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세상을 떠난 미국 연방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RBG)는 ‘진보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법조인으로서의 긴즈버그의 삶은 ‘여성 차별과의 투쟁’ 그 자체다. 그의 최대 유산이기도 하다. 변호사 시절은 물론 대법관 시절, 그는 성차별적 법률을 폐지하며 여성권 신장에 앞장서왔다. 연방대법원 구성의 성비 불균형에 대해서도 가차 없이 비판했다. “나는 가끔 질문을 받는다. ‘연방대법원에 여성이 충분할 때가 언제인가.’ 내 대답은 ‘9명 있을 때’이다. 사람들은 놀란다. 하지만 9명 모두 남성이었을 때 아무도 그런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다.” 그의 또 다른 유산은 ‘자신보다 못한 사람과 개인이 아닌 공동체를 위한 삶’이다.


긴즈버그는 ‘노토리어스(악명 높은) RBG’로도 불린다. 그가 대법원에서 “나는 반대한다”고 외치는 것에 감명받은 로스쿨 학생이 유명 래퍼 ‘노토리어스 BIG’에 빗대어 만든 별칭이다. 그때 긴즈버그의 나이는 여든 살이었다. 별칭대로 그는 힙합 스타처럼 유머가 넘치고 활력에 찬 말년을 보냈다.

긴즈버그가 가고, 배럿이 온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긴즈버그가 땅에 묻히기도 전에 그의 후임에 여성 판사 에이미 코니 배럿(48)을 지명했다. 상원 인준을 통과하면 5번째 여성 대법관이 된다. 배럿은 보수주의자의 전형이다. 가정과 일 모두 성공적으로 이끌어왔다. 7명의 자녀 중 두 명이 입양아다. 한 명은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다. 긴즈버그 별칭에 빗대 배럿의 이니셜을 딴 ‘노토리어스 ACB’라고 새긴 티셔츠도 이미 나왔다. 배럿이 자신의 긴즈버그가 되길 바라는 트럼프의 소망이 현실화하고 있는 것이다.

배럿은 긴즈버그를 “유리천장을 깼고, 우리 모두에게 모범”이라고 극찬했다. 하지만 법관으로서의 두 사람의 지향점은 상반된다. 긴즈버그는 “판사는 그날의 날씨가 아닌 시대의 기후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반면 배럿은 “판사는 자신이 가졌을지도 모를 정책적 관점을 배제해야 한다”고 했다. 배럿의 지명은 연방대법원 지형이 보수(보수 6, 진보 3)로 더 기울면서 미국 사회에 엄청난 지각변동을 가져올 것임을 예고한다. 긴즈버그의 유산이 훼손되는 일은 시간 문제가 됐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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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싼허(三和)청년들은 하루 일해서 번 돈으로 사흘간 논다. 싼허청년은 선전시 싼허인력시장에 모이는 20∼30대 농민공을 뜻한다. 인력시장에서 택배배달, 경비, 건설노동 등 일용직을 구한다. 매일 출근을 싫어하기 때문에 월급 주는 직장을 원치 않는다.

그러나 싼허청년을 깊숙이 들여다보면 중국의 사회 문제가 수십년간 얽히고설키면서 탄생한 ‘괴물’이라는 정체가 드러난다. 톈야라는 작가가 6개월간 싼허청년과 합숙하면서 쓴 <어찌 집이 그립지 않겠나 : 싼허청년 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착취와 압박, 차별 때문에 정규직을 갖기 싫어한다. 개혁·개방 이후 산업화 과정에서 농민공에 대한 비인간적 대우와 차별은 심각했다. 최저 임금에도 못 미치는 돈을 받으면서 하루 12시간씩 공장에서 일했다. 공장이 제공한 숙소에서 사는 이들에게 출퇴근 경계도 모호했고 개인생활도 없었다.적게 벌고 적게 쓴다. 하루에 2만5000원 정도 벌어 850원짜리 국수로 끼니를 때우고, 2500원짜리 숙소에서 잠을 청한다. 하루 일해서 번 돈으로 며칠씩 게임을 하거나 동영상을 보며 논다. 1990년대에서 2000년대 사이에 출생한 싼허청년들은 이전 농민공들과는 확연히 구분된다. 1980년대와 1990년대 고도 경제성장시기에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농민공들은 악착같이 번 돈으로 고향에 있는 가족들을 부양하고 내집 마련의 꿈을 꿨다. 그러나 싼허청년들은 철저히 자신을 위한 소비를 한다. 저축 대신 복권을 산다. 개인주의적 성향, 미래보다 현재에 몰두하는 생활 같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이 드러난다.

