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일본 오사카의 최대 번화가인 도톤보리 일대가 토요일 저녁임에도 불구하고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사카 _ UPI연합뉴스


일본에서 도쿄 등 7개 지역에 ‘긴급사태’가 선언된 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새 일본 사회는 자숙(自肅)의 ‘공기’(분위기)가 자리 잡은 모습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 7일 긴급사태를 선언하면서 “사람 간 접촉을 70~80% 줄이면 2주 후 감염자를 감소시킬 수 있다”고 했다. 이를 두고 서구 언론들은 달성 불가능한 목표라고 했다. 외출 자제나 휴업 요청이 법적 강제력이 없다는 이유다. 한 전문가는 ‘80% 접촉 감소’는 도시 봉쇄를 하지 않는 한 어렵다고도 했다. 하지만 일본 내에선 그런 비관론을 대놓고 얘기하는 이들은 소수다. 오히려 “일본인은 ‘우에사마(上樣·높은 분)’의 말을 잘 따르니까”라면서 달성 가능성을 내다보는 이들도 있다. 


결국 ‘1억 총자숙’으로 극복하자는 건데, 위화감을 지울 수 없다.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맞이한 긴급사태에 대한 책임과 반성은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그간 일본 정부는 소극적인 검사와 격리 정책을 취해왔다. 검사 수가 적기 때문에 감염 실태를 파악하지 못한다는 지적에는 귀를 막았다. 감염자가 급증한 도쿄에선 감염 경로를 알 수 없는 사례가 80% 가까이 된다. 감염 집단을 찾아 박멸하는 방식은 한계에 달했다. 


위기감도 부족했다. 전문가 회의가 “1~2주가 확대냐 종식이냐의 갈림길”이라는 견해를 발표한 게 2월 하순이었지만, 감염자 수는 계속 늘었다. 3월20~22일 연휴엔 시민들이 대거 벚꽃놀이에 나왔다. 아베 총리가 도쿄 올림픽을 의식해 ‘일본은 괜찮다’는 점을 보이느라 어정쩡한 태도를 취한 게 느슨한 대응으로 이어졌다는 얘기가 나온다. 


긴급사태 선언에 대해서도 “너무 늦었다”는 여론이 80%대다. 일본 정부가 경제 타격 등을 우려해 주저하는 사이 감염자가 폭증했다. 그 와중에 정부와 도쿄도는 휴업 요청 대상을 놓고 신경전을 벌이느라 사흘을 허비했다. 


피해는 고스란히 일본 국민들이 떠안았다. 37.5도 이상의 발열이 나흘간 지속될 것 등 지나치게 엄격한 규정 때문에 검사를 받고 싶어도 받을 수 없는 사례가 속출했다. 정확한 감염 정보가 없다보니 불안감이 사회를 좀먹었다. 마스크와 휴지가 매대에서 사라졌다. 아베 총리가 가구당 천마스크를 2장씩 배포하겠다고 밝히자 인터넷상에 “농담하냐” “아베마스크냐” 등 비난이 쇄도한 것은 불안한 민심의 임계점을 보여줬다. 


<사피엔스>의 저자인 유발 하라리 예루살렘히브리대 교수는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 기고문에서 “정부가 진실을 말하고 있음을 믿을 때 시민들은 ‘빅브러더’의 감시 없이도 올바른 일을 할 수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무능과 혼란과 책임 회피로 얼룩졌던 코로나19 대응을 일본 국민들에게 ‘마루나게’(통째로 던짐)한 것처럼 보인다. 국민들은 불안감 속에 ‘각자도생’의 길을 강요받고 있다. 


한 평론가는 “아베 정권이 긴급사태”라고 했다. 아베 정권은 온갖 스캔들에도 생명을 연장해왔다. 일본 지도층은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1억 총참회론’으로 책임을 피했다. ‘1억 총자숙’의 공기 속에 비판마저 ‘자숙’할 것인가. 코로나19 사태에서 일본은 또 다른 갈림길에 서 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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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인사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야마구치 가오리(山口香) JOC 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선수들이 만족스럽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선 도쿄 올림픽을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상 개최’를 고수하는 가운데 선수단을 파견하는 JOC 인사가 대회 연기를 처음으로 공개 요구한 것이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실현한다는 올림픽은 세계인이 즐길 수 없는 상황에서 열어선 안된다. 개최를 강행해 올림픽 그 자체에 의문의 시선이 향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JOC 회장의 반응은 예상대로라고 할지. “모두가 힘을 쏟고 있는 때에 JOC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한마디로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것이다.


일본어 표현에 ‘구키(空氣) 요메나이’라는 게 있다. 공기, 즉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에도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일본에서 ‘공기’가 주는 무게감은 훨씬 크다. ‘공기’를 읽고 맞혀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상당하다. 야모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공기의 연구>에서 이런 일본 사회의 공기를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 거역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이라고 했다.


야마구치 이사가 “JOC나 선수들 사이에선 ‘연기하는 쪽이 낫지 않나’라고 말할 수 없는 공기가 있는 것 같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지도층은 앞장서 도쿄 올림픽에 ‘부흥올림픽’ 등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에 따라 대회의 중지나 연기를 ‘아래’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이런 ‘공기’의 위력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중증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고 가벼운 증상자에겐 자택 요양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검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단’ 취급을 당한다. 검사 확대를 주장하는 전문가나 TV 방송은 전화 항의, 이른바 ‘덴토쓰(電凸·전화 돌격)’에 시달린다. 100만명에게 간이검사를 무상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도 “의료기관에 혼란이 야기된다”는 비난에 2시간 만에 철회했다. 한국의 대량 검사는 의료 붕괴로 이어질 뿐이며, 차를 탄 채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은 부정확하다는 사실 호도도 횡행한다.


문제는 이런 ‘공기’가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게 하고,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론(異論)을 용납하지 않다보니 순발력이나 유연성도 떨어진다. 이득을 보는 건 기득권 세력이다. 마침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가 코로나19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 민간연구소의 검사 참여를 배제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한 일본 언론인은 전후 경제성장을 이룬 ‘저팬 애즈 넘버원(1등 일본)’ 신화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 횡행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본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드러내고 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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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 올림픽은 어떻게 될까요?” 지난주 만난 일본인 기자가 자리에 앉자마자 한 얘기다. 코로나19 여파로 해외에서 선수나 관객들이 오겠냐고 했다.


요즘 일본 정부나 언론이 신경을 곤두세우는 게 5개월 남은 도쿄 올림픽 개최 문제다. 지난달 30일 한 인터넷 사이트가 ‘도쿄 올림픽 중지?’라는 제목의 기사를 내자 ‘가짜 뉴스’ 취급하던 때와는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


지난 주말 ‘소동’을 봐도 그렇다. 영국 집권 보수당 소속 런던시장 후보가 트위터에 도쿄 대신 런던에서 올림픽을 열 수 있다고 주장한 게 ‘불씨’가 됐다. 일본 언론들은 발언 내용을 보도하는 등 민감하게 반응했다. 인터넷 여론도 들끓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해 요코하마항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이 영국 선적임을 들어 “너희 배나 가져가라”고 분노하는 이도 있었다.


분위기가 달라진 건 코로나19 확산이 멈추지 않고 있는 데다, 무엇보다 일본 정부 대응에 불신이 커진 때문이다. 24일 현재 크루즈선 감염자는 691명으로, 전체 승선자의 20%에 육박한다. 일본 열도 전역에서도 감염자가 계속 늘고 있다.


이를 두고 일본 정부의 안일한 대응이 사태를 키웠다는 지적이 많다. 코로나19의 국내 유입을 막는 ‘미즈기와(水際·물가) 대책’에만 집중하다 국내 유행 가능성을 소홀히 했고, 크루즈선의 해상 격리에만 신경 쓰다 선내 집단감염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음성 판정을 받고 하선한 승객의 감염이 잇따라 확인되는 등 검역에 구멍이 뚫렸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내각의 각료 3명이 코로나19 정부대책회의를 빠지고 지역구 행사를 챙긴 것도 비난을 샀다. 아베 총리가 ‘대책본부 8분 출석’ 이후 ‘언론사 간부들과 3시간 회식’을 한 것도 입방아에 올랐다. 정권 스캔들을 추궁하는 야당을 향해 “이 와중에”라고 역공하던 아베 정권도 결국 ‘보여주기식 쇼’를 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렇다 보니 ‘도쿄 올림픽 취소’라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미국 주간지 뉴스위크는 ‘올림픽, 취소되나? 과학자들, 올림픽 개최 불가 주장’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냈다. 


아베 정권으로선 상상조차 하기 싫은 ‘악몽’이다. 도쿄 올림픽이라는 대형 이벤트를 통해 소비세 인상 등으로 주춤하고 있는 경제를 부양하고, 각종 스캔들로 흔들리고 있는 정권 기반을 다지길 바라왔기 때문이다.


유념할 것은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아베 정권이 도쿄 올림픽 성공에 집착하다가 자초한 측면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보다 정치적 판단이 개입하면서 사태를 키운 것이다.


아베 총리는 7년 전 도쿄 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2011년 원전 폭발 피해를 입은 후쿠시마(福島)에 대해 “언더 컨트롤”(통제하)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내달 26일 시작되는 올림픽 성화 봉송을 후쿠시마현에서 시작하는 등 도쿄 올림픽을 ‘부흥올림픽’으로 삼겠다는 생각이다. 하지만 후쿠시마의 피난지역은 아직도 안전하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주민들도 많다. 후쿠시마든 코로나19든 ‘언더 컨트롤’이라는 말을 과연 누가 믿을까.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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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폭넓게 모으고 있다는 인식으로, 모집하고 있다는 인식은 없었다.”


