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앞 라 파이예트 광장에서 시위대를 막기위해 대기중인 경찰과 방위군. AP 연합뉴스


미국 백악관 북쪽에는 좁은 도로와 접한 공원이 있다. 라파예트 광장(Lafayette Square)이다. 프랑스 후작으로 의용군을 이끌고 미 독립전쟁에 참전한 드 라파예트의 이름을 땄다. 공원 네 모퉁이에는 라파예트를 비롯해 독립전쟁에 참전해 공을 세운 외국인 영웅 4명을 기리기 위한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세기 중반 미국 조경의 아버지로 불리는 앤드루 잭슨 다우닝이 공원으로 개발했다. 그 전까지는 경마장, 묘지, 동물원, 노예시장, 군대 야영지 등으로 쓰였다. 백악관을 가장 가까이에서 볼 수 있어 관광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라파예트 광장은 ‘시위 1번지’로 유명하다. 백악관 앞 시위는 그 상징성 때문에 미국뿐 아니라 세계 각지에서 시위객들이 몰려든다. 과거 유신정권과 광주민주화항쟁 때 한국의 재야인사·재미교민들도 이곳에서 민주화운동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이곳의 터줏대감은 40년째 비닐움막을 치고 반핵시위를 벌이는 사람들이다. 윌리엄 토머스와 콘셉시온 피시오토 등은 1981년 6월부터 반핵시위를 벌이기 시작해 죽기 전까지 이곳을 지켰다. 반핵시위는 이들의 사후에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처음엔 불법 노숙이라는 이유로 비닐움막이 철거되기도 했지만 지금은 평화시위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망 후 이곳이 인종차별 철폐 시위의 ‘메카’가 된 것은 자연스러운 결과였다. 그런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출한 17분간의 ‘포토 쇼’ 이후 논란의 중심이 되고 있다. 지난 1일 경찰은 트럼프가 광장 건너편 세인트존스 교회로 가도록 길을 터주기 위해 평화적으로 시위를 하던 사람들을 최루탄 등을 쏴 강제해산시켰다. 그리고 이튿날 백악관 둘레에 높이 2m가 넘는 철조망이 둘러졌다. 국립공원관리청은 10일까지 라파예트 광장을 폐쇄한다고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보장한 수정헌법 1조에 트럼프가 재갈을 물린 것이다. 보다 못해 민주당 지도부가 나섰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과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트럼프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광장을 열라고 요구한 것이다. 라파예트 광장이 다시 시민의 품으로 돌아오는 날, 트럼프의 운명은 몰락하기 시작할지 모른다. 광장은 그렇게 무섭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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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이 9일 판문점과 연락사무소, 군 통신선, 청와대 핫라인 등 남북 간 모든 연락채널을 단절했다. 북한은 또 “대남 업무를 대적사업으로 전환”한다며 남측을 ‘적’으로 규정했다. 대북전단 살포와 이에 대한 남측 당국의 대응을 비판해온 북한이 남북관계 단절을 위한 실행 조치에 착수한 것이다. 북한의 조치는 남북관계를 2018년 이전의 험악했던 상태로 되돌릴 수 있는 위험천만한 행동이다. 북한은 진정 남북대결 시대로 돌아가고 싶은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는 연락채널 단절이 ‘단계별 대적사업 계획’의 첫 단계일 뿐이라는 점이다. 북한이 추진 중이라는 사업계획에는 이미 공언한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폐쇄, 개성공단 완전 철거, 9·19 남북군사합의 폐기 등이 포함돼 있을 것이다. 연락사무소와 남북 군사합의서는 문재인 정부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으로 만들어낸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주요 성과물이다. 이를 폐쇄·폐기하겠다는 것은 지난 2년반의 남북관계를 없던 일로 하겠다는 뜻이 된다. 북한은 최근 대남 압박조치들을 주민들이 보는 노동신문에 게재하고, 군중집회까지 열고 있으니 당분간 태도를 돌릴 가능성도 낮다. 대남 군사행동에 나선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다.


하지만 북한의 이런 행동은 한반도 평화를 해칠 뿐 아니라 남북화해를 지지하는 남측 여론까지 등 돌리게 할 수 있다. 북한은 더 이상 대남 압박을 멈추고 문제해결을 위해 대화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북한의 대남 압박은 북·미 대화를 촉진하려는 한국 정부의 힘만 빼는, 북한으로서도 백해무익한 행동이다.


