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일 국회 시정방침 연설을 통해 “한국은 원래 기본적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이웃 나라”라며 “그렇기 때문에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지켜 미래지향적인 양국 관계를 구축하길 간절히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 연설은 일본 총리가 한 해의 국정 기본방침과 정책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어서 외교의 향방을 가늠할 수 있다. 지난해와 달리 한국과의 관계가 주변국 외교 항목의 첫머리에 언급됐고, “기본적인 가치와 전략적 이익을 공유하는 가장 중요한 나라”라는 표현이 6년 만에 다시 등장한 것이 눈에 띈다. 한국 언급 생략 등 ‘한국 무시’로 일관한 지난해 시정연설에 비한다면 한·일관계 개선의지를 드러낸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베 총리가 ‘국가와 국가 간 약속’을 지키라면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경직된 태도를 드러낸 점에는 실망을 금치 못한다.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청구권협정으로 모두 해결됐으며, 한·일관계 악화의 계기는 국제법을 위반한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배상 판결에 있는 만큼 한국이 시정해야 한다는 기존의 주장을 되풀이한 것이다. 


한·일관계의 복원을 위해 풀어야 할 핵심 과제는 여전히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다. 한국 정부는 이미 여러차례 해법을 제시했고, 국회 차원에서 법안도 발의했다. 보통의 국가라면 상대국이 내놓은 제안이 미흡하다고 판단될 경우 수정안을 내며 절충하는 것이 온당한 태도다. 일본은 그런 노력 없이 ‘한국 정부가 제대로 하는지 어디 한번 지켜보겠다’는 식의 고압적 자세를 버리지 않고 있다. 사태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옹졸한 태도다.  


지난 6일 강제징용 피해자를 지원해온 한·일 양국 변호사·시민단체가 서울과 도쿄에서 동시 기자회견을 열고 이 문제 해결을 위한 양국 협의체 구성을 제안한 바 있다. 강제징용 문제가 한·일 정부 간 입장 차이로 진척이 없는 상황에서 다양한 분야 인사들의 광범한 합의에 기초해 해결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양국 정부가 받아들임으로써 문제를 해결하자는 취지였다. 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이 “협의체에 한국 정부가 참여할 의향이 있다”고 했다. 일본 정부도 경직된 태도를 풀고 협의체에 함께 참여해 해법 마련에 지혜를 모을 것을 당부한다. 아베 총리가 거론한 ‘미래지향적 양국관계’는 이런 협력 위에서 구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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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외교라인에 상당한 변화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북한 외교의 원로로 노동당 정치국원인 리수용 노동당 국제담당 부위원장이 모든 직책에서 제외되고, 김정은 시대 대미 전략을 총괄해온 리용호 외무상도 4년 만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국내외 언론의 보도가 나왔다. 특히 리 외무상의 후임으로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 위원장이 임명된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이 지난주 이런 내용의 외교라인 교체를 북한에 주재하는 외국 대사관들에 통보했다고 복수의 외교소식통들이 19일 전했다. 정부 당국은 “아직 좀 더 확인이 필요하다”면서도 사실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북한의 대외 전략의 전환을 예고하는 외교라인 변화를 주목한다.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018년 4월27일 판문점 남측 평화의 집 앞에서 수행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북측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장(왼쪽 원)과 리용호 외무상(오른쪽 원)도 함께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북한이 지난 연말 노동당 전원회의를 통해 외교 원로인 노동당 부위원장(국제담당) 리수용과 자타 공인 미국통 리용호 외무상을 한꺼번에 교체한 것은 상당한 변화이다. 그동안 대미 협상을 주도해온 외교의 양대 축을 동시에 바꾼 것은 외교 원로들의 퇴진 이상의 의미가 있다. 기존 외교라인에 대해 하노이 담판 후 북·미 핵협상 복원의 실패에 대한 책임을 물은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리선권의 외무상 임명이 사실이라면 그 의미는 훨씬 강하다. 군 출신으로 북한의 대남기구인 조평통을 이끌어온 리선권을 외교 수장으로 임명한 것은 상당한 파격이다. 남북 고위급회담의 북측 단장 등으로 활동한 그는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때 남측 기업인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핀잔을 준 강경파이다. 과거에도 북한에서 외무상 출신이 대남 업무를 관장(허담)하거나 대남 업무를 관장하다가 외무상이 된(백남순) 적이 있다. 그럼에도 외교 경력이 전혀 없는 리선권을 기용한 것은 북·미 협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뜻을 밝힌 셈이다. 후임자들의 당내 비중이 크게 떨어지는 것도 불안하다. 외교적 해법의 퇴조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기를 바란다.


북한이 외교 진용을 대폭 교체해 대미 관계에서 새로운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은 좋다. 하지만 이것이 곧 대미 강경 대응과 모험적 행동으로 이어져서는 안된다. 협상을 통한 북핵 해결이라는 원칙을 흔들어서는 안된다. 더불어 대남 업무를 담당해온 리선권의 기용이 남북관계 진전으로 이어지기를 희망한다. 북한 외교라인 교체에 대한 정부의 적절한 대응 전략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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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의 해다. 중요하지 않은 선거가 어디 있으랴마는 한국이나 미국 모두 ‘역대급’으로 악화되는 정치·경제 양극화 양상을 고려하면 사즉생(死卽生)의 전쟁 같은 선거전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11월 초로 예정된 미국 대선 및 상·하원 선거는 전 세계가 주목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선거 결과에 따라 트럼프의 미국우선주의 외교정책과 향후 세계전략도 영향을 받을 테니 말이다.


미국의 경우 최우선 관심사는 물론 트럼프의 재선 가능성이다. 대부분 박빙 승부를 예상하고 있다. 결국 승부처는 2016년 선거에서 트럼프가 1% 이내의 근소한 표차로 이겼던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이들 3개주와 플로리다주가 될 것으로 보인다. 올 한 해 트럼프의 주요 정치적 결정들이 이들 경합주에서의 지지율을 끌어올리기 위한 목적과 밀접하게 연관될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외교정책 결정도 마찬가지다. 특히 새해 벽두부터 시작된 이란과의 무력충돌은 트럼프가 이민자, 경제 문제에 더해서 종교 문제를 선거전략으로 꺼내든 것 아닌가 싶은 대목이다. 주지하다시피, 미국은 세계 최대 기독교 인구를 가진 나라다. 2019년 조사에서도 성인의 65% 이상(가톨릭 20%)이 기독교 신자라고 답했다. 