지난달 28일 일본 중의원 예산위원회.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정부 주최 ‘벚꽃을 보는 모임’을 ‘사유화’했다는 의혹과 관련해 일본공산당 미야모토 도루(宮本徹) 의원이 “(총리 지역사무소의) 참가자 모집을 언제부터 알고 있었나”라고 묻자 이렇게 답했다. 원래 ‘공적·공로’가 있는 이들을 초대하는 모임 참가자를 사무소가 대거 모집해도 괜찮냐는 지적에 이런 기상천외한 답변을 한 것이다. 미야모토 의원은 “48년 일본어를 사용해왔지만, ‘모으다’와 ‘모집하다’는 같다”고 지적했다. 아베 총리는 지난달 20일 시작된 정기국회에서 벚꽃 모임 등 각종 의혹에 대해 “자료가 없다” “조사할 필요가 없다”고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2. “중대 또는 복잡·곤란한 사건의 수사와 공판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지난 3일 중의원 예산위원회. 모리 마사코(森雅子) 법무상은 지난달 31일 각의(국무회의)에서 이달 7일 정년퇴임 예정이던 구라카와 히로무(黑川弘務) 도쿄고검 검사장의 정년을 8월까지 연장한 이유에 대해 이렇게 답했다. 검사장의 정년 연장은 전례가 없는 일로, 검사 정년을 만 63세로 규정한 검찰청법 위반 의혹까지 제기된 터다.


일본 언론들은 이번 결정이 오는 8월 물러나는 이나다 노부오(稻田伸夫) 검사총장(검찰총장) 후임으로 구로카와 검사장을 지명하기 위한 것으로 보고 있다. 구로카와 검사장은 아베 정권과 가까운 인물. 일본 검찰은 복합리조트(IR) 사업과 선거부정 의혹 등으로 자민당 의원들을 수사하고 있다. 결국 정권에 대한 검찰 수사를 무디게 하려는 포석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런 무리수들은 크게 부각되지 않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문제가 다른 문제를 압도하고 있는 탓이다. 각종 스캔들로 궁지에 몰렸던 아베 정권으로선 속으로 웃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실제 아베 총리는 야당의 추궁에 장기인 ‘밥 논법’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침밥을 먹었느냐’는 질문에 ‘쌀밥’에 대해 질문받은 것처럼 ‘먹지 않았다’고 논점을 흐리는 식이다. 야당에 대해선 “이 시국에 ‘벚꽃’만 하고 있다”고 역공하고 있다. 세코 히로시게(世耕弘成) 자민당 참의원 간사장은 지난달 29일 질문에 나선 입헌민주당 렌호(蓮舫) 의원을 두고 “이 상황에서 감염증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는 감각에 놀라고 있다”고 트위터에 올려 물의를 빚었다. 자민당은 심지어 신종 코로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해 재해 발생 시 내각 권한을 강화하는 ‘긴급사태 대응’ 신설 논의 등을 해야 한다며 ‘개헌론’ 군불을 땠다.


이런 안하무인식 태도는 신종 코로나 정국으로 각종 스캔들이 지지율에 미치는 영향이 없다고 판단한 때문인지도 모른다. 다만 전례가 없는 ‘나쁜 사례’를 남발하는 게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두고봐야 할 것 같다. 아베 정권의 각종 스캔들에서 드러났듯 공사를 혼동하고, 공금을 유용하는 것은 국정의 사유화다. 입맛에 따라 검찰 인사에 개입하는 것은 검찰의 사유화다. 어쩌면 전염병만큼이나 위험한 것일지 모른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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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甲) A, 을(乙) B….


2016년 7월 일본 사가미하라(相模原)시의 지적장애인 복지시설에서 입소자 19명이 살해되고 26명이 중경상을 입은 ‘사가미하라 장애인 살상 사건’. 요코하마지방법원에서 지난 8일부터 시작된 공판에서 피해 장애인들의 ‘존재’는 ‘기호’로 표시됐다. 사망자는 ‘갑’, 부상자는 ‘을’로 분류돼 알파벳이 붙었다. 법원 측은 “유족들이 익명을 바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유족과 피해자 가족들은 또 다른 방청객과 피고에게 보이지 않도록 칸막이로 차단된 방청석에 앉았다. 아무 죄 없는 피해자 측이 편견과 차별을 우려해 이런 조치를 요구한 것이 일본 사회의 실상을 보여준다. 


사가미하라 사건은 일본 사회에 적지 않은 충격을 줬다. 피고 우에마쓰 사토시(植松聖·30)는 2016년 7월26일 새벽 자신이 일하다 해고됐던 복지시설에 침입해 잠들어 있던 장애인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잔인하게 살해했다. 범행 후 “중증장애인은 살아 있어도 가망이 없다”고 했다. 


구류 중에도 언론 취재에 적극 응하면서 자신의 행동이 옳았다고 주장했다. “내가 하는 일은 이 사회를 위한 것”이라고 강변했고, “의사소통이 안되는 장애인은 불행밖에 낳지 않는다”고 했다. 


피고는 지난 8일 첫 공판에서 “모든 분들에게 깊이 사죄한다”고 말했지만, 그 직후 손가락을 물어뜯는 등 소란을 피웠다. 변호인 측은 심신미약을 이유로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왜 이런 참혹한 사건이 일어났는지 규명할 수 있을지 불투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지난 15일과 16일 공판은 의미 있는 자리였다. 피고의 일방적인 주장에 묻힌 피해 장애인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검찰 측은 피해 장애인들에 대한 추억을 담은 유족들의 공술 조서를 읽었다.  


갑B(당시 40세·여)의 어머니는 “소파에 있으면 뒤에서 껴안곤 했다”면서 “딸의 웃는 얼굴을 봐달라. 피고가 빼앗은 생명이 어떤 것이었는지 알았으면 한다”고 했다. 갑C(26세·여)의 어머니는 “개성을 갖고 열심히 살았다. 둘도 없는 딸이었다”고 했다. 갑H(65세·여)의 어머니는 “전차나 버스에서 아이나 노인이 있으면 자리를 양보하는 다정한 성격”이라고 전했다. 장애인은 불행의 근원이라고 했던 피고의 주장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진술이다.  


이번 재판에선 어머니의 요청으로 유일하게 실명이 공개된 ‘미호’(19세·여)의 이야기도 나왔다. 어머니는 미호가 아기 때 중증 지적장애를 동반하는 자폐증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동반자살이 머리를 스친 적도 있지만 육아에 열중하면서 미호로부터 살아가는 희망을 얻었다”고 했다. 미호의 어머니는 “갑이나 을이 아니다. 미호라는 존재를 알았으면 했다”고 했다.


일본 사회는 이번 재판 과정을 통해 장애인의 존재와 이들이 놓여 있는 위치 등을 되짚어보고 있다. 장애인과의 공생을 강조하면서도 장애인 복지시설 건설에는 반대 깃발이 세워지는 사회. 장애인이 ‘갑A’가 아닌 제대로 된 이름을 가진 ‘존재’로 인정받기 힘든 사회. 비단 일본만의 얘기는 아닐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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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한 해가 저물 때쯤 ‘올해의 유행어’나 ‘올해의 신조어’ 등을 선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엔 ‘신어(신조어)·유행어 대상’이 있다. 1984년부터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한 해 동안 벌어진 사건이나 유행 등을 포착한 표현 10개를 골라 이 가운데 대상을 정해왔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의 대상은 ‘원팀’(ONE TEAM)이다. 지난 9월20일~11월2일 일본에서 처음 개최된 럭비월드컵에서 사상 첫 8강에 진출한 일본 대표팀의 구호다.


일본 럭비대표팀 31명은 외국 출신 선수가 7개국 15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미 조셉 감독은 필요한 선수들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표로 선발했다. 자칫 오합지졸로 끝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낸 정신이 ‘원팀’이었다. 대표팀은 뉴질랜드 출신 리치 마이클 주장을 중심으로 결속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강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모아를 차례로 꺾고 조별리그 전승으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일본 열도는 들썩였다. 레플리카(모조품) 유니폼이 동이 나는 등 곳곳에 럭비 열풍이 일어났다. ‘신조·유행어’ 후보 30개에도 갑자기 럭비 팬이 된 사람들인 ‘벼락 팬’, 대표팀 구호인 ‘4년에 한 번이 아니다. 일생에 한 번이다’ 등 럭비 관련 표현이 5개나 들어갔다.


이런 만큼 ‘원팀’은 ‘신어·유행어 대상’으로 일찌감치 점쳐졌다. 국적이나 출신지가 다른 이들이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 굵은 땀을 흘리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런 ‘원팀’의 정신은 일본 사회에선 아직은 ‘머나먼 얘기’다. 이는 ‘신어·유행어 대상’의 이례적인 심사평에서도 드러난다. 심사위원들은 “원팀은 세계에 퍼지고 있는 배외적 분위기에 대한 명확한 반대 메시지인 동시에 가까운 장래에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존재 방식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그러면서 “(원팀의 정신이) 아베 총리에게도 확실하게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4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5년간 34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이 심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값싼 ‘단순노동력’으로 취급할 뿐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업 HSBC가 매년 현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나라’ 조사에서 올해 일본은 33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 특히 ‘생활에 익숙해지는 용이성’ ‘커뮤니티 허용성’ ‘친구 만들기’ 항목에서 평가가 낮았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럭비대표팀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결국 ‘성과’가 있었기에 ‘원팀’ 정신을 주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US오픈, 올해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시각에서도 이런 이중잣대를 느낀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닛신식품은 한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오사카의 갈색 피부를 하얀 피부로 바꿔 ‘화이트 워싱’ 논란을 빚었다. 일본의 한 개그맨 콤비는 “오사카에게 필요한 것은 표백제”라고 했다. ‘일본 스고이(대단해)론’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에선 타자에 대한 관용은 ‘조건부’다.


