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방문한 이들이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중국의 엄청난 발전이다. 중국의 발전이 분명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라는 데는 이의가 있을 수 없다. 내가 최근 상하이에 체류하면서 갖게 된 의문은 ‘이렇게 번성하는 중국에 한국은 어떤 존재인가’ 하는 것이었다.


우선 드는 생각은 인구, 영토, 경제력 그리고 이에 따른 군사력 등을 고려할 때 군사전략적 고려를 제외하면 한국의 존재감이 그리 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데 이런 인식은 중국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아마 상당수의 한국인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생각들은 중국의 조그마한 행동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데서 잘 나타난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팔을 가져다 댄 것에 대해 외교적 실례라는 반응 등이 그 좋은 예다. 아마도 이 이면에는 일개 외교부장이 한 나라의 대통령을 대통령으로 대우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깔려 있을 것이다.


이런 생각은 중국의 번성을 부활한 역사와 함께 연속선상에서 보는 견해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19세기까지 존재했던 중국의 천하질서하에서 한국은 동쪽의 오랑캐로 간주되었고 우리는 국내 정치 정통성의 상징으로 중국을 종주국으로 대했었다. 최근에 이르러 중국이 경제·군사적으로 성장하면서 중국 내부는 물론 한국과 서구에서도 향후 동아시아에 현대판 종주권 질서의 등장을 주장하는 견해들이 등장했다.


이런 주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지도 모른다. 후발산업화의 성공국가로서 중국은 상실의 역사를 회복하고 지역 및 세계의 헤게모니 국가로 등장하게 됐다. 이 같은 새로운 국제질서하에서 전통적 질서를 고려한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 것이다. 국내적 평등을 구가하던 마오쩌둥(毛澤東) 공산체제하에서도 천하질서 개념이 죽지 않았던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이런 연속적 역사관에서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바로 냉전 기간 동안의 변화이다. 수천년 연속적 한·중관계에서 냉전은 불과 수십년 지속되었던 짧은 역사였다. 그러나 냉전은 그 짧은 역사의 단절에도 불구하고 수천년의 한·중관계 역사를 뒤집을 만한 지대한 변화를 가져왔다.


가장 큰 것은 한국의 국가정체성이다. 20세기 초 한반도는 일본의 식민지를 거쳐 2차대전 후 서구진영에 속하게 되었다. 특히 한국전쟁 이후 이데올로기의 대립 속에 한국과 중국은 정치적 적대국으로 실제 관계가 전혀 없던 이웃일 뿐이었다. 아마도 이렇게 지리적, 역사적으로 인접한 국가들이 거의 절연상태로 들어간 경우도 흔치 않을 것이다.


한국의 서구 지향성은 내부적으로 심각한 갈등과 혼란을 야기했지만 궁극적으로 서구적 패러다임이 한국 사회에 정착하게 된 것은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정치적으로 서구 민주주의를 채택했고, 자본주의적 경제질서는 물론 교육·문화 면에서도 서구, 특히 미국 지향성은 의문의 여지가 없다. 이런 과정에서 중국과 연결 고리의 기초였던 유교질서도 형해화 과정을 겪었다.


한국 근대화에 세계사적 의미가 있다면 탈식민지 국가 중 최초로 경제발전과 민주화를 이루었다는 것이다. 비유적으로 하자면 한국은 제3세계의 영국과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이 제국주의 패러다임 속에서 일본식 근대화를 하다가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면 한국은 냉전 구도 속에서 근대화를 하면서 과거와의 큰 단절 속에 새로운 국가정체성을 확립하고 있다. 한국이 단순히 경제개발과 민주화에 성공한 사례라는 것을 기계적으로 되뇔 것이 아니라 한국이 갖는 세계사적 의미를 정확히 인식할 필요가 있다.


