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일본이 진정으로 반성하고 사죄한다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없으면 안 되는 것인가. 반대로, 일본이 반성은 제대로 하지 않더라도 법적으로 배상만 하면 위안부 문제는 해결되는 것인가. 한·일 갈등의 핵심요소인 위안부 문제는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이 전부인 것처럼 인식된 지 오래다. 


인류 보편의 가치를 짓밟은 위안부 문제를 법적으로만 해결하려는 이 상황은 지독한 역설이자 한·일 모두의 불행이다. 


법은 인간사회의 가치체계에서 가장 하위의 개념이다. 특히 동양적 사고체계에선 가장 정점에 있는 ‘성(聖)스러움’을 인간들이 실천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현실적 의미를 담아 구체화할 때 정의-도덕-예의-법의 순서로 내려온다. 정의는 인간이 지향해야 할 가치이며 도덕은 누구나 갖춰야 할 덕목이다. 예의가 없으면 비난을 받게 되고 법마저 지키지 않는다면 사회적 계약에 따라 처벌받는다. 법은 인간이 지켜야 할 행동의 최소한일 뿐이다.


도의적 책임은 있으나 법적 책임은 없다는 일본의 주장은 “천벌 받을 짓은 했으나 사람에게 벌 받을 짓을 한 것은 아니다”라는 말과 같다. 


인류 보편적 가치 짓밟은 범죄

법적 책임 여부로만 해결 안 돼

시민단체에 휘둘린 정부는 방치

천덕꾸러기 된 위안부 문제

도덕적 우위 회복으로 

뒤틀린 정의 바로잡아야


법적 책임이 없다는 근거를 찾기 위해 청구권협정 문구를 머리칼 쪼깨듯 잘라 해석하는 것은 일본이 위안부 문제에서 취해야 할 태도가 아니다. 아무리 세월이 흐르고 천지가 개벽한다고 해도 절대 정당화될 수 없는 반인도적 행위를 자신들이 했다는 사실을 엄중히 받아들이는 것이 먼저다. 한국도 배상이 아니라 이 부분을 명확히 하는 것에 최우선 순위를 뒀어야 한다.


한국이 처음부터 법적 배상을 요구한 것은 아니다. 김영삼 정부는 금전적 배상을 요구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은 한국 정부가 알아서 할 테니 일본은 은폐하지 말고 진상을 조사해 이를 역사에 남김으로써 후세를 교육하라는 것이었다. 피해자인 한국의 의연한 태도에 일본은 더욱 위축됐다. 일본이 위안부 동원의 강제성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낸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부는 이 같은 위안부 문제 해결 원칙을 끝까지 유지하지 못했다. 시민단체와 일부 피해자의 주장과 국민 감정을 거스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는 학계와 시민단체가 위안부 문제를 파헤치고 세상에 드러낼 때까지 회피·외면으로 일관해왔다. 이 때문에 정부는 이 문제에 관한 한 ‘용기 있는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었다. 위안부 문제의 주도권이 시민단체에 넘어가고 정부가 이들이 주도하는 위안부 운동 방향과 여론 조성에 휘둘리게 된 것은 어쩌면 정부의 업보인 셈이다. 


특히 이 문제를 법적으로 해결하라는 2011년 헌법재판소 결정은 상황을 결정적으로 바꿔놓았다. 노무현 정부가 위안부 문제는 청구권협정으로 해결되지 않았다는 공식 입장을 정하고도 일본과 법적 해석 차이를 해소하려는 시도를 하지 않는 것은 위헌이라는 결정이다. 이 결정으로 정부는 한·일관계의 아킬레스건인 청구권협정의 법적 해석을 놓고 일본과 정면승부를 해야 하는 상황에 몰렸고, 그 결과는 2015년 박근혜 정부의 한·일 위안부 합의로 이어졌다.


