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과 미국 간의 긴장이 한창인 가운데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이 지난 20일 1박2일 일정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신조 총리와 정상회담을 했다. 아베 총리는 회담에서 일본 자위대 구축함 1대와 대잠 초계기 1대를 이란 인근 해역에 파병할 계획에 대해 설명하며 사전 양해를 구하는 모양을 갖췄다. 로하니 대통령은 파병안을 투명하게 설명해준 것에 대해 감사함을 표시했다. 아베 총리는 중동의 긴장완화와 안정화를 위해 일본 정부가 노력하겠다면서 이란이 미국 등과의 핵합의를 충실히 이행해 중동지역의 평화와 안정에 건설적인 역할을 해줄 것을 당부했다고 한다. 이란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2000년 이후 19년 만으로, 아베 총리의 지난 6월 이란 방문에 대한 답방 성격도 띠고 있다. 


경위야 어찌 됐건 미국의 맹방인 일본이 미국과 대립 중인 이란 대통령을 초청해 정상회담을 연 것은 주목을 끌 수밖에 없다. 미·일동맹의 영향으로 일본이 국제 외교무대에서 존재감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선입견을 무색하게 한다. 일각에서는 일본이 이번 회담에서 미국과 이란 간에 모종의 중재역할을 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내놓고 있다. 


시선은 자연스럽게 한·이란관계로 옮겨갈 수밖에 없다. 상황은 좋지 않다. 미국이 지난 9월 테러지원을 이유로 이란 중앙은행에 대한 제재를 강화하면서 이란과 의약품 등 인도적 교역마저 중단됐다. 이란 중앙은행이 국내 시중은행에 개설한 원화계좌도 동결돼 이란 당국이 불만을 제기하고 있다. 물론 미국의 대이란 제재가 한국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니고, 외교 당국도 제재를 풀기 위해 미국과의 협의에 나서고 있지만 좀 더 다각적인 노력이 필요해 보인다.  


일본이 정상외교에 나선다고 해서 우리도 따라해야 한다는 건 아니다. 지금 상황에선 소리나지 않게 상황을 관리하는 것이 현명한 대처일 수도 있다. 다만 어떤 방식이건 최근의 중동 긴장이 한·이란관계에 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보다 세심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런 점에서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호르무즈해협 파병에 대해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자칫 수십년간 돈독하게 다져온 한·이란관계를 악화시킬 개연성이 다분하다. 이를 한·미동맹이나 방위비 분담금 등과 연계하려는 것도 온당치 않다. 명분도 없고, 득보다 실이 큰 파병은 백지화하는 것이 상책이다.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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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는 서로 원하는 바를 알 것이다. 지난 10월 스웨덴 만남 이후 북한은 미국에 새로운 셈법을 내놓으라고 하고, ‘일단 만나자’는 미국의 요청에 묵묵부답이다. 북한은 새해에 ‘새로운 길’을 가기 위한 단계를 밟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난 4월 연말 시한을 거론하고 ‘새로운 길’을 공론화했다. 최고지도자의 체면이 있으니 뭐라도 할 것이다. 두 차례 ‘중대한 시험’ 실시, ‘전략적 핵전쟁 억제력’ 표현 등으로 장거리미사일 발사와 관련된 모종의 조치를 연상하도록 했다. 김정은은 이달 초 백두산에 다녀온 뒤 말을 아끼며 신년사 내용에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지난 2년간 북·미 비핵화 대화를 이끌어온 핵심 키플레이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다. 김정은의 ‘새로운 길’도 트럼프의 대응 방향에 따라 전개되는 양상이 달라진다. 한반도 정세는 트럼프의 상황 인식과 결정이 주요 변수인 셈이다. 내년에 트럼프의 가장 큰 목표는 대선 승리다. 국내 정치적 상황과 지지자 여론, 대선 캠페인의 득실이 대북 정책의 판단 기준이 될 것으로 짐작된다. 트럼프는 2018년 이후 북한에 아무런 양보를 하지 않았지만 북한이 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고 핵실험도 하지 않았음을 자랑한다. 북한 비핵화를 서두르지도 않겠다고 한다. 미국 본토에 대한 위협이 없었다는 점은 트럼프의 외교적 성과임이 분명하다. 전임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전략적 인내’ 기간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이 고도화한 것과 대비된다. 트럼프가 김정은을 “좋은 관계”라고 적당히 띄워주고 군사행동을 제어할 수 있다면 대선 가도에 나쁘지 않다고 볼 것이다.