한국이 처한 이런 세계사적인 함의는 중국에 관심거리일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당면해 있는 도전이 새로운 힘을 바탕으로 변화하는 국제사회에 자신을 어떻게 표출할 것인가 하는 것이라면, 한국이 새로운 정체성 속에서 전통적인 것과 새로운 서구 정체성을 어떻게 조화할 것인가가 중국의 초미의 관심사가 될 것이다. 이것이 경제·군사적 면에서 상대적으로 약한 한국이 중국에 갖는 중요한 의미이다. 또한 안정되면서 한국적 특성을 가진 민주주의 정착과 새로운 경제질서의 구축이야말로 한국의 중요한 국제정치의 기초가 될 것이다.


학계와 언론계에 팽배해있는 한·중관계를 역사의 연속선상에서 바라보는 시각은 중국의 변화에 지나치게 압도되는 상황을 초래한다. 이런 시각은 냉전의 단절이 한국 정체성의 변화가 주는 의미를 간과하기 쉽다. 지정학적 숙명론으로 국내 정치를 어지럽게 하기보다는 정치, 경제 등 국내체제의 새로운 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이야말로 지정학적 숙명론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기초임을 인식할 때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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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오는 23~24일 중국 청두에서 열리는 한·중·일 정상회의에 참석한다고 10일 청와대가 발표했다. 문 대통령은 방중 기간 중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양자회담을 여는 방안을 조율하고 있다. 리커창 총리가 중국 대표로 참석하는 한·중·일 정상회의에서는 3국 간 협력을 강화하고 제도화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번 회담은 북·미 협상 시한을 앞두고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조짐으로 한반도에서 긴장이 고조되는 때 열려 각별한 관심이 쏠린다. 또 한·일 두 정상은 한국 대법원의 강제징용 피해자 판결과 일본 정부의 대한국 수출규제로 조성된 양국 간 갈등을 푸는 돌파구를 마련할지 주목된다. 한·중·일 정상 간 연쇄 회담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 한반도 긴장 완화와 갈등 해소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가장 시급한 현안은 역시 급속히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긴장을 누그러뜨리는 것이다. 최근 북한은 연말 시한을 앞두고 미국이 반응을 보이지 않자 ICBM 또는 위성발사체(SLV) 발사를 사실상 예고해놓은 상태이다. 이에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를 묵인해온 미국도 태도를 바꿔 11일 북한의 미사일 발사와 도발 확대 가능성을 논의하기 위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를 소집해놓고 있다. 이대로 가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는 불가피해지고, 북·미 대화도 파국으로 흐를 수 있다. 마침 이번 정상회의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시사한 크리스마스 직전에 열린다. 문 대통령은 이번 회의를 통해 북한이 추가 도발을 하지 못하도록 중국이 나서 설득해줄 것을 요청해야 한다. 북·미 대화가 대결로 비화되고 한반도 긴장이 극도로 고조되는 것은 중국에도 결코 이득이 되지 않는다. 최근 북한과의 유대를 강화한 중국이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강조할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도 징용피해자 판결과 수출규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등 현안을 풀어야 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한·일 두 정상이 의제를 가지고 본격적으로 회담장에서 마주 앉는 것은 지난해 9월 이후 처음이다. 한국의 GSOMIA 연장 조치로 더 이상의 갈등 악화는 일단 막아놨다. 마침 강제징용자 배상판결 해법을 놓고 문희상 국회의장이 제안한 방안이 협상 분위기를 추동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를 이어 한·일 정상이 양국 간 갈등을 해소하고 관계를 복원하는 단초를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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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행어는 그 시대의 사회상을 반영한다. 한 해가 저물 때쯤 ‘올해의 유행어’나 ‘올해의 신조어’ 등을 선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일본엔 ‘신어(신조어)·유행어 대상’이 있다. 1984년부터 출판사인 자유국민사가 한 해 동안 벌어진 사건이나 유행 등을 포착한 표현 10개를 골라 이 가운데 대상을 정해왔다.


지난 2일 발표된 올해의 대상은 ‘원팀’(ONE TEAM)이다. 지난 9월20일~11월2일 일본에서 처음 개최된 럭비월드컵에서 사상 첫 8강에 진출한 일본 대표팀의 구호다.


