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 국제칼럼'에 해당되는 글 1817건

  1. 2019.10.16 [기고]국제 ‘열린정부’ 의장국으로서 한국의 역할
  2. 2019.10.16 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3. 2019.10.15 [사설]월드컵 평양 경기 남측 응원단·취재진 막은 북한, 유감이다
  4. 2019.10.15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회색지대 사태’와 북한의 대처법
  5. 2019.10.14 “모두 달라 좋다”구요?
  6. 2019.10.07 [사설]북·미 실무협상 결렬, 조속한 시일 내 재개해야
  7. 2019.10.04 [사설]홍콩 사태, 경찰의 ‘실탄 진압’ 용납 안된다
  8. 2019.10.04 [사설]북·미 협상 분위기를 깨는 북의 미사일 발사
  9. 2019.10.04 다시 출발점에 선 ‘북·미 대화’
  10. 2019.10.02 [사설]북·미협상 재개, 한반도 평화 대전환의 서막이기를
  11. 2019.10.02 중국 첫 ‘공화국 훈장’ 수훈자의 비밀
  12. 2019.09.27 [사설]‘트럼프 탄핵 정국’, 북·미 협상에 대한 영향 최소화해야
  13. 2019.09.25 ‘100%’ 트럼프표 외교시대
  14. 2019.09.24 [세상읽기]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가 불안해진 이유
  15. 2019.09.23 [사설]트럼프의 북핵 협상 ‘새로운 방식’ 주목한다
  16. 2019.09.18 [기고]‘용일’ 일본과의 재만남
  17. 2019.09.18 [조호연 칼럼]‘대북 망치’ 볼턴의 퇴장
  18. 2019.09.18 [사설]멈춰선 9·19 평양선언 1년, 다시 나아가야
  19. 2019.09.17 도쿄 올림픽과 ‘오모테나시’
  20. 2019.09.17 [조성렬의 신한반도 비전]북 비핵화 단계론과 ‘트럼프 리스크’

미국은 연방정부의 재정 사용 현황을 홈페이지(USAspending.gov)에 공개해 정부 투명성을 높인다. 영국은 조세 회피, 부패 방지를 위해 자국의 부동산을 소유한 외국 기업의 실소유주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1억유로 상당의 예산 용도를 시민이 직접 정하는 ‘Let Madrid Decide’라는 참여예산제를 운영 중이다.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시민이 주도해 결정케 함으로써 정책과정에서 국민 참여 수준이 대폭 높아졌다.


세 국가의 정책은 ‘투명성, 반부패, 국민 참여’라는 ‘열린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표 사례다. 이처럼 열린정부 구현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다자협의체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2011년 만들어진 ‘열린정부 파트너십’(OGP)이다. 


OGP는 2011년 출범 이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79개국과 국제투명성기구를 포함한 수천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는 연합체로 발전했다. 한국도 2011년부터 가입해 운영위원국으로 활동해 왔으며 제11대 공동의장국으로 선출되면서 2019년 10월부터 2년간 세계의 열린정부 활동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2017년 새 정부 출범 때 국민 소통 창구인 ‘광화문1번가’에 모인 18만건의 정책 제안은 전 세계에 국민 참여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줬다. 한국의 OGP 의장국 선출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국민과 정부의 노력, 정부 혁신의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산자이 프라드한 OGP 사무총장은 “세계 각국에 더 많은 광화문광장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열린정부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주도해야 한다. 특히, 의장국의 임기가 끝나는 2021년은 OGP 출범 10주년으로, 향후 10년간 열린정부가 지향해야 할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부담감이 크지만 한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 빠른 변화의 시대에 세계 각국은 시민 영역의 축소, 정부 신뢰도 하락 등 다양한 문제와 도전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참여민주주의 활성화, 포용국가를 위한 공공가치 구현, 정부 혁신을 통한 신뢰 제고를 의장국 비전선언문에 포함해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민관협의체인 ‘대한민국 열린정부 포럼’을 운영하며 시민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 OGP 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동참 속에 세계의 열린정부를 선도하는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진영 | 행정안전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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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1776년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할 때 그들에겐 답이 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국 당시부터 북미 대륙에 존재했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 때문에 이 질문의 답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최근 이 질문에 대해 복수의 답을 병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일들이 있었다.


14일은 ‘콜럼버스의날’이었다. 1492년 미주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연방 정부가 1937년 지정한 공휴일인 콜럼버스의날은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다.


‘워싱턴’이라는 도시 이름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게서 나왔다. 뒤에 붙은 DC(District of Columbia·컬럼비아 특별구)라는 명칭엔 콜럼버스의 자취가 담겼다. 워싱턴의 대표적 상징물이 백악관 앞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비이지만, 국회의사당 북쪽 ‘유니언 기차역’ 앞에 있는 콜럼버스의 형상을 새긴 ‘콜럼버스 기념 분수’도 중요 상징물인 이유다. 그런데 올해 워싱턴의 10월 둘째주 월요일은 콜럼버스의날이 아니었다. 워싱턴 시의회가 지난 8일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주 대륙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에 그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그가 이끈 원정대가 원주민 사회에 재앙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시의회 결의안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 북미에는 수백만명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미주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수천명의 원주민을 노예화·식민화하고 학살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 내 7개 주, 70개 이상의 도시가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원주민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 정치·행정·사법의 심장부인 워싱턴도 콜럼버스의날 폐지에 동참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시당국은 남동쪽 외곽에 자리잡은 ‘베리팜’ 지역 재개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 후반 흑인 구휼기구인 ‘자유민사무소’는 해방된 흑인 및 자유민으로 태어난 흑인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비드 베리로부터 농장을 사들여 대규모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일종의 ‘해방촌’이 만들어진 셈이다. 1940년대 들어 주택난이 대두되자 연방정부는 이곳에 400동 이상의 공공주택을 짓는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역사가 긴 만큼 베리팜에서 나고 자란 유명 흑인도 많다.


