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발표한 ‘중동평화구상’은 트럼프 행정부가 오래 공들인 결과물이다. 트럼프 구상의 골자는 이스라엘이 1967년 전쟁으로 점령한 요르단강 서안 정착촌의 주권을 인정하고, 예루살렘을 온전히 이스라엘이 통제하는 것이다. 팔레스타인이 동예루살렘을 수도로 삼도록 하고 이를 받아들일 경우 10년간 500억달러를 지원한다는 내용도 있다. 그러나 이 구상은 불법을 힘으로 합법화하려는, 중동에 평화가 아닌 혼란과 충돌을 초래할 수 있는 위험하고 부당한 시도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 해결에 대해서는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이 있다. 1960년대부터 무수히 만들어진 안보리결의, 유엔총회 결의는 이스라엘이 무력으로 확장한 영토가 불법임을 명확히 하고 있다. 따라서 정착촌 합병은 국제법 위반이다. 또한 유엔은 예루살렘을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독립 도시로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트럼프 구상은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전부 통치하도록 했다. 동예루살렘을 떼어주겠다고 했지만, 그곳은 팔레스타인이 말하는 동예루살렘이 아니라 분리장벽 바깥의 변두리 땅이다.


트럼프는 이를 ‘현실적인 2국가 해법’이라고 했다. 2국가 해법은 원래 1967년 이전 국경을 기준으로 이·팔이 각각 국가를 건설해 공존한다는 뜻이다. 1993년 오슬로 협정을 통해 이 개념이 확립된 이후 2국가 해법은 중동분쟁 해결의 기본원칙으로서 국제적인 컨센서스를 형성하고 있다. 2국가 해법의 핵심은 정착촌 철수·동예루살렘 지위·팔레스타인 난민 귀환 등에 대해 양측이 합의를 하는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구상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이스라엘 입장만을 반영했다. 트럼프의 ‘현실적 2국가 해법’은 국제사회가 원칙으로 삼고 있는 기존의 2국가 해법을 무너뜨리려는 시도다. 


사실 오슬로 협정은 20년이 넘도록 휴면상태다. 그 사이 정착촌 규모는 160여개, 인구 60만명으로 확대됐고 팔레스타인은 이스라엘의 위협과 빈곤, 무능한 리더십으로 인해 극도로 피폐해진 상태다. 이 문제에 대한 국제사회의 피로감도 쌓여 있다. 트럼프는 이런 여건을 활용해 ‘현실을 받아들이라’고 팔레스타인을 압박하고 있다. 


일부 친미국가를 제외한 국제사회의 반응은 부정적이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사무총장은 유엔결의와 국제법, 1967년 이전의 국경선에 기초한 2국가 해법을 강조하며 반대 입장을 명확히 했다. 유럽연합(EU)도 “미국의 구상은 국제적 합의를 벗어난 것”이라며 거부 성명을 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노력을 평가하며, 이·팔 문제가 2국가 해법에 기초하여 평화적으로 해결되기를 기대한다”는 김인철 외교부 대변인 명의의 논평을 냈다.


이 논평에 나오는 2국가 해법이 ‘트럼프식 2국가 해법’인지, 국제사회가 유지해온 원칙으로서 2국가 해법인지 얼핏 봐서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김 대변인은 유엔 등 국제사회가 갖고 있는 원칙을 지지하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그렇게 말씀드리지 않는다”며 선을 그음으로써 트럼프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한 것임을 인정했다. 백악관이 트럼프 구상을 지지하는 각국 반응을 홈페이지에 소개하면서 한국 외교부의 논평을 자랑스럽게 포함시킨 것을 보면 미국 측의 요청이 있었음을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정부는 2018년 5월 예루살렘의 지위와 관련해 “국제사회의 대다수 국가들이 지지하는 2국가 해법에 입각해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번 논평은 정부가 그동안 유지했던 중동문제 원칙에서 이탈한 것이어서 가벼이 볼 문제가 아니다. 물론 한국과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없는 사안에 대해 미국의 요청을 들어주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다. 하지만 한 국가의 외교에는 원칙이 있어야 한다. 특히 한국처럼 강대국 틈바구니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나라라면 더욱 그렇다. 일관된 원칙을 갖고 있는 나라라는 인식이 국제사회에 널리 퍼져 있어야 외교적 자율권과 독자영역을 가질 수 있다.


