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폐막일인 28일 홍콩 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을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시켰다. 법 제정에 대한 국제사회의 우려를 무시한 처사로, 강한 유감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이날 통과된 법안은 초안을 더욱 강화해 단순 시위 가담자도 처벌할 수 있도록 처벌 대상 범위를 확대했다. 홍콩 시민들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것은 물론 민주주의의 보편적 가치를 무시한 법안이다. 지난해 ‘송환법 사태’ 때처럼 홍콩을 갈등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것을 넘어 지구촌에 최악의 리스크를 초래했다. 


홍콩보안법 통과는 중국이 스스로 정하고, 국제사회에 약속한 ‘일국양제’ 원칙을 파기했다는 점에서 용납될 수 없다. 외교와 국방 주권은 중국이, 고도의 자치권은 홍콩이 갖는 일국양제는 1997년 홍콩 반환 이후 중국의 홍콩 통치원칙이다. 리커창 총리는 홍콩보안법 통과 후 “일국양제의 안정을 지키기 위한 것”이라고 밝혔지만  법 제정을 정당화하는 명분이 될 수는 없다. 우려되는 것은 이 법이 불러올 파장이다. 미국은 홍콩 특별지위 박탈 절차에 돌입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전날 홍콩이 자치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고 의회에 보고했다. 그동안 경제·통상 등에서 보장해준 특별지위를 빼앗아 중국 본토처럼 다루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만, 남중국해, 신장위구르자치구 문제에서도 대립하고 있어 양국의 대결 양상은 전방위로 확산하고 있다. 게다가 미·중은 각국을 자기편에 서라고 줄을 세우고 있다.  


미국이 미·중 무역합의 파기·중국 환율조작국 지정 등 압박카드를 꺼내들고, 중국이 이에 맞대응을 한다면 세계 경제는 상상할 수 없는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이런 상황은 최소한 오는 11월 미 대선 때까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미·중은 국제사회의 재앙이 될 대결을 자제해야 한다. 우선 중국이 긴장고조 행위를 멈춰야 한다. 이날 법 통과 후 전인대 상무위원회 심의 및 표결 과정이 남아 있는 만큼 추가 입법행위를 중단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 행정부 또한 대선이라는 국내 정치에 중국을 활용해서는 안 된다. 미국은 또한 반중국 경제블록인 경제번영네트워크(EPN) 구상 참여를 요구할 것이라고 하는데 부적절하다. 세계 각국도 미·중 양국의 세력 확장에 한쪽 편을 들기보다 패권 싸움을 막는 데 협력해야 한다. 한국을 비롯한 중견국들을 중심으로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의제 삼아 양국 갈등 조정에 나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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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일본 방위상의 집무실에 한반도 전도가 걸려있는 것이 언론에 공개됐다. 방위상 집무실에 일본열도 외에 특정국가 지도가 걸려있는 것은 한반도뿐이다. 우리 국방부 장관 집무실에 일본열도 전도를 걸어놓았다면 한국군이 일본을 노리고 있다며 일본 언론이 아우성쳤을 것이다. 방위성 측은 고노 방위상 이전부터 걸려있었다고 해명했다. 그렇다면 일본 군부는 줄곧 한반도를 호시탐탐해왔음을 인정하는 것인가.


고노는 작년 10월 자신의 공식사이트에 한국의 구매력평가(PPP) 기준 국방비가 2018년부터 일본을 앞지르기 시작했다며 한국 국방중기계획의 국방비 증가율이 연간 7%, 일본 중기방위력정비계획의 증가율이 1.1%로 5년 후 한국국방비가 일본의 1.5배 된다며 위기감을 드러냈다. 이를 근거로 극우성향인 산케이 계열의 ‘석간 후지’는 이승만 라인을 들먹이며 한국 위협론을 조장하고 있다. 


우리가 한갓 방위상 집무실의 한반도 지도에 주목하는 것은 아베 정부에 들어와 독도 영토야욕이 노골화돼서다. 작년 9월 발간된 일본 방위백서와 금년 5월 발간된 일본 외교청서에서도 독도를 다케시마라며 자국 영토로 표시했다. 일본 내 우익전문가들은 현행 헌법으로는 독도를 지킬 수 없다며 전쟁할 수 있도록 헌법 제9조를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한반도 문제에 크게 관심을 갖는 것은 비단 일본의 관리나 보수언론만이 아니다. 작년 2월 도쿄에서 열린 한 세미나에서 문정인 외교안보특보의 한반도 평화체제와 비핵화에 관한 기조연설에 대해 일본 측 토론자가 ‘일본에 대한 언급이 한 곳도 없다’며 쇼크를 받았다고 하자, 한국 측 참석자가 ‘일본 측이 쇼크를 받았다고 하니 그게 더 쇼크다’라며 반박한 바 있다. 이는 한반도 문제에 뭔가 역할을 해야 한다는 일본 측 인식과 한반도 문제에 대한 일본의 개입을 불편하게 여기는 한국 측 인식을 단적으로 보여준 예이다.


