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내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14만명을 넘어 중국을 제치고 세계 1위에 올랐다. 이 같은 코로나19의 확산 책임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자유롭지 않다. 트럼프는 후보 시절 전국민의료보험인 ‘오바마케어’ 폐지를 공약으로 내걸었고 집권 후 이를 무력화시켰다. 또한 미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글로벌감염예방프로그램 예산을 80%나 줄였고, 내년도 글로벌보건프로그램 예산도 30억달러나 삭감하는 등 공공의료에 대한 투자를 삭감했다.


고용, 주가 등 경제실적으로 트럼프가 대선 레이스 초반에 우세를 보였지만, 감염병 확산으로 실업자가 늘고 주가가 폭락해 위기관리능력에 의문이 제기되면서 미 대선은 혼전 양상을 띠고 있다. 11월3일 대선일까지 시간이 있어 속단하기 이르지만, 미 대통령이 누가 되느냐는 우리의 최대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공화당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가 재선될지,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지에 따라 한반도 문제가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재선에 성공하더라도 현 북·미 협상 방식을 되풀이한다는 보장은 없다. 하지만 3월 중순 김정은에게 보낸 친서를 통해 북·미 관계개선 구상을 제시한 데서 보듯이, 그가 재선되면 본격 협상에 다시 나설 가능성이 높다. 2기 트럼프 행정부는 초기 협상과정의 시행착오를 줄일 수 있고, 외교업적을 남기기 위해서도 3차 북·미 정상회담을 열어 한반도 비핵화협상을 타결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미 민주당 후보가 당선될 경우는 정책변화가 예상된다. 민주당 후보경선은 28명에서 출발해 지난 3월3일 슈퍼화요일을 거치면서 이제 중도파 조 바이든과 민주사회주의자 버니 샌더스의 양자 대결로 압축됐다. 그 뒤 치러진 경선에서 잇달아 승리하면서 바이든이 오는 7월16일 전당대회에서 민주당 대통령후보로 지명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조 바이든은 작년 5월 김정은 위원장을 폭군, 독재자라고 불러 북한당국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그는 줄곧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협상방식을 비판했지만 외교적 해법과 조건부 북·미 정상회담을 지지했다. 그는 웹사이트 공약집과 연설에서 한반도 비핵화를 위해 동맹국 및 중국 등과 조율할 것이며, 특히 오바마 행정부의 이란핵합의(포괄적 공동행동계획, JCPOA)가 대북 해법의 청사진을 제공한다고 긍정 평가했다.


국가 명운이 달린 북한으로서는 트럼프에게만 올인할 수는 없을 것이고 민주당 집권에도 대비하려 할 것이다. 여기서 바이든의 부통령 시절 타결된 JCPOA에 주목이 필요하다. 이는 독일이 중재를 맡고 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이 참여한 ‘5P+1 방식’의 협상 틀에서, 이란이 핵시설의 성능과 수량을 제한하는 대신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경제제재를 해제하기로 합의한 것이다. 이를 한반도에 적용한다면 북한의 협상상대로 미국 외에 중국, 러시아, 그리고 유럽의 안보리상임이사국 영국, 프랑스가 참여하는 방식이 된다. 여기서 우리 정부는 독일이 했던 중재자 역할을 맡아 새로운 협상 포맷이 만들어질 때 소외되는 일이 없도록 만전의 대비를 해야 할 것이다.


북한의 최근 행보와 관련해 최강일 외무성 북아메리카 국장대행의 오스트리아 대사 임명이 눈에 띈다. 그는 1990년대 오스트리아 대사관에서 근무했고 6자회담 성원으로 활동한 경험이 있는 핵협상 전문가이자 미국 전문가이다. 협상 타결 시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북한 핵시설의 감시·검증·사찰을 맡게 될지 모른다는 점에서 그의 역할이 주목된다. 그가 유럽국가들과 접촉해 새로운 협상 포맷을 구축하는 임무를 맡을지도 두고볼 일이다.


향후 북한의 태도에서 중요한 것은 미 대선 때까지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작년 말 북한 당중앙위 전원회의는 ‘새로운 전략무기’의 시험발사를 예고했다. 금년 들어 네 차례 단거리발사체를 쏜 북한이 전술무기를 넘어 전략무기 시험발사로까지 나간다면 미 대선에서 북한문제가 새로운 쟁점으로 떠오르게 될지 모른다. 이는 대선 후 북·미 협상 재개에 부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북한 당국으로서는 미 대선 전에 한국과 미국이 제안한 공동방역을 위한 의료지원 제안을 수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 유엔안보리 제재하에서 당창건 75주년 사업으로 추진 중인 평양종합병원도 건물 완공은 몰라도 최신 의료장비를 갖추기는 쉽지 않다. 북한에 한·미 의료협력은 그 자체로도 중요하지만, 북·미 협상의 재개에 대비해 제재의 면제 또는 완화의 명문과 실리를 축적할 기회도 된다. 미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든 스스로 내세운 ‘정면돌파전’ 추진을 위해서도 북한당국의 전향적 자세가 필요하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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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3일 밤 9시(미국 동부시간 기준) CNN 방송의 TV쇼 <쿠오모 프라임 타임>. 진행자 크리스 쿠오모(50)가 출연자를 소개했다. “뉴욕 주지사이자 나의 형 앤드루 쿠오모다. 또 나와줘 고마워.” 쿠오모 주지사(63)는 대뜸 “엄마가 나가야 한다고 하셨다”고 했다. 이 말의 숨은 뜻을 알려면 일주일 전 상황을 돌아봐야 한다. 지난 16일 쿠오모 주지사는 동생 프로그램에 출연해 뉴욕주의 코로나19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던 중 갑자기 형제는 ‘누가 엄마가 가장 좋아하는 아들인가’를 두고 티격태격했다. “형이 얼마나 열심히 일하는지 잘 알지만 엄마에게 전화할 시간은 있겠지? 엄마가 형 소식을 듣고 싶어해.” “나오기 전에 전화했어. 근데 엄마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자식이고, 너는 두 번째래.” 이 장면은 코로나19로 고통받는 미국인들에게 큰 웃음을 줬다. 쿠오모 주지사의 첫마디는 자신이야말로 엄마 말을 잘 듣는 자식임을 강조한 기선 제압용 멘트였다.


형제는 이날도 두 차례 서로 놀리는 장면을 연출해 시청자를 즐겁게 했다. 첫 번째는 동생이 중간광고 때문에 형의 말을 끊으며 시작됐다. “말을 끊어 미안한데….” “미안하면 끊지 마.” “밀어붙이는 재능을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 같아.” “넌 안 그렇고?” 둘의 아버지는 뉴욕 주지사를 두 차례 지낸 민주당 정치인 마리오 쿠오모(2015년 사망)다. 두 번째 장면은 방송 막바지에서 나왔다. “네가 나보다 훨씬 더 나아.” “농구장에서만 낫지.” “거짓말 마.” “아버지는 형이 여러 방면에서 축복받았지만 손이 바나나 같아서 공을 다룰 수 없다고 했지. 다 아는 얘기야.” 하지만 형 쿠오모의 동생 사랑은 널리 알려져 있다. 언론에 대한 극도의 불신을 보이면서도 “내 동생은 내가 믿을 수 있는 기자 중 한 명”이라고 책에 쓴 바 있다.