이들 중 가장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건 복음주의 개신교계다. 인구 4명 중 1명이 복음주의 신자로 추산되고 이들 절대다수는 백인으로 중남부주들에 밀집해 있다. 여기에 보수적인 가톨릭계, 유태계 일부가 결합되어 현재 공화당 보수정치의 핵심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이들이 트럼프의 광적인 지지층과 겹친다.


여론조사를 보면 미국민의 과반수 이상은 트럼프의 솔레이마니 폭살에 대해 부정적, 회의적이다. 특히 공격 시기가 공교롭게도 상원의 탄핵심판 직전이다. 이란 및 중동 문제에 대한 중장기적인 전략도 혼선을 드러내고 있다. 시리아 및 아프가니스탄에서는 철군을, 이란 및 이라크에는 군을 증파하고 있다. 물론 이란으로부터의 “임박한 위협”에 대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트럼프가 이렇게 공격받을수록 그의 지지층은 더 결집한다. 실제 인구의 30% 정도로 추산되는 공화당원의 95%는 여전히 트럼프를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의 관점과 행동이 선과 악의 명징한 이분법에 근거한다는 점이다. 특히 신보수주의자들은 십자군 원정을 포함, 천년전쟁의 연속선상에서 기독교문명권과 이슬람문명권 간의 싸움을 세계사 해석의 기본 축으로 본다. 또한 종교적 신앙과 이성의 싸움에선 늘 신앙이 승리해 왔다고 믿는다. 이들에겐 이슬람문명권의 중심국이 되려는 이란과의 싸움은 역사의 필연이고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이다. 이란과의 갈등이 결코 쉽게 해결될 수 없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트럼프가 이란을 다루는 방식은 북한을 상대해 온 방식과 판박이다. 그는 북한이 경제제재 때문에 힘들어서 결국 비핵화 협상에 나왔듯,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해야 이란이 핵협상 테이블로 다시 나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물론 북한이나 이란은 미국의 실제 의도가 그들 체제나 정권을 붕괴시키기 위한 것이라고 받아들일 것이다. 특히 북한은 미국이 비핵화 협상에 응한 건 그들이 미 본토에 도달 가능한 핵미사일 능력을 가지게 됐기 때문이라고 인식해온 듯하다. 좁히기 쉽지 않은 인식의 간극이다.


또한 북한은 그동안의 북·미 간 합의들을 먼저 깬 것은 미국이라고 주장해 왔다. 실제 미국에서의 정권교체나 의회권력의 교체 이후 북한과의 합의는 결렬되어 왔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핵합의에서의 경수로 2기 건설 약속, 2000년 10월의 북·미 간 교류와 협력을 위한 공동합의문, 6자회담(2003~2007)을 통한 9·9합의, 2·13합의, 10·3합의의 불이행은 미국의 국내정치 변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북한은 트럼프가 정권교체 후 2015년 이란과 맺은 핵협정(JCPOA)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더 강력한 경제제재를 부과하는 일련의 과정에 대한 검토와 판단을 끝마쳤을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가 다른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및 독일과 2년 동안의 마라톤 협상을 통해 맺은 협정도 관련국과 상의 없이 폐기한 나라가 미국이다.


결국 이란이나 북한 모두 미국의 대선 및 상·하원 선거결과가 불확실한 상황에선 선뜻 핵협상에 다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대신 내부결속을 다지며 장기항전으로 맞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가 아무리 급하더라도 서두르는 쪽이 더 잃는 형국이다. 바쁠수록 돌아가랬다고, 지속 가능한 포괄적 비핵화 로드맵과 사회적 합의에 기초한 정교한 협상전략에 힘을 더 쏟을 때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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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1월1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신년사에서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 의사를 표명하면서 예기치 않게 시동이 걸렸던 한반도 평화정착프로세스가 2년간의 우여곡절 끝에 내리막길로 접어들고 있다. “군사적 위협이 해소되고 안전이 보장된다면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던 김 위원장은 이제 더 이상 핵·미사일 실험 유예 약속에 얽매이지 않겠다고 말하고 있다. 지금으로서는 대화 복원이나 진전은 고사하고 더 이상의 상황 악화를 막는 것도 만만치 않아 보인다.


세계적 관심과 기대 속에 시작됐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좌초하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각양의 진단과 분석이 존재한다. 그러나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 하나는, 북한은 물론 미국·한국 등 대화 과정에 참여했던 모든 플레이어들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가장 핵심적이고 기초적인 요소인 ‘비핵화’에 최우선순위를 두지 않았다는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원한 것은 정치적 성과였다. 전임자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하지 못했던 일을 한 방에, 그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해냈음을 과시하고 싶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정상회담 요청을 즉각 수락하고 곧바로 아무런 준비 없이 정상회담에 뛰어들었다. 그가 가장 중요시한 것은 비핵화 전략이 아닌 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관계였다. 이처럼 비상식적이고 무모한 시도의 결과가 싱가포르 합의다. 비핵화는 후순위로 밀리고 ‘새로운 북·미관계’와 ‘신뢰구축’을 앞세운 북한의 단계적 접근법을 받아들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뒤늦게 싱가포르에서의 실패를 만회하기 위해 ‘동시·병행적 이행’을 내세워 비핵화를 강조하기 시작했지만 미국 대통령이 서명한 합의문을 이미 받아든 북한이 이에 응할 리 없었다. 북·미 대화가 꼬이게 된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핵문제에 흥미를 잃었다. 지금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은 비핵화 진전이 아니라 북한 문제를 어떻게 재선에 유리하도록 활용할 수 있는지에 쏠려 있다.


문재인 정부의 최우선 관심사는 남북관계 진전이었다. 북·미 대화 성사를 위해 혼신의 노력을 다하긴 했지만 정작 북·미 대화에서 비핵화가 어떤 방식으로 다뤄지는지에는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실질적인 비핵화 진전보다 남북관계에 속도를 낼 수 있도록 북·미 간 대화와 우호적인 관계가 유지되도록 하는 것에 집중했다.


9·19 남북공동선언과 군사분야 합의는 문재인 정부의 의미 있는 성과다. 하지만 이 합의는 북·미 대화와 비핵화가 진전될 것이라는 미래 전망을 가불받아서 만든 것이었다. ‘하노이 노딜’ 이후 북·미 대화가 사라지면서 이 합의는 빛을 잃었다. 해양과 대륙을 잇는 교량 국가로서 정체성을 세우고 국가 번영의 새로운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은 미래지향적 방향성을 갖고 있지만 선후관계에 문제가 있다. 신북방정책은 대북제재 해제를 필요로 하고 제재 해제를 위해서는 북핵문제가 풀려야 한다. 이 구상을 실현하기 위해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정교한 비핵화 전략이다.


