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곳에서 ‘가짜뉴스’ 타령이다. 자신의 비행을 폭로하거나 비판한 언론 보도를 가짜뉴스로 ‘퉁치는’ 행태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그런데 가짜뉴스 논쟁은 지금 전 세계로 번지고 있다. ‘남미의 트럼프’라는 브라질 자이르 보우소나루 대통령도 ‘아마존 대형산불’에 대한 책임을 묻는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했다. 보수반동 지도자들만이 가짜뉴스 운운하는 것은 아니다. 지난 12일(현지시간) 끝난 영국 총선이 가짜뉴스 홍수에 뒤덮였다는 보도가 나왔다. 가짜뉴스 풍년이다.


그동안 거짓 뉴스들이 많았던 것도 사실이고, 해도 적지 않았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권력투쟁 무대인 정치의 영역에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거짓뉴스를 언론에 흘리거나, 잘못된 사실을 퍼뜨리는 경우가 빈발하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었다. 1980년 광주민주화 항쟁은 오랜 시간 ‘폭도’ ‘북한군 개입설’에 시달렸고, 얼토당토않은 이 가짜뉴스를 지금도 사실이라고 주장하는 세력들이 있다. 그동안 가짜뉴스 검증에 게을렀거나 회피했던 언론 책임도 무시할 수 없다. 기레기 논란은 과거 잘못에 대한 업보인지도 모른다.


그렇다 해도 가짜뉴스를 쟁점화하는 쪽의 의도가 대개 불순하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이들은 가짜뉴스를 진짜 걸러내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사안이든 가짜뉴스 프레임을 덧씌워 논점을 흐리려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군사 원조를 매개로 민주당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의 비리 조사를 압박했다는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마녀사냥’ ‘가짜뉴스’라는 말로 덮으려 한다. 18일 탄핵소추안이 하원을 통과했지만, 트럼프의 태도는 변하지 않았다. 보우소나루는 무분별한 개발정책이 아마존 산불을 초래했다는 국제사회 비판을 “브라질의 주권을 침해하려는 가짜뉴스 캠페인”이라고 했다.


치부를 덮는 데도 동원됐다. 홍콩 정부는 경찰의 홍콩 시위 강경진압에 대한 외신들의 비판보도를 ‘가짜뉴스’로 규정한 뒤 일부 언론이 사회갈등을 조장하고 홍콩 경찰 명예를 실추시켰다고 비판했다. 경찰의 실탄 발사로 부상자가 발생하고, 시위 와중에 실명하고 사망한 사람까지 나왔음에도 가짜뉴스라고 우긴 꼴이다. 중국 외교부는 신장(新疆) 위구르 소수민족 박해 의혹을 지난 16일 트위터로 비판한 아스널 축구스타 메수트 외질을 향해 “가짜뉴스에 속은 것 같다”고 했다.


급기야 근대적 민주 정치가 제일 먼저 싹텄다는 영국 총선도 가짜뉴스로 뒤덮였다. 집권당인 보수당은 제1야당인 노동당에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정책을 담당하는 의원이 관련 질문을 받고, 답변을 머뭇거리는 것처럼 보이도록 조작한 영상을 퍼뜨렸다가 사과했다. 야당도 머뭇거리지 않았다. 영국 런던 브리지에서 발생한 무슬림 흉기난동 사건을 두고 ‘보수당의 지지도를 높이기 위한 공작이었다’는 가짜뉴스가 노동당 지지자들의 페이스북에 떠돌기도 했다.


한국이라고 예외겠는가. 탄핵 이후 기반이 허물어진 보수강경 세력은 한풀이하듯 ‘가짜뉴스 타령’을 해왔다. 우리공화당은 “거짓 촛불이 조작한 가짜뉴스로 죄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불법적으로 탄핵했다”고 몇 년째 주장한다. 지난 대선을 부정선거라고 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하는 태극기 세력도 볼 수 있다. 이들은 최근 민의의 전당 국회에까지 난입해 가짜뉴스 타령을 하며 행패를 부렸다. 자신들이 직간접적으로 연관되거나 추종하는 세력이 국정농단으로 몰락했다는 불명예스러운 사실을 직시하기보다는 외면하기 위해 가짜뉴스를 꺼냈을 것이다.