베리팜 공공주택 단지는 1980년대에 대규모 개·보수를 거쳤다. 하지만 낡은 터라 재개발 여론이 대두됐다. 이 지역이 마약과 범죄로 악명 높았던 점도 쇄신 필요성을 더했다. 결국 워싱턴 시당국은 기존 건물들을 헐고 훨씬 더 큰 복합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 이주가 시작됐고, 상당수 건물이 철거됐다. 그런데 이주를 거부한 일부 주민은 아직 남은 32개 동을 역사건축물로 보존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들은 워싱턴 중심부의 백인 거주 지역이라면 이처럼 일거에 밀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베리팜이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더라도 엄연히 그들의 삶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 시당국은 이들의 요구를 숙고 중이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그간 배제되거나 과소대표 됐던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사회에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종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정의와 도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내부에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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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전에 남측 응원단과 취재진의 입북이 끝내 무산됐다. 통일부는 14일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차례 북측에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측의 응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상파 TV 3사도 북한과 협상을 벌였으나 중계권 확보에 실패했다. 이로써 1990년 10월 남북통일 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성사된 평양 남북축구 경기는 TV 중계도, 남측 응원단도 없이 치러지게 됐다. 선수단과 대한축구협회 임원, 코치진 등은 서해 직항로가 아닌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방북했다.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다고 비정치적인 스포츠 교류까지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한국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교류까지 중단시켰다. ‘하노이 결렬’로 북한이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에 의구심을 품게 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북·미 협상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등을 들어 대남 비난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 몇달간 미사일 발사시험을 되풀이해온 만큼 일방적으로 누굴 탓할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5월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이 확인된 뒤 정부가 방역협력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남한에서도 휴전선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ASF가 번지기 시작했다. 방역협력이 이뤄졌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남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위해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이 약속이 무색하다.


북한 당국에 묻고 싶다. 북·미관계가 풀리기 전까지 남북관계를 이처럼 계속 닫아놓을 것인가. 남북 화해·협력을 열망해온 남측 시민은 낙담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비정치적 분야의 남북 교류와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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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열린 북·미 실무협상마저 결렬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추진한 한·미 군사연습과 한반도 주변의 전쟁장비 반입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해 한·미 군사연습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문제 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당국이 한국과 미국에 불만을 갖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지난 7일 동해 대화퇴 해역부근에서는 북한 어선이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온 북한 어선이 단속을 거부하다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조선동해수역에서 정상적으로 항행하던 우리 어선을 침몰시키는 날강도적인 행위”라고 반박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EEZ(북한명 전속경제수역)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이익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화퇴 해역은 한·일 중간수역의 밖에 위치하며 일본이 자국의 EEZ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북한도 이 해역을 자국의 전속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대화퇴 해역에서는 지난 8월23일과 24일에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북한해군 깃발을 단 군함이 마주친 바 있다. 당시 북한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전속경제수역에 불법 침입했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선박들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쫓겨났다”고 밝혔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동북아지역에서 전면전쟁의 가능성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해상영토 침범과 EEZ 내 어로활동, 자원개발 등 회색지대(Grey Zone) 사태 발생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무력침공과 같은 정규전은 아니면서도 군함이나 전투기가 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방공식별구역(ADIZ)을 무단으로 항행·진입하거나 일본 해상보안청, 중국 해안경비대와 무장어선 등이 분쟁해역에서 무단활동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 사태가 일어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국들은 고의로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회색지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부르지만,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회색지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전면전에 대비한 군사력 확보에 주력하다 보니 최근 발생하는 회색지대 사태에는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북측에는 저강도 분쟁에 대비한 방위태세와 그에 걸맞은 적절한 재래식 군비가 필요하다.


북한은 회색지대 사태에 대한 대비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증강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이 주변국의 잠재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북한당국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 삼는 한·미 군사연습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는 2014년 10월 한·미 안보협의회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함에 따라 조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하기로 한 세 차례의 훈련 가운데 1단계인 초기운용능력(IOC) 평가를 2019년 8월11~20일에 실시하였다. 앞으로 2020년 완전운용능력(FOC)과 2021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더 실시한 뒤 빠르면 2021년 말~2022년 초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완료될 예정이다.


따라서 최소화된 형태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줄여나가고 북한이 한국군의 군비증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되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남북한이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상호 안보우려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비핵화 협상 중에 대북 군사공격 또는 공격위협을 금지하기로 약속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면 불가침 공약을 제공한다. 이러한 군사적 약속들을 하나로 묶어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법제화를 추진한다.


지난달 러시아 측이 북한 어선 3척을 나포한 데 이어 일본 순시선과 충돌해 북한 어선이 침몰한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당국이 주변국들과의 잠재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그동안 북한당국은 서해어장을 중국 어선에 내주고 동해 EEZ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방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시켜 하루빨리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회색지대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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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일본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의 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90년 전쯤 지어진 이 시를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난 4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서였다. 


아베 총리는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라는 구절을 언급한 뒤 “새로운 시대의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 모든 사람이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저출산·고령화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지역구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했다고 전했다.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해 다양성을 강조한 연설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위화감을 느낀 건 아베 총리의 ‘말 따로, 행동 따로’ 때문이다. 그는 연설에서 성적 소수자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새 재류 자격을 신설해 5년간 최대 35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3~4대째 살고 있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도 앞뒤가 맞지 않다. 아베 총리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에선 결혼을 하면 부부가 성씨를 똑같이 해야 하는데,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위해서도 법을 고쳐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기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차별을 부추기는 쪽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 “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등 문제 발언을 연거푸 했다.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 의원은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고 했다. 아베 정부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을 취소한 것도 “다양성 인정” 발언을 뒤집는 것이다. 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선 ‘배제’하겠단 의도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그는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됐던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 전권대사의 ‘인종평등’ 제안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내건 큰 이상은 지금 국제인권조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되고 있다”고 상찬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중국 동북부에 진출하는 등 식민지배의 당사자였음을 외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이 정도의 후안무치한 세계사 왜곡은 없었다”며 “역사에 대한 무반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인종평등’이 지금 일본 사회에 실현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베 정권 들어 혐한(嫌韓) 등에 의한 차별이나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가 횡행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가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배제,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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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협상이 또 결렬된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의 일방주의적 비핵화 접근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비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협상이 결렬된 것은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출발점으로 단계적 합의를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북한과, 최종단계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 차는 한 차례 실무협상에서 좁혀질 만큼 간단치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 국무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 반면 북한은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며 ‘결렬선언’까지 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서도 미리 소개했다”는 미국의 설명을 감안하면 하노이 때보다는 미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경위야 어찌 됐건 북한의 결렬선언으로 협상이 다시 고비를 맞게 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연말로 비핵화 협상시한을 제시한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미 의회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추진이 돌발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날씨마저 험한 형국이다. 


