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D로 제작된 페이스북 로고. 로이터 연합뉴스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도 시작된다(When the looting starts, the shooting starts).” 미국 마이애미 경찰서장 월터 헤들리가 1967년 흑인 시위 때 폭력 보복을 공언하며 처음 입에 올린 말이다. 인종차별을 담은 끔찍한 표현으로 악명이 높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에 동시에 이 말을 올렸다. 조지 플로이드 사망에 항의하는 시위 군중을 ‘폭력배들’(thugs)이라 지칭한 뒤였다. 이후 비난이 커지자 트럼프는 “그 말의 유래를 몰랐다”고 발뺌했다.


트럼프의 겁박성 막말에 대한 트위터와 페이스북의 대응은 정반대였다. 트위터는 “폭력 미화 행위에 관한 운영 원칙 위반”이라고 명기하며 게시글을 숨김 처리했다. 지난달 26일 ‘우편투표가 부정선거로 이어질 수 있다’는 트럼프의 메시지에 “팩트 체크가 필요하다”는 경고 문구를 붙인 직후 트럼프가 폐쇄 운운하며 소셜미디어 규제 관련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뒤끝을 작렬시켰음에도 굴하지 않고 제재를 가한 것이다. 반면 페이스북은 아무 조치도 않고 게시글을 그대로 뒀다. 마크 저커버그 최고경영자(CEO)가 트럼프와 통화한 뒤 “생산적인 대화를 나눴다”고 했고, “즉각적 위험을 유발하지 않는 한 최대한 많은 표현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표현의 자유를 앞세운 것이다. 


불똥은 페이스북으로 옮겨붙었다. 트럼프의 문제 발언을 제재하지 않는 회사 방침에 항의하는 내부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직원들은 부끄럽고, 용납될 수 없는 처사라고 비판했다. 경쟁사인 트위터에 경의를 표한다는 간부도 나왔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재택근무 중인 페이스북 직원 수백명이 지난 1일 하루 동안 회사 정책에 반대한다는 뜻으로 ‘부재중’을 표시하는 방식의 온라인 파업을 벌이기도 했다.


트럼프 수렁에 빠진 페이스북이 또 큰 위기를 맞았다. 트럼프 눈치보기를 여실히 드러낸 저커버그의 위기이기도 하다. 페이스북의 리더십이 잘못됐다는 말까지 나온다. 혐오 발언은 표현의 자유와 다르다. 침묵은 공범이고, 인종차별에 중립은 없다는 구성원들의 말에 귀 기울여야 이 위기를 벗어날 것이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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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민의 그림마당]2020년 6월 3일 (출처:경향신문DB)


시민불복종 시위는 의도하지 않게 일부 파괴와 폭력성을 동반하기도 한다. 폭력성을 옹호해서는 결코 안 되지만, 그것을 빌미로 평화적 시위의 본질을 매도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6월2일 트럼프가 보여준 행태는 이런 구분을 무의미하게 만들고 말았다.


백악관 로즈가든에 선 트럼프는 시위대를 싸잡아 테러집단으로 몰아붙였다. 자신은 법과 질서를 지키는 대통령으로서 나약한 주지사들을 대신해서 연방군대를 동원해 진압하겠다고 선언했다. 군과 경찰이 섞인 진압대는 트럼프의 연설을 기다리던 평화시위대를 향해 무차별로 최루탄을 발사하며 강제해산 작전에 돌입했다. 


지금 미국 주요 도시들은 인종차별과 인권탄압에 반대하는 저항의 물결로 가득 차 있다. 지난주 CNN 앵커 쿠오모는 이 시위가 단지 흑인만의 문제가 아니며, 억울한 죽음에 분노하고 좌절하는 보통의 시민들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는 점을 누차 강조했다. 적어도 삼일째 되는 날까지 시위는 평화 속에서 분명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어느새 방송 화면을 채우고 있는 활활 타오르는 로스앤젤레스 거리는 문제의 본질을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숨 쉴 수 없다”던 플로이드의 목소리는 이런 혼란들 틈에서 어느덧 ‘진압되어야 할 폭도’의 이미지로 변해버렸다. 평화적 시위 장면은 어느새 화면 밖으로 사라졌다. 도심의 불타는 장면은 공교롭게도 한국계로 보이는 현장기자에 의해 생중계되었고, 보도되는 약탈의 현장은 그대로 1992년 흑인폭동 당시 피해의 중심에 있던 한국 상점들의 이미지를 떠올리게 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나와 ‘대통령의 교회’로 불리는 세인트 존스 교회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길목에 위치한 라파예트 공원의 담벼락에는 인종차별 항의 시위대가 써놓은 낙서가 가득하다. 워싱턴 _ AP연합뉴스