싼허청년들은 공장의 엄격한 관리 속에서 일하는 것을 증오한다. ‘공장 권력’이 정한 불공정한 임금, 열악한 근무 환경을 버티지 못한다. 싼허청년들은 부당한 대우에도 적극적으로 항의한다. 인력중개 업소가 수수료를 떼는 행위를 하면 건물 옥상에 올라가 투신 소동을 벌인다고 한다. 실제 투신할 의도보다는 빠른 해결을 위한 방책에 가깝다.

밀레니얼 청년들의 노사관계에 대한 인식은 성장했다. 그러나 중국의 법과 제도가 노동자들을 보호할 장치를 충분히 마련하지 못하자 어쩔 수 없이 일용직의 삶을 택한 것이다.

대다수 싼허청년들은 농민공의 자녀들이다. 부모들이 돈 벌러 도시로 나가면서 고향에 홀로 남겨졌다. 조부모 밑에서 성장한 경우도 있고, 방치되다시피 한 이들도 있다. 부모가 일하러 도시로 떠나 농촌에 홀로 남겨진 이른바 ‘유수(留守)아동’들은 현재 6102만명을 넘는다. 부모와 떨어져 성장한 이들은 가족에 대한 애착이 적다. 도시에 친척이 있더라도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 곰팡이 피고 바퀴벌레가 기어다니는 숙소라도 혼자 있는 게 편하다.

농민공들이 삶을 바꾸기 위해 도시로 나와 일했지만 이들은 자녀 세대의 삶을 바꾸지는 못했다. 후커우(호적) 제한으로 가로막힌 이들은 도시 밑바닥을 전전했다. 그리고 가난은 대물림 됐다. 이들의 자녀는 어려서는 유수아동, 커서는 싼허청년이 됐다.

싼허청년이 탄생한 선전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 같은 도시다. 가난한 어촌이었던 이곳이 경제특구로 지정된 지 올해로 꼭 40년이다. 40년 동안 경제 규모가 1만배 넘게 성장한 이 도시는 아직도 농민공들은 품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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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6일 제99대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왼쪽에서 세번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연합뉴스

지난 16일 제99대 총리로 선출된 스가 요시히데 자민당 총재가 아베 신조 전 총리(왼쪽에서 세번째)를 향해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도쿄|교도연합뉴스

일본의 전통 인형극 분라쿠(文樂)를 공연하는데 ‘구로고(黑衣)’는 필요불가결한 배역이다. 검은 옷으로 전신을 가린 채 인형을 뒤에서 붙잡고 조종하거나 무대에 소도구를 옮기는 역할을 하는 이가 구로고다. 관객들은 극에 집중하기 위해 구로고를 ‘없는 것’으로 간주한다. 구로고 덕분에 인형들은 인간 못지않은 섬세한 동작을 펼쳐보일 수 있다. 과거 일본 정치도 총리(인형)를 실세 정치인과 관료들이 뒤에서 조종하는 ‘구로고 정치’였다.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자기 파벌을 움직이며 막후에서 실권을 휘두르는 상왕(上王)들이 드물지 않았다. 1972년부터 2년 반 총리를 지낸 뒤에도 10년 이상 일본 정계를 주무른 다나카 가쿠에이가 대표적이다. 다나카는 1982년 나카소네 야스히로가 총리에 오르는 데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했고, 이 때문에 ‘다나카소네 내각’으로 불리기도 했다.

아베 신조 총리의 뒤를 이은 스가 요시히데 내각에도 ‘상왕 아베’ 정치의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스가 내각의 각료 20명 중 11명이 아베 정권 인물로 채워졌고, 아베 친동생은 방위상에 기용됐다. 스가 총리 스스로 외교정책에서 아베의 조언을 구하겠다고 했고, 아베는 각국 정상과 쌓은 친분을 활용해 외교특사로 나선다고 했다. 외교·안보에서는 아베가 총리 시절과 다름없는 영향력을 행사할 기반이 마련된 셈이다.

아베가 총리에서 물러난 지 사흘 만인 지난 19일 야스쿠니 신사를 전격 참배했다. ‘퇴임 사실을 영령들에게 보고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총리 ‘견장’을 떼자마자 주변국 눈치 볼 것 없이 ‘우익 본능’을 한껏 펼치고 있다. 그의 참배에 일본의 보수우익들은 후끈 달아올랐다. 아베의 소셜미디어에는 “(총리로서) 세번째 등판을 강하게 기대한다”는 댓글도 달렸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2000~2008년 대통령직을 연임한 뒤 3연임 금지조항에 막히자 측근 메드베데프에게 대통령 자리를 맡기고 총리로 내려앉았다가 복귀했다. 내각책임제인 일본에서는 총리 횟수에 제한이 없다. 초대 총리인 이토 히로부미가 퇴임과 재취임을 반복하며 4차례 재임한 전례도 있다. 아베의 야스쿠니 참배가 세번째 총리 등극 플랜의 출발점일지 모른다.