물론 양측 모두 추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낙담은 이르다. 미국은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측의 초청을 수락했고, 북한에도 제안했다고 한다. 김명길 대사는 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외교협상에서 100% 완승은 있을 수 없고, 70년 적대관계를 단기간에 해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유념해야 한다. 7개월 교착 끝에 되살려낸 협상 모멘텀이 꺼지지 않도록 양측이 조속한 시일 내 협상을 속개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한다. 쌍방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면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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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중국의 70주년 건국절 행사에 맞서 홍콩시위에 참가한 한 고교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데 이어 2일에도 시위를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기자가 경찰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기자가 프레스 복장을 갖춘 데다 취재진임을 밝혔음에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17주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시위가 신중국 건설 70주년을 즈음해 한층 격화되고 경찰 진압도 강경해지면서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홍콩 췬완 지역 호췬위 중등학교 졸업생들이 2일 학교 앞에서 경찰이 시위 진압 도중 실탄을 사용한 것에 항의하는 그림을 들고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호췬위 중등학교는 지난 1일 반중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도중 경찰 총격으로 중태에 빠진 18세 남학생 창쯔킨이 재학 중인 학교다. 홍콩 _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경찰의 실탄 사용이다. 지난 8월25일 홍콩 경찰이 처음으로 실탄을 사용했을 때는 권총을 공중에 대고 쏘는 경고사격에 그쳤다. 그런데 지난 1일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경찰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고교생을 향해 1m도 안되는 거리에서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경고사격조차 없이 시위 참가자의 몸통을 겨냥해 실탄을 발사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잉진압이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이 느끼는 위협감이 커지고 있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경찰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실탄 사용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지우기 어렵다. 경찰은 이날 다른 지역에서도 5차례 실탄 경고사격을 했다. 또 이날 하루에만 900발의 고무탄을 쐈고, 최루탄도 지난 두 달치보다 많은 1400차례나 발사했다고 한다. 고교생의 실탄 피격 소식이 홍콩 시민들을 자극하면서 다음날 시위가 한층 격렬해졌다. 


홍콩 경찰의 실탄 사용에 국제사회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25명은 트위터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이 절대권력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지 심각하게 보여준다”며 홍콩 경찰과 중국 정부를 비난했다. 유럽연합(EU)도 “집회의 권리와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가 지난달 초 철회됐음에도 홍콩사태는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될지, 더 큰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을지 걱정을 금할 길이 없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이 왜 분노를 멈추지 않고 있는지 근본 원인을 깊이 헤아려 사태수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에 앞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압 경찰의 실탄 사용을 금지토록 해야 한다. 강경진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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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2일 강원도 원산 북동쪽 해상에서 동해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시험발사했다. 사거리는 450㎞로 비교적 짧았지만, 정점 고도가 910㎞로 높아 고각으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0㎞를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이 “용인할 수 있다”고 밝힌 단거리 미사일을 넘어서 준중거리 미사일에 해당한다. 북한이 북·미 대화를 재개한다고 발표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단거리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협상정신에 위배된다. 북한의 모험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미 계획된 시험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북·미 협상에서 체제의 안전보장을 최우선 의제로 삼기 위한 포석인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우선 이번 미사일은 단거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데다 종류가 SLBM이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폭격기 등과 더불어 전략핵무기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위협적인 무기체계이다. 북한은 2016년 8월 사거리 500㎞의 ‘북극성-1형’ SLBM을 시험발사한 바 있는데 이번 미사일은 그 개량형인 ‘북극성-3형’으로 추정된다. 사거리를 늘린 이 개량형 미사일을 북한이 지난 7월 개발 중이라며 일부 공개한 대형 잠수함에 탑재한다면 그 위협은 더욱 커진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웬만한 미군기지는 모두 공격할 수 있어 미국에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현재 북·미는 실무협상 재개에만 합의했을 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전날 “조미(북·미)가 4일 예비접촉을 한 뒤 5일 실무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데 비해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 협상을) 일주일 내에 할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이 미심쩍어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SLBM 발사와 같은 행위는 미국 내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협상의 판을 흔들 수도 있다. ‘하노이 실패’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협상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려 있어 북·미 협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가장 피해야 할 일이 오판이다. 모험적인 승부수가 모처럼 맞은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협상안을 다듬는 데 주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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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4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갖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실무협상은 서로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진짜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실무협상이 조속히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 문제에서 어떤 것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이번 실무협상이 결정하게 된다. 국가전략노선의 대전환과 함께 모험을 시작한 북한의 운명도 여기에 걸려 있다.


예를 들면 북·미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한반도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단초를 만들 수도 있고 현실적 성과를 얻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또는 파국적 결별을 맞아 군사적 대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며, 친구도 적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관계와 북핵 문제가 동면에 들어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실무협상은 대화국면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


지금까지 남·북·미는 모두 전략적으로 면밀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성과에 집착해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리고 미국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북·미 모두 원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서두르다가 남북과 북·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북한은 ‘트럼프=미국’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북한은 지금도 트럼프만을 상대해 대미관계를 풀어가려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야구 경기에 비교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가 속출한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모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실무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성공적인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북한 문제를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올인’하다시피 공을 들인 문재인 정부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북·미 대화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몰라도 정부의 현재 상황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가 확정된 직후 급히 만들어낸 뉴욕 한·미 정상회담과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함이 묻어난다. 미국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약간 흥분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에서는 북·미 대화 전망을 낙관할 만한 요소보다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미관계에 커다란 대전환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인지,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실무접촉은 쉽지 않은 협상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진과 “리비아 방식은 틀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와는 무관하다. 


볼턴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한 적이 없고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것도 리비아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말한 ‘새로운 방법’은 그 실체가 있는지조차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최근 북한의 대미 메시지에는 실무협상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못한 미국에 돌리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한반도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전쟁 위기의 한반도 상황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자신의 임기 내에 거둬야 한다는 조급함은 덜어내는 것이 좋다. 은행나무는 손자가 덕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심는다는 의미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 프로세스는 공손수를 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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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일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로 끝난 지 7개월 만에 양측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비록 ‘실무’급 협상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자리가 될 것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을 좁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에 질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 순항시켜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을 섣불리 전망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접근방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왔다. 지난달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공감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선 비핵화’에 집착해온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동시적 접근법’을 ,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단계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교착 끝에 열리는 이번 실무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서막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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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이 국가 훈장인 ‘공화국 훈장’을 처음 수여했다. 중국 건설과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주는 최고 영예다.


8명의 수여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선지란(申紀蘭·90)이다. 


선지란은 평생 농촌개혁에 앞장서왔다. 고향인 산시성 핑쉰현 시거우촌에서 당 간부에 임명됐지만 30년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 관용차량도 거절하고 버스를 탔다. 출장에 가면 가장 싼 여관, 가장 싼 음식을 찾았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선지란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호찌민 전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 같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도 그와 만났다.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00인의 개혁선봉 표창 수상자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최고 영예인 공화국 훈장까지 받았다. 


중국이 건국 70년간 여정에서 선지란의 공로를 크게 인정한 이유는 비단 청렴함 때문일까. 


