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일본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의 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90년 전쯤 지어진 이 시를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난 4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서였다. 


아베 총리는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라는 구절을 언급한 뒤 “새로운 시대의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 모든 사람이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저출산·고령화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지역구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했다고 전했다.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해 다양성을 강조한 연설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위화감을 느낀 건 아베 총리의 ‘말 따로, 행동 따로’ 때문이다. 그는 연설에서 성적 소수자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새 재류 자격을 신설해 5년간 최대 35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3~4대째 살고 있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도 앞뒤가 맞지 않다. 아베 총리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에선 결혼을 하면 부부가 성씨를 똑같이 해야 하는데,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위해서도 법을 고쳐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기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차별을 부추기는 쪽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 “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등 문제 발언을 연거푸 했다.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 의원은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고 했다. 아베 정부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을 취소한 것도 “다양성 인정” 발언을 뒤집는 것이다. 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선 ‘배제’하겠단 의도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그는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됐던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 전권대사의 ‘인종평등’ 제안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내건 큰 이상은 지금 국제인권조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되고 있다”고 상찬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중국 동북부에 진출하는 등 식민지배의 당사자였음을 외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이 정도의 후안무치한 세계사 왜곡은 없었다”며 “역사에 대한 무반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인종평등’이 지금 일본 사회에 실현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베 정권 들어 혐한(嫌韓) 등에 의한 차별이나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가 횡행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가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배제,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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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지난 6월 도쿄 2020 올림픽과 패럴림픽 로고가 새겨진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오. 모. 테. 나. 시.”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손동작에 맞춰 한 음절씩 끊어 말한 ‘오모테나시’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오모테나시’는 특별한 대접을 뜻한다. 다키가와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마음으로부터 맞이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연설은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모테나시’는 그 해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 다키가와는 지난달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결혼을 발표했다. 


그렇게 유치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오모테나시’ 전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줄곧 지적돼온 폭염 등 날씨 대책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의 날씨조건은 최악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았다는 올해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모두 30도를 넘었다. 그 중 6일은 35도 이상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평균기온이 27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24도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골머리를 싸고 있다. 이미 마라톤, 경보 등의 시작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겼다. 일부 도로에 열 차단제를 입히고 있지만, 사람 키 높이에선 오히려 기온과 자외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조정 시범경기가 열린 경기장 관중석에 인공 눈을 뿌리는 실험을 했지만, 관중석 온도는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이 이뤄진 수상경기장은 예산 문제로 관중석 절반만 지붕을 설치했다. 지난달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오픈워터 시범경기에선 화장실 같은 악취가 났고, 파라트라이애슬론 시범경기에선 상한의 2배를 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방송중계권 수입 때문에 7~8월 개최를 요구한 IOC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 측 대응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유치신청서에 “이 시기는 맑은 날이 많고 따뜻해 선수에게 이상적인 기후”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일본의 ‘열화(劣化·열등화)’를 본다고 했다. 철두철미와 세심함은 옛말. 근본적인 대책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폭염 대책으로 우치미즈(국자로 물을 떠서 거리에 뿌리는 풍습)를 제안하면서 “오모테나시 문화를 알리자”라고 우기는 데선 ‘정신 승리’를 보는 것 같다.


‘오. 모. 테. 나. 시.’ 


도쿄올림픽의 ‘오모테나시’는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아베 신조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삼을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복구했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언더 컨트롤”(관리하에 있다)이라고 한 ‘정치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오모테나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때 욱일기를 경기장에 들고 오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데모’에 등장하는 욱일기가 ‘평화의 제전’에 펄럭이는 장면을 기어코 보겠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선 혐한 감정이 고삐 풀린 채 분출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자기혁신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선 이 둘을 대충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부흥(復興)’ 올림픽의 미명하에 ‘부인(否認)’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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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가 잘 팔리나?”


“당연히 ‘한국 때리기’지.”


이달 초 도쿄 중심가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 내용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각의(국무회의) 결정하면서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던 때였다. 대화 내용으로 미뤄볼 때 언론·출판계에서 일하는 이들인 듯했다.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이런 대화를 하는 데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요즘 일본 매체들의 ‘한국 때리기’는 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여론에 영향이 큰 방송의 행태가 가관이다. 최근 한국에서 공분을 산 화장품기업 DHC의 자회사 ‘DHC TV’의 역사 왜곡과 한국 비하가 공중파 방송에까지 번진 모양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와이드쇼’들은 “한국 괘씸하다” 일색이다. 해설자로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야유 섞인 말을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한국 정부나 국민에 대해 “반일이다” “유치하다” 등으로 비난한다. “한국인은 감정적이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등 헤이트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도 서슴없이 등장한다. 반면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보복조치의 문제를 짚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 방송은 한국 없이는 먹고살지 못하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실제 그런 모양이다. 일본의 한 민간방송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 때문이죠. 매번 시청률 그래프를 봐요. 시청률이 뚜렷하게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하는 거죠.”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때리기’를 하면 기꺼이 TV를 보는 일본인들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왼쪽)이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를 외무성으로 불러 일본이 요청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에 한국이 응하지 않는 데 대해 항의하고 있다. 도쿄 _ 김진우 특파원


이런 흐름에는 아베 정권 들어 뚜렷해진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와 책임을 부인하려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이 일본 국민의 ‘반한(反韓)’ ‘혐한(嫌韓)’ 감정을 부채질하고, TV도 거리낌 없이 ‘한국 때리기’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은 대부분 사라졌다. 지난 3일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지가 된 것은 과거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을 부인하는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한 정치가들의 궤변과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의 협박에 따른 것이었다. 아베 정권은 인권 문제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측의 대응을 압박하고, 사실상의 경제 보복조치를 취했다.


끊이지 않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인 언동의 근저에는 결국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감히’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한번 손을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이런 태도는 고노 다로 외무상이 지난달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에게 “무례하다”라고 한 것에서도 엿보인다. 전 외무성 관료는 이 발언이 과거 사무라이가 일반 서민이 ‘무례’를 범했을 경우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던 ‘기리스테고멘’의 연장선에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한 재일동포는 “일본은 적대시할 상대방이 있어야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나라”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들썩이게 됐다. 일본에서 ‘혐한’이 더욱 기승을 부릴 건 자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일본 측에서 ‘위에서 보는 시선’으로 자주 사용하는 ‘숙숙(肅肅)하게(담담하게)’ 맞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혐한’에 ‘혐일’로 대응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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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일본 신문이나 TV를 보는 게 심란했던 적이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를 두둔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억측과 중상, 불만과 조롱이 넘치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이나 ‘촛불혁명’ 등을 두고 일본의 ‘한국 깎아내리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의구심이 간다는 억지뉴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보복조치의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을 들면서 확인되지 않는 얘기를 흘리고 북한과의 연관 의혹까지 제기한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일본 정부·여당 관계자발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흘린다. 아베 신조 정권과 가까운 신문·TV가 근거 없이 한국의 수출관리가 엉망이라는 보도를 내보낸다. 사린가스나 VX 같은 생화학무기 제조에 전용 가능한 물자 유출설도 곁들인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국을 ‘안보 문제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TV <와이드쇼> 프로그램들이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다룬다. VX가 북한이 김정남(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을 암살할 때 사용됐다고 설명하면서 사건 당시의 자극적인 화면을 내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등장해 이번 조치를 정당화한다. 생각해볼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불신과 냉소다.


이번 조치가 “안보상 우려에 따른 무역관리 재검토”라는 일본 정부 주장을 답습한다. 일본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관리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대로 수출관리를 하고 나서 국제사회에 호소하라”고 비아냥댄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가 인기가 많으니 맥주수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엔 실소만 나온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지난 12일 한·일 당국 간 첫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은 ‘부적절한 사례’가 북한 밀반출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치고 빠지기’ 식이다. 이미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안보 문제를 건드려 ‘코리아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억지주장은 ‘신문·방송 → 와이드쇼 → 주간지 등 잡지’ 순서로 확대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보수 매체와 우익 댓글러들의 합작으로 ‘한국 때리기’ 기사는 야후저팬 같은 인터넷포털 뉴스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조치가 ‘타당하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에 불신과 혐오의 연료를 대고 불을 붙이면서 ‘한국 때리기’의 구조를 짠 게 누구인지 곱씹어봐야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있는 일본과 마주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전개 과정을 보면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것을 빼곤 무슨 명분과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 같은 조치”라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나왔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한국이 두 손을 들 거라고 보는 건 판단 미스”라고 했다. 오히려 한국 여론을 강경하게 만들어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 일본 측이 20년 전 외환위기 때 일본에 손을 벌리던 한국을 상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을 괴롭히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은 무얼 노리는 걸까. “한국에 일본의 불신을 명확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나갔다. 일본을 추월할 한국의 산업성장을 막고,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걸까. 자꾸 기어오르는 한국을 밟아주고 쥐락펴락하겠다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맞다면 일본은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대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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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예 ‘손타쿠’를 넘어서네요.”