이때까지 트럼프는 주지사와 시장들의 등 뒤에 숨어 있었고, 시위대 역시 규모가 커지면서 질서를 잡지 못했다. 그사이에 약탈과 파괴가 뒤섞여 들어오면서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혼란은 극적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책임져야 할 자들은 사라져버렸고, 남은 것은 화염과 연기가 만드는 공허한 메아리뿐이었다.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밤이면 경찰과 주방위군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다. CNN 기자는 미니애폴리스에서 이 의문점을 집요하게 언급한다. 그렇게 사흘 나흘이 지나가는 순간 어느새 약탈이 시작되었고 새벽이 되어서야 경찰은 진압에 들어갔다. 


로스앤젤레스에서도 초기에는 상점의 유리창이 깨진 곳에서 시위대가 경비를 서기도 했다지만, 그들이 주도하던 공식 집회가 마무리된 이후 시위 양상은 다시 급변하기 시작한다. 이때부터 베벌리힐스 로데오 거리의 상점들이 약탈당하기 시작했고, 여기에서도 경찰은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어쨌든 경찰은 정면충돌을 피했고, 상황은 의도치 않은 무질서로 흘렀다. 복잡계의 전형적 현상이 나타났고, 사태는 어느 한 단어로 표현될 수 있을 만큼 간단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들은 모두 폭도로 낙인찍혔고, 트럼프는 무력진압을 시작했다. 


이 사태가 앞으로 얼마나 더 갈지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미 미국이라는 사회는 이런 갈등을 대화로 풀 수 있는 사회적 포용력을 잃어버렸고, 이 과정을 이끌 리더들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번 사태는 인종차별과 박탈감이 코로나19와 대량실업 사태를 만나면서 점화되었다. 폭력과 차별이 인내할 수 없는 선까지 구조화되었을 때 개선의 희망은 사라지며, 인내하는 시민의 성숙성은 근거를 잃게 된다. 증오와 대결의 구도만 남는다. 


나를 보호해줘야 할 경찰이 내게 총을 겨누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희생의 표적이 되는 사회라면 더 이상 희망은 없다. 사회보장이라고는 손톱만큼도 기댈 데가 없고 엄청나게 비싼 건강보험에 들지 않으면 팬데믹(세계적 대유행) 상황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면 그건 이미 희망이 꺼져버린 사회이다. 그런 사회 한가운데 소수 인종들이 버려져 있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보다 더 끔찍한 인종차별과 가난이라는 바이러스가 수대에 걸쳐 이들을 흔들고 있다. 그들을 약탈자로 부르기 이전에 과연 그들에게 ‘희망’이라는 단어가 존재하기나 했는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이런 사태를 우리는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희망’이 사라져버린 사회를 강요받고 있다. 무차별 경쟁과 계급 간 간극 속에서 투잡, 스리잡을 강요받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의 금수저, 흙수저 논쟁은 결코 농담이 아니다. 이들에게 사회적 포용력과 재분배의 가능성을 주는 정치력이 요구된다. 교육전문가인 필자가 왜 이런 글을 쓰냐고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분배 문제의 해결이 없는 교육개혁은 아무런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한숭희 서울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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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앞에서 시민들이 백인 경찰의 가혹행위에 의한 흑인 남성 사망사건에 항의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AP 연합뉴스


지난달 25일 백인 경찰의 무릎에 목이 짓눌려 숨진 흑인 남성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대규모 항의 시위가 일파만파로 번지고 있다. 미 주요 도시에서 일주일째 이어지고 있는 시위가 약탈과 방화 등 폭력사태로 번지면서 1992년 백인 경찰들의 흑인 로드니 킹 구타사건으로 촉발된 로스앤젤레스 폭동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온다. 시위대는 당국의 야간 통행금지령과 군대 투입 등 강력 대응 방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주요 도시에서 공권력에 맞서고 있다. 백인 경찰의 흑인에 대한 공권력 남용이라는 불만을 넘어 누적된 구조적 차별을 향한 분노의 표출임을 보여주고 있다. 


