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일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로 끝난 지 7개월 만에 양측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비록 ‘실무’급 협상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자리가 될 것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을 좁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에 질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 순항시켜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을 섣불리 전망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접근방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왔다. 지난달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공감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선 비핵화’에 집착해온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동시적 접근법’을 ,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단계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교착 끝에 열리는 이번 실무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서막이 되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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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이 국가 훈장인 ‘공화국 훈장’을 처음 수여했다. 중국 건설과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주는 최고 영예다.


8명의 수여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선지란(申紀蘭·90)이다. 


선지란은 평생 농촌개혁에 앞장서왔다. 고향인 산시성 핑쉰현 시거우촌에서 당 간부에 임명됐지만 30년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 관용차량도 거절하고 버스를 탔다. 출장에 가면 가장 싼 여관, 가장 싼 음식을 찾았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선지란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호찌민 전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 같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도 그와 만났다.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00인의 개혁선봉 표창 수상자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최고 영예인 공화국 훈장까지 받았다. 


중국이 건국 70년간 여정에서 선지란의 공로를 크게 인정한 이유는 비단 청렴함 때문일까. 


선지란은 중국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지란은 1954년 중국 의회인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후 13기까지 65년간 전인대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대표이기도 하다. 수천만 인민들을 아사시킨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설립에 찬성했고, 중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에도 찬성했다. 공산당이 대약진운동과 문혁에 대한 과오 청산에 나설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 류샤오치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찬성했다. 공산당의 입장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지만 그는 한 번도 ‘찬성’을 접은 적이 없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이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었다”고 선포한 이래 중국 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정치체제도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왔는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국 70주년 기념전을 찾았다. ‘위대한 역정·빛나는 성취’라는 주제에 맞게 중국의 과학기술, 경제, 군사 등 다방면의 발전 성과가 잘 전시돼 있었다. 1952년 679억위안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74배 성장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 경제체가 됐다. 베이징전람관은 원래 소련의 기술과 자본으로 지은 소련전람관이었다. 소련 붕괴 후 베이징전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과시하는 곳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전 관람 후 “70년간 역사적 성취와 변혁은 중국 공산당만이 중국을 이끌 수 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만이 중국에 번영과 부강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올해로 중국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69년 집권 기록을 깼다. 


그러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덩샤오핑의 유훈인 ‘집단지도체제’가 희미해졌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지해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헌법에 ‘시진핑 사상’을 삽입해 시 주석의 사상적 지위는 마오쩌둥 반열로 격상됐다. 시 주석이 2013년 국가주석으로 처음 임명될 때 찬성률은 99.86%였다. 반대표는 단 1표, 기권은 3표에 불과했다. 헌법 수정 표결 때도 반대는 2표뿐이었다. 


선지란은 “요즘은 거수 대신 전자개표기 버튼만 누른다”면서 “전인대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토로했다. 거수라는 공개 찬성을 통해 충성심을 과시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경제에서는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를 이뤘지만 개혁을 찾기 힘든 중국의 정치가 우려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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