선지란은 중국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지란은 1954년 중국 의회인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후 13기까지 65년간 전인대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대표이기도 하다. 수천만 인민들을 아사시킨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설립에 찬성했고, 중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에도 찬성했다. 공산당이 대약진운동과 문혁에 대한 과오 청산에 나설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 류샤오치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찬성했다. 공산당의 입장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지만 그는 한 번도 ‘찬성’을 접은 적이 없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이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었다”고 선포한 이래 중국 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정치체제도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왔는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국 70주년 기념전을 찾았다. ‘위대한 역정·빛나는 성취’라는 주제에 맞게 중국의 과학기술, 경제, 군사 등 다방면의 발전 성과가 잘 전시돼 있었다. 1952년 679억위안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74배 성장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 경제체가 됐다. 베이징전람관은 원래 소련의 기술과 자본으로 지은 소련전람관이었다. 소련 붕괴 후 베이징전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과시하는 곳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전 관람 후 “70년간 역사적 성취와 변혁은 중국 공산당만이 중국을 이끌 수 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만이 중국에 번영과 부강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올해로 중국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69년 집권 기록을 깼다. 


그러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덩샤오핑의 유훈인 ‘집단지도체제’가 희미해졌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지해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헌법에 ‘시진핑 사상’을 삽입해 시 주석의 사상적 지위는 마오쩌둥 반열로 격상됐다. 시 주석이 2013년 국가주석으로 처음 임명될 때 찬성률은 99.86%였다. 반대표는 단 1표, 기권은 3표에 불과했다. 헌법 수정 표결 때도 반대는 2표뿐이었다. 


선지란은 “요즘은 거수 대신 전자개표기 버튼만 누른다”면서 “전인대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토로했다. 거수라는 공개 찬성을 통해 충성심을 과시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경제에서는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를 이뤘지만 개혁을 찾기 힘든 중국의 정치가 우려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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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에 대해 탄핵조사에 돌입하면서 미 정국이 탄핵의 회오리에 휩싸였다. ‘우크라이나 스캔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전화 통화하면서 민주당 대권주자 조 바이든 전 부통령과 그의 아들에 대한 비리조사를 압박했다는 것이 골자다. 백악관이 25일(현지시간) 공개한 녹취록을 보면 명시적 청탁이나 노골적 압력은 없었지만 바이든의 이름을 거론하면서 조사를 종용한 정황이 확인된다. 공화당은 “대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었다”며 결백이 드러났다고 주장한 반면, 민주당은 “대통령이 정치적 이득을 얻기 위한 직위의 명백하고도 충격적인 남용”이라고 맞섰다. 민주당은 국무부·백악관에 자료 제출을 요구하는 한편 조지프 매과이어 국가정보국장 대행을 불러 청문회를 열기로 하는 등 정국은 격화일로로 치닫고 있다. 


결론적으로 보자면 민주당이 다수당인 하원에서 탄핵소추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공화당이 과반을 점하는 상원에서 처리될 가능성은 낮다. 그럼에도 탄핵정국이 장기화되면서 내년 대통령 선거로까지 이어지게 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 수행에 제동이 걸릴 가능성은 작지 않다. 더구나 공교롭게도 탄핵정국이 북·미 대화가 재개되려는 시점에 전개되게 된 점은 안타깝다. 북·미 실무협상이 이달 말이나 10월 초 재개될 예정인 데다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 개최 가능성이 거론될 정도로 분위기가 호전되고 있던 참에 돌발변수가 등장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가 국내의 ‘급한 불’을 끄느라 대외 현안을 미루게 되면 북·미 협상에 차질이 불가피해진다. 물론 탄핵정국이 빠르게 해소돼 트럼프 대통령이 더 자신감을 갖고 북·미 협상에 속도를 낼 가능성도 열려 있다. 어찌 됐건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재가동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한국에는 여간한 악재가 아닌 셈이다.


물론 미국의 모든 대외정책이 중단되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트럼프 행정부가 외교정책에서 북·미 협상을 최우선 과제로 삼을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한국 정부가 북·미 협상이 모멘텀을 유지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해야 한다. 정국 추이를 지켜보면서 적절한 방식으로 미 조야를 상대로 외교노력을 벌이는 것도 방법이다. 상황관리에 주력하는 수동적 태도에 머물러서는 안된다. 또다시 한국이 중재·촉진자로서의 역량을 발휘할 시점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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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전격 경질했지만 의외는 아니었다. 미국 언론에서 볼턴 경질설이 처음 나온 것은 올봄이었다. 이후 나온 경질설을 모두 합치면 그는 족히 서너 번은 밀려났어야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년 가까이 참았거나, 볼턴이 용케 잘 버텼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하자마자 미국과 경쟁 혹은 적대관계에 있는 상대는 물론이고 전통적인 동맹 및 우방을 상대로 변칙적인 외교를 펼쳤다. 공 여러 개를 공중으로 연속해서 던지고 받는 저글링 묘기를 하는 것처럼 중국, 이란, 북한, 시리아, 탈레반, 베네수엘라 등을 상대로 ‘압박’과 ‘대화’를 오갔다.


23일 오후(현지시간) 뉴욕 인터콘티넨탈 바클레이 호텔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문재인대통령과 정상회담에 앞서 모두발언을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뉴욕 _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실적은 빈약하다. 작년 5월 이란핵합의(JCPOA)를 일방적으로 탈퇴하고 이란에 ‘최대의 압박’을 펼쳤지만, 이란은 미국이 내건 12가지 요구에 화답하기는커녕 핵합의가 제한했던 핵활동 빗장을 하나씩 풀어가며 저항 중이다. 호르무즈 해협 인근 유조선 피습, 미군 드론 격추,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시설 피습 등을 겪으며 중동정세는 악화됐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2차례 정상회담을 하고 판문점 ‘번개’ 회동에선 군사분계선 이북 지역을 밟았지만, 북한 핵보유량은 계속 늘고 있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을 ‘불법정권’으로 규정하고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 국회의장을 적극 지원했지만 마두로는 권좌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9·11테러 18주기를 코앞에 두고 탈레반 지도부를 캠프 데이비드로 불러들여 평화협정을 맺는 이벤트를 기획했다 불발돼 미국 내 반발만 샀다.


‘거래의 기술’을 자랑해온 그로선 머쓱한 상황이다.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분위기 쇄신이 필요하다고 느꼈음직하다. 다음 미국 대선이 15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상황이다.


