 정상회담 제안과 트럼프의 전격적 수락을 예측하지 못했다. 이들의 분석보다 북·미 간의 협상은 이미 한참 더 나갔을 수도 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서 “북한과 협상 근처에도 가보지 못했던 전문가들이 온갖 곳에서 나에게 북한과 협상을 어떻게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는 게 우스울 뿐”이라고 비웃을 정도다.

 

논리로 무장한 회의론은 외교의 역할을 무시하는 실수를 범할 수 있다. 핵무력 완성을 선언한 김정은이 어느날 갑자기 핵을 폐기하기로 결단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추론은 현실적이다. 다만 김정은은 이제 핵이 아니라 경제개발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고, 이를 위한 협상 과정에서 체제안전 보장 등 미국의 합당한 조치가 있으면 핵을 포기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는 게 더 현실적이다. 북·미의 상호작용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수립을 이뤄갈 수 있는 희망의 공간을 열어둬야 한다. 김정은은 믿을 수 없고, 트럼프는 불안하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미국의 압박 작전, 한국의 중재 외교, 북한의 노림수가 맞물려 관련국들은 이제 한반도 비핵화 논의의 입구에 서 있다. 섣부른 희망적 관측은 물론 지나친 회의론도 경계해야 한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조심스러운 낙관주의’가 필요한 시점이다. 한반도 전쟁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을 하던 몇 달 전의 상황으로 돌아갈 수는 없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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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워싱턴의 반응이 재미있다. 정치권, 싱크탱크 전문가들, 언론들은 기대감보다는 걱정을 쏟아내고 있다. 백악관이 ‘코피작전’을 준비할 때 전쟁의 위험을 경고하며 대화를 강조했던 그들이다. 하지만 정상회담 발표 후 뉴욕타임스는 ‘정말 엉망진창’이라고 평가했고, 월스트리트저널은 ‘어떤 핵 양보도 없이 북한을 인정했다’고 지적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의 정상회담 제안에 놀라워하던 언론들이 다음날에는 가짜뉴스가 됐다. 그들은 ‘그래서 뭐’ ‘누가 신경 쓰는데’라고 말한다”고 비판할 정도다.

 

워싱턴의 불안감을 이해는 할 수 있다. 너무 빠르다. 북한의 평창 동계올림픽 참여로 시작해서 대북특사단 파견, 남북정상회담 합의, 북·미 정상회담 추진으로 한 달여 만에 한반도 정세가 급변했다. 북한의 최고지도자들이 70년에 걸쳐 추진해온 북·미 정상회담이 트럼프 대통령의 한국 특사단과의 45분 면담에서 곧바로 결정됐다. 주도권도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쥐고 있다. 상황 변화의 시작도, 이후 전개 과정도 그가 던진 카드를 따라왔다. 다음에 무슨 카드를 내밀며 관련국들을 어디로 끌고 갈지 모른다.

 

북한에 당한 과거가 없는 것도 아니다. 1994년 제네바 합의, 2005년 9·19 공동성명. 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역사적 합의들은 번번이 북한의 약속 위반으로 무산됐다는 게 미국의 입장이다. 트럼프 정부의 준비 부족은 분명한 사실이다. 한반도 외교라인은 텅 빈 상태다. 엘리자베스 워런 민주당 상원의원은 국무부를 “전멸 상태”라고 표현했다. 상황을 좀 아는 사람이라면 북한이 쳐 놓은 덫에 스스로 빠지는 게 아닌지 불안할 수밖에 없다. 성공을 기대하기보다는 실패에 대비하라고 충고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도 많다.

 

하지만 지금은 변화를 선택할 시점이다. 지난 겨울 워싱턴의 화두는 한반도 위기론이었다. 전문가 세미나마다 대북 선제타격론이 거론됐고,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두고 확률 계산도 이어졌다. 한 공화당 의원의 입에서는 “죽어도 거기서(한반도에서) 죽는 것”이라는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까지 소개됐다. 심장이 쪼그라드는 한반도 전쟁 위험에서 벗어나야 한다. 전쟁 위험에 직면한 한국이나 핵미사일 사거리에 들어간 미국이나 더 이상 앞뒤를 재면서 앉아서 생각만 할 상황이 아니다.

 

북한의 행보가 과거와는 다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실제 핵을 포기하면서 안보와 경제에서 양보를 얻어내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북한과의 1.5 트랙(반관반민) 대화를 해온 수전 디마지오 뉴아메리카재단 선임연구원은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 기고에서 “북한 정권은 갈등을 피하고 경제를 현대화하기 위한 자체 의제를 가지고 있다”면서 “그게 바로 트럼프가 김정은의 제안을 받아들인 게 현명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라고 말했다. 실제 남북정상회담 장소로 판문점을 택하고, 중국을 제쳐두고 미국부터 만나겠다는 김 위원장의 행보는 기존 문법으로는 해석이 쉽지 않다. 판이 바뀌고 새로운 게임이 시작될 수도 있다.

