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6월은 매우 특별한 달이다. 15일은 6·15 남북공동선언 20주년이고, 25일은 6·25전쟁 발발 70주년이다. 70년 전인 1950년, 강대국들 간의 동서냉전이 그들이 갈라놓은 한반도에서 6·25전쟁으로 터졌다. 우리 민족은 대량 학살당하고 ‘불신과 대결’의 질곡 속에서 반세기를 살아오다 2000년 6월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과 6·15 남북공동선언을 통해 ‘화해와 협력’으로의 대전환을 이뤄냈다.


오늘 우리는 6·15 공동선언 20주년을 맞는다. 6·15 공동선언의 의의는 무엇이며, 그것이 현재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시사점은 무엇인가? 올 6월 들어 심각하게 악화되고 있는 남북관계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가?


6·15의 핵심적인 의의는 공동선언 제1, 2항에 잘 나타나 있다. 첫째, 남북한은 한반도 통일문제의 ‘주인’으로서 서로 협력하여 ‘자주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해나가자. 둘째, 무력통일이나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일’만이 유일한 통일의 길이고, 통일은 ‘과정’으로 이뤄나가되, 현재의 통일단계는 ‘연합제’ 단계이다. 이러한 공동 인식을 바탕으로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해나가자는 것이었다. 


위의 의의가 중요한 이유는 우리가 1945년 남북 분단 이후 고통받아온 ‘한반도 문제’를 남북한이 협력해 해결하기 위해서는, 상호 경쟁자인 남북한 간에 통일의 현주소와 방안에 대해 공동인식과 합의를 갖는 것이 무엇보다도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공동인식과 합의 없이는, 민족 화해와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평화 정착 등에 대해 진정성을 갖고 논의하기도 어렵고 합의를 제대로 실천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불신·대결에서 화해·협력으로 

2000년, 남북의 역사적 대전환 

이후 2018년 9·19군사합의까지 

믿음 위에 이뤄진 서로의 ‘약속’ 

근본적 열쇠는 언제나 ‘신뢰’다


한편 한반도 문제는 민족문제와 국제문제가 결합되어 있어 자주성(민족주의)과 국제성(국제주의)의 힘이 함께 작용하고 있다. 2000년 6월 남북 지도자들은, 국제질서는 기본적으로 강대국 이익 중심의 질서임을 인식하면서 통일문제 등 우리의 운명은 당사자인 우리가 주도적으로 해결해나간다는 ‘자주’의 원칙에 합의했다.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민족이 최초로 자신의 문제를 자신의 손으로 해결하는 기회를 갖게 됐다는 것을 6·15의 가장 중요한 의의와 성과로 꼽기도 했다.


김 대통령에게 있어 자주는 ‘민족 대 외세’라는 기계적인 이분법에 얽매인 ‘배타적 자주’가 아니라, ‘민족 공조를 바탕으로 주도적으로 국제공조를 확보’해나가는 ‘열린 자주’였다. 회담 초기에 배타적 자주를 주장했던 김정일 국방위원장도 결국 열린 자주에 동의했다.


그렇다면, 6·15가 현재 우리에게 주는 정책적 함의는 무엇인가? 그것은 6·15 이후 역사상 유례없는 폭과 깊이로 진행된 남북관계 개선, 한반도 전쟁 위협 완화와 평화프로세스는 다름 아닌 위에서 설명한 6·15의 ‘약속’ 위에서, 보다 직접적으로는 그러한 약속을 한 상대방에 대한 ‘신뢰’, 상대방이 약속을 지키리라는 ‘믿음’ 위에서 이뤄졌다는 것이다. 그 덕분에 역사적인 6·15시대가 열렸던 것이다.


최근 탈북민 단체의 대북전단 살포와 북한의 강력한 반발로 인해 남북관계가 문재인 정부 들어 최악의 상황으로 빠져드는 모습이다. 북한은 대남사업을 철저히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면서, 정상 간 핫라인, 군사통신선 등 남북 간 모든 통신선을 끊었다. 남한 정부에 대한 ‘신뢰’가 산산조각 났다고 했다. 그리고 다음번 대남 적대행동은 총참모부의 군사적 행위가 될 것임을 예고했다.


북한은 왜 이렇게 강하게 나오고 있는가? 추측컨대, 북한 지도부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에서 미국 강경파들의 리비아식 비핵화 요구를 보면서 그들이 북한 정권교체의 꿈을 여전히 포기하지 않고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또 지난 4월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태양절 참배에 불참하자, 외부 세계가 이를 김정은 사망, 김여정 후계자, 북한의 급변사태, 작계 5029 이행 준비 등으로 이어가면서 상황을 북한 정권교체 쪽으로 몰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지켜봤을 것이다. 이런 와중에 탈북민 단체까지 나서 북한 지도자 및 정권교체를 목표로 한 대북전단을 더욱 과감하게 살포했다. 이에 북한은 전단 살포 중지를 약속한 판문점선언의 당사자인 문재인 정부가 전단 살포를 적극적으로 막지 않았다고 보고, 그동안 북한 나름대로 쌓였다고 주장해온 불만을 터뜨리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다.