실제로 그는 볼턴이 이른바 ‘리비아 모델’을 북한 비핵화 방식으로 거론한 것은 ‘재앙’에 가까운 실수였다며 이미 잘린 그를 김정은 위원장에게 유화적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지렛대로 활용 중이다. 사우디 석유시설 피습 사건으로 가능성이 낮아지긴 했지만 “나는 매우 유연한 사람”이라면서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과 직접 만날 수 있다는 여지를 살려두려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대통령은 한 국가의 최고지도자로서 막강한 권력을 누린다. 특히 외교는 다른 분야에 비해 대통령의 권한이 폭넓게 인정된다. 그럼에도 외교정책 결정과정에는 정부 내 여러 조직, 정부를 둘러싼 다양한 정치세력이 펼치는 논리와 경쟁과 저항이 개입할 수밖에 없다. 민주국가에선 제약이 더 심하다. 집권 3년밖에 되지 않은 트럼프 대통령이 네번째 국가안보보좌관을 앉혔다는 사실은 그의 ‘까탈스러운’ 성벽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지만, 기성 관료 및 정치권의 이견과 반대를 뚫고 자신의 정책을 밀고나가기 위한 투쟁의 과정에서 생긴 불가피한 결과였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볼턴을 경질한 뒤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후임 국가안보보좌관을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나와 함께 일하는 것은 매우 쉽다. 왜 쉬운지 아는가? 내가 모든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다. 그들은 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자신이 국가안보보좌관 역할까지 할 테니 누가 국가안보보좌관이 되든 그저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된다는 말에 다름 아니다.


‘이념형 매파’ 볼턴이 퇴진한 상황에서 미국 외교가 어떻게 변모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할 것이다. 다만 트럼프 대통령의 의지와 아이디어가 관철되는 비율이 높아질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극적인 반전을 연출해 자신이 그 중심에 서는 상황도 더 자주 보게 될 것이다. 그럴수록 세계가 감내해야 할 위험도 커지는 건 어쩔 수 없다. 저글링하는 공의 개수를 늘리거나 속도를 높일수록 공을 떨어뜨릴 위험이 더 커지는 건 당연한 이치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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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관계가 몇 년 새 이렇게 빠른 속도로 미국 주도 국제정치의 중심으로 진입하고 소멸하는 과정을 반복한 사례가 언제 있었나 싶다. 싱가포르(2018·6·12)와 베트남 하노이 회담(2019·2·27~28), 그리고 판문점에서의 회동(2019·6·30)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간의 ‘케미’가 어떠한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여기에다 사이사이 주고받은 연서(戀書) 같은 서신은 북·미관계의 청신호들로 해석되기에 충분하고도 강력한 증거였다. 46년생 대 84년생이라는 연령 차이만큼이나 이질적인 두 정치지도자가 어떤 동기로 서로에게 ‘호감’을 가지게 됐을까?


첫째, 두 지도자는 비현실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다. 국제정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주어진 현실을 비틀어 보기로 작심한 지도자들이다. 이들의 신념은 국제정치의 이단(異端)이다. 트럼프 등장 이후 국제정치 이론을 다시 써야 한다는 농담 같은 이야기가 그래서 나온다. 트럼프와 김정은은 현실은 끊임없이 재구성된다고 믿는, 좋게 해석하면 국제정치학 용어로 구성주의자로 분류할 수 있다. 국제정치가 국가들이 간주관적으로 서로 공유하는 아이디어, 규범, 가치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게 구성주의의 골자다. 구성주의자들은 국가의 정체성도 상호교류를 하면서 변한다고 인식한다. 이들의 눈에 국제체제의 구조는 관념적이다.


둘째, 두 지도자는 ‘접촉’을 통해 상대방의 생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김정은은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했다. 트럼프 역시 김 위원장에 대해 “매우 훌륭하고, 똑똑한 협상가”라고 치켜세웠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행위가 그릇된 고정관념들을 변화시킬 거라는 믿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던 역사적 만남이었다. 그 결과 현재까지 무사히(?)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셋째, 김정은과 트럼프 모두 국내 정치적 요소를 가볍게 여겼다. 특히 트럼프는 워싱턴 주류들만의 ‘외교문법’들을 무시하고 파격적 방식으로 협상에 나섰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과, 회담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가 ‘도발적’이고 ‘전쟁게임’이라고까지 칭한 한·미 연합훈련 중단을 내비친 것들이 대표적이다. 동맹의 이름으로 핵무기를 탑재할 수 있는 전폭기가 한국까지 비행하는 것을 순전히 ‘돈’의 문제로만 인식하는 트럼프를 목전에서 지켜본 김정은 입장에서는 여차하면 주한미군 감군 또는 철수, 핵우산 철폐까지 트럼프가 실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돌이켜보면, 싱가포르 회담에서 새로운 북·미관계 구축이라는 문구를 성안시켜 1승을 거둔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에서는 이렇다 할 성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산 넘고 물 건너 달려온 김정은으로서는 모욕적인 회담 결과였다. 이제 북·미 정상회담이 연내에 개최돼 영변비핵화와 연락사무소 맞교환 이상의 합의문을 작성할 것인지가 초미의 관심사다. 북한은 ‘선(先) 비핵화, 후(後) 국교정상화’를 고집한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장을 긍정적인 신호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북·미관계가 획기적으로 진전되기는 어렵다고 본다.


우선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 핵심 석유시설 피격이라는 난기류를 만났다. 미국 외교정책에서 중동 문제가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북핵 문제는 트럼프 외교팀의 최우선 해결과제는 아니다. 둘째, 시간이 촉박하다. 이전의 실무회담 경험에도 불구, 추수감사절(11·28)과 내년 대통령 선거 일정 등을 고려하면 의제, 장소 등을 확정하는 데 시간적 여유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트럼프가 외국 정상과 통화하면서 국가안보 측면에서 부적절한 발언을 한 게 발각돼 트럼프 자신이 내부 고발을 당한, 정치적 인화성이 높은 사건이 발생했다. 셋째, 로버트 오브라이언 신임 안보보좌관은 냉전 종식을 이끈 로널드 레이건 전 대통령의 ‘힘을 통한 평화’의 사도이자 수호자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해피 토크’ 회담이 사그라질 암운이 감돈다. 다시 긴장할 때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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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8일(현지시간) 북·미 협상과 관련해 “ ‘리비아 방식’을 언급했던 것이 우리를 지연시켰다”며 “어쩌면 새로운 방식이 매우 좋을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지난 20일 북·미 실무협상 수석대표인 김명길 북한 외무성 순회대사가 “보다 실용적인 관점에서 조·미관계에 접근해야 한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현명한 정치적 결단을 환영한다”고 화답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최근 북한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에 대한 우호적인 발언을 잇따라 내놓고 북한이 호응하면서 북·미 협상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고 있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하고 나면 미국이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방식으로, 최근 경질된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주장해온 것이다. 트럼프의 말은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협상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대한 중대한 방향전환으로 봐도 무리가 아닐 것이다. 지난해 재개된 북·미 비핵화 협상은 미국이 ‘선 핵폐기’에 집착하면서 답보를 면치 못했다. 북한은 양측 간 신뢰가 없는 상황에서 먼저 핵을 폐기하라는 것은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 왔다. 트럼프의 발언은 이런 상황에 종지부를 찍겠다는 시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방식’에 대해 부연하지 않았다. 다만 ‘선 핵폐기, 후 보상’ 방식이 아니라면 ‘동시적 접근법’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북한이 요구해온 ‘동시적·단계적’ 접근법과 일치하지는 않지만 스티븐 비건 대북정책특별대표가 ‘초기 행동 조치’를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절충 가능성은 작지 않다. 비건 대표는 지난 6일 미시간대 강연에서 “미국과 북한이 대결로부터 불가역적 결별을 했음을 선언할 중대 조치에 신속히 합의할 수 있다”고 했다. 