최근 ‘노후자금 2000만엔’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대응을 두고 도쿄의 외교 소식통이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손타쿠’는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촌탁(忖度)’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 말은 아베 정권 들어선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정부 관료나 공무원들이 알아서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점을 비꼰 것이다. 이런 ‘손타쿠’를 넘어선다고 평가받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발단은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다.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부부는 30년간 약 2000만엔(약 2억1900만원)의 여분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정부가 연금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금융담당상은 11일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겠다”고 했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한술 더 떠 “(재무성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 보고서 자체가 없어졌다”며 야당이 요구하는 예산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융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 있는 보고서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보고서를 작성한 워킹그룹은 대학교수, 변호사, 민간싱크탱크 대표 등으로 구성됐다. 재무성과 후생노동성 등 관계부처도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다. 이 워킹그룹은 아소 부총리의 자문을 받아 설치됐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정작 답은 듣지 않겠다고 하는 셈이다. “전대미문의 부조리극”(마이니치신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권은 그간 ‘은폐 본질’을 누누이 비판받아 왔다.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육상자위대의 일일보고 은폐, 모리토모(森友)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한 재무성 문서조작 등 불리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숨기거나 발뺌해 왔다.


‘아베 1강’ 체제의 장기화로 정권 내 ‘손타쿠’ 구조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노후자금 2000만엔’ 논란도 아베 정권의 ‘은폐 본질’이나 ‘손타쿠’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정권의 중추들이 아예 대놓고 은폐나 손타쿠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사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다. ‘30년간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추계의 근거자료는 후생노동성이 제공했다. 금융청이 독자적으로 ‘30년간 1500만~3000만엔 필요’라는 추계를 내 워킹그룹에 제시한 것도 드러났다. 정부로선 보고서의 문제 제기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 다음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에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곤란하니까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정권 눈치를 보는 보고서만 내라는 격이다.


이런 아베 정권의 막무가내식 태도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국민이다. 문제가 생겨도 발뺌을 하거나 거짓말로 강변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아베 정권에 심어준 것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는 최근 도쿄신문에 “관료의 손타쿠나 불상사, 정치가의 폭언·실언이 빈발해도 내각 지지율은 잠깐 내려갈 뿐 곧 회복된다. 국민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고, 지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흔히들 아베 정권의 장기화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느끼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7월 참의원 선거가 그 잣대가 될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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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일본 가와사키(川崎)시에서 51세 남성이 학교 버스를 타려던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일본 사회의 충격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 사회가 껴안고 있는 고민거리들이 드러난 까닭이다. 


이 남성이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정확한 동기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일본 사회에 수차례 충격을 안긴 ‘도리마 사건’으로 규정짓는 분위기다. 일본에선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을 ‘도리마(거리의 살인마) 사건’이라고 한다. ‘묻지마 살인’인 셈이다. 


도리마 사건은 2008년 아키하바라(秋葉原) 사건을 통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천국’(차 없는 도로)에서 한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범인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비정규직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고 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도리마 사건이 해마다 4~14건 발생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번 사건이 18년 전 이케다(池田) 사건을 상기시킨다는 지적들도 많다. 2001년 6월 한 남성이 오사카교육대 부속 이케다초등학교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초등학생 8명을 숨지게 하고 15명을 다치게 했다. 이케다 사건과 이번 사건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약자인 어린아이들이 습격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 버스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등·하교 방범 계획’에서 통학 안전 대책으로 꼽혔다. 학생들이 학교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갑자기 공격을 당한 이번 사건은 일본의 안전 대책에도 과제를 던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 하나 입에 오르내리는 용어가 ‘확대 자살’이다. 자살을 바라는 사람이 아무 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끌어들여 사회에 대한 울분을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케다 사건의 범인도 “인생의 막을 내릴 때는 많은 사람들을 길동무로 삼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범죄심리학자인 하라다 다카유키(原田隆之) 쓰쿠바대 교수는 NHK에 “자살이 목적이지만, 사회의 주목을 더 모아서 더 큰 것을 저지르겠다는 왜곡된 심리”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범인의 연령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확대 자살은 공격성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20~30대가 많은데 범인은 50대다. 왜 지금까지 이런 ‘마이너스 에너지’를 쌓아온 걸까. 그는 오랫동안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던 고령의 삼촌 부부와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고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범죄예비군’으로 보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가와사키시에 적지 않은 재일한국인(조선인)이 산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범인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됐다. 흉악 범죄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 혐오 발언)’가 반복된 것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이후에도 이런 악성 루머가 퍼졌다. 일본 사회에 잠복해 있는 ‘민족 차별’이 또 얼굴을 내민 셈이다.


지난 3일은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실시한 지 3년째를 맞은 날이다. 이 법은 시행 이후 헤이트 집회가 감소하는 등 일부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념법의 한계가 지적돼 왔다. 지난달 29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는 “법 시행 이후에도 헤이트스피치는 방임 상태다. 실효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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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비해 ‘사건·사고’나 ‘격변’이 많지 않은 나라라고들 말한다. 사회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면 한 일본 시민운동가는 변화의 열망이 시들한 일본 사회를 한국과 비교하면서 한숨 쉬기도 했다.  


이런 일본에서 일왕 교체로 인한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임에 틀림없다.(앞선 개원은 30년 전인 1989년 1월에 있었다.) 지난 4월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발표부터 4월30일 아키히토 일왕 퇴위, 5월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 4일 일반 국민 참하(參賀·궁에 들어가 축하함)까지 눈길을 끌어모으는 이벤트들이 줄줄이 있었다.  


TV에는 “좋은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식의 시민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왔고, ‘새 시대’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됐다. 전·후임 일왕의 일대기, 일왕가 역사 등 왕실 관련 보도도 쏟아졌다. 


공영방송 NHK가 아키히토 전 일왕이 참배한 이세신궁을 소개하면서 “왕실 선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곳”이라고 보도한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화와 역사를 섞어 일왕을 신격화한 보도 사례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일 총리 관저에서 새 연호 ‘레이와’ 선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_EPA연합뉴스


개원 휴일이 포함된 사상 최장의 ‘골든 위크(4월27~5월6일)’가 끝났지만, 들뜬 분위기는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70대 여성은 “연호가 바뀐다고 내 생활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연호가 바뀌었을 뿐이다. 연호가 바뀌었다고 ‘새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니다. 2019년이 2020년이 된다고 ‘새 시대’가 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길 바라거나, 그렇게 여기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개원 열기의 이면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전에서 유래한 새 연호 결정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연호 발표 때와 달리 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새 시대, 새 일본’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이용에 다름 아니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최근 아사히신문에 “연호 발표부터 개원까지 전개된 것은 이 나라의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속이기 위한 정치쇼”라고 말했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미디어를 이용한 ‘극장형 정치’ 수법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총리도 못지 않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는 데는 일본 왕실만한 무대장치는 없다. 


개원 열기와 함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던 통계부정 문제는 쏙 들어갔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등 아베 정권의 각종 의혹들이 뚜렷한 진상 규명 없이 덮인 것과 마찬가지 패턴이다. 


