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나루히토(德仁) 일왕 즉위를 대내외에 선포한 ‘즉위례 정전의식’은 ‘레이와(令和·현 일왕 연호)’ 왕실의 본격적인 출발을 알린 의식이었지만, 일본 왕실이 껴안은 문제를 새삼 부각시켰다. 이른바 ‘안정적인 왕위 계승’ 문제다. 


의식이 치러진 왕궁 내 풍경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일왕의 옥좌인 ‘다카미쿠라(高御座)’ 왼쪽에 동생 후미히토(文仁·53)를 비롯한 아키시노미야(秋篠宮) 일가 4명이, 오른쪽엔 휠체어를 탄 작은 아버지 마사히토(正仁·83) 등 히타치노미야(常陸宮), 미카사노미야(三笠宮), 다카마도노미야(高円宮) 일가 7명이 섰다. 1990년 아키히토(明仁) 일왕 때 남성 왕족 6명, 여성 왕족 7명이 좌우로 선 것과 대비된다. 의식에 참가할 수 있는 성인 남성 왕족이 2명밖에 없는 데 따른 궁여지책이다. 일본 왕실전범은 부계 혈통인 남성만 왕위 계승 자격을 인정한다. 현재 계승 자격자는 후미히토와 그 아들 히사히토(悠仁), 마사히토 등 3명뿐이다. 고령인 마사히토를 제외하면 현실적으로 2명밖에 없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22일 도쿄 왕궁에서 열린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나루히토 일왕을 향해 만세 삼창을 하고 있다. 도쿄_AP연합뉴스


남성 왕족 부족은 일본 왕실 최대의 문제라 할 수 있다. 1965년 후미히토 이후 9명 연속으로 여성이 태어났다. 2006년 41년 만에 남성 왕족인 히사히토가 탄생한 것은 ‘기적’에 가까운 일로 평가된다. 당시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 純一郞) 정부는 여성여계(女性女系) 일왕을 인정하는 왕실전범 개정안을 제출할 방침이었지만 히사히토의 탄생으로 없었던 일이 됐다. 


현재 일본 왕실에서 30대 이하 왕족 7명은 히사히토를 빼면 전부 미혼 여성이다. 여성은 결혼하면 왕족 신분을 잃는다. 히사히토가 즉위할 쯤에 왕족이 없어질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히사히토가 즉위한 뒤도 문제다. ‘다음 왕위’는 히사히토의 부인이 남자아이를 낳아야 이어진다. 현재 13살인 히사히토에게 일본 왕실의 ‘존속’이 걸려 있는 셈이다. 


지난 8월 히사히토가 양친과 함께 처음 해외 방문을 했을 때도 이런 사정이 드러났다. 히사히토와 어머니 기코가 탄 비행기가 부탄 공항에 도착하고 20분 뒤 아버지 후미히토가 다른 비행기편으로 왔다. 비행기 사고로 1·2위 왕위 계승자가 동시에 사망하는 ‘최악의 경우’를 피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데도 왕위의 안정적 계승을 위한 대책은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는 실정이다. 2017년 6월 국회는 “안정적인 왕위계승을 확보하기 위한 모든 과제, 여성 궁가 창설 등”을 신속하게 검토하도록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즉위 의식이 일단락되는 올 가을 본격적인 검토에 들어가기로 했지만, 내년 봄으로 또 미룰 것이란 관측이 많다. 


논의의 공전(空轉) 배경에는 남계 남성에 의한 왕위 계승을 고집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를 비롯한 보수·우익 세력들이 있다. 최근 자민당 내 의원 모임이 2차 대전 패전 뒤 일반인이  된 ‘구 왕족’의 남성 일부를 왕족으로 복귀시키는 제언을 내놓은 데서도 이런 집착이 읽힌다. 이들은 “남계 왕위 계승을 126대 관철해온 것이 일본의 전통”이라며 “모계 천황(일왕)을 인정하면 이질적인 왕조, 천황답지 않은 천황을 낳게 된다”고 했다. 이런 주장에는 일왕이 초대 진무(神武) 이래 126대에 걸쳐 계보가 끊이지 않고 존재해왔다는 ‘만세일계(萬世一系) 신화’가 깔려 있다. 일왕이 ‘절대군주’였던 전전(戰前) 천황제로 돌아가기를 바라는 일본 우익들의 바람도 있다.  


유럽의 왕실에선 남녀평등 등의 영향으로 ‘장자 우선’ 제도가 확산되고 있다. 교도통신의 지난 26~27일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의 81.9%가 여성 일왕에 찬성했다. 일본 사회 최고의 ‘금기’로, 일본인에 내면화돼 있다는 ‘천황제’의 향방과 관련해 향후 왕위 계승 논의가 어떻게 전개될 지 주목된다.


<도쿄|김진우 특파원 jwkim@kyunghyang.com>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이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과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을 놓고 한국 정부를 연일 압박하고 있다.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난 26일 도쿄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GSOMIA는 미국과 일본에, 그리고 한국에도 유익하다”며 한국 정부를 상대로 GSOMIA 종료 결정을 재고해 달라고 요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스틸웰 차관보는 또 “미국이 (한·일 갈등을) 중재할 입장이 아니다”라면서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로 파급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날 랜들 슈라이버 미 국방부 인도·태평양 안보담당 차관보도 “한국이 GSOMIA를 연장하지 않기로 한 결정을 재고하기 바란다”고 말했다. 다음달 23일 효력이 종료되는 GSOMIA를 유지하라고 미 국무부와 국방부가 노골적으로 요구하는 상황이다. 


스틸웰 차관보의 발언을 보면 미국의 GSOMIA 복원 의지는 상당히 굳다. 그는 “GSOMIA가 종료돼도 한·미·일 방위기밀정보공유 각서(TISA)를 통해 군사정보를 계속 공유할 수 있다”는 한국 정부의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정보 공유가 신속하게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지만 GSOMIA 종료는 당초 일본이 수출규제에 나서자 한국 측이 어쩔 수 없이 택한 대응책이다. 그런데도 미국이 일본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한국을 향해서만 GSOMIA 종료를 철회하라는 것은 부당하다. 미측은 경제 문제가 안보 문제로 비화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지만 한국의 안보 규정을 문제 삼아 경제보복을 가한 것은 바로 일본이다. 한국 측의 사정은 무시한 채 자국과 일본의 입장만 내세우는 태도가 실망스럽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도 마찬가지다. 미 정부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더 공평한 몫을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왔다”며 노골적으로 증액을 요구했다. 하지만 전략무기 전개비용까지 요구하는 것은 한·미 주둔군지위협정(SOFA)에 위배된다. 


일본이 수출규제를 철회하지 않는 한 한국 정부는 GSOMIA를 존속하기 어렵다. 아무리 미국이 원한다고 해도 이는 주권국으로서의 자존심이 달린 문제다. 한국인들은 GSOMIA 종료와 방위비 분담금 증액 요구가 한·미동맹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이를 무시하고 미국이 압박을 계속한다면 이는 한·미동맹을 약화시키는 일임을 미국은 분명히 알아야 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정부가 28일 북한의 금강산지구 남측 시설 철거 요구에 대해 금강산에서 당국 간 실무회담을 개최할 것을 제의했다. 남북이 일단 만나 북측이 요구하는 시설 철거뿐만 아니라 금강산관광 재개 방안까지 함께 논의해보자는 취지다. 북한은 지난 25일 보낸 통지문에서 금강산지구에 들어와 시설을 철거하라며 실무적 문제들은 ‘문서교환’ 방식으로 합의하자고 한 바 있다. 하지만 문서를 주고받는 형식으로는 금강산관광 문제를 포괄적으로 논의하는 데 한계가 있는 만큼 정부가 실무회담을 역제의한 것은 당연한 조치다. 


‘개성공단 금강산관광 재개 범국민운동본부’ 관계자들이 28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금강산관광 재개를 요구하며 정부를 비판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우철훈 선임기자 photowoo@kyunghyang.com


이상민 통일부 대변인은 “남북관계의 모든 현안은 대화와 협의를 통해 해결해나가야 한다는 것이 정부의 일관된 입장”이라며 “금강산관광 문제와 관련해서도 우리 기업의 재산권에 대한 일방적 조치는 국민 정서에 배치되고 남북관계를 훼손할 수 있는 만큼 남북 간에 충분한 협의를 거쳐 합리적으로 해결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정부는 북측의 철거 요구를 대화의 기회로 활용해 금강산관광 재개를 위한 ‘창의적 해법’을 모색하겠다는 뜻을 비치고 있다. 통일부가 창의적 해법과 관련해 “금강산지역이 관광지역으로서의 공간, 이산가족 만남의 장, 사회문화 교류의 공간으로 구성돼 있다”며 이를 종합 고려하겠다고 한 것은 관광재개까지 염두에 두고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유엔 대북 제재에 저촉되지 않는 개별관광도 검토 대상으로 거론된다. 북한은 금강산관광을 비롯한 남북현안을 허심탄회하게 협의할 이번 기회를 놓쳐서는 안된다.   