북·미 대화와 비핵화 협상이 중단되자 문재인 정부는 과감한 남북협력 사업 추진을 올해 신년구상으로 꺼냈다. 북·미 대화만 바라보지 않고 남북의 독자적 영역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북·미 대화가 정체됐다고 남북관계까지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는 인식과 함께 남북관계를 통해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유지하는 부수적 효과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에도 비핵화는 빠져 있다. 문 대통령은 지난 7일 신년사를 통해 제시한 한반도평화 3원칙은 전쟁불용·상호안전보장·공동번영이다. 핵문제는 신년사에 한 번도 등장하지 않았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어려운 작업인 이유는 비핵화와 맞물려 있기 때문이다. 북한의 핵무기를 그대로 두기로 마음먹는다면 남북협력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에 합의하는 것이 어려울 이유가 없다. 물론 북한이 정말로 비핵화를 할 뜻이 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북한이 핵을 포기할 의사가 있는지 여부보다 한·미가 비핵화 목표를 이루겠다는 확고한 의지와 정교한 전략을 갖고 있는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 협상을 잘못하면 핵을 내놓을 생각이 있다가도 마음을 바꿀 수 있다. 또 협상을 잘하면 핵을 절대 포기하지 않겠다는 생각도 바꾸게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외교가 무엇 때문에 필요하겠는가.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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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은 14일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관계는 우리의 문제이니 우리가 조금 더 주체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야 한다”면서 “북·미 대화만 쳐다볼 것 아니라 남북 간에 할 수 있는 최대한 협력을 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개별관광 같은 것은 국제 제재에 저촉되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모색될 수 있다”고도 했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도 이날 종교·사회단체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미관계가 해결될 때까지 기다리기보다 남북관계 개선을 위해 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북·미 대화와 별개로 남북협력을 증진시키겠다고 한 ‘남북관계 선행론’이 정부의 올해 대북 기조로 뚜렷해지고 있다. ‘북·미 대화가 정체되면 남북관계도 따라 멈춰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에 정부가 이제야 제대로 된 답변을 내놓은 셈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왼쪽 가운데)과 마이크 폼페이오 미국 국무장관(오른쪽 가운데)이 14일(현지시간)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한 호텔에서 한·미 외교장관회담을 하고 있다. 외교부 제공


미국은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 변화를 반기지 않는 기색이다. 미 국무부는 문 대통령의 회견에 대해 “미국과 한국은 단합된 대북 대응에 있어 긴밀한 조율에 전념하고 있다”면서 “모든 유엔 회원국은 대북 제재 결의를 이행해야 한다”고 밝혔다. 북·미 대화와 남북관계가 보조를 맞춰야 한다는 기존 입장을 강조하며 ‘남북관계 선행론’을 견제하는 모양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과 회담하던 14일(현지시간) 미국 재무부가 추가 대북 제재를 발표한 것도 이런 기류를 뒷받침한다.  


미국의 반응을 문 대통령과 정부가 예상하지 못했으리라고 보진 않는다. 트럼프뿐 아니라 어느 정부이건 미국은 남북관계가 북·미관계보다 앞서가는 것을 견제해왔다. 그럼에도 역대 한국 정부는 미국을 설득하고 때로는 마찰도 불사하면서 남북관계의 공간을 확장해왔다. 신년사와 기자회견을 통해 내놓은 문 대통령의 발언은 지난해 한반도 정세에 대한 성찰과 자성을 거친 흔적이 엿보인다. 정부가 이제 와서 미국이나 보수세력들의 반응을 신경쓰며 좌고우면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런 각오가 없다면 대북 기조의 전환은 ‘언감생심(焉敢生心)’이다. 


정부가 현재 역점을 두고 있는 북한지역 개별관광이 성사되려면 북한과의 협의는 필수다. 자연 북한의 호응 여부가 관건이다. 김계관 북 외무성 고문의 담화가 대남불신을 드러내긴 했지만, 이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관계 중재 역할 비판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북한은 문 대통령의 신년사와 기자회견에서 나온 남북관계 복원의지에 화답해야 한다. 개별관광 협의를 위해 남북이 조속히 만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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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공간에서 미래 통일독립국가의 국호로 ‘대한민국’과 ‘조선인민공화국’이 맞섰다. 그러나 이어진 남북 분단으로 인해 두 이름은 통일국가가 아닌 분단국의 국호가 됐다. 1948년 8월 남쪽에서 ‘대한민국’을 수립하자, 북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선포됐다. 분단국의 국호가 이처럼 판연히 갈리는 경우는 흔치 않다. 중국과 대만은 중화인민공화국과 중화민국처럼 ‘중화’를 공유한다. 통일 전 남북 베트남의 국호는 각각 베트남공화국과 베트남민주공화국이었고, 서독(독일연방공화국)과 동독(독일민주공화국) 역시 ‘독일’을 함께 썼다(강응천, <국호로 보는 분단의 역사>).


‘한국’ 또는 ‘조선’이라는 이름으로 통일국가를 이루려 했던 꿈은 분단과 함께 좌절됐다. 그럼에도 남은 북을 ‘북한’으로, 북은 남을 ‘남조선’으로 부르며 자신들의 국호를 강제했다. 강렬한 통일 욕구와 민족 의식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의식은 한국전쟁 이후에도 계속됐다. 분단이 공고화되고, 국제사회까지 두 개의 국가로 공인했음에도 남북은 상대방을 ‘다른 나라’로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분단의 역사가 이어지고 남북의 경제 격차, 분단 의식이 심화되면서 민족·통일보다 공존·평화의 가치가 부상하고 있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을 노래하고 ‘우리 민족끼리’를 외친다고 통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도 깨달았다. ‘도둑처럼’ 오는 통일은 없다. 베네딕트 앤더슨의 말처럼 민족주의란 ‘상상된 공동체’일 수 있다. 당위가 아니라 현실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공존과 평화의 토대 위에서 통일을 향한 대화와 교류를 확대해야 한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가 어제 한 신문에 ‘한국과 조선: 남북관계에서 한·조관계’라는 칼럼을 기고했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북한과 남조선을 의제하여 남북관계를 접근하기보다는 ‘한국’과 ‘조선’으로 서로 대면”하게 하자는 취지다. ‘조선’을 소환해 한반도 영구 평화의 길을 모색하자는 주장은 도발적이다. 그러나 경색된 남북관계의 현실에서 한번 음미해볼 얘기다. 요즘 TV에서는 “북한은 개성 영하 4도, 함흥 영하 8도로 우리나라보다 쌀쌀하겠다”라는 식의 날씨정보를 종종 접한다. 불편할 수 있지만, 북한은 ‘우리나라’가 아니다.