방송 후 쿠오모 형제를 내세워 코미디 정규 프로그램을 만들자는 제안들이 쏟아지고 있다. 실현만 된다면 대박감이다. 쿠오모 주지사는 코로나19의 최대 수혜 정치인으로 떠올랐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에 맞설 민주당의 대항마로 거론된다. 그는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동생 로버트 케네디 전 법무장관의 딸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쿠오모 형제의 행보가 궁금하다.


<조찬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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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메리카 에콰도르에서 태평양 쪽으로 약 1000㎞ 떨어진 곳에 19개의 섬들이 모여 있다. 갈라파고스 제도(Galapagos Islands)다. 1535년 파나마 주교 토마스 데 베를랑가라는 인물이 페루로 가던 중 표류하다 처음 발견했다. 갈라파고스란 이름은 스페인어로 안장을 뜻하는 ‘갈라파고’에서 유래했다. 말안장 모양의 등딱지를 가진 거북이들이 많아서 붙여졌다. 수백만년간 외부와 차단된 무인도였던 갈라파고스는 고유종들이 넘쳐나는 거대한 자연사 박물관이었다. 찰스 다윈은 1835년 탐험선 비글호를 타고 갈라파고스를 찾아 생물들을 관찰한 후 진화론의 기원이 되는 <종의 기원>을 펴냈다.


갈라파고스는 ‘고립’의 상징으로 통한다. 갈라파고스 증후군(Galapagos syndrome)이란 표현이 대표적 사례다. 국제 표준을 거부하고 독자 노선을 고집하다 세계시장에서 고립되는 현상을 말한다. 뉴욕타임스는 2009년 일본 소니의 휴대폰 사업 부진을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보도했다. 이 표현은 미국의 자동차 산업이 처한 상황을 비유할 때도 쓰인다. 국내 보수세력은 문재인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파기 결정 등 외교안보 정책이 고립을 자초할 것이라며 갈라파고스 증후군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거북이의 섬이었던 갈라파고스도 이제는 인간이 초래하는 재난에서 자유롭지 못한 신세가 됐다. 유명 관광지가 되면서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진 탓이다. 2017년 중국 어선은 갈라파고스 인근 해역에서 상어 6000여마리 등 희귀 어류 300t을 불법 조업했다가 에콰도르 당국에 적발됐다. 2018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거북이인 자이언트 거북이 123마리가 한꺼번에 도난당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대륙으로부터 매년 해변으로 밀려오는 플라스틱 쓰레기도 수십t이 넘는다. 코로나19도 갈라파고스를 비켜가지 않았다. 갈라파고스 산타크루스섬과 산크리스토발섬에서 4명의 코로나19 확진자가 확인됐다고 에콰도르 언론이 보도했다. 확진자들은 남미 대륙 에콰도르에서 최근 섬으로 들어왔다. 섬 출입 통제도 바이러스의 침투를 막지는 못했다. 이제 남은 코로나19 팬데믹(전염병의 세계적 유행) 청정지역은 어디일까.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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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도쿄 올림픽 연기가 유력해진 가운데 성화가 일본 이와테현 오후나토의 성화대에 옮겨 붙여지고 있다. 이 성화는 지난 20일 그리스에서 채화돼 일본으로 옮겨졌다. 오후나토 _ AFP연합뉴스


성화는 올림픽의 상징이다. 고대 올림픽의 제단을 밝힌 불꽃이 기원이다. 근대 올림픽으로 계승돼 1928년 제9회 암스테르담 올림픽 때 처음 재현됐다. 고대에 없던 성화 봉송은 히틀러 치하에서 열린 1936년 제11회 베를린 대회 때 깜짝 등장했다. 성화가 채화된 올림픽 발상지 그리스 올림피아에서부터 독일 베를린까지, 7개국을 거치는 3187㎞ 길을 3331명의 주자가 11박12일간 이어달렸다. 히틀러의 정치 선전 이벤트였던 셈이다. 전후 “나치의 아이디어를 두는 것은 수치”라는 반대가 나왔지만 국제올림픽위원회(IOC)는 평화·우정을 기치로 내걸며 1952년 대회부터 성화 봉송을 의무화했다.


꺼지지 않는 올림픽 정신을 상징하는 성화는 그동안 숱한 얘깃거리를 낳았다. 당대 첨단 과학기술을 동원한 해저·우주·로봇 이동이나 활쏘기·레이저 점화 등으로 놀라움을 주고, 평화·화합의 메신저나 인간승리의 주역들이 최종 주자로 나와 감동을 전했다. 논란도 많았다. 1984년 LA 올림픽은 처음 유료 성화주자를 모집해 성화 봉송을 상업화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유치한 중국은 야심차게 전 세계 13만7000㎞를 성화 봉송로로 삼았다가 가는 곳마다 반중 시위에 부닥치며 수난을 겪었다. 이후 올림픽 개최국들은 해외 봉송을 하지 않고 있다.


일본이 ‘부흥의 불’로 명명한 2020 도쿄 올림픽 성화의 앞길이 오리무중이다. 7월 개막하려던 올림픽이 1년 연기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때문에 무관중 채화식을 치르고 그리스 순회도 생략한 채 도쿄로 옮겨온 성화를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난감한 상황이다. 올림픽 강행을 포기하지 않은 채 일찌감치 받아온 성화를 어찌할까. 일단 끄고 내년에 올림피아에서 새로 채화할까. 아니면 성화를 밝힌 채 향후 1년간 일본에 보관할까. 전례 없는 일이라 올림픽 규정을 새로 정해야 한다. 올림픽을 연기시킨 코로나19가 성화의 역사도 새로 쓰게 했다. 당초 계획은 26일 후쿠시마현을 출발해 121일 동안 47개 광역자치단체 전역을 순회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1년 연기로 결정되면서 성화 일정이 꼬여버렸다. 일본에 도착한 성화의 운명은 예측불허다. 이 성화의 우여곡절이 도쿄 올림픽의 현실이다.


<차준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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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일 일본 올림픽위원회(JOC) 인사의 발언이 주목을 끌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여자 유도 동메달리스트인 야마구치 가오리(山口香) JOC 이사는 언론 인터뷰에서 “(코로나19 영향으로) 선수들이 만족스럽게 준비할 수 없는 상황에선 도쿄 올림픽을 연기해야 한다”고 했다. 일본 정부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정상 개최’를 고수하는 가운데 선수단을 파견하는 JOC 인사가 대회 연기를 처음으로 공개 요구한 것이다. 그는 “스포츠를 통해 세계 평화를 실현한다는 올림픽은 세계인이 즐길 수 없는 상황에서 열어선 안된다. 개최를 강행해 올림픽 그 자체에 의문의 시선이 향하는 게 가장 두렵다”고도 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야마시타 야스히로(山下泰裕) JOC 회장의 반응은 예상대로라고 할지. “모두가 힘을 쏟고 있는 때에 JOC의 사람이 그런 말을 하는 것은 매우 유감이다.” 한마디로 ‘분위기 흐리지 말라’는 것이다.


일본어 표현에 ‘구키(空氣) 요메나이’라는 게 있다. 공기, 즉 분위기를 읽지 못한다는 뜻이다. 한국에도 ‘분위기 파악 못한다’는 말이 있지만, 일본에서 ‘공기’가 주는 무게감은 훨씬 크다. ‘공기’를 읽고 맞혀야 한다는 보이지 않는 압박이 상당하다. 야모모토 시치헤이(山本七平)는 <공기의 연구>에서 이런 일본 사회의 공기를 “저항하는 사람을 이단시하고 ‘공기 거역죄’로 사회적으로 매장시킬 정도의 힘을 가진 초능력”이라고 했다.