북한은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 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질 것이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북·미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야 하는 셈이 된다. 길지 않은 시간이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의기투합한다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큰 그림(로드맵)에 합의하면서 1단계로 실천 가능한 ‘주고받기’를 이끌어내는 것이 불가능하지는 않다. 


문재인 대통령이 유엔총회와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22일 뉴욕으로 출발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이뤄지는 이번 한·미 정상회담은 그 어느 때보다 중차대하다. 이번 실무협상을 계기로 한반도 평화를 향한 톱니바퀴가 다시 움직일 수 있도록 한·미 정상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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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역사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다양한 만남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세계적으로 볼 때 가장 인접한 국가 중 하나이기도 하지만 과거 한국이 일본에 점령당한 아픈 역사를 갖고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문화, 생활 등 많은 부분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기에 일본은 가깝고도 먼 나라이다. 일본에 대한 한국의 대응은 그동안 뫼비우스의 띠 같은 궤적을 그리고 있으며 이제 새로운 전환기에 들어서고 있다. 일본과의 여러 가지 국면에서 한국의 갈 길을 찾을 수 있다.


우선 항일은 일본에 대항한다는 의미다. 봉오동전투, 청산리대첩은 독립군의 빛나는 항일을 보여준다. 극일은 일본을 극복하고 넘자는 것이다. 한국의 부품 국산화는 극일의 단면을 반영한다. 배일은 일본을 배척한다는 것인데 일본제품 불매운동처럼 다소 감정적이지만 파급력이 있다. 반일은 일본보다는 한국 내부를 방향으로 하고 있다. 해방 이후 일본 식민지 시대에 친일과 반민족 행위를 한 친일파를 단죄하려 했다가 실패한 반민족특위, 그 이후 친일인명사전에서 반일을 찾을 수 있다. 벌일은 일본을 정벌한다는 뜻이다. 한국 역사에서 북벌 추진이 있었듯이 남벌도 있었다. 광개토대왕, 고려의 여몽연합군, 세종의 대마도 정벌 등이 그것이다. 탈일은 일본의 영향을 최소화하여 일본에 없거나 일본이 할 수 없는 것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에게 삼성전자가 반도체 부품을 국산화하는 것은 극일이지만 반도체에 몰입하지 말고 기계보다는 휴먼메타기술 같은 다른 먹거리를 개발하면 탈일이 된다.


반면 이 모든 것과 다르면서 오래된 미래인 용일은 일본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본 입장에선 일본의 정한론, 조선 도자기, 치욕적 일제 식민지 시대, 지금의 부품전쟁은 용한(用韓·한국을 이용)에 가깝다. 현재도 비슷한데 과거엔 명나라를 침략하려고 조선에 길을 열어달라고 했지만, 지금은 핵, 국제정세 등으로 한국은 지정학적 완충 방패막이로 쓸모가 있다. 


역으로, 용일은 한국을 중심으로 일본을 도구화하는 명분과 실리를 찾는 것이다. 예전에 일본 소니 제품은 선망의 대상이었지만 지금 삼성의 갤럭시 폰은 선망을 넘어서 필수품이 되었다. 그것은 극일보다는 용일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용일은 여러 가지 상상을 가능하게 한다. 어렵지만 방사능 오염 위험이 있는 도쿄 올림픽 일부 경기를 좋은 시설을 갖춘 한국 경기장에서 할 수도 있다. 우수한 한류와 한국문화를 바탕으로 21세기 문화적 밀정을 심을 수도 있다.


대전환의 시대에 지울 수 없는 울분과 냉철한 열기를 간직한 채 어떻게 일본과 다시 만날지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


<강병노 | 서울한영대학교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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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 매파’ 존 볼턴의 경질이 한반도와 주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은 적지 않다. 미국이 패권국가라 해도 고위인사 한 사람이 물러났다고 국제 정세나 특정 국가의 기본 입장이 달라지기는 어려울 터이다. 그러나 볼턴이 누구인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내에 자리잡은 근본주의자 아닌가. 미국 매파는 볼턴을 통해 자신들의 견해와 의지를 트럼프에게 전달했다. 더구나 볼턴은 매우 강한 성격이다. “볼턴은 망치이고 모든 것을 (때려 박아야 할) 못으로 본다”(인디펜던트)는 평가가 잘 말해준다. 그는 시리아, 이란, 북한에 대한 강경정책을 주도했으며, 자기 의견 관철을 위해 트럼프와도 격렬하게 싸우는 터프가이였다. 지난해 3월 트럼프가 그를 백악관으로 불러들였을 때 관련 당사국들 사이에 희비가 엇갈렸다. 남북한은 우려했고, 일본은 환영했다. 볼턴이 경질된 지금 상황은 정반대다. 기상 용어로는 ‘문재인 대통령 갬,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화창, 아베 신조 총리 비’로 표현할 수 있겠다. 문 대통령에게 볼턴 하차와 북·미 대화 재개는 희소식이 아닐 수 없다. 멈춰서 있던 한반도 평화 시계가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이다. 그렇다고 우연한 행운은 아니다. 과거 뿌려놓은 북·미 대화의 씨앗이 움트고 자라나 열매를 맺은 것이기 때문이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의 공세가 위축되는 효과는 덤이다. 볼턴이 지난 7월 방한 때처럼 정부 당국자들보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와 먼저 만나는 의도적인 외교적 무례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됐다. 장기화되는 한·일 갈등과 남북관계 교착에 ‘조국 사태’까지 3개의 ‘전쟁’을 동시에 치르고 있는 문 대통령의 어깨가 조금은 가벼워질지 모르겠다.