<조운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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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타이주는 중국 고위 관료들을 취하게도 하고 긴장하게도 만든다. 중국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술이기도 하고 때로는 두려운 존재이기도 하다. 


중국 남부 선전시 국유기업인 광밍(光明)건설발전그룹 장(張)모 회장은 송년회 때문에 해임됐다. 정확하게는 송년회 테이블에 올라온 마오타이주 때문에 잘렸다.


지난 4일 이 그룹 임직원들은 5성급 호텔에서 연간 보고회를 한 뒤 테이블당 83만원짜리 코스요리를 먹었다. 병당 134만원짜리 마오타이주를 식사와 곁들였다. 11개의 테이블에 앉은 이들이 마신 마오타이주는 2688만원어치다. 이들은 마오타이주는 옆방에 숨겨놓고 다른 병에 따라 마셨다. 그러나 ‘암행어사’식 조사로 초호화 송년회 행태가 드러났고, 결국 장 회장은 면직 처분됐다.


중국에서 마오타이주는 고급술의 대명사이자 부패의 척도다. 중국 관영 CCTV가 12일부터 방송한 반부패 선전용 특집프로그램 <국가감찰>에서는 부패로 낙마한 구이저우 전 부성장 왕샤오광(王曉光)의 집에서 4000여병의 마오타이주가 발견됐다고 폭로했다. 왕 전 부성장은 2009년 마오타이주 가격이 급등하자 마오타이그룹에 압력을 가해 대리점 경영권과 131t의 마오타이주 할당량을 받아냈다.


1934년 11월 마오쩌둥(毛澤東)이 이끄는 중국 공산당 홍군이 대장정을 시작했을 때 마오타이주는 홍군의 사기를 진작하는 술이었다. 상처를 소독하는 약품 대용으로도 사용됐다. 독특한 향과 깊은 맛에 홍군 대장정과 맞물리는 역사 스토리까지 덧입으면서 중국을 대표하는 명주가 됐다. 즐기려는 사람은 많은데, 5년 정도인 긴 제조 기간으로 공급량이 적다보니 투기나 뇌물 대상이 된다. 소장하고 있으면 가치가 상승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고위 관료들만 마오타이를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의 마오타이 사랑도 그 못지않다. 지난해 상하이에 중국 1호점을 낸 미국 회원제 창고형 할인점 코스트코의 대성공에도 마오타이주가 큰 몫을 했다. 중추절(추석)을 앞두고 시중보다 1위안(170원) 싼 1498위안짜리(약 25만원) 마오타이 페이톈(飛天) 제품을 내놓았다. 1인당 1병으로 구매를 제한했지만 이틀 만에 준비한 1만병이 모두 동났다. 마오타이 회장이 중추절 당일 “마오타이주는 마시는 것이지 투기하는 게 아니다”라며 직접 진화에 나섰다. 그러나 투기에 가까운 마오타이주 사랑은 멈추지 않는다. 춘제(중국 설)를 앞두고 마오타이주 사랑은 더 가열되는 분위기다.


우한시는 2016년부터 부패 공직자들에게 몰수한 뇌물을 공개 경매하고 있다. 지난해 경매에서는 총낙찰액 321만위안(약 5억4000만원) 중 3분의 2에 해당하는 230만위안(약 3억8300만원)이 마오타이주에서 나왔다. 주로 5~6병씩 함께 포장된 뇌물용 마오타이주는 15년산부터 50년산까지 다양했다. 흥미로운 사실은 경매에서는 진품 여부를 감별해주지 않는다는 점이다. 주간지 남방주말은 경매에 참가한 사람들도 가짜 마오타이주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산다고 전했다. 


가짜일 가능성에 대한 두려움까지 감수하면서 고가에 낙찰을 받는 것은 중국인들의 마오타이주 사랑 때문일까, 아니면 허영 때문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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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회담(2019·2·27~28) 굴욕으로 인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미국을 향한 분노와 불신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듯했다. 그러지 않고서야 노동당 전원회의(7기 5차) 보고를 무려 나흘씩이나(12·28~31) 할 이유가 없었다. 신년사마저 생략하고 전원회의 발언문 공개 형식을 통해 현 정세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과,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려 하지 않았다. 마치 언제라도 상을 엎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


김 위원장은 하노이 회담 결렬 후 개최된 7기 4차 전원회의(2019·4·11) 이후 8개월여 기간을 ‘혹독하고 위험천만한 격난’으로 간주했다. 김정은에게 이 기간은 분명 자득의 시간이었으며, 흔들리지 않는 하나의 지점을 끝까지 찾아보려는 간절한 모색의 시간이었다. 자력갱생과 미국과의 불화를 정면으로 돌파하기로 했다는 공개적 다짐의 배경에는 더는 수모를 당하지 않겠다는 결연한 의지가 깔려있었다. 정세가 좋아지기를 앉아서 기다리기보다는 정면돌파전이 시대적 과제임을 투쟁적으로 강조했다. 새로운 전략무기체계를 확보했음도 시사했다. 이는 더 나아갈 수 없는 데서 한 발자국 더 내디딘, 말하자면 ‘백척간두 진일보(百尺竿頭 進一步)’인 셈이다.


벼랑 끝에서 고민한 흔적도 엿보였다. ‘크리스마스 선물’ 보내기를 유보한 것이 그 예다. 그럼에도 북한은 미국이 적대정책을 고수하는 한 비핵화는 없을 것이며, 미국의 대북 적대정책이 철회되고 평화체제가 구축될 때까지는 전략무기 개발을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특유의 조건절에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이는 미국이 가시적 조치도 취하지 않고 대북 무시를 견지한다면 선물은 언제라도 공개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비핵화를 두고 트럼프와 김정은이 맞붙어 협상할 시간은 많지 않다. 시간은 쥐고 있는 협상카드의 속성을 변화시킬 것이며 그 시간은 한반도 정세와 북·미관계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짐작은 어렵지 않다. 공(攻)과 수(守)의 시간은 서로의 급소를 향해 치닫고 있다. 승부의 관건은 시간이 누구에게 유리한가이다.