 지난 2월 96세로 타계한 도널드 킨 전 컬럼비아대 교수는 평생을 일본 문화 연구에 천착했다. 그는 일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말년에는 일본에 귀화했다. 그는 생전 지인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내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은 내가 얼마나 일본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할 때밖에만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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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공산당은 나다’, ‘#공산당은 동료다’.


지난주 일본 트위터에서 이런 해시태그(#)를 단 글들이 확산됐다.


일본공산당 지지자들이 올린 글들만 있는 게 아니다. 자신은 공산당 지지자가 아니지만 “공산당과 주권자를 우롱하는 움직임에 반대한다” “이론(異論)을 말했다고 딱지를 붙이는 데 반발한다” 등의 글들이 잇따랐다. 계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야유’ 때문이다. 


지난 8일 참의원 예산위원회. 입헌민주당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 의원이 2016년 방송국에 전파 정지를 명령할 수 있다고 한 다카이치 사나에(高市早苗) 총무상의 발언에 대해 질문할 때였다. 각료 좌석에 앉아 있던 아베 총리가 실실 웃는 얼굴로 스기오 의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공산당”이라고 한 것이다.


이를 두고 자신과 다른 의견을 가진 이들에게 ‘빨갱이’ 딱지를 붙이는 행위라는 비판이 잇따랐다. 저널리스트 아오키 오사무(靑木 理)는 “총리가 ‘공산당’을 비판의 단어로 삼는 것은 넷우익같이 저열하다. 삼권분립의 근저가 무너지고 있다”고 했다.


문제는 아베 총리가 야유로 주의를 받은 지 이틀 만에 비슷한 식의 야유를 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난 6일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자신이 연루된 의혹을 받는 가케학원 스캔들과 관련한 문서 작성의 경위를 따지는 무소속 이마이 마사토(今井雅人) 의원을 향해 각료석에서 “네가 만든 것 아니냐”고 야유했다. 아베 총리는 “좌석에서 발언을 한 것은 죄송하다”고 사과했지만 발언 내용은 철회하지 않았다.


사실 아베 총리는 초·재선 의원 시절 국회 상임위원회 등에서 질문 중인 야당 의원에게 자주 야유를 하는 걸로 유명했다고 한다. 오죽 했으면 ‘야유 쇼군(將軍·장군)’이라고 불렸을까.


이런 태도는 한 나라의 지도자인 총리가 돼서도 변하지 않는 모양이다. 2012년 12월 2차 집권 이후 “빨리 질문해” “당신에게 주의하고 싶다” “없어, 그런 건” 등 문제가 된 야유가 한둘이 아니다. 마이니치신문이 국회의사록을 조사한 결과 올해에만 26차례의 야유 등 돌출적인 발언이 있었다.


50년 가까이 일본 정계를 지켜봐온 정치평론가 모리타 미노루(森田實)는 마이니치에 “전후 많은 총리를 봐왔지만 이처럼 품격을 결여하고, 민주주의를 흔드는 듯한 발언이 잇따른 적은 없었다”고 했다. 정부의 대표인 총리가 국민의 대표인 국회의원에게 야유를 하는 것은 삼권 분립과 민주주의 원칙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아베 총리는 20일 가쓰라 다로(桂太郞) 전 총리(2886일)를 제치고 역대 최장 재임 총리에 등극한다. 하지만 아베 정권은 최근 잇따른 스캔들에 휘말리고 있다. 스가와라 잇슈(菅原一秀) 경제산업상과 가와이 가쓰유키(河井克行) 법무상이 선거법 위반 의혹 등으로 잇따라 낙마했고, 측근인 하기우다 고이치(萩生田光一) 문부과학상은 “(수험생들은) 자기 분수에 맞춰서 하면 된다”고 말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아베 총리 자신도 정부 주최의 ‘벚꽃을 보는 모임’에 지역구 지지자를 대거 초대해 ‘국고의 사유화’ 비판을 받고 있다. 장기 집권에 따른 해이가 역력하다.


일련의 스캔들이 아베 정권에 결정타가 될지는 미지수다. 아베 총리를 대신할 당내 차기 후보나 대안 야당이 없기 때문이다. 여론조사에선 아베 내각을 지지하는 이유로 ‘다른 내각보다 낫다’가 많다. 반면 지지하지 않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다’가 가장 높다. 아베 총리는 잇따른 스캔들에 문제가 된 인물을 경질하거나 제도를 중지시키는 등 ‘꼬리자르기식’ 대응을 하고 있다. 대안 부재와 국민의 무딘 반응은 이런 대응을 반복하는 이유다. ‘달리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신뢰할 수 없는’ 정권이 줄곧 이어지고 있는 셈인데, 이걸로 일본의 무엇이 바뀔지 궁금하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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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를 대내외에 선포한 ‘즉위례 정전의식’은 ‘레이와(令和·현 일왕 연호)’ 왕실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의식이었지만, 일본 왕실이 껴안은 문제를 새삼 부각시켰다. 이른바 ‘안정적인 왕위 계승’ 문제다. 


의식이 치러진 왕궁 내 풍경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일왕의 옥좌인 ‘다카미쿠라(高御座)’ 왼쪽에 동생 후미히토(文仁·53)를 비롯한 아키시노미야(秋篠宮) 일가 4명이, 오른쪽엔 휠체어를 탄 작은 아버지 마사히토(正仁·83) 등 히타치노미야(常陸宮), 미카사노미야(三笠宮),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일가 7명이 섰다.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때 남성 왕족 6명, 여성 왕족 7명이 좌우로 선 것과 대비된다. 의식에 참가할 수 있는 성인 남성 왕족이 2명밖에 없는 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일본 왕실전범은 부계 혈통인 남성만 왕위 계승 자격을 인정한다. 현재 계승 자격자는 후미히토와 그 아들 히사히토(悠仁), 마사히토 등 3명뿐이다. 고령인 마사히토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2명밖에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도쿄 왕궁에서 열린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나루히토 일왕을 향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남성 왕족 부족은 일본 왕실 최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1965년 후미히토 이후 9명 연속으로 여성이 태어났다. 2006년 41년 만에 남성 왕족인 히사히토가 탄생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된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정부는 여성여계(女性女系) 일왕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었지만 히사히토의 탄생으로 없었던 일이 됐다. 


현재 일본 왕실에서 30대 이하 왕족 7명은 히사히토를 빼면 전부 미혼 여성이다. 여성은 결혼하면 왕족 신분을 잃는다. 히사히토가 즉위할 쯤에 왕족이 없어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히사히토가 즉위한 뒤도 문제다. ‘다음 왕위’는 히사히토의 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아야 이어진다. 현재 13살인 히사히토에게 일본 왕실의 ‘존속’이 걸려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히사히토가 양친과 함께 처음 해외 방문을 했을 때도 이런 사정이 드러났다. 히사히토와 어머니 기코가 탄 비행기가 부탄 공항에 도착하고 20분 뒤 아버지 후미히토가 다른 비행기편으로 왔다. 비행기 사고로 1·2위 왕위 계승자가 동시에 사망하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데도 왕위의 안정적 계승을 위한 대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6월 국회는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과제, 여성 궁가 창설 등”을 신속하게 검토하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즉위 의식이 일단락되는 올 가을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내년 봄으로 또 미룰 것이란 관측이 많다. 


논의의 공전(空轉) 배경에는 남계 남성에 의한 왕위 계승을 고집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보수·우익 세력들이 있다. 최근 자민당 내 의원 모임이 2차 대전 패전 뒤 일반인이  된 ‘구 왕족’의 남성 일부를 왕족으로 복귀시키는 제언을 내놓은 데서도 이런 집착이 읽힌다. 이들은 “남계 왕위 계승을 126대 관철해온 것이 일본의 전통”이라며 “모계 천황(일왕)을 인정하면 이질적인 왕조, 천황답지 않은 천황을 낳게 된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는 일왕이 초대 진무(神武) 이래 126대에 걸쳐 계보가 끊이지 않고 존재해왔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 신화’가 깔려 있다. 일왕이 ‘절대군주’였던 전전(戰前) 천황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일본 우익들의 바람도 있다.  


유럽의 왕실에선 남녀평등 등의 영향으로 ‘장자 우선’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교도통신의 지난 26~27일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81.9%가 여성 일왕에 찬성했다. 일본 사회 최고의 ‘금기’로, 일본인에 내면화돼 있다는 ‘천황제’의 향방과 관련해 향후 왕위 계승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지 주목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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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일본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의 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90년 전쯤 지어진 이 시를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난 4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서였다. 