우리에게 한반도 평화가 중요한 것처럼 팔레스타인에는 중동 평화가 중요하다. 민주주의와 인권의 기준이 어디서나 보편타당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처럼 평화의 개념도 지역을 불문하고 같아야 한다. 인권변호사 출신의 대통령이 있고 진보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문재인 정부에서 이런 입장이 나온 것은 유감이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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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크루즈 여행은 1844년으로 그 연원이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의 P&O사가 사우샘프턴에서 출발해 지브롤터와 몰타, 아테네 등 지중해의 여러 도시로 항해하는 여행상품을 판 것이다. 이 성공에 힘입어 회사는 이후 알렉산드리아와 이스탄불을 왕복하는 크루즈 상품도 선보였다. 이보다 10년 앞선 1833년 이탈리아의 ‘프란시스코 1세’를 크루즈의 효시로 꼽는 연구도 있다. 유럽 각국의 왕족과 귀족들을 태운 이 배는 나폴리를 떠나 3개월 동안 시러큐스, 몰타, 아테네, 이스탄불 등을 여행했다. 오늘날 크루즈 여행의 상징이 된, 샴페인을 든 채 우아하게 선상 파티를 즐기는 장면은 바로 이 배에서 시작됐다. 


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상륙 우려로 일본 가나가와현 요코하마항 다이코쿠 부두에 정박 중인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에 고립된 탑승객을 지원하기 위해 일본 자위대가 설치한 식량 및 의약품 전달 통로가 10일 두꺼운 천으로 뒤덮여 있다. 요코하마 _ AFP연합뉴스


오늘날 크루즈 관광의 성장세는 놀랍다. 미국의 한 회사는 아시아를 비롯해 지중해, 북유럽, 카리브해, 호주·뉴질랜드, 남미 등 세계 7대륙 80개국 490여 도시로 노선을 운영하고 있다. 크루즈 관광은 먼 나라 귀족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세계적으로 호황을 누리던 크루즈 여행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라는 뜻밖의 암초를 만났다. 일본 요코하마항에 격리돼 있는 크루즈선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에서만 13일 현재 218명의 감염자가 발생해 전 세계의 우려 섞인 시선이 쏠리고 있다. 중국 밖 감염자가 440여명, 그리고 이 배를 제외한 일본 내 감염자가 29명인 점과 비교하면 엄청난 숫자다. 그런가 하면 승객과 승무원 2300여명을 태운 또 다른 크루즈 선박 ‘웨스테르담’호는 일본과 대만, 필리핀, 태국 등 5개국으로부터 입항을 거부당해 보름간 해상을 헤맸다. ‘꿈의 여행’을 기대했던 승객들로서는 ‘선상 감옥’이 따로 없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은 일본 정부의 대응이다. 상당 기간 전원검사를 미룬 채 선내 공공시설 이용을 제한하지 않았다. 당초에는 19일까지 배에서 내리지도 못하도록 했다 뒤늦게 방침을 바꿨다. 배 안이라는 제한된 공간이 ‘세균 배양접시’ 역할을 하면서 감염을 촉진할 가능성을 무시한 것이다. 올림픽 안전을 염려해 감염자를 육지로 들이지 않으려 한 것으로 보이지만 무모하기 짝이 없다. 지진이 나도 침착하게 대응하는 일본인들을 세계는 경이롭게 보았다. 일본인들의 그 ‘냉정 대응’이 달리 보인다.


<이중근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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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세계질서는 어느 지역이 선도해 갈까? 1990년대를 관통했던 화두 중 하나다. 당시 상당수 학자들은 유럽연합(EU)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지난 1월 말로 브렉시트가 현실화되면서 이런 전망이 무색해졌다. 그렇다면 브렉시트, 나아가 EU의 오늘은 우리에게 어떤 화두를 다시 던지는 걸까?


경제적으로만 보면 영국이 더 잃는 선택이다. EU의 역내 무역규모는 영국의 10배에 달하고, 영국은 무역의 50%가량을 EU시장에 의존해왔기 때문이다. 영국 정부도 최악의 경우 경제규모가 8% 이상 축소될 수도 있다고 본다. EU 잔류를 원하는 스코틀랜드와 북아일랜드의 분리 독립도 걱정해야 할 판이다.