미국의 인종 갈등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공공장소에서의 흑백 분리와 차별을 규정한 ‘짐크로법’은 시민권 운동의 결과 1965년에 폐지됐다. 하지만 미 사회 전반에 보이지 않는 흑인에 대한 차별은 깊이 뿌리내려왔다. 플로이드 사건으로 그 구조가 좀 더 분명하게 드러났을 뿐이다. 흑인들은 공권력 행사에서 차별받았을 뿐 아니라 경제적 불평등의 희생자이기도 하다. 백인보다 훨씬 높은 주택담보대출 금리는 그 한 예다. 코로나19 사태는 흑인의 구조적 차별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10만명이 넘는 코로나19 희생자 중 흑인은 백인보다 약 3배 많았다. 20%에 가까운 실업률의 최대 희생자도 흑인이다. 


또 다른 문제는 미국을 이끌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가 인종차별주의를 부추긴다는 사실이다. 트럼프는 대통령이 되기 전부터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국에서 태어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2016년 국민의례에 대한 거부의 표시로 무릎 꿇기를 한 흑인 미식축구선수 콜린 캐퍼닉을 비난하는 등 인종차별을 정치적으로 활용해왔다. 대통령이 된 뒤인 2017년 8월 버지니아주 샬러츠빌 사태 때에는 백인우월주의자를 지지했다. 이번 사태에서도 배후로 극좌 ‘안티파’를 지목하고 테러조직으로 지정하는 등 인종차별주의적 태도를 감추지 않았다. 통합의 리더십을 보이는 대신 사태를 정략적으로 활용하면서 오히려 갈등을 부추기고 있다는 각계의 비난은 당연한 일이다. 


이번 사태가 미국의 인종주의를 바로잡는 전환점이 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트위터에 올린 글에서 “새로운 정상(뉴노멀)을 만들어내는 것은 인종·신분과 관계없이 우리 모두의 몫”이라고 했다. 대규모 항의시위는 이를 바라는 미 시민들의 강력한 의사 표시다. 트럼프가 시위 진압을 위해 군대를 절대로 투입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세계 시민들이 이 시위를 지지하며 그 결과를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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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일본의 대한(對韓) 수출규제와 관련해 세계무역기구(WTO) 분쟁해결 절차를 재개하기로 했다. 정부가 지난달 말까지 일본의 3개 품목 수출관리 강화, 화이트리스트(수출절차 우대국) 제외 등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해결 방안을 밝히라고 했지만 일본이 응하지 않자 내놓은 조치다. 산업부는 “지금 상황이 당초 WTO 분쟁해결 절차 정지의 조건이었던 정상적인 대화의 진행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며 지난해 11월22일 잠정 정지한 절차를 재개하겠다고 밝혔다. 수출규제 문제를 양국 간 협의로 풀지 못하고 WTO 제소로 가게 된 것은 유감스럽지만, 불가피하다고 판단된다. 


일본이 지난해 7월 수출규제 조치 이유로 든 재래식 무기 ‘캐치올’ 통제 미흡과 관련해 한국은 재래식 무기규제의 법적 근거를 명확히 하기 위해 지난 3월 대외무역법 개정을 완료했다. 수출관리 조직을 무역안보과에서 무역안보정책관으로 확대 개편한 데 이어 심사 인력도 25% 늘림으로써 제도상의 우려를 해소했다. 그러나 일본은 한국이 개선 조치를 완료했다고 해도 제대로 작동하는지 좀 더 지켜보겠다는 태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상대국 행정체계와 집행을 불신하고 또 낮춰 보는 태도에서 오만함이 느껴진다. 