지난 2월7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 집무실에서 ‘여성들의 글로벌 개발과 번영’ 이니셔티브에 서명하는 모습을 존 볼턴 당시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왼쪽)이 지켜보고 있다. 워싱턴 _ 로이터연합뉴스


김 위원장은 ‘종합선물세트’를 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북 주민 앞에서 핵담판 성공을 장담했지만 그간 답보상태를 면치 못하면서 구겨진 체면을 살릴 계기가 마련됐다. ‘하노이 노딜의 치욕’을 만회할 기회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1994년 북핵사태 이후 25년간 악연을 쌓아온 “인간오작품 볼턴”(북 외무성 대변인)의 퇴장이 반가울 것이다. 볼턴은 북한 정권 붕괴를 선호하고, 북한이 거부하는 ‘리비아 모델’을 고집한 데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의 배후이기도 하다. 김 위원장으로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기피인물을 경질하라는 자신의 요구를 들어주고, 리비아 모델 폐기도 시사했으니 기쁨 2배다. 미국이 빅딜 대신 ‘다른 셈법’을 들고나올 것으로 기대할 만하다.


그러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는 나쁜 소식일 수밖에 없다. 미국에 대한 일본의 전략적 레버리지가 대폭 약화될 위기에 봉착했기 때문이다. 북·미 협상이 성공하면 북한은 미국과 적대관계를 청산하고 중국에 대한 미국의 버퍼링 역할을 하게 될 수 있다. 가뜩이나 중국의 부상과 트럼프 행정부의 아시아 전략 모호성으로 인해 일본의 존재감이 위협받던 차다. 여기에 협력적 연대 속에 미 행정부를 연결해온 볼턴마저 실각했으니 우려 위에 우려가 쌓이는 격이다. 더 큰 문제는 이런 환경 변화가 아베 총리가 야심차게 전개해온 ‘문재인 때리기’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이다. 문재인 때리기는 과거사 갈등이 촉발했지만 기저에는 일본의 전략적 이익을 위협하는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흔들어야 한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평화 무드를 조성하는 문재인 정부는 일본 옆구리에 박힌 가시”라는 미국 정치학자 조지 프리드먼의 분석이 정곡을 찌른다. 돌아보면 아베 총리는 평창 동계올림픽을 전후해 한국 정부에 한·미군사훈련 재개와 대북제재 강화를 요구했었다. 한·일 사이에 과거사 갈등이 불거지기 전의 일이다.


한반도 정세 기상도는 변화가 심하다. 어제는 화창해도 오늘은 비가 쏟아질 수 있다. 꼼꼼히 대비하는 자세가 중요하다. 문 대통령은 북·미 협상의 중재자에서 한발 물러나 있다. 그동안에는 남북관계 개선이 북·미관계 진전으로 이어졌지만 이제는 북·미 협상의 진전이 남북관계 진전으로 연결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김 위원장은 절박한 심정일 것이다. 기피인물도 사라지고 리비아 모델에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이번 협상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다시 기회가 없을지도 모른다. 이번 정세를 기획한 트럼프 역시 부담이 크다. 대선을 위해 협상에서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하기 때문이다. 협상 무대를 지켜볼 수밖에 없는 아베 총리로서는 초조할 것이다. 주변국과 불화하는 대외정책을 펴온 결과다.


‘하노이’ 이후 6개월여 만에 ‘트럼프와 김정은의 시간’이 돌아왔다. 결코 놓쳐서는 안될 드문 기회이다. 이번에야말로 북핵 해결과 한반도 평화의 전기를 마련해야 한다. 협상이 여의치 않다면 한반도 정세는 악화될 수밖에 없다. ‘볼턴’도 다시 등장할 수 있다.


<조호연 논설주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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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공동선언을 발표한 지 19일로 꼭 1년이 된다. 문 대통령은 당시 남측 최고지도자로는 처음 15만 평양시민을 향해 “70년 적대를 완전히 청산하고 다시 하나가 되기 위한 평화의 큰 걸음을 내딛자”고 역설했다. 남북이 평화공존의 탄탄대로를 달리리라는 기대를 갖게 한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하지만 1년이 흐른 지금 남북관계는 정체 중이다. 남북관계 진전을 통해 북·미 대화를 추동하리라는 기대와는 딴판이다. 


손을 맞잡은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2018년 12월 27일 오전 9시30분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 사이 군사분계선 북측 지역으로 넘어 갔다 다시 남측 지역으로 넘어오고 있다. 서성일 기자


지난 1년의 성과가 아주 없는 것은 아니다. 평양선언에 담긴 비핵화와 군사 긴장완화, 경제 협력, 이산가족 상봉, 문화·체육 협력 등 5개 분야에 걸친 남북 간 합의 중 일부는 시동이 걸렸다. 지난해 10월 남북은 고위급회담을 열어 철도·도로 연결과 산림 협력 등 분야별 이행 일정을 마련했다. 특히 9·19 남북군사합의는 한반도의 군사적 긴장완화에 적잖이 기여했다. 남북이 비무장지대 내 초소를 시범적으로 폭파하고, 휴전선을 가로질러 도로를 연결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이후 남북관계는 더 이상 진전되지 못했다. 금강산 이산가족 면회소 복구와 화상 상봉 등을 논의할 적십자회담은 아예 열지도 못했다. 군사 긴장완화를 위한 공동지뢰제거작업 등 후속조치도 남쪽만의 행동에 그쳤다. 이렇게 된 데는 대북 제재의 유지와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이 지지부진한 탓이 크다.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 이후 북한은 더욱 남측을 외면하고 있다. 심지어 단거리 미사일 등 신무기 시험발사를 10차례나 하며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지난 1년은 남북관계 진전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과제인지를 일깨웠다. 남북 모두 더 많은 인내와 노력, 그리고 의지로 관계개선의 재시동을 걸어야 한다. 북·미가 곧 비핵화를 위한 실무협상에 나선다. 북한이나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모두 외교적 성과가 절실하다. 북한이 그제 비핵화에 대한 상응 조치로 ‘제도 보장’을 미국에 요구했다. 체제안전보장은 물론 경제 제재 해제가 필요하다는 점을 분명히 제시한 것이다. 미국의 전향적 응답이 필요하다. 다음주 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 간 한·미 정상회담이 열린다. 북·미 간 협상을 촉진하는 문 대통령의 중재자 역할이 필요하다. 지난 1년 동안 하지 못한 북한 비핵화와 남북관계 발전이 선순환하는 구조를 만들어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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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지난 6월 도쿄 2020 올림픽과 패럴림픽 로고가 새겨진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오. 모. 테. 나. 시.”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손동작에 맞춰 한 음절씩 끊어 말한 ‘오모테나시’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오모테나시’는 특별한 대접을 뜻한다. 다키가와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마음으로부터 맞이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연설은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모테나시’는 그 해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 다키가와는 지난달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결혼을 발표했다. 