여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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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시사주간지 타임의 상징은 ‘붉은색 표지 테두리’다. 창간 4년 뒤인 1927년 도입돼 2001년 ‘9·11 테러’ 전까지 예외 없이 지켜졌다. 9·11 직후 제작된 호외판 테두리는 검은색이었다. 희생자를 애도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정규호 테두리는 다시 붉은색으로 돌아왔다. 그 후 표지 테두리에는 녹색과 은색도 등장했다. 녹색은 2008년 ‘지구의날’ 기념호에서 처음이자 유일하게 쓰였다. 은색은 9·11 10주기에 처음 등장했고,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올해의 인물’(2012년)로 선정했을 때, ‘역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진’을 선정(2016년)했을 때까지 세 차례 선보였다.

 

타임의 파격적인 편집은 표지 테두리 색깔 변경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지난 5월 말에는 처음으로 테두리에 문자가 들어갔다. 백인 경관의 무릎에 목이 눌려 숨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건을 다루며 붉은색 테두리에 흑인 35명의 이름을 넣었다. 플로이드를 비롯해 경찰의 인종차별적 공권력 남용에 희생된 사람들이다. 타임은 인류나 미국의 적이 사망했을 때 그들의 얼굴에 붉은색으로 ‘X’자를 긋는 편집도 마다하지 않았다. 아돌프 히틀러(1945년), 오사마 빈라덴(2011년) 등 모두 다섯 차례 있었다.

 

타임 표지 테두리에 9·11 이후 처음으로 검은색이 둘러졌다. 미국의 코로나19 사망자수 20만명을 앞두고 제작된 미국판 최신호(9월21·28일자)다. 검은색 표지 바탕엔 흰색 굵은 글씨로 ‘200,000’이란 숫자가 큼직하게 적혀 있다. 그 밑엔 첫 사망자가 나온 2월29일부터 최신호 제작 직전인 9월8일까지 날짜와 사망자수가 깨알처럼 쓰여 있다. 하단엔 붉은색으로 ‘미국의 실패’라고 작게 쓴 글씨를 배치했다. 에드워드 펠센탈 타임 편집장은 “미국은 곧 코로나19 사망자가 20만명이라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지점을 넘어선다”고 밝혔다. 베트남전에서 교전 중 사망한 병사수보다도 세 배 이상 많은 숫자다.

 

13일 현재 미국인 사망자는 19만8000여명이다. 이 표지를 만든 아티스트 존 마브로디스는 “이번 표지가 대참사에 무감각한 이들에게 주의를 촉구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언젠가 코로나19 종식이 선언되는 날, 타임은 표지 테두리에 어떤 색깔을 입힐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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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대학 대학원에 다니면서 학부과정 헌법 수업을 들었다. 수업시간표에 강의실이 900번 교실이라 적혀 있었다. 처음 이곳에 들어서는데도 눈에 익었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와 도쿄대 전공투가 토론을 벌인 50년 전 그 장소다. 이 토론회는 전공투가 제안하고 미시마가 수락했다. 극우와 극좌로 불리는 미시마와 전공투는 일본 사회를 변혁한다는 같은 목표가 있었다. 토론회를 앞두고 “미시마를 논파하여 연단에서 자결케 하라”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양측은 서로를 설득하지도, 일본 사회를 설득하지도 못했다. 이듬해 전공투는 사라졌고 미시마는 할복했다.

 

미시마가 죽은 1970년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 김윤식이 도쿄대학 외국인 연구원으로 있었다. 미시마 죽음에 관한 평론을 한 편 썼는데, 세월이 흘러 괜한 일을 했다고 적었다. “미시마라는 작가가 절복을 했든 말든 나는 공동묘지와 같은 도서관에 죽치고 앉아 내 몸을 죽은 자에게 빌려 주고, 그들을 잠시 살려내어 대화나 하면 되지 않았을까. (중략) 그러나 나는 그렇지 못했다.” 사고가 아닌 느낌을 써서라고 했다. 마르크스주의 여성학자 우에노 지즈코도 인용했다. “나는 연구자인 까닭에 사고하는 것은 팔아먹지만 느낀 것은 팔아먹지 않는다”는 글이다.

 

미시마는 쿠데타를 계획하고 자위대를 선동했으나 실패하자 자살했다. 이를 문학적 죽음이라 부르던 이들에게 이의를 말한 도쿄대학 법학부 교수가 있다. 사카모토 요시카즈는 “본래 정치적 의미를 가진 행위를 전적으로 문학이나 미학의 차원으로 비정치화하는 것 자체가 정치적”이라고 했다. 이에 김윤식이 “사카모토 교수의 비판의 예리함을 내 나름으로 엿본 것은 지금 생각해도 통쾌하다”며 “학문이란 정치적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 앞에 서서히 잠겨들었다”고 기억했다. “그 덕분에 <한국문학사>(1973, 김현 공저) 집필에서 정치·사회경제사의 중요성을 도입할 수 있었다”고 했다.