문재인 정부는 2015년 합의를 통렬히 비판하고 이행을 거부했지만 파기할 수는 없었다. 재협상을 해도 법적 책임 인정과 배상을 얻어낼 수 없음을 알기 때문이다. 정부가 2015년 합의를 이행도 파기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허공에 띄워놓자 피해자들은 다시 헌법재판소로 달려갔다. 하지만 헌재는 2011년 결정 때와는 달라진 태도를 보이며 “이 문제는 위헌심판 대상이 아니다”라고 각하 결정을 내렸다. 


정부는 미해결 상태로 방치하고, 헌재는 골치 아픈 문제를 갖고 오지 말라 하고, 상징적 시민단체의 대표는 국회의원으로서 정계로 진출해버리고, 가해자 일본은 한국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이 위안부 문제를 30년간 끌고온 한국이 현재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이다. 


위안부 문제는 이렇게 아무도 손대지 않으려는 천덕꾸러기로 만들어놓고 끝낼 사안이 아니다. 지금 할 수 없다면 다음 정부, 앞으로 ‘환골탈태’된 시민단체, 이 문제의 본질을 직시할 수 있는 국민들이 바로잡아야 한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위안부 문제에서 실종돼 버린 한국의 ‘도덕적 우위’를 되찾아 오는 것이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6일 오후 개성 공동연락사무소 청사가 폭파되고 있다. 국방부 제공


북한이 16일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전격 폭파했다. 조선중앙TV는 이날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완전 파괴하는 조치를 이행했다”고 폭파 사실을 확인했다. 이로써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 간 합의에 따라 문을 연 사무소는 1년9개월 만에 사라졌다. 일방 철거는 엄연히 남북 합의 위반이다. 게다가 문재인 대통령이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을 맞아 소통과 협력으로 문제를 풀자고 한 지 불과 하루 만이다. 청와대가 “강력한 유감”을 표명하고 “북측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조치를 취할 경우 강력히 대응할 것임을 엄중히 경고한다”고 밝힌 것은 당연하다.


이날 폭파는 북한이 최근 밝힌 대남 적대선언을 행동으로 옮기기 시작했음을 뜻한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고 한 지 사흘 만에 실행에 옮겼다. 앞서 인민군 총참모부는 이날 남북 합의로 비무장된 지역에 군대를 투입할 가능성을 예고했다. 북한의 공세가 계속될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북한이 언급한 군대 파견 비무장화 지대는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지역인 것으로 보인다. 또 지상·해상·공중 완충 구역 내 군사 활동 재개와 공동경비구역(JSA) 근무병 총기 휴대, 철거된 비무장지대(DMZ) 내 감시초소(GP) 복구도 거론된다. 


만일 북한이 예고한 대로 개성공단 지역에 군대가 재배치된다면 이는 남북관계의 결정적인 퇴조가 될 것이다. 과거 2003년 12월 개성공단 착공 전까지 이 지역에는 북한의 전차와 자주포, 방사포로 무장한 사단과 포병여단이 주둔했다. 금강산 지역에도 관광특구가 되기 전 잠수정과 전차, 방사포 기지가 있었다. 이 때문에 개성과 금강산 지역에서 군대를 빼내 평화지대로 만드는 과정에서 북한 군부가 크게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개성공단·금강산 지역이 다시 요새화하면 완충지대가 사라져 전방 지역 긴장 고조는 불 보듯 뻔하다. 남북 협력의 상징인 개성과 금강산을 첨예한 군사 대결의 장으로 되돌려서는 안 된다. 


더욱 우려되는 것은 9·19 군사합의 파기다. 이 군사합의는 남북 정상이 세 차례 정상회담을 통해 합의한 한반도 평화와 긴장 완화의 가장 중요한 장치다. 그동안 남북 간 군사적 충돌을 방지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왔다. 따라서 군사합의 파기는 남북이 어렵게 이룬 합의와 신뢰를 하루아침에 물거품으로 만들 뿐 아니라 남북을 대결시대로 회귀시킨다. 북한이 군사합의를 파기해서는 절대 안 되는 이유이다.