한국 측의 불편한 대일 인식은 일본이 자초했다. 2차 북핵 위기 때 일본 정부의 참가 요구를 수용해 6자회담이 되었다. 하지만 정작 일본은 의제 밖의 납치 문제를 꺼내며 ‘2·13 합의’를 어기며 중유 20만t을 끝내 주지 않아 6자회담 결렬의 빌미를 제공했다. 2018년 평창 올림픽 개회식에 참석한 아베 총리가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선수단의 참가 명분이 된 한·미 군사연습 연기를 취소해야 한다며 내정간섭 발언을 하기도 했다. 북·미 정상회담이 결정된 뒤 아베가 급히 미국으로 달려가 트럼프 대통령에게 납치 문제 선해결을 요구하며 제동을 걸려다가 거절당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일본 측은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였다. 아베 정권과 일본 언론들은 대법원의 ‘강제동원피해자’에 대한 ‘배상’ 판결을 ‘강제징용공’에 대한 ‘보상’ 판결로 왜곡하며 우리 정부가 국가 간 약속을 어긴 것처럼 사실관계를 호도한다. 최근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다루던 일부 단체의 부실운영이 여론화되자 일본 언론들은 연일 대서특필하며 마치 과거 죄악이 면죄부를 받은 듯이 행동한다. 하지만 이번 사태의 본질은 문재인 정부 초기의 ‘미투’ 운동처럼 4·15 총선 이후 시민단체 내부의 자정 운동일 뿐으로, ‘피해자 중심주의’ 원칙이 후퇴할 일은 아니다. 


최근 각종 스캔들과 부실한 코로나19 대응으로 궁지에 몰린 아베 총리가 한국에 대해 다소 전향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동안 아베는 지지율이 떨어지면 반한 감정을 조장해 국민여론을 외부로 돌리려 했으나 한계에 부딪혔나 보다. 그래서인지 아베가 한국을 ‘가장 중요한 이웃’이라고 다시 부르고 얼마 전 발간된 외교청서에서도 같은 표현이 등장했다. 하지만 일본의 기본입장이 바뀐 것은 없다.


아베 정권은 강제동원피해자, 위안부, 독도 도발, 원전 오염수, 수출규제 강화 등 이웃국가인 우리에게 온갖 폐를 끼쳐왔다. 이 같은 비우호적인 태도에도 우리 정부는 미래지향적인 관점에서 자제력을 발휘해 왔다. 작년 3·1절 100주년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일본에 대한 부정적 언급을 자제했고 평창 동계올림픽 폐회식 이후 15개월 만인 작년 12월 한·일 정상회담을 열었다. 


한·일이 진정한 이웃이 되려면 일본 정부는 효과도 없고 관계만 악화시킨 수출규제 강화조치를 풀고 화이트리스트를 원상회복해야 한다. 아직 일본전범기업의 압류자산에 대한 현금화라는 시한폭탄이 기다리고 있지만, 일본 정부의 의지만 있다면 해결하지 못할 일이 아니다. 일본은 과거사 외면과 영향력 투사가 아니라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그리고 동아시아 역내 평화·번영을 위한 진정한 협력관계 구축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찾아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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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홍콩경찰이 시위대를 제압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홍콩 시민 수천명이 지난 24일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집회금지 속에서 대규모 도심 시위를 벌였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가 지난 22일 개막식에서 상정한 홍콩국가보안법(홍콩보안법) 제정에 반대하기 위해서였다. 법안은 외국 세력의 홍콩 내정 개입 금지, 국가 분열 및 테러리즘 활동 처벌, 국가안보 교육 강화 등을 담고 있다. 위반 시 최고 징역 30년형에 처해진다. 전인대는 28일 폐막식 때 이 법 초안을 통과시킬 예정인데, 향후 전인대 상무위원회가 입법 절차를 마치면 법은 시행된다. 국가안보를 핑계로 시민들의 입과 손발을 다 묶겠다는 비민주적 발상으로, 국제사회가 우려하는 것은 당연하다. 