공교롭게도 개원과 함께 아베 총리는 ‘전제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실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기보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 일본만 빠져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개원에 이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쇼를 계속 연출하는 게 장수 정권의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베 정권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감바로(힘내자)”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쇼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간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극장형 정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진지한 토론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정중한 설명도 없이 태도를 뒤집는 것은 지금까지도 봐온 광경”이라면서 “설명 없는 방침 전환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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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한국시간) ‘인류 사상 첫 블랙홀 관측’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세계 13개 연구기관, 200명 이상의 연구자가 참가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EHT)’ 프로젝트팀이 처녀자리 은하단에 있는 M87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블랙홀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관측은 블랙홀 연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언론도 이를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한국도 참여’라는 대목을 빼놓지 않았다.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한국도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주요 신문들은 11일자 조간 1면에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 국립천문대를 비롯한’ 국제연구팀의 성과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보수·우익 성향 <산케이신문> 제목이 묘했다. ‘블랙홀 포착’ 제목 밑에 ‘세계 최초 국립천문대팀 촬영’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이번 성과를 오롯이 일본의 ‘위업’으로 오인하게 할 제목이다.


오는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해 12월23일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도쿄 왕궁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_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례는 또 있다. 이번 관측을 설명한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기자회견장. 미 주간지 <타임>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일본 NHK 기자가 “이번 건이 엄청난 공동협력이라고 알고 있다. 각국, 특히 일본의 기여에 대해 세부사항을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질문했다. 이 기자가 국명을 밝히자 “잠시 머뭇한 뒤 다른 기자들의 부드러운 웃음소리들이 뒤따랐다”고 일본 영자일간지 <재팬타임스>는 전했다. 


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쉐퍼드 도엘레만 EHT 단장은 “일본은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중요한 것은 각 나라, 각 지역, 각 그룹, 각 연구소가 그들의 전문지식과 작업들을 갖고 왔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경을 넘어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이룩한 성과에서 ‘특히 일본’의 역할을 찾으려는 기자의 ‘우문’에 ‘현답’을 한 셈이다.


일부 문제로 치부할 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일본 스고이(대단해)론’을 자주 접하는 건 사실이다. <세계가 놀란 일본, 대단하네요>처럼 외국인이 일본을 상찬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서적들이 넘친다. 국제대회에서 일본 선수가 우승하면 “일본인 대단합니다”라는 진행자 멘트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단해론’이 부상하게 된 것을 일본의 위상과 사회 변화에서 찾고 있다.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1995년 한신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잇따른 자연재해, 중국의 추월 등에 따른 불안감이 배경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도성장을 이뤄내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1등 일본)’으로 불렸던 ‘좋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는 작품이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국수·복고주의 경향은 앞으로 더욱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달 1일 새 일왕 즉위를 앞둔 ‘개원(改元·연호가 바뀜)’ 열기가 이를 방증한다. 일왕 퇴·즉위 행사는 일왕이 ‘인간신’으로 군림했던 전전(戰前) 회귀를 꿈꾸는 우익들에겐 기회다. 개원 이후엔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9월 럭비 월드컵, 내년‘ 7월 도쿄 올림픽 등 대형 행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2006년 1차 내각 발족 당시 ‘아름다운 나라로’를 내걸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국수주의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일본 대단해론’의 맞은편엔 혐한·혐중 책이 넘쳐난다.지난 21일 끝난 통일지방선거에선 극우 세력들이 유세에서 혐한 발언을 쏟아냈다. ‘불편한 진실’에는 눈을 감고 자국의 훌륭함만 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배타주의에 빠지기 쉽다. 과거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을 때 ‘신의 나라 일본’이나 ‘일본 대단해’ 논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이런 ‘정신승리’가 파국을 막지는 못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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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단어는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이다. 오는 30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5월1일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의 즉위를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TV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넘친다. ‘헤이세이 최후의 ○○’라는 상품 판매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정해지면서 분위기는 더 달아오르고 있다. 그간 새 연호에 대한 예상이나 설문조사를 연일 보도해온 언론 매체들은 특집을 대거 마련했다. 백화점에선 ‘레이와’ 글자를 새긴 케이크를 판매하는 등 일찌감치 ‘레이와 마케팅’도 벌어지고 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 서거에 따라 ‘자숙’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짓눌렀던 1989년 개원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왕의 생전 퇴위로 모두들 마음 놓고 개원을 즐기는 모양새다. 


일본 전통인영 가게인 규게츠의 종업원이 지난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모습을 본뜬 인형 앞에 새 연호인 ‘레이와’가 적힌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쿄_교도연합뉴스


이런 열띤 분위기는 일왕의 퇴·즉위와 최장 10일 연휴인 ‘골든 위크’가 걸친 4월말·5월초를 정점으로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월22일에는 새 일왕의 공식 즉위식과 카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11월14~15일에는 새 일왕이 국민의 안녕을 신에게 비는 ‘다이조사이(大嘗祭)’가 거행된다. 일왕에게 권위와 신성을 부여하는 의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와 서력(西曆)을 함께 쓰는 일본에서 연호는 시대를 구분짓는 의미가 강하다. 연호가 바뀌는 것을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새로운 연호는 시대를 리셋시킨다”고 했다. 거품 경제 붕괴, 저출산고령화, 격차사회의 확대 등 탈 많았던 헤이세이를 뒤로 하고, ‘새 연호로 새 출발’ 하자는 것이다.  


‘새 연호로 새 출발’를 연출하는 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빠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1일 이례적으로 직접 담화를 발표하면서 “희망으로 넘치는 새로운 시대를 국민과 함께 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하는 방식’ ‘1억 총활약사회’ 같은 자신의 정책을 거론하는 등 마치 국회 연설 같았다. 정권이 연호 발표를 ‘정치쇼’로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헤이세이의 과제들을 아무 일 없던 듯 지나갈 수 없는 법이다. 최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헤이세이 뉴스 1위’로 꼽힌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가 대표적이다. 도쿄전력은 30~40년 후 완료를 목표로 폐로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폐로’의 최종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100만t에 달하는 오염수 처리도 문제다. 


연호는 일본 국수주의나 내셔널리즘과 뗄래야 뗄 수 없다. ‘일세일원(一世一元 ·1대에 하나의 연호)’ 원칙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강화된 천황제 중심 이데올로기 체제의 유물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군국주의 색채를 이유로 공식 사용을 금지했던 연호를 1979년 원호법 제정으로 부활시킨 것이 현재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로 이어지는 세력들이었다. 이들에겐 전전(戰前) 천황제로의 회귀가 염원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한국으로선 천황제는 불편한 대상이다. 현 히로히토 일왕은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부친 히로히토는 패전 후 ‘상징’적 존재로 연명함으로써 전쟁 책임을 비롯한 천황제의 문제를 애매하게 희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행위를 반성하려 하지 않는 것도 천황제의 존속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원로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최근 도쿄신문에 “이번이 천황(일왕)이란 뭔지 냉정하게 주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지만, 그런 기회는 좀체 살려지지 않는 것 같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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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부부가 쓰레기 내놓는 걸 계속했으면 나자빠졌을 겁니다.” 일본 지바(千葉)현 나가레야마(流山)시에 사는 한 노인(86)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의 쓰레기 배출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현관 앞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어두면 청소업자가 매주 1회 무료로 수거해간다. 쓰레기 분리는 도우미가 거들어준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35m 떨어진 쓰레기장까지 가져갔다. 폐기종을 앓고 있는 그에겐 고역이었다.

 

나가레야마시가 쓰레기 배출 지원을 시작한 것은 2012년 4월. 이용자는 100가구에서 140가구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65세 이상 인구(약 4만5000명)의 0.4%에 지나지 않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8일 전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사회 문제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고미야시키(쓰레기집)’다. ‘노인대국’ 일본에선 생활의욕 및 근력 저하, 인지증(치매) 등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총무성에 따르면 2017년 10월 현재 일본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28%로, 이 중 절반가량이 독거노인으로 추정된다. 특히 2036년에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기 힘으로 쓰레기 처리가 곤란한 고령자가 늘면서 집에 쓰레기가 쌓이고, 고립·소외감을 느끼는 등 지역사회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고령자에 대한 쓰레기 배출 지원 제도를 확충하기로 했다. 환경성이 전국의 쓰레기 처리 지원 상황을 조사하고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운용지침을 내년 3월까지 작성할 예정이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쓰레기를 회수함으로써 고독사를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나가레야마시는 65세 이상 고령자나 장애인 단독세대로 이웃이나 가족의 협력을 얻을 수 없는 경우 시에서 위탁한 청소업자가 집 현관까지 가서 쓰레기를 수거한다. 후쿠시마(福島)시는 시 직원들이 직접 고령자 집으로 찾아가 쓰레기를 버려준다. 센다이(仙台)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마을자치회나 자원봉사단체에 1가구당 140엔(약 1420원)을 지원한다.

