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4일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서 “동북아에서 철도공동체를 시작으로 에너지공동체와 경제공동체, 평화안보 체제를 이뤄낸다면 기업의 비즈니스 기회는 더욱 많아질 것”이라며 남북 철도·도로 연결의지를 밝혔다. 문 대통령은 전날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중·러의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완화 추진 결의안에 대해 논의한 데 이어 리커창 총리와의 회담에서도 남북 철도·도로 연결을 통한 동북아 철도공동체를 함께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 대통령이 방중 기간 동안 연이틀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을 밝힌 것은 이목을 끌기에 충분하다. 물론 정부가 미국과의 대북공조 대열에서 이탈해 중국·러시아와 함께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을 모르지 않는다. 더구나 중·러가 지난 16일 유엔에 대북 제재 완화 결의안 초안을 제출하고, 미국이 반대하고 나서는 등 대북 제재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진 민감한 시점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쓰촨성 청두 세기성 박람회장에서 열린 한중일 비즈니스 서밋에 참석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 이번 비즈니스 서밋은 대한상공회의소·중국국제무역촉진위원회·일본경제단체연합회 등 한중일 경제인들이 주최했다. 연합뉴스


문 대통령의 동북아 철도공동체 구상은 빈사 상태에 빠진 북·미 협상의 모멘텀을 살려내겠다는 충정으로 해석하는 게 온당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미국이 대북 제재에 대한 태도를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는 간접적인 메시지를 보낸 것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남북 철도 연결 사업은 대북 제재 문제를 극복하지 않으면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남북이 ‘남북 철도·도로 연결 및 현대화 사업’ 착공식을 한 지 26일로 1년을 맞지만 후속 작업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대한 기대를 접고 내년에 ‘새로운 길’을 가겠다는 뜻을 공공연히 밝힌 상태다. 내년 한반도가 2017년을 방불케 하는 긴장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작지 않다. 북·미 경색은 근원을 따져 올라가면 양쪽 모두에 책임이 있다. 북한은 지난해 북·미 협상에 앞서 풍계리 핵실험장 해체 등 선제조치에 나섰지만 미국이 상응조치를 취하지 않은 데 대한 불만이 크다. 영변 핵시설 해체와 대북 제재 완화를 맞바꾸자는 하노이 제안도 미국은 거부했다. 반면 북한은 비핵화의 전체 그림을 제시해 달라는 미국의 요구에 응하지 않고 있다. 양측이 한 발짝씩만 뒤로 물러났더라면 해결할 수 있는 쟁점들이었다.  


중국 환구시보는 최근 시평에서 “제재를 완화하면 북한은 비핵화 프로세스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북·미 간 상호 신뢰도 증가할 것”이라고 했다. 중·러의 제재 완화 결의안을 뒷받침하는 취지이지만, 논리 자체는 틀리지 않는다. 대북 제재를 유지하면 할수록 북한은 핵능력을 더 고도화하는 ‘제재의 역설’이 작동하고 있는 것이 한반도의 현실이다. 미국은 이를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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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4일 중국 청두에서 45분간 회담했다. 한·일 정상회담은 지난해 9월 유엔 총회를 계기로 성사된 데 이어 15개월 만이다. 30분 예정이던 회담시간을 15분 넘겨 진행된 회담에서 문 대통령은 “양국 간 현안을 해결하려면 직접 만나 솔직한 대화를 나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또 “일본과 한국은 역사적·문화적으로 가장 가까운 이웃이자, 교역과 인적 교류에서도 더욱 중요한 매우 큰 동반자”라며 “잠시 불편함이 있어도 결코 멀어질 수 있는 사이가 아니다”라고 했다. 아베 총리도 양국은 중요한 이웃이라면서 “저로서도 중요한 일·한관계를 개선하고 싶다”며 “오늘은 솔직한 의견 교환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 리커창 중국 총리 24일(현지시간) 한중일 협력 20주년 행사가 열리는 중국 쓰촨성 청두 두보초당에 입장하고 있다. 두보초당은 당나라 시인 두보가 머무른 곳이다. 연합뉴스


한·일 간 현안과 관련해 문 대통령은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가 7월1일 이전 수준으로 조속히 회복돼야 한다”고 했고, 아베 총리는 “수출 당국 간 대화를 통해 문제를 풀어나가자”고 했다. 수출규제 해제와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 연장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시점을 확정짓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제징용 배상 문제도 양국 간 입장 차를 확인하면서 대화로 문제를 풀어가자는 데 공감했다고 청와대가 설명했다. 


외견상 별 소득이 없어 보이는 회담이었다. 하지만 한 술에 배부를 수 없는 것이 지금의 한·일관계다. 지난 몇년에 걸쳐 켜켜이 쌓인 불신, 오해가 통역을 낀 45분간의 대화에서 모두 풀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오히려 주목할 것은 두 정상이 ‘솔직한 대화’를 강조하면서 자주 만나자는 데 뜻을 모은 점이다.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일본 총리가 24일(현지시간) 중국 쓰촨성 청두 세기성 샹그릴라호텔에서 정상회담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상외교의 미덕은 최고지도자끼리 마주 앉아 허심탄회하게 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당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도 대화를 거듭하며 서로에 대한 이해를 넓혀가는 사이에 엉킨 매듭도 자연히 풀리게 마련이다. 물론 알맹이 없는 만남을 반복해서는 안되겠지만, 꼭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안는다면 관계를 지속하기 어렵게 된다. 특히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우면서도 굴곡이 많은 한·일 간에는 만남을 이어가는 것 자체가 긴요하다. 이날 회담을 기점으로 한·일 정상이 ‘셔틀외교’ 방식으로 정례 회담을 지속한다면 양국 간에 깊게 팬 골은 메워질 것이다. 