 

북핵 문제는 풀기 어렵다. 실타래처럼 얽혀 서로를 간섭하고 있는 이해와 불신을 하나씩 차례로 풀어내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이 때문에 엉킨 실타래를 끊어버리고 새 실을 바늘에 꿰는 게 좋은 선택일 수도 있다. 특히 최고 지도자의 결단이 정책 방향을 좌우하는 독재 정권과의 협상에서는 이 방식이 효율적일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선택한 사상 첫 북·미 정상 간 담판이 그 모범 사례가 되기를 바란다. 지금 트럼프 정부가 할 일은 철저한 준비이고, 미국 언론과 전문가들은 이를 위한 충고와 제안을 해야 한다. 조태열 주유엔 한국대사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표현에 적극 공감한다. “기회는 꼬리가 없어서 지나가면 뒤에서 잡을 수 없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선택에 동의와 기대를 보낸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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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가족들과 함께 집 근처의 영화관 AMC를 찾았다. <블랙팬서> 개봉 이틀째였다. 극장 입구부터 꽤 긴 줄이 있었다. 흑인 관객들이 유난히 많았다.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가자 환호와 박수가 터져나왔다. 감격한 듯 자리에서 일어서지 못하고 여운을 즐기는 관객들도 많았다. 큰 극장의 한가운데 자리에 앉은 덕분에 영화가 끝나고도 밖으로 나오기 위해 한참을 기다려야 했다. 먼 곳까지 찾아가 <1987>을 본 후 감정의 정리가 어려웠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블랙 팬서> 포스터.

최근 미국에서 <블랙팬서>가 열풍이다. 가상의 아프리카 국가 와칸다를 배경으로 하는 흑인 히어로 영화다. 흑인 히어로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1970년대에도 시드니 포이티어가 살인사건 전문 형사로 열연한 <밤의 열기 속으로>가 흑인들을 극장으로 몰려들게 했다. 하지만 이번 바람은 다르다는 게 미국 언론들의 평가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 문화사의 분기점이 될 작품이란 평가도 나온다.

 

여배우 옥타비아 스펜서는 미시시피의 극장을 통째로 빌려 어린이들에게 단체관람을 시키고 있다. 사업가 로저 잭슨은 시카고에서 극장을 대여했다. 교회와 사업가, 시민운동가들도 단체관람을 진행 중이다. 애틀랜타 교외의 한 AMC에서는 개봉 당일 이 영화만 총 84회 상영됐다. 극장의 모든 스크린에 <블랙팬서>만 비춘 것이다. 여론조사기관 유고브에 따르면 흑인 74%가 이 영화를 볼 계획이라고 답했다. 온라인에서는 ‘블랙팬서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라는 해시태그가 유행이다. 각종 흥행기록도 갈아치울 기세다.

 

<블랙팬서>는 미국 흑인들의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인 듯하다. 19세 흑인 고등학생 오스틴 매시야는 CNN에서 “첫 번째 흑인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와 견줄 수 있는 것은 없다. 하지만 <블랙팬서>는 그 수준에 있다”고 말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은 19일(현지시간) 트위터에서 <블랙팬서> 팀을 격려하고 “당신들 덕분에 젊은이들이 마침내 극장에서 자신과 닮은 영웅들을 보게 될 것”이라고 했다. 또 “이 영화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가진 영웅이 될 수 있는 용기를 발견하도록 영감을 불어넣을 것”이라고 평가했다. 와칸다는 아프리카의 에덴동산 같은 곳이다. 최첨단 과학기술을 보유한 와칸다의 초원에서는 코뿔소와 스텔스 우주비행선이 공존한다.

 

블랙팬서라는 이름은 미국 흑인의 역사와도 연결된다. 1942년 구성된 흑인들만의 탱크부대가 사용한 별명이 바로 블랙팬서였다. 1966년에는 앨라배마의 유권자운동 단체가 상징으로 블랙팬서를 채택했고, 같은 해 오클랜드에서 경찰폭력 등 백인의 억압에 저항하기 위해 결성된 조직이 ‘블랙팬서당’이었다. 이들은 마틴 루서 킹 목사의 비폭력 운동을 실패로 평가하고 주거, 교육, 시민권의 평등을 위한 혁명전쟁을 내세웠다. 

 

일각에서는 <블랙팬서>는 영화가 아니라 하나의 사회운동이란 주장도 들린다. 언론인 자밀 스미스는 타임지 기고에서 “백인 이민배척주의자 운동에 의해 추동된 문화적, 정치적 퇴행의 한가운데에서 <블랙팬서>의 존재는 일종의 저항과도 같다”고 적었다. 다양성의 존중이 마치 자선인 것처럼 비치는 현실에서 <블랙팬서> 같은 영화가 얼마나 필요한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다만 흑인들은 자부심을 일깨우는 영화를 보는 것만으로 뒤틀린 세상에 저항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야 할 것이다. <블랙팬서>는 미국에 정착한 흑인들의 아프리카에 대한 비현실적인 동경을 담았다는 지적도 있는 게 현실이다. 영화 관람 말고도 수많은 저항의 노력이 존재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당장 흑인들의 대선 투표율은 오바마를 당선시킨 2012년에는 66.6%였지만, 2016년에는 59.6%로 떨어졌고 백인 우월주의자를 옹호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게 승리를 안겨줬다.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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