 

다만 이런 지자체는 전체의 4분의 1 정도이고, 지원 대상도 극소수다. 국립환경연구소의 2015년도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쓰레기 배출 지원 제도가 있는 지자체는 23%였다. 반면 쓰레기 배출이 곤란한 주민이 늘 것이라고 답한 지자체는 87%에 이르렀다.

인력과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후쿠시마시는 지원 제도를 시작한 2007년에 비해 이용 가구 수가 2.5배인 1000가구로 증가했다. 시 담당자는 “이대로 계속 늘어나면 직원만으로는 손이 모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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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았니?”

반 년간의 한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 1일 일본에 돌아온 이노마타 슈헤이에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이라고 한다. “외무성에서 ‘주의’가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3·1운동 100주년 즈음한 데모 등에 관한 주의 환기’라는 제목의 ‘스팟 정보’를 냈다. 한국에 체재 중이거나 갈 예정인 일본인은 데모 등을 피해가고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만에 하나’ 피해를 당하거나 일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를 접하면 대사관에 알려달라고도 했다. 

 

이노마타는 “한국이 위험하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정말 일본인에게 위험한 곳일까. 그는 유학 중 ‘반일(反日) 사상’에 맞닥뜨린 적이 없다고 했다. 위안부 집회 등 ‘반일적’이라는 곳에도 가봤지만, 일본인이라고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다. 헤이트 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에 접한 적도 없다. 이노마타는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위안부 집회 등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대상의 전부를 몹시 싫어하는 ‘반일’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전했다. 이어 “뭘 가지고 ‘반일’이라는 걸까. 일본 정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일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터넷매체 ‘아라타니스’에 실린 글을 소개하는 것은 일본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사물과 사상을 재단하는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보다는 직접 현지를 경험한 대학생의 시각이 더 균형잡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 본행사가 끝난 뒤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앞서 ‘스팟 정보’와 흡사한 내용을 주장했던 일본 정치인에 대한 일본 누리꾼들의 ‘쿨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민당 나가오 다카시(長尾敬) 중의원은 지난 1월 트위터에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국인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려주는 리트윗이 잇따랐다.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가 ‘일본인?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라며 고기 굽는 걸 도와주거나, 길을 헤매면 서툰 일본어로 알려줘 너무 힘들어.”

“더 먹으라고 반강제로 리필도 해주고 선물이라며 김치와 한국 김을 담아줬으니 한국에선 정말 뭘 당할지 몰라.”

 

뒤틀리고 선동적인 주장을 그야말로 넌지시 뒤집어서 되돌려준 것이다.

지난해 한·일 간 인적 교류는 사상 최고인 1000만명을 기록했다. 양국 간 정치·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이런 교류가 편향·왜곡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시민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역 광장에서 일본 우익세력들이 욱일기, 일장기를 흔들면서 ‘한일 단교’, ‘3·1 운동은 폭동’ 등을 주장하고 있다. 도쿄_김진우특파원

 

다만 이런 움직임들이 언제까지 지탱될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최근 한·일 관계는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 대한 반감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일본에선 ‘실언’이나 ‘망언’으로 치부되던 일부의 극단적 주장이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게 됐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징용공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 잇따라는 현안을 두고, 모든 게 ‘반일’이라는 한 마디 말로 묶어 한국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 말하는 ‘반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 눈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부조리한 지배에 이의를 제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것도 ‘반일’일까. 오히려 ‘반일’ 딱지를 붙이고 증오를 부추기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인 나가라” 등 증오·혐오 집회가 버젓이 열리고, 서점에는 혐한(嫌韓) 책들이 경쟁하듯 진열돼 있는 곳에서 새삼 되묻게 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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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가 성형이라 너무 불안해요. 차나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으면”, “첫 방한, 첫 나홀로 해외여행이라 불안해요.식사나 DT로 산책 할 수 있는 분은 꼭!”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최근 이런 내용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신학기 등이 시작되는 4월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젊은 여성들이 사전에 정보를 교환하거나 현지에서 함께 지낼 동료를 찾고 있는 것이다. ‘DT’는 수술 후 부기가  빠지기까지의 ‘휴식시간(downtime)’을 의미한다.

 

4일 NHK에 따르면 내달 대학 입학을 앞둔 ㄱ씨(19세)는 이달 중순 한국에 건너가 코와 얼굴 윤곽 성형 , 지방흡입 수술을 할 예정이다. 그는 “첫 해외이고 말 도 모르기 때문에 식사나 상담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조금은 불안이 없어질까” 생각해  SNS에 글을 올렸다.

 

2013년 8월 서울의 한 지하철역 구내에 성형외과 광고판들이 붙어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델을 하고 있는 20세 여성은 지난달 한국을 찾아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다. 이달 한국에 다시 가서 얼굴 윤곽 성형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트위터나 설명회 등에서 실제 성형을 받은 사람과 만나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상담이나 성형 투어도 성행하고 있다. SNS에서 ‘한국성형투어’ 등을 검색해보면 한국 성형외과나 중개회사가 일본에서의 무료 상담회나 ‘미용성형 투어’ 등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 적지않게 확인된다. 일부 ‘미용성형 투어’에선 일정액 이상의 수술을 받는 고객에겐 항공권·호텔 예약,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환송·배웅을 해주고, 병원 상담시 통역 동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개회사에 따르면 일본인 여성은 신년도(4월) 전인 12월~3월 수술을 받는 경향이 있고, 개인 참가가 많다. 눈·코 성형이 인기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ㄱ씨의 경우 성형비용을 약 100만엔(약 1005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항공비나 체제비를 포함해도 일본보다 10만~20만엔 싸다.  또 한국에선 19세가 성인으로 수술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점도 거론된다. 일본에선 현재 성인 연령은 20세다. 미용성형 투어를 기획하고 있는 한 회사는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에서 트렌드인 것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면서 “상담할 때 한국 여성 아이돌 사진을 갖고 오는 일본인도 있다”고 NHK에 밝혔다.

 

다만 ‘한국 미용성형 투어’에 대한 경계감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국민생활센터에는 “지금 지불하면 15% 할인, 취소시 예약금 전액 반환이라고 했는데 취소하려니까 한국까지 받으러 오라고 했다” 등의 민원이나 “턱 수술 후 좌우가 비대칭이 됐다” 등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일본미용외과학회의 아오키 리쓰(靑木律) 홍보위원장은 “해외의 의사가 끝까지 수술 책임을 지지 않고 실밥 제거를 일본에서 하면 수술 정보가 없어 상처가 커지거나, 언어 문제로 미묘한 뉘앙스를 전하지 못해 수술 결과가 생각과 어긋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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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관계가 악화일로다.

지난해 10월 한국 대법원의 강제동원 피해자에 대한 일본 기업 손해배상 판결, 11월 위안부 화해·치유재단 해산 발표, 12월 일본 초계기와 한국 군함 간 ‘위협비행-레이더’ 논란 등으로 갈등이 커지고만 있다. 문희상 국회의장이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의 본질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사죄라면서 아키히토(明仁) 일왕을 ‘전쟁범죄 주범의 아들’이라고 한 것도 일본의 반발을 샀다.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 당시 문 의장 발언에 대해 고노 다로(河野太郞) 외무상의 항의가 있었는지를 두고도 진실 공방이 벌어졌다. 한·일관계가 사실관계조차 엇갈리는 인식을 보이는 심각한 상태다.

