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6·30 판문점 회동에서 ‘2~3주 후 실무협상’을 갖자고 약속했을 때, 그렇게 될 것 같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제안하고 김 위원장이 수락한 것이기 때문이다. 비핵화 협상의 고비마다 돌파구가 됐던 톱다운 방식의 재연이었다. 하지만 2주가 한 달이, 다시 두 달이 돼도 만난다는 얘기는 들려오지 않았다. ‘비핵화 담판이 시작되는 건데 시간이 걸리는 것 아니겠냐’는 우려와 ‘8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끝나면 만나지 않겠느냐’는 기대가 교차했다. 최근 양측에선 협상 재개의 신호는커녕 외교수장들끼리 “독초” “망발”(리용호 외무상) “불량정권” “가장 강력한 제재”(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와 같은 험한 말만 주고받았다.


상황이 이러니 대화 의지도 의심받는다. 그럼에도 대다수 전문가들은 북·미 실무협상이 연내에 이뤄질 것으로 전망한다. 북한이 비핵화 협상 시한을 올 연말로 설정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북·미 정상 간 관계가 틀어졌다고 볼 만한 일은 없었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냈고,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관련 얘기만 나오면 “관계가 좋다”고 말한다. 미 국무부와 유엔 북한대표부를 잇는 뉴욕 채널이나 판문점 채널 등과 같은 비공개 채널도 열려 있다.


도대체 북·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으로부터 답을 듣는 대로 협상에 관여할 준비가 돼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북한이 준비되면 언제든지 달려가겠지만, 연락을 하지 않는 걸 보니 준비가 안돼 있다며 북한에 책임을 떠넘기는 것이다.


북한이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내놓은 메시지를 보면 완전한 비핵화와 체제안전보장을 교환하는 문제를 준비한 것으로 보인다. 협상은 주고받기다. 서로의 생각을 알아야 맞춤형 카드를 내놓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국의 구상을 파악하고 있는지는 불투명하다. 하노이 만남 이후 양측이 진지하게 마주했던 것도 아니고, 미국이 제재와 대화 여지만 반복해서 거론하기 때문이다.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미국과의 대화에 대한 기대가 점점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한 것에서도 그런 불만이 읽힌다.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 속도를 내길 원한다. 미국의 제재에 묶여 있으면 괄목할 만한 경제 성장을 기대하기 어렵다. 김 위원장은 ‘핵·경제 병진’에서 ‘경제 우선’으로 방향을 이미 틀었다. 내년에는 북한의 경제개발 5개년 전략이 끝난다. 경제 상황이 지지부진한데도 여유롭다면 그게 더 의아한 일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의 경제적 잠재력을 강조하지만 제재라는 족쇄를 풀지 못하고 관계개선을 하지 못하면 경제발전은 요원하다. 베트남이 1987년 도이머이(개혁) 정책을 채택했지만 경제발전은 1995년 미국과의 관계개선 이후 본격화한 것도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북한이 ‘제재 완화에 연연하지 않겠다’고 하지만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기 힘들다. 오히려 안전보장 문제를 꺼내는 것이 미국에 ‘제재 완화를 못해주겠다면 안전보장은 해주겠다는 거냐’고 따져묻는 듯하다. 이를 모르지 않을 미국이 먼저 대화의 손을 내밀지 않는 건 미국도 제재 해제나 안전보장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준비하지 않은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부른다.


북한은 ‘하노이 트라우마’가 있다. 하노이 회담 전 폼페이오 장관이 방북하고 실무 라인에서 의제를 논의했지만 정상회담장에선 미국 측이 다른 얘기를 했다. 김 위원장이 빈손으로 귀국 열차에 오른 이유다. 이후 김영철 노동당 부위원장 등 협상팀이 바뀌었다. 북한 협상팀은 미국이 ‘뒤집히지 않을’ 성의표시나 분명한 입장을 확답해야 만날 수 있다고 하고, 미국은 만나기 전에는 미리 패를 깔 수 없다고 하는 형국이다.