홍콩보안법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우선 중국 당국이 홍콩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직접 법안 제정에 나섰다는 점이다. 1997년 홍콩 주권반환 이후 외교·국방 주권은 중국이, 고도의 자치권은 홍콩이 갖는 ‘일국양제’ 원칙을 유지해왔다. 따라서 이 법안 제정은 사실상 ‘일국양제’를 무너뜨리는 셈이 된다. 이 법이 시행되면 홍콩의 자치권은 약화되고, 그로 인해 글로벌 금융 중심지로서 누려온 지위도 잃을 수 있다. 홍콩 정부가 2003년에도 보안법 제정을 추진했다가 대규모 시민들의 반대 거리 시위로 무산된 것도 이런 문제 때문이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지난해 ‘송환법 사태’에서 보듯 중국 당국의 초강경 대응이 홍콩 시민의 반발을 부를 것이라는 점이다. 홍콩 범민주 세력은 오는 6월4일 톈안먼 사태 31주년에 맞춰 대규모 집회를 열겠다고 이미 예고했다. 또다시 대규모 충돌이 일어난다면 유혈참극을 포함한 그 파장은 예측하기 어렵다. 홍콩보안법 제정 논란은 미·중 갈등을 부추긴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하지 않다. 미국은 이미 1992년 홍콩에 부여한 무역·투자 등에 대한 특별지위를 박탈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럼에도 왕이 중국 외교부장은 “어떠한 외부 간섭도 허용할 수 없고, 법은 반드시 시행돼야 한다”고 법제화 고수 입장을 밝혔다. 홍콩의 안보가 중국의 핵심 이익으로, 양보할 수 없다는 뜻일 것이다. 하지만 중국이 진정 G2로서 세계의 중심 국가를 자처한다면 민주주의 기본 원칙과 국제규범을 지켜야 한다. 미국이 홍콩의 특별지위를 박탈하면 최대 피해자는 중국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은 홍콩보안법 추진이 자국은 물론 국제사회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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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 AP연합뉴스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약자에게 부당한 행위를 강요하는 ‘갑질’ 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다. 박찬주 전 육군대장이다. 2군사령관 재직 시 부인의 ‘공관병 갑질’ 논란으로 그는 불명예 전역했다. 재판을 통해 직권남용 혐의는 벗었지만 다른 비위가 드러났다. 뇌물 수수는 무죄가 선고됐지만, 부정청탁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이로 인해 박 전 사령관은 군인으로서 씻기 어려운 불명예를 안았다. 지난 총선에서 여론에 밀린 제1야당이 그의 영입을 포기해 정계 진출도 좌절됐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이 ‘갑질’ 논란에 휩싸였다. 폼페이오 부부가 보좌관에게 애완견 산책, 세탁물 찾아오기, 식당 예약 등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가 지난 15일 국무부 감찰관을 해임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로 폼페이오 부부의 갑질 의혹에 대한 조사가 지목됐다. 폼페이오의 갑질 의혹은 처음이 아니다. 지난해 7월 CNN은 그와 가족이 직원에게 개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의혹이 내부에서 제기돼 의회가 조사에 나섰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1월 중동 출장에 부인이 동행한 것도 다시 입길에 오르고 있다. 미국에서는 장관 출장에 부인이 동행하는 일은 흔하다. 문제는 부인이 연방정부의 셧다운(일시정지)으로 국무부 직원 대다수가 무급으로 일하던 때에 동행했다는 점이다. 박 전 대장이 부인에 대한 소문이 있으니 조심하라는 상관의 귀띔에 부응하지 못한 것과 닮았다.


폼페이오의 갑질 파장이 심상치 않다. 폼페이오가 감찰관을 보복성으로 해임하도록 트럼프에게 건의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미국은 공직자의 직권남용이나 불법행위에 대해 엄격하다. 이런 미국에서 자신의 불법을 파헤치려는 감찰관 해임에 압력을 행사했다면 보통 심각한 사안이 아니다. 의회는 감찰관 해임이 폼페이오 보호를 위한 불법 보복 조치였는지에 대해 조사 중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도 트럼프에게 30일 내에 감찰관 해임 근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다급해진 트럼프는 부인이 없다면 폼페이오가 일을 할 수 있도록 보좌관이 설거지를 하는 게 당연하다고 두둔하고 나섰다. 2024년 대선의 공화당 유력 후보로 부상하고 있는 폼페이오는 갑질 논란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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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뉴욕의 시민들이 18일(현지시간) 브루클린의 도미노 공원에서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을 막기 위한 물리적 거리를 두기를 지키라는 의미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그려진 원 안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뉴욕_AP연합뉴스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9만명을 넘어섰다. 전 세계 사망자의 약 28%에 해당하는 규모이자 두번째로 사망자가 많이 나온 영국보다 2.6배 더 많다. 하루에 발생하는 사망자가 전보다 많이 줄긴 했지만 여전히 700~800명대여서 조만간 10만명을 넘을 가능성이 높다. 미국 백악관 코로나19 대응 태스크포스(TF)가 브리핑에서 자주 인용했던 미국 워싱턴대학교 보건계량분석평가연구소(IHME) 추계 모델은 8월 4일 미국의 코로나19 누적 사망자가 14만3357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미국 대부분의 주들이 봉쇄했던 경제 활동을 서서히 풀면서 일상으로의 복귀를 시도하고 있다. 그렇지만 미국이 받은 충격은 쉽게 가시지 않을 것이다. 미국이 겪은 코로나19 사태의 원인과 결과에 대한 논쟁은 앞으로 더욱 거세질 공산이 크다.