 

이럴 때일수록 양국이 냉정을 유지해야 함은 물론이다. 현안 인식이 다를지라도, 상호 불신을 부채질하고 감정을 자극하는 발언은 삼가야 한다. 그런 면에서 최근 일본 정계의 움직임은 우려스럽다. 일본 언론은 여당인 자민당에서 한국에 대한 대응조치로 반도체 제조에 불가결한 불화수소 등 소재·부품이나 방위 물품의 수출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고 보도했다. 국제질서와 규범을 준수한다는 일본이 초법적인 조치를 거론하는 것은 긴장만 높일 뿐 문제 해결에 도움이 안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4일 미에현 이세신궁을 참배하며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이세 _ 교도연합뉴스

 

일본 내 ‘혐한(嫌韓) 기류’에 편승하는 사례도 잇따르고 있다. 야마모토 도모히로 의원은 지난달 31일 레이더 문제와 관련해 “거짓말쟁이는 도둑의 시작이 아니라 도둑이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했다. 한국이 원래 도둑이어서 거짓말을 한다는 것이다. 나카야마 야스히데 의원은 지난 13일 “만약 한국에서 태어나 대통령이라도 됐다면 그 마지막은 사형 아니면 체포 아니면 자살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발언들이 국회 질의나 당 회의에서 버젓이 나오고 있다. 자민당 소속인 두 의원은 모두 일본 최대 극우단체 ‘일본회의’ 산하 ‘일본회의 국회의원 간담회’와 ‘다 함께 야스쿠니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 회원이다. 양국 정치인들이 비난전을 되풀이하면 이득을 보는 것은 누구일까.

 

신경 쓰이는 대목은 또 있다. 일본에선 한·일 갈등과 관련해 한국이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있다는 점을 빼놓지 않는다. 반일 감정이 높아져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에 역행하지 않을까 우려한다. 고노 외무상은 지난 15일 한·일 외교장관 회담에서 3·1운동 100주년으로 반일 감정이 부추겨져 한·일관계가 더욱 악화할 수 있다는 우려를 전했다고 일본 언론은 보도했다.

 

‘역지사지’가 필요하다. 일본에선 ‘3·1운동’을 쉽게 말하지만, 3·1운동의 배경과 진행 과정, 당시 한반도와 동아시아에서 갖는 의미를 살펴보려는 움직임은 드물다. 최근 남북 화해 움직임이나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헤이트 스피치’(혐오·차별 발언)가 넘쳐날 뿐 한반도의 질곡과 고통의 뿌리가 일제 식민 지배에 있음을 직시하는 이들은 소수다.

 

일본이 말하는 ‘미래지향적인 한·일관계’는 과연 무엇일까. “한국은 과거에 집착한다”는 언설에 역사적 과오에 대한 진정한 사과와 반성,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라는 원칙은 묻혀버린다.

 

“기억이 사라지면 없었던 일이 돼버린다. 그렇다고 비관해선 안된다. 새롭게 기억해 젊은 세대에게 계승해야 한다.”

 

지난 17일 도쿄 릿쿄대에서 열린 시인 윤동주 74주기 행사에서 야나기하라 야스코는 12년째 행사를 주관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도쿄 ‘2·8독립선언 기념자료실’의 다즈케 가즈히사 실장은 “미래를 지향한다면 과거를 알아야 한다”며 “2·8독립선언과 3·1운동 100주년이 과거 역사를 직시하고 극복할 계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일본인이 이런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지 모르겠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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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슈카쓰(就活·취업활동)’에서 ‘취직 에이전트(대리인)’를 활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대학생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전임 ‘어드바이저(조언자)’가 붙어 희망과 적성에 맞는 기업을 소개하는 일종의 ‘취업 코디네이터’다.

 

대학생은 무료로 조언을 받으면서 취업 준비를 할 수 있는 반면, 기업은 원하는 인재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인기를 얻고 있다. 일손 부족으로 우수 인재 확보에 부심하는 일본 노동시장 상황이 반영된 것이란 풀이가 나온다.

 

일본 대학생들이 2016년 3월 도쿄에서 열린 취업 박람회에서 기업 관계자로부터 설명을 듣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11일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인재·컨설팅회사인 DYM은 2010년부터 취직 에이전트 사업을 하고 있다. 2013년 2만명이었던 등록자는 2019년 봄 대학 졸업 예정자만 12만5000명으로 늘었다. 최근 1년 간 4000명이 DYM을 통해 전국 1500개사에 취직했다.

 

친구를 통해 DYM에 등록한 대학 3년생 구니이 유키(國井柚希)는 지난해 12월 어드바이저와 면담을 통해 흥미를 갖고 있는 차와 관련된 인턴십을 소개받았다. 어드바이저로부터 “일단 참가해 어떻게 느꼈는가로 앞으로를 생각해보자”는 조언을 받았다. 슈카쓰에는 입사지원서 쓰는 방법, 자기분석 등 모르는 것 투성이. 구니이는 “혼자라면 이 인턴십을 발견하지 못했거나 발견했다고 해도 참가해야 할 지 고민했을 것”이라면서 “불안이 가득하지만 ‘백(후원자)’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 것 같다”고 말했다.

 

시간이 부족한 대학생들로선 취직 에이전트의 조언을 받으면서 슈카쓰를 할 수 있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니혼게이자이는 전했다. 에이전트 이용비는 기업이 내기 때문에 대학생의 부담은 ‘제로’다. 입사가 결정되면 에이전트는 기업으로부터 성과 보수로 수십만엔을 받는다.

 

취직 에이전트를 이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마케팅업체 마이케이는 5년 전부터 DYM의 ‘신졸(新卒·그 해 졸업자)소개’를 이용하고 있다. 이다 유(飯田裕) 회장은 “지금까지는 각지의 회사설명회에 참가해 학생을 모았다”면서 “비용과 시간, 노력이 상당히 소요되지만 입사 3년 만에 절반이 그만둔다”고 밝혔다. 이 회사는 올 4월 신입사원의 경우 에이전트로부터 소개받은 40명을 면접해 20명을 내정했고, 이 가운데 8명이 입사를 결정했다. 이다 회장은 “원하는 인재는 사전에 면밀하게 협의하기 때문에 ‘미스 매치’가 없어져 이직도 줄고 있다”고 말했다.

 

취업정보회사도 취직 에이전트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마이나비는 2017년 10월 신졸소개 부서를 독립시켰다. 마이나비 회원 가운데 면담을 통해 신졸소개 회원으로 등록한 올봄 졸업 예정 대학생은 2만명에 이른다. 지난해에는 신졸소개협의회도 설립됐다. 야노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취직 에이전트 사업을 포함하는 신졸채용지원 시장규모는 2017년에 전년 대비 8.6% 증가한 1193억엔(약 1조2000억원), 2018년에는 전년보다 8.0% 증가한 1288억엔(약 1조3000억원)으로 전망되고 있다. DYM 오키노조 마사히로(沖之城雅弘) 이사는 “프로가 적성을 살펴 학생과 기업을 연결함으로써 쌍방에 좋은 결과를 가져온다”면서 “이용하는 학생도 기업도 더욱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취직 에이전트로부터 ‘오와하라(취업이 확정된 대졸예정자에게 다른 회사를 더 이상 알아보지 말라고 요구)’를 받는 등 부작용도 생기고 있다. 한 대학의 슈카쓰 담당자는 니혼게이자이에 “싫은 것은 싫다고 말하고, 에이전트를 판별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밝혔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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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를 상징하는 말로 ‘#미투(MeToo)’를 빼놓을 수 없다. 2017년 10월 미국 할리우드 영화계의 거물 하비 웨인스타인에 대한 폭로를 시작으로 성폭력을 고발하는 여성들이 잇따랐다. 이것이 ‘#미투’ 운동으로 미국은 물론 전 세계로 퍼졌다. 한국도 지난해 1월 서지현 검사 이후 권력형 성폭력에 대한 피해 증언이 이어지고 있다.

 

일본에서도 움직임이 있었다. 지난해 ‘신조어·유행어 톱 10’에 ‘#미투(MeToo)’가 포함됐다. 하지만 상황은 좀 달랐다. 프리랜서 저널리스트 이토 시오리가 2017년 5월 유명 방송기자에게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했지만 반향은 오래가지 않았다.

 

지난 18일 일본 도쿄 시모기타자와 B&B서점에서 열린 조남주 장편소설 <82년생 김지영> 북 토크에서 이 책을 번역한 사이토 마리코(오른쪽)와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가 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김진우 기자

 

지난해 4월엔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문제가 발생했다. 이에 대해 아소 다로 부총리 겸 재무장관은 “(여기자에게) 속아넘어간 게 아니냐는 다양한 의견이 있다” 등의 발언으로 비난을 자초했다. 아베 신조 정부는 아소 부총리의 발언을 뒷받침하듯 각의(국무회의)에서 “성희롱으로 처벌하는 취지를 규정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답변서를 결정했다. 지난 9일 인터넷 투표에선 ‘2018년 최악의 성차별 발언을 한 정치인’으로 아소 부총리가 선정됐다.