사실 미국은 어떤 공이 와도 칠 수 있는 타자이다. 그러나 이란과 사실상 전쟁에 돌입한 상황에서 자칫 북한의 술책에 말려들 경우 자신의 재선에 악재가 될 수 있음을 트럼프가 모를 리 없다. 트럼프는 가능한 한 11월 대선까지는 북한의 행동에 ‘화염과 분노’의 강약을 조절하면서 북핵 문제를 최대한 로키(low-key)로 이끌려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국의 역할이 부각될 것이다. 게다가 여러 차례 미뤄졌던 시진핑의 방한과 방일이 상반기에 이뤄진다고 볼 때 김정은이 굳이 이 시기에 동북아 정세를 초긴장으로 몰아갈 가능성은 낮다고 봐야 합리적이다.


다급한 쪽은 김정은이다. 북한 매체는 연일 자력갱생을 강조하면서 주민들의 기대감을 낮추기 위해 안간힘을 쏟고 있지만 1년 사이 트럼프를 세 번이나 만나고서도 북·미관계가 파국을 맞을 경우 궁핍한 주민들의 실망감이 김정은에게는 고스란히 정치적 부담거리다. 오죽했으면 새해 벽두부터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음을 자인하고 절약정신을 체질화하자고 수 차 강조해야 했을까. 발언문을 읽으면서 마치 망인의 피부를 눌러도 되돌아오지 않을 때 느끼는 막막함 같은 기분이 들었다. 꺾어지는 해이자 집권 9년차에 접어든 1984년생 김정은에게도 봄은 오겠지만 그 봄은 우리가 생각하는 봄이 아닐 수도 있다. 봄(春)이 봄(bomb)으로 이어지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이병철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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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11일 담화를 내 일부 제재와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는 협상이 다시는 없을 것이며 미국이 북한의 요구를 수용해야만 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김계관 고문은 “일부 유엔 제재와 나라의 중핵적인 핵 시설을 통째로 바꾸자고 제안했던 베트남에서와 같은 협상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며 “조미 사이에 대화가 다시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했다. 


담화에서 북한은 트럼프 행정부가 탄핵과 대통령 선거, 이란 문제 등으로 북핵 문제에 집중하기 어려운 현실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 때문에 미국과의 협상에 섣불리 나설 뜻이 없음을 강조했다. 협상의 전제조건을 높인 것이나 “우리는 우리가 갈 길을 잘 알고 있으며 우리의 길을 갈 것”이라고 한 데서도 이런 고민이 엿보인다. 북한의 현 정세에 대한 판단과 북·미 대화에 대한 입장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그러나 북한이 이 과정에서 한국 정부에 불필요한 독설을 퍼부은 점은 유감천만이다. 김 고문은 “남조선 당국이 숨 가쁘게 흥분에 겨워 온몸을 떨며 대긴급통지문으로 알려온 미국 대통령의 생일축하 인사라는 것을 우리는 친서로 전달받은 상태”라면서 “남조선 당국은 조미 수뇌들 사이에 연락 통로가 따로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다”고 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고 청와대가 발표한 것이 북으로서는 그토록 불쾌한 일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설레발’ ‘호들갑’ ‘주제넘은 일’ 같은 거친 언어를 쏟아낼 필요가 있었을까. 북한은 지난해부터 대미 메시지는 절제된 톤을 유지하면서도 한국에는 비아냥과 독설을 퍼붓는 이중적 태도를 보여왔다. 이런 태도가 계속된다면 한국 내의 남북화해를 바라는 여론마저 등을 돌릴 우려가 있다. 북한은 대남 언행을 신중히 해야 한다.  


이번 담화는 문재인 정부의 북·미 중재역할에 대한 비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문 대통령이 지난 7일 신년사에서 내놓은 남북협력 제의를 거부한 것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물론 김 고문의 담화에 남측에 대한 불신과 분노가 깔려 있는 걸 보면 올해 남북관계가 밝아 보이지는 않는다. 그러나 신년사는 문재인 정부가 북·미관계의 그늘에서 벗어나 독자적 남북협력에 나서겠다는 의지를 담았음을 북한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북한의 호응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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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의 차이잉원 총통이 지난 11일 치러진 총통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민주진보당(민진당) 후보로 나선 차이 총통은 817만표(57%)를 얻어 중국국민당의 한궈위 후보를 큰 표차로 따돌렸다. 차이 총통이 얻은 표는 1996년 대만 총통 직선제 시행 이후 가장 많고, 득표율도 4년 전 당선 때보다 1%포인트 더 높다. 총통 선거와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는 민진당이 입법위원(국회의원) 의석의 과반을 차지했다. 대만인들이 대만 독립 성향의 민진당과 차이 총통을 크게 지지했다는 증거다. 


차이 총통이 재선에 성공하면서 중국 대륙으로부터 대만의 독립적 지위를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받게 됐다. 차이 총통은 당선 기자회견에서 “우리의 주권과 민주주의가 위협받을 때, 우리 인민은 더욱 큰 목소리로 우리의 의지를 외칠 것”이라며 “중국의 압력에는 계속 단호하게 대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반면 중국 정부는 “대만 정부는 중국의 내정”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에는 변함이 없다고 강조했다. 대만은 ‘중국의 한 개 성(省)일 뿐’이라는 기존 입장을 내세우며 ‘대만의 독립’이나 ‘두 개의 중국’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대만 총통 선거는 지난해 홍콩 민주화시위의 영향으로 반중 정서가 고조된 가운데 치러졌다. 홍콩 시위로 중국의 ‘일국양제’(한 국가 두 체제)가 흔들리고, 차이 총통이 연임하게 되면서 ‘하나의 중국’마저 도전을 받게 됐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집권 이후 홍콩, 마카오를 포함해 대만까지 통일해 ‘하나의 중국’으로 만들겠다는 ‘중국몽(中國夢)’을 강조해 왔다. 중국이 중국몽 실현을 위해 홍콩처럼 대만에까지 압박 수위를 더 높일 것은 명확하다. 벌써부터 대만과 외교관계를 맺은 국가들에 대한 단교압력, 대만에 대한 군사적 압박 조치 등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홍콩에서 보았듯이 강경 노선이 국제사회의 반발을 부를 뿐이라는 사실을 중국은 알아야 한다. 