미국 언론과 지식인들이 코로나19 사태의 충격을 논할 때 종종 눈에 띄는 표현이 “‘미국 예외주의’가 종언을 고했다”는 것이다. 진보 성향 잡지 ‘아메리칸 퍼스펙티브’의 편집인인 로버트 쿠트너 브랜다이스대 교수는 최근 칼럼에서 “미국 예외주의가 어떤 것을 뜻하든 이제 끝났다. 아마도 영원히”라고 적었다.


프랑스 정치철학자 알렉시스 토크빌이 1830년대에 당시로선 신생국이었던 미국의 정치·사회·문화를 분석하면서 ‘예외적인 나라’라고 언급한 이래 미국 예외주의는 미국 내·외부의 관찰자들이 사용해온 개념이다. 미국은 봉건제를 경험하지 않고, 귀족 전통 없이 민주주의를 수립했다는 점에서 유럽과 비교해 예외적이다. 미국인들은 미국이 신으로부터 특유한 은총과 덕목을 받으며 탄생했다는 신념이 강하다. 정치학자 세이무어 마틴 립셋은 미국에서 주목할만한 사회주의 운동이 부재했다는 사실이 미국 예외주의의 한 측면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미국이 광활한 영토에도 불구하고 태평양과 대서양, 그리고 우방국인 캐나다와 멕시코와 인접해 있다는 사실은 미국이 외침으로부터 자유롭다는 믿음을 갖게 했다. 이 믿음은 1941년 진주만 공습과 2001년 9·11테러를 거치면서 생채기가 났지만 미국이 심한 자연재해나 기근, 역병으로부터 상대적으로 안전했던 것도 사실이다. 초강대국으로서의 미국의 지위 역시 미국인들로 하여금 어느 나라보다 우월하다는 믿음을 강화시켰다. 코로나19 발병 초기 미국이 세계보건기구(WHO)가 배포한 진단 키트를 거부하고 자체 개발한 부실 진단 키트를 썼다가 사태를 키운 건 이런 믿음이 낳은 참사였다.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이 예외적으로 안전하다는 믿음을 깨트렸다. 감염병 대응 측면에서 미국은 그들이 종종 경멸과 비하를 담아 부르는 ‘제3세계’에 비해 별반 나을 게 없었다.


미국 예외주의 종언 이후 미국은 어떤 길로 나갈까? 미국이 특유의 역동성과 진취성을 발휘해 자기 혁신, 그리고 외부와의 협력 강화에 나설 경우 전화위복이 될 수 있다. 일례로 미국 주요 언론과 정치인들, 특히 공화당에서도 한국의 코로나19 방역 성공 사례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고 있는 것은 이런 기대를 낳는다. 반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태도는 반성이나 혁신에서 거리가 멀어 보인다. 11월 미국 대선에서 미국인들의 선택을 주의깊게 지켜봐야 할 이유가 하나 더 늘었다.


<워싱턴|김재중 특파원 herme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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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경향신문DB)


코로나19 책임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 간의 갈등이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1979년 수교 이후 최악’ ‘미·중 신냉전’이란 말이 어색하지 않을 만큼 험악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 14일 “중국과 모든 관계를 끊을 수 있다”고 했다. 미국의 대중 무역 적자를 거론하며 경제관계를 중단할 수 있다는 뜻인데, 정상적인 국가관계에선 나올 수 없는 극언이다. 


미 행정부도 중국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미국 기술로 제작된 반도체가 공급될 수 없도록 수출규정을 개정하는 등 초강도 제재에 나섰다. 미국이 ‘경제번영 네트워크’라는 친미(親美) 경제블록을 구상하고 있다는 보도도 나온다. 중국 내 생산기지를 미국 본토나 인도·베트남 등 미국에 우호적인 나라들로 옮겨 중국에 의존하는 글로벌 공급망을 재편하겠다는 것이다.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대만의 TSMC가 미국 애리조나에 공장을 짓기로 한 것은 이런 구상과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미국이 동맹국들에 대중 압박 동참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도 걱정스럽다.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세계가 몇 개의 경제블록으로 쪼개져 대립하던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양국 간 긴장이 대만 해협 주변에서 군사충돌로 이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코로나19 사태의 조기 종식을 위해 함께 힘을 모아도 모자랄 판에 세계 1·2위 대국이 전방위적 대립으로 치닫는 현실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코로나19 발생 초기 중국의 대응에 다소 문제가 있었다 하더라도 모든 책임을 중국에 뒤집어씌우는 트럼프 행정부의 언동은 아무리 봐도 지나치다. 제동이 걸리지 않는다면 미국의 ‘중국 때리기’는 11월 대통령 선거 때까지 이어질 수도 있다. 이 갈등의 회오리에 세계보건기구(WHO)까지 휩쓸리게 되면 코로나19 팬데믹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응도 표류할 공산이 크다. 