 

그렇게 2019년이 시작된 지 3주일, ‘#미투’ 사안이라고 부를 만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우선 남성용 잡지 ‘주간SPA!’의 ‘성관계 쉬운 여대생 순위’ 논란. 후지산케이그룹 산하로 보수 성향의 후쇼샤(扶桑社)가 출판하는 ‘주간SPA!’는 지난달 25일 크리스마스 특집호에 성관계하기 쉬운 여학생들이 많은 여자대학 5곳의 순위를 실었다. 이에 인터넷을 중심으로 “준강간죄를 조장한다” “여성 경시다” 등의 비난이 빗발쳤다. ‘여성을 경시한 잡지 출판을 멈추고 사과하라’는 제목의 온라인 서명에는 5만명 가까이가 참여했다. ‘주간SPA!’ 편집부는 결국 사과문을 발표했지만, “‘친밀해지기 쉬운’이라고 표현해야 할 부분에 선정적인 단어를 쓰게 됐다” 등의 해명이 더욱 비난을 불렀다.

 

또 하나는 여자 아이돌그룹 멤버 피습 사건. NGT48의 야마구치 마호가 지난 8일 인터넷 동영상을 통해 자택에서 괴한에게 습격을 받은 사실과 함께 소속사가 한 달간 아무런 대처도 없었다고 폭로했다. 그런데 지난 10일 팬미팅에서 “물의를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 숙인 것은 야마구치였다. 폭력 피해자가 자신이 겪은 공포를 눈물로 호소해야 하는 상황에 몰린 것도 모자라, 소속사는 피해자가 사과하도록 해 사태를 서둘러 수습하려 한 것이다.

 

이번 사건을 대하는 ‘남성’들의 대응은 한술 더 떴다. 일본의 유명 개그맨 마쓰모토 히토시는 후지TV의 한 프로그램에서 NGT48과 자매그룹인 HKT48의 사시하라 리노가 대책을 호소하자 “그건 자신 있는 몸을 사용해 어떻게 해보든지”라고 말했다. 여성이 출세하기 위해 ‘성’을 무기로 사용한다는 편견을 여과 없이 노출한 것이다. 이런 차별적 발언을 후지TV에선 편집하지 않은 채 그대로 내보냈다.

 

해가 바뀌어도 일본 사회가 남성 중심의 철옹성임을 보여주는 사례들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다. 지난 19일 소설 <82년생 김지영> 일본어판 간행 기념 행사에서 서평가 구라모토 사오리는 “1980년대 얘기라고 생각했던 게 지금 일어나고 있다”고 변하지 않는 일본의 현실에 답답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인터넷 서명운동과 면담을 통해 ‘주간SPA!’의 사과를 이끌어낸 것은 야마모토 가즈나 등 여대생들이었다. ‘조직과 사회의 조화’ 등의 명목 아래 침묵을 강요하는 사회에 당당히 맞서는 젊은 세대들이 있는 것이다. 아베 정권이 내건 ‘여성이 빛나는 사회’라는 구호는 허상에 불과하다. 그 허상에 분노를 표현하고, 연대하고, 현실을 바꾸려는 누군가가 있다. 시대는 변하고 있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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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새해가 밝았다. 일본에서는 새해 첫날인 ‘오쇼가쓰’를 맞아 가족이 함께 모여 음식과 술을 즐긴다. 신사나 절을 찾아 한 해의 소원도 빈다. 새해에는 좋은 일만 생기길 바라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지난달 29일부터 휴가 중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도 2019년이 어느 해보다 뜻깊은 해가 되길 바랄 것이다. 그는 올 11월 역대 ‘최장수 총리’ 등극을 앞두고 있고, 비원(悲願)인 평화헌법 개정에도 나선다. 장기 정권의 ‘레거시(정치적 유산)’로 북방영토(쿠릴 4개섬) 문제 해결도 노리고 있다.

 

지난해 9월 자민당 총재 3연임에 성공한 아베 총리는 2021년 9월까지 총리직을 이어갈 수 있다. 오는 8월에는 사토 에이사쿠(佐藤榮作) 전 총리의 전후 최장수 총리 기록(2798일)을 넘어서고, 11월엔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기 재임 총리가 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 AP연합뉴스

 

일본 언론은 아베 총리가 개헌과 북방영토 해결을 올해 목표로 잡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아베 총리는 개정 헌법의 2020년 실시를 내걸었다. 자민당도 전쟁 포기와 전력 불보유를 규정한 헌법 9조에 자위대의 설치 근거를 두는 당 개헌안을 지난해 3월 마련했다.

 

하지만 지난해는 오산의 연속이었다. 사학 스캔들과 연립여당인 공명당의 소극적인 태도, 전면 배치했던 측근들의 부적절한 언행으로 당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조차 하지 못했다. 자민당은 이달 하순 정기국회에서 당 개헌안을 제출할 생각이지만, 오는 7월 참의원 선거 전 국회 개헌 발의는 어려워졌다. 이 때문에 개헌 발의를 참의원 선거 이후로 미루고 내년 상반기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하는 안이 부상하고 있다. 이런 안이 현실화할 경우 참의원 선거 결과가 개헌을 크게 좌우하게 된다.

 

아베 총리는 “2019년은 러시아”라며 북방영토 문제 해결에도 강한 의욕을 보이고 있다. 그는 지난해 11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시코탄·하보마이 섬을 일본에 인도하는 내용을 담은 1956년 소·일 공동선언에 기초해 평화조약 협상을 가속하기로 했다. 오는 21일 모스크바에서 가질 러·일 정상회담에서 북방영토 문제에 진전을 이뤄낼지 주목된다.

 

다만 국내 여론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푸틴 대통령이 2개 섬 인도에 동의할지는 불투명하다. 설혹 2개 섬 반환에 합의해도 아베 총리가 당초 4개 섬 반환에서 2개 섬 반환으로 방침을 바꾼 데 대한 여론의 반응도 예단하기 어렵다.

 

이런 상황을 감안해 중·참의원 ‘더블 선거’ 얘기도 솔솔 나오고 있다. 북방영토 협상에 대한 신임을 묻는다는 이유로 중의원을 해산한 뒤 중·참의원 동시 선거를 치러 개헌 정족수를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올해의 ‘빅 이벤트’인 북방영토 협상, 참의원 선거, 개헌 발의가 얽히고설켜 있는 셈이다.

 

하지만 새해 소원이 대부분 그렇듯 아베 총리의 시나리오가 뜻대로 될지는 장담할 수 없다. 장기 정권에 필연적인 ‘레임덕’이 새 일왕이 즉위하는 5월1일을 기점으로 시작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장기 집권을 가능하게 했던 경제도 불확실성을 더해가고 있다.

2019년은 돼지, 일본에선 멧돼지의 해다. 멧돼지는 무병장수와 용맹·모험을 상징한다. 저돌맹진(猪突猛進·앞뒤 안 보고 목표를 향해 돌진함)이라는 말도 있다.

 

아베 총리는 집권 6년간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가능케 하는 안보법, 알 권리 침해 우려가 있는 특정비밀보호법, 범죄를 계획 단계부터 처벌할 수 있는 공모죄법 등을 여론의 반대에도 강행 통과시켰다. 국민을 적과 아군으로 나눠 사회를 갈라놓는 수법도 두드러졌다. 그가 자신의 숙원을 이루기 위해 멧돼지처럼 무턱대고 돌진하는 한 해가 되기를 기원하는 이들이 얼마나 있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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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면역이 없고, 운이 나빴다고 할까, 그런 블로그를 만나서 믿고 말았습니다.”

지난 23일 마이니치신문 인터넷판에는 50대 여성 ㄱ씨의 인터뷰가 실렸다. ㄱ씨는 차분하고 정중한 말투로 “블로그가 불안감과 공포감을 부추겼다. 세뇌당했다”고 했다.

 

ㄱ씨가 말한 블로그는 ‘여명(余命) 삼년 시사일기’라는 익명의 필자가 운영하는 블로그다. 이 블로그는 “조선인은 일본의 암”이라고 주장하면서 ‘재일(在日)’은 불법체류자로 입국관리국에 통보할 것, ‘반일(反日)’은 외환(外患) 유치죄 등으로 경찰에 고발할 것, 조선학교 보조금 중단에 반대하는 변호사회 회장 성명에 찬성한 변호사는 ‘확신적 범죄행위’ 등으로 징계를 청구할 것 등을 촉구해왔다. 이에 지난해 전국 21개 변호사회에는 성명에 찬성한 변호사들을 대상으로 한 징계 청구가 13만건이나 쇄도했다.

