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안되겠어(我不行了)!”


지난달 27일 새벽 1시30분 대만 모델 겸 배우 가오이상(高以翔)이 촬영장에서 쓰러졌다. 중국 닝보에서 저장위성TV 예능 프로그램 <나를 쫓아봐>의 추격전을 찍던 중이었다.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글을 올리고 스태프들과 웃으며 대화를 나누던 그는 이렇게 의식을 잃고 쓰러진 뒤 끝내 일어나지 못했다. 향년 35세였다.


가오는 쓰러지기 직전까지 17시간 동안 쉬지 않고 촬영했다. 70층 높이의 건물을 밧줄을 잡고 오르게 하는 등 혹독한 과제를 제시하는 걸로 유명한 이 프로그램의 촬영에는 많은 체력이 필요했다. 이날 촬영하면서 여러 차례 힘들다고 말했다고 한다.


<나를 쫓아봐>처럼 여러 스타들이 함께 연속적으로 촬영하는 프로그램은 영화 <모던 타임즈>의 컨베이어 벨트 공장처럼 굴러간다. 여러 부속품이 순차적으로 작동해야 완성되기 때문에 힘들다고 혼자 쉬는 것도 쉽지 않다.


가오는 모델로 데뷔해 활동영역을 넓혔다. 2011년 아시아인 최초로 루이비통 남성 모델로 발탁돼 주목받았다. 연기를 위해 초등학교 때 캐나다로 이민 가 능숙지 않은 중국어를 따로 연습했다고 한다.


가오의 친구 장션웨이는 소셜미디어에 올린 장문의 글에서 가오이상을 “착하고 성실하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는 가오가 원래 28일 대만으로 돌아와 여자친구와 ‘특별한 저녁’을 할 예정이었고, 친구들도 초청해 ‘인생의 새로운 장’이 시작하는 것을 지켜보기를 원했다고 했다. 팬들은 가오가 프러포즈를 하려고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가오의 빈자리는 컸다. 친척도 없는 대만에서 연예계 생활을 하며 처음 사귄 친구인 농구선수 마오자은이 지난달 29일 결혼식을 했다. 가오가 서기로 했던 신랑 들러리 자리는 비워 있었다. 결혼식에서 가오의 추모 영상을 틀었고, 신랑과 신부는 눈이 붉어졌다.


가오의 시신은 2일에야 대만으로 돌아갔다. 숨진 지 7일째 중국에서 망자의 넋을 위로하는 날인 두칠이었던 3일. 어쩌면 신부가 됐을지 모르는 여자친구는 그에게 “마음 편히 높이 날아가라”는 글을 남겼다. 아버지는 일부러 가오가 환하게 웃고 있는 모습을 영정으로 택했다.


안타까운 죽음으로 돌리기엔 가오의 죽음 뒤에 있는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강도 밤샘촬영이 다반사인 중국 프로그램 제작 환경에서는 안전보다 촬영이 앞섰다. 그가 안되겠다면서 쓰러진 뒤에도 제작진은 “촬영을 멈출 수 없어서” 당장 달려가지 않았다고 중국 매체들은 보도했다. 그가 구급차에 실려간 후에도 계속 촬영을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안되겠다며 쓰러지기 전에 보냈던 여러 번의 신호도 무시당했다.


누군가는 돈을 많이 받았으니 그만큼 촬영을 할 수 있다는 의견도 낸다. 가오의 출연료는 회당 15만위안(약 2528만원) 정도다. 기획사와의 배분, 비용 등을 제하면 그에게 돌아가는 돈은 이보다 적다. 무엇보다 얼마만큼의 거액이든, 목숨을 담보로 한 초과근무까지 허락되는 것은 아니다.


돈으로 모든 것을 보상할 수 있다는 관념이 가장 문제다.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 전 회장은 “996을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행복”이라고 했다. 996이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6일간 일하는 것으로 중국 IT 업계에 만연한, 정당한 보상 없는 과도한 초과근무를 일컫는다. 중국 노동법 위반이지만, 퇴근 후에도 직장에서 온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것이 일상화되고, 강제 야근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이런 문화가 일반화되면서 스타들까지 ‘고강도 야근’을 당연히 하는 게 아닐까. 또 안전보다 성과가 우선이라는 잘못된 생각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고 있는 게 아닐까.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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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AP연합뉴스


북·미 협상이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다. 리태성 북한 외무성 북한담당 부상은 3일 담화를 발표해 “우리가 선제적으로 취한 중대조치들을 깨지 않기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였다”면서 “연말 (북·미 협상) 시한부가 다가온다는 점을 다시 한번 상기시키며, 이제 남은 것은 미국의 선택”이라고 말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을 향해 ‘새로운 해법’을 들고 오라고 한 시한이 한 달밖에 남지 않았다며 결단을 압박한 것이다. 반면 미국은 이날 또다시 E-8C 조인트 스타즈와 RC-135U 컴뱃 센트 등 최첨단 정찰기 2대를 동시에 한반도 상공에 띄워놓고 대북 감시 활동을 벌였다. 북한의 중·장거리미사일 발사 동향을 집중 감시하는 것으로, 최첨단 정찰기 2대가 동시 출격한 것은 이례적이다. 협상 분위기는커녕 북·미 간 긴장만 고조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지난 2일 백두산 인근 양강도 삼지연군에 건설 중인 신도시 읍지구 준공식에 참석한 모습을 3일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향했던 백두산을 50여일 만에 다시 찾았다. 연합뉴스


연내 북·미 협상이 무산될 경우 벌어질 상황은 심각하다. 리 부상이 언급한 ‘선제적 중대조치’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란 그동안 유예해온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을 재개하겠다는 뜻일 수 있다. 북한은 김 위원장 신년사를 통해 이를 선언할지도 모른다. 김 위원장이 2일 북한 최고지도자들이 중대 결심을 할 때마다 찾는 북한 혁명의 발상지 격인 삼지연군을 방문한 것도 심상치 않다. 북한이 지난여름부터 이동식 미사일 발사대를 올려놓는 콘크리트 토대를 전국 수십곳에서 증설하고 있다는 아사히신문의 보도도 있다. 만약 김 위원장이 강경 대응을 한다면 내년 11월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 대화는 물 건너간다. 


북한은 장거리미사일 발사에 앞서 1차적으로 한·미 연합군사훈련과 첨단무기 도입에 반발해 군사적 긴장을 높일 가능성이 있다. 그렇다면 미국은 북한을 다시 협상 테이블로 불러오기 위해 한·미 연합훈련을 내년 상반기 또는 하반기까지 잠정 중단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다. 지난해에도 한·미 연합훈련을 하지 않기로 한 결정이 북한의 평창 올림픽 참가와 북·미 정상회담 개최로 연결됐다.


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직 서로에 대해 신뢰를 버리지 않고 있다. 남은 한 달 동안 북·미 양측은 보다 유연한 태도로 대화를 이어가야 한다. 미국은 실효성 있는 협상 카드를 보여야 하며, 북한 또한 핵무기와 중장거리미사일 시험만은 계속 유예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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