걱정스러운 건 한국의 처신이다. 이미 사드 갈등으로 곤욕을 치른 우리로서는 이번 파고를 넘는 게 쉬운 일이 아니다. 국익을 지키면서도 한편으로 쏠리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고난도 외교가 요구된다. 국제사회와 연대해 미·중의 자제를 촉구하는 목소리를 낼 필요도 있다. 한국은 그럴 만한 자격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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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정부가 긴급사태선언을 발령한 지난달 8일 사람이 거의 보이지 않는 도쿄대학 모습. 이 대학은 이날부터 도서관, 강의실, 연구실 등 대부분 시설을 폐쇄했다. 가운데 붉은색 건물이 야스다강당이고, 양옆이 법학부 건물들이다. 도쿄=이범준 사법전문기자


도쿄대학 정문에 들어서면 1969년 전공투가 점거했다는 야스다 강당이 보이고 양옆으로 법학부 건물이 늘어서 있다. 이곳에서 헌법학자 미노베 다쓰키치, 정치사상가 마루야마 마사오,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가 배우고 가르쳤다. 그런데 내가 입학해서 배운 것은 이러한 법학부 역사가 아니라, 재난에 대비하는 방법이었다. 학습실 내 책상 서랍을 여니 헬멧이 들어 있었다. 전공투가 쓰던 것과 같은 모양인데 본래 지진 대비용이라고 한다. 교내 위험물 분포를 익혔고, 대피장소와 이동경로를 외웠다. 자전거보험 안내서를 받았고 공대생은 실험자보험에 가입했다. 이 나라가 개인의 목숨을 소중히 여긴다고 느꼈다. 코로나19 사태를 맞기 전까지는 그랬다. 


아베 신조 총리는 “PCR 검사를 늘리려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말만 저렇게 하지 의지는 없다”고 사람들은 의심한다. 긴급사태를 연장한 5월4일(월) 발표만 봐도 ‘534건 검사에 200건 양성(공항 제외)’이다. 주말에는 검사 건수가 적다는 게 긴급사태를 선언한 정부의 설명이다. 지난주 일요일 발표한 검사 수도 1435명이다. 당초 아베 정부는 “코로나19 검사를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한다”고 했다. 의료붕괴를 막는다는 게 그 이유다. 이러는 사이 집에서 죽고 길에서 죽는 사람들이 속출했다. 죽는다고 사정해도 검사를 안 해주고, 너무 늦게 검사받고 죽기도 했다. 그런데도 병상이 남아 있다고 홍보했다. 병상이 있으니 의료붕괴가 아니라고 했다. 


도쿄 거리에는 사람이 무서울 만큼 없다. 지난달 긴급사태를 선언하며 아베 총리는 “사람과 사람 접촉이 80% 줄면 코로나 사태는 끝난다”고 했다. 강제력도 없어 불가능한 목표라고들 했다. 지난주 지하철 승객 수, 휴대폰 사용량을 보니 유동인구가 80%가량 줄었다. 사람과 사람 접촉은 99% 가까이 줄어든 셈이라고 했다. 한 사람이 출퇴근길, 회사, 식당에서 부딪히는 사람을 100명으로만 잡아도 그렇다고 했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외국계 체인점부터 동네 식당에 떡집까지 무기한으로 문을 닫았다. 그런데도 감염자는 크게 줄지 않았다. “검사는 안 하고 외출만 통제하니, 가정 내 감염이 시작된 것”이라고 전문가들이 말했다. 미국과 유럽 언론이 아베 정부를 비난하기 시작했고, 아베 총리는 “검사를 일부러 안 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화를 냈다. 과학분야 노벨상만 26차례 받은 일본을 ‘의료 후진국’이라 주장하는 것 같았다.


1947년 시행 현행 일본국헌법 13조는 ‘모든 국민은 개인으로서 존중받는다’고 선언하고 있다. 1890년 시행 메이지헌법에서 ‘천황의 신민’이던 이들은 맥아더가 만든 헌법에서야 개인이 됐다(respected as individuals). 주권의 주체는 국민이지만, 인권의 주체는 개인이다. 13조가 둘째 문장에서 정한 첫째 인권이 생명이다. 그런 아베 총리가 지난 5월3일 헌법제정일을 맞아 다시 개헌을 주장했다. 의회를 거치지 않는 긴급명령권이 있어야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를 잡는다고 했다. 지난 시절 조선, 일본, 세계를 불구덩이로 몰아넣은 것이 메이지헌법 국가긴급권이다. 지금 아베 총리가 해야 할 일은 헌법 개정이 아니라 헌법 준수이고, 지켜야 할 것은 수치가 아니라 생명이다.