북한이 남북 간 모든 통신 연락채널을 폐기한다고 밝힌 9일 경기 파주시 접경지역에서 보이는 북한 초소에서 북한군이 남측을 바라보고 있다. 파주 _ 연합뉴스


정부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하는 한편 사태악화의 원인이 된 대북전단 살포 문제에 비상하게 대응해야 한다. 대북전단은 북한에 대한 극도의 증오·저주를 담고 있으며, 북한 지도층을 모욕하기 위해 합성한 저질 사진이 실린 적도 있다. 이런 전단까지 ‘표현의 자유’로 보호할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 심지어 일부 탈북인 커뮤니티에서는 북한 정권을 붕괴시키자며 페트병·풍선에 코로나19 환자들이 사용하던 물품을 넣어 보내자는 논의가 공유되고 있다고 한다. 사실이라고 믿고 싶지 않은 발상이다. 정부와 정치권은 하루빨리 이들을 막을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보수세력은 정부의 전단 규제 움직임에 대해 ‘대북 굴종’이니 ‘북한 하명법’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때부터 경찰관직무집행법에 의거해 대북전단 살포를 막아왔으며 대법원도 이를 정당한 직무집행이라고 판단한 바 있다.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 시도도 전부터 있었던 만큼 ‘하명법’ 운운은 당치 않다. 대북전단 살포는 접경지역 주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2014년 10월 북한군은 남측에서 띄운 대북전단 풍선을 향해 고사총 10여발을 쏜 바 있다. 탈북민 단체들이 오는 25일 대북전단 살포를 강행하면 그런 일이 재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국민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에 여야가 의견을 달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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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이 친절하다고 말하는 한국인은 관광객 정도다. 이곳에 살면서는 오히려 불친절하다고 느낀다. 항공권 발급시간이 10초 지났다고 예약한 비행기 대신 다음 항공편 구입을 허리 숙여 알려주고, 태풍으로 철로가 끊겨 숙소에 전화하니 상냥하게 위약금 청구서를 보내온다.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이 조금씩 어려워진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가 자기 이익을 위해서만은 아니다. 주문 마감시간에서 1분이 지났다고 추가주문을 받지 않는 식당 주인이나, 곱빼기 회덮밥을 보통으로 잘못 만들었음을 알고는 그대로 버리는 주방장을 어렵지 않게 만난다. 일본인 마음에는 무엇보다 규칙이 있음을 깨닫게 된다. 


일본에는 길이 2m를 조금 넘는 횡단보도들이 있다. 많은 일본인들이 이곳에서 신호를 기다린다. 신호는 보행자를 위한 것이라며 차가 없으면 건너는 서구 등과 다르다. 사진은 도쿄 분쿄구에서 지난 7일 촬영했다. 이범준 기자


일본의 코로나19 대응이 실패라는 근거가 속속 나오고 있다. 연구 결과 코로나19를 옮기는 시기는 대체로 증상 발현 이틀 전부터 증상 이후 엿새까지다. 일본에서는 체온 37.5도가 나흘 동안 지속돼야 검사 신청 대상이고, 검사를 받으려면 이틀이 더 걸린다. 전파력이 사라진 다음이다. 일본 정부는 감염을 거의 막지 못했다. 최근에야 검사 기준을 풀었지만 상황은 그대로다. 6월 하루 PCR 검사 수는 많은 날이 3221건, 적은 날은 1276건이다. 코로나19 사태가 끝날 때까지 검사가 극적으로 늘지는 않을 것이라고 일본인 친구가 봄부터 말했다. 규칙을 뒤집는 일이 일본에서는 어렵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한국이 코로나19 방역에 성공한 이유로 2015년 메르스 경험을 꼽는다. 당시 한국에서 186명이 감염돼 38명이 숨졌다. 일본은 환자가 없었다. 정작 메르스에 바탕을 두고 규칙을 만든 곳은 일본이다. 치사율 35%인 메르스 같은 상황에 대비해 PCR 검사를 억제했다. 중증으로 발전하면 치료해 의료붕괴를 막고 목숨을 구하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전파력은 강하지만 치사율은 낮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에 한국은 드라이브 스루를 고안해 검사에 나섰고, 이태원 감염에는 신속하게 익명검사를 시작했다. 일본은 이제야 드라이브 스루 검사 매뉴얼을 시험하고 있다. 


일본인의 계획 세우기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일본 변호사단체 회장단 선출을 참관한 적이 있는데 임기 2년 치 이사회 날짜를 이날 잡았다. 다다음해 선약들이 있어 맞추는 데 한참 걸렸다. 은행에서는 계좌개설을 설명하며 수천쪽짜리 매뉴얼을 올려놓았다. 대신 경험하지 못한 일, 준비하지 못한 일에 취약하다. 긴급재난지원금도 한국은 2주 만에 97%가 받았다. 일본은 경제 타격이 가장 크다는 삿포로시 주민도 70%가 지난주까지 받지 못했다. 준비 없이 지원금 온라인 신청을 받겠다고 했다가 공무원들이 신청서를 출력해 재입력하는 일도 있었다. 많은 곳에서 온라인 접수를 중단했다. 


19세기 변방국가 일본을 세계무대에 올려놓은 신중한 태도가 감염병 시대를 맞아 단점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일본인의 일관성은 한국인의 유연성과는 다른 여전한 장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신중함이 아니라 무능하고 부도덕한 정권까지 지켜만 보는 태도다. 일본헌법 12조는 국민에게 말한다.“이 헌법이 국민에게 보장하는 자유 및 권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국민은 부단히 노력하여야 한다.” 권리나 자유는 주장·행사하지 않으면 사라지므로, 국민 스스로가 정부의 침해에 맞서라는 선언이다. 때로는 신중도 병이다.


<이범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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