아베 총리는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라는 구절을 언급한 뒤 “새로운 시대의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 모든 사람이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저출산·고령화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지역구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했다고 전했다.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해 다양성을 강조한 연설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위화감을 느낀 건 아베 총리의 ‘말 따로, 행동 따로’ 때문이다. 그는 연설에서 성적 소수자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새 재류 자격을 신설해 5년간 최대 35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3~4대째 살고 있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도 앞뒤가 맞지 않다. 아베 총리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에선 결혼을 하면 부부가 성씨를 똑같이 해야 하는데,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위해서도 법을 고쳐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기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차별을 부추기는 쪽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 “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등 문제 발언을 연거푸 했다.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 의원은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고 했다. 아베 정부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을 취소한 것도 “다양성 인정” 발언을 뒤집는 것이다. 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선 ‘배제’하겠단 의도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그는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됐던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 전권대사의 ‘인종평등’ 제안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내건 큰 이상은 지금 국제인권조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되고 있다”고 상찬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중국 동북부에 진출하는 등 식민지배의 당사자였음을 외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이 정도의 후안무치한 세계사 왜곡은 없었다”며 “역사에 대한 무반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인종평등’이 지금 일본 사회에 실현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베 정권 들어 혐한(嫌韓) 등에 의한 차별이나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가 횡행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가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배제,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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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시민이 지난 6월 도쿄 2020 올림픽과 패럴림픽 로고가 새겨진 건물을 지나가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오. 모. 테. 나. 시.”


2013년 9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총회에서 2020년 도쿄올림픽 유치위원인 아나운서 다키가와 크리스텔이 손동작에 맞춰 한 음절씩 끊어 말한 ‘오모테나시’ 연설이 화제를 모았다. 


‘오모테나시’는 특별한 대접을 뜻한다. 다키가와는 “오모테나시는 손님을 마음으로부터 맞이한다는 깊은 의미가 있다”고 했다. 이 연설은 올림픽 유치에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모테나시’는 그 해 일본 유행어 대상에 올랐다. 다키가와는 지난달 ‘차기 총리감’으로 거론되는 고이즈미 신지로 환경상과 결혼을 발표했다. 


그렇게 유치한 도쿄올림픽 개최까지 1년이 채 안 남았지만, ‘오모테나시’ 전선에 먹구름이 가시지 않고 있다. 줄곧 지적돼온 폭염 등 날씨 대책을 좀체 찾지 못하고 있다. 도쿄올림픽이 열리는 7월24일부터 8월9일까지 도쿄의 날씨조건은 최악이다. 그나마 작년보다 나았다는 올해 도쿄 도심의 최고기온은 모두 30도를 넘었다. 그 중 6일은 35도 이상이었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때 평균기온이 27도, 2012년 런던올림픽 때는 24도였다. 


도쿄올림픽 조직위는 골머리를 싸고 있다. 이미 마라톤, 경보 등의 시작시간을 새벽으로 앞당겼다. 일부 도로에 열 차단제를 입히고 있지만, 사람 키 높이에선 오히려 기온과 자외선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지난 13일 조정 시범경기가 열린 경기장 관중석에 인공 눈을 뿌리는 실험을 했지만, 관중석 온도는 별반 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실험이 이뤄진 수상경기장은 예산 문제로 관중석 절반만 지붕을 설치했다. 지난달 도쿄 오다이바 해상공원에서 열린 오픈워터 시범경기에선 화장실 같은 악취가 났고, 파라트라이애슬론 시범경기에선 상한의 2배를 넘는 대장균이 검출됐다.


방송중계권 수입 때문에 7~8월 개최를 요구한 IOC에도 문제가 있지만, 일본 측 대응에는 이해가 안 가는 대목이 많다. 일본은 도쿄올림픽 유치신청서에 “이 시기는 맑은 날이 많고 따뜻해 선수에게 이상적인 기후”라고 했다. 


한 일본 언론인은 도쿄올림픽 준비 과정에서 일본의 ‘열화(劣化·열등화)’를 본다고 했다. 철두철미와 세심함은 옛말. 근본적인 대책보다 땜질식 처방으로 넘어가려 한다는 것이다. 폭염 대책으로 우치미즈(국자로 물을 떠서 거리에 뿌리는 풍습)를 제안하면서 “오모테나시 문화를 알리자”라고 우기는 데선 ‘정신 승리’를 보는 것 같다.


‘오. 모. 테. 나. 시.’ 


도쿄올림픽의 ‘오모테나시’는 무엇을 지향하는 걸까. 아베 신조 정권은 도쿄올림픽을 ‘부흥 올림픽’으로 삼을 뜻을 노골화하고 있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원전 사고를 복구했다는 점을 전 세계에 과시하겠다는 것이다. 2013년 도쿄올림픽 유치 연설에서 후쿠시마 원전이 “언더 컨트롤”(관리하에 있다)이라고 한 ‘정치쇼’가 되풀이될 공산이 크다. 


 ‘오모테나시’는 누구를 위한 걸까. 일본 정부는 도쿄올림픽 때 욱일기를 경기장에 들고 오는 게 아무 문제가 없다고 했다. 과거 군국주의와 제국주의의 상징으로, 일본 우익들의 ‘헤이트(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데모’에 등장하는 욱일기가 ‘평화의 제전’에 펄럭이는 장면을 기어코 보겠다는 것이다. 이뿐이 아니다. 현재 일본에선 혐한 감정이 고삐 풀린 채 분출하고 있고, 아베 정권은 이런 분위기를 정권 부양에 활용하고 있다는 의심을 사고 있다. 


일본의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 후쿠시마 원전 문제에는 공통점이 있다. 철저한 반성과 책임, 자기혁신이 빠져있다는 것이다. 도쿄올림픽에선 이 둘을 대충 덮고 넘어가려 하고 있다. ‘부흥(復興)’ 올림픽의 미명하에 ‘부인(否認)’ 올림픽이 되는 건 아닌지 우려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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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뭐가 잘 팔리나?”


“당연히 ‘한국 때리기’지.”


이달 초 도쿄 중심가에서 우연히 듣게 된 대화 내용이다. 일본 정부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에서 제외하기로 각의(국무회의) 결정하면서 한·일 간 갈등이 악화일로를 걷던 때였다. 대화 내용으로 미뤄볼 때 언론·출판계에서 일하는 이들인 듯했다. 주변을 신경쓰지 않고 이런 대화를 하는 데 놀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리 놀랄 일은 아니었다. 요즘 일본 매체들의 ‘한국 때리기’는 도를 더하면 더했지, 전혀 수그러들지 않기 때문이다. 


일반 여론에 영향이 큰 방송의 행태가 가관이다. 최근 한국에서 공분을 산 화장품기업 DHC의 자회사 ‘DHC TV’의 역사 왜곡과 한국 비하가 공중파 방송에까지 번진 모양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와이드쇼’들은 “한국 괘씸하다” 일색이다. 해설자로 등장하는 ‘전문가’들은 한국에 대해 냉소적이거나 야유 섞인 말을 하는 이들이 대다수다. 한국 정부나 국민에 대해 “반일이다” “유치하다” 등으로 비난한다. “한국인은 감정적이어서 어떤 행동을 할지 모른다” 등 헤이트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혐오 발언)도 서슴없이 등장한다. 반면 아베 신조 정권의 경제 보복조치의 문제를 짚는 이들은 거의 없다. 일본 방송은 한국 없이는 먹고살지 못하냐고 묻고 싶을 정도다. 


그런데 실제 그런 모양이다. 일본의 한 민간방송사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청률 때문이죠. 매번 시청률 그래프를 봐요. 시청률이 뚜렷하게 떨어지기 전까지는 계속하는 거죠.”


결국 ‘시청률 지상주의’가 문제지만, 거꾸로 생각하면 ‘한국 때리기’를 하면 기꺼이 TV를 보는 일본인들이 어느 정도 형성돼 있다는 것이기도 하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왼쪽)이 19일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오른쪽)를 외무성으로 불러 일본이 요청한 ‘제3국 중재위원회’ 설치에 한국이 응하지 않는 데 대해 항의하고 있다. 도쿄 _ 김진우 특파원


이런 흐름에는 아베 정권 들어 뚜렷해진 역사수정주의와 우경화 움직임이 작용하고 있음을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식민지배와 침략전쟁의 역사와 책임을 부인하려는 아베 정권의 움직임이 일본 국민의 ‘반한(反韓)’ ‘혐한(嫌韓)’ 감정을 부채질하고, TV도 거리낌 없이 ‘한국 때리기’에 나서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 중학교 역사교과서에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기술은 대부분 사라졌다. 지난 3일 아이치 트리엔날레에서 ‘평화의 소녀상’ 전시가 중지가 된 것은 과거 일본군의 전시 성폭력을 부인하는 역사수정주의에 기반한 정치가들의 궤변과 여기에 동조하는 이들의 협박에 따른 것이었다. 아베 정권은 인권 문제인 강제징용 문제에 대해서도 한국 측의 대응을 압박하고, 사실상의 경제 보복조치를 취했다.


끊이지 않는 일본의 역사수정주의적인 언동의 근저에는 결국 과거 식민지였던 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의식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감히’라는 생각이 깔려 있기 때문에 ‘한번 손을 봐줘야 한다’는 식으로 이어진 게 아닐까. 이런 태도는 고노 다로 외무상이 지난달 남관표 주일 한국대사에게 “무례하다”라고 한 것에서도 엿보인다. 전 외무성 관료는 이 발언이 과거 사무라이가 일반 서민이 ‘무례’를 범했을 경우 죽여도 처벌받지 않았던 ‘기리스테고멘’의 연장선에서 하는 말이라고 했다. ‘윗사람’이 ‘아랫사람’에게 하는 말이라는 것이다. 한 재일동포는 “일본은 적대시할 상대방이 있어야 자기 존재를 확인하는 나라”라고 했다.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 결정으로 한·일관계는 더욱 들썩이게 됐다. 일본에서 ‘혐한’이 더욱 기승을 부릴 건 자명하다. 이럴 때일수록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 일본 측에서 ‘위에서 보는 시선’으로 자주 사용하는 ‘숙숙(肅肅)하게(담담하게)’ 맞서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혐한’에 ‘혐일’로 대응할 게 아니라면 말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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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처럼 일본 신문이나 TV를 보는 게 심란했던 적이 없다. 일본의 경제 보복조치를 두둔하기 위해 한국에 대한 억측과 중상, 불만과 조롱이 넘치는 내용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대북 정책이나 ‘촛불혁명’ 등을 두고 일본의 ‘한국 깎아내리기’가 어제오늘 일은 아니지만 도가 지나치다.