럽의회 의원들이 29일(현지시간) 벨기에 브뤼셀 유럽의회에서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협정안 비준 투표를 끝낸 후 손을 잡고 ‘올드 랭 사인’을 부르고 있다. 브뤼셀 _ AP연합뉴스


그렇다면 왜 떠나는 걸까? 핵심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다. EU에 남을 경우 자신들의 처지가 더 나빠지리라고 느끼는 사람들이 이민자 및 불법체류자 문제를 빌미로 정치적 반격을 가한 것이다. 


영국 정부의 통계에 의하면 2018년 당시 EU 출신자 360만명과 비EU 출신자 574만명이 영국에 거주 중이다. 인구 대비 각각 5.5%와 8.8%에 해당하는 수치다. 한국으로 치자면 665만명 이상의 외국인이 거주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EU 출신자 중에서는 폴란드 및 루마니아 출신이 폭증해서 각각 83만명과 40만명에 달했다. 문제는 증가 속도였다. 2008년 이후로 연평균 30만명 이상이 쏟아져 들어왔다. 


배경 원인은 EU의 회원국 확대 조치였다. EU는 2004년에 폴란드, 헝가리를 포함해 동유럽국가 10개국, 그리고 2007년에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인다. 유럽시민권자가 확 늘어난 것이다.


이런 결정의 기저엔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도하겠다는 EU 지도자들의 섣부른 자신감이 내재해 있다. 실제 2000년대 초반까지 EU는 세계 최대 자유무역지대를 창설하고 단일통화 도입 등으로 새로운 세계 경제질서를 주도했다. 동유럽까지 합칠 경우 미국도 능가하는 세계 최대 경제권이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시장확대 과정에서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은 자본이나 재화의 이동과 달리 더 세심한 제도적 준비가 필요하다는 점을 간과했다. 시장만능주의 사고가 EU 지도자들의 전략적 결정을 지배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2008년의 미국발 금융위기와 2010~2012년의 ‘아랍의 봄’을 거치면서 동유럽 인구이동 및 난민 유입이 맞물리며 유럽 전역에 걸쳐 극우정치세력이 창궐하는 원인이 된다. 특히 유럽 전역에 걸쳐 불법체류자가 400만명 규모로 급증했고, 이들 가운데 4명 중 1명 정도가 영국으로 몰려들었다. 브렉시트는 그 연장선상에서 촉발된 것이다. 


그렇다면 향후 EU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두 갈래 상반된 길에 직면해 있지 않나 싶다. 하나는 정치통합의 수준을 높이는 길이다. 현재 EU의 장기침체나 지역 및 국가 간 불균형 발전 문제에 더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더욱 강력한 연방정부가 필요하다. 현재와 같은 느슨한 국가연합으로는 힘들다. 그 상징적 예가 EU의 1년치 예산규모다. 회원국 정부들 총예산의 50분의 1 정도에 불과하다. 물론 금융정책을 제외한 주요 거시경제 및 사회복지 정책들도 여전히 회원국 정부들이 주요 권한을 갖고 있다.


다른 길은 시장통합의 수준을 낮추는 것이다. 특히 자본과 노동에 대한 초국적 이동 제한과 유로화의 폐지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실제 유로화 도입 이후 환율 위험이 사라지면서 역내 초국적 자본의 이동 양과 속도가 증가했고, 이에 따라 유로권 전체가 거대한 부채연결망으로 구조화되어 왔다. 장기침체에 시달리는 핵심 이유다. 


두 길 모두 결코 간단치 않다. 시장통합을 제한하는 조치들은 EU의 존립근거 자체를 허무는 격이고, 정치통합은 회원국들이 주권을 더 양도해야 하는 일이다. 진퇴양난이다. 상당기간 혼란과 정체가 불가피해 보인다.


이런 일련의 과정은 초국적 시장통합은 그에 걸맞은 정치사회적 통합과 상보적으로 추진되어야 함을 시사한다. 장래 동북아 자유무역지대 창설이나 남북한 간 경제협력을 통해 시장통합을 도모한다고 할 경우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문제다. 


특히 노동자의 초국적 이동에 대해선 면밀한 제도적 준비와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에도 2018년 말 기준 체류 외국인이 약 236만명으로 전체 인구 대비 4.6%, 불법체류자는 36만명에 달한다. 다문화주의가 필요하다는 당위적 주장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단계를 넘어서지 않았나 싶다.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준비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한국판 극우정치와 사회·정치 분열의 또 다른 원인이 되기 전에.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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