야마구치 이사가 “JOC나 선수들 사이에선 ‘연기하는 쪽이 낫지 않나’라고 말할 수 없는 공기가 있는 것 같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실제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지도층은 앞장서 도쿄 올림픽에 ‘부흥올림픽’ 등 대단한 의미를 부여해왔다. 이에 따라 대회의 중지나 연기를 ‘아래’에서 공개적으로 말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형성됐다.


코로나19를 둘러싼 일본 사회의 일견 이해하기 어려운 모습도 이런 ‘공기’의 위력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는 중증 환자 치료에 중점을 두고 가벼운 증상자에겐 자택 요양을 권고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검사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이단’ 취급을 당한다. 검사 확대를 주장하는 전문가나 TV 방송은 전화 항의, 이른바 ‘덴토쓰(電凸·전화 돌격)’에 시달린다. 100만명에게 간이검사를 무상 지원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던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도 “의료기관에 혼란이 야기된다”는 비난에 2시간 만에 철회했다. 한국의 대량 검사는 의료 붕괴로 이어질 뿐이며, 차를 탄 채 검사를 받는 ‘드라이브 스루’ 방식은 부정확하다는 사실 호도도 횡행한다.


문제는 이런 ‘공기’가 자칫 현실과 동떨어진 결정을 내리게 하고, 책임을 모호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이론(異論)을 용납하지 않다보니 순발력이나 유연성도 떨어진다. 이득을 보는 건 기득권 세력이다. 마침 일본 국립감염병연구소가 코로나19 정보를 독점하기 위해 민간연구소의 검사 참여를 배제했다는 폭로도 나왔다. 한 일본 언론인은 전후 경제성장을 이룬 ‘저팬 애즈 넘버원(1등 일본)’ 신화가 여전히 일본 사회에 횡행하는 게 문제라고 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일본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드러내고 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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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1일 전술유도무기 시범사격을 참관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2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냈다. 지난 1월 김정은 위원장 생일에 친서를 보낸 이후 두 달 만이다.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22일 낸 담화를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친서에서 북·미관계 추동 구상을 설명하면서 코로나19 방역과 관련해 북한에 협조할 의향을 전달했다고 한다. 


모처럼의 트럼프 친서에 ‘북·미관계 추동 구상’이 담겨 있다는 게 특히 관심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김 부부장은 담화에서 “(정상 간의) 개인적 친분관계가 두 나라의 관계발전 구도를 얼마만큼이나 바꾸고 견인할지는 미지수”라고 했다. 그러면서 “공정성과 균형이 보장되지 않고 일방적이고 과욕적인 생각을 거두지 않는다면 두 나라의 관계는 계속 악화일로에로 줄달음치게 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 말대로라면 친서에 담긴 ‘북·미관계 구상’은 북한 변수가 대선 레이스의 장애가 되지 않도록 하려는 상황관리 차원의 메시지였을 것으로 보인다. 북·미 협상에서 ‘새로운 셈법’을 요구해온 북한이 보기에 전향적인 내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북한도 그런 맥락으로 이해한 듯하다. 그러나 북·미 협상이 장기간 교착되고 있는 상황에서도 정상 간 ‘친서외교’가 여전히 작동하고 있다는 것은 의미가 작지 않다.   


북한 측은 트럼프 친서의 두번째 메시지인 코로나19 방역협력 제안에 대해 수용 여부는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방역협력 제안 사실을 공개한 것은 눈길을 끈다. 코로나19 방역협력은 문재인 정부도 북한에 제안한 바 있다. 북한은 코로나19 확산 초기 북·중 국경을 폐쇄하는 등 철저한 방역대책을 시행해왔고, 공식적으로는 확진자가 없다고 밝혀왔다. 실제로 그렇다면 남측과 미국의 방역협력 제안이 북한에는 괜한 참견처럼 비칠 수도 있다. 


그러나 방역협력에 대해서는 북한도 인식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사태는 중국·한국에선 주춤세라고 하지만, 유럽·미국 등에선 확산일로여서 장기전에 대비해야 할 상태다. 국경 폐쇄 같은 극약처방은 ‘단기전’에서야 효과가 있겠지만, 고립상태의 장기화는 북한에도 부담일 수밖에 없다. ‘팬데믹’은 국제사회 구성원이 함께 손잡고 극복해야 할 글로벌 위기이다. 지금은 핵 문제에 대한 입장차를 잠시 접어두고 남·북·미가 지구적 재난에 공동 대처할 필요가 있다. 북한의 전향적인 태도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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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무장조직인 탈레반과 미국 간 합의 도출을 계기로 아프간이 평화와 안정을 찾을 수 있는 기회의 창이 열렸다. 이번 합의의 골자는 1만6000명의 미군과 다국적군이 단계적으로 완전 철수하는 대신 탈레반은 테러활동을 중단하고 아프간 정부와의 협상을 통해 포괄적인 정부 수립에 협력하는 것이다. 9·11테러로 촉발돼 19년째 이어온 미국 역사상 ‘가장 긴 전쟁’이 끝나고 앞으로 2년 내에 미군 철수가 완료될 가능성이 보인다.


최대 관건은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 간의 협상이다. 아직은 회의적 전망이 많다. 아프간 정부는 지난해 실시된 대통령선거 여파로 지도부가 내분을 겪는 상태여서 탈레반과의 협상을 위한 대표단 구성에 합의를 이룰 수 있을지도 불투명하다. 국토의 절반 정도를 장악하고 있는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를 괴뢰 정부로 취급하면서 직접대화를 거부해왔다. 협상과정에서 여러 세력의 집합체인 탈레반의 내분과 강경파의 득세도 우려된다.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이 보이는 것은 무엇보다 관련 당사자들이 모두 고통스러운 현실에 너무 지쳐있다는 점이다. 아프간 국민들은 1979년 소련의 침공부터 지금까지 40년간 전쟁을 겪으며 아시아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해외 난민도 수백만명에 이른다. 탈레반은 미국과의 직접 협상으로 이미 정치적 위상이 높아졌다. 특히 제재 해제 등의 합의가 이행되면 합법적 정치단체로 탈바꿈할 수 있다.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는 탈레반으로서는 포기하기 어려운 인센티브다. 미국 역시 끝이 보이지 않았던 전쟁에서 ‘명예로운 철수’가 필요하다. 국내적으로도 정치적 타협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데 초당적 공통 인식이 있다.


아프간 정부와 탈레반의 협상은 국제사회의 후원 아래 아프간 주도로 이뤄지므로 결국 아프간의 미래는 아프간 국민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협상의 결과는 아프간만이 아닌 국제사회의 것이기도 하다. 원만한 협상 진행과 치안 확보, 경제 재건 등을 위해선 국제사회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미 노르웨이 등 여러 국가에서 장소 제공 등 협상을 후원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나라도 세계 10위권의 국력에 부합하게 지난 20년간 아프간 재건과 인도주의적 지원을 위해 총 10억달러 규모를 원조해왔고 올해는 아프간 군신탁기금이사회의 공동의장직을 수임하고 있다.


