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 아니라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종교·사회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와 별개로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한 ‘남북관계 선행론’이 정부의 올해 대북 기조로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 대화가 정체되면 남북관계도 따라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부가 이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가운데)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미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단합된 대북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며 ‘남북관계 선행론’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던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반응을 문 대통령과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트럼프뿐 아니라 어느 정부이건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가는 것을 견제해왔다. 그럼에도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고 때로는 마찰도 불사하면서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장해왔다.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성찰과 자성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가 이제 와서 미국이나 보수세력들의 반응을 신경쓰며 좌고우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대북 기조의 전환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부가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지역 개별관광이 성사되려면 북한과의 협의는 필수다. 자연 북한의 호응 여부가 관건이다.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의 담화가 대남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관계 중재 역할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나온 남북관계 복원의지에 화답해야 한다. 개별관광 협의를 위해 남북이 조속히 만나기를 희망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해방공간에서 미래 통일독립국가의 국호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맞섰다. 그러나 이어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두 이름은 통일국가가 아닌 분단국의 국호가 됐다. 1948년 8월 남쪽에서 ‘대한민국’을 수립하자,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분단국의 국호가 이처럼 판연히 갈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국과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처럼 ‘중화’를 공유한다. 통일 전 남북 베트남의 국호는 각각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었고,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역시 ‘독일’을 함께 썼다(강응천,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한국’ 또는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려 했던 꿈은 분단과 함께 좌절됐다. 그럼에도 남은 북을 ‘북한’으로, 북은 남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국호를 강제했다. 강렬한 통일 욕구와 민족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분단이 공고화되고, 국제사회까지 두 개의 국가로 공인했음에도 남북은 상대방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분단의 역사가 이어지고 남북의 경제 격차, 분단 의식이 심화되면서 민족·통일보다 공존·평화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도둑처럼’ 오는 통일은 없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주의란 ‘상상된 공동체’일 수 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존과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향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어제 한 신문에 ‘한국과 조선: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를 접근하기보다는 ‘한국’과 ‘조선’으로 서로 대면”하게 하자는 취지다. ‘조선’을 소환해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한번 음미해볼 얘기다. 요즘 TV에서는 “북한은 개성 영하 4도, 함흥 영하 8도로 우리나라보다 쌀쌀하겠다”라는 식의 날씨정보를 종종 접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조운찬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