김정은의 처지는 트럼프와 다르다. 비핵화 결단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트럼프를 두 번 만났지만 미국으로부터 얻어낸 실질적 이익은 별로 없다. 현재로선 경제개발 계획을 수립하는 것조차 여의치 않다. 북한은 더는 기다려주지 못하겠다는 태도다.


내년 한반도 정세를 낙관하는 전문가는 거의 없다.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나 핵실험으로 판을 크게 흔들 것이라는 관측, 미국의 강력 대응을 초래하고 중국·러시아도 불편해할 레드라인은 넘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교차한다.


서로가 한 발짝 다가갈 수 있는 명분이 필요하다. 양측의 기본 입장을 일단 견지하면서도 교착상태를 탈피해 협상 테이블에서 만날 구실을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과거 사례를 봐도, 북·미가 격렬하게 부딪치다가도 협상을 앞두고는 체면을 세워줬다. 지난해까지 주한미군사령관을 했던 빈센트 브룩스는 “북한의 ‘체면 지키기’라는 문화적 요소를 항상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들(북한)이 변화하면 우리(미국)도 변화한다는 믿음을 줘야 한다”고도 했다.


중국과 러시아가 주도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일부 완화 결의안’ 시도는 북한의 군사행동에 따른 상황 악화 방지를 위한 체면 살리기 일환으로 볼 수 있다. 문재인 대통령도 시진핑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 북·미 대화의 모멘텀을 이어가기 위한 제재 완화의 필요성에 공감했다. 그러지 않고선 북한이 비핵화에 나서기 어려운 입장을 감안한 것이다. ‘비핵화 이전 최대의 압박 유지’ 입장이 분명한 미국이 일부 제재 해제에도 공개적으로 동의해줄지는 미지수다.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유예가 주목받는 것은 실현 가능성을 감안해서다. 북한은 연례적인 한·미 연합훈련에도 ‘전쟁연습을 하면서 무슨 대화냐’며 강한 경계심을 드러낸다. 지난해 북·미 대화의 촉매제도 한·미 연합훈련 중단이었다. 북한은 핵·미사일 실험 중단으로 화답했다. 이번에도 이런 주고받기로 대화판을 깐다면 트럼프는 북한의 핵·미사일 모라토리엄을 유지하면서 원칙을 깨지도 않고 외교적 성과도 훼손되지 않는다. ‘대선에 끼어들지 말라’고 엄포를 놨던 트럼프도 대화 유지 틀에서 ‘북한 변수’ 관리가 가능하다.


그렇게 상황이 진전되면 비핵화 조치와 제재 완화 문제를 논의하는 협상의 본궤도에 들어갈 수 있다. 북한은 ‘제도적 안정을 위한’ 체제 안전보장과 ‘발전권을 위한’ 제재 완화를 비핵화 협상의 조건으로 요구한다. ‘원샷딜’은 비현실적이다. 비핵화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부장관은 지난주 서울에서 판문점 회동을 제안하며 “‘타당성 있는 단계’와 ‘유연한 조치’로 균형 잡힌 합의에 이를 준비가 돼 있다”고 했다. ‘북한의 완전한 비핵화’라는 최종 목표를 확인하고, 1단계 비핵화와 일부 제재 완화를 고려할 수 있다는 메시지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어찌 됐건 시급한 일은 북·미가 너무 떨어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다. 연말·연초 고비를 넘기면 기회가 오도록 말이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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