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연방정부의 재정 사용 현황을 홈페이지(USAspending.gov)에 공개해 정부 투명성을 높인다. 영국은 조세 회피, 부패 방지를 위해 자국의 부동산을 소유한 외국 기업의 실소유주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1억유로 상당의 예산 용도를 시민이 직접 정하는 ‘Let Madrid Decide’라는 참여예산제를 운영 중이다.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시민이 주도해 결정케 함으로써 정책과정에서 국민 참여 수준이 대폭 높아졌다.


세 국가의 정책은 ‘투명성, 반부패, 국민 참여’라는 ‘열린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표 사례다. 이처럼 열린정부 구현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다자협의체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2011년 만들어진 ‘열린정부 파트너십’(OGP)이다. 


OGP는 2011년 출범 이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79개국과 국제투명성기구를 포함한 수천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는 연합체로 발전했다. 한국도 2011년부터 가입해 운영위원국으로 활동해 왔으며 제11대 공동의장국으로 선출되면서 2019년 10월부터 2년간 세계의 열린정부 활동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2017년 새 정부 출범 때 국민 소통 창구인 ‘광화문1번가’에 모인 18만건의 정책 제안은 전 세계에 국민 참여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줬다. 한국의 OGP 의장국 선출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국민과 정부의 노력, 정부 혁신의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산자이 프라드한 OGP 사무총장은 “세계 각국에 더 많은 광화문광장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열린정부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주도해야 한다. 특히, 의장국의 임기가 끝나는 2021년은 OGP 출범 10주년으로, 향후 10년간 열린정부가 지향해야 할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부담감이 크지만 한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 빠른 변화의 시대에 세계 각국은 시민 영역의 축소, 정부 신뢰도 하락 등 다양한 문제와 도전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참여민주주의 활성화, 포용국가를 위한 공공가치 구현, 정부 혁신을 통한 신뢰 제고를 의장국 비전선언문에 포함해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민관협의체인 ‘대한민국 열린정부 포럼’을 운영하며 시민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 OGP 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동참 속에 세계의 열린정부를 선도하는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진영 | 행정안전부 장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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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1776년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할 때 그들에겐 답이 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국 당시부터 북미 대륙에 존재했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 때문에 이 질문의 답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최근 이 질문에 대해 복수의 답을 병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일들이 있었다.


14일은 ‘콜럼버스의날’이었다. 1492년 미주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연방 정부가 1937년 지정한 공휴일인 콜럼버스의날은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다.


‘워싱턴’이라는 도시 이름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게서 나왔다. 뒤에 붙은 DC(District of Columbia·컬럼비아 특별구)라는 명칭엔 콜럼버스의 자취가 담겼다. 워싱턴의 대표적 상징물이 백악관 앞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비이지만, 국회의사당 북쪽 ‘유니언 기차역’ 앞에 있는 콜럼버스의 형상을 새긴 ‘콜럼버스 기념 분수’도 중요 상징물인 이유다. 그런데 올해 워싱턴의 10월 둘째주 월요일은 콜럼버스의날이 아니었다. 워싱턴 시의회가 지난 8일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주 대륙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에 그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그가 이끈 원정대가 원주민 사회에 재앙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시의회 결의안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 북미에는 수백만명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미주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수천명의 원주민을 노예화·식민화하고 학살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 내 7개 주, 70개 이상의 도시가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원주민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 정치·행정·사법의 심장부인 워싱턴도 콜럼버스의날 폐지에 동참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시당국은 남동쪽 외곽에 자리잡은 ‘베리팜’ 지역 재개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 후반 흑인 구휼기구인 ‘자유민사무소’는 해방된 흑인 및 자유민으로 태어난 흑인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비드 베리로부터 농장을 사들여 대규모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일종의 ‘해방촌’이 만들어진 셈이다. 1940년대 들어 주택난이 대두되자 연방정부는 이곳에 400동 이상의 공공주택을 짓는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역사가 긴 만큼 베리팜에서 나고 자란 유명 흑인도 많다.


베리팜 공공주택 단지는 1980년대에 대규모 개·보수를 거쳤다. 하지만 낡은 터라 재개발 여론이 대두됐다. 이 지역이 마약과 범죄로 악명 높았던 점도 쇄신 필요성을 더했다. 결국 워싱턴 시당국은 기존 건물들을 헐고 훨씬 더 큰 복합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 이주가 시작됐고, 상당수 건물이 철거됐다. 그런데 이주를 거부한 일부 주민은 아직 남은 32개 동을 역사건축물로 보존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들은 워싱턴 중심부의 백인 거주 지역이라면 이처럼 일거에 밀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베리팜이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더라도 엄연히 그들의 삶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 시당국은 이들의 요구를 숙고 중이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그간 배제되거나 과소대표 됐던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사회에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종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정의와 도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내부에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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