북측은 남북협력 사업에 대한 미국의 기류가 바뀌지 않는 한 남측이 독자적으로 움직이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감을 품고 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실무회담은 북한이 문재인 정부에 대해 쌓아온 불신의 벽을 허물 기회가 될 수도, 반대로 남북관계 장기 단절의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남북관계가 이처럼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된 것은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북·미 협상에 종속시키는 우를 범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남북관계와 북·미 협상이 톱니바퀴처럼 잘 맞물려 돌아가기를 기대했을 뿐 톱니바퀴가 역진할 상황에 대한 복안을 마련하지 않았다. 이번 ‘금강산사태’는 ‘북·미 협상이 풀리지 않으면 남북관계는 손 놓고 있어도 되는가’라는 난문을 던진 셈이 된다. 이 문제를 풀려면 지금까지의 관성에서 벗어나 차원이 다른 발상이 필요하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을 때 동료 중 한 명이 그의 재임기간에 어쩌면 내전(civil war)이 발생할지도 모르겠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그때는 “설마 그럴 리가?” 그렇게 가볍게 농담조로 넘겨 버렸다. 요즘은 그 설마가 현실화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 국내정치의 갈등이 심하다.


알려진 것처럼, 미 민주당 주도의 하원이 지난 9월 말 공식적으로 트럼프에 대한 탄핵 조사를 시작했고, 이에 맞서 트럼프는 자신이 탄핵당하면 내전이 발생할 수도 있을 것이라며 경고하고 나섰다. 하원(House)의 과반수가 넘는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트럼프 탄핵에 찬성을 표시하고 있다. 문제는 상원(Senate)인데, 최소 20명 정도의 공화당 상원의원이 찬성해야 탄핵이 통과된다. 현재로선 난망한 일이다. 하지만 트럼프가 탄핵당하든, 그렇지 않든 내년 대선을 앞둔 미국의 정치지형은 극심한 갈등과 불안정성이 증가할 것이 확실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가운데)이 21일(현지시간) 백악관 각료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워싱턴 _ EPA연합뉴스


이런 미국 내 정치갈등은 북핵협상에도 심각하게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혹자는 트럼프가 국내정치 위기의 타개를 위해, 또 대선에 본인 업적으로 활용하기 위해서라도 올해 말까지 북핵협상을 타결지으려 할 것으로 전망하기도 한다. 그러나 트럼프나 김정은 본인도 확신할 수는 없는 상황 아닐까 싶다. 누가 미래를 정확히 알겠는가. 다만 미국 국내정치에 초점을 맞춰 현 국면을 보자면, 결국은 ‘노딜’로 끝날 공산이 높아 보인다.


그렇게 판단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정치 양극화 심화로 북핵 관련 초당적(bipartisan) 협력이 점점 더 불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 지지자들의 90% 이상이 트럼프의 국정수행을 지지하고, 민주당 지지자들은 이제 5%도 채 안되는 지지를 보내고 있다. 역대 최고 수준의 정치 양극화다. 탄핵정국에 접어들자 트럼프 열혈지지층과 열혈반대층이 더욱 뚜렷이 갈리고 있다. 다음 대선을 가를 주요 6개 주에서의 탄핵 찬성과 반대 입장 또한 극과 극으로 갈리고 있다. 본격 대선정국으로 접어들면 이 갈등은 더더욱 심해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그러니 북한의 입장에서도 트럼프의 탄핵이나 재선 여부와 상관없는 ‘지속 가능한’ 포괄적 합의를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이나 북·미 수교 등은 미 의회의 지지 없이는 지속 가능하지 않은, 불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트럼프가 이번 탄핵조사를 받게 된 건 미국 대선에 외국정부를 끌어들였기 때문이란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트럼프의 입장에선 북한과 일시봉합식(interim deal) 협상결과라도 만들어내고 싶어 할 것이다. 협상이 결렬되고, 만에 하나 내년 대선 국면에서 북한이 핵실험이나 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실험을 재개하게 될 경우 심대한 정치적 타격을 입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설프게 북한의 부분적 핵동결과 일부 경제제재 해제 등을 맞바꾸는 ‘스몰딜(small deal)’을 할 경우, 국가안보와 직결된 문제를 자신의 정치적 위기 탈출 및 대선용으로 활용하려 든다는 공격에 직면해 더 곤경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트럼프가 모험을 할 가능성은 상존한다. 하지만 그가 초당적 지지 없이 북한이 원하는 체제안전보장을 약속해 줄 수 있는 상황은 결코 아니다.


세 번째는 트럼프가 대북 협상 주도권을 잃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과 협상을 진행해 온 핵심 추동력은 트럼프의 밀어붙이기식 성향이다. 오바마가 해결하지 못했던 북핵 문제를 자기만이 해결할 수 있다는 유아독존식 성향이 아니고선 설명이 쉽지 않은 대목이다. 하지만 트럼프의 정치적 입지가 불확실해질수록 그의 대북한 협상 추동력 또한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 정치적 공백을 이용해 종래 한반도 관련 정책결정의 주도권을 쥐어왔던 군사 및 정보 관련 조직들이 다시 주도권을 확보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적극 반대해 왔다. 물론 섣부른 보상에도 반대다. 이미 영변 이외의 추가 핵시설 및 SLBM 등의 추가 미사일 프로그램 등이 확인된 상황에서 영변만의 부분 핵동결에 동의할 리 만무하다. 부분타결을 하느니 아예 결렬을 선언하고 종래의 핵억지 봉쇄전략으로 나아가는 게 국가안보나 그들 조직의 이익에 더 낫다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변화를 택해서 얻을 이득이 불확실하면 언제나 현상유지를 택하는 것이 인지상정이고, 이들 조직의 생리는 더욱 그렇다.


결국 미 국내정치 상황상, 북핵협상은 결렬 가능성이 높다. 물론 예측할 수 없는 변수들은 언제나 차고 넘친다. 외교나 정치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드는 예술영역이라고 하지 않던가! 내 전망이 보기 좋게 틀리기를 바란다. 다만 희망사항을 투사해 상황을 오판하기보다는 최악의 상황에 대비하는 냉철함이 더 요구되는 국면이다.


<강명구 뉴욕시립대 바룩칼리지 정치경제학 종신교수>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남북교류의 상징인 금강산의 남측 시설에 대해 “보기만 해도 기분이 나빠진다”면서 철거를 지시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3일 보도했다. 김 위원장은 특히 “국력이 여릴 적에 남에게 의존하려 했던 선임자들의 잘못된 정책”으로 금강산이 10여년간 방치됐다면서 남북 경제협력 사업으로 금강산관광을 추진했던 부친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이례적으로 비판했다. 그는 “금강산이 북남관계의 상징, 축도처럼 되어 있고 북남관계가 발전하지 않으면 금강산관광도 하지 못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인식”이라고도 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오른쪽)이 금강산 관광지구를 현지지도하고 남측 시설 철거를 지시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3일 보도했다. 아래 사진은 금강산관광 관련 남측 시설들이 들어서 있는 고성 온정리 일대의 모습. 연합뉴스


김 위원장의 지시는 한마디로 금강산에서 남한의 흔적을 지우겠다는 것이어서 충격과 유감을 금할 수 없다. 이는 “조건이 마련되는 데 따라 개성공단과 금강산관광 사업을 우선 정상화한다”고 한 지난해 9월 평양공동선언의 합의에도 어긋난다. 북한은 평양공동선언 이후 남측에 금강산관광 재개를 촉구해왔고, 김 위원장의 올해 신년사에서도 대가 없는 개성공단 가동 및 금강산관광 재개 용의를 표명했다. 그러나 대북 제재를 의식한 남측 정부가 소극적 자세를 보이자 금강산에서 남북협력 사업이라는 ‘꼬리표’를 떼버리겠다는 최후통첩을 해온 셈이다. 지난해부터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을 지켜봐온 김 위원장은 남한이 앞으로도 한·미 공조의 틀을 뛰어넘지 못할 것이라는 판단을 굳힌 것 같다. 북·미 협상으로 비핵화가 진전되기 전까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한국 정부에 대한 강한 실망감의 표출로도 보인다. 그러나 어떤 명분으로도 남북화해·협력의 물꼬를 튼 금강산관광 사업을 ‘남북관계 파탄의 상징’이 되도록 해선 안된다. 남북 합의와 계약을 일방적으로 파기한다면 북한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금강산관광에 거액을 투자했던 현대아산의 손실도 방치할 수 없는 일이다. 북측은 심사숙고하기 바란다. 