한국의 전략물자 수출관리가 의구심이 간다는 억지뉴스가 대표적이다. 일본은 보복조치의 이유로 ‘부적절한 사안’을 들면서 확인되지 않는 얘기를 흘리고 북한과의 연관 의혹까지 제기한다.


일정한 패턴이 있다. 일본 정부·여당 관계자발로 전략물자의 ‘북한 유출설’을 흘린다. 아베 신조 정권과 가까운 신문·TV가 근거 없이 한국의 수출관리가 엉망이라는 보도를 내보낸다. 사린가스나 VX 같은 생화학무기 제조에 전용 가능한 물자 유출설도 곁들인다. 정부·여당과 일부 언론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한국을 ‘안보 문제국’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단발성으로 끝나는 게 아니다. 뉴스나 연예 정보 등을 가볍게 다루는 TV <와이드쇼> 프로그램들이 이런 내용을 반복해서 다룬다. VX가 북한이 김정남(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이복형)을 암살할 때 사용됐다고 설명하면서 사건 당시의 자극적인 화면을 내보낸다. 소위 ‘전문가’라는 이들도 등장해 이번 조치를 정당화한다. 생각해볼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기본적으로 깔려 있는 것은 불신과 냉소다.


이번 조치가 “안보상 우려에 따른 무역관리 재검토”라는 일본 정부 주장을 답습한다. 일본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는데 한국은 왜 감정적으로 반응하냐는 것이다. 한국의 수출관리 문제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제대로 수출관리를 하고 나서 국제사회에 호소하라”고 비아냥댄다. 한국에서 일본 맥주가 인기가 많으니 맥주수출을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엔 실소만 나온다. 그야말로 ‘아무 말 대잔치’다.


지난 12일 한·일 당국 간 첫 실무회의에서 일본 측은 ‘부적절한 사례’가 북한 밀반출은 아니라고 한발 물러섰다. 그야말로 ‘치고 빠지기’ 식이다. 이미 소기의 목표는 달성했다고 보는 것이다. 한국의 안보 문제를 건드려 ‘코리아 리스크’를 부각시키는 것이다.


이런 억지주장은 ‘신문·방송 → 와이드쇼 → 주간지 등 잡지’ 순서로 확대되면서 여론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일부 보수 매체와 우익 댓글러들의 합작으로 ‘한국 때리기’ 기사는 야후저팬 같은 인터넷포털 뉴스의 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에선 정부의 조치가 ‘타당하다’는 응답이 50%를 넘었다. 한국에 대한 피로감을 느끼는 여론에 불신과 혐오의 연료를 대고 불을 붙이면서 ‘한국 때리기’의 구조를 짠 게 누구인지 곱씹어봐야지만, 이런 사회 분위기에 있는 일본과 마주해야 하는 것도 현실이다.


그런데 이번 전개 과정을 보면 “한국을 손봐줘야 한다”는 것을 빼곤 무슨 명분과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이번 조치가 일본의 신뢰를 떨어뜨리고, 일본 기업에도 피해가 되돌아오는 “극약 같은 조치”라는 지적은 이미 수차례 나왔다. 일본의 한 전문가는 “한국이 두 손을 들 거라고 보는 건 판단 미스”라고 했다. 오히려 한국 여론을 강경하게 만들어 정부의 운신 폭을 좁힐 수 있다. 일본 측이 20년 전 외환위기 때 일본에 손을 벌리던 한국을 상정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그래서 “한국을 괴롭히고, 괴롭힐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목적”이라는 냉소도 나온다. 


그게 아니라면 일본은 무얼 노리는 걸까. “한국에 일본의 불신을 명확하게 전하는 것”으로 보기에는 너무 나갔다. 일본을 추월할 한국의 산업성장을 막고, 나아가 동북아 질서에서 한국을 제치고 주도권을 유지하겠다는 걸까. 자꾸 기어오르는 한국을 밟아주고 쥐락펴락하겠다는 걸까. 이런 생각이 맞다면 일본은 위험한 도박에 손을 대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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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아예 ‘손타쿠’를 넘어서네요.”


최근 ‘노후자금 2000만엔’ 문제에 대한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대응을 두고 도쿄의 외교 소식통이 혀를 내두르며 한 말이다.


‘손타쿠’는 ‘(남의 마음을) 미루어 헤아린다’는 ‘촌탁(忖度)’의 일본식 발음이다. 이 말은 아베 정권 들어선 ‘윗사람이 원하는 대로 알아서 긴다’는 뜻으로 주로 사용된다. 정부 관료나 공무원들이 알아서 정권에 코드를 맞추는 점을 비꼰 것이다. 이런 ‘손타쿠’를 넘어선다고 평가받는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발단은 지난 3일 금융청이 발표한 ‘고령사회의 자산 형성·관리’ 보고서다. “연금 생활을 하는 고령부부는 30년간 약 2000만엔(약 2억1900만원)의 여분 저축이 필요하다”는 내용에 ‘정부가 연금정책의 실패를 개인에게 떠넘긴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금융담당상은 11일 “정부의 입장과 다르다”면서 “공식 보고서로 받지 않겠다”고 했다. 모리야마 히로시(森山裕) 자민당 국회대책위원장은 한술 더 떠 “(재무성이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아) 보고서 자체가 없어졌다”며 야당이 요구하는 예산위원회 개최를 거부했다.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금융청 홈페이지에 버젓이 올라 있는 보고서의 존재를 부인하려는 것이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보고서를 작성한 워킹그룹은 대학교수, 변호사, 민간싱크탱크 대표 등으로 구성됐다. 재무성과 후생노동성 등 관계부처도 옵서버로 참가하고 있다. 이 워킹그룹은 아소 부총리의 자문을 받아 설치됐다. 전문가에게 의견을 구하면서 정작 답은 듣지 않겠다고 하는 셈이다. “전대미문의 부조리극”(마이니치신문)이라는 비아냥이 나오는 이유다.


아베 정권은 그간 ‘은폐 본질’을 누누이 비판받아 왔다. 남수단 평화유지활동(PKO) 육상자위대의 일일보고 은폐, 모리토모(森友)학원 국유지 헐값 매입 의혹과 관련한 재무성 문서조작 등 불리하거나 문제가 될 만한 것은 숨기거나 발뺌해 왔다.


‘아베 1강’ 체제의 장기화로 정권 내 ‘손타쿠’ 구조가 확산된 데 따른 것이란 지적을 받고 있다. 이번 ‘노후자금 2000만엔’ 논란도 아베 정권의 ‘은폐 본질’이나 ‘손타쿠’ 구조의 연장선상에 있지만, 정권의 중추들이 아예 대놓고 은폐나 손타쿠를 요구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심각하다.


사실 이번 보고서의 내용이 허무맹랑한 게 아니다. ‘30년간 2000만엔이 필요하다’는 추계의 근거자료는 후생노동성이 제공했다. 금융청이 독자적으로 ‘30년간 1500만~3000만엔 필요’라는 추계를 내 워킹그룹에 제시한 것도 드러났다. 정부로선 보고서의 문제 제기를 냉정하게 짚어보고 대응책을 논의하는 게 순리다. 그런데 다음달 참의원 선거를 앞두고 정부·여당에 불리한 사실이 나오면 곤란하니까 없었던 일로 하는 것이다. 앞으로 정권 눈치를 보는 보고서만 내라는 격이다.


이런 아베 정권의 막무가내식 태도를 허용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일본 국민이다. 문제가 생겨도 발뺌을 하거나 거짓말로 강변하면 넘어갈 수 있다는 믿음을 아베 정권에 심어준 것이다. 정치평론가 이토 아쓰오(伊藤惇夫)는 최근 도쿄신문에 “관료의 손타쿠나 불상사, 정치가의 폭언·실언이 빈발해도 내각 지지율은 잠깐 내려갈 뿐 곧 회복된다. 국민으로선 다른 선택지가 없고, 지지하는 게 아니다. 그러나 무엇이 일어나도 아무렇지 않게 됐다”고 밝혔다. 


흔히들 아베 정권의 장기화로 일본 사회의 우경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무엇이 문제인지 느끼지 못하는 구조가 고착화하고 있다는 데 있는 게 아닐까. 7월 참의원 선거가 그 잣대가 될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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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8일 일본 가와사키(川崎)시에서 51세 남성이 학교 버스를 타려던 초등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러 2명이 숨지고 18명이 다치는 사건이 벌어졌다. 사건 발생 일주일이 지났지만 일본 사회의 충격은 가시지 않는 모습이다. 일본 사회가 껴안고 있는 고민거리들이 드러난 까닭이다. 


이 남성이 범행 직후 스스로 목숨을 끊었기 때문에 정확한 동기를 규명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다만 지금까지 드러난 정황상 일본 사회에 수차례 충격을 안긴 ‘도리마 사건’으로 규정짓는 분위기다. 일본에선 특별한 동기 없이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위해를 가하는 것을 ‘도리마(거리의 살인마) 사건’이라고 한다. ‘묻지마 살인’인 셈이다. 