 

ㄱ씨는 징계청구자 가운데 한 명이다. 그는 “블로그에서 말한 대로 했다”고 주장했다. ㄱ씨는 2015년 한 개그맨의 개그 소재가 ‘반일적’이라는 인터넷 글을 보고 검색을 하다가 이 블로그를 만나게 됐다. “일본이 한국·중국과 분쟁 상태가 되면 재일코리안들과 실질적인 게릴라전 상황이 된다”라는 글에 위기감을 느꼈고, 블로그의 ‘지시’를 즐겁게 기다리게 됐다. 블로그 활동비를 보낸 일도 있다.

 

징계청구에 대해서도 “부담감은 전혀 없었다”고 한다. 블로그 댓글난에 주소와 성명을 기입하자 지난해 5월과 10월 각각 200장의 고발장과 징계청구서가 왔다. ㄱ씨는 청구서에 자신의 이름과 주소를 적고, 도장을 찍어 우편으로 보냈다. 그는 “일본을 위하고, 일본을 지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무언가 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쁜 듯한 심리상태였다. 다음은 무엇을 하면 좋을까 지시를 바란 부분도 있다”라고 했다.

 

징계청구 대상이 된 변호사들이 업무 방해 등으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했다는 보도를 접하고 두려움을 느꼈고 “곤란하다”고 생각했다. 현재는 블로그를 보는 것을 그만뒀다. 그는 징계청구라는 수단은 잘못됐지만, 자신이 차별을 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더러 차별주의자라고 하면 좀 이해가 안 간다”라고 했다.

 

과연 그럴까. ㄱ씨의 인터뷰를 보면서 지난 7월 만난 김류스케 변호사의 말이 떠올랐다. 959건의 징계청구 대상이 된 김 변호사는 당시 “두렵다”고 했다. 과거와 달리 실명으로 차별·혐오 발언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그는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고 ‘일본을 위해서’라고 말할 수 있고, 당당하게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를 해도 되는 사회가 되고 있다”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일본인들에게 존재하는 재일코리안을 배제하려는 감정이 유언비어나 선동에 쉽게 움직인다고 지적했다. 이번 대량 징계청구 사건을 두고 95년 전 간토(關東) 대지진 때 유언비어가 퍼져 조선인 학살이 일어났던 사태를 떠올리는 이들도 있다.

도쿄지방재판소는 지난 24일 재일동포라는 이유로 징계를 청구한 것은 부당한 차별이라는 김 변호사의 주장을 받아들여 징계를 청구했던 41세 남성에게 33만엔(약 330만원)을 배상하라고 명령했다. 해당 남성은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으며 서면으로도 자신의 입장을 제출하지 않았다.

 

ㄱ씨를 비롯한 청구자들에게 차별을 했다는 의식은 없어 보인다. 일부 청구자들은 소송을 제기한 변호사에게 ‘사죄 편지’를 보냈다. 하지만 “손해배상 청구를 피하기 위한 편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반응이 나온다. 이케다 겐타(池田賢太) 변호사는 지난 5월 사죄문을 보낸 이들에게 답장을 보냈다.

 

“당신이 해야 할 일은 나한테 사죄하는 게 아닙니다. 당신 안에 명확하게 존재하는 ‘차별을 하는 마음’과 마주하고, 차별을 즐기는 것과 결별하는 것입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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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지난 4일 총리 관저에서 크리스틴 라가르드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를 만나 “(아베 내각) 역대 최고인 5명이 들어왔다”고 말했다. 이날 발표한 차관급 인사에서 부(副)대신 25명 중 여성이 지난 개각 때보다 2명 늘어난 5명이라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아베 총리는 “25세 이상 여성 취업률은 미국을 웃돌고, 임원 수도 정권 발족 전보다 2.5배 늘었다”고 덧붙였다.

 

라가르드 총재는 “일본은 여성 활약 면에 세계의 챔피언 같은 존재”라고 덕담하면서도 일본이 노동시장에서의 성 격차를 줄이기 위해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다”고 주문했다. 그는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여성 중 한 명이자 선도적인 여권(女權) 옹호자로 꼽힌다.

 

아베 총리가 라가르드 총재 앞에서 낯간지러운 자랑을 한 이유가 있다. 지난 2일 출범한 4차 아베 개조(改造) 내각에서 각료 19명 가운데 여성이 단 한 명밖에 없는 데 대한 비판을 의식한 것이다.

 

하지만 부대신에 여성을 늘렸다고 자랑하는 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다. 그런 식으로 따지면 정무관(차관급) 인사에서 여성은 지난번보다 1명이 줄어든 1명이다. 한 일본 언론인은 “부대신은 큰 권한이 없다”며 “개각이 파벌의 의향에 얽매였고 여성 각료가 적다는 비판을 물타기 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은 세계 3위의 경제력을 갖고 있는 선진국이다. 하지만 이런 타이틀이 무색할 정도로 정치와 경제에서 여성 참여가 저조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세계 성 격차 보고서 2017’에선 조사대상 144개국 중 114위를 차지했다.

이번 개각에서 이런 상황이 재확인됐지만, 단지 그것만이 아니다. 아베 정권의 ‘본심’이 여실히 드러났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여성 활약’을 간판 정책으로 적극 홍보해왔다. 실제 정권 출범 당시 여성 각료가 5명에 달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후 개각 때마다 여성 각료가 3명, 2명으로 점차 줄어들어 이번에 달랑 1명이 됐다.

 

지난해에는 국제여성회의(WAW)를 유치하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딸 이방카를 초청했다. 아베 총리는 이방카가 설립에 관여한 ‘여성기업가기금 이니셔티브’ 기금으로 5000만달러를 지원한다고 밝혔다. 그는 유엔 연설에서는 “여성이 빛나는 사회”를 말했다.

이번 개각으로 그런 ‘여성 활약’ 구호를 내팽개친 셈이 됐다. 아베 총리도 이를 의식한 듯 개각 후 기자회견에서 “(여성 각료의 수가) 적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여성 각료인 가타야마 사쓰키 지방창생상에 대해 “2명, 3명 몫의 발신력을 갖고 일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가타야마 지방창생상에게 2명, 3명 몫의 권한을 줄 리 만무하다. 오히려 여성이 2명, 3명 몫을 해야만 사회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일본사회의 풍토만 부각시킬 뿐이다.

 

아베 총리는 심지어 “일본은 여성 활약 사회가 막 시작돼 앞으로 점점 입각할 인재가 자랄 것”이라고 했다. 발족 6년이 다 돼가는 정권이 할 말인가 싶다. 정말 생각이 있었으면 그동안 여성 의원과 관료를 늘릴 수 있었다. 지난해 중의원 선거에서 자민당의 여성후보자 비율은 전체 17.7%에 훨씬 못 미치는 7.5%였다.

 

‘1억 총활약 사회’ ‘일하는 방식 개혁’ ‘사람 만들기 혁명’…. 아베 정권은 그간 머리에 쏙쏙 들어오는 신조어를 잇달아 만들어 정권의 치적을 강조하고 비판을 피해온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이번 개각을 통해 적어도 ‘여성 활약’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오히려 재무차관의 여기자 성희롱 사건에 대해 “함정에 빠진 거라는 의견도 많다” 등으로 옹호한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이 건재한 게 정권의 본질에 가까운 게 아닐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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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살던 고향은 꽃피는 산골.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 진달래….”

지난 8일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가와사키(川崎)시 사쿠라초등학교 강당에 ‘고향의 봄’이 울려퍼졌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할머니 40여명이 함께 입을 모았다. 휠체어에 앉아 노래를 부르는 할머니들도 있었다. 재일동포 고령자 모임인 ‘도라지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마련된 마당극을 여는 노래였다. 마당극 제목도 ‘고향의 봄 2’.