정부는 남북관계가 이 지경에 이르게 된 상황을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미국과 국제사회의 입장에 함몰돼 대북 제재의 예외항목인 관광사업을 재개할 노력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비판은 설득력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 대화는 선순환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지만 지나치게 북·미 협상만 쳐다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성찰해야 한다. 


김 위원장이 시설 철거를 “남측의 관계부문과 합의”하라고 한 만큼 대화의 계기는 일단 마련됐다. 하지만 북측의 연락을 기다리는 소극적인 태도로는 곤란하다. 선제적 대화 제의와 해법 제시 등 비상한 노력을 기울이기를 촉구한다. 금강산의 문이 닫히는 걸 손 놓고 지켜볼 수만은 없지 않은가.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5월1일 즉위해 레이와(令和)시대를 연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대내외에 즉위를 선언하는 자리에서 세계 평화와 헌법 준수 의지를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은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 주요 인사와, 이낙연 국무총리 등 170여개국 축하사절이 참석한 가운데 도쿄 고쿄(皇居)에서 열린 즉위식에서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항상 바라며 국민에 다가서면서 헌법에 따라 일본국과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으로서 임무를 다할 것을 맹세한다”고 말했다. 나루히토 일왕은 부친인 아키히토(明仁) 상왕이 30년간 재위하는 동안 “항상 국민의 행복과 세계의 평화를 바라시며, 어떠한 때에도 국민과 고락을 함께하면서 그런 마음을 자신의 모습으로 보여주신 것을 다시 한번 깊게 생각한다”며 각오를 밝혔다.


나루히토 일왕이 22일 도쿄 지요다구 고쿄에서 열린 ‘즉위례 정전의식’에서 자신의 즉위를 선언하고 있다. 도쿄 _ EPA연합뉴스


나루히토 일왕은 길지 않은 발언에서 평화를 세 차례, 헌법을 두 차례 언급했다. 일왕의 발언은 의례적인 수준을 넘지 않는 것이어서 과대평가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일본 국민통합의 상징인 일왕이 아베 정부의 우경화 노선과 대비되는 메시지를 대내외에 발신한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어 보인다. 나루히토 일왕은 일본 패전일인 지난 8월15일 “과거를 돌아보고 깊은 반성 위에 서서 다시 전쟁의 참화가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며”라고 했다. 즉위식에서 언급한 ‘평화’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은 2012년 말 아베 총리 집권 이후 급격히 우경화하면서 과거사를 부인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지고 있다. 아베 총리가 군비증강과 자위대 역할 확대 등을 추진하면서 일본이 패전 이후 쌓아올린 ‘평화주의’도 빛이 바래가고 있다. 이런 가운데 한·일관계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아름다운 조화’를 뜻하는 새 연호 ‘레이와’와는 정반대의 현실이 전개되고 있다.  


‘상징 천황제’하에서 일왕은 국정에 간여할 수 없는 만큼 그의 행보가 정치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제한적이다. 그런 한계에도 부친 아키히토 상왕은 일본 국민의 높은 지지를 받으며 평화주의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전쟁을 겪지 않은 전후 세대의 첫 일왕인 그가 부친의 뜻을 이어받겠다는 의지를 밝힌 것도 바람직하다. 이날 밝힌 대로 나루히토 일왕이 꿋꿋하게 평화주의를 실천해줄 것을 기대한다. 그의 즉위로 열린 레이와시대가 일본이 주변국은 물론 국제사회와 ‘아름다운 조화’로 향해 나아가길 바라 마지않는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 인민해방군은 건군 92년 동안 네 차례 전군운동회를 열었다. 첫 회는 건군 25주년을 맞은 1952년 8월 베이징에서 개최됐다. 출전한 선수만 1800명, 관중은 7만명에 달했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같은 국가 지도자까지 참석한 이 운동회에는 기괴한 규칙 하나가 적용됐다. 달리기 선수들이 신호총 소리가 아니라 ‘글씨’로 출발한 것이다. 출발선에 쪼그려 앉은 선수들은 규정된 글씨를 올바로 쓴 것을 확인받은 후에야 달릴 수 있었다. 달리기 실력이 아니라 한자 수준으로 순위가 갈린 셈이다.


이런 규정이 만들어진 이유는 대부분의 선수들이 ‘문맹’이었기 때문이다. 중화인민공화국이 건국된 직후 5억5000만명 인구 중 80%에 해당하는 4억명이 문맹이었다. 1953년 중국 국무원이 발표한 ‘문맹탈출’ 기준을 보면 간부와 기술자는 2000자, 도시 노동자는 1500자, 농민은 1000자 상용자를 익혀야 ‘문맹’ 오명을 벗을 수 있었다. 당시만 해도 쉽지 않은 목표였다. 


문맹 퇴치를 위해 ‘받아쓰기’ 출발이라는 고육책까지 짜낸 노력 덕분일까. 현재 중국의 문맹률은 유네스코 기준 3.6%로 떨어졌다. 중국은 이를 교육 역사의 가장 상징적 성과로 큰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dbq, xswl, bhys ….’


현재 중국은 문맹률이 아니라 ‘화성어’가 문제다. 자판을 치다 오타가 난 것 같은 이 단어들은 중국 ‘○○허우’(2000년대 출생자)들의 인터넷 신조어다. 10대인 이들은 중국 간체자의 발음기호인 병음 초성만 따서 줄임말을 생산해내고 있다. ‘dbq’는 미안하다는 뜻의 ‘뚜이부치’ 발음의 초성을 딴 것이다. ‘xswl’은 ‘웃겨 죽겠다’, ‘bhys’는 부끄럽다는 뜻이다. 기성세대는 암호 같은 10대들의 신조어를 화성어라고 부른다. 화성어 때문에 모바일 메신저에서 대화 장애를 겪고 있는 부녀가 광고 소재로 등장할 정도다.


신조어는 이전 세대에서도 나타난 ‘오래된’ 현상이다. 신조어의 주된 특징은 줄임과 간편함이다. 이제는 성년이 된 90허우(1990년대 출생자)들도 10대 때는 형이나 오빠라는 뜻의 거거를 gg로, 여동생은 mm으로, 헤어질 때 인사인 바이바이는 88로 줄여썼다.


최근 신조어의 두드러진 특징은 외래어와의 결합이다. lllllllllb(지연되다) 같은 유행어는 중국어 발음기호와는 무관한 영어에서 온 말이다. 온라인 게임을 즐기는 10대들의 일상에 게임 용어가 자연스레 스며들었다. 광둥어, 번체자, 일본어의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국 예능프로그램을 통해 한국에서 건너온 ‘꽃길 걸어라(走花路)’는 표현도 중국 10대들의 단골 멘트가 됐다.


코카콜라의 중국 비즈니스 성공 뒤에는 ‘가구가락(可口可樂)’이라는 이름이 있었다는 사례처럼 중국은 각종 외래어를 표의어 한자에 맞게 의미와 발음을 살려 현지화 해왔다.


최근 암호 같은 알파벳 자음들, 전 세계에서 건너온 외래식 표현 홍수에 대해 언어의 순수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허우들은 이전 어떤 세대보다 인터넷 언어 오염이 심각해, 품위 있는 중국어를 구사하는 능력이 퇴화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온라인판은 “인터넷 언어가 언어 오염에 미치는 영향력을 과대평가하지는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각에선 10대 또래 문화로 신조어가 나타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긍정론도 존재한다. 학교 졸업 후 사회로 진출하면 ‘공용어’에 적응하게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들은 몇 년 전만 해도 나를 지칭하는 워(我) 대신 쓰촨, 후난 사투리 발음에서 따온 오우(偶)를 쓰는 게 유행했지만 이제는 구닥다리로 사라졌다며 자연 도태된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문맹 퇴치운동에선 괄목할 만한 성과를 거둔 중국이지만 화성어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중국은 개혁·개방 이후 연 10%를 넘나드는 높은 경제성장을 구가해왔다. 오랫동안 두 자릿수 성장은 당연한 것이었다. 중국 당국은 1998년부터 이른바 바오바(保八)정책을 펼쳤다. ‘경제성장률을 8% 이상으로 유지하겠다’는 것이다. 이들은 숫자 8을 좋아한다. 발음이 부를 축적한다는 파차이(發財)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2000년대 들어서도 중국의 고도성장은 이어졌다. 2007년에는 14.2%를 기록하기도 했다.