나는 지난달 파키스탄 정부와 유엔난민기구(UNHCR)가 공동 주최한 아프간 난민 관련 국제회의에 정부대표로 참석하면서 파키스탄과 아프간 접경 지역의 난민촌을 방문했다. 파키스탄에는 140만명의 아프간 난민이 체류 중이다. 소련의 아프간 침공 때부터 40년째 3대가 피란 생활을 하는 난민도 있다. 이들의 팍팍한 삶과 이들을 장기간 수용해온 파키스탄 국민들의 고충 모두 이해가 된다. 열악한 교실에서 학생 70명이 모여 수업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초등학교 3학년 소녀가 네 살배기 동생을 데리고 수업을 받고 있었는데, 집에 동생을 봐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린 소녀의 얼굴에 벌써 삶의 고단함이 배어 있었다. 우리 국민들이 개인적으로 기부한 난민 성금 일부가 이들을 위해 사용되고 있다.


우리의 아프간 재건 노력 동참은 인도적 차원을 넘어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미국의 아프간 안정화 노력에 기여함으로써 한·미관계가 강화되면 결국 한반도 문제에 대한 한·미 공조로 연결된다. 고질적인 국제분쟁의 해결에 기여하는 것은 국제적 위상에 걸맞은 책임이기도 하다. 또한 실크로드가 지나는 길목이자 남아시아와 중앙아시아를 연결하는 전략적 요충지로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는 아프간에 대한 지원은 이 나라의 희망과 미래에 대한 투자다. 어려울 때 친구가 진짜 친구라는 말은 진부하지만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요즈음은 어쩐지 새롭게 다가온다.


<김영채 | 외교부 아프가니스탄·파키스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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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식시장에서 랠리(rally)는 떨어졌던 주가가 회복해 상승세를 이어가는 것을 말한다. ‘다시 합치다’란 의미의 프랑스어에서 유래한 이 말은 정치 집회나 자동차·오토바이 경주 그리고 테니스 등 경기에서 공을 주고받으며 공수를 이어가는 것 등을 뜻한다. 이 말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도 함께 쓰였다. ‘트럼프 주식시장 랠리(Trump stock rally).’ 국내 언론은 ‘트럼프 랠리’로 옮겼다.


친기업 정책이 예상되면서 트럼프 정권 초부터 주가는 상승했다. 대선 날인 2016년 11월8일 1만8332였던 뉴욕증시의 다우지수는 2017년 1월 2만을 뚫고 올라갔다. 집권 1년 만에 트럼프의 지지율은 지난 70년 미국 대통령 중 최저로 추락했지만, 증시는 활활 끓었다. 집권 첫해 주가 상승률만 보면 트럼프는 존 F 케네디와 조지 H W 부시에 이은 세번째였다.


트럼프에게 주식시장 랠리는 최고의 자랑거리이자 재선을 위한 무기였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뉴욕타임스의 칼럼니스트 폴 크루그먼은 지난해 봄 주가와 상관없이 미국은 경기침체의 경계에 서 있다고 경고했다. 그러자 트럼프는 ‘증오에 사로잡힌 바보’라고 트위터 공격을 날렸다. 트럼프는 “예전에는 경제가 좋으면 대통령은 비판에서 자유로웠다. ‘문제는 경제야, 바보야’라는 말도 있지 않나. 나는 역대로 가장 위대한 경제를 만들었다”며 주가를 근거로 들었다. 지난 1월 다보스포럼 연설에서는 “나는 미국이 경제 활황의 한가운데 있음을 자랑스럽게 선언한다”고 말했다. 


그 트럼프 랠리가 코로나19라는 복병을 만나 한 방에 무너졌다. 지난달 12일 2만9551까지 올라 3만 돌파를 눈앞에 두었던 다우지수는 코로나 공포에 급전직하로 추락, 18일 1만9898로 내려앉았다. 트럼프 랠리의 출발점이던 다우지수 2만까지 무너지면서 지난 3년의 상승분이 한 달 만에 사라졌다. 미국인 1인당 1000달러씩 현금 지급 등 1조달러 규모의 경기부양책을 언급하며 반전을 노렸지만 반짝효과에 그쳤다. 트럼프가 확실한 재선의 명분으로 내세운 주식시장 랠리가 물거품처럼 꺼져 버렸다. 온갖 변수에 출렁이는 주가를 국정운영의 성적표로 삼는 게 얼마나 허망한 일인지를 잘 보여준다.


<박영환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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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9일 중국의 최대 온라인 쇼핑몰 타오바오가 특별한 인터넷 생방송을 했다. 제목은 ‘보위 독립서점’. 전국 각지에 있는 5개의 개성 있는 독립서점들이 참여했다. 과거 방공호를 개조해 만든 난징의 셴펑(先鋒)서점, 광저우의 첫 24시간 서점 1200북숍, 충칭의 징뎬(精典)서점, 리커창 총리도 방문했던 항저우의 샤오펑(曉風) 그리고 자싱의 유토피아(烏托邦)서점 창업자들이 직접 출연했다. 


창업자들은 이날 책을 소개하지 않았다. 대신 서점에 대해 이야기했다. 셴펑서점의 창업자는 서점이 한 달 넘게 문을 닫은 것은 20여년 만에 처음이라고 했다. 그는 “텅 빈 서점을 보면 마음이 찢어지고 괴롭다”고 했다. 셴펑은 영국 BBC방송이 뽑은 세계 아름다운 10대 서점 중 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선정됐다. 


샤오펑서점 주인은 “2003년 사스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고 했다. 지난달 24일에 문을 다시 열었는데 그날 손님은 15명뿐이었다.


유토피아서점은 지난달 말 이미 폐점을 선언했다. 토머스 모어가 쓴 동명의 책에서 이름을 따온 이 서점은 “유토피아의 이념, 평등, 자유, 공유의 방식으로 하나의 생활 방식을 만들어 보겠다”며 4년 전 개업했다. 독립영화 크라우드펀딩, 독서회, 민중가요 행사 같은 활동을 열어 문화공간 역할을 했다. 온라인 쇼핑몰에 밀려 회원제 전환으로 돌파구를 마련하려던 차에 코로나19까지 만나 매출이 제로로 떨어졌다. 서점 주인은 “밥은 먹고 살아야 해 서점을 닫지만 지난 4년간 인정도, 즐거움도 얻었다”면서 “유일하게 잃은 것은 돈뿐”이라고 말했다. 


이날 방송에서는 각 서점에서 준비한 책 세트를 팔았다. 세트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었지만 5000개 넘게 팔렸다. 매출액으로는 50만위안(약 8800만원)에 달한다. 고객들은 이 세트가 어떤 책으로 구성됐는지 미리 알 수 없다. 세트마다 구성도 다 다르다. 이를테면 ‘복불복 게임’ 같은 책 꾸러미다. 보지 않고 사는 세트라 이름도 ‘망대(盲袋)’로 붙였다.


요 며칠 새 소셜미디어에는 이 책 세트를 전달받고 열어보는 ‘언박싱’ 동영상이 올라오고 있다. 수준 높은 책을 추천해줘서 고맙다는 평가가 대부분이다.


코로나19로 많은 업종들이 타격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종이책을 파는 서점의 타격이 상당하다. 대형 프랜차이즈 서점뿐 아니라 중소형 독립서점은 상황이 더 심각하다. 지난달 중소형서점 연합회에서 1021곳의 오프라인 서점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99%가 코로나19로 정상적 수입을 얻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대부분은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고 했다.