문제는 여권에서도 ‘가짜뉴스를 잡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가짜뉴스나 허위 정보는 저널리즘의 신뢰성을 약화시키고, 나아가 언론의 공정성과 자유를 해친다”고 했다. 여당은 가짜뉴스를 방치하는 유튜브에 과징금을 물리는 법개정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물론 여권 말처럼 극우 유튜버 등이 퍼뜨리고 있는 가짜뉴스들의 폐해가 적지 않다. 근거가 약하거나, 근거가 아예 없는 가짜 뉴스들이 정권을 비판하기 위해 동원된 사례도 많을 것이다.


그럼에도 가짜뉴스를 쟁점화하는 측 의도가 불순하게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한다. 비판여론을 옥죄려 한다는 야당 주장에 빌미를 줄 수 있다. 가짜뉴스 판정은 누가 할 것인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사람들이 지천에 깔렸다. 정부가 가짜뉴스 판정을 내리면, “사실은 XXX한 이유 때문에 가짜뉴스로 몰고 간다더라”는 식의 또 다른 가짜뉴스가 퍼질 것이다. 무엇보다 트럼프나 보우소나루의 단골메뉴인 가짜뉴스라는 말을 촛불 대통령이 언급하는 장면을 지켜보는 자체가 개운치 않다.


<이용욱 국제부장>

Posted by 경향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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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고등법원이 정부가 “이란 다야니 가문 투자자·국가 간 소송(ISD)에 대한 유엔 국제중재판정부 판정을 취소해달라”며 제기한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지난해 6월 내려진 중재판정은 최종 확정됐다. 정부는 다야니 측에 730억원을 물어주게 됐다. 판결의 의미는 매우 크다. ‘양자협정의 독소조항인 ISD를 현실에 맞게 바꾸라’는 주문이자, 경고다. 


이번 사건은 2010년 4월 다야니 가문의 싱가포르 회사 D&A를 통한 대우일렉트로닉스(대우일렉) 인수과정에서 투자확약서상 자금부족 사실이 드러나, 계약해지와 계약금 578억원을 몰취당하면서 불거졌다. 다야니 측은 서울중앙지법에 낸 매수인 지위 인정 등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자, ISD를 제기했고 중재판정부에 이어 제3국 법원이 다야니 측 손을 들어준 것이다. ISD는 외국인 투자자가 투자한 국가의 부당한 대우, 정책 변화로 손해를 입었을 때 국제기구의 중재를 받도록 하는 제도다. 투자자 보호가 핵심으로 최근 기업 승소율은 70%에 달한다. 그 과정에서 정부의 공공정책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커, 학계와 시민단체 등은 끊임없이 폐기 또는 개선을 주문해왔다.


한국 정부를 상대로 지금까지 제기된 ISD는 청구액 1000억원 이상만 5건으로 총 규모는 9조원에 이른다. 인수·합병 등 과정에서 손해배상은 물론 정부의 토지수용정책에 대한 ISD도 제기된 바 있다. 최근에는 전기요금 감면·제주 영리병원 허가취소·하청노동자 정규직 전환 등 정부 정책에 대한 ISD 제기 움직임도 감지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ISD 소송 대상을 정부 공기업까지 확장한 중재판정을 받아들인 영국법원의 판결이 나온 것이다. 정부는 다야니소송에서 “한국 정부는 무관한 일”이라고 주장했다. 그런데 채권단에 있는 캠코가 공기업이라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투자는 D&A가 했으므로 다야니 가문은 소송 당사자가 될 수 없다”는 주장도 기각됐다. 중재판정-취소소송 과정에서 국내 법원의 판단은 반영되지 않았다.


해외 직접투자 규모가 국내투자보다 많은 상황에서 ISD의 전면 폐기는 불가능할 수 있다. 그러나 빈부격차 해소 등을 위한 공공정책의 필요성은 더욱 커지고 있다. 그렇다면 정부는 당장 ISD 개선에 나서야 한다. 투자보장협정과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잘못된 내용부터 바로잡아야 한다. 론스타 사례처럼 ‘페이퍼 컴퍼니’까지 제소가 가능토록 한 조항은 없애야 하는 것이다. 필요하다면 유럽연합 등이 ISD를 대신할 기구로 추진 중인 상설투자법원 설립도 검토해야 한다. 막대한 소송비용 유출을 막기 위한 국제소송전문가 양성도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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