2012년 후진타오 전 중국 주석은 권력이양을 앞두고 경제의 패러다임 전환을 공식 선언했다. 바오바를 폐기하고 7% 성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사회양극화와 불균형성장을 방치한 채 양적 성장에 매달릴 경우 자칫 그동안 쌓아왔던 경제과실마저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리커창 총리는 2015년 본격적으로 바오치(保七) 정책을 제시했다. 고속 성장에서 중속 성장으로 전환한 것이다. 성장의 규모나 속도보다 질과 효율을 강조했다. 그러나 패러다임 전환을 천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성장 플랜을 바꿀 수밖에 없게 됐다. 2015년 경제성장률이 6.9%를 기록하면서 바오치가 무너졌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7년 바오치 기조를 버리고 성장률 6%대의 바오류(保六)를 선언했다. 그러면서 경제성장 목표치를 6.5%로 정했다. 중국 경제의 성장 엔진이 예상보다 빨리 식어가고 있다는 증표다.


중국 경제가 지난 3분기에 27년 만에 가장 낮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중국의 국내총생산은 전년 동기 대비 6.0% 성장에 그쳤다. 경제성장률이 다소 떨어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결과는 더 나빴다. 경기둔화를 막기 위한 대규모 감세를 비롯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폈음에도 6%대 턱걸이를 한 것이 심상찮다. 올해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1990년 이후 최저를 기록했던 지난해(6.6%)보다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 미·중 간 무역전쟁이 지속되면서 내년 전망도 밝지 않다.


바오류 시대가 가고 있다. 바오우(保五·5% 성장 유지) 시대가 임박한 것 같다. 중국은 한국 수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는 제1의 무역상대국이다. 올 들어 지난 9월까지 대중수출은 18% 격감했다. 중국 경제의 불투명한 미래는 한국 경제에도 큰 부담이 아닐 수 없다.


<박종성 논설위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꽉 막혀 있던 한·일관계를 풀어 보려는 움직임이 본격화되고 있다. 오는 22일 일왕 즉위식 참석차 방일하는 이낙연 국무총리는 18일자 일본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전달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친서가 될지 구두메시지 형태가 될지 확정되지는 않았지만, 이 총리가 24일 아베 총리와 면담하면서 문 대통령의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전달할 것임에는 틀림없어 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3일 오전 서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모두가 함께, 세상을 이롭게'란 주제로 열린 단기 4352년 개천절 경축식에 참석해 경축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런데 이 총리와 아베 총리가 만나는 시간은 10~20분 정도에 불과하다. 이 정도 시간이라면 ‘한·일관계를 회복하자’는 메시지 전달에서 더 나아가기 어렵다. 정공법은 아무래도 정상회담일 것이다. 일본 요미우리신문은 한국 정부가 문 대통령과 아베 총리 간 정상회담을 다음달 국제회의에 맞춰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지난 19일자로 보도했다. 양국이 의지만 있다면 다음달에 아세안(동남아시아국가연합) 회의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 정상회의 기간을 활용해 정상회담을 열 수도 있다. 양국 최고지도자가 직접 만나 신뢰를 쌓고 관계개선을 도모하는 ‘톱다운’ 외교가 한·일 간에도 필요한 시점이 됐다. 70년 적대 관계였던 북한과 미국도 정상외교로 관계개선을 모색하고 있지 않은가. 이번 면담이 한·일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는 징검다리가 되기를 기대한다.  


하지만 일본의 태도가 변했다는 징후는 좀체 감지되지 않고 있다. 아베 총리가 지난 16일 국회에서 “한국은 중요한 이웃나라” “늘 대화를 이어가지 않으면 안된다”며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긴 했지만, 한국이 “신뢰관계를 해치는 행위를 계속”하고 있다는 기존 인식도 함께 드러냈다. 정치권에서는 한·일 화해를 위해 일본이 먼저 나서야 한다는 의견이 간간이 흘러나오지만 총리실의 강경한 태도 탓에 확산되지 않는다는 분석도 있다. 


한국은 강제징용 피해자에게 한·일 기업의 출연금으로 보상하는 ‘1+1 방식’의 해법에만 매달리지 않는다는 뜻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일본이 호응한다면 다소 정치적 부담을 안고서라도 절충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놓은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강제징용 문제는 한국의 잘못이니, 한국이 결자해지하라’는 식의 고압적 태도를 풀지 않고 있다. 


문제의 근원을 파고 들어가면 할 말이 많은 쪽은 한국이다. 그럼에도 외교적 해결을 꾀하려는 것 아닌가. 일본이 한·일관계를 대화로 풀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백번을 만나봐야 헛일이다. 일본은 이번에 열린 대화의 창을 닫지 않기를 바란다. 그러자면 아베 총리가 이 총리와의 면담에서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구체적으로 보이는 것이 우선이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은 연방정부의 재정 사용 현황을 홈페이지(USAspending.gov)에 공개해 정부 투명성을 높인다. 영국은 조세 회피, 부패 방지를 위해 자국의 부동산을 소유한 외국 기업의 실소유주 등록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스페인은 1억유로 상당의 예산 용도를 시민이 직접 정하는 ‘Let Madrid Decide’라는 참여예산제를 운영 중이다. 예산을 어디에 얼마나 쓸지를 시민이 주도해 결정케 함으로써 정책과정에서 국민 참여 수준이 대폭 높아졌다.


세 국가의 정책은 ‘투명성, 반부패, 국민 참여’라는 ‘열린정부’의 가치를 실현하는 대표 사례다. 이처럼 열린정부 구현 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진행 중이다. 그리고 이를 체계적으로 확산하기 위한 다자협의체가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의 유엔총회 연설을 계기로 2011년 만들어진 ‘열린정부 파트너십’(OGP)이다. 


OGP는 2011년 출범 이후 미국, 캐나다, 프랑스 등 79개국과 국제투명성기구를 포함한 수천개의 시민사회단체가 동참하는 연합체로 발전했다. 한국도 2011년부터 가입해 운영위원국으로 활동해 왔으며 제11대 공동의장국으로 선출되면서 2019년 10월부터 2년간 세계의 열린정부 활동을 이끌어야 하는 막중한 역할을 맡았다.


2017년 새 정부 출범 때 국민 소통 창구인 ‘광화문1번가’에 모인 18만건의 정책 제안은 전 세계에 국민 참여의 가치를 일깨우는 메시지를 줬다. 한국의 OGP 의장국 선출은 민주주의를 위한 우리 국민과 정부의 노력, 정부 혁신의 성과를 인정받은 결과다. 산자이 프라드한 OGP 사무총장은 “세계 각국에 더 많은 광화문광장이 있어야 한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이제는 그간의 성과에 안주하지 않고 의장국으로서 국제사회에 열린정부의 모범사례를 제시하고 주도해야 한다. 특히, 의장국의 임기가 끝나는 2021년은 OGP 출범 10주년으로, 향후 10년간 열린정부가 지향해야 할 비전도 제시해야 한다. 부담감이 크지만 한국의 국제적 리더십을 한층 공고히 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높은 불확실성의 시대, 빠른 변화의 시대에 세계 각국은 시민 영역의 축소, 정부 신뢰도 하락 등 다양한 문제와 도전을 극복해 나가야 한다. 한국 정부는 참여민주주의 활성화, 포용국가를 위한 공공가치 구현, 정부 혁신을 통한 신뢰 제고를 의장국 비전선언문에 포함해 중점 추진할 계획이다. 또한 민관협의체인 ‘대한민국 열린정부 포럼’을 운영하며 시민과의 협업을 통해 국내 OGP 활동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다. 국민 여러분의 많은 관심과 동참 속에 세계의 열린정부를 선도하는 의장국으로서의 역할을 성공적으로 완수하기를 기대한다.


<진영 | 행정안전부 장관>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미국의 주인은 누구인가? 13개 영국 식민지 대표들이 1776년 “우리는 모든 사람이 평등하게 태어났음을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인다”고 선언할 때 그들에겐 답이 명료했을 것이다. 하지만 건국 당시부터 북미 대륙에 존재했던 인종적·민족적 다양성 때문에 이 질문의 답을 둘러싼 갈등은 계속될 수밖에 없었다.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서는 최근 이 질문에 대해 복수의 답을 병존시키려는 노력을 보여주는 일들이 있었다.


14일은 ‘콜럼버스의날’이었다. 1492년 미주 대륙을 최초로 ‘발견’했다는 이탈리아 출신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를 기리기 위해 연방 정부가 1937년 지정한 공휴일인 콜럼버스의날은 매년 10월 둘째주 월요일이다.


