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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0.03.11 ‘트럼프 정치’의 위기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3일 국립보건원에서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과 대화하고 있다. 베데스다 _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문재인 대통령 등 동북아 국가 지도자들을 차례로 시험대 위에 올린 코로나19 위기가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9일(현지시간)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752명, 사망자는 26명이다. 미국 본토 50개 주 가운데 32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서 감염자가 나왔다. 미국 보건당국이 코로나19 검사를 대폭 확대했으므로 발병 사례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리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한 사회 내의 한정된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 학자도 있다. 정치는 긴박한 위기의 순간에 최고 지도자의 철학과 가치관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해 빛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31일 중국인을 포함해 2주 이내에 중국에 체류했던 모든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막는 발빠른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과 언론이 온통 막바지에 도달한 상원 탄핵심판에 정신이 쏠려 있던 시기에 나온 과감한 조치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신종 바이러스 진원지에 대한 빗장을 걸어잠금으로써 번 시간을 실수와 허술한 방역대책으로 까먹었다.


그의 상황 인식과 그가 구사하는 특유의 정치는 상황 악화에 일조했다. 그는 지금도 코로나19를 계절마다 찾아오는 ‘독감’의 한 종류로 여긴다. “미국에서 매년 2만7000~7만명이 독감으로 사망한다”면서 코로나19는 크게 우려할 만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메시지도 반복했다. 위기를 지적하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은 ‘사기’이자 ‘제2의 탄핵 시도’로 치부했다.


외부와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위험성을 강조할수록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은 낮아진다. 다만 사회적·경제적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뿐 아니라 감염병 위협에 직면한 모든 사회의 지도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11월 재선을 위한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후자를 지키는 데 높은 가치를 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가치 배분은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고 방역대책을 세워야 할 미국 책임자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역할을 했다. 지역사회 감염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학교·회사의 일시적 폐쇄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보건 당국자는 그로부터 호통을 들은 걸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의 경고 중 일부가 현실이 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가 선거운동에 내세울 경제 실적으로 금지옥엽처럼 가꿔온 뉴욕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에게 도래한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의 도전은 처음이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며, 습관적으로 편을 가르는 ‘트럼프 정치’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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