이날 독립서점들을 응원하기 위해 방송에 참여한 작가 겸 출판인 쉬즈위안(許知遠)은 코로나19 사태에 책의 소중함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그는 “서점은 도시에서 사람을 연결해주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면서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삶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책을 이해하려는 갈망이 더 커진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산업지형을 빠르게 바꾸고 있다. 그러나 서점까지는 앗아가지 않았으면 한다. 책을 매개로 사람이 모이고 문화가 쌓이는 서점까지 없다면 세상이 얼마나 삭막할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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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김포국제공항 국제선 청사의 국제선 출발을 알리는 전광판이 텅 비어 있다. 이날 김포국제공항을 오가는 국제선 항공기는 ‘0’편, 이용객도 ‘0’명을 기록했다. 중국, 일본, 대만행 비행기가 출발·도착하는 국제선의 운항이 없었던 날은 김포공항이 인천공항으로부터 국제선 운항을 넘겨받은 2003년 11월 이후 처음이다. 김창길 기자


감염병은 대중에게는 공포이지만 정권에는 위기다. 관료제는 돌발적 위기 대응에 효율적이지 않아서 어느 나라든 위기가 닥치면 정부가 비난을 받기 쉽다. 정권의 위기감은 외교의 기조를 바꾼다. 국내정치와 외교는 동전의 앞뒷면과 같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전염병이라는 보건의학적 이슈는 이처럼 정치라는 경로를 통해서 외교의 영역으로 침투한다.


코로나19로 인한 정치적 위기를 피하기 위해 각국 정부가 내놓은 가장 쉬운 선택은 입국제한이다. 대중의 공포와 정권의 위기 앞에서 외교적 관례나 국제예양은 뒤로 밀릴 수밖에 없다. 봉쇄는 감염병을 지연시킬 뿐 궁극적 대책은 되지 못한다. 하지만 국민들의 불안과 공포를 잡아야 하는 정권의 입장에서는 제한적 조치라도 마다하기 어렵다. 코로나19 감염국에 대한 입국제한이 바이러스보다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가고 지금 전 세계 국가 절반 이상이 한국에 대해 빗장을 걸어 잠그게 된 배경이다.


이 상황을 ‘외교 참사’로 규정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다. 한국이 입국제한 대상이 된 것은 외교적 역량부족이나 판단 착오로 빚어진 것이 아니다. 또한 각국이 적절한 절차를 거쳤다면 입국제한 조치를 비난하는 것도 온당치 못하다. 국가마다 상황이 다르고 대처 능력도 다르다. 각국은 자신들의 의료체계와 행정력, 국가적 우선순위를 종합적으로 감안해 대응책을 선택하게 된다. 정치·경제·외교적 고려도 당연히 여기에 포함된다. 방역이 국가 주권의 영역에 해당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외교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사안도 아니다. 한국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전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고 있다 해도, 어쨌든 8000명에 육박하는 확진자가 나왔다는 결과는 인정해야 한다.


한국이 선택한 코로나19 대응 정책은 봉쇄와 차단이 아닌 ‘개방을 유지하는 투명한 통제’다. 방역 능력과 의료시스템에 대한 자신감이 이 같은 선택에 일조했을 것이다. 방역 외에 경제·외교적 고려도 물론 있었다. 한국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매우 크고 엄청난 숫자의 재외국민을 가진 나라다. 바이러스를 막아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코로나 이후의 상황’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며 입국금지를 하지 않아 지금과 같은 사태를 초래했다고 비난하는 것은, 적어도 현 단계에서는 합리적이지 않다. 연간 교역액 3000억달러, 교류 인원 1000만명의 한·중관계를 감안하면 입국 차단은 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감시를 피한 왕래로 감염이 일어날 경우 추적이 불가능해지고 방역체계가 무너질 위험이 있었다.


정부가 다 잘한 것은 아니다. 초기에 중국 후베이성에 대한 입국제한 이후 다른 1~2개 지역으로 점차 확대하는 조치는 방역뿐 아니라 정치·외교적으로도 필요했지만 타이밍을 놓쳤다. 지나치게 중국을 배려하는 듯한 ‘외교적 레토릭(수사)’은 국내 여론은 물론 외교적 측면에서도 적절치 못했다. 일본의 한국인 입국제한 조치에는 “정치적 의도가 있다”고 용수철처럼 반발하며 똑같은 ‘정치적 조치’로 대응함으로써 코로나19 사태 이후 줄곧 유지해왔던 정책의 일관성을 스스로 무너뜨렸다. 일본의 무리수에 같은 무리수로 대응하는 것은 이기는 방법이 아니다.


전 세계를 휩쓸어버린 감염병 사태에 완벽히 대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엄청난 사회적 혼란과 외교적 손실을 입긴 했지만 촘촘한 공공의료 체계와 혼신의 힘을 다하는 행정서비스 덕분에 아직은 통제 가능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사망자 수도 여타 감염국에 비해 현저히 낮은 수준이어서 일상적 위험인 교통사고에 따른 사망자 수보다도 적다.


지금 전 세계는 개방성과 투명성을 선택해 고군분투하는 한국에 어떤 결과가 있을지 주목하고 있다. 나는 한국이 어렵더라도 지금과 같은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면서 이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도시 위주의 높은 인구밀도와 아파트식 집단주거형태 등 최악의 조건을 갖고 있는 한국이 개방을 유지한 채 바이러스를 통제하게 된다면, 인권 침해적이며 글로벌 밸류체인을 깨뜨리는 봉쇄정책과 비밀유지에 급급한 소극적 대응을 하지 않고도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수 있음을 증명할 수 있다. 앞으로도 ‘감염병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인류가 어떤 국가도 혼자 힘으로 팬데믹을 막을 수 없으며 세계적 차원의 개방과 소통, 협력강화 등의 공조가 필수적이라는 점을 한국의 경우를 통해 인식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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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12일 총리 집무실에서 코로나19 대응 논의를 위해 예방한 고이케 유리코 도쿄도지사와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도쿄 _ AFP연합뉴스


일본의 사이타마시가 관내 유치원과 보육원에 코로나19 감염 방지용 마스크를 배포하면서 조선학교 유치부를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이타마시는 지난 9일부터 관내 유치원과 방과 후 아동클럽 등 1000여곳의 어린이 관련시설에 약 9만3000장의 마스크를 나눠주면서도 41명이 다니는 조선초중급학교 부설 유치부는 대상에서 제외한 것이다. 시 당국이 지도·감독하는 시설이 아니라는 게 배제 이유다. 시 직원은 이유를 설명하면서 “마스크를 다른 곳에 팔아넘길지 모른다”는 취지의 폭언도 했다고 교도통신이 전했다. 재일조선인은 ‘비국민’으로 취급하겠다는 졸렬하고 야만적인 행태에 분노를 금할 수 없다. 