 

‘도라지회’는 1998년 1월 가와사키 후레아이칸(교류관)에서 글을 배우던 할머니들의 교류의 장으로 시작됐다. 매주 수요일 사쿠라초등학교 한쪽을 빌려 한국 요리나 노래, 춤을 즐긴다. 고립감을 느끼기 쉬운 할머니들이 서로 흉금을 터놓고 위안을 얻는 곳으로 자리잡았다. 현재 등록 회원은 110명.

 

마당극에 앞서 후레아이칸 30주년 및 도라지회 20주년 기념식도 열렸다. 후레아이칸은 재일 인권운동가 고(故) 이인하 목사(1928~2008년)의 주도로 1988년 설립된 다문화 복지시설이다. 후레아이칸과 사쿠라초등학교가 자리한 사쿠라모토(櫻本) 지역은 재일동포들이 많이 모여 사는 곳이다.

 

이날 마당극은 일제강점기와 태평양 전쟁, 해방 등 굴곡의 역사를 살아온 재일동포 할머니들의 체험담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총 4마당에 걸쳐 할머니들의 연기와 노래, 춤이 펼쳐졌고, 중간중간 할머니들이 꼭꼭 눌러쓴 ‘개인사’가 소개됐다. 

 

섣달그믐 밤 어머니가 만들어준 치마저고리를 껴안고 자던 ‘고향’의 기억, 일제의 공출을 피해 쌀을 숨기다 발각된 아버지가 끌려간 일, 가난을 피해 혈혈단신으로 바다 건너 일본으로 온 일, 어떻게든 살기 위해 한 잔에 40엔 하는 막걸리 가게를 열고 일본인이 먹지 않던 소 내장을 구해 야키니쿠(숯불고기) 가게를 한 일…. 할머니들의 질곡 많은 삶에 눈물을 훔치는 관객들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마당극에선 억척스럽게 역경들을 이겨낸 할머니들의 모습이 빛났다. 최고령자인 조정순 할머니(94)는 탄광촌에서 다이너마이트를 나르던 일을 담담하게 증언하면서도, ‘살아서 다행’이라는 의미로 몇 번이나 했던 한국말로 “아이고 참 좋다”를 외쳤다.

각 마당을 알리기 위해 한 할머니가 손팻말을 들고 엉덩이춤을 추자 관객석에선 “예뻐요”라는 말이, 할머니 10여명이 ‘노들강변’에 맞춰 부채춤을 추자 “멋지다”라는 환호가 터져나왔다. 할머니들이 대사를 까먹어 서로 알려주거나 “잘 들리지 않으니 크게 말해” “내가 말할 차례니까 잠깐만”이라고 말하는 대목에선 모두들 박장대소했다. 할머니들은 무대를 내려오면서 “부끄럽다”면서도 웃었다.

 

마지막 마당에선 도라지회에 다니면서 젊은 재일동포들이 일본인들과 함께 “차별을 없애자”고 노력하는 걸 보고 “우리도 힘내야지”라고 다짐하는 할머니들의 심정이 소개됐다.

 

“돌아가라니. 지금 돌아갈 곳은 이곳밖에 없어. 그런 말 말고 도라지회에 오면 어때. 맛난 거 함께 먹고 노래하고 춤추고 놀면 좋지 않나. 제대로 만나보면 그렇게 말하지 않게 되지 않을까.”

 

이어 페루에서 온 일본계 2세 오시마 마사코(大城正子) 할머니의 글이 소개됐다. 할머니는 “(페루에서) ‘네 나라에 돌아가라’는 말을 들었다”며 “‘조선에 돌아가’ ‘죽어’라는 말을 들으면 얼마나 슬픈지 잘 알고 있다”고 했다.

“…그 속에서 놀던 때가 그립습니다.”

마당극을 닫는 노래도 역시 ‘고향의 봄’이었다.

마당극이 끝난 뒤 할머니들이 모두 모여 사진을 함께 찍었다. “이 모습으로 모이는 게 처음이자 마지막일지 모른다”는 진행자의 농담에 모두들 환하게 웃었다. 이날 할머니들에게 ‘고향’의 의미는 남달라보였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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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자민당 총재 3선이 ‘따 놓은 당상’으로 가는 흐름이다. 총리 주변에서는 남은 것은 총재 선거에서 압승해 ‘아베 1강’ 체제를 굳히는 것뿐이라는 얘기마저 나오고 있다.

 

당내 세력 판도가 아베 총리 쪽으로 기운 것은 분명해 보인다. 아베 총리는 소속 파벌이자 당내 최대인 호소다파(94명), 2번째인 아소파(59명), 5번째인 니카이파(44명)의 지지를 받고 있다. 여기에 4번째 파벌인 기시다파(48명)의 수장인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당 정조회장이 최근 총재 선거에 출마하지 않고 아베 총리를 지지하겠다고 밝혔다.

자민당 총재 선거는 국회의원과 당원이 각각 405표이고, 과반 득표자가 없으면 국회의원 405표, 당원 47표로 결선이 치러진다. 의원표의 60%를 확보한 아베 총리가 절대적으로 유리한 것이다.

 

아베 총리가 3선에 성공하면 최장 3년을 더 집권할 수 있고, 헌정 사상 최장수 총리가 될 수 있다. 총리 측 바람대로 ‘아베 1강’ 체제가 탄탄대로를 달릴 가능성도 높다. 거칠 것 없이 밀어붙이기로 일관했던 1년여 전 상황이 재현되는 셈이다.

 

총리 측으로선 그렇게 된다면야 금상첨화지만, ‘아베 1강 체제’의 폐해가 커지는 건 아닌지 짚어볼 대목이다. 징조는 나타나고 있다. 총리 주변에선 “따르지 않는 사람은 찬밥을 먹을 것”이라고 의원들을 공공연하게 겁박하고, 의원들도 눈치껏 줄을 선다. ‘우에서 좌를 아우른다’던 자민당의 활력은 온데간데없다. 모리토모(森友)·가케(加計)학원 스캔들에서 드러났던 ‘손타쿠(忖度·윗사람의 뜻을 헤아려 알아서 행동)’의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주목할 대목은 또 있다. ‘아베 총리 3선 유력’ 보도가 나오던 즈음 실소를 자아내는 뉴스가 날아들었다. 자민당 소속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의원이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면서 이들에게 세금을 쓸 필요가 없다고 월간지 기고에서 당당히 밝힌 것이다. 이에 대해 자민당은 “각각 정치적 입장, 다양한 인생관이 있다”(니카이 도시히로 간사장)는 식으로 대응했다. 보편적 인권 문제에 눈을 감은 것이다.

 

문제는 이번 논란이 어느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것)’ 의원의 돌출 행동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스기타는 “남녀평등은 망상”이라거나, 성폭행을 폭로한 여성 저널리스트에 대해 “여자로서 잘못이 있었다”라는 등 망언을 반복해온 인물이다. 그가 선배 의원들로부터 “잘못한 게 없으니 가슴을 펴라”는 말을 들었다고 밝혔듯이, 자민당 내에도 이런 인식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런 인식이 일본 우익의 논리구조를 반영하고 있다는 분석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일본 우익은 전전(戰前)의 일본으로 돌아가려는 열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일왕을 정점으로 하는 ‘가족국가’ 체제가 대표적이다. 이런 움직임을 주도하는 것이 아베 총리의 최대 후원세력이자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다. 이들은 전쟁 가능한 국가로 가는 개헌을 외치고 있고, 위안부 문제 등 식민지배와 전쟁의 역사를 뒤집으려는 ‘역사수정주의’를 내세우고 있다.

 

스기타는 ‘소녀상 폭발’ 발언을 하는 등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인하는 활동도 적극 해왔다. 그가 지난 총선에서 공천받을 때 우익 저널리스트 사쿠라이 요시코를 추천해줬다고 밝힌 점은 의미심장하다. 스기타 의원은 아베 총리 파벌인 호소다파 소속이다.

‘아베 1강 체제’의 장기화는 자민당의 활력만 잃게 하는 건 아닐 것이다. 일본 사회 전반에 ‘손타쿠’와 ‘침묵’의 구조를 심화시킬 위험성도 지적된다. 최근 아베 총리와 자민당 의원들의 ‘폭우 술자리’를 비판하는 측에게 ‘거국일치’ 역공이 있었던 것은 이를 예고하는 듯하다. 조만간 스기타 같은 인물들이 더 당당하게 차별적 발언을 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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