일본 럭비대표팀 31명은 외국 출신 선수가 7개국 15명으로 거의 절반을 차지했다. 뉴질랜드 출신의 제이미 조셉 감독은 필요한 선수들이라면 국적을 불문하고 대표로 선발했다. 자칫 오합지졸로 끝날 선수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낸 정신이 ‘원팀’이었다. 대표팀은 뉴질랜드 출신 리치 마이클 주장을 중심으로 결속했다. 개막전에서 러시아에 승리한 것을 시작으로 강호 아일랜드, 스코틀랜드, 사모아를 차례로 꺾고 조별리그 전승으로 8강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일본 열도는 들썩였다. 레플리카(모조품) 유니폼이 동이 나는 등 곳곳에 럭비 열풍이 일어났다. ‘신조·유행어’ 후보 30개에도 갑자기 럭비 팬이 된 사람들인 ‘벼락 팬’, 대표팀 구호인 ‘4년에 한 번이 아니다. 일생에 한 번이다’ 등 럭비 관련 표현이 5개나 들어갔다.


이런 만큼 ‘원팀’은 ‘신어·유행어 대상’으로 일찌감치 점쳐졌다. 국적이나 출신지가 다른 이들이 다양성을 서로 인정하면서 목표를 향해 굵은 땀을 흘리는 모습은 누구에게나 매력적이었을 터다.


하지만 이런 ‘원팀’의 정신은 일본 사회에선 아직은 ‘머나먼 얘기’다. 이는 ‘신어·유행어 대상’의 이례적인 심사평에서도 드러난다. 심사위원들은 “원팀은 세계에 퍼지고 있는 배외적 분위기에 대한 명확한 반대 메시지인 동시에 가까운 장래에 이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일본의 존재 방식을 시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심사위원들은 그러면서 “(원팀의 정신이) 아베 총리에게도 확실하게 전해졌다고 믿고 싶다”고 강조했다.


일본은 지난 4월 출입국관리법을 개정해 5년간 34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일손 부족이 심각한 때문이다. 하지만 외국인을 값싼 ‘단순노동력’으로 취급할 뿐 ‘이웃’으로 받아들이는 데까진 나가지 못하고 있다. 금융기업 HSBC가 매년 현지 외국인을 대상으로 실시하는 ‘살고 싶고 일하고 싶은 나라’ 조사에서 올해 일본은 33개국 중 32위를 차지했다. 특히 ‘생활에 익숙해지는 용이성’ ‘커뮤니티 허용성’ ‘친구 만들기’ 항목에서 평가가 낮았다. ‘헤이트 스피치’(특정 집단에 대한 공개적 차별·혐오 발언) 등 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도 여전하다.


럭비대표팀의 노력을 폄하할 생각은 없다. 다만 결국 ‘성과’가 있었기에 ‘원팀’ 정신을 주목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지난해 US오픈, 올해 호주오픈에서 우승한 테니스 선수 오사카 나오미에 대한 시각에서도 이런 이중잣대를 느낀다. 오사카는 아이티 출신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닛신식품은 한 애니메이션 광고에서 오사카의 갈색 피부를 하얀 피부로 바꿔 ‘화이트 워싱’ 논란을 빚었다. 일본의 한 개그맨 콤비는 “오사카에게 필요한 것은 표백제”라고 했다. ‘일본 스고이(대단해)론’이 횡행하는 일본 사회에선 타자에 대한 관용은 ‘조건부’다.


 지난 2월 96세로 타계한 도널드 킨 전 컬럼비아대 교수는 평생을 일본 문화 연구에 천착했다. 그는 일본을 너무 사랑한 나머지 말년에는 일본에 귀화했다. 그는 생전 지인에게 보낸 e메일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내가 우려하고 있는 것은 일본인은 내가 얼마나 일본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말할 때밖에만 귀를 기울여주지 않는 것이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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