일본은 회담 나흘 전인 지난 20일 반도체 소재인 포토레지스트에 대한 수출규제 완화 조치를 취했다. 이번 회담을 계기로 일본은 수출규제의 원상회복 절차에 속도를 내주기 바란다.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에 대해서도 해법 마련에 지혜를 모아줄 것을 당부한다. 두 정상이 한목소리로 밝힌 ‘솔직한 대화’가 향후 양국관계를 풀어나가는 기본 덕목이 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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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국 광둥성 잉더(英德)시의 학부모들은 자녀가 다니는 초등학교에서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내용은 단순했다. ‘고사리손이 어른 손을 잡는’ 방식으로 가정마다 ‘ETC’를 설치해야 한다고 했다.


ETC는 고속도로 통행료 자동 결제 장치로 중국판 ‘하이패스’다. 학교가 아이들을 동원해 어른들에게 ETC 등록을 강요한 것이다. 편지에 동봉된 회신문은 한술 더 떴다. 학부모 이름, 소유 차량 대수, 차량번호, ETC 단말기 설치 여부를 적어 제출하게 돼 있었다. 학부모들은 차량번호까지 조사한 것은 명백하게 사생활을 침해한 것이며, 학생들의 피교육권까지 훼손당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최근 중국 정부는 전국 고속도로의 ETC화를 추진하고 있다. 요금수납원이 있는 차로를 대폭 줄여 ETC 사용을 확대하겠다는 의도다. ETC 단말기를 설치하면 무엇보다 통행료를 내기 위해 차를 세우고 지불해야 하는 번거로움을 피할 수 있다. 시간도 절약된다. 요금소 주변 정체를 막는 데도 도움이 된다.


중국 정부의 ETC 보급은 강제적이다. ‘고사리손’까지 끌어올 정도니 동원할 수 있는 것은 모조리 나오고 있다. 후난성 등 일부 지역의 톨게이트에서는 수납원 차로를 아예 없앴다. 


샤먼시 북역 고속도로 요금소는 “ETC 미장착 차량, 국가적 호소에 응답하지 않은 차량은 고속도로 사용을 환영하지 않는다”는 무시무시한 현수막까지 내걸었다. ETC 단말기를 설치하지 않은 차량은 매년 받아야 하는 자동차 검사도 받지 못한다. 사실상 운행금지나 마찬가지다.


중국은 이용의 편리성을 부각시키거나 할인혜택을 주는 게 아니라 온갖 방법으로 차주들을 핍박한다. 괴로운 건 운전자뿐이 아니다. ETC는 각 은행 카드와 연동해 요금을 지불하게 돼 있는데 전용카드 판매 실적 할당을 채우지 못하면 문책을 받는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은행마다 카드 가입자를 끌어모으는 데 열을 올리고 있다.


내년 1월1일부터 중국 고속도로 요금소의 대부분 통로가 ETC 전용으로 바뀔 예정이다. 현금 및 전자페이 같은 수납원을 통한 방식은 대폭 줄인다. 충분한 준비기간 없이 이뤄진 갑작스러운 정책에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지난 19일에는 광둥성에 사는 뤄모씨는 구이린(桂林)으로 향하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려다 저지당했다. 차량에 ETC를 설치하지 않은 게 문제였다. 고속도로 관리원은 당장 설치하지 않으면 고속도로를 이용할 수 없다고 했고, 구이린에서 다시 나올 수 없다는 협박까지 했다. 차에는 임신한 아내가 타고 있었다. 뤄씨는 실랑이 끝에 2시간 만에야 고속도로에 진입할 수 있었다.


교통운수부는 연말까지 ETC 이용률을 90% 이상 높인다는 계획을 세웠다. 요금소마다 1개의 수납원 통로는 유지해야 하지만, 지방정부는 수납원 통로를 아예 없애는 방식으로 성과 달성에 나선 상태다.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정부가 직접 나선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편리함을 내세우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빅데이터 수집을 진짜 이유로 꼽는다. 4차산업 흐름 속에서 빅데이터 패권을 노리는 중국은 14억 인구를 기반으로 각종 데이터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ETC는 데이터 확보에 효과적 수단이다. 


그러나 운전자의 동선이 그대로 드러나는 데서 발생하는 사생활 침해는 보호막이 없다. 고속도로 ETC가 아니더라도 공항, 지하철역, 기차역 등에 설치된 안면인식 카메라로 개인 사생활은 훤히 드러난다. 정보의 독점으로 사회를 통제하는 관리 권력, ‘빅브라더’의 도래가 바짝 다가온 셈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를 피할 수 있는 선택권이 중국인들에게는 없다. 혹시 교통수단을 전혀 이용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모를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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