‘워싱턴’이라는 도시 이름은 미국 초대 대통령인 ‘조지 워싱턴’에게서 나왔다. 뒤에 붙은 DC(District of Columbia·컬럼비아 특별구)라는 명칭엔 콜럼버스의 자취가 담겼다. 워싱턴의 대표적 상징물이 백악관 앞에 우뚝 솟은 워싱턴 기념비이지만, 국회의사당 북쪽 ‘유니언 기차역’ 앞에 있는 콜럼버스의 형상을 새긴 ‘콜럼버스 기념 분수’도 중요 상징물인 이유다. 그런데 올해 워싱턴의 10월 둘째주 월요일은 콜럼버스의날이 아니었다. 워싱턴 시의회가 지난 8일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변경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 콜럼버스의날을 원주민의날로 대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1970년대부터 나오기 시작했다. 콜럼버스가 오기 전 미주 대륙엔 이미 원주민들이 살고 있었기에 그가 신대륙을 ‘발견’했다는 건 어불성설이며, 그가 이끈 원정대가 원주민 사회에 재앙을 가져왔다는 평가가 대두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워싱턴 시의회 결의안은 “콜럼버스가 도착하기 전 북미에는 수백만명이 이미 살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미주 대륙을 발견하지 않았다”면서 “그는 수천명의 원주민을 노예화·식민화하고 학살하고 불구로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이미 미국 내 7개 주, 70개 이상의 도시가 10월 둘째주 월요일을 원주민의날로 기념하고 있다. 미국 정치·행정·사법의 심장부인 워싱턴도 콜럼버스의날 폐지에 동참한 것이다.


지난달 26일 워싱턴 시당국은 남동쪽 외곽에 자리잡은 ‘베리팜’ 지역 재개발에 관한 공청회를 열었다. 남북전쟁 직후인 1860년대 후반 흑인 구휼기구인 ‘자유민사무소’는 해방된 흑인 및 자유민으로 태어난 흑인들에게 살 곳을 제공하기 위해 데이비드 베리로부터 농장을 사들여 대규모 공공주택 단지를 조성했다. 일종의 ‘해방촌’이 만들어진 셈이다. 1940년대 들어 주택난이 대두되자 연방정부는 이곳에 400동 이상의 공공주택을 짓는 대규모 사업을 벌였다. 역사가 긴 만큼 베리팜에서 나고 자란 유명 흑인도 많다.


베리팜 공공주택 단지는 1980년대에 대규모 개·보수를 거쳤다. 하지만 낡은 터라 재개발 여론이 대두됐다. 이 지역이 마약과 범죄로 악명 높았던 점도 쇄신 필요성을 더했다. 결국 워싱턴 시당국은 기존 건물들을 헐고 훨씬 더 큰 복합 공공주택 단지로 탈바꿈시킨다는 계획을 세웠다. 주민 이주가 시작됐고, 상당수 건물이 철거됐다. 그런데 이주를 거부한 일부 주민은 아직 남은 32개 동을 역사건축물로 보존해 달라고 청원했다. 이들은 워싱턴 중심부의 백인 거주 지역이라면 이처럼 일거에 밀어버리지는 않았을 거라면서 베리팜이 가난과 범죄로 악명 높았더라도 엄연히 그들의 삶의 역사를 간직한 곳이라고 주장한다. 워싱턴 시당국은 이들의 요구를 숙고 중이다.


두 사례는 모두 미국 사회의 공적 영역에서 그간 배제되거나 과소대표 됐던 이들에게 공간을 제공하거나 스스로 마련하려는 노력이다. 미국 사회에 ‘백인 우월주의’가 기승을 부리고 인종갈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역사의 정의와 도덕을 유지하려는 힘이 내부에 엄연히 존재함을 보여주는 장면들이다.


<워싱턴 | 김재중 특파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15일 평양에서 열리는 카타르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남북전에 남측 응원단과 취재진의 입북이 끝내 무산됐다. 통일부는 14일 정례브리핑에서 “여러 차례 북측에 의사를 타진했지만, 북측의 응답이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지상파 TV 3사도 북한과 협상을 벌였으나 중계권 확보에 실패했다. 이로써 1990년 10월 남북통일 축구대회 이후 29년 만에 성사된 평양 남북축구 경기는 TV 중계도, 남측 응원단도 없이 치러지게 됐다. 선수단과 대한축구협회 임원, 코치진 등은 서해 직항로가 아닌 중국 베이징을 경유해 방북했다. 당국 간 대화가 막혀 있다고 비정치적인 스포츠 교류까지 철저하게 차단하는 북한의 태도에 깊은 유감을 표시한다. 


북한은 지난 2월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결렬을 계기로 한국에 불만을 드러내면서 당국 간 대화는 물론 민간교류까지 중단시켰다. ‘하노이 결렬’로 북한이 한국 정부의 중재 역할에 의구심을 품게 된 상황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이 북·미 협상을 위해 노심초사해온 것은 북한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북한은 한·미 연합훈련과 첨단무기 도입 등을 들어 대남 비난을 강화하고 있지만, 북한도 최근 몇달간 미사일 발사시험을 되풀이해온 만큼 일방적으로 누굴 탓할 입장은 아니지 않은가. 


지난 5월 북한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 발병이 확인된 뒤 정부가 방역협력을 제안했지만 북한은 응하지 않았다. 그러다 남한에서도 휴전선 접경지역을 중심으로 ASF가 번지기 시작했다. 방역협력이 이뤄졌더라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크다. 지난해 남북은 ‘민족적 화해와 단합’을 위해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적극 추진’하자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남북관계는 이 약속이 무색하다.


북한 당국에 묻고 싶다. 북·미관계가 풀리기 전까지 남북관계를 이처럼 계속 닫아놓을 것인가. 남북 화해·협력을 열망해온 남측 시민은 낙담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이라도 비정치적 분야의 남북 교류와 협력을 재개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남북관계의 냉각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어렵게 열린 북·미 실무협상마저 결렬되었다. 북한은 미국이 추진한 한·미 군사연습과 한반도 주변의 전쟁장비 반입을 대북 적대시 정책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는 한국에 대해 한·미 군사연습과 한국군의 전력증강을 문제 삼고 있는 것과 비슷하다. 북한당국이 한국과 미국에 불만을 갖는 것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가지만, 좀 더 넓은 시각에서 급변하는 한반도 주변정세를 바라보지 못하는 것으로 보여 아쉽다.


지난 7일 동해 대화퇴 해역부근에서는 북한 어선이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해 침몰한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대해 9일 일본 농림수산성은 자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 안에 들어온 북한 어선이 단속을 거부하다 일본 어업단속선과 충돌한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북한 외무성 대변인은 12일 “조선동해수역에서 정상적으로 항행하던 우리 어선을 침몰시키는 날강도적인 행위”라고 반박하며 비난을 퍼부었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EEZ(북한명 전속경제수역)를 둘러싼 북한과 일본의 이익충돌에서 비롯된 것이다. 대화퇴 해역은 한·일 중간수역의 밖에 위치하며 일본이 자국의 EEZ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북한도 이 해역을 자국의 전속경제수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는 곳이다. 


대화퇴 해역에서는 지난 8월23일과 24일에도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북한해군 깃발을 단 군함이 마주친 바 있다. 당시 북한외무성 대변인은 “우리의 전속경제수역에 불법 침입했던 일본 해상보안청 순시선과 선박들이 우리 공화국의 자위적 조치에 의해 쫓겨났다”고 밝혔다.


냉전시대가 막을 내리면서 동북아지역에서 전면전쟁의 가능성은 과거보다 낮아졌지만, 해상영토 침범과 EEZ 내 어로활동, 자원개발 등 회색지대(Grey Zone) 사태 발생 가능성은 한층 높아졌다. 무력침공과 같은 정규전은 아니면서도 군함이나 전투기가 타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이나 방공식별구역(ADIZ)을 무단으로 항행·진입하거나 일본 해상보안청, 중국 해안경비대와 무장어선 등이 분쟁해역에서 무단활동하는 사태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회색지대 사태가 일어날 경우 군사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주변국들은 고의로 회색지대 전술을 구사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같은 회색지대 사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 북한은 핵무기를 ‘만능의 보검’이라고 부르지만, 핵과 미사일을 갖고 있다고 회색지대 사태에 대응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북한은 전면전에 대비한 군사력 확보에 주력하다 보니 최근 발생하는 회색지대 사태에는 대처능력이 크게 떨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북측에는 저강도 분쟁에 대비한 방위태세와 그에 걸맞은 적절한 재래식 군비가 필요하다.