차이잉원 2기 시대의 양안관계는 중국의 ‘하나의 중국’ 정책과 대만의 독립 노선이 충돌하면서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고 통일과 독립이라는 대립구조만으로는 양안관계가 풀릴 수 없다. 차이 총통은 물론 중국 정부도 양안관계의 평화로운 발전에는 공감하고 있다. 양측은 모두 통일이나 독립과 같은 궁극적 목표를 내세우기 앞서 평화·공존·상생 방안을 먼저 고민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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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 8일 미군이 주둔하는 이라크 내 핵심 군사기지 두 곳을 미사일 20여발로 공격했다. 지난 3일 미군 폭격으로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쿠드스군(혁명수비대) 사령관이 사망한 지 닷새 만에 군사보복에 나선 것이다. 미국도 반격을 경고했다. 40년 앙숙인 양국이 무력 충돌하면서 중동이라는 화약고가 폭발할 위험성이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해리 해리스 주한미국대사가 7일 “한국도 중동에서 많은 에너지 자원을 얻고 있다”며 “한국이 그곳에 병력을 보내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언론과 인터뷰하는 간접 형식이지만 호르무즈해협 파병을 처음으로 공개 요청한 것이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이 현실화하면서 정부가 파병에 대해 결단해야 할 순간이 다가오고 있다. 


이란이 이라크 내 미군기지를 미사일로 공격한 8일 서울역 대합실에서 시민들이 관련 뉴스를 지켜보고 있다. 김창길 기자


미국과 이란 간 무력 충돌이 전면전으로 번질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미국의 추가 대응이 없으면 확전되지 않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양쪽 모두 물러서기가 쉽지 않다. 이날 미사일 공격으로 미군 80명이 숨졌다는 이란 국영방송의 보도가 사실이라면 미국의 반격은 불가피할 터이다. 미국을 비롯한 각국 민간항공사들은 걸프지역 운항을 금지하는 등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고 있다. 세계의 경찰국가 미국과 시아파 맹주인 이란이 전면전에 돌입할 경우 그 파장은 가늠하기 어렵다. 벌써 전 세계 금융시장과 원유시장은 크게 출렁거렸다. 이란이 호르무즈해협 봉쇄에 나서면 세계 경제는 심각한 불황에 빠진다. 세계 평화를 위해 양국은 공격을 멈춰야 한다. 유엔 등 국제사회가 시급히 중재에 나설 것을 촉구한다. 


한국이 호르무즈해협을 통해 원유 수입을 하는 만큼 중동 해상로를 보호해야 할 필요는 있다. 하지만 이를 반드시 미군과 공조해서 할 이유는 없다. 미국은 핵 합의를 먼저 깬 데다 명분이 약한 상황에서 이란을 선제 공격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국제법 위반인 문화재 공격까지 언급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했다. 이란은 친미 국가들이 미국과 협력하면 공격하겠다고 경고했다. 이란과의 관계가 악화되면 한·이란 간 교역은 물론 대중동 외교에 전반적으로 악영향을 주게 된다. 일본도 미국의 파병 요구에 신중을 기하고 있다. 양측의 전쟁에 끼어들어 국익을 손상할 이유가 없다고 본 것이다.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한·미·일 고위급 안보협의를 위해 미국을 방문하고 있다. 정 실장은 한국군 파병에 명분이 없다는 점을 정확히 전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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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교를 세운 아랍의 예언자 마호메트는 칼을 들고 중동지역을 신흥종교로 물들였다. “칼은 천국과 지옥을 모두 여는 열쇠다. 신의 대의명분을 위해 흘린 피 한 방울, 싸우며 보낸 하룻밤은 두 달의 금식이나 기도보다 효과가 있다. 심판의 날, 상처는 눈부신 주홍빛으로 빛나고 사향처럼 향기로울 것이며, 잃어버린 팔다리는 천사들과 케루빔의 날개가 대신해 줄 것이다.” 마호메트의 말에 중동은 종교전쟁으로 불타 올랐다.


마호메트 사후 이슬람세계는 후계자 계승방식의 이견으로 분열했다. ‘선출’과 ‘마호메트의 혈통 존중’ 사이에 간극이 컸다. 680년 마호메트의 외손자인 후세인이 카르발라전투에서 살해된 뒤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후세인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시아파라고 부른다. 세계 16억명의 무슬림 가운데 90%는 수니파, 10%가 시아파다. 시아파는 이란, 수니파는 사우디아라비아로 대표된다. 


이슬람 사회에는 당한 만큼 돌려주는 ‘키사스’라는 형벌이 있다. 바빌로니아왕국의 함무라비법전에 나온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는 등가보복법에서 출발한다.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처벌규정이 만들어졌다. 현재 이란·이라크·파키스탄 등지에서 키사스를 형사처벌의 하나로 채택하고 있다. 이란에선 형법에 명시된 ‘생명의 키사스’에 근거해 살해 피해자 가족이 법원에 가해자의 사형을 요청할 수 있고 사형집행에도 참여한다.


이란 혁명수비대가 8일 새벽 이라크 내 미국 기지를 겨냥해 탄도미사일을 무더기로 발사했다. 앞서 미국이 지난 3일 이란군의 상징적 존재인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폭격으로 제거한 뒤 닷새 만이다.


솔레이마니가 폭사한 다음날인 지난 4일 이란 중북부의 종교 도시 쿰의 ‘잠카란 모스크’ 정상에 피의 전투와 복수를 의미하는 붉은 깃발이 게양됐다. 깃발에는 ‘이맘 후세인을 위한 복수’를 의미하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이란은 ‘당한 만큼 돌려주겠다’던 경고를 실행에 옮겼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공격 개시시간도 솔레이마니가 죽은 시각과 정확히 맞췄다. 키사스 방식 대응이다. 전쟁의 깃발이 올랐는가. 세계는 복수의 혼돈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박종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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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로버츠 미국 연방대법원장이 최근 발표한 연말 보고서가 미국 언론 주목을 받았다. 소셜미디어를 통한 거짓 정보 유통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위험성을 경고한 대목이 마치 ‘가짜뉴스 공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을 겨냥한 것 같다는 추측을 낳았기 때문이다.

 

 “미국 헌법 원리는 폭도의 폭력에는 자리를 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여러 해가 지나면서 우리는 민주주의를 당연하게 여기게 됐고, 시민 교육은 도중에 실패했습니다. 소셜미디어가 순식간에 소문과 거짓 정보를 대규모로 확산시킬 수 있는 우리 시대에는 대중이 정부와 정부가 제공하는 보호들을 이해해야 할 필요성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합니다.”