도리마 사건은 2008년 아키하바라(秋葉原) 사건을 통해 사회 문제로 떠올랐다. 당시 도쿄 번화가인 아키하바라의 ‘보행자 천국’(차 없는 도로)에서 한 남성이 트럭을 몰고 돌진해 행인들을 친 뒤 차에서 내려 흉기를 휘둘렀다. 이 사건으로 7명이 숨지고 10명이 다쳤다. 범인은 여러 회사를 전전하던 비정규직이었다. 그는 경찰 조사에서 “(범행 대상은) 누구라도 좋았다”고 했다. 일본 경찰에 따르면 2007년부터 2016년까지 도리마 사건이 해마다 4~14건 발생했다고 도쿄신문은 전했다.


이번 사건이 18년 전 이케다(池田) 사건을 상기시킨다는 지적들도 많다. 2001년 6월 한 남성이 오사카교육대 부속 이케다초등학교에 흉기를 들고 침입해 초등학생 8명을 숨지게 하고 15명을 다치게 했다. 이케다 사건과 이번 사건은 안전하다고 생각했던 곳에서 약자인 어린아이들이 습격을 당했다는 공통점이 있다. 학교 버스는 일본 정부가 지난해 6월 발표한 ‘등·하교 방범 계획’에서 통학 안전 대책으로 꼽혔다. 학생들이 학교 버스를 타려고 할 때 갑자기 공격을 당한 이번 사건은 일본의 안전 대책에도 과제를 던졌다.


이번 사건과 관련해 또 하나 입에 오르내리는 용어가 ‘확대 자살’이다. 자살을 바라는 사람이 아무 관계가 없는 이들까지 끌어들여 사회에 대한 울분을 풀려고 한다는 것이다. 앞서 이케다 사건의 범인도 “인생의 막을 내릴 때는 많은 사람들을 길동무로 삼으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범죄심리학자인 하라다 다카유키(原田隆之) 쓰쿠바대 교수는 NHK에 “자살이 목적이지만, 사회의 주목을 더 모아서 더 큰 것을 저지르겠다는 왜곡된 심리”라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범인의 연령에 의문을 표하고 있다. 확대 자살은 공격성이 가장 높은 연령대인 20~30대가 많은데 범인은 50대다. 왜 지금까지 이런 ‘마이너스 에너지’를 쌓아온 걸까. 그는 오랫동안 취직을 하지 않으면서 함께 살던 고령의 삼촌 부부와도 거의 대화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중장년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라는 데 방점이 찍히고 있지만, 히키코모리를 ‘범죄예비군’으로 보는 편견을 조장한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일어나자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선 가와사키시에 적지 않은 재일한국인(조선인)이 산다는 점 등을 근거로 “범인은 재일조선인”이라는 유언비어가 확산됐다. 흉악 범죄나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나오는 ‘헤이트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 혐오 발언)’가 반복된 것이다. 2011년 3월 동일본 대지진, 2016년 4월 구마모토 지진 이후에도 이런 악성 루머가 퍼졌다. 일본 사회에 잠복해 있는 ‘민족 차별’이 또 얼굴을 내민 셈이다.


지난 3일은 일본에서 헤이트스피치 억제법을 실시한 지 3년째를 맞은 날이다. 이 법은 시행 이후 헤이트 집회가 감소하는 등 일부 효과에도 불구하고 이념법의 한계가 지적돼 왔다. 지난달 29일 참의원 의원회관에서 열린 집회에서 저널리스트 야스다 고이치(安田浩一)는 “법 시행 이후에도 헤이트스피치는 방임 상태다. 실효성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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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한국에 비해 ‘사건·사고’나 ‘격변’이 많지 않은 나라라고들 말한다. 사회가 안정돼 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반면 한 일본 시민운동가는 변화의 열망이 시들한 일본 사회를 한국과 비교하면서 한숨 쉬기도 했다.  


이런 일본에서 일왕 교체로 인한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은 수십 년 만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사건’임에 틀림없다.(앞선 개원은 30년 전인 1989년 1월에 있었다.) 지난 4월1일 새 연호 ‘레이와(令和)’ 발표부터 4월30일 아키히토 일왕 퇴위, 5월1일 나루히토 일왕 즉위, 4일 일반 국민 참하(參賀·궁에 들어가 축하함)까지 눈길을 끌어모으는 이벤트들이 줄줄이 있었다.  


TV에는 “좋은 시대가 오면 좋겠다”는 식의 시민 인터뷰가 반복해서 나왔고, ‘새 시대’라는 단어가 흔하게 사용됐다. 전·후임 일왕의 일대기, 일왕가 역사 등 왕실 관련 보도도 쏟아졌다. 


공영방송 NHK가 아키히토 전 일왕이 참배한 이세신궁을 소개하면서 “왕실 선조인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神)를 모시는 곳”이라고 보도한 것은 기억해둘 만하다. 신화와 역사를 섞어 일왕을 신격화한 보도 사례였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1일 총리 관저에서 새 연호 ‘레이와’ 선정과 관련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도쿄_EPA연합뉴스


개원 휴일이 포함된 사상 최장의 ‘골든 위크(4월27~5월6일)’가 끝났지만, 들뜬 분위기는 아직 남아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한 70대 여성은 “연호가 바뀐다고 내 생활이 바뀌는 건 하나도 없다”고 했다. 그렇다. 연호가 바뀌었을 뿐이다. 연호가 바뀌었다고 ‘새 시대’가 오는 것도 아니다. 2019년이 2020년이 된다고 ‘새 시대’가 오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렇게 되길 바라거나, 그렇게 여기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졌을 뿐이다. 


개원 열기의 이면에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의 정치적 의도가 깔려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일본 언론들은 고전에서 유래한 새 연호 결정에 아베 총리의 의향이 강하게 반영됐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1989년 ‘헤이세이(平成)’ 연호 발표 때와 달리 총리가 직접 마이크를 잡고 ‘새 시대, 새 일본’을 강조한 것은 정치적 이용에 다름 아니다.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白井聰)는 최근 아사히신문에 “연호 발표부터 개원까지 전개된 것은 이 나라의 폐색감(꽉 막힌 느낌)을 속이기 위한 정치쇼”라고 말했다. 과거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총리는 미디어를 이용한 ‘극장형 정치’ 수법이 탁월했던 것으로 평가받는다. 그의 정치적 제자인 아베 총리도 못지 않다.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두는 데는 일본 왕실만한 무대장치는 없다. 


개원 열기와 함께 아베 정권의 발목을 잡던 통계부정 문제는 쏙 들어갔다. 모리토모·가케학원 스캔들 등 아베 정권의 각종 의혹들이 뚜렷한 진상 규명 없이 덮인 것과 마찬가지 패턴이다. 


공교롭게도 개원과 함께 아베 총리는 ‘전제조건 없는 북·일 정상회담’을 공언하고 나섰다. 지난해 “대화를 위한 대화는 의미가 없다”던 모습을 생각하면 격세지감이다. 실제 교섭이 진행되고 있다기보다 북한과의 대화 국면에서 일본만 빠져있다는 비판을 의식해 ‘뭔가 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한 정치쇼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개원에 이어 국민들의 눈과 귀를 잡아끄는 효과는 있을 것이다. 이런 정치쇼를 계속 연출하는 게 장수 정권의 비결일 지도 모르겠다.


아마 아베 정권은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감바로(힘내자)” 분위기를 끌어올릴 것이다. 하지만 정치쇼에 국가와 시민사회의 근간들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들은 새겨들을 만하다. 극장형 정치는 자유로운 의사 표현과 진지한 토론을 사라지게 한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지난 11일자 사설에서 “(아베 총리가) 정중한 설명도 없이 태도를 뒤집는 것은 지금까지도 봐온 광경”이라면서 “설명 없는 방침 전환은 위험하다”고 밝혔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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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일 밤(한국시간) ‘인류 사상 첫 블랙홀 관측’ 소식이 전 세계에 타전됐다. 세계 13개 연구기관, 200명 이상의 연구자가 참가한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EHT)’ 프로젝트팀이 처녀자리 은하단에 있는 M87의 중심부에 존재하는 블랙홀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한 것이다.    


이번 관측은 블랙홀 연구의 새 장을 연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 언론도 이를 비중있게 보도하면서 ‘한국도 참여’라는 대목을 빼놓지 않았다. 역사적인 프로젝트에 한국도 이름을 올렸다는 것이다. 


사정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주요 신문들은 11일자 조간 1면에 이 소식을 전하면서 ‘일본 국립천문대를 비롯한’ 국제연구팀의 성과임을 강조했다. 그런데 보수·우익 성향 <산케이신문> 제목이 묘했다. ‘블랙홀 포착’ 제목 밑에 ‘세계 최초 국립천문대팀 촬영’이라는 소제목을 달았다. 이번 성과를 오롯이 일본의 ‘위업’으로 오인하게 할 제목이다.


오는 30일 퇴위하는 아키히토 일왕 부부가 지난해 12월23일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도쿄 왕궁에 모여든 시민들에게 손을 흔들고 있다. 도쿄_로이터연합뉴스


일본을 돋보이게 하려는 사례는 또 있다. 이번 관측을 설명한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기자회견장. 미 주간지 <타임> 유튜브 채널에 따르면 일본 NHK 기자가 “이번 건이 엄청난 공동협력이라고 알고 있다. 각국, 특히 일본의 기여에 대해 세부사항을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질문했다. 이 기자가 국명을 밝히자 “잠시 머뭇한 뒤 다른 기자들의 부드러운 웃음소리들이 뒤따랐다”고 일본 영자일간지 <재팬타임스>는 전했다. 