나승식 산업통상자원부 무역투자실장이 2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일본 수출규제조치 관련 WTO 절차 재개를 발표하는 브리핑을 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 제공


그러나 일본은 수출규제가 자승자박(自繩自縛)의 결과만 초래했음을 직시해야 한다. 수출규제 이후 한국은 대체 수입경로 개발, 정부의 국내 소재·부품·장비업체 지원으로 생산 차질을 거의 빚지 않은 반면 일본의 관련기업들은 매출이 격감했다. 그럼에도 수출규제를 유지하겠다는 것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수출규제라는 쐐기가 박힌 탓에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양국 간 협력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한국이 세계적인 방역 모범국가로 평가받고 있는데도 일본은 한국인에 대한 무비자 입국제한을 다시 연장하는 속 좁은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명분도 실익도 없는 수출규제를 조속히 해제해 양국 관계복원의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 한국 정부가 지난해 수출규제 해결을 위한 협의가 진행되는 동안 WTO 제소 절차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종료를 중단하겠다고 한 것은 일본이 결자해지하라는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끌기가 계속된다면 한국도 추가조치를 검토할 수밖에 없다. 수출규제 문제 해결 없이는 강제징용 해법 도출도 기대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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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유토피아 2020.06.28 23:21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일본과의 국교 단절만이 정답이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이 선포되기 하루 전인 1949년 9월30일. 인민정치협상회의 대표들이 모여 국가주석을 선출했다. 마오쩌둥(毛澤東)의 만장일치 당선을 의심하는 이는 없었다. 결과는 찬성 575표, 반대 1표.


지지자들은 당황했다. 반대표를 버리자는 말까지 나왔다. 마오쩌둥이 “대표들이 마오쩌둥을 선택할 권리도 있고, 선택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면서 “그대로 두라”고 했다.


5년 후인 1954년. 중국의 의회에 해당하는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설립됐다. 국가주석 선출을 비롯한 법률의 제정·수정은 전인대에서 표결로 결정한다. 그러나 지난 66년간 어떤 안건도 부결된 적은 없다.


지난달 28일 전인대 전체회의에서는 홍콩의 반(反)중국 활동을 처벌하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이 압도적 표차로 통과했다. 찬성 2878표, 반대 1표, 기권 6표가 나왔다. 홍콩 민주진영과 국제사회에서 홍콩 자치권을 보장한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에 위배된다며 비판을 쏟아낸 것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표차다.


전인대 성립 초기에는 거수, 박수, 무기명 투표방식이 혼재돼 있었다. 문화대혁명 때는 맹목적 박수가 대신했다. 정치생명을 걸어야 하는 반대표는 던지기 힘들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전자투표가 시작됐지만 여전히 ‘반대’ 목소리는 내기 어려워 보인다.


이 때문에 1992년 3월 전인대 당시 싼샤댐 건설 프로젝트 안건은 상징적 사건으로 꼽힌다. 창강(長江) 중상류의 협곡을 잇는 싼샤댐은 환경 및 생태계 파괴 우려가 제기됐다. 싼샤댐에 반대하는 황순싱(黃順興) 대표는 사전에 발언을 신청했지만 묵살됐다. 황 대표 등 25명은 회의장을 나갔고 기표하지 않는 것으로 항의했다. 싼샤댐 안건은 찬성 1767표, 반대 177표, 기권 664표가 나왔다. 전인대 역사상 이례적으로 반대·기권표가 많았던 사례다.


최근에는 반대표를 보기가 더 어렵다. 2013년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 선출 때 나온 반대표는 단 1표였다. 2018년 시 주석의 장기집권을 가능하게 하는 국가주석 3연임 이상 금지 조항 폐기 개헌안 표결 때도 반대는 2표에 불과했다.


중국에서 반대 목소리를 내기가 얼마나 힘든지는 과거 사례가 입증한다. 마오쩌둥에게 반대표를 던진 사람은 베이징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정치학자 장둥쑨(張東蓀)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51년 미국 간첩 사건에 연루돼 정치 생명이 끝났고, 옥살이하다 감옥에서 사망했다. 본인은 간첩 행위 사실을 끝까지 인정하지 않았다. 싼샤댐에 반대한 황순싱 대표도 이듬해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홍콩보안법 반대 1표를 두고는 여러 추측이 나왔다. 보안법 수정안에 반대의견을 낸 홍콩 전인대 대표 마이클 톈(田北辰)이 지목됐다. 결국 톈 대표는 “찬성표를 던졌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 군데로 쏠린 집단사고는 때로 큰 사고를 일으킨다. 중국은 대약진운동과 문화대혁명의 교훈도 있다. 다수의 합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와야 더 나은 해결책이 나오고 사회도 발전한다. 그런 점에서 반대 없는 사회는 위험하다. 반대를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라면 더더욱 큰 문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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