<이범준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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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제협력단(KOICA)이 파라과이 산페드로주에 건립한 종합병원.


코로나19 방역에서 ‘한국형 모델’로 모범적인 성과를 거둔 정부는 지금 두 번째 과제를 앞두고 있다. 앞으로 닥쳐올 ‘코로나 경제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27일 대외경제장관회의에서 기업의 해외 인프라 수주를 위해 향후 3년간 신남방·신북방 정책의 주요 파트너 국가를 대상으로 공적개발원조(ODA) 승인 규모를 70억달러(약 8조5000억원)로 확대하겠다고 말했다. 이 말을 풀어보면, 문재인 정부의 외교전략인 신남방·신북방 정책 거점 국가에 대규모 ODA를 지원해 인프라 사업을 발굴하고 그 사업을 국내 기업이 수주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얼핏 보기에 정부의 외교전략 추진과 기업의 해외시장 개척을 위한 일거양득의 방책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은 개발원조의 국제적 규범에 역행하는 정책이다.


ODA는 빈곤국의 발전을 위해 선진국이 지원하는 공적자금이다. 냉전시대 ODA는 개도국을 자기 진영으로 편입시키기 위한 수단이었다. 그러나 냉전 이후에는 인도주의와 인권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ODA를 국가전략이나 경제적 이익의 도구로 삼지 말아야 한다는 인식이 확고하게 자리 잡았다. 현재 ODA는 유엔이 새천년개발계획(MDGs), 지속가능발전목표(SDGs)를 통해 제시해온 빈곤 퇴치·평등·환경·교육 등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지속 가능한 개발’을 지향하고 있다.


1980년대 시작된 한국의 초기 ODA는 재벌기업의 해외 진출 수단이었다. 무상원조가 아닌 유상원조가 대부분이었고 사업 시행은 물론 자재·용역 조달까지 국내 기업이 맡도록 제한된 ‘구속성 원조’였다. 그러다가 2009년 개발원조위원회(DAC) 회원국이 되면서 한국은 ODA 국제기준 충족을 요구받게 됐다. 당시 한국의 DAC 멤버십은 ODA 규모를 국민총소득(GNI) 대비 0.25%까지 늘리고 구속성 원조를 25% 이하로, 무상원조 비율을 90% 이상으로 바꾸겠다는 약속을 전제로 한 것이었다. 하지만 DAC 가입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국은 이 약속의 근처에도 가지 못하고 있다.


구속성 원조로 해외 인프라 수주

ODA, 대외전략·수출의 도구로

원조 국제규범에 역행하는 정책 

코로나 경제위기 대처도 좋지만

개발원조 지향점 분명히 해야


정부가 이번에 내놓은 ‘해외 인프라 수주 프로젝트’는 차관 형태의 유상원조이며 구속성 원조다. 구속성 원조는 지원금이 수원국의 경제에 유입되지 않고 고스란히 공여국 기업에 되돌아가는 구조여서 개발 효과도 낮고 ‘수원국 중심’이라는 ODA 원칙과도 거리가 멀다. 한국 ODA가 저평가받는 이유도 구속성 원조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이 계획은 신남방·신북방 거점인 인도·인도네시아·베트남·우즈베키스탄·동구권 국가 등을 대상으로 한다. 이들은 DAC의 수원국 리스트에 있기는 하지만, 원조가 절실한 빈곤국이 아니다. 원조보다 정상적인 경제협력이 더 어울리는 국가들이다. ODA를 이처럼 노골적으로 외교전략과 경제적 이익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면서, 그것도 국가의 연간 ODA 총액의 3배에 가까운 엄청난 액수의 유상·구속성 원조를 향후 3년 동안 배정하겠다는 이 계획은 국제적 규범은 물론 정부가 2018년에 개정한 국제개발협력기본법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 특정 기업에 혜택을 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여서 정경유착의 소지도 있다.