북한은 회색지대 사태에 대한 대비보다 한국의 재래식 전력증강을 저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한국군의 재래식 전력증강이 주변국의 잠재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것임을 북한당국은 이해해야 한다. 북한이 문제 삼는 한·미 군사연습도 마찬가지이다. 한국 정부는 2014년 10월 한·미 안보협의회회의(SCM)에서 ‘조건에 기초한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에 합의함에 따라 조건의 충족 여부를 점검하기 위해 실시하기로 한 세 차례의 훈련 가운데 1단계인 초기운용능력(IOC) 평가를 2019년 8월11~20일에 실시하였다. 앞으로 2020년 완전운용능력(FOC)과 2021년 완전임무수행능력(FMC)을 더 실시한 뒤 빠르면 2021년 말~2022년 초까지 전시작전통제권 전환이 완료될 예정이다.


따라서 최소화된 형태로 한·미 연합군사연습은 줄여나가고 북한이 한국군의 군비증강이 불가피함을 인정하되 투명성을 보장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우선 남북한이 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해 상호 안보우려를 논의해야 할 것이다. 또한 미국은 비핵화 협상 중에 대북 군사공격 또는 공격위협을 금지하기로 약속하고 비핵화가 완료되면 불가침 공약을 제공한다. 이러한 군사적 약속들을 하나로 묶어 ‘남·북·미 3자 군사협정’으로 법제화를 추진한다.


지난달 러시아 측이 북한 어선 3척을 나포한 데 이어 일본 순시선과 충돌해 북한 어선이 침몰한 사태에서 보듯이 북한당국이 주변국들과의 잠재위협에 직면할 가능성이 점점 커졌다. 그동안 북한당국은 서해어장을 중국 어선에 내주고 동해 EEZ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방치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라도 북한은 비핵화 협상을 가속화시켜 하루빨리 북·미 적대관계를 해소해야 한다. 그리고 주변국들과의 회색지대 사태에 대비한 대책을 세우는 데 집중해야 할 것이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자문연구위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


일본 동요시인 가네코 미스즈(1903~1930)의 시 ‘나와 작은 새와 방울과’의 마지막 구절이다. 사람들은 모두 각자의 개성과 역할이 있는, 세상에 둘도 없는 존재라는 뜻이다.  


90년 전쯤 지어진 이 시를 알게 된 것은, 놀랍게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지난 4일 임시국회 소신표명 연설을 통해서였다. 


아베 총리는 “모두 달라서, 모두 좋아”라는 구절을 언급한 뒤 “새로운 시대의 일본에 요구되는 것은 다양성”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다양성을 서로 인정해 모든 사람이 그 개성을 살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듦으로써 저출산·고령화도 반드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출처’를 밝히지 않았지만, 일본 언론들은 아베 총리가 지역구 야마구치(山口)현 출신인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했다고 전했다. 


가네코의 시구를 인용해 다양성을 강조한 연설 내용 자체가 틀렸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런데도 위화감을 느낀 건 아베 총리의 ‘말 따로, 행동 따로’ 때문이다. 그는 연설에서 성적 소수자나 일본에서 생활하는 외국인에 대한 ‘불편한 진실’에 관해선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한 일손 부족에 시달리는 일본은 외국인 노동자 수용 확대에 나서고 있다. 지난 4월부터 새 재류 자격을 신설해 5년간 최대 35만명의 외국인을 받아들일 계획이다. 하지만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차별의식과 열악한 근무환경은 크게 개선되지 않았다고 일본 언론들은 지적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를 ‘공생’의 대상이 아니라, ‘값싼 노동력’으로만 취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일제 식민지 시대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와 3~4대째 살고 있는 재일한국·조선인에 대한 차별에서도 극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의 사회 참여에 대한 인식도 앞뒤가 맞지 않다. 아베 총리는 ‘선택적 부부 별성제도’에 대해 사실상 반대 입장을 밝히고 있다. 일본에선 결혼을 하면 부부가 성씨를 똑같이 해야 하는데, 여성의 사회 참여를 위해서도 법을 고쳐 개인이 선택할 수 있게 하자는 목소리가 크다.  


기실 아베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은 다양성을 인정하기보다 차별을 부추기는 쪽이다. 아소 다로(麻生太郞) 부총리 겸 재무상은 “여성이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이 문제” “ ‘성희롱죄’라는 죄는 없다” 등 문제 발언을 연거푸 했다. 스기타 미오(杉田水脈) 중의원 의원은 “LGBT(성적 소수자) 커플은 생산성이 없다”고 했다. 아베 정부가 최근 위안부 피해자를 상징하는 ‘평화의 소녀상’이 출품된 ‘아이치 트리엔날레’에 대한 보조금을 취소한 것도 “다양성 인정” 발언을 뒤집는 것이다. 현 정권 입맛에 맞지 않는 표현에 대해선 ‘배제’하겠단 의도로, 표현의 자유와 다양성을 위축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번 연설에서 두드러진 것은 아베 총리의 왜곡된 역사인식이다. 그는 1919년 국제연맹에 파견됐던 마키노 노부아키(牧野伸顯) 전권대사의 ‘인종평등’ 제안을 거론하면서 “일본이 내건 큰 이상은 지금 국제인권조약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기본원칙이 되고 있다”고 상찬했다. 당시 일본이 조선을 강제병합하고 중국 동북부에 진출하는 등 식민지배의 당사자였음을 외면한 것이다. 이를 두고 시이 가즈오(志位和夫) 공산당 위원장은 “이 정도의 후안무치한 세계사 왜곡은 없었다”며 “역사에 대한 무반성이 드러났다”고 비판했다.  


‘인종평등’이 지금 일본 사회에 실현되고 있는지도 의심스럽다. 아베 정권 들어 혐한(嫌韓) 등에 의한 차별이나 헤이트스피치(특정 민족에 대한 차별·혐오 발언)가 횡행하고 있다. 그 근저에는 식민지배와 침략전쟁 책임을 부인하는 아베 정권의 역사수정주의가 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해 일본 정부에 위안부, 조선학교의 고교 무상화 배제, 헤이트스피치에 대한 개선을 권고했다.


<도쿄 | 김진우 특파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과 미국이 5일(현지시간)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연 실무협상이 성과 없이 종료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7개월 만에 어렵사리 성사된 협상이 또 결렬된 것이다. 이번 협상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그간의 일방주의적 비핵화 접근법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비치면서 기대를 모았던 만큼 아쉬움도 크다. 협상이 결렬된 것은 비핵화 접근법에 대한 입장 차를 좁히는 데 실패했기 때문일 것이다. 영변 핵시설 폐기를 출발점으로 단계적 합의를 통해 신뢰를 쌓아나가야 한다는 북한과, 최종단계를 포함한 완전한 비핵화에 대한 ‘포괄적 합의’가 선행돼야 한다는 미국의 입장 차는 한 차례 실무협상에서 좁혀질 만큼 간단치 않은 게 현실이다. 


다만 회담에 대한 평가가 엇갈리는 것은 주목할 만한 대목이다. 미 국무부는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가져갔고 좋은 대화를 나눴다”고 한 반면 북한은 “우리가 요구한 계산법을 들고나오지 않았다”며 ‘결렬선언’까지 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의 진전을 이루기 위한 많은 새로운 계획에 대해서도 미리 소개했다”는 미국의 설명을 감안하면 하노이 때보다는 미국이 전향적인 태도를 보였지만, 북한의 눈높이에는 여전히 미치지 못했던 것 아니냐는 추론도 가능하다. 


경위야 어찌 됐건 북한의 결렬선언으로 협상이 다시 고비를 맞게 된 것은 분명하다. 북한이 연말로 비핵화 협상시한을 제시한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 게다가 미 의회의 트럼프 대통령 탄핵조사 추진이 돌발변수로 떠오른 상태다.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먼데 날씨마저 험한 형국이다. 


물론 양측 모두 추후 협상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어 낙담은 이르다. 미국은 2주 이내에 스톡홀름에서 다시 만나자는 스웨덴 측의 초청을 수락했고, 북한에도 제안했다고 한다. 김명길 대사는 대화 재개 여부에 대해 “전적으로 미국의 태도에 달려 있다”고 했다.  