여기서 강조하고 싶은 것은 북한도 한반도 문제의 해결 당사자이고, 판문점선언과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서의 당사자라는 점이다. 남한에 대한 불만이 있으면 우선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는 것이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나오고 있어 크게 실망스럽다. 북한이 군사적 강공으로 나온다면, 남한 사회에서 대북 적대감이 어떻게 증폭될지 가늠하기 힘들다.


그렇다면, 현재의 이 상황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남북 정상, 남북 정부 사이에 ‘신뢰’를 회복하는 일이다. 6·15시대를 열 수 있었던 신뢰, 10·4 정상선언, 판문점선언, 9월 평양공동선언, 9·19 군사합의서를 가능케 했던 그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문점선언에서 합의한 ‘민족 자주의 원칙’을 재인식하고 공유해야 한다. 남북관계를 제대로 진전시키지 못하면 우리 민족이 한반도의 주인인데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 해결에서 주도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 교훈의 실천을 주도하고, 북한에도 이 교훈을 실천토록 요구해야 한다. 우리 정부가 조속히 비공개 대북 특사를 파견해 남북 지도자 차원에서 신뢰를 회복하는 일에 나설 것을 기대한다.


<백학순 | 세종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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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정 북한 제1부부장의 대북전단 살포 비난 담화와 남북공동연락사무소 철거, 대남 군사행동까지 시사하는 담화가 연일 쏟아지고있는 가운데 14일 판문점으로 향하는 길목인 경기도 파주시 통일대교가 이동 차량이 적어 한가한 모습을 보이고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


북한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지난 13일 담화에서 “확실하게 남조선 것들과 결별할 때가 된 듯하다”며 “곧 다음 단계의 행동을 취할 것”이라고 했다. 그는 “머지않아 쓸모없는 북남 공동연락사무소가 형체도 없이 무너지는 비참한 광경을 보게 될 것”이라며 “다음번 대적 행동의 행사권은 우리 군대 총참모부에 넘겨주려고 한다”고도 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쌓아올린 남북관계를 아예 없던 일로 되돌리겠다는 ‘결별 예고’이자 파국 압박이다.  


지난 열흘간 북한은 일방적인 비난을 퍼붓다가 급기야 군사행동까지 시사하는 단계로 남북관계를 몰아갔다. 마치 ‘파국 시나리오’라도 정해놓고 움직이는 듯 일사불란하다. 지난 4일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는 북한의 담화가 나오자 통일부는 곧바로 대북전단 규제방안을 발표했다. 이어 대북전단을 살포해온 탈북인 단체 2곳을 수사 의뢰했다. 청와대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열어 대북전단 살포행위 엄정대응 방침을 내놨다. 대북전단에 대한 북한의 불만이 일면 타당하다고 본 정부가 이례적일 정도로 기민하게 움직인 것이다. 그럼에도 북한은 남북 간 통신 연락선을 모두 단절하는 등 강수를 연발하면서 대화 여지를 아예 차단해왔다. 왜, 무엇 때문에 북한이 이토록 과잉행동을 벌이는지 이해하기 어렵다.  


15일은 남북 정상이 해방 후 처음으로 만나 남북 화해와 협력을 다짐한 6·15공동선언 20주년이다. 대립과 갈등의 시대를 마감하고 남북이 상호 신뢰를 쌓는 ‘이정표’를 세운 날을 함께 기리기는커녕 결별을 위협하는 현실은 실로 유감스럽다. 특히 2년 전 평창 동계올림픽 개회식 특사로 방한해 ‘화해의 전령’ 역할을 했던 김여정 부부장이 대남 압박을 진두지휘하는 건 더 안타깝다. 남북행사 때마다 예의를 갖추며 남측 인사들을 대하던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일견 북한의 불만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남북 정상회담을 세 차례나 열고도 개성공단·금강산관광 재개 등을 이루지 못하고 미국의 대북 제재에 갇혀 있는 남측 정부에 실망감이 클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올 초 ‘북·미관계와 무관하게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공교롭게도 코로나19 사태로 여의치 않은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북한이 제재 장기화와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경제적 어려움 탓에 쌓인 내부 불만을 외부로 돌리기 위해 미국보다 부담이 덜한 남한을 압박하는 것으로 해석한다. 북한이 당면한 어려움을 짐작할 수는 있으나, 이런 방식은 곤란하다.  


청와대는 14일 심야에 NSC를 긴급 소집해 대책을 협의했다. 만일의 사태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엄중한 상황이다. 지금과 같은 북한의 난폭한 언행은 남북화해를 열망하는 여론을 악화시키고 국제사회의 대북 피로감만 키울 뿐이다. 북한은 더 이상의 대남 압박은 멈춰야 한다. 지지부진한 남북합의 사항 중 못마땅한 게 있다면 현 상황에서 가능한 것부터 실천하며 상호 신뢰를 회복하는 게 정도이지 않겠는가. 남북관계를 파국으로 만들어 북한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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