일본 정부의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은 익히 알려져 있다. 2013년 아베 신조 정부는 고교수업료 무상화 정책을 실시하면서 조선학교를 지원대상에서 제외하는 법을 제정해 차별을 제도화했다. 조선학교가 친북 성향의 재일조선인총연합회와 밀접한 관계가 있어 취학지원금이 수업료로 쓰이지 않을 수 있다는 이유를 댔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와 아동권리위원회가 학생들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누려야 한다며 여러 차례 시정을 권고했지만, 일본 정부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 10월에는 유아교육·보육 시설 무상화 정책을 시행하면서 조선학교 유치원을 제외했다. 소비세 인상을 기해 세금 일부를 시민들에게 되돌려준다는 취지로 도입한 정책인데, 일본인들과 똑같이 납세 의무를 지켜온 재일조선인의 자녀들은 제외한 것이다. 이런 부당한 차별은 응당 철폐해야 한다. 


한술 더 떠 이번에는 코로나19 사태 대응에서도 재일조선인을 차별하고 있으니 어이가 없다. 방역에 정치적 판단이 개입돼선 일을 그르치게 된다는 것을 ‘요코하마 크루즈선 집단감염 사태’를 치르고도 일본 정부는 배우지 못한 것인가. 일본 정부는 국적을 막론하고 일본에 거주하는 모든 이들을 감염병에서 보호할 책임이 있다. 그래야 일본인들의 안전도 지킬 수 있는 것 아닌가. 


이번 사건은 한 지방자치단체가 벌인 일로 넘길 일이 아니다. 일본 정부의 그릇된 재일조선인 정책이 차별과 배제를 낳은 원인임이 명백하다. 일본 정부는 코로나19 방역대책에서 재일조선인 등 소수자·약자들이 배제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재일조선인에 대한 차별정책을 이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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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3일 국립보건원에서 앤서니 파우치 국립알레르기·감염병연구소 소장과 대화하고 있다. 베데스다 _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피하지 못했다.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 문재인 대통령 등 동북아 국가 지도자들을 차례로 시험대 위에 올린 코로나19 위기가 급기야 트럼프 대통령을 찾아왔다. 미국 존스홉킨스대학교의 9일(현지시간) 집계에 따르면 미국의 코로나19 감염자는 752명, 사망자는 26명이다. 미국 본토 50개 주 가운데 32개 주와 수도 워싱턴에서 감염자가 나왔다. 미국 보건당국이 코로나19 검사를 대폭 확대했으므로 발병 사례는 계속될 것이다.


미국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를 가리켜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한 사회 내의 한정된 권력과 자원을 배분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는 것이다. “누가 무엇을, 언제, 어떻게 갖느냐”를 결정하는 것이 정치라고 말한 학자도 있다. 정치는 긴박한 위기의 순간에 최고 지도자의 철학과 가치관이 더 큰 영향을 받는다. 최고 지도자의 리더십이 국가적 위기를 맞이해 빛나기도 하지만 잘못하면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돌이켜 보면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31일 중국인을 포함해 2주 이내에 중국에 체류했던 모든 외국인의 미국 입국을 막는 발빠른 조치를 취했다. 트럼프 대통령 본인은 물론이고 야당인 민주당과 언론이 온통 막바지에 도달한 상원 탄핵심판에 정신이 쏠려 있던 시기에 나온 과감한 조치였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신종 바이러스 진원지에 대한 빗장을 걸어잠금으로써 번 시간을 실수와 허술한 방역대책으로 까먹었다.


그의 상황 인식과 그가 구사하는 특유의 정치는 상황 악화에 일조했다. 그는 지금도 코로나19를 계절마다 찾아오는 ‘독감’의 한 종류로 여긴다. “미국에서 매년 2만7000~7만명이 독감으로 사망한다”면서 코로나19는 크게 우려할 만한 게 아니라고 주장한다. “코로나19는 철저하게 통제되고 있다”는 메시지도 반복했다. 위기를 지적하는 야당과 언론의 비판은 ‘사기’이자 ‘제2의 탄핵 시도’로 치부했다.


외부와의 빗장을 단단히 걸어잠그고 위험성을 강조할수록 바이러스 확산 가능성은 낮아진다. 다만 사회적·경제적 활력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코로나19뿐 아니라 감염병 위협에 직면한 모든 사회의 지도자들이 고민하는 문제다. 11월 재선을 위한 선거를 앞둔 트럼프 대통령은 후자를 지키는 데 높은 가치를 뒀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가치 배분은 대중에게 경각심을 주고 방역대책을 세워야 할 미국 책임자들의 입을 막고 손발을 묶는 역할을 했다. 지역사회 감염을 기정사실화하면서 학교·회사의 일시적 폐쇄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한 보건 당국자는 그로부터 호통을 들은 걸로 전해졌다. 이 당국자의 경고 중 일부가 현실이 되는 데는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았다. 그가 선거운동에 내세울 경제 실적으로 금지옥엽처럼 가꿔온 뉴욕증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최악의 폭락을 기록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후 자신에게 도래한 여러 차례의 위기를 극복했다. 하지만 사람이 아닌 바이러스의 도전은 처음이다.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고, 절차와 규범을 무시하며, 습관적으로 편을 가르는 ‘트럼프 정치’가 이전에는 경험하지 못한 시험대에 오른 것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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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4일 코로나19와 싸우는 남측 국민들에게 위로의 뜻을 전하는 친서를 문재인 대통령 앞으로 보내왔다. 문 대통령도 감사의 뜻을 담은 답장을 5일 보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윤도한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김 위원장이 친서에서 “반드시 코로나19를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 남녘 동포의 소중한 건강이 지켜지기를 빌겠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또 “김 위원장은 문 대통령의 건강을 걱정하며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대해 안타까운 심정을 표했다. 문 대통령이 코로나19 바이러스를 반드시 극복할 수 있도록 조용히 응원하겠다며 문 대통령에 대한 변함없는 우의와 신뢰를 보냈다”고 설명했다. 더불어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도 피력했다고 한다. 


김 위원장이 문 대통령 앞으로 친서를 보낸 것은 지난해 10월30일 문 대통령의 모친상 당시 조의문 이후 4개월 만이다. 지난해 이후 북·미 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지면서 남북관계가 얼어붙은 상황에서 코로나19 사태로 고통을 겪고 있는 남측 국민과 문 대통령을 위로하는 친서를 보낸 것은 의미가 각별하다. 남북관계의 정체에도 불구하고 정상 간 신뢰는 여전하다는 점을 확인하고 있어 다행스럽다. 친서를 보내기 전날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이 청와대의 발사체 발사 중단요구에 대해 거친 표현을 담은 담화문을 발표한 것을 감안하면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군사훈련을 둘러싼 공방과 친서를 굳이 연결시켜 의미를 절하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친서에 담긴 ‘마음뿐일 수밖에 없는 상황’ ‘조용히 응원하겠다’는 표현이 “감염병 확산에 남북이 함께 대응하자”는 문 대통령의 3·1절 제안에 대한 화답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김 위원장이 피력했다는 한반도 정세에 대한 진솔한 소회와 입장이 무엇인지도 공개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처럼 남북 정상 간에 솔직한 의견을 나눌 기회가 마련된 것은 바람직하다. 