 

미국 대법원장은 연말마다 짧은 보고서를 내는데 2005년 취임한 로버츠 대법원장은 늘 역사의 일화를 서두에 앞세웠다고 한다. 이번엔 헌법 원리 해설서로 유명한 &lt;연방주의자 논설&gt; 집필자 가운데 한 명이자 훗날 초대 연방대법원장이 되는 존 제이의 일화를 소개했다. 1788년 의대생들이 묘지에서 시신을 도굴해 해부학 실습에 사용하고 있다는 소문에 분노한 뉴욕 시민들이 일으킨 이른바 ‘의사 폭동’ 당시 제이가 시위를 제압하려고 나섰다가 돌에 맞아 죽을 뻔했다는 것이다. 앞서 소개한 글의 폭도 얘기는 여기서 나왔다.

 

로버츠 대법원장이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겨냥했거나 말거나, 민주주의가 위협당하고 있다는 우려는 그가 내려온 판결과 모순된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취임 당시 50세로 역대 세번째 최연소였던 그가 대의민주주의의 핵심인 선거제도를 왜곡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법률과 판례를 허무는 데 앞장서 왔다는 것이다. 특정 지역에 한해 투표 제도 변경 시 연방정부의 승인을 받도록 함으로써 인종이나 피부색을 이유로 투표권을 제약할 수 없도록 한 ‘선거권법’을 유명무실하게 만든 2013년 ‘셸비 카운티 대 홀더’ 사건 판결, 사법부가 특정 정파의 당리당략을 위해 선거구를 기형적으로 획정하는 ‘게리맨더링’을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지난해 6월 판결이 대표적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엘리트주의적 관점도 엿보인다. 소셜미디어 시대가 아니라도 소문과 거짓 정보의 위험성, 시민 교육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다만 로버츠 대법원장의 글에선 소셜미디어를 통한 ‘여론’을 단순하게 폭도로 싸잡으면서 폄하하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든다. 피지배자 사이의 지식과 정보 유통을 두려워하며 억압했던 봉건시대 지배자를 연상한다면 지나친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가 든 역사적 사례도 논지를 뒷받침하기엔 부적절해 보인다. 근대 서구 의학 발달 과정에서 해부용 시신 부족은 공통적 현상이었다. 이른바 의사 폭동 당시 뉴욕에서도 해부 실습을 위한 시신 도굴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이에 대한 시민들의 불만이 컸다. 일부 시민들은 이를 근절해달라는 청원을 했음에도 뉴욕시는 무시했다. 시민들의 소요 사태가 있은 다음에야 해부용 시신 관련 절차와 규정이 확립됐다는 게 역사적 평가다.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이까지 버리지 말라’는 서양 속담이 있다. 소셜미디어가 일상화된 현대사회에 거짓 정보의 유통을 막겠다며 소통 가능성 자체를 억압하는 게 바로 그 꼴이 될 것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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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세계에는 두 강대국의 꿈이 충돌하고 있다. 하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일그러진 아메리칸드림, 다른 하나는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다. 원래 아메리칸드림은 전 세계 이민자들이 미국 땅에서 자신들의 꿈을 실현한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트럼프의 ‘미국 우선주의’ 정책으로 불법이민자를 내쫓고 자국 이익을 전 세계에게 강요하는 어글리 아메리칸드림으로 바뀌었다.


중국몽은 중국공산당 창립 100주년이 되는 2021년까지 ‘전면적인 소강사회’를 실현한 뒤, 건국 100주년이 되는 2049년에는 사회주의 현대화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다. 시진핑 주석은 2017년 당 대회에서 중국몽을 23차례나 언급하며 2050년까지 세계 최강국으로 우뚝 서겠다는 목표를 밝혀 중국몽이 패권국가임을 감추지 않았다. 중국몽은 중국을 중심으로 주변국들을 하나의 운명공동체로 묶어 과거 중화체제의 부활을 꿈꾸고 있다. 


지금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 1라운드를 끝내고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협정 서명을 앞두고 있다. 당초 미국의 완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무역전쟁이 중국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혀 이제 1단계 무역협정에 합의했지만 본격적인 패권경쟁의 시작일 뿐이다. 중국의 전문가들은 미국이 테러와의 전쟁을 치르며 힘을 엉뚱한 데 쏟는 바람에 중국의 부상을 억누를 기회를 놓쳤다고 보고 있다.


그렇다면 강대국의 두 꿈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꿈은 무엇인가? 문재인 대통령은 상하이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 되는 2019년을 새로운 100년의 원년으로 삼고 2032년 서울·평양 공동올림픽 개최와 2045년 ‘원 코리아’를 이룬다는 비전을 제시하였다. 이러한 우리의 꿈은 분단으로 이루지 못한 민족국가(nation state)의 완성에 두고 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제시한 우리의 꿈은 북한의 냉담한 반응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고 있다. 북한은 하노이 노딜 이후 공개, 비공개 당국자 접촉을 거부해 왔고 심지어 민간교류마저 중단시켰다. 작년 말 당 전원회의 결정서에선 남북관계에 관해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6일자 북한매체들은 지난달 26일 문 대통령이 외신 기고문에서 밝힌 한반도 평화구상에 대해 ‘아전인수 격의 궤변’이라 폄하했다. 


우리의 꿈은 북한과의 평화로운 공존과 평화통일이어야 함은 분명하다. 우리가 민족국가의 완성이라는 꿈을 포기해서는 안되지만, 남북관계의 목표에만 우리의 외교안보 역량을 쏟을 수는 없다. 미국이나 중국이 남북관계를 한민족의 내부 문제가 아니라 미·중 세력관계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이루기 위해서도 미·중 이해관계를 현명하게 풀어야 한다. 이제 강대국 관계 속에서 우리의 꿈을 새롭게 가다듬어야 할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우리 외교는 어느 강대국에 편승할 것인지 선택의 문제로 보았다. 하지만 이제 강대국 외교는 더 이상 양자택일이나 양자절충의 문제로 해결될 수 없다. 오늘날 국제정치는 전 세계를 이끌던 미국의 영향력이 약해지고 뚜렷한 주도세력이 없는 ‘G-Zero시대’로 바뀌어가고 있다. 이러한 시대의 변화에 맞게 국가비전과 외교원칙을 세워야 한다. 