북한이 강경 행동에 나선 것은 대북 제재에 코로나19 창궐까지 겹치면서 전에 없는 경제난에 봉착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으로서는 북·미 하노이 핵 담판 실패 후 높아진 내부 불만에 대해 단속을 강화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11월 대선을 앞둔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을 움직이려는 ‘벼랑 끝 전술’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 등 이런 식의 행동은 북한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북한의 모험적 행동은 한·미 양국의 운신을 더 어렵게 할 뿐이다. 북한은 추가 행동을 멈춰야 한다. 정부도 북한의 돌발적인 군사행동에 대비해 대북 감시·대비 태세를 강화해야 한다. 상황을 냉철하게 관리하면서 북한을 다시 대화 테이블로 끌어들일 수 있는 모든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몇 년 동안 선거의 공정성, 사법부 독립, 부패 억제 안전장치에 대한 압박을 포함해 민주적 규범과 기준들을 훼손하려는 노력 때문에 문제가 더욱 심각해졌다. 언론, 법의 지배 그리고 민주주의를 떠받치는 다른 기둥들에 대해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들이 퍼부은 사나운 언어를 동원한 공격은 이 나라가 다른 정부들을 향해 핵심적인 인권과 자유를 지키라고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훼손했으며, 오히려 독재자들과 선동가들이 적극적으로 악용하는 데 활용됐다.”


미국의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 3월 발표한 ‘2020 세계자유보고서’의 한 대목이다. 이 단체가 심각한 어조로 평가한 대상은 남미나 동유럽, 혹은 동남아의 어느 나라가 아니다.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내세우는 미국이 주인공이다. 미국 정부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지만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비정부기구를 자처하는 프리덤 하우스는 매년 전 세계 국가들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점수로 환산해 순위를 매기는데, 미국 정부는 인권과 민주주의 후진국들을 압박할 때 프리덤 하우스의 평가를 자주 인용해 왔다.


민주주의의 후퇴 징후는 미국만의 현상은 아니지만 최근 벌어진 사건 몇 가지만 봐도 미국 민주주의가 세계의 걱정거리가 됐다는 말이 과장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코로나19로 타격을 입은 미국에선 야당인 민주당이 오는 11월 동시에 치러지는 대선과 총선거를 앞두고 유권자들의 안전과 투표권 보장을 위해 우편투표를 확대하자고 주장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여당인 공화당은 한사코 거부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위증 혐의로 기소된 자신의 측근 마이클 플린의 유죄 판결이 임박하자 ‘정치판사’가 편향적인 판결을 하고 있다면서 사법부를 수시로 공격한다. 심지어 윌리엄 바 법무장관은 플린에 대한 기소 취하를 일선 검사들에게 종용해 담당 검사들이 집단 사퇴했다. 그리고 예산 및 권한 남용과 부패를 감시하기 위해 행정 각부에 임명된 감찰관들이 트럼프 대통령의 심기를 거슬렀다는 이유로 줄줄이 잘려 나갔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가 백인 경찰관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진 사건 역시 인종 차별 실태를 충격적인 방식으로 드러냈다. 이 사건을 항의하기 위해 워싱턴 백악관 근처에 모여 평화롭게 시위를 벌이던 군중을 군경이 무력을 동원해 진압하는 장면도 미국의 경계를 넘어 전 세계적 공분을 자아냈다.


미국인들은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해법을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 최근 갤럽 여론조사에서 미국인이라는 것이 ‘극도로 자랑스럽다’거나 ‘매우 자랑스럽다’고 답한 비율이 2001년 이후 최저로 떨어졌다는 사실은 미국인들이 느끼는 당혹감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해법은 단순하다. ‘민주주의의 후원자’를 자처한 그들이 그간 권위주의 국가와 민주주의 후진국에 해왔던 조언과 요구를 스스로 실천하면 된다. 앞서 인용한 프리덤 하우스 보고서에 나온 선거의 공정성과 사법부 독립, 부패 억제, 법의 지배, 언론 자유 확대를 비롯해 소수자의 권리와 평등 보장 같은 것들이다. 관건은 민주주의의 교사를 자처해온 미국이 민주주의를 배우는 학생으로 돌아가려는 겸손함과 유연성을 발휘할 수 있느냐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