이 기자의 질문에 대해 쉐퍼드 도엘레만 EHT 단장은 “일본은 많은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했다”면서 “중요한 것은 각 나라, 각 지역, 각 그룹, 각 연구소가 그들의 전문지식과 작업들을 갖고 왔다는 것”이라고 답했다. 국경을 넘어 구성된 프로젝트팀이 이룩한 성과에서 ‘특히 일본’의 역할을 찾으려는 기자의 ‘우문’에 ‘현답’을 한 셈이다.


일부 문제로 치부할 지 모르지만, 일본에서 ‘일본 스고이(대단해)론’을 자주 접하는 건 사실이다. <세계가 놀란 일본, 대단하네요>처럼 외국인이 일본을 상찬하는 TV 프로그램이나 서적들이 넘친다. 국제대회에서 일본 선수가 우승하면 “일본인 대단합니다”라는 진행자 멘트가 나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전문가들은 ‘일본 대단해론’이 부상하게 된 것을 일본의 위상과 사회 변화에서 찾고 있다. 1990년대 버블 경제 붕괴, 1995년 한신대지진과 2011년 동일본대지진 등 잇따른 자연재해, 중국의 추월 등에 따른 불안감이 배경이라는 것이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 고도성장을 이뤄내 ‘재팬 애즈 넘버원(Japan as number one·1등 일본)’으로 불렸던 ‘좋았던 그 시절’을 돌아보는 작품이 인기를 얻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이런 국수·복고주의 경향은 앞으로 더욱 짙어질 가능성이 높다. 내달 1일 새 일왕 즉위를 앞둔 ‘개원(改元·연호가 바뀜)’ 열기가 이를 방증한다. 일왕 퇴·즉위 행사는 일왕이 ‘인간신’으로 군림했던 전전(戰前) 회귀를 꿈꾸는 우익들에겐 기회다. 개원 이후엔 6월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9월 럭비 월드컵, 내년‘ 7월 도쿄 올림픽 등 대형 행사들이 대기하고 있다. 2006년 1차 내각 발족 당시 ‘아름다운 나라로’를 내걸었던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은 국수주의를 더욱 부채질할 것이다. 


‘일본 대단해론’의 맞은편엔 혐한·혐중 책이 넘쳐난다.지난 21일 끝난 통일지방선거에선 극우 세력들이 유세에서 혐한 발언을 쏟아냈다. ‘불편한 진실’에는 눈을 감고 자국의 훌륭함만 미화하는 것은 위험하다. 배타주의에 빠지기 쉽다. 과거 일본이 전쟁으로 치달을 때 ‘신의 나라 일본’이나 ‘일본 대단해’ 논리가 넘쳐났다. 하지만 이런 ‘정신승리’가 파국을 막지는 못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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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일본에서 가장 ‘핫’한 단어는 ‘개원(改元·연호가 바뀜)’이다. 오는 30일 아키히토(明仁) 일왕의 퇴위와 5월1일 나루히토(德仁) 새 일왕의 즉위를 앞두고 분위기가 고조되고 있다.


TV에는 아키히토 일왕의 연호인 ‘헤이세이(平成·1989~2019년)’를 돌아보는 프로그램이 넘친다. ‘헤이세이 최후의 ○○’라는 상품 판매도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나루히토 일왕의 연호가 ‘레이와(令和)’로 정해지면서 분위기는 더 달아오르고 있다. 그간 새 연호에 대한 예상이나 설문조사를 연일 보도해온 언론 매체들은 특집을 대거 마련했다. 백화점에선 ‘레이와’ 글자를 새긴 케이크를 판매하는 등 일찌감치 ‘레이와 마케팅’도 벌어지고 있다. 히로히토(裕仁) 일왕 서거에 따라 ‘자숙’ 분위기가 사회 전체를 짓눌렀던 1989년 개원과는 달리 이번에는 일왕의 생전 퇴위로 모두들 마음 놓고 개원을 즐기는 모양새다. 


일본 전통인영 가게인 규게츠의 종업원이 지난 1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오른쪽)와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의 모습을 본뜬 인형 앞에 새 연호인 ‘레이와’가 적힌 팻말을 들어보이고 있다. 도쿄_교도연합뉴스


이런 열띤 분위기는 일왕의 퇴·즉위와 최장 10일 연휴인 ‘골든 위크’가 걸친 4월말·5월초를 정점으로 올해 내내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오는 10월22일에는 새 일왕의 공식 즉위식과 카 퍼레이드가 진행된다. 11월14~15일에는 새 일왕이 국민의 안녕을 신에게 비는 ‘다이조사이(大嘗祭)’가 거행된다. 일왕에게 권위와 신성을 부여하는 의식이다.


세계에서 유일하게 연호와 서력(西曆)을 함께 쓰는 일본에서 연호는 시대를 구분짓는 의미가 강하다. 연호가 바뀌는 것을 한 시대가 끝나고 새 시대가 시작된다고 느끼는 사람들도 많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새로운 연호는 시대를 리셋시킨다”고 했다. 거품 경제 붕괴, 저출산고령화, 격차사회의 확대 등 탈 많았던 헤이세이를 뒤로 하고, ‘새 연호로 새 출발’ 하자는 것이다.  


‘새 연호로 새 출발’를 연출하는 데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정권도 빠지지 않는다. 아베 총리는 1일 이례적으로 직접 담화를 발표하면서 “희망으로 넘치는 새로운 시대를 국민과 함께 열어나갈 것”이라고 했다. ‘일하는 방식’ ‘1억 총활약사회’ 같은 자신의 정책을 거론하는 등 마치 국회 연설 같았다. 정권이 연호 발표를 ‘정치쇼’로 만든다는 지적이 나온다.


하지만 헤이세이의 과제들을 아무 일 없던 듯 지나갈 수 없는 법이다. 최근 교도통신 여론조사에서 ‘헤이세이 뉴스 1위’로 꼽힌 2011년 동일본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사고가 대표적이다. 도쿄전력은 30~40년 후 완료를 목표로 폐로 작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폐로’의 최종 정의조차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일본 언론은 지적하고 있다. 100만t에 달하는 오염수 처리도 문제다. 


연호는 일본 국수주의나 내셔널리즘과 뗄래야 뗄 수 없다. ‘일세일원(一世一元 ·1대에 하나의 연호)’ 원칙은 1868년 메이지(明治) 유신 이후 강화된 천황제 중심 이데올로기 체제의 유물이다. 2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연합군 최고사령부가 군국주의 색채를 이유로 공식 사용을 금지했던 연호를 1979년 원호법 제정으로 부활시킨 것이 현재 일본 최대 우익단체인 ‘일본회의’로 이어지는 세력들이었다. 이들에겐 전전(戰前) 천황제로의 회귀가 염원이다.


일제의 식민지 지배를 경험한 한국으로선 천황제는 불편한 대상이다. 현 히로히토 일왕은 평화주의자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부친 히로히토는 패전 후 ‘상징’적 존재로 연명함으로써 전쟁 책임을 비롯한 천황제의 문제를 애매하게 희석시켰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일본인들이 과거 침략행위를 반성하려 하지 않는 것도 천황제의 존속이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는 지적이다. 원로 작가 호사카 마사야스(保阪正康))는 최근 도쿄신문에 “이번이 천황(일왕)이란 뭔지 냉정하게 주시할 수 있는 기회”라고 했지만, 그런 기회는 좀체 살려지지 않는 것 같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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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우리 부부가 쓰레기 내놓는 걸 계속했으면 나자빠졌을 겁니다.” 일본 지바(千葉)현 나가레야마(流山)시에 사는 한 노인(86)은 지난해 가을부터 시의 쓰레기 배출 지원 서비스를 받고 있다. 현관 앞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넣어두면 청소업자가 매주 1회 무료로 수거해간다. 쓰레기 분리는 도우미가 거들어준다. 그전까지는 집에서 35m 떨어진 쓰레기장까지 가져갔다. 폐기종을 앓고 있는 그에겐 고역이었다.

 

나가레야마시가 쓰레기 배출 지원을 시작한 것은 2012년 4월. 이용자는 100가구에서 140가구로 늘었다. 하지만 이는 65세 이상 인구(약 4만5000명)의 0.4%에 지나지 않는다고 요미우리신문이 18일 전했다.

 

초고령화 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 사회 문제의 하나로 떠오른 것이 ‘고미야시키(쓰레기집)’다. ‘노인대국’ 일본에선 생활의욕 및 근력 저하, 인지증(치매) 등으로 쓰레기를 버리지 못하는 고령자가 늘고 있다.

 

총무성에 따르면 2017년 10월 현재 일본 전체 인구에서 65세 이상 고령자의 비율은 28%로, 이 중 절반가량이 독거노인으로 추정된다. 특히 2036년에는 3명 중 1명이 65세 이상으로 예상되고 있다. 자기 힘으로 쓰레기 처리가 곤란한 고령자가 늘면서 집에 쓰레기가 쌓이고, 고립·소외감을 느끼는 등 지역사회의 고민거리가 되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일본 정부는 이런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고령자에 대한 쓰레기 배출 지원 제도를 확충하기로 했다. 환경성이 전국의 쓰레기 처리 지원 상황을 조사하고 시범사업을 실시한 뒤 지자체를 대상으로 한 운용지침을 내년 3월까지 작성할 예정이다. 일부 지자체들은 이미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다. 정기적으로 고령자의 집을 방문해 쓰레기를 회수함으로써 고독사를 막으려는 목적도 있다. 나가레야마시는 65세 이상 고령자나 장애인 단독세대로 이웃이나 가족의 협력을 얻을 수 없는 경우 시에서 위탁한 청소업자가 집 현관까지 가서 쓰레기를 수거한다. 후쿠시마(福島)시는 시 직원들이 직접 고령자 집으로 찾아가 쓰레기를 버려준다. 센다이(仙台)시는 쓰레기를 수거하는 마을자치회나 자원봉사단체에 1가구당 140엔(약 1420원)을 지원한다.