외교협상에서 100% 완승은 있을 수 없고, 70년 적대관계를 단기간에 해소하는 것도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유념해야 한다. 7개월 교착 끝에 되살려낸 협상 모멘텀이 꺼지지 않도록 양측이 조속한 시일 내 협상을 속개해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해법을 만들어갈 것을 당부한다. 쌍방은 상대를 자극할 수 있는 행동을 삼가면서 타협안 마련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지난 1일 중국의 70주년 건국절 행사에 맞서 홍콩시위에 참가한 한 고교생이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중태에 빠진 데 이어 2일에도 시위를 취재하던 인도네시아 기자가 경찰 고무탄에 오른쪽 눈을 실명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해당 기자가 프레스 복장을 갖춘 데다 취재진임을 밝혔음에도 경찰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고 한다. 17주째 이어지고 있는 홍콩시위가 신중국 건설 70주년을 즈음해 한층 격화되고 경찰 진압도 강경해지면서 유혈사태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홍콩 췬완 지역 호췬위 중등학교 졸업생들이 2일 학교 앞에서 경찰이 시위 진압 도중 실탄을 사용한 것에 항의하는 그림을 들고 연좌시위를 하고 있다. 호췬위 중등학교는 지난 1일 반중 민주화 시위를 벌이던 도중 경찰 총격으로 중태에 빠진 18세 남학생 창쯔킨이 재학 중인 학교다. 홍콩 _ 로이터연합뉴스


특히 우려되는 것은 경찰의 실탄 사용이다. 지난 8월25일 홍콩 경찰이 처음으로 실탄을 사용했을 때는 권총을 공중에 대고 쏘는 경고사격에 그쳤다. 그런데 지난 1일 당시의 동영상을 보면 경찰이 쇠파이프를 휘두르는 고교생을 향해 1m도 안되는 거리에서 거리낌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경찰은 정당방위라고 하지만 경고사격조차 없이 시위 참가자의 몸통을 겨냥해 실탄을 발사한 것은 변명의 여지가 없는 과잉진압이다. 시위가 격렬해지면서 경찰이 느끼는 위협감이 커지고 있는 것을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경찰이 사람의 목숨을 빼앗을 수 있는 실탄 사용에 점차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지우기 어렵다. 경찰은 이날 다른 지역에서도 5차례 실탄 경고사격을 했다. 또 이날 하루에만 900발의 고무탄을 쐈고, 최루탄도 지난 두 달치보다 많은 1400차례나 발사했다고 한다. 고교생의 실탄 피격 소식이 홍콩 시민들을 자극하면서 다음날 시위가 한층 격렬해졌다. 


홍콩 경찰의 실탄 사용에 국제사회도 비판 목소리를 냈다. 미국 공화당 하원의원 25명은 트위터 성명에서 “중국 공산당이 절대권력을 달성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저지를 수 있는지 심각하게 보여준다”며 홍콩 경찰과 중국 정부를 비난했다. 유럽연합(EU)도 “집회의 권리와 평화롭게 시위할 권리는 계속 유지돼야 한다”고 밝혔다. 


범죄인 인도조례(송환법)가 지난달 초 철회됐음에도 홍콩사태는 수습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폭력이 폭력을 부르는 악순환이 언제까지 되풀이될지, 더 큰 유혈사태로 번지지 않을지 걱정을 금할 길이 없다. 중국 정부는 홍콩 시민들이 왜 분노를 멈추지 않고 있는지 근본 원인을 깊이 헤아려 사태수습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그에 앞서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진압 경찰의 실탄 사용을 금지토록 해야 한다. 강경진압으로는 문제를 풀 수 없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이 2일 강원도 원산 북동쪽 해상에서 동해로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로 추정되는 미사일 1발을 시험발사했다. 사거리는 450㎞로 비교적 짧았지만, 정점 고도가 910㎞로 높아 고각으로 발사한 것으로 보인다. 정상 각도로 쏠 경우 이 미사일은 사거리가 2000㎞를 넘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미국이 “용인할 수 있다”고 밝힌 단거리 미사일을 넘어서 준중거리 미사일에 해당한다. 북한이 북·미 대화를 재개한다고 발표한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단거리 이상의 미사일을 발사한 것은 협상정신에 위배된다. 북한의 모험적 행동에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 


북한의 미사일 발사가 이미 계획된 시험을 한 것인지 아니면 북·미 협상에서 체제의 안전보장을 최우선 의제로 삼기 위한 포석인지는 불투명하다. 그러나 그 의도가 무엇이든 대단히 부적절한 행동이다. 우선 이번 미사일은 단거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데다 종류가 SLBM이다. 이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전략핵폭격기 등과 더불어 전략핵무기의 한 축으로 분류되는 위협적인 무기체계이다. 북한은 2016년 8월 사거리 500㎞의 ‘북극성-1형’ SLBM을 시험발사한 바 있는데 이번 미사일은 그 개량형인 ‘북극성-3형’으로 추정된다. 사거리를 늘린 이 개량형 미사일을 북한이 지난 7월 개발 중이라며 일부 공개한 대형 잠수함에 탑재한다면 그 위협은 더욱 커진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웬만한 미군기지는 모두 공격할 수 있어 미국에는 상당한 위협이 된다. 


현재 북·미는 실무협상 재개에만 합의했을 뿐 세부 사항에 대해서는 의견 일치를 보지 못한 듯하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전날 “조미(북·미)가 4일 예비접촉을 한 뒤 5일 실무협상을 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힌 데 비해 미 국무부 대변인은 “(북·미 협상을) 일주일 내에 할 것”이라고만 발표했다. 실무협상 결과에 대해 미국이 미심쩍어하는 듯한 분위기도 감지된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의 SLBM 발사와 같은 행위는 미국 내 강경파의 반발을 불러일으켜 협상의 판을 흔들 수도 있다. ‘하노이 실패’가 대표적이다.   


미국은 북한의 미사일 발사에 즉각 반응하지 않았다. 하지만 북한의 도발은 미국의 협상 명분을 약화시킬 수 있다. 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탄핵위기에 몰려 있어 북·미 협상에서 어떤 선택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북한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한 협상을 앞두고 가장 피해야 할 일이 오판이다. 모험적인 승부수가 모처럼 맞은 좋은 기회를 날려버리는 패착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북한은 알아야 한다. 북한은 더 이상 긴장을 조성하는 행위를 중단하고 협상안을 다듬는 데 주력해야 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과 미국이 4일부터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실무협상을 갖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중단된 대화가 다시 이어지는 형식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출발이나 마찬가지다. 


이번 실무협상은 서로 인식 차이가 얼마나 큰지 충분히 확인한 상태에서 이뤄지는 ‘진짜 대화’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1년이 넘도록 제자리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에 시간이 많지 않다. 실무협상이 조속히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져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임기 내에 의미있는 결과물이 나온다. 


트럼프 행정부와 문재인 정부가 임기 내에 북한 문제에서 어떤 것을 어느 정도까지 할 수 있을지는 이번 실무협상이 결정하게 된다. 국가전략노선의 대전환과 함께 모험을 시작한 북한의 운명도 여기에 걸려 있다.


예를 들면 북·미는 이번 실무협상에서 한반도 운명을 근본적으로 바꾸는 단초를 만들 수도 있고 현실적 성과를 얻기 위해 적당히 타협할 수도 있다. 또는 파국적 결별을 맞아 군사적 대치 상태로 되돌아갈 수도 있으며, 친구도 적도 아닌 어정쩡한 상태로 내년 미국 대선이 끝날 때까지 북·미관계와 북핵 문제가 동면에 들어가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이번 실무협상은 대화국면이 시작된 이래 가장 중요한 승부처다.


지금까지 남·북·미는 모두 전략적으로 면밀하지 못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정치적 성과에 집착해 협상의 첫 단추를 잘못 끼웠다. 그리고 미국이 실수를 만회하려는 과정에서 대화가 꼬이기 시작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화의 기초가 부실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든 북·미 모두 원래 위치로 되돌아갈 수 없도록 만들기 위해 서두르다가 남북과 북·미 사이에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됐다. 북한은 ‘트럼프=미국’으로 인식한 것이 문제였다. 북한은 지금도 트럼프만을 상대해 대미관계를 풀어가려는 전략을 고집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야구 경기에 비교하면, 반전을 거듭하는 흥미진진한 상황이 펼쳐졌지만 경기 내용 면에서는 실책과 본헤드 플레이가 속출한 ‘결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는 경기’라고 할 수 있다.


이미 지나간 일이니 지금부터가 중요하다. 이제부터는 실수가 용납되지 않는다. 실무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북한이 모두 극도의 긴장감 속에서 조심스러운 행보를 보이고 있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도 이번 실무협상에서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고 성공적인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북한 문제를 최대 국정과제로 삼고 ‘올인’하다시피 공을 들인 문재인 정부에는 정권의 명운이 걸린 문제이기도 하다. 다시 시작된 북·미 대화에 얼마나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하지만 기대가 너무 큰 탓인지 몰라도 정부의 현재 상황 인식은 너무 낙관적이다.