리용호 외무상이 이달 하순 뉴욕 유엔총회에 불참키로 한 것은 미국과의 접촉을 의도적으로 피하려는 의도로 보인다. 만나봐야 실익이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북·미가 겉도는 사이에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실무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하는 교착 국면이니 언제 고위급 협상을 거쳐 정상회담으로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서로가 솔직해져야 한다. 비핵화와 상응조치를 두고 각자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을 명확히 구분지어야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이 핵실험과 중장거리미사일을 쏘지 않는 ‘현상유지’ 상태를 치적으로 부각하지만, 올해 안에 협상이 진전되지 않으면 대화의 동력은 급속히 사그라들 수 있다. 미국이 북한에 대한 자극적인 언사를 피하는 등 대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북한이 지금 남한을 뒷전에 놓고 있지만 한국은 미국에 북한의 상황을 적극 설명해 적극성을 발휘하도록 움직일 필요가 있다.


<안홍욱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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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의 행정 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이 4일 홍콩 시위를 촉발한 ‘범죄인 인도법안(송환법)’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했다. 시위대가 요구해온 5개 사항 중 첫째 조건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로써 중국 정부의 시위대에 대한 강경진압 예고로 제2의 톈안먼(天安門)사건이 일어날지 모르는 일촉즉발의 상황은 넘겼다. 홍콩 정부가 시위대의 요구를 전부 수용하지도 않았고, 시기적으로 조치가 너무 늦기는 했지만 홍콩 정부의 진일보한 결정을 환영한다. 국내 소요 사태에 대해 늘 강경하게 대응하는 중국 중앙정부임을 감안하면 결코 작은 성과가 아니다. 


홍콩 캐리 람 행정장관. 로이터 연합뉴스


이번 송환법 철회는 민주화를 열망하는 홍콩 시민의 승리다. 홍콩 시민들은 지난 3월 초 홍콩 당국이 송환법 제정을 추진하자 6월부터 본격적으로 반대 시위에 나섰다. 송환법이 홍콩에 있는 반중·인권 운동가를 중국으로 압송하는 데 악용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이후 지난 14주 동안 쏟아진 장대비도, 중국 정부의 위협도 시민들의 민주화 의지를 막지 못했다. 특히 당국의 방조하에 자행되는 백색테러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비폭력으로 맞선 홍콩 시민을 지켜보면서 세계인이 응원했다. 중국 정부가 특수부대를 인접 도시에 배치하고 시위 지도부를 체포했지만, 시민들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이용해 집회를 이어갔다. 물론 이번 철회 조치는 다음달 1일 ‘신중국 건국 70주년’ 분위기를 망치지 않기 위해 강경 대응을 자제한 결과인 것은 맞다. 그러나 홍콩 시민들의 견고한 민주화 의지와 세계인들의 눈을 부릅뜬 감시와 지지가 없었다면 이번 조치는 결코 나올 수 없었다. 이 점에서 홍콩 시민의 승리이자 세계인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환법은 철회됐지만 사태가 마무리된 것은 아니다. 시위대는 나머지 4가지 요구, 즉 경찰의 강경 진압에 관한 독립적 조사와 시위대 ‘폭도’ 규정 철회, 체포된 시위대의 조건 없는 석방 및 불기소, 행정장관 직선제 실시 등을 요구하고 있다. 홍콩 및 중국 중앙정부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오는 주말로 예정된 15차 시위와 이후 상황에 따라 사태의 추이가 결정된다. 중국 정부가 나머지 4개 요구를 적극 수용하지 않는 한 시위대는 물러서기 어렵다. 시위대에 대한 백색테러와 홍콩 경찰의 방조를 경찰 자체 위원회로 조사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중국이 세계의 지도국을 자처한다면 시위대의 민주화 요구에 응답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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