물론 ODA는 국민 세금이기 때문에 국익을 고려치 않고 타국의 이익만을 위해서 사용될 수는 없다. 또한 ODA도 큰 틀에서 외교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어서 국가 정책과 다른 방향으로 가기는 어렵다. 그러나 ODA는 국익을 직접 목표로 하기보다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의 결과’로 국가에 보탬이 되도록 한다는 점에서 일반 외교나 경제협력과는 다르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경제위기의 심각성을 감안할 때 정부의 선택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지만, 이런 정책을 내놓기까지 ODA의 방향성을 놓고 고민이라도 한 번 해본 흔적이 없다는 게 우려스럽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6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개발도상국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강조하고 “사람 중심의 개발정책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번 해외 인프라 수주 계획은 이 발언의 연장선상에 놓여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임기 반이 지났지만 문재인 정부의 ODA는 지향점이 무엇인지 여전히 불투명하다. 100대 국정과제 중 99번째에 ODA가 들어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히 기억나는 게 없는 사람들을 위해 이 시점에서 문재인 정부의 ODA 철학은 무엇인지 정리해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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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관련 기사는 가장 쓰기 어려우면서도, 동시에 쉽게 쓸 수 있는 분야다. 북한 내부를 직접 취재하기 불가능하다보니 북한 매체가 무슨 보도를 하는지, 중국 등 주변국 움직임은 어떤지 정황 분석과 간접 취재에 의존할 수밖에 없고, 북한에 대한 신뢰성 있는 정보 접근이 제한적이다. ‘팩트 확인’이 무엇보다 중요한 언론 입장에선 취재가 힘든 구조다.


그렇다보니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게 ‘대북 소식통’ ‘정보 소식통’이다. 이 ‘소식통’들은 정부 관계자일 수도, 북한을 연구하는 전문가일 수도 있고, 정치권 인사나 탈북민 단체일 수도 있다. 소식통이 누구냐에 따라 정보의 신빙성은 천양지차이지만 ‘팩트처럼 보이는’ 기사를 쓸 수 있는 유용한 루트다. 당사자가 북한이다보니 사실 확인도 어렵지만, 설령 ‘오보’로 드러나더라도 법적 시비에 휘말릴 위험이 없다. 기자들이 특종과 오보 사이에서 맴돌게 되는 이유다. 


문제는 추측과 미확인 전언이 수두룩한 북한 뉴스가 국내에 미치는 파장은 너무나 크다는 점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건강·신변 이상설을 다룬 보도가 대표적이다. 


지난달 20일 한 북한전문매체가 ‘김 위원장이 묘향산지구 향산진료소에서 심혈관 시술을 받았다’고 보도했을 때만 해도 파장이 그리 크진 않았다. 그러나 다음날 CNN이 김 위원장이 심혈관 수술을 받고 위중한 상태라는 정보를 미국 정부가 주시하고 있다고 보도하자 상황이 급변했다. CNN 보도 당일 코스피지수는 한때 3% 가까이 떨어졌고, 원·달러 환율도 급등했다.


청와대가 이례적으로 김 위원장 동선에 대한 설명을 비교적 소상히 내놓았지만 추측성 보도는 잦아들기는커녕 오히려 증폭됐다. 북한 뉴스에 민감한 일본의 한 주간지는 중국 의료 관계자로부터 전해들었다며 김 위원장이 심장 스텐트 시술을 받은 뒤 식물인간 상태에 빠졌다고 보도했다. 가정을 전제로 한 ‘~라면’ 기사도 쏟아졌다. 김 위원장의 위중·사망을 전제로 한 후계구도를 예측하는 기사들이다. 이 같은 상황은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 당선인들이 ‘김 위원장이 스스로 일어서거나 제대로 걷지 못하는 상태다’ ‘수술 쇼크로 사망했을 확률이 99%’라는 말을 보태며 정점을 찍었다. ‘국내 매체 보도→해외 언론의 재가공→정치권과 보수 유튜버의 확대 재생산→국내 언론 보도’의 악순환이 이어지는 사이 한반도 리스크는 고조됐다. 


김 위원장이 태양절 금수산태양궁전 참배에 불참하고, 북한 매체들이 침묵으로 일관한 것이 신변 이상설을 증폭시킨 측면이 있다. 더구나 그의 비대한 몸집은 건강에 대한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하지만 이러한 정황증거가 오보에 대한 책임을 덜어줄 순 없다. 더구나 대북 정보를 사실상 독점하고 있는 정부의 일관된 부인에도 불구하고 위중설·사망설을 다룰 정도라면 반박하기 힘든 수준의 명백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익명의 소식통과 외신 보도에 기대 무분별한 기사를 쏟아낸 언론의 의도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클릭 수를 높이고 싶거나 정치적 의도가 있거나. 어쨌든 이번 사태를 통해 언론의 위상은 또 한번 바닥을 확인했다. 진실 보도가 어렵다면 가짜뉴스만이라도 쓰지 말자.