 

다만 이런 지자체는 전체의 4분의 1 정도이고, 지원 대상도 극소수다. 국립환경연구소의 2015년도 조사에 따르면 고령자의 쓰레기 배출 지원 제도가 있는 지자체는 23%였다. 반면 쓰레기 배출이 곤란한 주민이 늘 것이라고 답한 지자체는 87%에 이르렀다.

인력과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다. 후쿠시마시는 지원 제도를 시작한 2007년에 비해 이용 가구 수가 2.5배인 1000가구로 증가했다. 시 담당자는 “이대로 계속 늘어나면 직원만으로는 손이 모자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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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괜찮았니?”

반 년간의 한국 유학을 마치고 지난 1일 일본에 돌아온 이노마타 슈헤이에게 어머니가 가장 먼저 한 말이라고 한다. “외무성에서 ‘주의’가 나왔다”는 것이다.

 

앞서 일본 외무성은 지난달 28일 ‘3·1운동 100주년 즈음한 데모 등에 관한 주의 환기’라는 제목의 ‘스팟 정보’를 냈다. 한국에 체재 중이거나 갈 예정인 일본인은 데모 등을 피해가고 문제에 휘말리지 않도록 주의를 촉구하는 내용이었다. ‘만에 하나’ 피해를 당하거나 일본인이 피해를 입었다는 정보를 접하면 대사관에 알려달라고도 했다. 

 

이노마타는 “한국이 위험하다”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내용에 석연치 않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한국은 정말 일본인에게 위험한 곳일까. 그는 유학 중 ‘반일(反日) 사상’에 맞닥뜨린 적이 없다고 했다. 위안부 집회 등 ‘반일적’이라는 곳에도 가봤지만, 일본인이라고 위협하는 사람은 없었다. 헤이트 스피치(특정집단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에 접한 적도 없다. 이노마타는 “많은 한국인들은 일본에 대한 증오와 원한을 품고 있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며 “위안부 집회 등도 민족주의를 부추기고, 대상의 전부를 몹시 싫어하는 ‘반일’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라고 전했다. 이어 “뭘 가지고 ‘반일’이라는 걸까. 일본 정부의 방침에 이의를 제기하면 반일일까”라고 의문을 표했다.

 

대학생들이 만드는 인터넷매체 ‘아라타니스’에 실린 글을 소개하는 것은 일본 언론에 보도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분법이나 흑백논리로 사물과 사상을 재단하는 정치인이나 일부 언론보다는 직접 현지를 경험한 대학생의 시각이 더 균형잡혔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지난 1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3·1절 100주년 기념식 본행사가 끝난 뒤 어린이들이 합창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강윤중기자

 

앞서 ‘스팟 정보’와 흡사한 내용을 주장했던 일본 정치인에 대한 일본 누리꾼들의 ‘쿨한 반응’도 마찬가지다. 일본 자민당 나가오 다카시(長尾敬) 중의원은 지난 1월 트위터에 “지금의 한국처럼 상식을 벗어난 나라에 가면 일본인은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한국인에게 무슨 일을 당하는지’ 알려주는 리트윗이 잇따랐다.

 

“식당에 가면 아주머니가 ‘일본인? 이렇게 먹으면 맛있어’라며 고기 굽는 걸 도와주거나, 길을 헤매면 서툰 일본어로 알려줘 너무 힘들어.”

“더 먹으라고 반강제로 리필도 해주고 선물이라며 김치와 한국 김을 담아줬으니 한국에선 정말 뭘 당할지 몰라.”

 

뒤틀리고 선동적인 주장을 그야말로 넌지시 뒤집어서 되돌려준 것이다.

지난해 한·일 간 인적 교류는 사상 최고인 1000만명을 기록했다. 양국 간 정치·외교 갈등에도 불구하고 민간 차원의 교류는 지속되고 있다. 이런 교류가 편향·왜곡된 담론에 휘둘리지 않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헤아려보는 시민의식을 뒷받침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일 저녁 일본 도쿄 신주쿠역 광장에서 일본 우익세력들이 욱일기, 일장기를 흔들면서 ‘한일 단교’, ‘3·1 운동은 폭동’ 등을 주장하고 있다. 도쿄_김진우특파원

 

다만 이런 움직임들이 언제까지 지탱될 수 있을지 우려될 정도로 최근 한·일 관계는 개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에 대한 반감과 갈등을 조장하는 이들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그 사이 일본에선 ‘실언’이나 ‘망언’으로 치부되던 일부의 극단적 주장이 당당히 자신의 자리를 주장하게 됐다. 한·일 일본군 위안부 합의, 징용공 판결, 초계기·레이더 갈등 등 잇따라는 현안을 두고, 모든 게 ‘반일’이라는 한 마디 말로 묶어 한국 때리기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이 말하는 ‘반일’이란 과연 무엇일까. 그들 눈에는 폭력적인 억압과 부조리한 지배에 이의를 제기한 3·1운동을 기념하는 것도 ‘반일’일까. 오히려 ‘반일’ 딱지를 붙이고 증오를 부추기는 것을 경계해야 하지 않을까. 도심 한복판에서 “조선인 나가라” 등 증오·혐오 집회가 버젓이 열리고, 서점에는 혐한(嫌韓) 책들이 경쟁하듯 진열돼 있는 곳에서 새삼 되묻게 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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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해외가 성형이라 너무 불안해요. 차나 식사를 함께 할 수 있으면”, “첫 방한, 첫 나홀로 해외여행이라 불안해요.식사나 DT로 산책 할 수 있는 분은 꼭!”

 

일본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최근 이런 내용의 글들이 잇따르고 있다. 신학기 등이 시작되는 4월을 앞두고 성형수술을 받기 위해 한국을 찾는젊은 여성들이 사전에 정보를 교환하거나 현지에서 함께 지낼 동료를 찾고 있는 것이다. ‘DT’는 수술 후 부기가  빠지기까지의 ‘휴식시간(downtime)’을 의미한다.

 

4일 NHK에 따르면 내달 대학 입학을 앞둔 ㄱ씨(19세)는 이달 중순 한국에 건너가 코와 얼굴 윤곽 성형 , 지방흡입 수술을 할 예정이다. 그는 “첫 해외이고 말 도 모르기 때문에 식사나 상담을 할 수 있는 동료가 있으면 조금은 불안이 없어질까” 생각해  SNS에 글을 올렸다.

 

2013년 8월 서울의 한 지하철역 구내에 성형외과 광고판들이 붙어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모델을 하고 있는 20세 여성은 지난달 한국을 찾아 병원에서 상담을 받았다. 이달 한국에 다시 가서 얼굴 윤곽 성형수술을 받을 예정이다. 그는 “트위터나 설명회 등에서 실제 성형을 받은 사람과 만나 신중하게 결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인을 대상으로 한 무료 상담이나 성형 투어도 성행하고 있다. SNS에서 ‘한국성형투어’ 등을 검색해보면 한국 성형외과나 중개회사가 일본에서의 무료 상담회나 ‘미용성형 투어’ 등을 홍보하고 있는 것이 적지않게 확인된다. 일부 ‘미용성형 투어’에선 일정액 이상의 수술을 받는 고객에겐 항공권·호텔 예약, 공항에서 호텔까지의 환송·배웅을 해주고, 병원 상담시 통역 동석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중개회사에 따르면 일본인 여성은 신년도(4월) 전인 12월~3월 수술을 받는 경향이 있고, 개인 참가가 많다. 눈·코 성형이 인기라고 NHK는 전했다.

 

일본의 젊은 여성들이 성형을 위해 한국을 찾는 이유는 비용이 저렴하다는 점이 우선 꼽힌다. ㄱ씨의 경우 성형비용을 약 100만엔(약 1005만원)으로 예상하고 있는데, 항공비나 체제비를 포함해도 일본보다 10만~20만엔 싸다.  또 한국에선 19세가 성인으로 수술시 부모의 동의가 필요없다는 점도 거론된다. 일본에선 현재 성인 연령은 20세다. 미용성형 투어를 기획하고 있는 한 회사는 “케이팝 아이돌이 일본에서 트렌드인 것도 영향을 주는 것 같다”면서 “상담할 때 한국 여성 아이돌 사진을 갖고 오는 일본인도 있다”고 NHK에 밝혔다.

 

다만 ‘한국 미용성형 투어’에 대한 경계감도 나오고 있다. 소비자 보호를 담당하는 국민생활센터에는 “지금 지불하면 15% 할인, 취소시 예약금 전액 반환이라고 했는데 취소하려니까 한국까지 받으러 오라고 했다” 등의 민원이나 “턱 수술 후 좌우가 비대칭이 됐다” 등 부작용이 보고되고 있다. 일본미용외과학회의 아오키 리쓰(靑木律) 홍보위원장은 “해외의 의사가 끝까지 수술 책임을 지지 않고 실밥 제거를 일본에서 하면 수술 정보가 없어 상처가 커지거나, 언어 문제로 미묘한 뉘앙스를 전하지 못해 수술 결과가 생각과 어긋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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