작년 6월30일 한·미 정상회담에서 “한국의 신남방정책과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접점을 찾아 조화롭게 추진하기로 하였다”고 합의했다. 12월23일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중국의 일대일로 구상과 한국의 신남방·신북방정책 간 연계 협력을 모색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와 같은 정책은 강대국의 정책에 편승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국가목표와 정책을 중심에 놓고 강대국의 지역구상과의 협력 의사를 밝힌 것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 


이처럼 기존 편승외교와 자주외교의 한계를 극복하고 우리의 국가목표를 향한 새로운 외교원칙을 자기주도외교(Self-Directed Diplomacy)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강대국의 대외전략이 나올 때마다 참여 여부를 놓고 수동적인 태도를 보여왔다. 하지만 이제부터 포용성과 개방성을 기초로 우리의 정책을 주도적으로 수립한 뒤 미·중의 대외정책과 접점을 찾아나가는 방식으로 강대국 관계를 풀어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현재 우리 외교는 새로운 도전에 직면해 있다. 연초 미국이 이란 혁명수비대 사령관을 암살하고 이란이 피의 보복을 다짐하는 등 중동지역에 전운이 감돈다. 우리 정부는 이미 우리 선박 보호를 위해 청해부대를 호르무즈해협에 파견한다고 결정했다. 하지만 이제 호르무즈해협 파병은 자칫 이란과의 전쟁에 연루될 위험성이 크다.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는지가 향후 자기주도외교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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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군이 이란의 가셈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제3국인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표적공습해 살해한 사건의 파장이 일파만파다. 미국과 이란 간 군사 충돌이 초읽기로 접어들며 중동 정세가 혼미 상태다. 이라크 의회는 지난 5일 이라크 주둔 미군의 철군을 요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란은 ‘가혹한 보복’을 다짐한 데 이어 핵합의(JCPOA)를 사실상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가 국제사회의 핵확산 금지체제까지 뒤흔들고 있는 셈이다. 


사태의 일차적 책임이 미국 트럼프 행정부에 있음은 명백하다. 제3국에서 해당국 동의 없이 정상국가의 군 지도자를 암살한 것은 비윤리적인 폭거다. 국제법상 허용되는 자위권 행사 요건도 충족하지 못하고 있다. 국제법상 허용되는 자위권이란 명백하고 임박한 위협을 전제로 하지만 미국은 그럴 만한 정황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오바마 행정부 때 관계개선의 전기가 마련되는가 했던 미·이란 관계는 2018년 5월 트럼프 행정부의 일방적인 합의 파기로 급격히 악화됐다.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이란이 국제사회와의 핵합의를 지키고 있음을 검증을 통해 확인했음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란이 몰래 핵무기를 제조한다고 비난하며 합의를 파기했다. 이후 양국 간 긴장이 가파르게 상승하면서 현재에 이른 것이다. 그런데도 트럼프 대통령은 한술 더 떠 “이란 내 52곳의 공격목표를 정해뒀다”며 이란에 산재한 인류 문화유산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내비쳤다. 전쟁범죄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세계 최강국 지도자의 언행이 할 말을 잃게 한다.   


미국은 이번 사태로 대중동 정책이 위기를 맞이했다는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사태수습에 나서야 한다. 미국 우방인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연합조차 미국의 군사행동 자제를 촉구한 것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일방주의적 외교정책이 국제사회에 얼마나 해악을 미쳐왔는지 미국은 자성해야 한다. 유엔과 국제사회도 적극적인 중재에 나서야 한다. 


청와대가 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 회의를 열어 현재 정세를 평가하고 교민안전과 원유수급 대책 등을 논의한 것은 시의적절하다. 사태의 파장이 한반도 정세에까지 미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정교한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무엇보다 호르무즈해협 파병 문제를 놓고 고민이 클 것이다. 정부가 유념해야 할 것은 한·미동맹과 북핵 공조가 아무리 중요하다고 해도 이번 사태에서 미국 편을 드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는 점이다. 호르무즈 파병이 2004년 이라크 파병 못지않은 후유증을 불러올 가능성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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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 사회권규약위원회가 한국 정부의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 노력에 대해 구체적 일정과 계획이 없다고 지적했다. 2017년 10월 한국에 비준을 최종 권고하고, 지난 4월 정부가 제출한 보고서에 대해 평가한 결과를 지난달 9일 통보한 것이다. 파국으로 끝난 정기국회 폐장 전날이었다. 위원회는 “ILO 핵심협약 제87호와 제98호 비준을 위한 한국 정부의 계획과 조치를 평가하지만, 비준을 위한 시간 정보가 부족한 점은 유감스럽다”고 밝혔다. EU가 지난달 30일 “자유무역협정 위반”이라며 전문가 패널조사에 착수한 데 이어 유엔도 직접 조속한 비준을 압박하고 나선 셈이다. 올 것이 겹쳐 온 격이고, ‘약속을 지키라’는 국제사회 요구는 당연하다.


ILO 핵심협약 87호·98호는 ‘노조 할 권리’를 보장한 기본규약이다. 한국에선 실업자·해고자가 있다고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국교직원노동조합, 공무원노조 가입 대상 확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대학교수 등의 노조 가입 허용 문제가 걸려 있다. 정부는 제29호(강제노동 금지)까지 3개 협약 비준안과 노동관계법 개정안을 국무회의에서 의결하고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다. 그러나 국회는 움직이지 않았다. 논의가 장기 공전하자 환경노동위원회를 향해선 “쳐다보지도 않는다”는 말까지 나왔다. 자유한국당과 사용자단체, 재계 등이 “시기상조”라며 막아선 여파가 컸고, 노동계가 단협기간 3년 연장 입법안 등에 고개 젓는 사이 여당의 ‘정기국회 우선처리 리스트’에서도 빠졌다. 이재갑 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ILO 100주년 총회에서 약속한 ‘정기국회 처리’는 완전히 허언이 돼버렸다. 이대로라면 비준안은 파국으로 치닫는 20대 국회에서 자동폐기될 위기에 처했다. 가타부타 논의도 없이 21대 국회로 넘기는 것은 무책임의 극치일 뿐이다.


유엔의 지적과 EU의 전문가 패널 소집은 ‘같은 판단’에서 출발하고 있다. 한국의 노동권이 글로벌 스탠더드에 못 미치고, 정부 노력이나 개선 약속마저 ‘함흥차사’가 돼버렸다는 것이다. 6년 연속으로 국제노총이 한국에 ‘노동권 최악 5등급’을 매기고 있는 이유도 그것이다. 유엔 권고는 강제성이 없지만, ‘노동후진국’이라는 주홍글씨로 보면 된다. EU 조사는 무역 제재를 낳을 수 있는 위험도 품고 있다. ‘노동 존중’ 약속이 머쓱해진 정부는 국제사회의 차가운 ‘노동 총평’을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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