문 대통령과 김 위원장은 그동안 모두 네 차례씩 친서를 주고받으며 남북 대화의 중요한 계기를 만들어왔다. 이번 정상 간 친서교환도 남북관계 복원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한다. 코로나19 대응에 협력할 방안을 찾는 것이 우선이지만 현실에 맞춰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나갈 필요가 있다. 대북 제재와 어긋나지 않는 방법으로 남북이 협력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태도가 자연스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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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올해로 집권 9년째를 맞고 있다. 아버지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권좌에 오른 김 위원장에게 국제사회는 기대와 우려의 시선이 교차하였다. 불투명한 이력과 검증되지 않은 리더십에 우려가 컸지만, 유학 경험을 가진 젊은 지도자에게 개혁과 개방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까지의 상황으로만 보면 우려가 기우가 아니었다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가 문제다. 김 위원장에게 올해는 중요한 변곡점이 될 것이다. 집권 이후 세 번째 시험대에 올라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시험대는 홀로서기였다. 급조된 세습체계를 안정적으로 끌고 가기 위해 통치 기반을 다지는 것이 과제였다. 김 위원장은 취약한 정통성과 일천한 국정 경험을 보완하기 위해 부득이 장성택과 리영호 등 원로들(이른바 운구차 7인방)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고모부이자 최고 실세였던 장성택을 제거하고 헌법 개정과 조직 개편을 통해 당·정·군을 완전히 장악함으로써 안정적 통치체제를 구축하는 데 성공하였다. 


두 번째 시험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맞상대였다. 대미 직접 협상은 선대로부터 해결하지 못한 숙원사업으로, 이를 통해 체제안전을 보장받고 대외환경을 개선하는 중차대한 과제였다. 김 위원장은 2017년 말 서둘러 ‘핵무력 완성’을 선언하고 이를 수단으로 대미 접근을 시도하였다. 트럼프 대통령을 세 차례 만나고 남북, 북·중, 북·러 정상회담을 통해 정상국가 지도자로서 위상 제고에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하노이 회담 결렬로 비핵화 협상이 교착 국면에 빠지고 전망도 불투명하게 됨에 따라 두 번째 시험대는 절반 이하의 성공에 그칠 공산이 커졌다. 


세 번째 시험대는 새로운 길로 선택한 ‘정면돌파전’이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12월 말 조선노동당 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대미 협상에 연연하지 않고 국제사회의 대북 제재를 정면으로 돌파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하였다. 현 국면을 장기전으로 보고 ‘경제전선’을 주 전선으로 하여 자력갱생을 통해 트럼프의 정책 전환을 압박하겠다는 전략이다. 이를 위해 연초부터 평양시 군중대회를 비롯한 주민 총동원 체제에 돌입하였다. 


그러나 김 위원장의 구상은 예상치 못한 복병(伏兵)으로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정면돌파전’ 전략에 차질을 빚게 된 것이다. 대중 국경폐쇄로 ‘뒷문’ 역할을 해오던 중국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게 되었고, 비상방역으로 주민동원도 어렵게 되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월29일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전염병 유입 시 심각한 후과”를 경고하면서 방역활동을 “인민 보위의 중대한 국가사업”으로 규정하였다. 그만큼 사태를 위중하게 보고 있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거나 북한 내 확산으로 이어질 경우 정면돌파전에 실패하고 또 다른 길을 찾아야 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이 읽힌다. 김 위원장의 올해 국정운영이 새롭게 부상하고 있는 신안보(emerging security) 위협의 도전을 받고 있는 것이다. 감염병을 비롯한 신안보 이슈는 군사력 중심의 전통안보(traditional security)와 달리 초국경적이고 예측이 어렵다는 특성 때문에 혼자 힘만으로는 극복할 수 없다. 남북한 협력과 국제사회와의 공조가 필수적이다.  


김 위원장이 세 번째 시험대를 어떻게 통과할지 두고 볼 일이다.


<김호홍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수석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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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 전선 장거리포병구분대의 화력타격훈련을 지도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북한 조선중앙통신은 3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전선 장거리포병부대의 방사포 발사 훈련을 직접 지도했다고 보도했다. 북한이 원산 인근에서 동해 방향으로 발사체 2발을 발사한 데 대한 보도다. 북한 매체가 공개한 사진을 보면 이동식발사차량에 탑재된 원통형 발사관에서 쏘아 올리는 장면 등으로 볼 때 ‘초대형 방사포’로 추정된다. 북한은 지난달 28일 원산 일대에서 합동타격훈련을 실시했고, 이번 발사도 훈련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미사일을 운용하는 전략군에 의한 탄도미사일 발사가 아니라 포병부대에서 이뤄진 방사포 훈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과 한국을 직접 겨냥해 비난하는 관련 보도도 없다. 그렇지만 전 세계가 코로나19로 혼돈에 빠져 있는 상황에서 때아닌 무력행동을 벌인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북한의 자중을 촉구한다. 


북한이 지금 집중해야 할 일은 한반도 군사적 긴장을 유발하는 군사행동이 아니라 코로나19가 한반도에서 더 번지지 않도록 철저한 방역에 만전을 기하는 것이다. 북한 당국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한명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방역물자 수급 등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 최근 북한 보도에 따르면 ‘의학적 감시대상’ 주민이 7000여명에 달한다고 하니 이들 중 확진자가 나올 가능성도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일 3·1절 축사에서 남북 보건협력 필요성을 언급한 것은 이런 사정을 고려한 것이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국경을 넘는 어떠한 교류도 감염병 변수를 고려해야 하는 상황이 되고 있다. 더구나 육지로 이어진 남북관계에서 방역협력의 중요성은 지난해 홍역을 치른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사태에서 절감한 바 있다. 감염병은 코로나19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방역협력은 경색된 남북관계를 풀기 위한 실마리가 아니라 남북 공동의 신(新)안보의제이자 교류협력의 전제조건이라는 차원으로 인식해야 한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남북 방역·보건 협력에 나서 상황악화를 막아야 한다. 같은 한반도 공간에 있는 남북이 전 지구적 재난에 힘을 모으는 것은 국제사회 일원으로서 당연한 책무이다. 방역협력은 당국 간에 이뤄지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민간단체나 국제기구를 통한 우회지원 등 형태에 구애받지 말아야 하고, 때에 따라서는 비공개로 추진할 필요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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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허난성 덩저우의 14세 소녀가 자살하려고 엄마의 약을 삼켰다.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소녀의 어머니가 매일 먹는 약이다.


소녀가 죽으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인터넷 수업’ 때문이다.


소녀의 아버지는 왼쪽 다리에 장애가 있다. 농사 대신 구두 수선으로 생계를 꾸린다. 어머니는 정신질환이 있어 직업이 없다. 소녀에게는 고등학교 1학년 언니와 초등학교 6학년 남동생이 있다.


전에도 가난했지만 가난이 도드라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코로나19가 가난의 민낯을 강제로 공개해버렸다.


코로나19는 개학을 인터넷 수업으로 대체시켰다. 스마트폰 한 대로 세 남매가 수업을 듣다보니 시간이 부족했다. 소녀는 어쩔 수 없이 수업을 빼먹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이 왜 수업을 안 듣냐고 묻는데 대답하기 싫었다. 죽고 싶은 마음이 들어 엄마의 약을 삼켰다.


가족들이 약을 먹고 쓰러진 소녀를 발견하고 병원으로 옮겼다. 소녀의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한다. 이웃들이 1만위안(약 170만원)의 성금을 전달했다. 이제야 소녀는 제때 인터넷 수업에 출석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소녀가 숨기고 싶어 했던, 수업을 듣지 못한 이유는 모두가 알게 됐다.