<이주영 young78@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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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의 ‘코로나19 중국 책임론’ 공세를 보면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떠올렸다. 전개 상황이 너무나 닮았다. 이라크 침공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11테러의 주범 알카에다와 그 배후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정권을 무너뜨리려 언론과 손잡고 만든 합작품이다. 부시 행정부는 침공의 명분을 만들기 위해 후세인과 대량살상무기 관련 가짜뉴스를 언론에 흘렸다. 주류 언론조차 애국심 열기 속에서 특종경쟁에 사로잡혀 사실 확인에는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대서특필될 때마다 최고 당국자가 이를 확인해주면서 전쟁은 돌이킬 수 없게 됐다. 대표적인 기자가 뉴욕타임스의 주디스 밀러였다. 그는 이라크 망명인사 아흐메드 찰라비와 당국자들이 흘린 정보를 기사화해 부시 행정부 선전전의 선봉장이 됐다. 


코로나19 중국 때리기의 선봉장은 워싱턴포스트(WP) 칼럼니스트 조시 로긴이다. 그는 지난 4월14일 “우한 연구소의 박쥐 코로나바이러스 연구와 인간 전염 가능성으로 사스(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 같은 새로운 세계적 대유행 위험이 있다”고 주장했다. 출처는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전문, 익명의 행정부 관리들과 샤오창이라는 중국 반정부 인사의 말이었다. 그러면서 그는 기사 말미에 “우리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한 연구소에서 생겼는지 알지 못한다”고 썼다. 애초 연구소 유출설은 통일교가 운영하는 워싱턴타임스가 약 세 달 전인 1월26일 처음 보도했다. ‘우한 봉쇄’ 사흘 뒤 나온 이 뉴스는 관심을 끌지 못했다. 트럼프조차 중국의 조치를 칭찬하는 등 코로나19는 미국의 주요 관심사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WP 기사는 달랐다. 말 그대로 날개 돋친 듯 팔렸다. 초기 대응 미숙으로 확진자·사망자 수가 세계 최다를 기록하고, 호황이던 경제마저 침체로 접어들면서 트럼프에 대한 불만이 최고조에 달한 시점과 맞물린 덕분이었다. 보수 폭스뉴스뿐 아니라 진보 뉴욕타임스, 버즈피드, MSNBC 등도 퍼날랐다. 사흘 뒤에는 트럼프 행정부까지 가세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연구소에 대한 조사를 중국에 요청했다고 밝혔다. 트럼프는 연구소가 바이러스 유포지라는 주장에 지지를 선언했다. 재선을 6개월 앞둔 트럼프로서는 코로나19 대응 미흡에 대한 국내 비판의 화살을 중국으로 돌릴 수 있는 기회를 맞은 셈이다. 이후 트럼프 행정부의 공세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미국의 주장에 대해 중국은 물론 세계보건기구(WHO)와 각국의 감염병 전문가, 심지어 미 정보기관을 총괄하는 국가정보국장실과 합참의장조차 부인하고 있다. 중국 관련 유일한 사실은 최초 확진자 발생뿐이다. 중국이 확산을 은폐했다는 주장도 현재로서는 의혹이다. 그럼에도 가짜뉴스가 범람하면서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이 돼버렸다. 


이번 미·중 갈등은 코로나19 이후 주도권을 잡으려는 패권 다툼이다. 그리고 미국의 쇠퇴를 점치는 전문가들이 많다. 대표적인 이가 유럽연합 외교안보 고위대표 특별보좌관인 나탈리 토치 이탈리아 국제문제연구소장이다. 그는 코로나 위기에서 중국의 글로벌 역할을 강조하면서 중국이 선전전의 승리자라고 했다. 그는 “영국의 세계 패권을 궁극적으로 쇠퇴하게 만든 1956년 수에즈운하 위기처럼 코로나19 사태는 미국의 ‘수에즈 모멘트’가 될 것”이라면서 “그럴 경우 중국이 유일한 패권국가로 떠오르고 자유민주주의는 불가피하게 위험에 빠질 것”이라고 분석했다. 언론인 딜립 히로는 “미국이 공공보건 전문가들의 경고를 무시해 조기에 자택 대기를 해제하고 경제활동을 재개할 경우 1946년 이래 보유해온 ‘세계 지도력 트로피’는 중국으로 넘어갈 것”이라고 지적했다. 


누가 승자가 되든 미국 우선주의와 중국 굴기의 충돌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지구촌에 재앙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 국가안전부 산하 싱크탱크조차 미·중 무력충돌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지도부에 전달했다고 한다. 무력출동까지 가지 않더라도 제2의 무역전쟁은 불가피해 보인다. 더욱이 지금은 객관적인 사실이나 진실보다 개인의 신념이나 감정이 여론 형성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탈진실’ 시대다. 가짜뉴스가 판을 치는 상황에서 언론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일지도 모른다. 2003년 이라크 침공 때도 주류 언론들이 정권의 홍보수단으로 전락했을 때 묵묵히 진실을 파헤친 소수 언론들의 목소리는 묻혔다. 미국 주류 언론의 트럼프 저지는 정녕 불가능한 것인가.


<조찬제 논설위원 helpcho65@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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