그렇게 유치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오모테나시’ 전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줄곧 지적돼온 폭염 등 날씨 대책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의 날씨조건은 최악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았다는 올해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모두 30도를 넘었다. 그 중 6일은 35도 이상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평균기온이 27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24도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골머리를 싸고 있다. 이미 마라톤, 경보 등의 시작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겼다. 일부 도로에 열 차단제를 입히고 있지만, 사람 키 높이에선 오히려 기온과 자외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조정 시범경기가 열린 경기장 관중석에 인공 눈을 뿌리는 실험을 했지만, 관중석 온도는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이 이뤄진 수상경기장은 예산 문제로 관중석 절반만 지붕을 설치했다. 지난달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오픈워터 시범경기에선 화장실 같은 악취가 났고, 파라트라이애슬론 시범경기에선 상한의 2배를 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방송중계권 수입 때문에 7~8월 개최를 요구한 IOC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 측 대응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유치신청서에 “이 시기는 맑은 날이 많고 따뜻해 선수에게 이상적인 기후”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일본의 ‘열화(劣化·열등화)’를 본다고 했다. 철두철미와 세심함은 옛말. 근본적인 대책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폭염 대책으로 우치미즈(국자로 물을 떠서 거리에 뿌리는 풍습)를 제안하면서 “오모테나시 문화를 알리자”라고 우기는 데선 ‘정신 승리’를 보는 것 같다.


‘오. 모. 테. 나. 시.’ 


도쿄올림픽의 ‘오모테나시’는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아베 신조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삼을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복구했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언더 컨트롤”(관리하에 있다)이라고 한 ‘정치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오모테나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때 욱일기를 경기장에 들고 오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데모’에 등장하는 욱일기가 ‘평화의 제전’에 펄럭이는 장면을 기어코 보겠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선 혐한 감정이 고삐 풀린 채 분출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자기혁신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선 이 둘을 대충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부흥(復興)’ 올림픽의 미명하에 ‘부인(否認)’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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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에 또다시 대화의 훈풍이 불고 있다. 9월9일 오후 11시30분 북한 최선희 제1부상은 9월 하순에 북·미 실무회담을 열자는 담화를 발표했고, 그 다음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경질했다. 최선희의 담화는 공교롭게도 아프간 평화협정의 체결을 하루 앞두고 트럼프 대통령이 전격적으로 협상 중단을 선언한 뒤에 나온 것이다.


이런 일들은 우연히 발생한 것이 아니다. 미국의 아프간 평화협상 파기는 북한에 위기로 느껴진 것 같다. 작년에 국가안보보좌관에 임명된 볼턴이 리비아 해법을 주장하고 5월12일 이란 핵합의 파기를 앞두자, 김정은 위원장이 다급히 다롄으로 달려가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지원을 요청했던 일을 연상하게 한다. 트럼프도 북한이 대화에 나올 뜻을 밝히자 볼턴이라는 걸림돌을 제거한 것이다. 트럼프는 볼턴을 경질하면서 그가 리비아 해법을 고집했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었다. 아프간 평화협상이 중단된 마당에 트럼프로서도 한반도 비핵화 카드는 외교업적으로 살리고 싶었을 것이다.


초강경파인 볼턴을 경질함으로써 북·미 비핵화 실무협상은 어느 때보다 성공 가능성이 높아졌지만, 양측의 입장차이가 여전히 커서 협상결과를 낙관하기는 이르다. 북한은 트럼프 리스크 탓에 단계적 접근을 고집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어제 외무성 미국담당 국장 명의로 담화를 발표해 이번 실무협상에서 대안을 갖고 오지 않으면 북·미 대화가 기로에 서게 될 것이라고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볼턴의 경질로 미국이 실무협상에서는 ‘유연한 접근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지만,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도 그대로 적용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 트럼프로서는 내년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있어 미국 내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북·미 비핵화 협상의 장애물은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이지만, 그에 못지않은 것이 트럼프 리스크이다. 첫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트럼프가 내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지의 불확실성에 따른 것이다. 만약 트럼프가 재선에 실패한다면, 새로운 민주당 정부와 비핵화 협상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지 모른다.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트럼프 1기 행정부와 ‘빅딜’에 합의하기를 꺼리는 이유다. 두 번째 트럼프 리스크는 설사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한다고 해도 현재와 같이 적극적인 자세를 취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불안감이다. 전임 오바마 행정부 때 합의한 이란 핵합의를 파기한 경력이 있는 트럼프가 재선된 뒤 태도가 바뀌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이러한 두 가지 트럼프 리스크를 우려해 북한은 단계적 접근법을 취하고 있다. 작년 3월26일 김정은 위원장은 북·중 정상회담 때 단계적, 동시행동적 접근을 제시했다. 단계적 접근법은 미래핵, 현재핵은 트럼프 제1기 행정부와 합의하고 이행하지만 과거핵(핵무기, 탄도미사일)은 2021년 1월에 들어설 미국 행정부와 협상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법은 일부 전문가들이 북한이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든 요인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트럼프 리스크와 북한의 비핵화 단계론을 극복하고 3차 북·미 정상회담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나. 


2월 말 하노이 회담에서 미타결된 쟁점은 크게 ‘비핵화의 공동정의’와 ‘추가조치’에 관한 것이다.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에 대해 북한은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프로그램, 중장거리 및 대륙간 탄도미사일의 포기를 주장한다. 반면 대북 강경론자들은 여기에 더해 생화학무기, 단거리·중거리 탄도미사일도 포함시키라고 요구한다. 핵시설 이외의 추가조치에 대해 북한은 과거핵을 차기 미 행정부와 협상하겠다고 고집한다. 반면 볼턴과 같은 초강경파는 리비아 방식처럼 당장 핵무기와 탄도미사일의 해외이전을 주장하고, 미국 내 협상파는 어느 시점에서 포괄적 신고를 할 것인지에 대한 약속을 하라고 요구한다. 


이처럼 두 가지 쟁점을 둘러싸고 북·미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기 때문에, 실무회담을 넘어 연내 3차 정상회담이 열려도 한반도 비핵화 로드맵을 타결짓기 쉽지 않다. 연내 타결을 위해선 미국뿐만 아니라 북한도 셈법을 바꾸어야 한다. 미국은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를 확정지어 불확실성을 없애야 한다. 북한도 어느 시점에 과거핵의 포괄적 신고를 할 수 있는지 조건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북·미 실무협상을 앞두고 한·미 정상회담을 하는 문재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을 만나 직접 설득하고, 대북 특사나 번개회동을 통해 김정은 위원장을 설득할 수 있다면 한반도 비핵화에 큰 진전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Posted by KHr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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