인터넷 수업은 학사 일정의 차질을 줄이고 코로나19의 확산을 방지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다. 대도시의 대다수 학생들은 인터넷 수업의 편의를 누리고 있지만, 일부 농촌과 빈곤 가정에서는 오프라인 수업보다 더 안간힘을 써야 한다. 그간 숨겨왔던 ‘디지털 가난’이 강제 폭로돼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


장쑤성에서 중학교에 다니는 여학생은 명절을 쇠러 후베이 징먼 고향집에 왔다가 발이 묶였다. 산골 고향집은 와이파이 신호가 좋지 않다. 20일간 책상과 휴대용 스탠드를 메고 산 정상에 올랐다. 지역 간부들의 도움으로 고향집 마당에 6m 대나무 장대로 와이파이 증폭기를 설치한 후에야 ‘인터넷 등산’이 끝났다. 이 학생의 사연은 지방 정부의 성과로 포장돼 현지 언론에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중국 서부의 한 현(縣) 간부는 펑파이신문 인터뷰에서 “스마트폰, 컴퓨터, 인터넷 등 때문에 온라인 수업에 참여할 수 없는 학생이 우리 현에서만 2000명이 넘는다”고 했다.


중국인터넷네트워크정보센터가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중국의 인터넷 사용자는 지난해 6월 말 기준 8억5450만명에 달한다. 중국인 10명 가운데 6명이 인터넷을 이용하는 셈이다. 반대로 보면, 10명 중 4명은 인터넷을 쓰지 못하고 있다. 화려한 통계 속에 가려졌던 중국의 디지털 격차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선명하게 드러났다.


디지털화 시대에 인터넷은 중요한 인프라다. 인터넷을 아는 것은 글자를 읽는 것만큼이나 중요해졌다. 스마트폰을 가지고 있는지, 인터넷 접속은 되는지, 또 인터넷을 잘 다룰 수 있는지에 따라 삶의 기회와 질이 달라질 수 있다. 미래 세대인 학생들이 정보 격차에 시달리지 않도록 정책 추진도 꼼꼼하게 이뤄져야 한다. 특히 빈곤 가정 학생들에 대한 관심과 배려가 요구된다. 또 그 배려는 학생들의 마음이 다치지 않도록 세심하게 해야 할 것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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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부인 김정숙 여사가 1일 서울 종로 배화여고에서 101주년 3·1절 기념식 참석자들과 모형 태극기를 들어올리며 만세삼창을 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국내외 관심은 온통 코로나19에 쏠려있다. 중국에서 시작된 코로나19는 한국, 일본을 넘어 이탈리아와 이란 등 유럽과 중동에서도 수많은 확진자와 사망자가 나왔다. 우리나라의 확진자가 4000명이 넘고 사망자도 20명을 넘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도 상당 부분 코로나19 문제에 할애했다. 문 대통령은 현 국면을 ‘비상시국’으로 표현하며 “코로나19가 잠시 우리의 삶을 위협할 수 있지만 우리의 단합과 희망을 꺾을 수는 없다”며 신종 감염병 극복과 경제 재활력의 의지를 강조했다. 


이번 3·1절 기념사는 코로나19 문제 외에 독립군대장 홍범도 장군의 유해 송환, 일본과의 미래지향적인 협력관계 구축을 언급하였다. 주목할 부분은 한반도의 평화와 공동번영을 위한 두 가지 안보에 관한 것이다. 하나는 북한을 비롯해 인접 국가들과의 보건 분야 등 비전통 안보 위협에 대한 공동협력이며, 다른 하나는 전통 안보에 해당하는 ‘9·19 군사합의’ 준수 및 다양한 분야로의 협력 확대를 제안한 것이다. 


먼저 비전통 안보로서 사람과 가축의 감염병 확산뿐만 아니라 접경지역의 재해·재난, 한반도 기후변화 등 보건 분야에서 남북의 공동대응을 촉구한 것이다. 이번 코로나19 감염병 외에도 조류인플루엔자, 아프리카돼지열병같이 초국경 전염병을 방지하기 위해 남북 보건당국이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북·중 접경지역에서 전염병 유입을 막기 위한 남북의 공동방역 협력이 필요하다.


시급한 것은 코로나19 사태와 관련된 대북 긴급 의료지원이다. 유엔 안보리 결의 2375호와 2397호에 따라 작년 12월22일까지 중국에 체류했던 5만명 이상의 북한 근로자들이 상당수 귀국했기에 코로나19 질환자의 북한 지역 유입 가능성이 높다. 북한당국은 공식적으로 감염병 확진자가 한 명도 없다고 주장하면서도 의학적 감시대상자가 2개 도에서만 4000명에 달한다고 밝힌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북한은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 어렵다는 소리도 못하고 있다. 중국에 마스크, 소독약을 지원하면서 정작 같은 동포인 북한 주민들에게는 기초적인 의료품도 지원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세계보건기구(WHO)가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위원회를 통해 북한에 대한 코로나19 구호물품의 제재 면제를 승인받았다. 중국에 대한 의료품 지원조차 정쟁화하는 국내 분위기 때문에 대북 의료품 지원을 우리가 주도하지 못해 안타깝다. 


다음 전통안보로서 9·19 남북군사합의의 준수 필요성이다. 이전의 군사합의들이 주로 교류·협력의 군사적 보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9·19 군사합의서는 본격적으로 정전협정의 복원과 초보단계의 운용적 군비통제를 담고 있다. 이는 상호 군사위협을 완화하는 군비통제를 통해 전쟁 위협을 감소하려는 것이다. 9·19 군사합의가 잘 지켜진다면 전쟁 가능성을 낮춰 진정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 냉전시기 동서유럽이 군비통제를 통해 평화공존을 이룬 선례가 있다. 


하지만 군사합의 불이행에 대한 우려도 있다. 작년 11월25일 황해도 창린도에서 김정은 위원장 지시로 북한군이 해안포 사격을 실시하였다. 국방부는 북측의 사격행위가 9·19 군사합의 위반이라고 지적하고 통지문을 발송해 철저한 준수를 촉구한 바 있다. 상호 군비통제는 성과가 나올 때까지 장시간이 걸리고 그 과정에서 신뢰부족으로 합의가 불이행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걸 이유로 한반도 평화의 유력한 방안을 중단해서는 안된다. 


정치권 일각에선 우리 군의 군사훈련이나 정찰활동을 제약한다고 비판하며 9·19 군사합의 파기를 주장한다. 이는 앞일만 생각하고 먼일을 내다보지 못하는 단견이다. 9·19 군사합의는 군사충돌을 막기 위해 전방감시초소(GP) 일부를 시범철수하고 배치·훈련 제한에 합의해 평화공존을 가져오려는 것으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을 위한 우리 군의 군사적 능력 확보를 제약하지 않는다. 향후 구조적 군비통제를 추진한다 해도 그것은 우리 안보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의 상호감축이 될 것이다. 


문 대통령은 이번 3·1절 기념사에서 작년 유엔총회 연설에서 밝힌 한반도 문제 3원칙(전쟁불용, 상호안전보장, 공동번영) 중 상호안전보장을 구체화해 두 가지 안보 방안을 제안한 것이다. 이제라도 북한 정권과 주민을 분리해서 인도적 의료품 지원에 적극 나설 것이며 북측도 우리 측의 지원에 호응해야 할 것이다. 또한 정치권도 9·19 군사합의에 대한 불필요한 논쟁을 중단하고 북측도 소탐대실뿐인 합의 위반을 자제해야 한다. 비전통안보와 전통안보에서의 남북협력은 한반도 평화공동체로 가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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