북·미 실무협상 재개가 확정된 직후 급히 만들어낸 뉴욕 한·미 정상회담과 대통령 유엔총회 연설에서는 문재인 정부의 조급함이 묻어난다. 미국은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는데 한국은 약간 흥분 상태다. 한·미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보여준 태도에서는 북·미 대화 전망을 낙관할 만한 요소보다는 우려스러운 부분이 더 많다. 그럼에도 정부는 북·미관계에 커다란 대전환이 일어날 것처럼 말하고 있다. 상황을 과장하고 있는 것인지, 실제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실제로 이번 실무접촉은 쉽지 않은 협상이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퇴진과 “리비아 방식은 틀렸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언급은 긍정적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정책 변화와는 무관하다. 


볼턴은 미국의 대북정책을 주도한 적이 없고 미국이 지금까지 북한에 요구해온 것도 리비아 방식은 아니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말한 ‘새로운 방법’은 그 실체가 있는지조차 아직 불분명하다. 북한이 이런 낌새를 모를 리 없다. 최근 북한의 대미 메시지에는 실무협상이 실패할 경우 그 책임을 ‘새로운 계산법’을 가져오지 못한 미국에 돌리겠다는 복선이 깔려 있다.


한반도 상황을 하루아침에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문재인 정부는 이미 전쟁 위기의 한반도 상황을 대화국면으로 전환하는 데 기여한 바가 있다. 그것만으로도 높이 평가받을 수 있는 자랑스러운 업적이 되기에 충분하다. 한반도 평화의 결실을 자신의 임기 내에 거둬야 한다는 조급함은 덜어내는 것이 좋다. 은행나무는 손자가 덕을 볼 것을 염두에 두고 심는다는 의미에서 공손수(公孫樹)라고 한다. 한반도 평화정착 프로세스는 공손수를 심는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유신모 외교전문기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북한과 미국이 오는 5일 실무협상을 열기로 했다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1일 밝혔다. 최 부상은 이날 담화에서 “조미(북·미) 쌍방은 오는 10월4일 예비접촉에 이어 10월5일 실무협상을 진행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이 합의 불발로 끝난 지 7개월 만에 양측이 마침내 협상 테이블에 마주 앉게 된 것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 연합뉴스


비록 ‘실무’급 협상이지만 비핵화와 한반도 평화의 운명을 가르는 중차대한 자리가 될 것임은 굳이 강조할 필요도 없다. 북한 비핵화의 방법론을 놓고 이견을 좁혀야 3차 북·미 정상회담으로 이어지면서 양국관계에 질적 전환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하노이 결렬 이후 올해 말을 비핵화 협상시한으로 못 박은 바 있다. 트럼프 행정부도 내년이면 대통령 선거 때문에 집중력이 떨어진다. 연말까지 석달 남짓한 기간 동안 협상을 본궤도에 올려 순항시켜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가 앞으로 움직일 수 있다. 그 출발점이 되는 이번 실무협상에 대한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협상 과정을 섣불리 전망하는 건 금물이지만 그리 어두워 보이지는 않는다. 미국의 대북 접근법에 뚜렷한 변화의 조짐이 일고 있기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18일 북한 비핵화 해법으로 ‘리비아 방식’을 포기하고 새로운 접근방안을 들고 나갈 용의를 밝힌 것이 대표적이다. ‘리비아 방식’은 북한이 먼저 비핵화를 해야 제재완화·안전보장 등 상응조처를 하겠다는 것으로 북한은 이를 ‘강도적 요구’라며 반발해왔다. 지난달 23일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싱가포르 합의’ 정신이 유효하다는 데 공감했다. 싱가포르 공동성명에는 새로운 북·미관계 수립과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이 비핵화보다 우선순위에 배치돼 있다. ‘선 비핵화’에 집착해온 예전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로 비친다.  


물론 비핵화 방법론에서 이견이 좁혀졌다는 징후는 아직 드러나지 않는다. 미국은 ‘동시적 접근법’을 , 북한은 ‘동시적·단계적’ 비핵화를 고수하고 있다. 비핵화의 정의와 최종단계에 대한 합의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양측이 최대한 유연성을 발휘하면서 한 발짝씩 양보한다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오랜 교착 끝에 열리는 이번 실무협상이 한반도 평화를 향한 대전환의 서막이 되길 기대한다.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

건국 70주년을 맞은 중국이 국가 훈장인 ‘공화국 훈장’을 처음 수여했다. 중국 건설과 발전에 공헌한 인물들에게 주는 최고 영예다.


8명의 수여자 중 단연 눈에 띄는 인물이 바로 선지란(申紀蘭·90)이다. 


선지란은 평생 농촌개혁에 앞장서왔다. 고향인 산시성 핑쉰현 시거우촌에서 당 간부에 임명됐지만 30년간 월급을 받지 않았다. 관용차량도 거절하고 버스를 탔다. 출장에 가면 가장 싼 여관, 가장 싼 음식을 찾았다.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역대 중국 지도자들은 선지란을 직접 만나 격려했다.  


호찌민 전 베트남 주석과 김일성 북한 주석 같은 사회주의 국가 지도자들도 그와 만났다. 지난해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100인의 개혁선봉 표창 수상자에 선정된 데 이어 올해는 최고 영예인 공화국 훈장까지 받았다. 


중국이 건국 70년간 여정에서 선지란의 공로를 크게 인정한 이유는 비단 청렴함 때문일까. 


선지란은 중국 정치의 현주소를 잘 보여주는 인물이다. 선지란은 1954년 중국 의회인 제1기 전국인민대표대회 대표로 선출된 후 13기까지 65년간 전인대 대표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 유일무이한 인물이다. 그리고 그동안 모든 투표에서 찬성표를 던진 유일한 대표이기도 하다. 수천만 인민들을 아사시킨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설립에 찬성했고, 중국 현대사 최대 비극으로 꼽히는 문화대혁명에도 찬성했다. 공산당이 대약진운동과 문혁에 대한 과오 청산에 나설 때도 찬성표를 던졌다. 류샤오치에 대한 평가가 극단적으로 바뀌는 과정에서도 한결같이 찬성했다. 공산당의 입장은 세월이 흐르며 바뀌었지만 그는 한 번도 ‘찬성’을 접은 적이 없다.


1949년 10월1일 마오쩌둥 주석이 톈안먼 성루에서 “중화인민공화국 중앙인민정부가 오늘 성립되었다”고 선포한 이래 중국 경제는 비약적 발전을 했다. 그러나 정치체제도 ‘발전’의 방향으로 나아왔는지는 누구도 확신하기 힘들다. 


지난달 30일 베이징전람관에서 열리고 있는 건국 70주년 기념전을 찾았다. ‘위대한 역정·빛나는 성취’라는 주제에 맞게 중국의 과학기술, 경제, 군사 등 다방면의 발전 성과가 잘 전시돼 있었다. 1952년 679억위안에 불과했던 중국의 국내총생산(GDP)은 지난해 174배 성장했다. 2010년에는 일본을 넘어 세계 2위 경제체가 됐다. 베이징전람관은 원래 소련의 기술과 자본으로 지은 소련전람관이었다. 소련 붕괴 후 베이징전람관으로 이름이 바뀌었고 중국 공산당의 성과를 과시하는 곳이 됐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기념전 관람 후 “70년간 역사적 성취와 변혁은 중국 공산당만이 중국을 이끌 수 있고, 중국 특색 사회주의 노선만이 중국에 번영과 부강을 가져올 수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올해로 중국 공산당은 소련 공산당의 69년 집권 기록을 깼다. 


그러나 중국 특색의 사회주의는 과거로 회귀하고 있는 듯하다. 덩샤오핑의 유훈인 ‘집단지도체제’가 희미해졌다. ‘국가주석 3연임 금지’ 조항을 폐지해 장기집권이 가능해졌다. 헌법에 ‘시진핑 사상’을 삽입해 시 주석의 사상적 지위는 마오쩌둥 반열로 격상됐다. 시 주석이 2013년 국가주석으로 처음 임명될 때 찬성률은 99.86%였다. 반대표는 단 1표, 기권은 3표에 불과했다. 헌법 수정 표결 때도 반대는 2표뿐이었다. 


선지란은 “요즘은 거수 대신 전자개표기 버튼만 누른다”면서 “전인대 변화가 너무 빠르다”고 토로했다. 거수라는 공개 찬성을 통해 충성심을 과시할 수 있었던 과거가 그리운 것은 아닐까. 경제에서는 눈부신 개혁·개방 성과를 이뤘지만 개혁을 찾기 힘든 중국의 정치가 우려된다.


<베이징 | 박은경 특파원>

Posted by KHross

댓글을 달아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