 

도쿄대학 법학부 헌법판례 교재에 미시마 이름이 나온다. ‘필명 미시마 유키오로 알려진 피고 히라오카 기미타케’라고 시작한다. 실존 정치인과 전부인이 모델인 <연회는 끝나고> 사건이다. 1964년 1심에서 미시마에게 손해배상금 80만엔이 선고됐다. 이후 정치인이 죽었고 유족이 미시마와 합의했다. 이 판결은 유미리의 <돌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출판 금지하는 2002년 최고재판소 판결로 이어진다. 도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미시마는 자결 1주일 전 인터뷰에서 “그 판결 이후로 재판이란 걸 믿지 않게 됐다”고 했다. 대장성 관료 출신인 그는 이때 제도언어를 더욱 불신하게 됐다.

 

미시마와 전공투 토론회를 다룬 기록영화가 최근 개봉했다. 미시마가 말한다. “나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으로 태어나 일본인으로 죽는다. 이 한계를 벗어나고 싶지도 않다. 이런 나를 가엽다 여길 테지만.” 전공투가 묻는다. “그렇다. 측은하다. 국적 같은 건 당초 있지도 않았다.” 미시마가 답한다. “자넨 국적이 없을 테지. 자유인인 자네를 존경한다. 그렇지만 내겐 국적이 있고 일본인에서 못 벗어난다. 숙명이다.” 이제 초로(初老)인 전공투 멤버는 “사람과 사람 사이 매개로 언어가 힘을 가진 마지막 시대였다”고 했다. 논쟁이 난무하는 한국과 토론이 사라진 일본 사이에서, 미시마를 생각한다.

 

<이범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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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8일 전격 사의를 표명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의 후임으로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이 부상하고 있다. 스가 장관은 2012년 ‘제2차 아베 정권’ 출범 때부터 관방장관을 맡아 내각 운영을 총괄해온 핵심 인사인 만큼 아베 총리의 공백을 메울 적임자라는 평가들이 나오고 있다고 한다. 일본 정부에서 내각관방은 총리를 보좌·지원하는 조직으로, 정부 주요 정책의 기획, 조정 및 정보 수집 등을 담당한다. 그 수장인 관방장관은 국정 현안을 해당 부처 및 여당과 조율하고, 현안에 대한 정부의 공식 견해를 발표한다. 한국으로 치면 대통령비서실장, 정책실장과 대변인을 합친 막중한 자리다. 2014년에는 내각 인사국이 설치되면서 관방장관이 각 부처 국장급까지의 인사권을 쥐고 있다. 본래 관방(官房)은 군주의 측근이 사무를 보는 방이라는 뜻으로, 근대화 초기 일본이 프로이센의 관료제도를 차용하면서 도입된 직제다. 옛 공산권의 서기국, 비서국과도 닮은 데가 있다.

 

관방장관은 총리가 자리를 비웠을 때 국정상황을 챙기기 때문에 해외 출장을 가는 일이 드물다. 총리와 관방장관이 함께 도쿄를 비우는 일도 거의 없다. 지난 30년간 관방장관이 해외출장을 간 경우는 단 4차례에 불과할 정도다. 이 때문에 지난해 5월 스가 장관이 나흘간 미국 방문에 나서자 ‘포스트 아베’를 염두에 둔 행보라는 관측이 나오기도 했다.

 

관방장관은 매일 기자회견에 등장하는 만큼 언론 노출도 면에서 총리를 능가한다. 일본 정가에서는 총리의 ‘등용문’으로 통하고, 실제로 관방장관 출신 총리도 적지 않다. 아베 총리의 외종조부였던 사토 에이사쿠 총리를 비롯해 오히라 마사요시, 스즈키 젠코, 다케시타 노보루, 미야자와 기이치, 오부치 게이조, 후쿠다 야스오 총리 등이 관방장관을 거쳤다. 아베 총리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밑에서 관방장관을 지낸 바 있다.

스가 관방장관이 새 총리가 될 경우 국정의 안정을 꾀할 수는 있겠지만, 아베 정권의 공동운영자였던 만큼 개혁에 나설 가능성은 낮다. 아베노믹스와 코로나 대책에 대한 국민 피로감을 감안할 때 롱런 가능성도 불투명해 보인다. 안정이냐 개혁이냐의 갈림길에서 일본이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서의동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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